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두를 사이버에 고이 묻으며..

자두를 사이버에 고이 묻으며




LENKA의 THE SHOW가 이른 아침 쪽잠을 깨운다.
수신벨 소리가 내 폰이건만 짝지가 받는다.
새벽 으스름쯤에야 집에 들어 막 쪽잠에 빠진 날 배려한 짝지의 처사였다.
받으면서 담담하던 목소리가 이내 메이는 걸 보니 올 것이 왔나 보다.

이름:자두
나이:74일

자두는 앵두네 식구의 늦둥이다.
앵두네 집에 유성처럼 왔다가 지금은 겨울새벽별이 되었다.

책을 보다가 불현듯 “아빠, 자두 생각나”라며
습하게 말꼬리를 맺는 아이의 말에 순간 모니터 화면이 뿌옇게 일렁인다.
자두와 동행했던 보름여 간의 짧디 짧았던 시간들이
서리 내린 자동차의 전방 유리에 스쳐 지나는 풍경들만 같다.

오래전, 아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쯤
털 많은 짐승은 집에 상서로운 기운을 북돋운다는 어무이의 권유에 따라
털복숭이 시츄 ‘복돌이’를 입양했었다.
그 기를 입었음인지 5년여 동안 아이를 잉태치 못하던 앵두네 부부는 아이를 얻었고
복돌이는 뒷전으로 밀렸다.
행여 털 많은 짐승이 아이에게 해로울새라 취한 불가피한(배은망덕한?) 조처였다.
옥탑방 신세로 전락한 복돌이는 여느 애완견들처럼 인간들의 따스한 체온보다는
도심의 열린 하늘 아래서 그저 끼니를 굶지 않는 걸로 만족해야하는
찬밥 신세가 되었고 그러기를 팔여 년,
끝내 낯선 타인의 손에 이끌려 앵두네와 이별을 고해야만 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서,
그런 생이별이 싫어서,
복돌이를 제대로 간수치 못했던 전과를 기억하기 싫어서,
개 한 마리 사달라던 아이의 5년 소원을 갖은 이유를 둘러대며 마다했었다.

지난 해 크리스마스, 아이는 실로 5년여만의 소원을 이뤘다.
앵두네가 이견 없이 첫눈에 반했던 말티즈 암컷,
자두는 가게에서 젤로 귀엽고 예쁜 강쥐였다.

이미 자두가 오기 한 달여 전부터
크리스마스 날 산타가 데려올 새 식구를 맞기 위해
앵두네는 부산을 떨었다.
강쥐 집이며, 울타리, 방석, 옷, 샴푸, 장난감 등등
아이가 태어날 때 한 살림 장만하던 심정으로
새로 들일 식구를 위해 아낌없는 선심을 베풀었다.
안방과 거실엔 자두가 채 입어보지도 못한 옷가지며 사용해볼 겨를도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용품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그대로다.
주인 잃은 휑한 그 모습들에 다시 눈시울이 뜨겁다.

강쥐 입양을 위해 첨 애견샵에 들렀을 때
막 배송되어 온 듯 박스 속 무리들 중에서도 별처럼 빛나던 자두!
자두와 앵두네는 그렇게 서로 다른 길로 와서 운명적으로 조우하여 같은 길로 왔다.
자두로선 맞닥뜨리지 말았어야 할 얄궂은 운명이었을까.
지금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사탕 뺏긴 아이처럼 서럽다.

강쥐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집에 든 지 단 하루 만에 깜찍하고 활달한 애살로
앵두네 가족의 넋을 빼버리던 자두가
앵두네 집에 온 지 이틀 쯤 지나자 갑작스레 설사 증세를 보였다.
급식에 문제라도 있나 싶어 지식in을 뒤적이고 애견샵에 문의해가며
이리저리 심혈을 기울여도 증세가 쉬 가라앉지 않는다.
설사 증세가 심할 땐 한 시간에 대 여섯 번 정도는 했지 싶다.
설사 증세를 보인 지 이틀 정도 지나면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콧물 기침과 가래까지 끓는 감기 증세까지 보인다.
일주일 남짓 설사와 감기로 밤잠을 설치는 자두와 함께
앵두 부부는 교대해가면서 밤을 낮처럼 밝혔다.

결국, 애견샵에 재통보하고 동물병원을 찾기로 했다.
좀 더 일찍 손을 쓸 걸 싶고 지나고 보니 모든 게 후회스럽다.
애견샵에서 3일 정도 머물렀던 자두는 하루 만에 설사는 완치되었으나
감기증세는 여전히 가볍지 않은 상태여서
애견샵에서 자두를 데려오던 마지막 날엔 동물병원에 들러
감기 치료를 하고 처방약을 받았다.

