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eta Parra, Mercedes Sosa

한겨레 신문 / 곽병찬칼럼
2008.06.04

불가사의했다. 도시는 체포와 학살, 사찰과 고문으로 신음하는데 어떻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도시와 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들/ 그리고 너의 집과 나의 길/ 피곤하지만, 행진을 할 수 해준 나의 다리/ 이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이여, 감사합니다.” 게다가 ‘기타는 총, 노래는 총알’이라던 누에바 칸시온(새로운 노래) 운동의 대모, 비올레타 파라(칠레)가 작곡하고, 고통받는 이들의 어머니라는 메르세데스 소사(아르헨티나)가 부른 노래라니!

당시 칠레는 3천여 명의 시민을 학살했고, 체포와 구금 고문 등을 피해 100만여 명이 고국을 등지게 한 피노체트의 철권통치 아래 있었고, 아르헨티나에선 군부정권의 더러운 전쟁 속에서 3만여 명이 피살 혹은 실종된 상황이었다. 산다는 건, 그 자체로 ‘고통이고 투쟁이고 저항’이었다. 그럼에도, 삶에 감사하는 이 노래는 독재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는 총알이었다!

이 오래된 의문과 경탄이 요즘 다시 살아난다. 진압 경찰의 방패에 찍히고, 몽둥이에 뒤통수를 맞고, 군홧발에 짓밟히고, 물대포에 고막이 찢겨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치켜든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타고난 생기발랄은 시청에서 광화문 네거리에 이르는 너른 광장을 한 달째 춤과 노래와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민주주의 놀이터’로 만들었다. 그들은 비장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돌을 들지 않았고, 쇠파이프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비무장의 그들은 흔들리는 촛불이었고, 막히면 비켜가는 물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아니라 공권력의 강철대오가 흔들린다. 엄포와 협박을 일삼던 검찰 경찰 정권은 실색했다.

하긴 간난 아기를 태운 엄마들의 유모차 부대가 앞장서고 아이들을 목말 태운 아빠들이 뒤를 따르는데, 막아서면 ‘텔미 춤’을 추고 협박하면 노래나 하라는데, 길이 막히면 주저앉아 장기자랑 노래자랑으로 초여름 밤을 즐기는데, 때리면 그저 얻어터지는 게 제 역할이라는 예비군들이 대열을 보호하는데, 거기에 대고 무슨 짓을 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노래하는 이들을,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죄로 처벌할까 내란죄로 주리를 틀까. 이렇게 신나고 흥겨운 민주주의가 세상 어디에 있었던가.

한때 민주주의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입밖에 내려면, 이를 악물고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매야 했다. 무차별 구타와 투옥도 각오해야 했다. 그래서 대개는 그저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으로,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 떨리는 노여움”으로 신새벽 뒷골목에서, 남몰래 ‘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라고 끼적이는 게 고작이었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비장한 것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이 비장한 민주주의를 행복한 것으로 전복시켰을까. 남미 민중이 그 혹독한 억압과 저항 속에서 ‘삶이여 감사’하다고 노래했던 것은 단지 낙천성 탓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억압을 해학과 풍자로 풀어내는 능력, 이웃과 공동체의 고통에 대한 공감의 능력, 삶을 사랑하고 즐기는 생기발랄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거기에 우리의 젊은 벗들은 정의의 감수성과 연대의 힘까지 갖추었다. 그러니 더 행복한 민주주의로 향한 그들의 행진을 어찌 물대포로 막을 수 있을까.

젊은 벗들이여, 감사합니다. 그대는 일쑤 비장하고, 그래서 일쑤 주저앉는 우리에게 희망하는 법을 알게 하고, 서로 연대하고 의지하는 법을 알게 했습니다. 그대의 노래는 나의 노래이며, 그대의 춤은 우리의 춤입니다. 그대들을 우리 곁에 두신 삶이여 감사합니다.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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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as a la vida (삶에 감사합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눈을 뜨면 흑과 백을 완벽하게 구별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을 내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높은 하늘에는 빛나는 별을,
많은 사람들 중에는 내 사랑하는 이를 주었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밤과 낮에 귀뚜라미와 카나리아 소리를 들려주고,
망치 소리, 터빈 소리, 개짖는 소리, 빗소리,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그토록 부드러운 목소리를
녹음해 넣을 수 있는 넓은 귀도 주었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생각하고 그 생각을 주장할 수 있는 언어와
소리와 알파벳을 선사하고,
어머니와 친구와 형제들, 그리고 내가 사랑하고 있는 이의
영혼의 길을 밝혀주는 빛도 주었고요.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피곤한 발로 진군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그 피곤한 발을 이끌고 도시와 늪지,
해변과 사막, 산과 평야,
당신의 집과 거리, 그리고 당신의 정원을 거닐었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정신이 열매를 거두는 것을 볼 때
악에서 멀리 떠난 선을 볼 때
그리고 당신의 맑은 눈의 깊은 곳을 응시할 때
삶은 내게 그 틀을 뒤흔드는 마음을 선사했습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삶은 내게 웃음과 눈물을 주어
슬픔과 행복을 구별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슬픔과 행복은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를 이루었습니다.
이 노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노래입니다, 모든 노래가 그러하듯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Mercedes Sosa - Gracias a La Vida


*VIOLETA PARRA - Gracias a la vida ( Thanks the life) ORIGINAL version

오늘 <슬픈 한국>의 글이 나를 슬프게 한다.

작성자:HUE
작성일:2009.11.03


교육 :

문명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지식이라는 형식을 사용하고 전수하는 것이다. 교육은 이러한 지식의 형식 또는 문명된 삶의 형식에 사람들을 입문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문명사회의 성숙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브리태니커)

철학 혹은 철학자 :

지혜를 사랑하고 그것의 가르침에 따라 독립적이며 너그럽고 신뢰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중에서)


<교단에 교사가 없는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쓴 ‘슬픈 한국’님의 글을 읽다가 눈과 마음이 어지러워 대충 건너뛰고 결말을 힐끗 본 뒤 책상을 정리한다.

“그는 슬플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의 소유자이구나!”하고 탄식이 흘러 나왔고 오전에 나의 시간을 허비시키게 되는 슬픈 조우를 기록한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이 추위에 동동거리며 너나없이 마스크를 하고 등교하는 모습을 보았다. 보았다는 말 속에는 학교와 교사, 학생이라는 실재적 모습에서부터 교과 수업의 진행과 학생들이 형성하는 관계 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단에 교사가 없다니?

지금 이 시간 한국에는 수많은 교사들이 교과과정에 따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것이다. 교사들이 주어진 교재를 활용하여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을 앞에 두고 없.다.니. 뭐가 없는 걸까....

아마도 글쓴이가 혼자 정의하고 있는 <어떤 교육>혹은 <슬픈 교육>이 있어야 교단에 교사가 있다고 말해 줄 수가 있는 모양이다. 그게 도대체 뭘까???

‘촌지’를 이야기 한다. 촌지가 교단에 교사가 없다는 교육 부재 증명으로 비약한다. 교사가 촌지를 받느라고 교단을 비웠다는 뜻일까. 촌지가 뇌물이고 뇌물은 건강한 구조를 허무는 요소이므로 교단이 허물어졌다고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 글쓴이가 간과하는 여러 문제는 젖혀 놓더라도 촌지 때문에 교단 없는 슬픈 한국의 현주소라고 말하기 전에 자신이 판단하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에 비추어 합당한가 어거지인가를 독자들이 판단할 것이다. 사회 경제를 슬프게 해석하기위해 들고 나온 교육 부재 증명치곤 남루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교육은 무엇인가? 나는 위에 브리태니커에 나오는 교육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제시했다. 내가 생각해 온 교육이 이와 다를 바 없기에 인용했다. 이로 미루어 교사는 지식을 전수하고 사회에 입문시키는 조력자이기도 하다. 조력자로서 교사에게 요구되는 일차적인 자질은 보편성과 중립성일 것이다. 나는 교사도 아니고 교육학자도 아니니 일일이 설명하기 번거롭다. 바라건대 당신이 아무리 슬프고 교단 없는 교실에 다녔더라도 한국의 평균적 교육 수준을 획득했으리라 짐작하며 쓰니 보편성이니 중립성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러한 문제와 연관해서 교육의 부재를 탓한다면 일리가 있을 것이다.

당신이 말하는 촌지의 문제는 교육 현장에서 파생된 지엽적인 사회 문제이다. 이걸 곧바로 교육의 부재로 이끌어내는 사고력은 사실에 접근하기보다 어떤 작의를 정당화하기위한 아전인수에 가깝다.

글쓴이의 글을 처음 접했는데 과거에 어떤 주제를 가지고 썼는지 모르지만 위와 같은 글쓰기의 연장선상에 있었다면 본말이 전도된 시각이며 억지 주장이거나 침소붕대를 일상화한 성향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 결론으로 “자기반성”이 없는 사회를 꾸짖는다. 이 문제는 그야말로 곤혹스럽다. 시부럴 늪과 같은 문제 제기다. 시야를 한정하고 범위를 제시하면 그나마 단편적인 논의가 가능하겠고 그것으로 전체를 조망해 볼 여지는 있겠지만.

일단 글쓴이는 지식인 사회의 부조리와 교육 외적인 것들로 인해 교육이 훼손되고 나아 가 사회 경제의 구조적 모순을 중층화하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누구나 공유하는 인식에 기대고 있을 뿐 해법이라곤 “자기반성”이다. 그래 내 탓이다. 이걸로 된겨?


글 쓰는 도화선이 되었거나 쓰다 생긴 잡념들.

1. 촌지

뇌물이라는 지탄을 뒤집어 쓴 말이지만 나는 여기에 기쁜 추억이 있다. 내 아이가 아파서 며칠 쉬었을 때 담임으로부터 고마운 배려를 경험했다. 아이는 자신의 결석으로 생긴 학교생활에 대한 불안이 있었는데 이를 담임선생님은 나와 충분한 사전 조율을 해주었고 야기될 문제들을 살펴 주었다. 그런 후 방학을 하는 날 아내가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표하도록 주문하였다. 돈은 서로 낯붉힐 일이니 합당한 선물을 드리라고. 방학 후 선생님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감사히 잘 받았다는 편지와 함께 작은 봉투가 동봉되어 있었다. 거기엔 방학 중 아이에게 읽히라며 도서 상품권이 들어 있었다. 아내가 드린 선물과 동일한 액면으로.

촌지로 교사를 비난하기 전에 학부모가 교육의 건정성 확보에 참여하는 게 좋다. 이는 마치 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정치의 질을 형성한다는 주문과 같다.

2. 교육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서 정치 사회 경제에 대한 반면교사로 활용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런데 나는 이게 무척 조심스럽고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교육은 생명의 진화와 동시에 시작되었고 그만큼 인류의 고민이 점철된 축적물이다. 그런 만큼 시대마다 문제점들이 발생했을 때 다듬어 온 역사적 연마물이어서 완성도가 대단히 높다. 한 개인의 일생에서나 감정적 시선으로 재단하기에는 아무리 조심해도 기껏 부스러기 한 점을 고깝게 보는 수준에 이르는 거여서 그렇다. 뭐 세상이 하루살이 앵앵거리며 사는 풍경이라면 할 말 없지만.

3. 선입견

타인과의 소통에서 선입견은 유불리가 작용하고 사람들은 이를 적절히 활용하기 위해 애쓴다. <슬픈한국>이라는 닉에서 '슬픈'이라는 형용은 비관적 시선을 지녔을 거라는 선입견을 준다. 이건 개인의 취향이긴 하나 교육에 있어서 이런 선입견을 줄 수 있는 행위는 촌지보다 해악이 크다고 말 할 수 있다. 교단은 지식의 매개지이며 교단에 선 자의 품성은 수혜자의 인생에 빛과 그늘이 된다 .


written by 'HUE'
(이 글의 저작권은 'HUE'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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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글 날로 먹는 한 마디 : 어쩜, 내 맘이 딱 HUE맘야!!

(추임새)
내가 겪은 세 분의 우리집 을라 쌤들 모두 HUE님이 소개한 쌤 못잖았어요. 간혹 세상을 들쑤셔놓는 일부 말썽꾼 쌤들보다 아이들이 '문명사회의 성숙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표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시는 쌤들이 훨 많다는 걸 증거하신 참존 쌤들이었어요. 세상의 모든 쌤들, 앗싸~지화자아 하세요!!! ===東山高臥===

춤과 율동이 포교당에 필요합니까?

불가에서 가무를 교분의 방편으로 삼는 행위들은 보기에 거북합니다.
사이비 종가들에서나 행하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가벼운 처신입니다.

세속에서 바라보는 불가의 강점은 상대적 경건함입니다.
기독교 광신도란 말은 있어도 불교 광신도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지 않는 까닭도 불가의 경건함을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전에서 수행하는 도반들의 모임에서 가무는 어떤 용도입니까?

가무로 한 바탕 놀고 나면 개운하던가요?
도반들 모두 혼연일체가 된 듯 진득한 연대감이 느껴지던가요?
위선과 가식과 점잔과 체면의 칠갑을 벗고 한층 진실한 나눔의 장으로 여겨지던가요?
그 상태로 가부좌를 틀면 부처님 말씀이 한결 귓가에 선명하던가요?
욕심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으려 수행하는 자들이 어찌하여 욕심의 근원인 오감을 자극하며 흥을 도모하시는지요?
집단적 흥을 유발하여 목적을 극대화하는 사이비 종교 부흥회장의 가무와 무엇이 다른지요?
다단계 판매 교육장에서 또는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행해지는 집단의 가무와는 또 어떻게 다른지요?

세존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천사색의 채화를 내리사 가섭이 그 뜻을 헤아리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춤을 추었다고 전해지는 말 말고 승가나 불가에서 가무가 수행이나 수행자들 간 교분의 방편으로 행해진다는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어제, 미디어법과 관련한 헌재의 판결이 관심을 끌었지요.

'권한침해는 인정되지만 법은 무효가 아니다'

많은 국민들이 법 해석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헌재의 판결에 의아해 합니다.
과정이 잘못된 결과를 옳다하기에 그렇습니다.

뽕을 빌어 무아지경에 이른 것을 득도라 하오리까?
술기운을 빌어 범하고서 사랑이라 하오리까?

편법으로 수행해서 얻은 도를 도라 일컬으면 대중들이 의아해 하지 않겠습니까?

노래는 노래방에서 부르고 춤은 춤방에서 추고 법당에선 쿵푸(工夫)를 하셔야지요.
몸이 뻐근하면 기체조나 요가 등 경건한 몸놀림으로 정신을 가다듬는 여타의 방법들도 많습니다.
포교당에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흥을 돋고 가무하는 모습은 어떤 연유로든 예뻐 보이진 않습니다.
포교과 조직 관리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여타 신흥 종교 집단들의 가벼움이 오버랩되어서 눈살이 찌푸려집니다.

불가에서 수행하는 목적은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고 행하는 것이지 조직의 확대가 아닙니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관료화되고 타성에 젖기 마련입니다.
비대해진 조직을 손쉽게 관리하기 위해 말초적 흥미를 자극하는 세속적 조직 관리 방식의 유혹에 빠져들면 곤란합니다.
조직 관리의 책무를 맡은 자나 구성원들이나 제보다 젯밥에 관심을 두는 꼴입니다.
깨달음이 목적인가요? 조직이 목적인가요?

조직 관리에 함몰되어 포교당을 놀이마당으로 착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東山高臥===

햇볕슈퍼

작성자:햇볕
작성일:미상



근무하는 학교 후문 쪽에 조그마한 지하 구멍가게가 있습니다. 이름은 햇볕슈퍼입니다. 이름만 햇볕슈퍼지 햇볕이라곤 지면에 닿은 창틀에서 새들어오는 정보지 반 장 크기의 햇살이 전부입니다. 그러다보니 종종 빵들은 곰팡이가 풀풀 날 정도로 유통기간이 지나있고 알루미늄 음료수 캔들은 입댈 부분에 녹이 슬어있습니다. 담배만 사러 오는 이 슈퍼에 세 번째 날인가 용기를 내어 가게이름에 관해 묻기로 합니다.

-이름이 예쁘네요, 가게…….

주인은 그냥 웃기만 합니다.

-빨리 돈 버셔서 진짜 햇볕 잘 드는 곳으로 이사 가셔야겠어요.

그는 디스 한 갑을 건네며 계속 웃기만 합니다. 저는 ‘해가 따로 없구나. 밝게 웃는 그가 바로 해로구나’ 생각합니다.


담배은박지 끈을 당기며 밖으로 올라오는데,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오, 찬란도 하여라. 대한민국 4월, 세 2시의 진정한 햇살! 아, 신이 있다면 부디 저 슈퍼, 이름값하게 하옵소서!


밀가루반죽에다 팥덩이와 햇볕 몇 조각을 집어넣던 모퉁이 붕어빵아줌마가 천원어치 빵이 익을 때까지 들려줍니다. 햇볕이는 교통사고로 죽은 그의 외동아들이며 작년엔 자궁암을 앓던 걔 엄마마저 세상을 떠났노라고……. 구워지는 붕어빵의 꼬리가 유난히 길어 보입니다. 지금도 목구멍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written by '햇볕'
(이 글의 저작권은 '햇볕'님에게 있습니다)


이 글은 무단 전재이므로 작자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삭제 권고하시면 언제든 삭제하겠습니다^^.===東山高臥===


화가와 모델과 그

작성자:설린자
작성일:미상


화가는 모델을 앞에 두고 캔버스 앞에 앉지 않는다.
앉지 않고 닫혀 있는 창문을 다시 닫는다. 커튼의
주름을 꼼꼼하게 어루만졌다가 굴곡 그대로 늘어지도록
섬세하게 조정한다. 가끔 곁눈질로 모델을 쳐다보지만
바닥에서 발견되는 머리카락을 줍고 창밖에 사라지는
구름의 흔적을 쫒는다.

화가는 모델을 주목할 수 없다.
모델 옆에는 창문이 있고 커튼이 있고 화구들이
있고 벽이 있고 벽지가 있다. 벽지는 마름모꼴 무늬의
연속이고 그걸 바라보고 있으면 약간 어지럽다. 눈을
깜빡거리고 정신을 차리면 벽이 물렁물렁해지면서
마름모꼴의 한 지점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간다.

무서운 속도 때문에 방 전체가 발사된 총알 같다.
화실 한쪽에는 허리 높이만한 탁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에 사과 한 알이 놓여 있다.

세잔의 사과가 있는 정물화에는 사과가 돌처럼
그려져 있다. 세잔의 사과는 영락없는 덩어리다.
사과의 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사과다.

자코메티가 그린 정물화는 큰 탁자 위에 조그만
사과 한 알 놓여 있다. 탁자를 그린건지 사과를
그린건지 알 수 없다. 화가는 화집을 덮으면서

모델을 쳐다본다. 눈앞에 꿈틀꿈틀거리는 허공 휘장
안으로 사라지는 모델의 희미한 윤곽이 잔상으로 남는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허공마저 사라진다. 화가는 헤어날
수 없는 까마득한 오후의 깊이로 빠져 들어간다.

*

전과 같은 거리, 표시해 놓은 지점에 전과 똑같은
포즈로 모델은 벽과 천정과 창과 커튼 사이에
그것들과 함께 자리해 있다.

그림을 시도한 후 처음으로 화가의 눈은 모델에
주목한다. 눈의 손가락이 모델에 닿는다. 머리카락의
결과 냄새를 고르고, 눈의 색깔과 깊이에 손가락을
담그고, 귀의 감촉을 느끼고, 입술을 문지르고,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팔, 손가락, 몸을 어루만진다.

만지는 눈에서 열이 날 때마다 눈까풀을 내렸다
올린다. 화가의 손은 부지런히 캔버스 위에 있는
모델을 지워 나간다. 그가 나타날

때까지 화가의 눈은 부지런히 모델을 문지른다.
그는 열기의 베일 사이로,
모델의 윤곽 너머로, 캔버스의 표면 위로
어른거린다. 사라질 듯 위태롭게 그는 나타난다.

그는 모델도 아니고, 그림도 아니고, 그림자도
아니다. 그는 화가도 아니고, 눈의 손가락이 문지를 때
그 마찰의 구멍에서 나타난다. 언제나 만지는 평범한
눈의 애무에서 언제나 비로소 시작되는 그는

사과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하고 글자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는 항상 그이고 동시에 다른 무엇,
무엇이다! 피부를 뚫고 범람하는 현실을 보라!



written by '설린자'
(이 글의 저작권은 '설린자'님에게 있습니다)


이 글은 무단 전재이므로 작자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삭제 권고하시면 언제든 삭제하겠습니다^^.===東山高臥===

계급장을 떼세요--인생 오묘할 것 없습니다

대강의 사람들에겐 범상한 욕도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욕이 될 수도 있나 봅니다.

논쟁 중에 ‘에레이~ 못 배워 쳐먹은 늠아!’라는 욕은 적당히 가방끈이 되는 사람들에겐 한 귀로 듣고 흘려지겠지만 못 배운 게 한이 된 사람에겐 치명적인 아픔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듯 성별과 나이, 학력과 신분, 신체적 특성, 등등 상대의 신상을 알고서는 쉽게 뱉지 못하는 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신상을 알 길 없는 인터넷 게시판에선 서로 간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인터넷 공간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당사자들이 스스로 유연하게 대응하고 소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유연한 대응을 감당할 수 없다면 아예 이런 공간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질 하면서 욕먹지 않을 수 있는 왕도란 없으며 욕을 덜 먹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입니다.
제 아무리 고운 말로 사리에 맞는 글을 써낼지라도 누군가로부터는 욕을 먹기 마련입니다.
제 지난 글 중에는 234명이 찬성한 글에도 반대를 누른 사람 1명이 있었고 100여 편 되는 글들 중에 반대나 안티성 댓글이 없는 글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백가쟁명식의 주장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인터넷 토론방에선 어느 누구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나 붓다가 환생하여 아고라에 글질한대도 누군가로부터 욕먹긴 마찬가지일 겁니다.

