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 - 내 생에 가장 재미없었던 영화


 
어둠 속 두리번거리며
발광하는 C열16, 17 불빛을
찾던 그 순간까지는
기대도 있었다
 
일베가 어쨌다나
노빠가 어쨌다나
개봉도 전에
영화는 이미 세상 밖에 있었기에
 
지울 수 없는 기억
그럼에도 지우고 싶은 기억들
 
변호인

















객석을 나서는 발걸음
 
모두들 먹먹하다는데
울화가 치민다는데
눈꺼풀이 습해졌다는데
 
내 탓에
두 번 보는
옆구리가 묻는다
어떻냐고
 
하~
그냥 그래
그저 그래
 
아무런
분노도 슬픔도 감동도 없다
그저 덤덤할 뿐였다
너무도 재미없어서
 
진짜사나이
김형근과 장혁의 이별 장면에도
함께 울던 나인데
아직 눈물이 마른 것도 아닌데
 
거실에 똥 누고 달아나는
강아지 놈에게 빽해대는 나
아직 분노도 남아 있는데
 
그랬다
내 거울속 영화였다
만 번도 백만 번도 더
거울 속에서 보았던 영화
한 번 더 본들
새삼스러울 것도
짠할 것도
전율이 오를 것도 없는 그런
오늘도 난 거울 속에서
몇 번이고 변호인을
보고 또 보았다
 
어머니의 모습도, 고무신도,
너덜너덜하던 국방색 군복도,
사명감에 이글거리던 형사도,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파르르 떨던 ‘빨갱이’도,
욕조도, 테이블도,
최루탄, 도로, 국밥집,
변호사, 검사, 판사, 
법정, 짜고치는 고스톱판과도 같은
 
장면 장면이 너무도
생생해서
아니 식상해서
하나도 재미없었다
눈물 한 방울도 없었다
분노게이지에는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난
삼십여년 동안
보고 또 보아온 거울 속
변호인을 2014년 겨울 어느 날
스크린에서 또 본다
 
지울 수 없는 기억
그럼에도 지우고 싶은 기억들
 
변호인 어땠냐고?
 
백만 번도 더 본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느낌였다
짝지야...
 



'남조선 최고존엄 박근혜'???...어느 고대생의 <안녕들 하십니까?>






고대 대자보 내용 전문(全文)

< 안녕들 하십니까? >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소녀들의 겨울, 찬 바람 뜨거운 열기







이석기와 채동욱 - 절망의 두 아이콘


이석기와 채동욱, 내 눈엔 이란성 쌍둥이와도 같은 존재들이다. 이석기가 진보의 이성을 말아 먹었다면 채동욱은 진보의 감성을 말아 먹었다. 이 둘로 인해 진보진영은 졸지에 무뇌아 집단으로 매도당해도 할 말 없을 난관에 직면했다. 진보의 좌뇌는 이석기에 의해 진보의 우뇌는 채동욱에 의해 도매금으로 전락하고 만 지금이야말로 가히 진보진영의 총체적 멘붕의 시대라 할 만하다.
 
긴가민가하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았으나 다시 한 번 ‘사람을 믿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임을 통감하게 된다. 동화책속에나 있었어야 할 동키호테가 알라딘의 요술램프의 힘으로 현실 세계로 뛰쳐나와 망동을 벌이듯 이석기와 그의 로시난테들로부터 상처받은 진보의 좌뇌가 채 아물기도 전에 채동욱이 진보의 우뇌를 강타하고 있다. 이석기가 사람들을 황당케하더니 채동욱은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은 사람만이 희망이라고들 한다. 그런 그들에게 언제부턴가 사람 사는 세상을 일구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상징되던 채동욱이 어제오늘 졸지에 사람 사는 세상을 송두리째 허무는 절망의 아이콘으로 전락하며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파고 있다. 사람이 희망이 아니라 사람이 절망이 되었다. 희망세상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가슴속 깊이 트라우마로 남을까봐 걱정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사람에게 절망하는 세상은 너무도 슬프고 우울하기에...그것도 믿었던 사람에게서 비롯된 절망이라면...
 