3일만에 앵두네와 다시 조우한 자두는
설사로 밤잠을 설치던 고통은 가신듯했으나 심해지는 콧물과 기침, 가래 증세로
사흘 건너 한 번 정도의 통원치료와 함께 일주일 남짓 동안 감기약을 달고 살았다.
코가 막혀 호흡이 어려울까봐 유아용 콧물 흡입기까지 구입해서
짝지와 교대로 수시로 콧물 뽑아주는 일은 야간의 주행사가 되었다.
사람 품을 워낙에 좋아하는 녀석을 따로 재우기가 짠해서 밤마다 품에 들이고
행여라도 압사가 걱정되어 제 녀석은 자더라도
앵두 부부는 허드레잠으로 지새는 밤이 설사 때부터 벌써 보름 남짓 지속되었다.
그래도 부부는 불평보단 걱정이 앞섰고 기꺼이 자두의 부모된 심정으로 살폈다.
비록 병중이긴 했지만 녀석은 보름 남짓의 짧디 짧은 시간동안 울집 최고의 재롱둥이였고
이 겨울 앵두네 집에 사랑과 활기를 태풍처럼 몰고 온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이었다.

병원 진단에서도 큰 위험 경고는 없는데다
먹성 좋은 걸로 보아 큰 탈은 없을 거라고 서로 위안하면서
잠을 설치는 자두와 함께 불면의 밤을 보내기를 다시 1주일 남짓,
어제 저녁 시간은 예와 달리 별스런 기운이 감지되었다.
설사와 콧물 기침 가래로 힘겨워 하면서도 먹성만큼은 열 시츄 안 부럽던
그간의 모습에 비해 다소 낯선 모습을 보였다.
이름을 부르면 밥 주는 줄 알고 사정없이 달려 오던 예의 모습은 오간데 없고
밥을 코앞에 들이대고서야 허겁지겁 먹긴 하는데 영 기운이 없어 뵌다.
밥을 먹고 배는 빵빵한대도 기운이 없어서인지 하루가 넘도록 변을 보지도 못했다.
투약을 계속하는데도 상태는 호전되질 않고 며칠 전의 상태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부부는 심상찮은 기운을 느끼고 밤을 새워 경계에 임하기로 결정했다.

아니나 다를까.
새벽 3시를 넘길 즈음 품속에 안겨서는
자는 둥 마는 둥 힘없이 눈까풀을 늘어뜨리고 있던 자두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발작 증세를 보인다.
눈에 초점을 잃고 꺼억꺼억거리며 쉰 하품을 거세게 내뿜더니
혓바닥이 창백해지면서 입에 거품이 오른다.
혼비백산한 앵두부부가 황급히 콧물 흡입기로 콧물을 빨고 나서
가뿌게 숨을 몰아쉬는 자두의 입을 벌리고 이십여 차례
입으로 바람을 불어넣는 인공호흡 형식의 응급 처방을 하니
가까스로 입을 닫으며 진정이 된다.

황급히 인터넷을 열고 응급실을 운영하는 동물 병원을 찾다가 실패하고
실례를 무릅쓰고 자두의 주치 수의사에게 새벽 전화로 잠을 깨워
상황을 전하고 긴급 이송할 병원을 소개받았다.
그 사이에도 자두는 또 한번의 발작을 보였고 인공호흡으로 안정을 시켰다.
새벽 3시30분경, 부랴부랴 자두를 안고
응급실을 운영하는 동물종합병원으로 이동을 했다.
앵두의 품에 안긴 자두는 택시 안에서 또 한 번의 발작을 일으켰고
예의 방식으로 진정을 시키고서 응급실에 도착, 인큐베이터에 들여졌다.
여러 가지 검사 후 입원키로 결정하고 인큐베이터에서 링거를 맞히는데
호흡이 힘든지 입을 연신 학학거리는 자두를 두고 안도 반 걱정 반
떼기 힘든 발걸음을 무겁게 돌려 귀가했더니 어느새 5시에 임박한 새벽이다.
사투를 치르는 자두와 앵두부부가 두 시간 남짓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보내고서
죽을 고비는 넘겼겠지라면서 보름 넘게 설쳐온 또 한 밤을
그렇게 안도하며 늦은 새벽 쪽잠을 청한 그 순간에 아뿔싸,
자두의 사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던 것을!
자두야,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네가 숨쉬기조차 힘든 그 순간에 미련한 부부는
평생 자고 또 잘 수 있는 잠의 유혹을 견뎌내지 못하고 잠시나마 널 잊었구나.