성경이나 불경에서 권하는 이상형의 인간상을 이런 토론방에서 구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띕니다.
차라리 문학 카페나 개인 블로그 같은 곳에서나 글질 하면 어울릴 정서를 지니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본인의 정서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런 터가 센 곳에 발을 딛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자신이 백로라고 생각되시면 백로 노는 곳에서 놀면 됩니다.
굳이 까마귀 노는 곳에 와서 까마귀들한테 니들 왜 그리 새카맣냐면서 하얀 털로 털갈이할 것을 요구해봤자 미틴 늠이란 욕 밖에 돌아올 게 없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욕먹을 일을 자초하는 건 자칫 자학성 뵨태끼를 지닌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고운 말 쓰기 운동하시는 분들의 ‘거룩한 뜻’을 폄훼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게시판에서 욕 없이 고상하게 논쟁하라는 건 소설가에게 욕 없는 소설 쓰라는 것과 같고 운전자에게 운전 중에 욕 하지 말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기꾼들이나 정신병자들조차 참여 가능한 이런 난상 토론장에서 품격 있고 고상한 토론을 기대하는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몽상가적 발상입니다.
초중고의 도덕 교실도 아니고 고운 말 바른 말 쓰기 국어 교실도 아닌 인터넷 게시판에서 백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고운 말을 씁시다’라고 주장해봤자 헛수고일 뿐이란 걸 깨닫지 못한다면 그건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애써 현실을 무시하는 아집에 다름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다소 거친 언어가 몸에 밴 남성들과 언어 사용이 비교적 온화한 여성들 간에는 언어생활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런 게시판에서 욕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성별은 대개 여성일 경우가 많고 특히 미혼 여성일 경우 한층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기혼 여성들은 미혼 여성들에 비해선 많이 유들유들한 편이죠.

근자에 새삼스레 논란거리가 되었던 ‘죠슬 까세요’란 표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남성들이야 어려서 첫 자위를 시작할 무렵부터 죠슬 까기 시작하여 죽기 직전까지도 까대니까 ‘죠슬 깐다’라는 표현을 그닥 낯설게 느끼진 않습니다.
‘죶밥’이란 어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주택 환경이 좋아 ‘죶밥’이 먼지도 모르고 크겠지만 나이 웬만큼 드신 남성들은 어렸을 때 포경 전에 꼬츄에 낀 죶밥들을 다들 아실 겁니다.
골똘히 생각지 말고 손톱 밑에 낀 때 정도로 생각하세요.
근데 그런 어휘나 표현들에 무슨 에이즈균이라도 묻은 듯 과민반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인들께서 멀 그리 못 볼 거나 본 거처럼 손사래들 치시는지 정말 곱게들 크셨나 보군요.
아니면 곱게 큰 척 내숭이라도 떠는 건가요.
(‘죶’이란 단어를 그토록 혐오하면서 돌아서선 야동을 즐기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암튼 실생활에서도 ‘죠슬 까는 것’과 ‘죶밥’에 익숙해서인지 남성들의 대부분은 이런 류의 어휘나 표현들에 대체로 무덤덤한 반응을 보입니다.
여성들 중에도 아줌마들의 경우는 그나마 좀 덜한 편입니다.
‘죠슬 깐다’는 게 별로 낯선 일도 아니고 짜달시리 수줍어하면서 내숭떨만한 표현도 못 된다는 걸 남성들만큼이나 경험적으로 알기에 굳이 민감한 반응을 내보이진 않는 거죠.
남성들 못지않은 걸쭉한 욕질 입담을 구사하는 아줌마들도 적지 않자나요.

별스런 분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어휘나 표현들에 몹시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황상 노처녀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혼기 전의 어린 츠자들은 이런 표현에 직면하면 민망해하면서 더 이상의 언급을 꺼리거나 어마뜨거라며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근데 노처녀들의 경우는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동년배의 아줌마들처럼 경험적으로 죠슬 까보기는 커녕 죠슬 구경조차 몬해본 스트레스가 히스테릭하게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거죠.
그러고 보면 노처녀들에게 ‘죠슬 까세요’라는 표현은 굉장한 도발이 될 수도 있겠네요.
글 서두에서 언급했듯 가방끈 짧은 사람에게 ‘못 배워 쳐먹은 늠’이라고 욕하는 것과 같은 강도의 자극적인 언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익명이 보장된 넷상에서 그런 저간의 사정을 알게 뭡니까.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어떤 표현이 그 누군가에겐 상상 이상의 자극이 되리란 걸 알 도리가 없는 거죠.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요.
욕을 주고받는 게 일상화된 인터넷 게시판에 글질 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 덜 받으려면 스스로 알아서 계급장을 떼고 임하세요.
나이나 성별, 출신지, 사회적 지위나 신분, 기혼 여부 등등 자신이 오프에서 달고 있는 모든 계급장을 떼고 글질에 임하시란 말입니다.
그래야 모나지 않고 티 나지도 않습니다.
남들은 그저 피식 웃으며 지나치는 욕 한마디에 밑천 다 드러내며 어린애처럼 떼쓰지 말구요.
오프세상에서 자신이 달고 있는 온갖 계급장이란 인터넷 게시판에선 그 어떤 의미도 가치도 권위도 부여받을 수 없는 말 그대로 사족일 뿐입니다.
논쟁하는 상대는 당신의 그런 계급장들을 일일이 헤아려서 예를 갖추어 주지 않습니다.
욕을 하거나 비난, 또는 비판할 때도 맞춤형으로 배려하면서 아량을 베풀지도 않습니다.
확인하기 전엔 그 누구도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게시판에서 자신의 신분을 까밝히며 상대의 배려와 자비를 구하거나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는 것만큼 빈티 나거나 추해보이고 어리석은 짓도 없습니다.
오프에서의 계급장을 내세우며 대우 받으려 들지 말고 욕을 덜 먹으려면 자신의 글에서 논리적 오류를 줄이는 길이 최선입니다.

소신과 신념을 갖추고 떳떳하다면 남들이 알바라 하든, 알밥이라 하든, 양키쪽바리매국노새퀴라 하든, 죠슬 까라고 하든, 죠슬 빨라고 하든 그게 뭔 대수랍니까.
상생의 도는 절간이나 교회에서나 챙기시고 이런 게시판에선 때에 따라 욕질도 섞어가며 니 주장 내 주장 까대다가 깨지기도 하고 승복하기 싫으면 ‘그래 니 잘 났다 씨밸류마’라고 욕도 한 번씩 날려가면서 티격태격하다가 하세월 하면 되는 거지 아고라에 글질하는 게 무씬 그리도 성스럽고 큰일이라고 오만 거 때만 거 다 따져가면서 글질 하려 드는 건지 내 참.

소망이 과하면 욕심이 되고 욕심이 과하면 집착이 되고 집착이 과하면 마침내 병을 부르나니 제 병 제가 만드는 어리석음이여, 소욕이면 지족이라, 욕질을 해도 삼십방이요 욕질을 않아도 삼십방인 것을, 헛헛헛 웃고 나면 너도 나도 모두가-모든 게 헛방일세, 아느뇨, 쾅!

===東山高臥===

나영 양 사건과 법에 대한 오해

작성자:루울
작성일:2009.10.05



세간에는 판 검사들이 공공의 적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오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집단이나 조직을 욕먹이는 꼴통들이 있듯이 사법부의 불신을 부채질하는 일부 정치겸업 판검사들도 있을 것이며 이들이 지난 독재시절에 저질렀던 과오도 크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많은 평범한 법조인들은 자기 손에 사람의 인생과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에 다른 직업보다 소명 의식이 철저할 수 밖에 없고 강박에 가깝게 법 마인드를 단련한다. 정말 그것은 평생 공부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

또한 법은 수백년 동안 괴물같은(뭐라고 비유할 말이 없음..- -)인간들이 각종 철학을 치밀하게 다듬어 집대성 해 놓은 정교한 체계이고,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로서 최적의 프로세스로 가장 합당한 형량을 도출하기 위해 많은 공부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대중의 감정과 상당히 유리되어 보이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내 경험을 말하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법돌이/법순이와 논쟁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천인 공노할 사건 앞에서도 감정과 법리를 분리시키며 정황 하나하나를 매우 치밀하게 따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법돌이와 논쟁을 할 때마다 그들이 도출해낸 결과가 나의 감정과 꽤 유리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오해(꼴통 아닌가 하는..)를 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많은 공부를 한 후에야 그러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철학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양에서 발생한 오해였다. 나는 사건의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을 위주로 형별의 경중에 대해 판단하지만 사건을 다루는 쪽은 피고인과 피해자간의 자세한 정황을 전부 개미 핥듯이 고려하고 참작하는 거라서 사건의 인상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그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사건 결과에 대한 '인상'과 '개미핥기'의 간극이 바로 일반인들의 법 감정이 악화되는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사건에서 잠시 개미핥기가 되어 형량이 어떤 과정으로 도출되었을까를 뒤적거려 봤다. 그 결과 이번 사건의 형량 결정 과정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당한 오해가 퍼져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형량은 범행의 결과 뿐만 아니라 범행과정과 동기 등이 전부 정밀하게 반영되어야 하는데 잘못된 팩트로 형량에 대해 판단하며 법 체계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세세하게 적기는 너무 길어서 생략하겠지만 .. 몇개만 적어보겠다.

( 이 사건을 처음 부터 지켜본 이 모 기자의 글)
-판사가 피해자 어린이를 돕기위해 이 모 기자에게 이 어린이의 사건과 경제사정을 알리면서 이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썅놈'이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데다가, 검사의 논고가 불충분하여 유.무죄를 가리기 힘든 사건이었다. 범인이라는 확증이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판결한다는게 법의 원칙임을 고려하면 자칫 무죄가 될 가능성이 큰 사건 이었다.
-판사가 검사 논고의 불충분함을 상당히 메워준 재판이었다. (미국의 경우 검사의 논고가 불충분하면 무조건 무죄 방면인 반면, 우리나라의 이 사건의 경우 판사가 검사를 도와준 형국이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보면 12년 형이라는 결과는 현행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적극적으로 형을 이끌어 낸 판사의 공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피해자 아동에 대한 루머가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왜곡된 루머로 인해 피해자 어린이도 두 번 죽는다. 피해자의 아버지도 그 점을 걱정하고 있다.

성범죄 썅놈에게는 공기도 아깝지만, 그러한 형이 도출되게 된 이유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었으며 형 도출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대중의 공분이 법조인 개개인에게 향하는 것은 대상을 잘못 선택한 것이며 이미 판결난 사항을 뒤집으라는 것도 작금의 상황을 '개선'하는데에 아무런 실익이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 배대가리가 그 동안 박대성씨를 농락한 것이 분명하지만 명예훼손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처리 된 것처럼, 썅놈의 논고 불충분으로 인한 무죄 가능성도 이와 비슷한거 같다.)

법 감정이 갈수록 악화되는데에는 언론의 얄팍한 보도도 한 몫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성범죄에 대한 기소율이 떨어지는 것을 두고 '법조인 개개인이 성범죄에 대해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문제의 원인을 개인 범주로 분석해 놓은 기사를 종종 보았을 것이다. 나는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런 분석에 동의할 수 없다. 똑같은 유형의 성 범죄라도 사건의 세부 정황에 따라서 기소나 판결에 현격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판 검사들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줄 정도로 법이라는 시스템은 핫바지가 아니다. 만일 법이 그렇게 호락 호락한 것이라면 '시스템'이라는게 존재할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차라리 구조탓으로 분석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법조인들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악의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대체로 법조인 대학동기를 가진 기자들일 경우가 많다고. 결국 이런 기자들은 기자 때려치고 로스쿨로 간다고 함..)

나는 이 지점에서 다소 원론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사회의 공분을 자아내는 패악 범죄의 경우, 국민 여론과 법 감정에 따라 처벌을 가감하도록 판사의 재량을 확대하게 되면 자의적인 판결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므로 그것 또한 상당한 위험을 가져온다. 결국 가장 정의에 합당한 방법은 철저히 법리적인 테두리 안에서 형을 선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비해 판결이 보수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첫째,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범죄의 경우 루머가 파다하여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고 둘째, 우리가 가진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떠한 과정으로 그런 형이 도출되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며 셋째, 법조인 개개인이 꼴통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법의 무서움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판례 하나가 미칠 사회적 파장과 그로 인해 역 훼손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가치를 고려하다보니 그렇게 느껴지는게 아닌가 싶다. 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범죄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니까. 수많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억울한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법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막연하게 불신하거나 반감을 가지게 되는 원인에는 그것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법에 대해 막연한 반감과 불신을 가지게 되는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박대성 공판 때 택도 아닌 논리로 판 검 변 3위 일체론을 설파하던 사기꾼들과 그들의 말에 아무런 의심없이 동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확신하게 된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음모론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오해받는 거친 민심의 물결 속에서, 법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섣불리 개정논의에 숟가락을 올리기 보다는 일단 왜 그런 형량이 도출된 것인지 정보 공개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공분을 가라앉히고 실익을 가져올 수 있는 논의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암튼 난 법맹을 가까스로 면한 수준이지만 법은 정말 극도로 정교한 건축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법이 거짓말 하는 사기꾼들의 아가리를 닫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대산아 몸조리 잘해라.



written by '루울'
(이 글의 저작권은 '루울'님에게 있습니다)

나영 양 사건을 대하는 아고라인들에 대한 단상

나영 양 사건에 대응하는 양태를 보면서 난 알밥이 왜 알밥이고 경방의 대표 둉신들이 왜 대표 둉신들인지 다시 한 번 확연하게 깨닫게 된다. 아래 글은 죶밥님의 글 중에서 인용한 부분이다.

"원래 연민과 동감의 능력을 지닌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그는 나영이가 당한 고통에 대해 비슷한 아픔을 동감하게 되고, 그래서 그 고통의 묘사를 보면 몸서리가 쳐지고 속이 거북해져서 다시는 입에 올리거나 고통의 과정을 떠올리기 싫어지게 된다. 하지만 아고라의 일부 개쓰레기들이 불필요하게 사건과정을 상세히 묘사하는 것을 반복해가며 고통에 대한 동감이 아니라 가해자의 입장에서 성적인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나영이의 고통을 아무런 감정 없이 자신의 더러운 목적에 이용하는 것을 나는 목격하였다. 이런 개쓰레기들은 잠재적인 사이코패스인 동시에 억눌린 충동과 비뚤어진 성욕의 소유자들이다."

죶밥님의 지적에 공감한다. 파란색 글의 묘사가 딱 그간의 내 맘이었고 알밥님들의 맘이었을 게다. 아고라나 뉴스 지면을 통해 소개되는 관련 내용들은 두 눈 똑바로 뜨고 볼 수도 없을 만큼 참으로 경악스런 사건이었다. 기껏 지인과 멜을 주고받으며 사건을 정리하는 게 다였고 아고라 게시판에 글 한 편 댓글 하나 올리기도 조심스러웠다. 다들 열심인 화제에 내 글 한 편 더해봤자 것도 호들갑이란 생각에 애써 다른 나영(김나영님?)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 일부 알밥님들이 나영양 사건에 대해 아고라가 이성적으로 대응할것을 주문하면서 경방 대표 둉신들과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늘상 행해왔던 일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공방이다.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아고라의 호들갑이 한 편으론 이해 가면서도 아고라의 대표 둉신들에 의해 주도되는 광적인 호들갑은 사건 못지않은 메스꺼움을 불러일으킨다.

아고라의 물을 흐리는 대표 둉신들 몇몇의 광적인 설레발은 달이 가고 해가 가도 변함이 없다. 인터넷이 사라지기 전엔 사라지지 않을 존재들이다. 아니 인터넷이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고 어디선가 기생하고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낼 위인들이다. 말린다고 말려질 위인들은 아니란 것이다. 위 죶밥님 글에서 인용된 초록 글자의 묘사는 다소 과해 보일런지도 몰겠으나 빨간색 글자의 묘사는 명확해 보인다.

이 사건을 두고 흥분치 않을 사람들이란 인면수심의 사람들뿐일 게다. 그런 사람 있을련가 몰것지만 내 보기엔 아고라 경방엔 없다. 나영 양 사건에 대한 광적 흥분을 자제하고 이성적 대응을 주문하는 사람들을 향해 저주를 퍼부으며 무차별 매도를 가하는 사람들을 보면 거의 정신 착란 증세를 보인다. 그토록 정의롭고 생각 깊은 사람들이 나영이가 겪었을 그 참담한 고통의 상황들을 그토록 태연자약하게 재탕 삼탕 묘사해대는 걸 보면 죶밥님의 초록색글 주장 역시 결코 과해 보이지도 않는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제발 좀, 정신차리자. 한 건 터졌다하면 언제까지 물난리 만난 개미새끼들처럼 우왕좌왕할 건가. 거짓된 정보는 추려내고 정확한 정보들을 교신하면서 비판은 하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두 번 세 번 곱씹어 보면서 차분히 대응해도 한가위 차례상이 엎어질 일은 없다. 그래야 ‘알고 보니 내 사진’이란 해프닝도 일어나지 않을 거 아이가. 이 대표 둉신들아, 니들이 나영이 사건 대하는 모습을 보면 꼭 울고픈 아이 뺨 때린 것 같은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들이 이제는 역겹다. 제발 좀 정도껏 해라.

나 역시 딸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조씨인가 하는 인면수심의 개색휘를 능지처참하고 육시라도 해버리고 싶은 맘이다. 그런 맘을 표현하는 것과 사실을 왜곡하고 과장하는 것과는 엄중히 구분되어야 할 것 아닌가. 니들이 지금은 나영이 사건에 목숨을 건 부나방처럼 호들갑이지만 며칠 뒤에 니들 눈을 홀리는 또 다른 사건이라도 터지면 나영이가 뉘집 딸인지 새까맣게 잊어버릴 늠들 아닌가. 박대성 내치고 리드미와 흘레붙듯 말이다. 제발 좀, 매번 사건 때마다 광끼를 드러내며 설레발 까는 아구라 대표 둉신들의 흘레질에 부화뇌동하지 말 일이다.

제발 좀 추석 연휴 지내는 동안에 대갈휘들 좀 식히고 호들갑 떨지 않고 사안 사안을 신중히 파악하고 맥을 제대로 짚고 대응하는 능력들을 조상님들로부터 하사 받고서 다시 만나자, 응!

===東山高臥===

김나영씨, 알밥이라서 무시하는 겁니까?

지난 번 글에 이어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님의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논리의 오류>들을 추가로 각색해서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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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너도 해봐라 오류


내가 한 짓이 못마땅하면 너도 해봐라. 능력도 없는 것들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저런 식으로 큰소리친다면? 리드미나 담담당당이 알밥들을 향해서 저런 항변을 해댄다면? 이것만큼 배 째라 식의 오류도 없을 게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대표적 오류 중의 하나다. ‘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다.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부정불의한 기득권 행사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비꼬듯 내뱉는 말이다. 그 ‘한 짓’에 대한 도덕성의 문제를 능력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다. 사기질이나 권한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일이 나쁜 것이기에 비판하고 멀리하는 것이지 비판하는 것과 능력의 유무와는 하등의 관련이 없다. 이러한 오류를 ‘너도 해봐라 오류’라 명명한다.


4. 물귀신 오류


너희 중에 죄짓지 않은 놈이 '나'에게 돌을 던져라.

이 말은 방귀 뀐 늠이 되려 큰소리치는 어이없는 경우다. 죄지은 늠이 자신의 죄를 변명하는 데 써먹으라고 예수가 이런 말을 한 게 아니다. 저 말은 죄를 지은 당사자가 자신의 죄를 변호키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객관적 시각을 지닌 제3자가 죄인을 변호하여 죄는 벌하되 동정의 여지는 남겨두라는 뜻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예수가 사랑의 가르침을 설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한 말을 모든 죄인을 용서하자는 말로 오해하여서는 곤란하다.

만약 예수의 저 말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죄인을 단죄할 수 있는 흠결 없는 판사가 뉘라서 있을 것이며 흠결 없는 공권력이란 게 과연 존재키나 하겠는가. 황구라가 젓가락 복제신공을 완성하여 예수나 붓다 같은 완전형의 인간들을 수천 수만 복제하여 판, 검사로 내세우지 않는 한 그 누구에게도 비판과 단죄의 자격은 주어지진 못할 것이다. 인간 사회의 존속을 위해 용인된 사회적 계약 관계에 따라 다소간의 흠결이 있더라도 임무를 부여하고 그 권위를 존중하여 죄진 자를 벌하는 게 현대사회다. 이러한 공적 계약에 따른 단죄와 비판을 무시하고 죄를 짓고서도 ‘죄 짓지 않은 놈만 내게 돌을 던져라’라고 너나없이 뻔뻔스럽게 큰소리친다면 인간사회는 존속치 못할 것이다. 이런 오류를 편의상 ‘물귀신 오류’라고 해두자. 또는, 내가 죽을 것 같으니 우물에 독을 타서 다 함께 죽자라는 의미의 '우물에 독을 타는 오류(poison to well)'라고 명명한다.