 
하나를 얻고자 하면 다른 하나를 내어놓아야만 한다. 진실을 얻으려면 사람을 버려야 하고 사람을 얻으려면 진실을 버려야 한다. 내 삶의 경험적 셈법인데 사람과 세상일을 살피는 데는 대체로 틀림이 없더라. 이석기를 나무랄 때 썼던 말 다시 써보면,
 
‘목사도 거짓말 하고 스님도 대통령도 거짓말 한다. 예쁜 여자 선생님도 똥을 누고 혁명가도 사기를 칠 수 있다. 진실에 근접하려면 빨갛든 파랗든 노랗든 색안경은 걷고 보는 게 좋다.’
 

우리네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피해의식이 강해서인지 어떤 형태로든 끼리끼리 뭉치고 편 먹길 좋아하는 듯하다. 무리짓기는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약자들이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들보다 더 센 대상에 대항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무슨 모임들과 단체들이 그리도 많은지 한국만큼 온갖 형태의 모임과 단체가 많은 나라도 드물지 싶다. 한국 사회에서의 ‘편 먹기’(무리짓기)는 사람들의 삶 속에 매우 깊이 뿌리내린 주요한 행동양태다. 편 먹기는 이내 편 가르기로 귀결되는데 그 과정에서 내 편은 영원토록 무조건 옳고 네 편은 영원토록 무조건 나쁘다는 대항논리가 생성된다. 그게 진영논리다. 이석기와 그의 로시난테들이 자신들의 뇌를 북쪽의 수령에게 송두리째 갖다 바치고도 당당할 수 있는 것도 그런 우리네 문화에서 기인하지 싶다. 자신이 속한 편에 대한 기대가 있기에 곧 죽어도 호가호위라도 해보고픈 것이다. 

진영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에선 진실이 음모로, 음모가 진실로 둔갑키도 한다. 진영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왜곡과 날조, 아집과 편견도 마다 않으며 소인배를 영웅으로 미화하거나 대인을 모리배로 몰아서 잡도리치는 일에도 머뭇거림이 없다. 진영논리는 사람들의 주체적 사고나 자발적 의지를 억제함으로써 부화뇌동하는 군중심리나 맹목적 추종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곤 한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제 아무리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나 정의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영의 이익에 반하는 한 가차없이 내팽개치는 뻔뻔함을 보인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맹목화된 사람들이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된다. 진영논리로서 이석기나 채동욱을 우리편으로 한번 등재해 놓으면 그들이 설령 살인 강간을 저질렀대도 그들은 진영논리에 따라 옹호될 터다. 작금의 이석기와 채동욱 사태에서 보여주는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갈팡질팡하는 처신이 그렇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아닌 건 아닌 거고 맞는 건 맞는 거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이 이석기와 채동욱 사태에서 분명하고 일관되게 공명정대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많이 벗어난 행보다. 그런 애매모호한 갈짓자 행보를 보이노라니 진보진영 전체가 아전인수에만 능한 생떼쟁이로 비칠 수밖에.
 
어제, 종편 TV조선의 속보에서 채동욱 총장의 내연녀로 알려진 임여인의 집에서 가사를 돌본 적이 있었다는 가정부의 충격적인 증언이 폭로되었다. 채 총장이 가정부에게 보냈다고 하는 연하장도 공개되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좌뇌와 우뇌를 손상 없이 잘 간직해온 사람들이라면 이쯤 되면 채 총장에 대한 더 이상의 미련을 유지키가 힘든 게 정상이다. 같은 편이란 진영논리를 배제하면 더 이상 채동욱은 희망의 아이콘이 아닌 절망의 아이콘임을 인지할 수 있다. 십분 양보해서 도저히 진영논리를 포기할 수 없다면 ‘청와대와 국정원의 채동욱 찍어내기도 맞고, 채동욱의 축첩과 혼외자도 맞다’라는 선에서 정리하는 게 옳다. ‘찍어내기’라는 진영의 이익을 위해 ‘채동욱의 축첩’을 마냥 음모와 날조로 호도해서는 곤란하다. 나는 다른 글에서 이석기가 보인 행태에 대해 ‘대국민 사기극’으로 비난했듯 채동욱 역시 이석기 못지않은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쯤 되었는데도 막 나가는 채동욱을 보노라니 무모한 게 아니라면 그가 지나치게 교활해서 진영논리에 함몰된 사람들의 맹목과 군중심리를 교묘하게 악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든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든다는 점에선 이석기와 채동욱이 결코 다르지 않다. 이석기를 비난하는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그들의 항변과 저항이 자신을 지키려는 자기보호본능에서 비롯된 몸부림이란 걸 십분 이해하면서도 그 몸부림이 몹시도 기분 나쁜 건 그들이 자신들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 ‘국민과 정의’를 방패막이로 내세우는 그 위선이 가증스럽기 때문이다.
 
