황장엽에 대한 잡감(雜感)



열등감과 트집의 화신 김영삼이 김대중보다 잘 나 보였던 일이 딱 하나 있었다. 광주 민주화 항쟁 발생 3주년이 되던 1983년 5월 18일 김영삼이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 단식투쟁을 전개한 것이 그것이다.

김영삼의 단식은 전두환의 폭정에 잠시 숨죽였던 민주화 진영이 다시 재무장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1982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어 미국으로 건너간 김대중과 확연히 비교되는 대목이다. 물론, 두 사람이 제각기 선택한 ‘단식과 도미’는 나름대로 절박한 결정들이었을 터 그 결과만 놓고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엔 성급한 면이 없잖더라도 김영삼의 선택은 죽더라도 전장을 지킨 장수의 도리로 볼 때는 칭찬 받아 마땅하다 싶다. 새삼 이 일을 떠올려 보는 건 며칠 전 죽은 황장엽에 대한 잡감 때문이다.

황장엽! 길거리 개똥처럼 가벼이 농단할 대상은 분명 아니다. 함에도 그의 사후 들려오는 몇 가지 가십성 기사들을 보노라면 역정이 난다. 나아가 그의 탈북 후 행각에 생각이 미치면 역겹기까지 하다. 이런 감정은 단순히 남한이나 북한의 정권과 체제에 대한 호불호의 감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로 접근해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탈북 후 수양딸을 뒀다고도 하고 국정원으로부터 딸 같은 여인을 소개 받아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 늦둥이 아들까지 뒀다고도 하고 홀홀 단신 탈북이 아니라 가족동반 탈북했으나 본처와 아들, 딸 모두 이국(異國)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602554(내연의 아내와 아들 관련 기사)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10101214572537580&newssetid=1331(김영삼의 전언)

'나 때문에 당신과 사랑하는 아들·딸(1남3녀)들이 모진 박해 속에서 죽어 가리라고 생각하니 내 죄가 얼마나 큰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오. 나는 가장 사랑하는 당신과 아들·딸들, 손자들의 사랑을 배반하였소. 나를 가장 가혹하게 저주해 주기를 바라오. 나는 이것으로 살 자격이 없고, 내 생애는 끝났다고 생각하오. 저 세상에서라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소.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이별을 한 내가 얼마나 더 목숨을 부지할지는 알 수 없으나 내 여생은 오직 민족을 위해 바칠 생각이오.'
http://news.mk.co.kr/v3/view.php?year=2010&no=547301

탈북 당시 위와 같은 유언을 남겼다던 황장엽 본인의 진술을 고려하면 김영삼의 전언은 신뢰하기가 힘들고, 탈북 후 남한에 정착하면서 내밀하게 젊은 아내와 아들을 둔 게 사실이라면 전처에게 보냈다던 망부가는 그야말로 식언이 되고 말았다.

그의 탈북이 전처와 자식들과 친인척을 포함 측근 인사 2,000여명의 숙청을 동반하였다고까지 전해지니 가히 ‘피바다’를 건너온 도피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탈북 전 북한 정권 내에서 그가 지녔던 비중으로 보아 충분히 그럴 만도 하리라 여겨진다.

황장엽은 스스로 탈북동기에 대하여 "조국(북괴)의 (1인 폭압 수령 독재)체제에 의분(義憤)을 느껴 그 변혁을 도모하기 위하여" 망명을 택했다고 수기에서 적고 있다. 남한 내 활동 계획에 대해선 “앞으로 여생은 북한을 민주화하기 위해 남쪽의 동포들과 힘을 합치는 데 주력하겠다”라고 밝혔다.
http://www.newstown.co.kr/newsbuilder/service/article/mess_main.asp?P_Index=84651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11010703231110020

위와 같이 그가 스스로 밝힌 것과는 달리, “주체사상 이론가로 알려진 황장엽(87세)은 북에서 최고인인회의 상임위원장,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 권력 핵심부에서 요직을 두루 역임한 '거물급 빨갱이' 로서 김일성 사망 후 중국식개혁개방을 주장하다가 김정일의 눈 밖에 나 실세에서 밀려나면서 발붙일 곳이 없게 되자 탈북을 택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라고 보는 것이 항간의 통설이다.

그가 만약 위에서 자신이 밝힌 바처럼 ‘조국(남한? 북한? 한반도?)의 변혁을 도모하고 남한에서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남쪽의 동포들과 힘을 합치려’ 탈북 했다면 스스로 몽상가임을 자인한 것에 다름 아니다. 몽상가란 이룰 수 없는 꿈을 쫒는 자를 말한다. 그와 친했다던 류근일 조선일보 전 주필이 “황 선생은 언젠가 출판 기념회에서 ‘이게 마지막일 것 같다’고 했는데 어딘가 쓸쓸하고 처연해 보였다”라고 말한 걸 보면 황장엽이 늦게나마 자신의 꿈이 몽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던가 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12/2010101201016.html