돰돵이나 리쥐미가 알밥들을 향하여 ‘너희들은 세상 살면서 거짓말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느냐, 정말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알밥들만 나를 쳐라’고 대든다면 ‘임마, 너 지금 하는 짓이 물귀신 오류라고 하는 거야, 씨밸류마~’라고 외쳐주자.


5. 당신만을 오류


내가 당신을 좋아하니 당신은 항상 정당해요.

세상을 기준으로 자신을 보지 않고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이 아구라엔 유독 많아 보인다. 양심과 정의감이 나름 투철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그런지 자신의 판단과 신념에 대한 주장이 꽤나 드센 편이다. 근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보니 객관성을 잃고 주관적 감정에 이끌리거나 아집에 가까운 처신과 발언들을 해대는 걸 자주 목도할 수 있다. “리드미님, 세상에서 가장 양심적이고 정의감이 투철하다고 자부하는 제가 님을 선택하고, 믿고, 좋아하니 당신 또한 항상 정당하고 의로운 존재임에 분명합니다.”라는 식이다. 자신을 우주의 전체인 양, 자신의 판단과 신념만이 언제나 모범 정답인 양 총체적 착각에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결코 내뱉을 수 없는 말이나 처신을 태연스럽게 한다. 이런 인간들은 변덕도 심해서 언제 어느 순간에 “내 맘이 바뀌었어요. 당신은 이제 아웃이에요” 할지도 모른다. 미네르바 박대성을 내치듯 변덕의 계기만 주어진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리드미를 내치는 것도 손바닥 뒤집듯 손쉽게 할 사람들이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범하는 이런 오류를 ‘당신만을 오류’라고 이름 짓는다.


6. 열심히 오류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니 비판하지 말아주세요.

무엇인가에 집중해서 열심히 한다는 것과 비판하는 것과는 별개의 영역이다. 무엇을 했는가가 중요하고 비판의 영역은 이 ‘무엇’에 한정되는 것이다. 아구라에서 리쥐미나 돰돰돵돵도 굉장히 진지하고 열심히 했다. 특히 돰돵은 지난해 늦가을 이후 지금까지 원고지 수만 장 이상 분량의 글을 포스팅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글을 써본 사람은 알겠지만 꾸준히 글질 한다는 게 마냥 쉬운 일만은 아니다. 시간과 열정과 노력이 솔찬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열심히 했다는 것이 비판받지 않을 이유가 되거나 행동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사기질도 열심히만 하면 비판받지 않고 사람을 죽여도 열심히(?)만 죽이면 면피될 수 있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사람을 죽인 강호순이나 유영철이가 징역살이할 이유도 없다. 또한 누구보다 열심히 글질한 돰돰돵돰을 욕할 순 없다. 그렇듯 ‘열심히 했다’는 식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면피해보려는 이런 오류를 ‘열심히 오류’라고 이름 지어 둔다.


7. 무시의 오류


그래. 나는 못 배워서 무식하다! 나이 어려서 모른다. 그렇다고 나를 무시해도 되는 거냐?

논쟁 중에 가끔 이런 식의 선언을 하면서 말문을 막아버리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논쟁 중에 말빨이 막힌 쪽에서 흔히들 써먹는 수법이다. ‘나는 여자라서’, ‘나는 남자라서’, ‘나는 늙어서’, ‘나는 어려서’, ‘나는 촌놈이라서’, ‘나는 군바리라서’, ‘나는 해외에 있어서’, 등등 자신의 나이나 성별, 직업, 거주지 등 논지와 상관도 없는 이야기를 난데없이 들먹거리면서 상대의 말문을 막고 논쟁을 파토시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못 배워서 자신 없으면 깝치지 말고 자신 있게 배운 다음에 깝칠 일이다. 나이가 어려 세상일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면 함부로 나대지 말고 좀 더 경험이 쌓인 후에 나대면 될 일이다. 못 배운 게 자랑도 아니고 나 어린 게 자랑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이 많은 것도 자랑 아니고 남자이거나 여자인 것도 자랑 아니고 군바리인 것도 자랑 아니고 해외에 있는 것도 자랑 아니다. 말이 막혔을 때 이런 것을 방패삼는 오류를 ‘무시의 오류’라고 명명해 둔다.


8. 일반화의 오류


저런 색휘가 있는 저기는 쓰레기통이야...

초딩들도 이 오류를 알고 입에 올릴 정도로 일반화의 오류만큼 잘 알려진 오류도 없다. 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흔히 범하고 있는 대표적인 오류다. 아고라 경방에서 수행되는 거의 모든 비판들에 이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게다. 단적인 예로 최근 논란 중인 나영양 사건에 대하여 기독교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예끼가 담당이나 그 일당 등 몇몇이 700리 출신이라 해서 700리 전체를 싸잡아서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도 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한 것에 다름 아니고 아고라의 구백구십구 둉신이 둉신짓을 한다고 해서 아고라 전체를 ‘아구라’로 매도해온 것도 이 일반화의 오류을 범하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된다. 기왕 이런 글을 썼으니만치 나 스스로도 자성하는 의미에서 아고라를 ‘아구라’라고 표현하거나 700리나 아정포 전체를 싸잡아서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하는 일은 가급적 지양토록 하련다.


이상으로 우리가 인터넷 글질 중에 쉽게 범하고 있는 몇 가지의 대표적 오류들을 살펴보았다. 아래 파란색 글은 이우혁님의 글이며 각색 없이 원문 그대로를 옮기는 것으로 글을 정리코자 한다.

"논리학은 아주 중요한 학문이다. 서양 중세에서도 일단 언어만 습득하고 나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 논리학부터 먼저 가르치고, 다음에 형이상학을 가르쳤으며, 그 다음에야 실제 전문 과목을 가르쳤다. 서양이 수천 년간 앞서가던 동양을 이기고 수백 년 만에 급속하게 번성하게 된 근본적 힘이 바로 이 논리학에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이 논리학이며, 특히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이 논리학은 가장 중요한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논리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많아져서 보다 원활하고 발전적인 인터넷 생활이 이루어지는 꿈을 꾸며 대강 잡글을 마친다."



<악울아 궁민학교 제3학년 2학기 중간고사 문제>

제가 어제 글에서 댓글 사인 좀 부탁했음에도 퇴짜를 놓은 김나영씨를 향해 오늘 글의 제목처럼 “김나영씨, 알밥이라서 무시하는 겁니까!”라고 따지고 들면 그것은 무슨 오류일까요?

===東山高臥===

죶도 모르는데 죶밥을 어찌 알랴!

지금으로부터 6~7여년 전 발랑 까진 초딩에서부터 경로당의 노땅들까지 인터넷 글질에 가세할 무렵,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은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논리 오류>라는 글을 썼다.

인터넷 게시판에선 누구나 글을 쓸 자유도 있고 비판할 자유가 있는 만큼이나 자신이 저지레한 글질에 대해선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저마다의 개성이 분명한 온갖 군상들이 자유롭게 모인 곳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룰을 만들고 지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성의 토론 경험을 통해 우리가 범하기 쉬운 인터넷 글질에서의 논리적 오류들을 짚어보고 숙지함으로써 글질에 임한다면 ‘욕먹을’ 일을 현격히 줄일 수는 있다. 논리적 오류가 덜한 글은 내용상의 공감이 없을지라도 최소한 무시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문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기 수십 수백 가지의 논리의 오류들을 살펴보노라면 오류 없는 완벽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다. 관건은 오류 없는 글쓰기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내쏟았다가 욕먹어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때에 따라선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천 년 업을 쌓기도 한다. 말이란 그만큼 중요하고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분별력 있고 조리 있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우혁이 제시한 기준과 원칙은 인터넷 토론에서 지켜야할 철칙(철칙이란 없다)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글질의 결과로서 누구나 겪게 되는 욕의 량을 조금이나마 줄여 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 쯤 읽어볼 만한 글이다.

이미 읽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원문에 최대한 충실하면서 아구라의 사례들에 빗대어 각색하여 두세 편으로 나눠 소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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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격의 오류


누구도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은 없다?

아구라에선 가끔 듣던 말이다. ‘니 글을 써라, 유명인들 까지 말고! 정 까려면 원글 100개 정도는 쓰고서 남을 까라!’ 과연 그런가? 비판의 자유가 없으면 옹호의 자유도 없다. ‘비판하지 않을 테니 옹호치도 말라!’고 하면 할 말이 있겠는가. 원글을 100개를 쓴 사람이든 댓글 하나 달랑 쓴 사람이든 비판과 옹호의 자유는 토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참여하는 자격 요건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시판이 아니라면 ‘니 글이나 써라, 유명인 까지 말고’란 소리는 텃세이거나 으름장일 뿐이다. 편의상 이것을 ‘자격의 오류'라고 해두자.


옹호는 좋은 것이고, 비판은 나쁜 것이다?

판사가 법정에서 이건희가 지은 죄 대신 공로를 인정하여 옹호하는 게 좋은 것인가?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네르바 K를 거론하여 한 젊은이를 정신파탄자로 몰아세우는 리드미를 비판하는 일이 나쁜 것인가? 옹호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비판이 항상 나쁜 것도 아니다. 비판과 옹호가 나름의 합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면 그 행위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단 명백히 밝혀진 ‘부정을 옹호’하거나 ‘정의를 비판’하는 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정의의 탈을 쓴 악덕을 감성적이고 무분별하게 옹호함으로써 정의를 악덕으로 비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경찰에 쫒기는 연쇄살인범을 동정하여 그를 숨겨줌으로써 그가 또다시 연쇄살인을 이어간다면 그런 감상적이고 무분별한 옹호는 범죄가 되듯 행여 아고라의 누군가를 무분별하고 감상적으로 옹호하였는데 그가 그런 지지를 사기질에 동원한다면 옹호한 사람들은 범죄에 간접 가담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도 피해자요’란 소리는 사후 핑계일 뿐이다. 비판의 자격을 묻는다면 옹호의 자격도 물어야 한다.


2. 자칭 무림고수의 오류


나는 그런 불의를 보고 참아 넘길 수 없다! 내게 덤벼라!

이런 태도는 일견 멋있어 보인다. 좋아 보이지 않는 걸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상황에 따라선 이런 값싼 정의감은 바보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달을 보랬더니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톱 밑에 때 낀 걸 나무라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골인 지점을 앞둔 마라토너의 신발을 가리키며 ‘똥이 묻었으니 1등 해봤자 더러운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꼬락서니이기도 하다.

중원에서 마교의 무리가 기수십년을 활개치고 있다. 그들과 기수십년을 다투어온 구파일방의 정파 장문인들은 마침내 마교 교주와 사파의 무리들을 포획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았다. 전 무림을 희생시켜가며 마교 교주와 그 일당들을 간신히 포위했는데 느닷없이 쌩판 첨보는 미친 늠이 빗자루 타고 날아오더니 “아니, 이거뜨리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포위하고 잔인하게 칼을 휘두르다니 신사적이고 숙녀적으로 고운 말로 해도 될 것을! 나는 이런 불의를 절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다. 어디 내게 덤벼라!”라고 외치더니 온 하늘에 고추가루를 뿌려버렸다. 모두가 재채기하는 사이 마교 교주와 그 일당들은 웃으면서 유유히 달아나 버렸다. 마교가 휘두른 칼에 지난 기수십년 간 피바다를 이루었던 중원의 평화는 사악한 마교교주와 일당들을 잡기 전까진 또다시 깊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어야만 했다. 뛰어든 늠은 도대체 먼가? 정의의 사도인가? 스스로 소개하기를 자신은 절대 칼은 손에 들지 않는 수행중인 도사라고도 하고 고추가루만이 상생의 평화를 부르는 무기라고도 했다. 고추가루를 뿌리고서 중원에 평화가 왔는가? 바람에 날린 고추가루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 시각 달아난 마교 교주와 일당들은 숭산 소림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미친 늠!

이런 예를 든 것은 누구든 끼어들 자격은 있으나 때와 장소와 상황을 잘 살펴가며 행동을 하란 소리다. 어딜 가나 버젓이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인간 군상은 있다. 꼭 있다. 아서라, 말어라! 한 번 정도면 애교로 봐주겠지만 두 번 세 번이면 애처롭다. 무슨 정의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나대면서 끝끝내 잘난 척 해대는 미친 족속이 많고 또 그런 족속들을 적절히 이용하여 빠져나가는 악당들이 있음을 명심하자. 이런 걸 일명 ‘자칭 무림 고수의 오류’라고 이름 붙여둔다.

옹호와 비판은 누구나 자유롭게 하되 무분별하진 말라. 무분별해도 좋을 옹호와 비판이 허용되는 단 하나의 경우는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뿐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토론 중에 사람의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도인 이상, 무분별은 가능한 범하지 않는 게 욕을 덜 먹는 길이다.

누구든 끼어 들어라. 모두에게 자격은 있다. 허나 처절히 매도되고 비웃음 사는 것도 자기 일이니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주제 없이 나서지 말라'는 말은 주제가 없으면 나설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없으면 망신 당하기 십상이기에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죶도 모르는데 죶밥인들 어찌 알겠냐마는. 다음에......

===東山高臥===

낚시터에서 리드미와 담담당당을 보았습니다.

한 달여 만에 낚시터를 찾았습니다.

돌풍과 호우 주의보가 예고된 터라 멀리는 가덜 몬하고 도심 근교 관리낚시터엘 갔습니다.
다들 호우 주의보에 몸들 사렸는지 500여 평이 넘는 낚시터에 오전 내내 홀로 앉았습니다.
따가운 햇살 대신 가랑비 시원하고 바람도 인적도 없는 호젓함!
무릉이 예이련가 싶었습니다.

근데 웬걸요.
무릉이 따로 없을 그 호젓한 풍경에 취해 예닐곱 마리 정도 낚았을 즈음에 그만 낚도의 무아지경을 깨는 잡념에 치이며 헛웃음이 나고 말았습니다.
낚시대는 묵직한데 어째 용틀임이 느껴지질 않는 겁니다.
낚시대를 잡은 팔을 높이 들어 수면 위로 고기를 띄워보니 시커머죽죽한 등빛에 한 자 세 치는 되어보임직한 빨갱이(낚시계에선 한 자 이쪽 저쪽 크기의 어린 잉어를 ‘발갱이’라 하는데 농 삼아 ‘빨갱이’라고도 합니다. 족히 두세 자 정도는 되어야 ‘잉어’라 불러줍니다)가 지느러미를 내리 깔고 다소곳이 끌려오는 겁니다.
헛웃음이 난 건 그 늠을 보면서 생긴 것도 그렇고 불현듯 돰돰돵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잡념을 떨치고 쉬러 갔던 낚시터에서 생각만 해도 참 피곤한 스딸의 돰돵을 떠올릴 줄이야 이게 멉니까.
병도 큰 병입니다.

원래 물고기란 늠들이 낚시바늘에 걸리면 ‘바늘털이’란 걸 합니다.
바늘털이란 바늘에 걸린 물고기의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죠.
낚시꾼들은 그 몸부림을 앙탈로 여기고 그 앙탈이 심할수록 ‘손맛이 좋다’라고 표현하는데 물고기의 떡대가 클수록 이 손맛은 극대화되고 몸맛으로 전이 되기까지 합니다.

제가 돰돵을 떠올린 물고기 정도의 크기면 사실 몸맛까지 느껴볼 정도의 크기입니다만 몸맛, 손맛은 커녕 니맛 내맛도 없는 겁니다.
끌려 오는 빨갱이를 가만 보니까 힘 좋게 생긴 덩치나 체색과는 달리 주둥이가 너덜너덜한 게 이건 머 산전수전 다 겪은 몰골입니다.
그 몰골과 눈빛을 보고 나서야 왜 그리 힘알대기없이 끌려나왔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빨갱이의 눈빛은 ‘니 죶대로 해라, 어차피 풀어줄 거 아이가’라고 말하는 듯 했습니다.

요즘 낚시계에선 ‘catch & release'가 대세입니다.
낚시가 먹거리를 위한 사냥의 수단이 아니라 웰빙 오락의 일환으로 행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낚시터에서 고기를 잡아 망태기에 담아가는 사람은 원시인 취급을 받거나 때거리가 부족한 싼티맨, 또는 몸보신에 환장한 병자 취급받습니다.
그러다보니 관리낚시터도 ‘손맛터’라고 하여 잡이 목적이 아닌 순수 손맛용 낚시터로 운영하는 게 낚시터업계의 일반적 추세입니다.

원래 물고기는 아주 경계심 많고 재바른 생물인데 낚시터에서 길들여진 물고기는 어항 속 금붕어와 비슷한 행동 양태를 보입니다.
금붕어들이 사람 쳐다보고 몰려드는 건 아시죠.
관리낚시터 손맛터 물고기들이 그렇습니다.
원래 사람 손을 타지 않은 자연지의 물고기는 작은 인기척에도 근처에 얼씬도 않을 정도로 예민하지만 손맛터 물고기들은 인기척이 들리면 낚시꾼 자리 근처로 어슬렁거리며 몰려들어 수면위로 낚시꾼을 쳐다보면서 주뎅이를 벙싯거리기도 합니다.
양어장에서 사료 먹고 크면서 이미 사람 손에 길들여져 있기도 합니다만 낚시터에 팔려와서도 낚시꾼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과 낚시꾼 발 아래 떡고물이 많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알게 된 탓이죠.
그리고 몇 차례 낚시 바늘에 꿰여 물속과 물 밖을 왕래하다보면 학습효과에 의해 물고기가 능구렁이가 되는 겁니다.
바늘에 걸린 순간, ‘에레이 또 속았네. 바깥 세상 구경 함 하고 오는 거지 머. 힘 써봤자 기운 떨어진다. 다녀오께 친구들아’라는 표정으로 앙탈도 없이 느물느물 끌려나오는 물고기를 보노라면 손맛을 잔뜩 기대했던 낚시꾼으로선 여간 김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가 잡은 빨갱이처럼 주둥이가 너덜너덜 열 너댓 번은 바깥 세상 경험을 지닌 듯한 물고기 정도 되면 능글맞고 거만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딱 쳐다보니 생김도 글코 능글맞고 느물거리는 폼새가 돰돵하고 어째 그리 똑 같아 뵈는지 한순간 헛웃음이 났던 겝니다.

물고기도 낚았을 때 앙탈부리는 정도와 주뎅이 상태를 보면 초짠지 베테랑인지 알듯 경방 사기꾼들도 건드리고 낚아보면 그 앙탈부리는 정도와 주뎅이질의 상태에 따라 아마인지 프로인지 얼추 구분이 갑니다.
리쥐미나 멕팔이, 크래머가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의 경험들이 부족한 아마츄어라면 돰돵과 빚을링크는 프로입니다.

논증이나 처신에서 모순이 발각되었을 때 리쥐미나 멕팔이, 크래머에게선 우왕좌왕하는 순진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건 그들이 아직은 아마츄어란 얘기고 개전의 정이 일말이라도 남아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돰돵이나 빚을링크 류에게선 그런 순진함이란 모기 오줌 만큼도 보덜 못했습니다.
추정되고 확인된 그들의 이력들이 말해주듯 물 밖 세상에서 어지간히 굴러먹은 베테랑들이란 거죠.
이미 그들은 낚시꾼 정도를 겁내는 물고기들은 아닙니다.

특히 돰돵, 이 친구는 다음 아고라에서 만큼은 민족의 태양은 못되더라도 민족의 형광등급으로 우대받는 인물 아닙니까. 물론 일천 둉신들에 의해서지만.
개혁과 진보를 말하는 이곳에서 민족의 형광등급 정도 되려면 사실 바깥 세상에서도 공인받은 명함 하나 정도는 있어야 정상이거든요. 은둔자가 아니라면.
은둔자가 저리 씨부리고 있을 리도 만무하겠지만 말입니다.
저 정도 열혈 반이명박 애국자시라면 못 되도 개혁과 진보를 표방한 사회 단체 등에서 깃발잡이 정도의 명함 하나 정도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도 당연한 기대가 아닐까요.

근데 님아들은 범국가적 위기를 포효하며 십만 양병설을 주장하는, 아고라가 배출한 불세출의 애국자 돰돵이가 십진의 세계에서 멀 한다는 얘길 들었던 적 있었던가요.
십진 세계에서의 명함이나 행적이 없다는 건 바깥세상에선 빌붙어 먹을 데 하나 없는 신뢰 꽝의 인간이란 얘기입니다.
넷 세상은 저 자들에겐 자신의 패배한 인생을 위로받을 수 있는 대딸방과 다름 없습니다.

결론은 주뎅이로만 애국하고 개혁하고 진보하는 인간들이란 얘기죠.
손모가지 삐어가며 주뎅이 부르터가며 그 인간들 대딸 쳐주시는 게 유일한 하루 낙인 일천 둉신 님아들, 그러고 사시면 살림살이가 나아지십니까.
이명박 정부가 조기 퇴진이라도 한답디까.
저런 인간들을 무씬 슨상님, 형광등님이라 따르시는 여러분들도 주뎅이 애국질이란 점에선 도진개진입니다.

세상살이가 참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단순하고 참 단순한 것 같으면서 복잡하죠.
아골란들에게 제가 터득한 세상이치 중 두 가지만 일러드리면요.

첫째,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세상을 기준으로 자신을 보라는 것과

둘째, 내 주머니 헐렁하면 노무현 김대중도 타도의 대상이고 내 주머니 빵빵하면 전두환 노태우도 성군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우짜든동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은 절반 정도로만 줄이시고 그 남는 시간에 내 주머니 채울 방법을 연구하거나 능력을 계발하세요.
필요하면 학원 가서 자격증이라도 따시든가 박대성 얘기처럼 외국어라도 한 자 공부하시든가.
주머니가 짤랑짤랑해지면 아름다운 금수강산까지는 아니어도 이민가고 싶다라는 생각은 사그라들지도 모를 일입니다.