그랬다. 우리가 잠든 두어 시간 동안 자두는 사투에 사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침 7시를 약간 넘긴 시간에 울린 LENKA의 THE SHOW는
자두를 거두는 진혼곡이었던 것을.
안심도 잠시 졸지에 병원 응급실로부터 자두의 죽음을 통보받고서
앵두네는 하염없이 울었다.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엄마와 아빠가 울었고
엄마가 다시 흐느끼는 모습에 아빠와 아이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길 없다.

달콤한 2시간의 늦은 새벽잠을 청한 시간에 자두는, 우리 자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왜 자기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냐면서
못난 주인 앵두네를 한없이 원망하고 있진 않았을까.
이불에 오줌을 지린 것을 보고 나무라던 일마저 후회스럽고 그 좋아하던 밥이라도
실컷 먹여주지 못한 것도 후회스럽다.
나쁜 결과의 끝에서 돌아보는 지난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 후회스럽고 고통스럽다.
‘자두가 액을 잘 견뎌내고 나면 더욱 똘망해질거라’던
지인의 고마운 위로도 받았으니 자두가 잘해낼 거라 믿었는데.
이 아픔이 또 얼마나 갈까...

이런 황망한 이별과 아픔이 싫어 복돌이를 그렇게 보내고서
다시는 동물들과의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 했었는데...
아픈 만큼 성숙해질 거라는 세간의 위로를 애써 되뇌어보면서
훌쩍이는 아이를 힐끔힐끔 바라본다.
이 아픔을 이 슬픔을 잘 견뎌내고 좋은 경험으로 잘 승화시켜 내거라 아가야...
엄마도 아빠도 아픈 만큼 잘 견뎌내고 성숙해지리라.
하늘에서 자신을 불사르며 땅에 떨어진 작은 별똥 한 조각처럼
채 600g도 못되는 자두는 그렇게 앵두네 집에 홀연히 왔다가 겨울하늘 새벽별이 되었다.

사랑하는 자두야,
새벽별처럼 초롱초롱하던 너의 눈망울만을 가슴에 아로새겨 놓고 싶은 이기심으로
우리는 비겁하게도 차마 너의 늘어진 모습을,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볼 용기조차 없구나.
자두가 앵두네 집에 남기고 간 사랑과 활기를 기억하면서
언제까지고 언제까지나 널 잊지 않으마.
고맙다 자두야, 그리고 미안하다. 널 끝까지 지켜주질 못해서...

앵두네 가족이 자두의 하늘가는 길에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우리 고운 자두를 사이버 글 무덤에 묘비를 세워 고이고이 묻는다.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뻤던 앵두네 재롱둥이,
자두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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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의 묘비 : 2009년 11월 3일에 태어나 2009년 12월28일에 유성처럼 앵두네로 와서 17일 동안 앵두네 가족의 가슴속에 꺼지지 않을 겨울새벽별이 되어 하늘로 간 자두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東山高臥===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인자의 천형

작성자:루울
작성일:2010.01.03



권씨는 2만장의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 글쓰기를 중단하는 것은 뽕쟁이가 뽕을 끊는 것과 다름 없으며, 당장의 암울한 현실을 날것으로 감내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의 기록벽을 보면 눈치챌 수 있겠지만, 진실을 구석에 처박고 자신까지 속여왔던 권씨는 내면의 균열과 정신적인 불안을 강박적인 글쓰기로 틀어막을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틀어막아도 비집고 나오는 불안과 초조함은 관찰자의 눈을 속이지 못한다.


나를 포함한 몇 사람들은 추리를 하며 실수를 했음을 인정했다. 그들과 광신도들이 보여 준 행각은 현상이나 사건이라기보다는 '증상'에 가까웠다는 것을 뒤늦게야 파악했기 때문이다. '증상'을 사건으로 간주하고 분석했으니 의문점이 풀릴 리가 없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진실앞에 고개 숙이는 자들이었다면. 증상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사건을 다루고자 했던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은 논박을 원천 차단한 채 강박적으로 글을 쓰며 자신을 낭떠러지까지 몰고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미 수차례 살펴본 바와 같이, 권씨가 살아온 발자취는 그가 죽을 때까지 글쓰기를 멈출 수 없을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의 기록들은 수많은 변명들의 포트폴리오였으니까. 나는 그가 앞으로도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고, 그것을 변명하며 자신이 만든 수많은 가상의 괴물과 적들의 시달림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예언한다.


이진법의 변명이 십진법의 그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을거라는 건 그 자신이 더 잘 알 것이다. 그가 한 자 한 자 비장하게 눌러쓰는 격문이 권씨 자신의 목을 졸라 죽게 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는 것도. 그런 면에서 글쓰기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확실한 벌이다. 하면 할수록 자신의 목을 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것. 그게 진실을 똥자루에 처박아버리고 자신도 속인 자의 천형이다.


written by '루울'
(이 글의 저작권은 '루울'님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