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놈들 서울에서 살아남기

소싯적에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갔습니다.

어디라고 말은 몬하지만 명색이 도시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나는 서울 사람들마다 부모님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묻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 사람들 보면 그게 그렇게도 궁금합니까?
무슨 농사를 짓다 왔는지가...ㅠㅠ
생긴 것만 보면 모릅니까? 도시産인지 시골産인지.
전 그때만 해도 지들보다 허얼씬 더 하얗고 뽀얀 도시풍의 피부를 지녔더랬습니다.
지금이야 땡볕에 낚시질하느라 칙칙하지만서도.

참 억울하고 서글펐습니다.
전 정말 ‘ㄱ 놓고 낫도 모르는’ 순수 말짱 순도 100%의 도시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절 농부의 자식으로만 취급하더군요.
낫으로 풀을 베어 보았냐는 둥, 소몰이를 해보았냐는 둥
정말이지 그때까진 태어나서 구경도 못해본 것들이었습니다.

저보다 2~3년 쯤 먼저 서울물 먹은 한 행님에게 하소연했습니다.
이거 뭐 대책 좀 없겠냐고.
행님은 눈을 지그시 깔고 그 맘 다 안다는 듯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방법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면서 한 마디 툭 던집니다.

‘니가 서울 사람 되라!’

그러면서 행님은 제게 손때 덕지덕지한
노트 한권을 건네주었습니다.
사제 간에 대대로 물려지는 무공비급처럼 보였습니다.
그 순간의 행님의 위용은 동방불패 이상으로 보였습니다.

“무조건 애아라!”(‘애아라’는 ‘외워라’의 상도 버전입니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한 마디를 더 얹었습니다.

“서울말은 인토네이숀이 생명이다.
그거는 서울말 원어민한테 따로 배아라!”

제 손에 건네진 노트의 겉장에는,
'Seoulish Alive'라고 떠억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말로 읽으면 ‘서울리쉬 얼라이브’ 해석하면 ‘생생 서울말’ 정도 되겠죠.
슬휘 챕터로 이루어졌더군요.

제1장 : 술집에서
제2장 : 가게에서
제3장 : 당구장에서

위의 세 장소는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한 촌것들이
서울 생활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장소들입니다.
노트에는 저 세 곳에서 촌티를 내지 않기 위해
반드시 익혀두어야 할 ‘생생 서울말’들이 수록되어 있었습니다.

술집에서===>아주머니, 소주 1병만 더 주세요~
가게에서===>아주머니, 이거 얼마예요?
당구장에서==>아주머니, 났어요~~

이것을 상도 버전으로 하면,

술집에서===>아지매, 소주 한 병만 더 주이소~
가게에서===>이거 얼만교?
당구장에서===>아지매, 났습니대이! 로 번역될 수 있는 말들입니다.

근데 저 딱 세 줄 서울말이 왜 그리도 에러븐지요.
패떳의 시연아, 해진아! 니들 서울말 어느 학원에서 배았노? 감쪽 같더라.
우리 알라 이 담에 설로 진출할 때 등록하구로 좀 갈차 도고!

정권이 수차례 바뀌는 세월이 지났어도
전 결국 저 세 줄짜리 노트 한 권을 떼질 못했습니다.
과연 아무나 넘볼 수 없는 무공비급이었습니다.
‘생생 서울말’을 잘못 터득하여 주화입마에 들면
고향에서는 싸대기 맞고 설에서도 이상한 늠 취급 받기 딱 좋습니다.
주화입마의 정도가 심하면 자칫 간첩 신고 들어갑니다.

보통,
서울에선 지방것들은 촌놈으로 통하지만
지방에선 서울것들은 얌체(깍쟁이)로 통합니다.
전 개인적으로 얌체 같은 서울 사람들보다는
상냥한 서울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 편입니다.
하숙집 아줌마들도 좋았고
동네 술집, 슈퍼, 빵집 등등 외상들 참 잘 해주셨습니다.
어떤 하숙집 아줌마는 제가 떠날 때 막 구슬피 울었습니다...ㅠㅠ
오랜 세월 지나고 보니 참 그리운 아줌마들입니다.

저 애우기도 에러분 서울말 세 줄을 전 기어코 애았지만
막상 중원에서 단 한 번도 시전하질 못했습니다.
쪽 팔린다 아이가!
그러던 어느 날 떡볶기 무러 갔다가 사투리를 쓰는 제게
풍채 좋던 서울 아줌마가 깔깔 대시더니
뻘건 덴뿌라와 떢볶기를 몇 개를 더 얹어 주시는 겁니다.
그 순간, 장님이 눈을 뜨듯 앞이 탁 트이는 깨달음이 오더군요.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전 서울에서 낯간지런 서울말보다는 사투리로 생존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란 걸 경험적으로 알아냈씁니다.

어설픈 생생 서울말로 위장하는 것보다
욱끼는 사투리가 깍쟁이 서울에서 살아남는
가장 효율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실제보다 약간 더 과장해서 찐하게 사투리 들어가면,
서울 언냐들 배꼽 잡습니다.
술집에선 사투리의 구사 능력에 따라 소주 일병 정도는 스비슈로 걍 나옵니다.
가게에선 물건 값 최대 오백 원 정도는 걍 깎아 줍니다.
당구장에선 외상 당구도 가능했습니다.

그렇듯,
사투리는 주머니가 허전한 지방 촌놈들의 생존수단으로
활용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때 배운 서울말들을 요즘 무척 요긴하게 씁니다.
호통글을 쓸 때 그렇습니다.
호통글을 쓸 때는 느낌표 보다는 물음표를 많이 사용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문맥이 연하게 흐르면서 깔끔한 뒷맛을 남깁니다.
물음표로 호통치기, 요게 호통글을 맛깔나게 하는 비법입니다.

(예문)

‘너, 바보니?’
‘와이쏘 씨리어스하니?’
‘앗녕 미생물들아 왜 그리 눈치만 보니?’

전 예전에 생생 서울말 배울 때 물음표를 써야할 경우엔
대개 서울지역 남성들은 ~냐?로 끝내고
여성들은 ~니?로 끝낸다는 규칙을 탐지했습니다.
간혹 여성스런 남성들이 ~니?를 사용하는 것도 염탐하였습니다.
한 때는 이러한 사실들이 국가기밀로 분류되어
국외로 유출할 경우 간첩으로 처벌 될 때도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간에,
말로 하라면 때리직이삔대도 낯 간지러붜서 쓸 수 없을 것 같던 생생 서울말을
글쓰기에선 요즘 들어 이렇게 자연스럽게 구사할 수 있다는 게
저 스스로도 신기하고 놀랍습니다.
그게 다 왕년에 ‘Seoulish Alive’를 수련했던 덕이라 생각합니다.

이상으로,
오늘 구라(구라율20%미만)를 마무리하면서
지리멸렬스러운 오늘 글의 뽀인트를 요약해보겠습니다.

첫째, 서울 간 촌것들이 먹고살기에는 어설프게 배운 설말보다 고향산천어가 낫다!
둘째, 아구라에서 호통글을 쓸 때는 투박시런 고향산천어보단 설말이 낫다!

이상, 잠깐 쉬어가자는 의미와 더불어
상쾌, 유쾌, 통쾌한 하루를 전도하면서
명랑사회건설을 지향하는 예끼의 한가로운 구라질을 끝냅니다.
오후엔 ‘미네르바와 미네르박 이야기 4’로 찾아 뵙겠습니다.

나 이만 감미다 안녕히 계세여, 뱌뱌~~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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