해도 해도 잘 안 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더라도 마지막까지 남탓은 하지 마세요.
남탓은 죽음에 이르는 참으로 몹쓸 병입니다.
아무것도 하지도 않고 세상 원망만 하는 놈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 놈들은 이명박 정부 탓할 자격조차 없습니다.

낚시꾼들에게조차 환대받지 못하는 발갱이(빨갱이?)로 살아 가실래요?
주머니가 좀 허전해도 인간으로 살아 가실래요?



===東山高臥===

김지하의 ‘죶 같아서’란 표현에 반대한다

난 기본적으로 '죶'이란 단어를 좋게 바라보고 그 의미 또한 좋은 방향에서 사용되었으면 하는 입장이다.
기존의 관성 탓에 쉽진 않겠지만 ‘죶 같은’이란 표현보다는 ‘죶 같지도 않은’ 이란 표현의 사용을 권장하고 싶다.

배설이라는 생리적 기능에 더해 인류의 존속에 기여하는 그 숭고한 기능까지 나아갈 것도 없다.
난, ‘체’ 떠는 세상에서 죶 만큼 진실한 걸 못 봤다.
다룬 만큼 즐거움을 주는 정직한 놈이다.
그 즐거움 앞에선 남녀노소, 동서양이 따로 없고 고금이 따로 없다.
때에 따라 요놈을 잘못 놀려 인생을 잡치거나 ‘죶 같지도 않은’ 난망한 상황이 벌어지는 부작용만 조심하면 말이다.
하긴 머 이 부작용조차 점차 일상화되고 보편화되어가는 세상이니 부작용을 부작용이라 하기도 멋쩍은 세상이 곧 올런지도 모를 일이다.

‘죶’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죶’을 자주 들먹거려서 미안하다.
아침에 아고라의 일기들을 보다가 ‘해피니스’라는 분이 인용한 김지하의 글을 보고서 삘 받아서 예정도 없이 쓰는 글이다.
이 분의 글에선 정작 ‘죶’이란 단어를 공개게시판에 쓰기가 쑥쓰러우셨던지 배꼽기호로 표현하셨다.(아니면 조선일보에 기고된 시론의 원문을 그대로 옮겼을 수도 있다)

소개된 내용은 조선일보 시론에서 김지하의 이런 언급이 있었다 한다.

“죶 같아서 얼굴 돌린 것뿐이지!"

그리고 그 글 바로 아래선,

“이 '죶'이란 말 꼭 지우지 말기 바란다.”라는 당부까지 했다.

나아가 김지하는

“조선일보가 물론 '막말 코리아'란 특집까지 내면서 쌍소리 천국에 개탄을 거듭하는 줄은 잘 안다. 그러나 15세기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막말 천지였다. 르네상스의 도화선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 네오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는 증거다. 르네상스 없었으면 오늘까지 세계를 잡아 흔든 유럽 권력과 서구문명은 없다. 그런데 그 네오 르네상스가 다가오는 발자국이 곧 막말이니 지우지 말기 바란다는 말이다.“라며 친절하게도 부연까지 달았다.

과연 욕질의 해학에 달통한 사람이다.
‘죶 같아서’를 ‘죶 같지도 않아서’라고 사용했음 더 좋았을 껄 하는 개인적 아쉬움은 남지만 글 내용을 떠나 내숭 없는 저 글빨 하나는 맘에 든다.

7,80년대 드라마에서 가장 흔했던 고전적 주제가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사랑과 야망’ 정도 되겠다.
흔하다는 건 공감을 얻기가 쉽다는 거고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란 것이다.

근데 세월을 한참이나 건너뛴 21세기 개명천지의 대한민국에서는 여적지 그런 일들이 드라마처럼 일어나기도 한가 보다. 지인에게 전해들은 얘기다.

개천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한 여자도 있었다.
개천 출신의 남자는 고시에 매달렸고 여자는 자신의 온 몸을 바쳐 희생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투자는 로또 복권 당첨되기를 바라는 그런 투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지순한 사랑이었다.
책값도 주었고 배때지에 기름도 제때제때 칠해주었다.
고시공부에 매달린 그의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기꺼이 하꼬방의 침대가 되기도 했었고 그야말로 ‘온 몸을 다한 기약없는 희생’을 다한 지 어언 몇 년, 남자는 해냈다.
그리고...........................................................................................
가란다. 사랑이 아니었단다. 자신은 여자를 처음부터 사랑한 것은 아니었단다...............


아뿔싸, 이걸 어째.
이런 상황이 드라마속에서 벌어졌대도 애꿎은 TV가 20층 난간 밖으로 날아갈 상황 아닌가.
이 일을 당신 딸이 겪었다면?
이런 일을 당신 여동생이 겪었다면?
아니 딸이나 여동생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겪었다면?

“엉엉엉, 제게 왜 이러세요. 전 당신을 사랑했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이럴 수는 없자나요..엉엉...엉엉엉...흑흑...매달리고 매달리고....또 매달리고..우리 사랑했자나요..흑흑흑~~~~~~~~”

이러면서 바지가래이 부여잡고 매달리실래요? 아니면

“야 이런 개씨바르 개죠까치도 않은 새퀴야. 이 개호르 샹녀르느무씨바르 새퀴야. 니가 사람 닮은 짐승 새퀴야 짐승 닮은 사람 새퀴야. 검, 판사 뺏지 다는 날 술 쳐먹고 길가다가 동네 개색퀴랑 흘레붙어 먹다가 죶이 낑겨서 고대로 동물병원에 실려 가서 개망신이나 당하거라. 이 호랑말코개쌥숑가리샹녀르느므개씨바르새퀴야! 으휴 재섭서!”

이러면서 샤대기를 후려치고 죶몽딩이를 부러뜨려버리실래요?

전 제 딸에게 좀 더 크면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욕질하는 법도 갈차줄 생각입니다.
똘똘하게 크다보면 제 알아서 배우기도 하겠지만.

이야기 속 개천 출신의 남자는 이미 인간되기 글러먹은 개새퀴입니다.
울며불며 매달리거나 설득할 대상이 아니란 거죠.
그런 늠들을 상대하면서 욕 말고 고상하고 우아한 ‘인격의 나눔’을 가져보시겠다구요?
빛 좋은 개살구죠.
쉰 국에 따끈한 밥 말아봤자 개밥거리도 못됩니다.

후~, 그래도 근자에 ‘죶’ 관련해서 저를 포함 어중이떠중이들 간에 대화가 잦다보니 경방에서 ‘죶’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떠다니는 일이 잦아졌군요.
김지하의 권위까지 빌었으니 앞으론 더욱 탄력을 받겠군요.
이 모두 죶밥님의 눈에 뵈지 않는 공로입니다.
죶을 아이디로 걸치는 그 깊은 해학에서 각설이를 봅니다.
밍크를 걸친 사모님의 눈은 막걸리보다 탁해 보이는데 누더기를 걸친 각설이의 그 눈은 수정처럼 맑아 보입니다.

주말 아침, 살다보면 참 씨잘데기 많을 '죶’에 대한 단상이었습니다.

===東山高臥===

readme-혁명의 위험한 유혹

새벽 쓰린 가슴 위로
깡소주를 적시며
꾀었다

what is to be done?

propaganda
agitation
for
revolution!

노동자의 천국을 위하여

지화자, 조오타,
건빠이!

술값은?

다들 톢꼈다

계산대 앞

노동자도 없었고
노동계급도 없었다
혁명가도 없었고
혁명도 없었다

죽은 자는 땅을 이었고
산 자는 하늘을 이었다
차이는 그뿐

그 용기를
그 비겁을
기억할 자 아무도 없다
기억한들
이제
김세진과 이재호는
낡은 인명 전화부 속
동명이인들 틈에 낑긴
석 자 활자로
남았을 뿐

목숨 걸고
염병 떨 것까진 없다
가고 나면
모두가 허방인 것을

다만
노동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픈 사람들

사람들 손에
피의 칼을 들리지 말라

사람들 입에
칼의 노래를 불리지 말라

사람들 눈에
피에 물든 삐라를 들추지 말라

네 막장 인생
마지막 들러리가
필요하거들랑
네 사랑하는 아내와
네 피로 키운 딸 아들이면
세상에 빚은
남기지 않을 터


원한다면
알카에다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미친!




===東山高臥===

고수님들, 다음 주식회사 주식을 지금 살까요, 말까요?

서뿌라이즈라는 곳이 있었슴미다.

참여정부의 탄생에 힘입어 노무현이란 이름을 팔아 친노빠 정치사이트로서의 입지를 굳혀갈 즈음 황우석 사태를 맞았고 무뇌황빠 양산의 본거지가 되었슴미다.
서뿌라이즈의 경영 주체들은 약삭빠르게도 황빠 현상을 동력 부족으로 비실거리던 사이트 활성화 사업의 기폭제로 활용코자 했고 수많은 황빠들은 기꺼이 호구가 되어 주었슴미다.
의도된 대로 노빠황빠를 필두로 수많은 황빠 호구들의 후원금이 한 때 꽤 짭짤했던 걸로 암미다.

그러다 일부 황빠들이 탈‘노빠편향’을 선언하면서 민초리, 광장 등의 여타 사이트를 신설하거나 증, 개편하면서 분화되어 나갔슴미다.
그 후 서뿌라이즈 공식 입장인 노빠황빠적 입장을 견지하던 서뿌 잔존 황빠들의 세력은 쇠퇴 일로를 걸었슴미다.
초기의 황구라 사태로 촉발된 애국질 광풍이 잦아들고 차츰 이성과 합리와 객관에 근거한 황까적 입장이 대세를 장악할 즈음 서뿌라이즈는 그저 미쳐버린 잔존 황구라 광신도들의 예배당으로 전락하고 말았슴미다.

결국 서뿌라이즈의 눈팅 독자들은 그 비이성적 광기에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서뿌라이즈의 이미지는 비이성과 비합리와 비과학의 상징처럼 여겨지기에 이르렀습니다.
후원금의 축소는 필연,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은 서뿌라이즈 경영진은 황구라 사태 초기에 서뿌라이즈의 얼굴처럼 황빠들에게 거창하게 내줬던 황토방을 눈에 뵈지도 않는 후미진 뒷방으로 내돌리기에 이르렀슴미다.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는 때늦은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을 것임미다.
서뿌라이즈 창고방에는 4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줄기교도들의 ‘줄기 타령’이 여전함미다.
한 번 둉신은 영원한 둉신임을 증명하는 황빠라는 한국산 돌연변이 인류들은 썩뿌라이즈의 박물관에서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슴미다.

황빠와 썩뿌라이즈, 웬 뜬금없는 소리냐구요?

다음의 경영진에게 ‘둉신 장사 결코 오래 못 간다’는 걸 일러주고 싶어서입니다.

다음 아고라의 위상은 작년 미친 쇠고기 정국과 미네르바가 팔딱 대던 시절까지는 ‘집단지성’을 운운할 정도로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리더격이었습니다.
그랬던 다음 아고라가 미네 구속 사태 이후 9개월여 만에 지금은 ‘둉신들의 천국’으로 조롱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썩뿌라이즈가 그랬던 것처럼 비이성과 비합리와 비과학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거죠.
명예도 잃고 페이지뷰도 점차 다운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혹자들은 그게 모두 알바와 알밥 탓이라 질알하드라만 그런 평가는 수만 수십만의 다음 눈팅들을 모독하는 발언입니다.
아고라 바깥의 여느 세상 사람들처럼 다음 아고라를 눈팅하는 수만, 수십만의 독자들은 지극히 이성적이며 그들은 다음 아고라에 노정된 문제가 무엇인지를 현명하게 잘 판단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다음 주식회사의 게시판 관리팀과 경영진 사이에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전략회의가 있었을 걸로 봅니다.

1. 정부의 중도실용주의에 호응하는 둉신 장사를 계속할 것인가
2. 진보 개혁 이미지의 ‘집단 지성’이란 아고라 본래의 위용을 되찾을 것인가


결론은 1번이 대세였을 걸로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참여정부 치하였다면 2번의 결정을 내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참여정부 치하였대도 돈이 되지 않으면야 굳이 2번을 고수할런지도 의문입니다.
기업의 모든 판단의 기준은 돈이 되냐 마냐는 것이니까요.
어쨌거나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노라고 호언장담해대는 정권 아래서는 2번이 돈이 된다 한들 내 돈일 수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1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다음주식회사를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이란 호구는 늘 있고 그런 호구들을 등쳐먹는 무리들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무리들 간의 경쟁이란 누가 먼저 호구들을 등쳐먹느냐가 언제나 관건이죠.
‘기는 늠 위에 뛰는 늠 있고 뛰는 늠 위에 나는 늠 있는 세상’입니다.

다음 아고라 광장에는,

*기는 늠들......아구라의 일천 둉신들(호구들)이 있고,

*뛰는 늠들

700리........종말론적 세계관을 지닌 의뭉스런 시삽의 주도하에 고급정보 교환을 미끼로 까페장사
아정뽀.......호기로운 절믄 사기꾼 하나가 자유언론의 기치를 들고 카페 장사를 시도
리쥐미.......절믄 날에 이루지 못한 꿈들을 이진법의 세상에서 구현코자 하는 몽상가
돰돰돵돵....반일의 기치로 기어이 호구들을 낚아 성공한 기업인이 되어보려는 야심가
빚을잉크....가정도 사업도 말아먹은 삶을 넷세상의 연애질로 보상받아보려는 낭만거지
크래미, 멬파일....기득권 진입에 실패하고 그 원성을 넷 세상에 쏟아 붇는 청춘 낙오자들
기타 자칭 타칭의 고수들.......책팔이등 기타 금전상의 목적을 노리는 지식장삿꾼들이 있고,

*나는 늠들......다음 주식회사와 정부가 있고,

그리고 나는 늠 위엔 공중부양과 순간이동이 가능한 알밥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도입부 새실은 요 정도 떨고 다음 주식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예비 투자자로서 다음주식회사에 건의 겸 충고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돈은 다음에 벌면 되지만 이미지란 한 번 굳어 버리면 다음이란 기약이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돈이 된다면 당장은 내 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위에 예시된 2가지의 선택 중에서 2번을 선택하십시오.

지금 정권이 오 년 십 년 천 년 만 년 가는 거 아닙니다.
레임덕, 선거준비 기간 빼면 3년도 채 남지 않은 정권입니다.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언론 기업이란 이미지로 먹고사는 기업입니다.
인터넷 포털 중에서 다음이 상대적으로 개혁적 이미지를 지닌 점은 커다란 경쟁력입니다.
한 번 잘못된 판단으로 기업 이미지가 찌질 이미지로 고착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둉신들 등쳐먹는 걸로 자족하고 임기응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 아고라가 황빠의 길을 걷던 썩뿌라이즈처럼 둉신들의 천국이란 이미지로 고착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리되면 인터넷 사업의 주소비층인 미래지향적 네티즌들로부터 버림 받습니다.

아고라에 상주하며 원글과 댓글, 그리고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는 네티즌 수는 기껏해야 일천 정도입니다.
하지만 수만 수십만의 눈팅 독자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음은 자칫 현상유지 차원의 둉신 장사질로 안위하다가 지켜보는 수만 수십만의 눈팅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설마 속으로 리쥐미나 돰돰돵돵 같은 자들이 이뻐보이는 건 아니시겠죠.

일천 둉신들 못지않게 다음 경영진도 정신들 바짝 차리시길 바랍니다.
게시판의 요지경들을 감상하며 웃고 히히덕거릴 때는 아니지 싶습니다.
일천의 둉신들과 사기꾼 비스무리한 인간들을 필요악으로 활용하시려다 아고라=다음=둉신들의 천국이란 이미지로 고착되면 다음이 죶 되는 것도 한 순간입니다.
뱃속에서 독사의 새끼들이 자라고 있음을 인지하고 지금의 시기를 비상한 시기로 인식하고 베스트글 선정시에 다음 측의 적극적인 개입과 방향지도가 당분간만이라도 필요할 겁니다.
그런 강압적 통제가 옳지 않음을 알지만 작금의 아고라엔 도대체 자정 능력이 감지되질 않아서 하는 소리입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다음 아고라 베스트 글을 보면 기함을 합니다.
둉신들의 천국이라고!

둉신들의 질알을 보면서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뒤편에서 웃고 즐기고 계실지 모르지만 다음의 등짝 저편에서 독 묻은 화살이 날아오고 있음을 인지하시라고 오지랖 넓은 의견 함 내봤습니다.
여윳돈 생기면 다음 주식 좀 살까 말까 고민하는 다음 주식회사 예비 주주의 자격으로....^^

===東山高臥===

폰부스 식 치료

주말 휴일은 모두들 싸~하고 쿠울~하게 보내셨겠죠?

또 한 주를 명랑사회건설을 위해 알밥차게 지내봅시다..^^

주말 동안 쓰인 글과 댓글들을 훑어보니 점점 종말이 다가오나 봅니다.
광신도들의 종말은 언제나 집단자살로 끝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곳 경방에도 그런 조짐이 서늘한 가을바람처럼 가만히 느껴집니다.
요즘 들어 부쩍 리빠담빠 광신도들 중에 스스로 분을 못 이겨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자폭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군요.
HUE님은 이들의 집단발작을 절벽으로 내달리는 레밍 떼의 행렬에 비유하더이다.
딱 들어맞는 참 좋은 비유입니다.
빤빤하던 경방이 스폰지밥 피부처럼 자폭자국들로 여기저기 구멍 송송합니다.
행여라도 자폭 후에 갱생의 의지를 불태우신다면 어느 늘근 개의 염원처럼
‘담 생애엔 둉신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 멋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이제 다시는, 다시는, 이제 다시는, 정말 다시는,
개구라 사기꾼들을 교주로 모시며 똥바닥을 구르는 둉신짓을
다시는, 다시는, 이제 다시는, 정말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않기를!

동네 선술집에서나 직장 회식자리에서 또는 집안 친인척 모임 자리에선
나름 천하의 둘도 없을 똑똑이라 자부하였건만 넓은 세상에서 시험에 들고 보니
그게 결국 빙시이 수준일 뿐이었음을 통렬히 깨달으셨을 겁니다.
아, 텍사스 벌판의 소떼처럼 아스라이 밀려오는 지적 열등감이여!
철썩 같은 믿음이 깨어져 나가는 상실감이여!
자신이 둉신임을 기어이 자인해야만 하는 자괴감이여!
황빠 수굼포질, 디워빠 수굼포질, 리담빠 수굼포질로 이어지는
연이은 망신살 끝에 밀려오는 허무감, 아~ 인생무상 구라무상이여!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연거푸 수굼포질이라니 둉신 둉신 상둉신
이런 지기미옹헤야맏개후아ㅐ닝기리댯드랴떠그랄잉릴뽀마자!
지나가는 15톤짜리 땀푸 트렄과 뜨거운 육체적 접촉이라도 하고 싶을 낍니다.

아마 여러분은 머잖은 날에 개구라 교주들 간의 피 튀기는 개싸움을 목도하시게 될 겁니다.
사기꾼들의 세계가 원래 피도 눈물도 없는 이전투구의 전형이거든요.
구라로 흥한 인생 구라로 망하는 겁니다.
철썩 같이 믿었던 리쥐미와 담당 같은 개구라 둉신교회 교주들의 끝없는 수굼포질,
알밥들과 붙었다 하면 백전백패고 댓글 하나 온전히 맞대응치 몬하는 저런 상둉신들에게
1년여 세월을 몰빵 했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시죠?
새 신이라도 신고 팔짝 팔짝 뛰고 싶으신 게죠?
앞다리가 쏘~옥 뒷다리도 쏘~옥 팔짝 팔짝 개구리, 아니 개구라 밥 된 거죠.

오, 주님이시여, 제게 왜 이런 사기꾼들과 흘레붙여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 되고 그리하면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길래
알밥들이 내미는 ‘fact'는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리쥐미와 담당이의 구라 속 K만을 0.1% 그 분으로 철썩 같이 믿고 또 믿으며
막상 천국에 이르렀건만 이 무슨 ‘둉신들의 천국’인가요.

아마, 지금쯤 리빠 담빠 광신도 언냐, 옵화들은
이런 심정들로 가슴 벌렁 대가리 알딸딸하실 겁니다.
자폭을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 없는 죶 같지도 않은 상황의 연속인 거죠.
그래서 며칠 전 죶밥님께선 님들의 그런 심정을 일찌감치 헤아리사
아래와 같이 옆집 김씨네 옥주처럼 영롱하고 청순한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믿었던 배씨한테 뒤통수 후려 맞으니까
대가리가 알딸딸하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정신병자를 모시는 광신도의 최후입니다.

이 돌대가리들아."