어쩌면 첨부터 자신이 밝힌 야무진 꿈은 자신의 궁색한 입지를 위장하는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가족과 부하들도 버리고 전장을 떠난 장수가 고작 변방에서 북이나 치고 나발이나 불어대다니 그런 건 아녀자들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에 2010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중국의 류사오보는 죽을지언정 전장을 지킨 용맹한 장수의 표본이고 장수가 전장을 지켜야함은 한 때의 김영삼조차 해냈던 일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08/2010100801826.html

누가 되었든 남한 내에서 북한의 민주화를 촉구하고 한반도의 통일을 달성하는 데서 절반의 목소리만 대변해서는 곤란하다. 통일과 같은 거대 담론은 보수 진보 양진영이 한 목소리로 공감할 수 있는 절대 로드맵이 제시되었을 때 비로소 실천 가능한 일이다. 황장엽이 남한에 와서 했던 일이란 게 내 보기엔 기껏 자신의 사익과 입지를 세우기 위해 좌우 대립을 조장하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역기능의 일이었지 남한 내의 국론을 조정하고 통합하고 매개하는 순기능의 일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앙심을 풀기 위해 극단적 분열론자의 길을 걸었을 뿐이다.

동기가 옳지 못하면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고와 보이지는 않는 법이다. 하물며 동기도 좋지 못한데 결과마저 나쁘다면 그건 참으로 밉상이다. 불과 일주일여 전까지도 그는 밉상을 넘어 진상 같은 분열적 언행에 몰두하고 있었다. 아래 글은 황장엽이 지난 4일 '김일성 3대 세습에 관하여'란 제목으로 '대한민국 건국기념사업회'(회장 이철승)가 발행하는 자유대한신문에 기고한 글이라고 한다. 냉철한 비판이 아니라 죽음을 앞둔 자의 저주성 한풀이에 지나지 않는 객쩍은 격문에 헛웃음이 날 뿐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2.htm?articleid=2010101203032234934&linkid=612&newssetid=3547&title=%BB%E7%C8%B8+%C0%CC%B8%F0%C0%FA%B8%F0




3대 세습을 강행하는 김정일 때려죽일 늠이란 얘기도 좋고 북한의 민주화 문제에 대하여 내 몰라라 하는 남한내 진보 세력에 대한 비난도 다 좋다. 근데 ‘김정일의 핵무기가 무섭거든 빨리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 바란다’라니! 이 무슨 해괴한 망발인가. 정작 자신이야말로 나라를 도적질한 그런 후안무치한 도적놈이 무서워 도망 나온 자가 아니던가! 내 볼 때 후안무치로 따지자면 김정일이나 황장엽이나 도진개진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 몸으로 지켜왔던 진보세력들을 향하여 감히 적반하장격의 충고를 토로할 만한 자격이나 있는지 황천길의 황장엽을 불러 세워 따져 묻고나 싶다. 이 양반에게 딱 맞는 훈장은 대한민국 최고 훈장 무궁화장이 아니라 ‘얼치기 진보’란 딱지다.(어떤 님아, ‘얼치기 진보’란 바로 이럴 때 써먹는 말이지 자신의 피해의식이나 사감을 표출할 때 쓰는 용어가 아니다.^^)
http://n.breaknews.com/sub_read.html?uid=147852§ion=sc1

주체사상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 지금의 북한 권력의 체계를 구축하는 일등공신의 역할을 하며 자타가 공인하던 빨갱이가 늘그막에 물 좋고 공기 좋고 정자 좋은 곳으로 피접(?) 와서는 30억을 호가한다는 안가에서 호의호식하면서 겉으로는 굶주린 인민들의 해방을 운운하고 전장을 지켜온 남한의 진보세력들을 향한 주제넘은 호령이라니 헐, 참으로 가증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121053311&code=940100

사람을 버린 자가 사람을 구할 수 없고 전장을 버린 장수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는 없으며 조국을 버린 자가 조국을 구할 수 없다는 건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다.

황천길 가는 고인의 발치 아래 침 뱉는 글일런가 모르겠지만 가시는 길에 저승바위에라도 앉아 쉬어갈 참이면 좌선하여 때늦은 득도라도 이루길 비는 충고로 받아 들이시라. 더불어 이제는 세상 밖 사람이려니 억지 맘이긴 해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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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황장엽)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결심했고 나는 조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으니, 평화통일과 자유민주주의는 같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황장엽도 김동길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다 ‘죽을 자리’를 찾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김동길의 '형제는 용감하다' 중에서)
http://www.newdaily.co.kr/news/article.html?no=56185

황장엽과 김동길의 경화된 신념 속에 내장된 위선과 허세를 보노라니 에코의 경고가 음습하게 떠오른다.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신심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다. 이단자가 성자에서 나오고 신들린 자가 선견자에서 나오듯이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조심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저 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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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5. 글 내용의 공정성을 위해 황장엽의 귀순 후 남한 내 사실혼 관계의 처와 자식에 관한 기사 한 편을 아래 링크로 추가해 놓습니다. 상반된 내용의 사실 여부는 추후 어떠한 형태로든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까지는 글의 내용을 수정치는 않겠습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2.htm?articleid=2010102508024574301&linkid=623&newssetid=2431&title=%BC%BC%BB%F3+%BC%D3+%C0%CC%BE%DF%B1%E2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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