현명한 사람은 길이 아니면 돌아서 새 길을 찾지만 길이 아님을 알고도
악랄하게 뚜벅뚜벅 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둉신이라 합니다.
무식한 것들이 원래 용감한 법이죠.
무식한 것들이 용감하면서 부지런까지 떨면 집안 말아먹기 딱 좋습니다.
지들은 그런 둉신짓을 선비들의 기개와 절개라 일컫더군요, 미친!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잘못된 판단과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수가 나쁜 게 아니라 실수를 인지부조화로 면피해보려는 억지와 궤변이 나쁜 겁니다.
자신에게나 남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매우 비겁한 짓이고
덜떨어진 머저리들이나 하는 짓인 거죠..
둉신, 머저리, 빙시이, 돌대가리, 무식한 늠, 광신도, 리빠담빠, 등등
이런 조롱 섞인 말들을 들으면 좌우측 다리 대퇴부에서부터
뒷대갈휘에 이르는 동맥을 타고 왕쫘증이 쓰나미처럼 뻗쳐오르죠?
그건 좋은 현상입니다. 그게 다 치료의 과정입니다.
그나마 그런 반응이라도 있으면 일말의 치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이런 조롱에도 아예 무덤덤한 광신도들이 있다면 갸들은 아예 처방불능 백약무효입니다.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다는 사람들인 거죠.
시간 나실 때 폰부스란 영화 함 보세요.
한인간의위선을산산조각내어완전바닥까지유도하는스나이퍼의심리전이참인상적입니다.
한 번쯤 모든 위선의 껍데기가 산산이 부서져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눈곱만한 알량한 자존심마저 남김없이 발기발기 찢겨져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파괴가 아닌 재건축을 위한 해체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세요.
부서져 내리는 동안 쓰라리겠지만
재탄생될 새까만 눈과 새빨간 심장, 새하얀 뇌를 떠올리며 참아내세요.
그런 치료의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여러분들의 뽕에 찌든 영혼이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영롱해집니다.

부디 알밥들의 쓴 소리를 치료약으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입니다.
알밥들의 쓴 소리는 리쥐미와 담당이가 공급해온 달콤한 뽕에 취해
잠들어버린 여러분의 이성을 일깨우는 유일무이한 명약이라 생각하시고
날마다 식사 후 1일 3개 정도의 알밥 글을 복용하십시오.
정신 가출한 여러 님들의 조속한 정신 귀가를 기원하면서 이만.

===東山高臥===

바보플레이는 주입식교육의 문제인가

작성자:루울
작성일:2009.09.20 00:27



흔히들 벼엉신들을 가리켜 주입식 교육의 문제..ㅉㅉ 라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투입시간 대비 산출 효율성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으로 주입식 교육의 많은 장점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나는 학교 다닐때에 주입식 교육이 내 스타일에 잘 맞다고 느꼈다. 지극히 당연한 걸 설명하는데 곁가지 시시콜콜한것들을 다 따지고 이 친구 얘기 저 친구 얘기 다 들어가면서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짜증이 났다. 딱 한가지 확실한 원리를 선생님이 정확하게 설명 해주면, 기본 원리를 이해한 뒤 외울건 외우고 모르는건 물어보고 패스. 이게 좋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은 그런 방식으로 획득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게 사고를 정지시킨다던가 바보로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그런 방식 이상의 뭔가가 필요할 만큼 대단한 깊이가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가 주입식 교육의 수혜자라고 느낀다. 안녕 메리 안녕 탐부터 시작해서 튀김온도는 몇도가 좋으냐까지 오만 가지 잡다한 지식을 나는 주입 받았다. 나는 그렇게 마구잽이로 대가리에 넣어놓은 지식들이 적정한 타임에 맞춰 입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고 아 이런 방법도 꽤 쓸모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며 그것을 가끔 꺼내어 활용할 수 있는 퀴즈 맞추기를 좋아한다. 그런식으로 대가리에 쌓아놓은걸 심심할 때 마다반추해 보며 얄팍한 경험들과 비교해서 휴지통에 버릴 때도 있고, 수정할 때도 있고, 뭐 그렇다. (주입식 교육은 교수 방법상으로는 일명 강의식 교수법을 말하는 것 같음)

내가 생각하는 주입식 교육의 장점

1.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고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은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다수의 학습자들이 단시간에 평균이상 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우리나라에서 강의식 교수법이 줄곧 애용되는것은 열악한 교육상황과 부모의 큰 기대(교육열)이 한 몫하고 있는 것 같다.

2. 대부분의 기초 지식들은 반복 강조와 지시적 전달방식만으로 충분히 습득 가능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각 과목과 단원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교수법이 있는 것이지 무조건 토론 교육이 주입식 보다 우월하다고 할수는 없다.

3. 주입식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교육 방식의 대안이 토론식 교육 어쩌고 하지만, 일정수준의 기초지식들이 곳간에 차곡차곡 쌓여 있어야 그걸 바탕으로 논리를 펴거나 논박할 여지도 있다. 빈 깡통들끼리 모여서 얘기 나눠봤자 토론다운 토론이 될리 만무하며 극도의 저효율을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생각을 비판하고 나의 논리로 상대방의 논리를 반박 수용하는 과정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는 상호 모두 최소한의 지적수준과 논리력을 가져야 하며, 이 기본소양을 갖추는데 주입식 교육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개념조차 소화 못한 자들이 자신의 교육적 실패 상황을 정당화 하는 방책으로써 '주입식 교육 비판' 이 왜곡된 측면도 있다고 봄.

4. 다만, 창조성 .. 그런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백지상태에서 절대로 창조적인 것들이 나올 수 없다는것 만은 확실하다. 대가리에 잡다한 지식들이 가득 차면 정리하고픈 욕구와 응용 하고싶은 호기심도 생긴다. 그런 것들을 스스로 정리해 보거나 책을 읽으며 탐구하면 된다. 주입식 교육 세대인 나는 내가 창조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으;외로 꽤 창조적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나의 창조력은 내가 암기하거나 걍 머리에 집어넣은 것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5. 학교에서 잡다한걸 가리키는것도 문제라고 하는데, 나 역시 학교 다닐 때에는 '왜 요딴 쓸데없는걸 배우냐 선진국에서는 안 배운다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엄청 많았다. 하지만 쓸데없는거라고 생각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신 능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나는 학교다닐 때 연필로 연습장에 뭘 쓰면서 계산하는게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덧셈 뺄셈이나 배우면 되지 뭐하러 쓸데없이 수학을 배우는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수학을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콩나물 계산하라는게 아니라 뇌 근육에 논리력을 심어주라는 거였다. 요걸 외우든 어쨌든 수학정석을 찢어먹든 간에 열심히 공부해서 소화를 시킨 사람은 앞 뒤 안맞게 말하는 인간의 위선을 조목 조목 비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논리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최소한의 개념 조차 소화 못하는 사람들이 토론식 수업을 통해서 뭔가 생산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데 대해서 회의적이다.

6. 그리고 그 당시에 주입식 교육을 훌륭하게 소화한 다수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지금 나름대로 제 역할 하면서 기술 발달을 훌륭하게 이룩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지 큰 문제를 나는 찾지 못하겠다. 테레비 반도체 등등 별 무리없이 잘만든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주입식 교육이 전형적인 몰개성형 표준인간을 만들어 버려서 선진국에 비해 '더' 창조적이고 '더' 휼륭한 생각을 고안하는걸걸 방해하는 요인은 되겠지만, 이런 교육 방식이 적극적 '바보생산'의 원인은 아니라는 거다. +를 못해서 아쉽다는거지 - 를 적극적으로 양산하는 원인은 절대 아닌 듯..

내 생각에 아골라의 바보 유형으로 제시되는 인간들의 원인은 단지 주입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소화를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스타일의 교육이든 그걸 잘 소화해 내고 그 교육 과정이 추구하는 최소한의 교육목표를 마스터한 사람은 절대로 벼엉신짓을 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딱 '국민표준'이 되는거지.

일례로,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예를 들면 역 참 대우 p이면q이다 같은 것들.. 그런것들만 제대로 배우고 머리속에 박아도 배교주나 담당패밀리의 개소리에 속는 벼엉신이 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알고, 그것을 비판하거나 가려듣는 능력은 꼭 토론식 수업이나 사람들이 좋아서 환장하는 핀란드식 선진교육이 아니라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p이면 q이다 q이면 r이다 p이면 r이다. 요런거..

아무튼 벼엉신이 양산되는 원인은 교육방식이 후진적이어서라기보다는 그 교육 자체를 소화할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나라 교육이 핀란드 뺨치게 바뀌더라도 일정수의 사람은 결국에는 벼엉신 짓을 할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장 큰 수혜자들이다. 무슨 벼엉신 짓을 하든 주위 사람들이 '너 대가리탓이야~' 라고 말하기 보다는 니가 이렇게 된것은 '주입식 교육탓이야 ~' 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람들은 자기 반성과 탐구를 게을리하며 시스템 탓으로 돌리며 계속 그렇게 산다. 내 관점이 상당히 편협하다는걸 나도 알고,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것은 분명하지만,, 시스템이 바뀌더라도 항상 일정 부류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은 변치 않는다. 암만 생각해봐도..


written by '루울'
(이 글의 저작권은 '루울'님에게 있습니다)

미네르바 진위 따위가 그렇게도 중요해?

누가 뭐래니?
미네르바 진위 따위가 머가 중요하겠니?
너무나도 지당한 일침에 백 번 천 번 만 번 동의해.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열불 바짝 끌어올리며 대신 해줘서 고마워.

근데 미네르바 진위 여부에 인생을 올인한 듯 뎀비는 부류들이
경방에 있다는 건 분명한 거 가트.
박대성이 가짜가 되어야만 경방에서 끗발을 유지하고
우아하게 사기질을 해쳐먹을 수 있는 몇몇 인간들과 집단이 분명 있자나.
미네르바 진위 여부에 대한 그 인간들의 집착은 거의 병적일 정도라는 것도 모두 알고.
정 누군가 나무라고 싶음 갸들을 꼭 찝어서 족쳐, 알았지?
알밥들까지 도매금으로 싸잡아 매도하지 말고.
다시 한 번 분명히 못 박아 두지만
알밥들은 미네르바 진위 따위엔 이젠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어.
왜? 박대성이 미네르바임은 아구라 일천 둉신들을 제외한
대한민국 전 국민이 의심 않는 사실인데 진짜, 가짜 따질 게 머가 있니?

알밥들의 관심은 사기꾼들이지 미네르바가 아냐.
박대성을 가짜라고 주장하며 경방에서 끝없이 미네르바 진위 문제를 이슈화하여
음흉한 사기질을 획책하려는 사기꾼들 발목 잡는 일이 알밥들의 존재의 이유야.
그간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었을 거라 믿어.
요즘 리쥐미나 담당글에 대한 찬성이나 댓글 양태가 예전 같지는 않거등.
둉신짓 했던 게 쪽 팔려 고백하질 않아서 그렇지
알밥들의 끝없는 경계 덕에 늦게나마 정신 차린 사람들도 꽤 될 거야.
일기당천의 격무에 시달리는 알밥들의 유일한 보람인 거지.
물론, 나처럼 그런 보람과도 상관없이 오직 ‘유희’ 목적인 알밥도 잇고 말이야.

그니깐 이처럼 훌륭한 알밥들을 삿되이 나무라면 안 되지.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가뜩이나 경찰 수사 인력도 딸려 미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인터넷 사기질을
알밥들이 대행해서 감시 예방하고 있다면
이거는 모범 네티즌 표창감이지 욕먹을 일은 아니자나.
경방의 알밥들이 이런 정화 노력을 수행치 않았으면 니들이 했겠니?
니들은 이런 거 돈 줘도 몬하는 둉신들이자나.
알밥들 없었으면 니들 지금쯤은 사기꾼들의 굴러! 소리에 떼거리로
경방 바닥을 떼굴떼굴 굴러다니면서 집단 딸딸이를 치고 있었을 거자나.
다 알면서 왜 그래, 아마츄어처럼.
인정하자니 쪽 팔리고 부인하자니 둉신 소리 듣겠고 심정이 니미럴이겠다.

그라고, 호통은 아무데나 막 치는 거 아녀.
호통에도 근거가 있고 논리가 있어야지.
길 가는 사람 붙들고 아무 이유도 없이 막 호통쳐봐.
싸대기 얻어맞고 볼기짝 걷어 채이지.
호통의 주제는 제대로 잡았다만 호통의 대상을 제대로 골랐어야지.
정신 좀 차렸나 싶어 이뿌게 봐줄려 캐뜨만
역시 한 번 둉신은 영원한 둉신인 건 어쩔 수 없나벼.
누누이 강조해왔지만
자신의 허물을 반성하고 자기비판할 줄 모르는 용기 없는 인간은
그저 평생 남들한테 둉신 소리나 듣고 살 수밖에 없어.
평생을 인지부조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고개를 꺾는 거지.

제발 정신들 차리자, 응!
느그들만 정신 차리면 경방은 정말 명랑해질 거야.
사기꾼들은 알밥들이 책임지고 잡아줄 테니까
니들은 잘 먹고 잘 사는 방법들이나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해.
그러다 좋은 껀수가 보이면 알밥들한테 귀띔도 좀 해주고 말야.
역할 분담하면 얼마나 좋아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사기꾼은 우리가 잡고 돈은 니들이 벌고.

또 한 가지, 우는 소리들도 좀 고마하고 웃으면서 살어.
맨날 키보드나 뚜드리면서 좀비들처럼 게슴츠레 살지 말고.
한 가지 더,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의 글만 보고 평가하지 말고
그 사람의 인생 역정도 어땠는지도 살펴봐.
내 볼 땐 담당 같은 자는 지난 날 안기부나 국정원의 방계권역에서 첩보원짓 하면서
떡고물이나 주워 먹고 살던 비릿한 쌈마이 인생이구만.
몇 편 글줄로 단박에 무씬 놈의 민족의 형광등이네 촛불입네 질알들이여.
니들 같은 헛다리들을 주둥아리 투사, 주둥아리 애국자들이라 그러지.
니들 분위기로 보면 전두환이도 ‘정정당당’이란 아이디 하나 달고 경방에 겨들어와서
니들 입맛에 맞게 맹바기 졸나게 까대면서 반미반일 외치면
뭣하던 잉간이었는지 검증도 없이 그저 글빨만 보고
민족의 형광등입네 선생님입네 우대해줄 분위기야.
에이고, 에이고, 둉신들아, 상둉신들아,
제발 막걸리들 작작 쳐먹고 게슴츠레해진 눈 좀 학실히 뜨고 살어!
니들은 맹바기를 아랫것 대하듯 살벌하게 욕해대지만
쟈들은 아마도 니들 하는 꼴악선일 보맨서 콧방귀에 헛웃음 짓고 있을 게다.
사기꾼 하나 분간 몬하는 둉신들이 무씬놈의 나라걱정씩이나 꼴값 떨고 자빠지셨다고!

그런 만큼 미네르바 사태에서 니들이 범한 죄를 엄중히 공개 반성하지 않고선
백날 민주와 정의를 부르짖어봤자 개소리고
도덕군자인 양 위선 떨어봐야 양상군자란 걸 세상이 다 알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전 과정이 아고라의 지적 수준을 가늠하는 바로미터이기에
알량한 쬰심이라도 있어 그나마 ‘집단지성’ 운운하려면
니들이 범한 오류를 엄중히 반성하고 자기비판부터 수행하란 말야.
이것들은 교회나 절, 성당 이런 데 가서는 곧잘 자기고해도 잘 하드만
이런 게시판에선 우째 이리 완죤 내슝으로 일관하는지 알다가도 몰러.
하여간 그 놈의 ‘체’병이란!
썩어빠진 양반 근성이 상늠들에게까지 오지게도 감염되어스리 에이!
아, 왜늠들이 노예근성까지 심어줬지, 이런 떠그랄!

주말 아침 상큼하게 시작한 글이 결국 또 욕질로 끝나네.
말 깠다고 기분 꿀꿀한 둉신들은 댓글에서 말까고 욕하면서 속 푸셈.
어차피 인생이란 게 호작질 한 만큼 돌려받는 거지 뭐.

===東山高臥===

이 인간, 뻔뻔스럽기가 차기 대통령깜이다

‘오, 슨상님은 여전히 삔나는 형광등이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도 어제처럼 재섮이, 순번을 다투듯 감격적인 해후의 멘트를 찍어대는 진상들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뻔뻔스럽기가 현직 대통령을 능가하고 차기 대통령깜인 누구를 이곳에서 또 보게 될 줄은 ‘정녕’ 몰랐습니다! 그 뻔뻔함도 대단하고 그 뻔뻔함에 대한 둉신들의 찬양질은 더욱 대단합니다. 기가 찹니다. 역쉬 예끼는 프로들을 상대하기엔 너무 순진합니다.

말 없는 다수 눈팅들의 존재를 의식하노라면 아구라를 싸잡아 매도하는 일은 분명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임을 압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찬반이나 댓글, 원글 등으로 표시하지 않는 한 아구라를 평가할 땐 기호로서 표시된 의사들을 근거로 ‘성급히’ 판단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 성급히 판단해 볼 때, 아구라는 어린 세종이 보았다는 민심을 대변하는 장터와는 분명 달라 보입니다. 무지한 건 죄가 아니지만 무지한 자들이 떼를 짓고 그 떼거리가 공동체에 민폐를 끼칠 정도로 혹세무민하는 사술의 선봉이 되고 있다면 어린 백성을 보는 눈은 달라져야 합니다.

아구라가 정녕 서민들의 민심의 장으로서의 순기능을 다하려면 자기 정화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어야 합니다. 다양한 의견을 지닌 주체들 간의 토론은 바로 그 정화 기능의 중추적 수단입니다만 불행하게도 작금의 아고라엔 이 기능이 마비되어 있음을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경직된 ‘의견 쏠림 현상’이 아고라의 가장 큰 문제점이란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공간의 성향에 따라 약간의 의견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거야 당연할 테지만 아고라에서의 의견 쏠림 현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양태가 굉장히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이란 데 있습니다. 미네사태를 계기로 아고라에서 행해지는 집단적 맹목화 현상은 우려할만한 수준에서 전혀 회복이 되질 않고 잇습니다. 무슨 목적에선가 의도적으로 이를 조성하는 개인이나 그룹에 의해 아고라 대중들의 이성적 판단 능력은 꽤 위험한 수준에서 휘둘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사단은 있습니다. 한 믿음으로 모인 절이나 교회에서도 사단은 발생할진대 하물며 무한 참여가 가능한 넷 세상에서 사단이 없다는 게 이상한 거죠. 그러나 그 사단이 그 누군가들의 사적 이익과 명리를 위해 지속적으로 활성화되고 있다면 이는 공익적 차원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사술을 동원하는 그 누군가들이 아고라에서 지속적으로 행세할 수 있는 힘은 이성적 판단 능력이 부재한 무지하고 감성적인 대중들에게서 생성됩니다. 그들의 열화와 같은 찬양은 사술을 부리는 자들로 하여금 저토록 담담하고 당당하고 뻔들뻔들할 수 있게 하는 커다란 자양분입니다. 이렇듯, 아고라에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있는 무지몽매한 둉신들이 사술가들이 부리는 힘의 원천일진대 이들을 어린 세종의 따사로운 눈빛으로 곱게 봐주기란 정말 도를 요구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아구라에서 행해지는 사술을 퇴치하고 아구라를 정화하는 힘은, ‘상스럽고 잘난 척 해대는’(저도 제 꼴이 눈꼴시럽습니다^^) 알밥들 몇몇이나 스치듯 한 번씩 쓴 소리 해대는 몇몇 글쟁이들에게 있지 않고 침묵하는 아고라의 다수 눈팅 대중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조직적으로 찬성을 찍어대는 집단이나 얼빠진 개인들의 의사가 틀렸음을 확인시키는 길은 그들과 평행선을 달리는 알밥들의 악다구니나 또는 논쟁이 아니라 침묵하는 눈팅 대중 여러분의 적극적 의사 표현이 가장 강력한 수단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사술가들의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하는 게 아니라 찬양질에 동참하신다면야 알밥들은 깨끗이 경방을 떠나는...걸 재고해 봐야 할 것도 없이........... 님들까지 싸잡아 둉신들이라 비난할 것입니다만..^^..) 알밥들이 떠들어봤자 열 명 남짓이고 찍어봐야 찬성 20표입니다.

일부 사술가들이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이는 찬성수와 찬양 댓글에 힘 입어 지속적으로 아고라를 교란시키는 행위를 ‘귀찮아서’ 방치해두는 건 결코 바람직한 태도는 아닐 겁니다. 고작 투표권자의 30% 정도 지지율로 대통령된 맹바기가 전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걸로 착각하고 전횡을 하듯 아고라의 사술가들이 아고라 전체 대중의 코딱지만한 지지를 등에 업고 설쳐대는 꼴아쥐를 지켜보는 일이 짜증스럽지도 않습니까? 아니, 어찌 사기꾼 비스무리한 색휘들이 저리도 안하무인처럼 행세하는데도...참..,.나...나...참.... 아고라, 아고라, 아~아고라, 이런 아고라가 제 눈엔 아무리 보고 또 봐도 신기하고 놀라울 따름입니다. 정말 여러분들, 노예근성에 찌들대로 찌들어 홍길동이 갖다 줄 쌀자루나 기다리는 ‘천민들’ 맞으셈? 어느 사이비 교회 부흥회 장소도 아니고 선무당이 굿판을 벌이는 제청도 아닌 민주와 진보를 논하고 있는 바로 이곳에서 저런 류의 인간들이 설치는데도 할렐루야라니 이런 떠그랄!

===東山高臥===

대한민국 20대 선언문!

아구라의 요지경들 중에 가장 대표적 요지경을 꼽으라면 ‘혁명놀이’다. 현실적 피해가 없으면야 참 재밋는 놀이임엔 틀림없다. 일단 명분과 상상의 무대가 거창하자너. 멀리 시베리아 얼음 대륙을 건너 광활한 만주 벌판 내달리며 백두와 한라를 아우르는 호쾌한 한민족의 기개로 게보라를 꿈꾸며 오, 막심을 부르자, 레논이여 오라! 천민들의 천년 왕국, 라도니아 공화국 만세! 아구라는 혁명 전야에 뿌려지던 이즈베스티야! 아골리언 만세! 아골리언 구라혁명 만만세!!

얼마전 아구라에서 노통 암살설을 퍼뜨리다가 ‘현실적 징벌’에 직면하자 쭈그러진 깡통 맨키로 반성문을 써냈던 누군가가 있었다. 그가 반정부 성향의 네티즌이었든 아니면 첨부터 새라이터나 기관 소속 알바로서 연기를 했든 결과는 동일했을 것이기에 그의 정체에 대해선 크게 상관 않는다. 이 판이 원래 그렇잖는가. 현실적 징벌에 직면했을 때조차 이진 세상에서처럼 당당함을 유지하는 뇬늠은 거의 없을 게다.

그래서 그런 거니? 이진 세상의 참맛은 경계를 넘는 오버질에 있고 그 짜릿한 오버질은 하고픈데 재섮이 걸려들까봐 겁은 나고 걸려들어 반성문이라도 쓰고서 개쪽 팔 것 같아서 볼세비키가 혁명하듯 그리도 의뭉스럽게 아구라질 중인 거니? 석호필이가 회사의 음모에 쫒기는 듯한 긴장감을 만땅으로 만끽하고 싶은 고야? 뵨태짓도 요즘은 늘근 진상들처럼 퍼포먼스로 벌이는구나.

긴장들 풀어. 소문난 아구라에서 정권 비방하는 글질 정도하면서 무씬 아이디가 몇 개씩이나 필요하고 프록시는 웬 말이며 구글 통신씩이나 할 건 머꼬! 국내 포털 이용자가 수백, 수천만이고 그들 모두 개인 정보 까고 가입했다. 근데 그기 싫어서 절차가 복잡해서 제 아이디 하나 당당하게 만들지 몬한다고? 니들이 무씬 상해임시정부에 김구 선생 만나러 가는 비밀 특사들이여? 무씬 할 말들이 그리 엄청난 거라고 남의 아이디를 공유하거나 빌려 쓴다는 거니? 흐이구 질알도 알이라고 부화시키느라 욕을 번다, 벌어.

이미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를 거치면서 대통령과 청와대는 동네 전봇대에 한 쪽 다리 들고 있는 동네 개샊휘들도 씹어대는 개껌 신세 된 지 오래다. 지들이 한 짓이 있으니 자업자득이겠지만 우쨌든 이진 세상은 맹박 정부 아래서도 이 정도면 자유롭다. 고마운 줄 알어라. 손 잡으면 뽀뽀하고 싶고 뽀뽀하고 나면 찌찌 만지고 싶고 찌찌 만지고 나면.....더하고 싶어? 공짜 넘 좋아하지들 말어. 원래 그렇지, 한 경계를 허물면 다음 경계를, 또 다음 경계를 넘고 싶은 게 인간의 대책없는 욕심 아니던가. 그래서? 어디까지 가고 싶은데? 무장봉기라도 일으켰음 좋겠니? 천민 왕국 건설을 위해서? 알잔어, 니들 손에 나라를 통째로 쥐어 줘도 3일 천하라는 걸. 니들이 아는 게 뭐가 있니? 영어를 알아서 외교를 하겠니? 두뇌가 있어 신기술을 개발하겠니? 왜, 구멍가게 경영 기법으로 삼성을 혁신해보게?

니들 호들갑을 보노라면 마치 혁명 전야의 모스크바 밤거리 풍경이여. 혁명 전야에 거사를 알리는 삐라라도 뿌리는 거니? 어쩜 그리 하루도 조용한 날 없이 만날 ‘경악’이고 ‘충격’인 거니? 바깥에 나가보면 다들 방글방글 웃으며 평온하게 잘들 살고 있더구만. 몽룡이와 춘향이가 그네 놀던 그 시절에도 심청이는 인당수로 뛰어들고 있었자너. 어이, 경악 좋아하는 늘근 양반, 노통 때나 김통 때는 잘 먹고 잘 살았는데 맹바기 대똥 되고서 갑자기 있는 재산 공권력이 다 털어 가버린 겨?

두 손 놓고 감 떨어지길 기다리자는 소리가 아냐. 오버질 좀 말란 소리야. 정부 정책이나 대통령을 깔 때는 엣지 있게 까되 양아처럼 땡깡부리듯 하진 말란 소리야. 어차피 니들 손으로 구성한 정부고 대통령이야. 천 년 만 년 해쳐먹으라고 뽑아논 것도 아니고 이제 3년 남았어. 그라고, 꼴에 경방이니만치 경제 예측을 하거나 분석할 땐 비관론이든 낙관론이든 그 말에 영향을 받아 한강철교 찾을 사람도 있다는 책임감으로 신중하게 쫌 씨부리고 말이야. 한가지 더, 그 누구든 경방에서 사기꾼 소리 얻어 쳐먹기 싫거든 후원금이든 상담료든 그 어떤 연유로든 아구라의 천민들 상대로는 돈 얘기 좀 꺼내지 좀 말어라, 씨밸륨들아! 교회 성금 통 앞에서도 쪼그라드는 살기 팍팍하고 불쌍한 사람들 등쳐먹을려는, 나쁜 쉬키들!!

별것도 아닌 일에 조급해하지도 말고. 니들이 선동 안 해도 때가 되면 다들 알아서 처신할 사람들이야. 작년 촛불 봤자너. 그 사람들이 니들이 선동해서 나온 사람들 아니자너. 여깄는 니들보다 더 잘 났고 현명한 사람들이야. 최소한 소고기를 먹을 능력도 되는 사람들이지. 그니깐 그 사람들이 다시 안 움직인다고 투덜대는 대신 니들이 하고 있는 주장이 터무니없는 걸 탓해.

아구라에서 주딩이로 혁명놀이 중인 니마들, 넘 열 올리진 마세요. 특히, 소싯적에 혁명놀이 비스무리하게 좀 놀아본 늙다리 분들, 절믄이들 넘 나무라지 마세요. 그 시절에 짱돌 안 들어본 사람 없자나요. 님아만 유독 잘 나시고 똑똑한 건 아니자나요. 님아만 양심 있고 정의감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 양심 그 정의감으로 정 누군가 나무라고 싶거든 아구라 경방에 대한민국 절믄이들 얼굴에 똥칠하는 대표적인 절믄 것들 많자나요. 귀때기 새파란 것들이 프로사기꾼들을 사부로 모시면서 벌써 인터넷 사기질부터 배워서 늘근이들을 희롱하는 천하의 호로 자슥들을 먼저 나무라세요. 선진 사회 건설을 위해 불철주야 학업에 열중하거나 명랑 사회 건설을 위해 경복궁에서 사랑을 나누는 우리 예쁜 절믄이들 손에 짱돌 못 쥐어줘서 분개하시는 미친 늙은이님들, 정 그러고 싶음 니 예쁜 딸래미 손에 먼저 화염병 들려서 청와대로 돌진하게끔 하고 나서 알앗쥐, 미친!

더하다간 유희가 목적인 글질 본래의 목표를 벗어날까봐 이쯤하고 글 하나 소개한다. 아래 파란색 글은 아구라 경방이 배출한 21세기 대한민국 최고의 20대의 모범이자 정답과도 같은 이성과 지성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는 룰루비데 절믄이가 3달 전에 포스팅했던 <삼성 카드 삼송전자 불매운동>이란 제하의 글에서 발췌한, ‘20대를 위한 20대에 의한 20대의 선언문’이다. 읽고서 조금이라도 뜨끔한 맘이 생기면 그나마 남은 여생 동안 자기성찰이 가능한 ‘희망’적인 인생일 게고, 분기탱천하는 맘이 생기면 그 인생들은 보나마나 평생 남탓이나 하다가 뒈질 ‘절망’적 인생임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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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략)

그리고..20대들보고 거리로 안 뛰쳐나온다고 욕하는 인간들도 참 드럽게 못난 인간들이다 ㅋㅋㅋㅋㅋ

이봐, 시대가 달라졌어.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학생운동--> 시민단체 등으로 핵이 바뀌었거든?

학생운동의 쇠퇴는 어찌 보면.. 시대의 번영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란 말이다.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식층이 두터워지게 되었고 공권력에 맞서 돌격하는 청년층의 혈기가 굳이 필요 없어도 제도개선과 합법적 소통만으로 문제해결이 가능할 정도로 사회가 민주화, 다양화 된 결과인 거지.. 학생들이 그저 무개념에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거든.

그리고 그런 제도적 보완책이 완전하게 사라져 유혈 혁명이 필요한 세상도 아니잖아 지금은.

아휴..20대를 나무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짱돌 들고 거리로 뛰어나오지 않는다며 화내는 늙다리 인간들을 보면 진짜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니들이 뭔데 개인들의 행복 추구권을 왜 대의와 맞바꾸라고 강요합니까.

사회 변화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개인들의 행복추구와 개인주의가 뭔 죄인가요. 합리적 개인주의는 사회 변혁과 단합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절대로 '해악'을 주지는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주의자들을 욕하는 그런 인간들이야말로 니 욕망을 위해 파쇼도 불사하는 인간들이더군요.

그런 인간들이 다수가 되면 사회는 묻어가려는 인간들이 늘어 광기에 빠지게 되며 멍청한 독재자를 낳고 결국 부패하고 침체됩니다. 아파트 땅값 올려달라고 어깨에 힘주며 쥐박 찍었을 인간들. 혹은 남의 땅 값 올라갈 때 배 아파서 노무현 졸라 욕했던 캐 서민. 그들이 바로 그런 파쇼들 아닌가.

20대의 행동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물론 비정치적인 성향은 있지만 어느 집단이나 일정 퍼센티지는 그런 자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선택 또한 그들의 자유이지. 그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때가 안 되었다는 걸 반증하는 거라고 보는데.

욕망을 '성취'하려는 개인주의자들을 욕하며 쇠파이프 들기를 종용하는 자들은, 욕망에 압도당하거나 욕망 앞에 패배한 자들이다.



===東山高臥===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이야기 (마지막 편)

에필로그
미네르바, 미네르박


(마지막편)

돼먹잖은 글 까대느라 저도 개고생, 읽는 님들도 개고생이셨습니다. 애당초 큰 기대 없이 시간 쪼개가며 유희삼아 쓴 글이라 정성스럽게 쓰지 못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못마땅했을 수도 있는 음악 삽입은 날선 글의 엣지를 가다듬는 장치였습니다. 불편하셨던 분들께는 뒤늦게 양해를 구합니다. 비록 유희삼아 쓴 글들이라 해도 미련을 떨치지 못하는 게 또 사람 맘인지라 모쪼록 한 두 사람만에게라도 각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후기를 씁니다.

미네르바 박대성에 대한 저의 요즘 생각은 이렇습니다.

미네르바는 일단 박대성 맞습니다. 어떤 연유든 이 명제를 부인하면 음모론에서 영영 헤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저나 여러분들의 기억 속 미네르바를 떠올리노라면 박대성이 허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싹 떨쳐버리긴 어렵습니다. 허상이라 함은 박대성이 가짜라는 게 아니고 박대성은 누군가(들)를(을) 모방했을 뿐인 껍데기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그런......뜻입니다. 석방 후 그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작년에 보여주었던 ‘미네르바다운’ 모습을 단 한 번도 온오프를 통해 보여준 바가 없기에 이리 생각한들 박대성에게 그리 모진 언사는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막말로 저 같음 드럽고 치사해서라도 미친 척하고 작년의 미네르바보다 더욱 강화된 포스로 아구라에 일필휘지했을 겁니다. 자신을 배신한 아구라 중우들을 엿 멕이는 욕글일지라도 말입니다. 근데 이건 보면 볼수록 머스마가 쪼매이 모지래 보여스리. 요즘 보면 '난나나난'(?)인가 머시긴가랑 우째 그리 닮았는가도 싶습니다. 아무래도 난나나난이 미네르바 맞지 싶습니다. 니이미, 늘근 사기꾼들이나 절믄 똘추들이나 도찐 개찐!

그런 추정에도 불구하고, 박대성이 자신만의 비상한 재주를 보여준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박대성이 보여준 비상한 재주란,

첫째, 쓸 만한 글을 적시에 신속하게 검색해내는 재주이고
둘째, 검색해낸 글을 적당히 각색할 수 있는 재주이고
셋째, 자신만의 글빨 스타일(미네르바 스타일?)로 재창조해내는 재주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박대성이 암만 자신만의 뛰어난 재주를 지녔을지라도 미네르바 글의 형식과 내용 모두가 누군가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은 결과물이라면, 그 누군가가 구라마을의 펠리 양이 통신으로 보았다는 그 누군가(들)이라면 박대성은 겉은 미네르바일 순 있지만 속은 결코 미네르바일 수는 없겠죠. 현재로선 본인만이 알 것입니다.

그리 보면, 박대성이 부린 재주는 천재적 자질에서가 아니라 오타쿠적 기질과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란 생각에 이릅니다. 메이크파일이 어흥이를 닮아가듯, 크래이머가 리드미를 닮아가듯 박대성도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닮고자 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글의 껍데기는 빌릴 수 있을지언정 글에 담긴 정신은 결코 모방할 수 없겠죠. 근자 박대성의 행보를 보면 똥오줌을 못 가리는 철학의 빈곤이 여실히 드러나 보입니다. 이거야말로 박대성이 지속적으로 의심받는 결정적 한계로 여겨집니다.

박대성은 어쩌면 아고라가 드럽고 치사해서가 아니라 익명과 모방이 아니면 내보일 밑천이 없는 자신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고라에 글질 할 엄두조차 못내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영악한 어흥이나 리쥐미 그 일당들도 등신들이 아닐진대 이런 약점을 간파하고 집요하게 박대성을 괴롭히는 것이겠고 그런 약점을 지닌 박대성은 리쥐미나 어흥이 일당에게 강력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겠고요.

펠리 양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실 미네르바 진위 논란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습까지 그 일련의 흐름들을 이해 못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박대성이 검색과 각색 분야에서 오타쿠적 기질과 별난 재주를 십분 발휘한 그 모방의 대상이 소수가 아닌 다수이거나 그마저도 거의 드러나지 않게 잘 각색된 거라면 박대성을 두고 마냥 껍데기라 주장하는 것도 다소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기존 지식이란 건 돌고 도는 거고 본인이 진실을 고백하지 않는 한 그것을 증명할 길은 없습니다. 그가 쉽사리 고백할 리도 만무하고요. 그에게는 지금 그것보다 큰 삶의 자산은 없으니까요.

사실 전 ‘미네르박’이란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박대성은 미네르바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처음에 박대성을 조롱하기 위해 만든 말이었습니다. 박대성을 미네르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사용해서는 안 될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을 조롱의 목적이 아니라 이 글의 논지처럼 미네르바 박대성 속에 또 하나의 미네르바(들)를 상정하는 의미로 쓴다면 굳이 쓰지 못할 말도 아니란 생각을 갖습니다.

그간 음모론으로 박대성을 가짜로 의심해온 여러분은 처음부터 타깃을 잘못 설정했다는 생각입니다. 음모론으로는 절대 진실에 근접할 수는 없습니다. 의심도 정도껏 해야지 뿌리메이숑과 안드로메다 외계인까지 동원하는 음모론 정도까지 되면 일러 뭣하겠습니까. 진실에 접근하는 길은 여러 갈래의 길이 있고 딱히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현재 드러난 모든 정황 증거로 볼 때 미네르바 진위 논란에서만큼은 여러분의 길은 분명 틀려 보입니다. 지금이라도 박대성을 인정하고 진실에 이르는 새로운 길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그 새로운 길은 이런 겁니다. 시간과 열정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박대성이 포스팅했던 글들의 원본이 될 만한 글들을 구글링을 비롯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찾아보십시오. 재수 좋으면 그런 작업 중에 플앙스의 3류 경제 잡지 귀퉁이에서 리쥐미의 미네르바 K의 흔적을 발견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면 제보도 받으십시오. 죶밥 님처럼 말입니다. 그런 낱낱의 자료들을 축적하고 분석하는 게 에펠탑 탑돌이에 맛 들려 오시지도 않을 그 분을 기다리는 것보다 진실에 접근하는 훨씬 값진 노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이 밭에서 참외 찾는 일은 백년이 가도 헛수고입니다. 존재치도 않는 허상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멀건 젊은이 하나 아작 내는 일에 괴뢰가 되지 말고 차라리 겉미네르바 박대성 속에 있는 속미네르바를 찾아내시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박대성의 정체를 발가벗기고 싶으시다면 이 작업만 제대로 수행해도 여러분이 박대성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성과를 이루어낼 지도 모를 일입니다. 벌써 오래 전에 어느 알밥님께서 그 작업의 결과물들을 제시한 적도 있었습니다. 더 이상 둉신 소리 듣지 말고 이성적인 판단과 처신이 뒤따르길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이쯤에서 글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아구라의 구라5인방 ‘비리마담K’를 잘근잘근 씹어줄 것을 기대했던 알밥님들의 기대를 미처 채워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처음부터 글의 타깃은 사기꾼들이 아니라 시리즈의 제목처럼 ‘미네르바와 미네르박’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리즈가 용두사미로 끝나게 된 건 이미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첨에 한 편으로 구상했다가 길겠다 싶어 억지로 늘렸기에 그렇습니다. 기대했던 분들께 풍선 바람 빠진 기분 맹글어 드려서 무지무지 지송스럽습니다.

제가 글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혼이 담긴 구라’라는 표현은 ‘격물치지’님에게 원 저작권이 있습니다. 그간 동의도 없이 무수히 사용하게 해주신 점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쭈욱 사용토록 하겠습니다. 물론, 언제든 사용중지를 권고하시면 따르겠습니다. 시리즈로 글쓰기? 어흥이가 새삼 존경스러워집니다. 어흥씨~~존경혀!!

언젠가 아고라에서 명예롭게 ‘탈출’할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막심의 마지막 연주곡, ‘영광의 탈출’을 배경곡으로 삽입하는 걸로 그간의 돼먹잖은 시리즈를 끝맺습니다.

나 이만 감미다 안녕히 계세여~~
그라고 된장님아, 사인 하나만 해주라~~~~
격동의 시대, 애국질의 본산 아구라에서 알밥 2009기 동기라는 게 을매나 역사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의미있간?
안드로메다 총단 본부로 귀환하기 전에 기념 스샷 한 컷 박아두게 사인 꼭 해주셈. 아라찌찌! ^^
이번에도 안 해주면 듁어~으~어~~~~@

THE END





*알밥님들, 륄랙스 하세요. 둉신들 상대로 넘 열 받지 마시고요. 어차피 인간되기 글러먹은 사기꾼들과 사람 되기 글러먹은 원생둉신들의 쬬다짓은 유희의 대상이지 계몽의 대상이 아닙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알밥 활동은 일천 둉신들 중에 하나 둘 정도만 정신 컴백시켜도 임무 완수입니다. 사기 당한 후에 한강 철교 위에 오를지도 모를 불쌍한 인생 딱 1명만 구제하는 일도 크게 훌륭한 일입니다. 말 안 듣고 소고집부리다 디질 늠은 디지게 냅두고요. 한 번 해병 영원한 해병? 오키, 한 번 둉신 영원한 둉신! 헐렐루~야! 결벽증이 필요한 날들입니다.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 함부로 잡지 마시고 여럿이서 된장국 드실 땐 국자를 이용하세요. 즐즐즐~~~둉신들 말고 알밥님들만..^^

===東山高臥===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이야기 4

4
편지


(전편에서 계속)

구라경연대회가 끝나고 미르바의 구라를 찬양찬양하는 축제 분위기가 연일 계속되던 어느 날인가 마을사무소 여직원 펠리가 마을을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펠리의 근황에 대해선 금기라도 되는 양 입에 올리질 않았습니다. 펠리와 마을사무소에 함께 근무하던 펠리미가 퉁명스럽게 전한 말에 의하면 구라경연대회가 끝나고서 사나흘 쯤 지나서, 펠리가 마을사무소에 편지 한 통만 달랑 남기고 구라마을을 떠났다고 합니다. 마을사무소 쓰레기통에서 발견된 펠리의 편지에는 미르바에 관한 이런 고백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을주민 여러분. 저는 오늘 정든 마을을 떠나고자 합니다.
지금 구라마을은 마을 탄생 이래 최대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구라 마을의 촌장이 되려는 사람은 정녕 ‘혼이 담긴 구라’를 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르바는 얼마 전 구라마을 최고구라 경연대회에서 짱을 먹었고 촌장 후계자로 추대되었습니다.
저는 그간 미르바의 구라를 다각도로 검토해 보았지만 그의 구라에는 결코 혼이 담겨 있질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혼이 담겨 있지 않은 구라는 진정한 구라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를 혼구라로 칭송하고 결국 그에게 구라왕관을 씌웠습니다.
저는 그가 구라마을의 촌장으로 추대되는 일만은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제가 아는 모든 것을 폭로하고 구라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합니다.
그가 구라경연대회에서 시전한 ‘꼬마들의 엽기 행각’이란 구라는 자신의 창작 구라가 아닌 어디선가 펌질한 구라입니다.
저는 ‘꼬마들의 엽기 행각’이란 구라를 야후 블로그 말고 다른 사이트 여러 군데서 분명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저 구라의 저작권자는 미르바가 아닌 다른 마을에 살고 있는 누구누구입니다.
저는 통신을 통해서 그 마을을 여러 차례 다녔고 원저작권자의 구라를 직접 듣기도 하였습니다.
단언컨대, 미르바의 구라는 그 사람의 구라를 각색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미르바의 구라에는 혼이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평상시 시전한 모든 구라들도 제가 외부세계로 나갔을 때 여기저기서 들은 적이 있는 각색된 구라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의 모든 구라는 자신의 창작 구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구라마을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혼이 담긴 구라를 시전할 수 없는 자가 마을 촌장이 되면 마을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게 그것입니다.
저는 그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마을을 떠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만 살겠다고 마을을 떠나는 일이 죄스러워 이렇게나마 편지 한 장 남기오니 주민 여러분들께서도 현명하게 판단하고 처신하시길 소망합니다.
나 이만 감미다. 안녕히 계세여. 펠리가.
달리고,달리고,달리고,달리고,달려서 감미다. 따라따따~따라따따~~뱌뱌~~~



펠리의 서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펠리를 미친 뇬 취급을 하면서 외려 더 열광적으로 미르바를 추켜세웠고 사기충천했던 미르바가 결국 하늘님 똥꼬를 찌르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하날님이 천둥과 번개로써 미네르바에게 징벌을 내렸던 그해 여름 어느 날, 미르바의 똥꼬지르기 후유증으로 치질이 크게 도진 하날님이 불뚝 씅질이 뻗쳐 미르바를 촌장 후계자로 옹립했던 구라마을에도 시커먼 비를 뿌려 홍수를 일으켰고 마을은 그만 물속 깊이 잠기고 말았습니다. 펠리의 경고대로 마을에 큰 재앙이 내렸던 것입니다. 피자를 먹으면서 동물의 숲을 하던 아이가 탁자 위 콜라를 닌텐도에 엎질러버린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to be continued)

===東山高臥===

촌놈들 서울에서 살아남기

소싯적에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갔습니다.

어디라고 말은 몬하지만 명색이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나는 서울 사람들마다 부모님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묻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 사람들 보면 그게 그렇게도 궁금합니까?
무슨 농사를 짓다 왔는지가...ㅠㅠ
생긴 것만 보면 모릅니까? 도시産인지 시골産인지.
전 그때만 해도 지들보다 허얼씬 더 하얗고 뽀얀 도시풍의 피부를 지녔더랬습니다.
지금이야 땡볕에 낚시질하느라 칙칙하지만서도.

참 억울하고 서글펐습니다.
전 정말 ‘ㄱ 놓고 낫도 모르는’ 순수 말짱 순도 100%의 도시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 농부의 자식으로만 취급하더군요.
낫으로 풀을 베어 보았냐는 둥, 소몰이를 해보았냐는 둥
정말이지 그때까진 태어나서 구경도 못해본 것들이었습니다.

저보다 2~3년 쯤 먼저 서울물 먹은 한 행님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이거 뭐 대책 좀 없겠냐고.
행님은 눈을 지그시 깔고 그 맘 다 안다는 듯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방법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면서 한 마디 툭 던집니다.

‘니가 서울 사람 되라!’

그러면서 행님은 제게 손때 덕지덕지한
노트 한권을 건네주었습니다.
사제 간에 대대로 물려지는 무공비급처럼 보였습니다.
그 순간의 행님의 위용은 동방불패 이상으로 보였습니다.

“무조건 애아라!”(‘애아라’는 ‘외워라’의 상도 버전입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한 마디를 더 얹었습니다.

“서울말은 인토네이숀이 생명이다.
그거는 서울말 원어민한테 따로 배아라!”

제 손에 건네진 노트의 겉장에는,
'Seoulish Alive'라고 떠억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읽으면 ‘서울리쉬 얼라이브’ 해석하면 ‘생생 서울말’ 정도 되겠죠.
슬휘 챕터로 이루어졌더군요.

제1장 : 술집에서
제2장 : 가게에서
제3장 : 당구장에서

위의 세 장소는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촌것들이
서울 생활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장소들입니다.
노트에는 저 세 곳에서 촌티를 내지 않기 위해
반드시 익혀두어야 할 ‘생생 서울말’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술집에서===>아주머니, 소주 1병만 더 주세요~
가게에서===>아주머니, 이거 얼마예요?
당구장에서==>아주머니, 났어요~~

이것을 상도 버전으로 하면,

술집에서===>아지매, 소주 한 병만 더 주이소~
가게에서===>이거 얼만교?
당구장에서===>아지매, 났습니대이! 로 번역될 수 있는 말들입니다.

근데 저 딱 세 줄 서울말이 왜 그리도 에러븐지요.
패떳의 시연아, 해진아! 니들 서울말 어느 학원에서 배았노? 감쪽 같더라.
우리 알라 이 담에 설로 진출할 때 등록하구로 좀 갈차 도고!

정권이 수차례 바뀌는 세월이 지났어도
전 결국 저 세 줄짜리 노트 한 권을 떼질 못했습니다.
과연 아무나 넘볼 수 없는 무공비급이었습니다.
‘생생 서울말’을 잘못 터득하여 주화입마에 들면
고향에서는 싸대기 맞고 설에서도 이상한 늠 취급 받기 딱 좋습니다.
주화입마의 정도가 심하면 자칫 간첩 신고 들어갑니다.

보통,
서울에선 지방것들은 촌놈으로 통하지만
지방에선 서울것들은 얌체(깍쟁이)로 통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얌체 같은 서울 사람들보다는
상냥한 서울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편입니다.
하숙집 아줌마들도 좋았고
동네 술집, 슈퍼, 빵집 등등 외상들 참 잘 해주셨습니다.
어떤 하숙집 아줌마는 제가 떠날 때 막 구슬피 울었습니다...ㅠㅠ
오랜 세월 지나고 보니 참 그리운 아줌마들입니다.

저 애우기도 에러분 서울말 세 줄을 전 기어코 애았지만
막상 중원에서 단 한 번도 시전하질 못했습니다.
쪽 팔린다 아이가!
그러던 어느 날 떡볶기 무러 갔다가 사투리를 쓰는 제게
풍채 좋던 서울 아줌마가 깔깔 대시더니
뻘건 덴뿌라와 떢볶기를 몇 개를 더 얹어 주시는 겁니다.
그 순간, 장님이 눈을 뜨듯 앞이 탁 트이는 깨달음이 오더군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 서울에서 낯간지런 서울말보다는 사투리로 생존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아냈씁니다.

어설픈 생생 서울말로 위장하는 것보다
욱끼는 사투리가 깍쟁이 서울에서 살아남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실제보다 약간 더 과장해서 찐하게 사투리 들어가면,
서울 언냐들 배꼽 잡습니다.
술집에선 사투리의 구사 능력에 따라 소주 일병 정도는 스비슈로 걍 나옵니다.
가게에선 물건 값 최대 오백 원 정도는 걍 깎아 줍니다.
당구장에선 외상 당구도 가능했습니다.

그렇듯,
사투리는 주머니가 허전한 지방 촌놈들의 생존수단으로
활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배운 서울말들을 요즘 무척 요긴하게 씁니다.
호통글을 쓸 때 그렇습니다.
호통글을 쓸 때는 느낌표 보다는 물음표를 많이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문맥이 연하게 흐르면서 깔끔한 뒷맛을 남깁니다.
물음표로 호통치기, 요게 호통글을 맛깔나게 하는 비법입니다.

(예문)

‘너, 바보니?’
‘와이쏘 씨리어스하니?’
‘앗녕 미생물들아 왜 그리 눈치만 보니?’

전 예전에 생생 서울말 배울 때 물음표를 써야할 경우엔
대개 서울지역 남성들은 ~냐?로 끝내고
여성들은 ~니?로 끝낸다는 규칙을 탐지했습니다.
간혹 여성스런 남성들이 ~니?를 사용하는 것도 염탐하였습니다.
한 때는 이러한 사실들이 국가기밀로 분류되어
국외로 유출할 경우 간첩으로 처벌 될 때도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간에,
말로 하라면 때리직이삔대도 낯 간지러붜서 쓸 수 없을 것 같던 생생 서울말을
글쓰기에선 요즘 들어 이렇게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게
저 스스로도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그게 다 왕년에 ‘Seoulish Alive’를 수련했던 덕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오늘 구라(구라율20%미만)를 마무리하면서
지리멸렬스러운 오늘 글의 뽀인트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첫째, 서울 간 촌것들이 먹고살기에는 어설프게 배운 설말보다 고향산천어가 낫다!
둘째, 아구라에서 호통글을 쓸 때는 투박시런 고향산천어보단 설말이 낫다!

이상, 잠깐 쉬어가자는 의미와 더불어
상쾌, 유쾌, 통쾌한 하루를 전도하면서
명랑사회건설을 지향하는 예끼의 한가로운 구라질을 끝냅니다.
오후엔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이야기 4’로 찾아 뵙겠습니다.

나 이만 감미다 안녕히 계세여, 뱌뱌~~

===東山高臥===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이야기 3

3
최후


(전편에서 계속)

“촌장 후계자 선발 최고 구라 경연대회에서 영예의 최우수상을 수상할 최고의 구라꾼은 참가번호 6번, 미이~르으~바아!!”

모야, 모야! 이게 모얏! 저마다 탈락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여름날 봉숭아 씨방 터지드끼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왔습니다. 급기야 주최 측의 음모론까지 제기하고 나선 출전자들의 꼬장과 난장으로 구라 경연대회가 열렸던 광장(廣場)은 광장(狂場)이 되고 말았습니다. 닌텐도사가 재밌으라고 기껏 의인화시켜 주었더니 역시 짐승들이 사람역할 하는 게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막장에 이르니 다들 짐승티를 내고 맙니다.

구라 경연대회 탈락자들의 소동으로 시끌벅적한 광장의 뒷켠 어딘가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온 몸의 성감대를 어지럽히던 구라꾼들의 현란한 혓질에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무표정하게 그들의 구라를 지켜보기만 하던 마을 사무소 여직원 펠리가 그들의 난장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탄식을 내뱉습니다. “얘도 구라, 쟤도 구라, 걔도 구라, 해도 구라, 달도 구라, 별도 구라, 온 우주 삼라만상이 구라, 구라로다! 단 하나 구라 아닌 잠들어버린 이성이여!”

탈락자들의 불평불만으로 소동은 있었지만 어쨌거나 미르바는 구라경연대회에서 짱을 먹었고 팔십만 벨(*동숲 마을의 화폐 단위)짜리 왕관을 머리에 덮어쓰고 한껏 뽐을 내었습니다. 그 희귀한 일본 연어 5마리를 혼자 다 쳐먹고 연어 기름이 올라 빵빵번질번지르르해진 뱃살을 출렁이며 마을 해변에 모로 자빠져 우승자의 향연을 맘껏 만끽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정말 산신령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구라 경연 대회 이후 그의 혼이 담긴 구라는 경쟁자들을 한층 더 압도하였고 마을에선 이젠 감히 그 누구도 그의 구라에 대항할 엄두를 내질 못했습니다. 미르바의 구라는 구라 마을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찬사와 칭송을 받으며 하늘 끝 간 데 없이 더욱 높디높아만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뿔싸, 브레이크 없던 그의 구라가 그만 하늘님의 똥꼬를 찔러버렸습니다. 가뜩이나 치질 땜에 고생 중이던 하날님은 씅질이 말둊처럼 뻗쳐 그에게 천둥번개를 반짝반짝 내렸습니다. 반짝반짝 예쁜 벼락에 맞아서 왕관은 작살이 났고 S라인 섹시한 번개불은 산신령처럼 우아했던 그의 수염과 도포를 휘감으며 홀라당 다 태워버렸습니다. 음마얏, 저게 모얏! 추송훈스런 몸짱을 연상케 하던 그 칼칼한 카리스마는 온 데 간 데 없고 벌거벗은 구라왕 미르바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몰골을 드러내었습니다. 꼬츄는 여물다 만 풋꼬츄였고 뱃살은 일본 연어 기름으로 출렁거렸으며 게슴츠레한 눈은 뽕이라도 맞은 듯 몽롱해 보였습니다.

졸지에 천둥벼락을 맞고 화들짝 놀란 미르바는 자신은 오직 땅도 하늘도 아닌 허공에서 중도실용구라만을 외쳤을 뿐이라며 그 증거로써 자신의 이마위로 한 치 좌우 쏠림도 없이 가지런히 뻗은 5:5가리마를 가리켰지만 하날님은 물론 구라마을 사람들까지도 모두 그의 읍소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어디 한 구석이라도 예쁘게 봐줄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수염과 도포를 벗기고 보니 산신령 같던 부엉이의 자태가 아니라 끓는 물에 막 투입되기 직전의 발가벗은 달구새끼랑 영락없어 보였습니다.

우이 싯퐁, 꼬츄가 달려 있기나 한 겨...! 구라 마을 사람들은 그 해 여름이 가기 전에 자신들에게도 다가올 재앙은 까마득히 모른 채 이런 한가한 농들을 뱉고 있었습니다. 동시에 마을사람들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구세주 같던 미르바가 사라져버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미르닭 말고 미르붱을 내 놓으라며 툭하면 하날님에게 음모론을 제기하고 대들면서 뒤송송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의 뒷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아종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의인화된 짐승들이 벌이는 이 놀랍고 신기한 희극은 굳이 글로 옮기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서 재미 만땅 웃음 철철이기 때문입니다.

(to be continued)



===東山高臥===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이야기 2

2
아, 구라 경연대회


(전편에서 계속)

닌텐도 게임을 하다보면 ‘통신’이란 게 있습니다. 2대 이상의 단말기가 송수신 가능한 근접 거리에 있으면 단독 단말기로는 맛볼 수 없는 +알파의 컨텐츠가 제공됩니다. 닌텐도사의 대단한 상술입니다(딱 1대뿐인 닌텐도에 꿀이라도 발린 양 서로 차지하려고 아이와 싸울 때마다 아이는 1대를 더 사서 통신도 하면 좋잖겠냐는 달달한 제안을 내놓았지만 전 결코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가끔 친구들과의 통신으로 외부마을과도 소통하곤 했습니다).

동물의 숲 여타 마을들처럼 구라 마을은 바다와 절벽으로 둘러싸인 닫힌 마을이며 마을에는 외부 세계로 나가는 유일한 관문이 있고 그곳은 문지기가 지키고 있습니다. 관문 밖 ‘외부 세계’(다른 마을)로 나가는 일은 오직 통신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구라 마을 사무소에는 ‘펠리’(펠리컨)라는 젊고 상냥하며 생각이 깊은 여직원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선 미르바가 이사 오기 전엔 유일하게 ‘펠리’만 통신을 통해 외부세계를 보았으나 미르바처럼 떠벌이지는 않았습니다. 생각이 깊은 펠리로선 조용한 마을에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편 말미에 언급된 ‘미르바’(부엉이)도 바로 이 통신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통신에 의해 탄생된 ‘미르바’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이곳 구라 마을로 넘어오기 전의 세상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구라 마을 사람(의인화된 동물-이하 사람, 동물을 같은 의미로 뒤섞어가며 사용하겠습니다)들은 부엉이가 들려주는 신밧드의 모험만큼이나 신비롭고 놀랍고 때론 충격적인 마을 밖 다른 세상(마을)의 신기한 이야기들에 넋을 잃을 지경이었습니다. 지난 해 봄에 마을에 살던 반데스(소)가 광우병에 걸려 시끌벅적 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조용하던 마을이 이처럼 왁자지껄했던 적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너굴(너구리)마트에서도 고옥이(고슴도치)네 옷가게에서도 마스터(비둘기)네 커피숍에서도 펠리와 펠리미(펠리칸)가 근무하는 마을 사무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 미르바가 전해주는 흥미진진한 바깥세상 얘깃거리로 떠들썩하였습니다.

모두가 미르바의 이야기에 넋을 잃을 즈음 단 한 사람, 마을 사무소 직원 펠리만은 늘 고개를 갸우뚱거리거나 눈을 감고 의미심장한 눈빛을 띄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촌장인 고북(거북이)은 ‘촌장 후계자 선발 최고 구라 경연대회’를 공고하였습니다. 최우수상품으로 일본 연어(잡기 힘든 물고기 아이템) 5마리와 왕관(동숲에서 가장 비싼 아이템) 1개가 내걸렸습니다. 대회 당일, 출전자는 모두 여섯이었고 아래는 출전자들의 면면입니다.

제1번 출전자.
드리미-개구리로 남성이며 생일은 7월8일, 수면 시간대는 01:30~08:00, 성격은 느긋뻔뻔하고 취미도 구라 특기도 구라일 정도로 미르바가 오기 전까지는 구라 마을 최고의 구라꾼.

제2번 출전자.
퍼머거-개미핥기로 남성이며 생일은 1월2일, 수면 시간대는 02:00~06:30, 성격은 변덕스럽고 다혈질이며 취미는 마을 할애비들 수염당기기, 마을에서는 드리미의 숨겨 논 자식이란 소문이 돌 정도로 드리미를 지 애비보다 더 받드는 구라 마을 신세대 구라꾼의 선두주자.

제3번 출전자.
달만이-펭귄으로 남성이며 생일은 4월6일, 수면 시간대는 04:30~10:00, 성격은 비릿음흉하고 취미는 끝말잇기로 끝말이 ‘펼’, ‘륀’, ‘푱’ 등으로 끝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한 번 시작한 구라를 끝내지 않는 조낸 지루한 구라꾼.

제4번 출전자.
비양카-늑대로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 하였으며 생일은 9월17일, 수면 시간대는 03:30~09:00, 성격은 조낸 거만하고 둊도 안 달린 것이 사이버 연애를 좋아하고 멋 부리기에 관심이 많은 반공주, 반왕자병 타입. 구라 마을 최고의 느끼구라의 1인자.

제5번 출전자.
먹고파-돼지로 남성이며 생일은 12월30일, 수면 시간대는 01:30~08:00, 성격은 느긋하고 온순하나 직장이 있는 기혼 여성을 스토커하는 뵨태 성향, 구라 마을에서는 특히 달만이를 자신의 멘토로 여기며 달만이에게서 배운 시리즈 구라가 주특기.

제6번 출전자.
미르바-부엉이로 앞서 소개했듯 통신을 통해 구라마을로 새로 전입해온 캐릭터. 수면 시간대는 따로 없을 정도로 잠이 없고 성격은 만만디이며 구라를 깔 때는 턱을 괴고 암기해둔 기억을 짜내는 듯 눈알을 굴리는 경향이 있으며 취미는 할배 놀이, 주특기는 검색과 각색.

드디어 마을 사무소 앞 광장에서 구라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회는 열렸고, 여섯 출전자들의 혼이 담긴 구라가 시전 되었습니다. 각 출전자의 구라 원고는 출전 번호순으로 아래 링크로서 대신합니다(심장질환이 있는 노약자들이나 임산부, 특히 논술 시험을 앞둔 대입 예비 수험생들이나 새 나라의 무궁화가 될 어린 초딩들은 절대 보시면 안됩니다. 정말 배울 것 없는 뻥구라일 뿐입니다). ()안 경고에도 불구하고 꼭 보셔야겠다는 분들은 아래 막심의 피아노 연주를 잠시 정지시켜 주실 것을 권합니다.

*제1번 드리미의 구라-파리의 굴렁쇠, 굴러!
http://blog.daum.net/ij1004choi/13314688

*제2번 퍼머거의 구라-끊어져랏, 얍!
http://kr.blog.yahoo.com/ezub17/MYBLOG/yblog.html?pc=3

*제3번 달만이의 구라-목숨을 건 숨바꼭질
http://www.youtube.com/watch?v=CLt2E0mOtiE

*제4번 비양카의 구라-스네이프,스네이프,덤블도어으~!
http://www.youtube.com/watch?v=Tx1XIm6q4r4

*제5번 먹고파의 구라-애니메이터vs구라러스
http://www.youtube.com/watch?v=0_fPV13lKm4

*제6번-미르바의 구라-어른 맞아? 꼬마 맞아?
http://kr.blog.yahoo.com/yhkang0525/200.html?p=1&pm=l&t=1&tc=129&tt=1247789604

(to be continued)

*구라든 연주든 역쉬 이렇게 '혼'이 담겨야 제맛이 우러납니다..^^



===東山高臥===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이야기(번외편)-그들이 생존하는 방식

번외편
그들이 생존하는 방식


이 글은 얼마 전 룰루비데 님이 쓰신 'Kramer 유형의 글 감별법'이라는 글의 연장선에서 아구라 밥님들의 깨몽에 박차를 가하는 목적으로 쓰는 글입니다. 아래 소개된 기준만 염두에 두어도 글을 통해 사기꾼을 감별할 수 있고 인터넷 사기 피해를 사전에 방어하여 가문의 후손들에게 '인터넷 사기 피해자의 후손들'이란 불명예스런 딱지를 물려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존 지식의 인용 빈도를 살펴보라

글을 보면 글쓴이의 얼굴이 보입니다. 글에는 글쓴이의 지문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글로써 사기꾼을 감별하는 방법은 글에 포함된 기존 지식의 인용 빈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포털 게시판이 학술 논문 발표장도 아닐진대 기존 지식의 인용이 쓸데없이 과다하다고 느껴지는 글은 한 번은 읽을지언정 두 번은 읽기가 싫어집니다. 대개 그런 류의 글들의 주인이 사기꾼일 확률은 50% 이상입니다. 최소한 그가 사기꾼의 범주에 있진 않더라도 구라꾼(떠벌이)일 확률은 70% 이상이고, 신뢰 못할 사람일 확률은 90% 이상입니다. 이것은 경험적 추론일 뿐이니 수치에 연연치 말고 그 정도로 확률이 높다는 의미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학업의 정도가 낮거나 사회적 경험이 미숙한 사람들일수록 이런 사기꾼이나 구라꾼들의 혓질에 걸려들고 농락당하기가 쉽습니다. 학업의 정도가 낮은 아자씨들, 사회적 경험이 미숙한 아줌씨들이 감성까지 풍부하다면 이런 분들이야말로 그들에겐 참으로 맛난 알밥입니다. 지금 아정뽀에서 벌어지는 마냥 웃기도 안타까운 코믹 극에서 밥 역할을 맡은 분들은 장담컨대 거의 그렇고 그런 아줌마, 아자씨들일 겁니다. 자신의 맘과 의지가 ‘선하고 양심적이고 정의롭다’고 해서 자신이 관여한 세상 모든 일이 반드시 사필귀정으로 흘러가진 않습니다. 인류가 소멸하기 전까지는 ‘악과 불의’와 ‘양심과 정의’가 동전의 양면처럼 대등하게 각축하는 이 세상에는 아줌마, 아자씨들의 선한 의지를 악용하려는 나쁜 늠들이 도처에 깔렸음을 항상 경계하셔야 합니다. 오늘 이 글은 그 경계의 한 방법으로서 ‘글로써 사기꾼을 감별하는 법’을 언급한 것이니 한번쯤 화두로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생존하는 수단과 방식

‘기존 지식을 과다하게 인용하는 것’은 꾼들이 아줌마, 아자씨들을 후려 먹는 아주 상투적인 글쓰기 수법입니다. 관계 대상들과 일면식도 없는 넷 세상에서 신뢰와 권위를 획득하는 가장 손쉬운 수법이 기존 지식의 권위를 빌린 현학적 글쓰기입니다. 잡다한 지식의 나열로 자신이 마치 선지식이라도 되는 양 허세를 부리노라면 실제 그 위력은 대단합니다. 아고라에서 충분히 목도해온 사례입니다. 서로를 글로서만 검증할 수밖에 없는 넷 세상에서는 말빨, 글빨 좋은 늠이 짱을 먹기 마련입니다. 짱을 옹립하는 건 좋습니다만 이곳에선 희한하게도 만날 썩어빠진 쭉정이만 골라냅니다. 그건 밥님들이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가려보는 기준을 정반대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 지식을 과다하게 인용할수록 유식하고 좋은 글이 되고 그러지 못하면 무식하고 별 볼일 없는 글로 치부해버리는 ‘지식노예근성’이 밥님들의 머릿속에 완연히 배어 있습니다. 사기꾼이란 남의 약점을 귀신같이 읽고 파고드는 재주가 특별나고 허풍과 과장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게 그들이 생존하는 수단이고 방식입니다. 사람을 후리는 못된 경험들이 고농도로 체질화 되어있는 음흉한 자들이기에 그들은 밥님들이 지닌 최대의 약점이 지식노예근성이란 걸 경험적으로 잘 알고 활용합니다.


기존 지식을 과다하게 인용하는 심리

기선 제압과 협박

이런 사기꾼들이 기존 지식을 과다하게 인용하는 심보는 무엇일까요. 밥님들은 게시판에 누군가가 짠하고 나타나서 보통사람들로서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현란한 전문용어들과 인용문, 기존지식의 창시자들을 주루룩 나열해 놓으면 ‘음마, 기 죽어’ 하며 자신의 무지를 탄식하고 저자세를 취하면서 남들은 어쩌나 싶어 이리 저리 눈알만 굴립니다. 그러다 남들이 할렐루야!라고 외치면 덩달아 믿슙니다!라고 외치며 부화뇌동합니다. 아마 십중오륙은 그럴 겁니다. 바로 그겁니다. 기선을 제압하고 상대를 주눅 들게 하는 것이 꾼들이 기존 지식을 과다하게 인용하는 글쓰기 방식을 채택하는 주된 목적입니다. 내가 이 만큼 박학다식하니까 함부로 까불지 말라!고 엄포 놓는 개수작인 거죠. 주장이란 자신의 생각을 알리는 것이지 남의 생각을 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시판을 이용하는 다수의 독자들이 알아먹지도 못하는 현학적인 주장이 필요하면 세미나를 개최할 일이지 이곳에서 날밤 깔 일 없습니다. 쉬운 걸 어렵게 말하는 사람보다는 어려운 걸 쉽게 말하는 사람이 제대로 된 식자입니다. 제발 자신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현학적 글에 대가리 팍팍 숙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좀 쉽게 써주시면 안될까요?’라고 정중하게 요구하십시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했던 사람들이 님의 솔직한 용기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도둑 심보

룰루비데 님 말마따나 이런 꾼들은 세 뼘이 넘는 장문을 싸지르더라도 그 속엔 정작 자신의 사색의 결과물들은 없이 기존 지식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놓고는 그게 자신의 주장임을 알립니다. 그런 수작은 기존 지식 창시자들의 권위를 빌어 호가호위하려는 얄팍한 심뽀임과 동시에 기존 지식의 창시자들과 자신을 동일시시키고 명인의 치열한 사색의 결과물들을 날로 먹으려는 도둑늠 심뽀에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 심뽀를 지닌 것만으로도 이들이 사기꾼일 가능성은 꽤 높다는 걸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는 거죠. 자신의 사색의 결과물로서의 자신의 주장은 없고 기존의 지식을 제 주장인 양 따다 붙이기만 하고선 ‘이 사람 말이 곧 내 말이고 이 사람과 나는 동급이다’라고 하면 밥님들이야 '어이구 성님!'하겠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흐이구, 그러세요!’라며 코웃음 칩니다. 사색이 깊고 기존의 지식을 자신의 지식으로 완벽하게 체득해낸 사람은 굳이 ‘누구누구 가라사대’를 외치지 않고 ‘내가 가라사대’라며 설을 풉니다. 그런 글을 대하면 글의 내용과 상관없이 최소한 글쓴이에게서 나쁜 기운을 느끼지는 않게 됩니다.

지적 허영심

용어 선택이나 기존 지식을 인용하는 정도를 보면 글쓴이의 연령대나 성향을 얼추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개 20대 후반 나이대의 대학원생 정도의 학력의 소유자들이 현학적 용어나 기존 지식의 인용을 가장 왕성하게 사용하는 층입니다. 지적 호기심이 한창 높고 자신이 습득한 지식을 복기해보고 싶은 욕구들이 마구마구 용솟음칠 때이거든요. 그런 걸 꼭 나쁜 모습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제대로 공부하고 잘만 숙성되면 다 제자리를 반듯하게 찾아갈 사람들이니까요. 그리고 정작 이들은 이런 곳에선 글쓰기를 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습니다. 즈네들끼리 모여 토론하고 학업하는 공간에서 글쓰기 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이런 포털 게시판에서 짱을 먹기 위해 기존 지식을 과다하게 인용하며 글쓰기를 하는 치들은 대개 불순한 목적을 지닌 구라꾼들이 많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적 허영심과 과시욕이란 바로 이런 치들의 그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히드라를 닮은 '비리마담 K'

시간 나시면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상기하면서 비리마담K(비즈링크, 리드미, 매이크파일, 담담당당, 크래이머)의 글들 중 아무 글이든 하나 골라서 다시 읽어 보세요. 기존 지식의 인용이 과연 얼마나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지. 놀랍게도 이들의 글쓰기는 내용은 제각각일지라도 글쓰기의 형식면에선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누구 가라사대’의 글쓰기 수법을 동원하고 있음을 쉽게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글을 읽고 나면 글쓴이의 주장은 도대체 뭔 말인지도 모르겠고 ‘누구 가라사대’라는 남의 주장만 장황하게 나열되어 도떼기시장을 구경한 듯 어지러움만 느낄 뿐입니다. 하여간 이들을 보면 히드라가 생각납니다.

메이크파일이나 크래이머 같이 그나마 젊은 치들은 지적 허영심이 한창 들끓을 연령대이고 싸가지가 부족해서 그렇다손 치더라도 담당이나 리드미, 비즈링 같이 낫살이나 쳐먹은 것들이 저러는 꼴은 정말이지 꼴불견입니다. 그 정도 나이면 남의 글과 명성을 인용한다는 게 사실 쪽팔린 나이거든요. 젊은 날에 주웠던 콩(지식들)을 장독(삶의 경험)속에서 잘 버무리고 숙성시켜 된장(사색의 결과물)을 만들어 자신만의 상표(자신의 어록)를 만들어낼 낫살에 여적지 누구 가라사대나 외치고 있으니 젊은이들한테 ‘으휴, 재섭는 뒷방 늙다리 새퀴들’이란 욕이나 얻어 쳐먹는 겁니다. 게시판이 무씬 늙다리들 사교댄스 지랄 마당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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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험하던 시절, 논투 때마다 ‘자본론 몇 페이지 몇 째 줄에 보면 누가 블라블라블라..했다’라는 식의 논법을 습관적으로 사용하던 한 친구가 생각납니다. 결국 이 친구, ‘사’짜가 되더군요. ㅎㅎ~, ‘사’기꾼 말고 변호‘사’ 되어서 잘 먹고 잘 삽니다. 이곳에서 가끔 그런 류의 사람들을 볼 때면 데자뷰인가 싶습니다. 모쪼록, 이 글이 ‘격’을 갖추고 ‘혼이 담긴 구라’를 배설하는 이진 세상의 사기꾼이나 구라꾼 아자씨들을 가려보는 ‘서늘한’ 눈매를 틔우는데 필요한 한 방울의 식염수 역할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두서없고 장황한 글을 맺습니다.


*배경곡은 아이노쿠사비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경방의 사기꾼 색휘들이란, 한 번 틀어박히면 부숴버리기 전까지는 빼낼 수도 없는 쐐기와도 같이 질기디 질긴 늠들이란 생각이 문득 들어서 이 곡을 배경곡으로 선정해 봤습니다.



===東山高臥===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이야기 1


1
동물의 숲


‘눈높이 놀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눈높이 공부처럼 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놀이를 눈높이 놀이라 합니다. 눈을 맞추라는 얘기가 아니고 아이의 정신 연령 수준에 맞춰서 놀라는 얘기입니다. 경험들 하셨겠지만 초딩 저학년 이하 아이들과 놀아주는 거 그게 생각보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제대로 하려면 ‘놀아준다’라는 마음가짐부터 고쳐야 합니다. ‘아이와 놀아준다’가 아니고 ‘내가 논다’는 자세로 임해야 합니다. 놀이공원 말고 집 안에서 아이와 1시간 이상을 웃고 떠들며 놀 수 있는 아빠가 있다면 그 아빠의 내공은 꽤 상당한 수준입니다. 엄마들에게야 보통 1시간 정도면 워밍업 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간혹 아구라질에 빠져 아이와 채 10분도 못 노는 엄마들도 있긴 합니다만...

앞서도 언급했지만 아이랑 제대로 놀려면,
아이의 정신연령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셔야 합니다. 스스로 그 유치한 놀이를 즐길 수 있을 때 아이는 비로소 엄마, 아빠를 진정한 놀이 대상으로 받아들입니다. 가위바위보나 묵찌빠로 롤리팝 따먹기 할 때 아이한테 져주고픈 맘이 사라져야 비로소 놀 자세를 갖추게 된 겁니다. 진짜 잘 노는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과 놀다가 깔치 뜯고 싸우기까지 합니다. 아이와 다투다가 찌질이처럼 아빠한테 일러바치는 엄마도 있습니다. 놀 때는 부모 자식 간이라고 은근슬쩍 봐주는 거? 그런 거 얄짤 없습니다. 형제간이나 자매간에 놀다 보면 거의 막판에는 쌈판으로 끝을 맺습니다. 그런 것처럼 막판에는 지지고 볶고 눈물을 짜야 그 놀이는 비로소 혼이 담긴 놀이라 할 것입니다. 혼, 혼? 그렇습니다, 무엇을 하든 혼, 요게 뽀인트입니다. 혼이 담긴 구라처럼 말입니다.

저도 아이들과 제법 놀아봤습니다.
명절날 친인척들 모인 곳에 가면 사탕도 없는데 이상하게 꼬마들은 전부 내게 들러붙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전 내 아이랑 놀면서도 참 많이 울렸습니다. 전 아이와 겜을 할 때면 김수로의 포스를 장착합니다. 딱지치기부터 팽이 들이박기, 카드놀이, 할리갈리, 젠가, 화투, 등등 뭘 하든지 절대 안 봐주거든요. 아이가 블록놀이에 시들해질 즈음해서 아이와 한동안 닌텐도로 놀았습니다. 닌텐도 이게 의외로 재밋습니다. 여러 명이 즐겨도 좋을 만큼 게임의 콘텐츠가 풍부합니다. 닌텐도를 오래 소유하기 위해 아이와 많이도 싸웠습니다. 아이가 속으로 그랬을 겁니다. 어른 맞아? 아구라에도 저처럼 어른 같잖은 어른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전 닌텐도 게임 중에서 특히 ‘동물의 숲’을 참 좋아라합니다.
여름이면 과일 따다 팔고, 곤충 잡아 팔고, 삽질로 땅 파서 화석 주워 팔고, 사시사철 물고기 잡아 팔아서 저축한 돈으로 조그맣던 단칸집을 대궐 만하게 쑥쑥 키워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가끔 무(주식 같은 겁니다)를 사다가 무가가 고점에 이르렀을 때 팔아치워 투자 수익을 올리기도 하고 기분 좋을 땐 한 턱 크게 기부도 합니다. 물론, 아이에게는 정기적인 기부를 할 것을 권고합니다. 아무튼 이 닌텐도 놀이는 굳이 정신연령을 낮추지 않더라도 딱 제 수준의 노리개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 컴 게임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겜 둉신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다른 어른들에겐 유치해 보일만한 닌텐도 게임이 한동안 제게는 너무도 신기하고 재밋었습니다. 올해 한 살 더 먹고 나서야 아이도 저도 닌텐도가 어느 구석에 쳐박혀 있는지 찾을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아구라의 어른들은 닌텐도보다 더 유치한 음모 게임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아무튼 제가 좋아하는 ‘동물의 숲’에는,
의인화된 참 많은 동물 캐릭터들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한 마을에는 주인공인 자신의 캐릭터와 마을에 상주하는 기본 캐릭터 6~10마리를 포함 대략 14~8마리 정도의 동물이 모여서 살고 있습니다. 기존의 동물 캐릭터가 이사를 가면 새 동물 캐릭터가 이사를 옵니다(박물관, 박물관내 커피숍, 옷가게, 마트, 마을 사무소의 직원들이나 특별한 경우에 가끔씩 나타나는 캐릭터처럼 마을이 생길 때부터 상주하면서 이사를 가지 않는 고정 캐릭터들도 있습니다). 아구라에도 참 많은 캐릭터들이 오고 갑니다.

지난해 여름 ‘구라 마을’이라 불리는
동물의 숲에 누군가 이사를 왔습니다. ‘미르바’라 불리는 성격이 터프하고 불평 많고 말투가 거친 늙은 부엉이였으나 차림새만큼은 한 자나 늘어진 백발의 수염에다 하얀 도포자락 휘날리는 산신령 같이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조용하던 마을은 밤낮없이 울어대는 이 늙은 부엉이 소리로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시끌벅적해졌습니다.

(to be continued)

(*이미 오래전부터 알밥들이 예고해온 대로 아정뽀발 사기꾼들의 유치찬란뽕짝부루스코미디는 왼쪽 눈으로 즐기맨서 오른쪽 눈은 잠시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쪽으로 기수를 돌려보려 합니다. 글을 이어가기 전에 저는 올초 박대성이 언론에 노출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박대성이 미네르바다’는 판단에서 벗어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미리 밝혀두는 바입니다.)



===東山高臥===

조만간 비밀병기 투입 예정

대똥 후보까지 지내시고 차기 똥령 유력 후보를 배우자로 꼽고 계실 정도의 ‘격’ 을 갖추시고, 미터급의 제자리뜨기가 아닌 광년급의 부양신공으로 안드로메다와 지구별을 넘나드시며, 눈빛 하나로 강남의 재벌 사모들을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현존하는 대한 사기계의 지존 허‘영’경 구라 대마왕에게 전수 받은 그 영험한 능력들을 대한민국 최대의 구라소굴 아~구라에서 시전하고 계신 허영경의 5대 수석 제자들이신 bizlink, readme, Makefile, damdang, Kramer, 일명 ‘비리마담K’ 5인방! 만쉐이, 만쉐이, 만만쉐이~~~

봄날엔 진달래 꽃길 깔고 여름날엔 아카시아 향 뿌려대며 이들의 ‘선한’ 구라를 찬양찬양하던 여신도 니마들, 그리고 정신을 똥통 구더기와 흘레 부치느라 대가리 텅 빈 남신도 니마들, 지금 이 글 읽고 계신가염?
둉신 연구 전문가 ‘예끼’란 아이디만 보고 걍 패슈하시는 건 아니시것죠?
밥만 할 줄 아는 수준 낮은 부엌떼기 아짐들과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다른 조국과 민족의 장래까지 불철주야 고민하시는 ’격‘ 높으신 민주진보시민 아짐들, 그간 아구라 요분질로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
그래도 얻은 건 있으시다고요?
그럼요, 당연히 얻은 건 있으실 테죠.
비리마담K의 현란한 혓질이 안겨준 오리가슴!
몽롱하시죠?
깨어나기가 싫으시죠?
둊 같지도 않은 신랑, 한 시간 토론 상대도 못 되는 못난이 신랑한테서는 결코 얻을 수 없던 혓질의 오리가슴, 그 얼마 만에 맛보는 오리가슴인데 깨어나고 싶으실까염.
그 맘 압니다.
제 맘이 그 맘이라니깐요.
제가 둊밥 님을 찬양찬양하는 거 보셨자나요.
우리 신랑 할 줄 아는 거라곤 일과 술과 노래뿐이고 조국과 민족의 장래에 대해선 모기 오줌만큼의 관심도 없걸랑요. 시박, 수준 떨어져스리!
아구라에만 오면 꿈에도 그리던 환상의 사이버 신랑감들, 머찌고 머찐 님아들이 을매나 많은지 보고만 있어도 절로 흥분되거등요. 다들 그렇죠?
아~내 사랑 ’비리마담K‘!
낙엽에라도 써 내린 듯 그 황홀한 글들에 댓글이라도 올릴라치면 그 님들의 건강이 내 신랑 건강보다 더 걱정스러웁고, 미친!
조국과 민족, 세계평화를 걱정하면서 온갖 뻘소리로 주뎅이만 굴리는 사기꾼 색휘들보다 오직 가족들 걱정으로 손발에 피땀 묻히는 니 신랑이 허얼쒼 머떠러진 신랑인 줄 알어라, 이거뜰아!

내 황빠들을 수년 경험하면서 니들은 절대 깨어날 수 없다는 걸 알어.
왜? 둉신짓의 마지막 보루인 인지부조화라는 철벽이 니들 등짝을 든든하게 바쳐 주거등.
JMS에게 겁탈 당한 여인이 가장 충직한 사도가 되어 제2 제3의 겁탈녀들을 양산하는 앞잡이가 되는 법이야.
혼자만 둉신 되긴 싫다 이거지. 요게 사람 심뽀야,
’대한민국 다 같이 죽자‘라는 아구라의 심뽀도 같은 맥락이지.
무능하고 대가리 모자란 거뜰의 놀보 심뽀!
죽었다 깨나도 ’둉신‘ 소리는 듣기 싫지?
지가 둉신이란 걸 스스로도 알지만 막상 남이 지 더러 둉신이라 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자너, 안 그래?
우짜등가 지가 세상에서 젤 잘 났고 똑똑하다는 자뻑만이 삶을 지탱하는 유일한 힘이자누.
그렇지, 가진 거라곤 쥐뿔뿐이니 고런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없음 무슨 낙으로 한 많은 세상을 살아갈까.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얼키설키 뒤엉킨 현실들을 인정하는 기 죽기보다 싫제?
모두 맹바기와 알밥들의 장난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제?
그래, 아줌마 똥, 아자씨 둊이 젤 굵어.
평생 사기꾼들 바람잡는 깃대나 잡고 살어.
부디 바라기는 여름 날 그 뜨거웠던 땡볕 아래서 쌩노가다 뛰며 신랑이 벌어다준 막걸리 국물 밴 지폐들을 갖다 바친 걸로도 모지라서 몸빵 보시나 하지 말았음 좋겠어.
그러면 땡볕 아래서 구슬 땀 흘리는 신랑들이 너무너무 불쌍하자나.
아~시박 눈물이 다 날라카네.
다들 똑똑해서 뉴스들은 자주 볼 끼고 뉴스 봐서 잘들 알겠지만 사기꾼들의 마지막 담보가 바로 아짐들의 몸빵과 몰카라는 건 명심, 또 명심햐!
몸빵 보시를 생활의 낙과 업으로 삼는 년들은 니 몸 니 맘대로 해!!
사기꾼 비리마담K, 니들도 조심혀라!
뛰는 늠 위에 나는 년 있다.
사기꾼 등쳐먹는 ’격‘ 있는 년들 조심하란 말야.
어디 사기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인감.
암튼 끼리끼리 잘들 혀봐, 누가 챔프 먹나.
역쉬 아구라는 역겨우면서도 재미가 있어 조아조아.
구라계의 정보에 따르면 허영경 구라 대마왕께서 조만간 아구라의 혼돈을 일거에 평정해버릴 비밀병기를 투입할 꺼라든데 기대된다, 어떤 늠일지...ㅋ~

(추가-둉신짓의 말로!)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3&fid=547&articleid=2009090309210440070

===東山高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