난 개인적으로 그 누군가들의 ‘가증스런 위선’ 탓에 많이 아파본 경험이 있기에 위선적 인간형들을 마주하게 되면 본능적으로 반발심이 울컥 솟구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국심을 배제하고 보면 황우석의 위선이 보였듯이 주체사상을 배제하면 이석기의 위선이 보이고 진영을 배제하면 채동욱의 위선이 보인다.
 
써다보니 이석기를 비난할 때 썼던 글과 대동소이한 어투의 연속이다. 이석기와 이름만 바꿔 놓으면 복사와 붙여놓기만으로 끝내도 좋을 글을 이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 고백컨대, 나 역시 어제까지만 해도 채동욱 총장을 믿고 싶은 진영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마지막 남은 일말의 애정으로 채동욱 전 총장에게 권하고 싶다. 자신이 그토록 강력한 버팀목으로 삼고 있는 ‘유전자 검사’는 꼭 하시길 바란다. 그것만이 채 총장이 살 길이란 생각이다. 채 총장을 같은편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듯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게 조선일보와 청와대, 국정원의 채동욱 찍어내기를 위한 모함날조극’이란 걸 까밝혀줄 마지막 신의 한 수로서의 유전자 검사가 아니라, 조선일보가 보도한' 채 총장의 축첩과 혼외자와 관련된 사실적 내용'은 틀림이 없되, 만에 하나 채 총장도 임여인에게 속아서 속으로는 자신의 아들로 여기고 있던 해당 아동이 남의 자식일 가능성은 없겠는지 짚어보란 뜻에서의 유전자 검사다. 임여인의 행실이 어쨌는지 모르지만 고검장 사무실을 박차고 들어선 여인이라면 행실이 참한 요조숙녀는 아녔지 싶다. 채총장마저 속으로는 철썩같이 자신의 아들로 여기던 아이가 남의 씨일 가능성도? 
 
오죽 답답하고 참담했으면 내 입으로 이런 억측까지 다 해 볼까... 채 총장을 비난하면서도 인간적으론 내내 걱정이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로 인해 채 총장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아내와 딸의 심경이 어떨지 참으로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이러다 또 한 번 생사람 잡을까봐도 걱정이고...
 
막장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스토리의 마지막 결말만큼은 자신의 가족과 가정부 및 채 총장을 비롯하여 온 세상을 속여온 임여인이 채총장을 닮은 또 다른 채모씨란 남편과 해당아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여는 대반전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 모든 불편한 진실이 차라리 꿈이었으면... 비슷한 연배의 딸 둔 아빠의 입장으로 그가 처한 지경을 생각하니 우뇌가 몹시도 쓰리다.
 
 

벌초 가는 길


40여년만의 최고라는 여름 폭염은 
벌초일을 앞둔 내내 마음 한 켠의 큰 짐이었다
조상 살피는 일을 마음 한 켠 '짐'으로 재워두는 게 불경한 줄 알면서도 
 올 여름 더위는 학시리 몸과 맘을 움츠리게 했다

벌초 가는 길,
한번쯤은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려 오르지 못할 수도 있음에...

후손들이 조상을 잘 둔 탓인지 조상들이 후손을 잘 둔 탓인지
다른 집안의 벌초일은 반나절 수고거리일 뿐이더만
우리네 벌초일은 1박2일의 여정이 아니고선
감당키가 녹녹찮은 년중행사다 

벌초일 전날, 각지에서 모여든 일곱 여덟 남짓 일가 형제들은
벌초를 빙자하여 간만의 회포를 푸는 판을 벌인다
무려 13기에 이르는 산소 벌초는
담날 새벽부터 한 나절, 때론 한 나절 반 이상의 공을 들여야만 하기에 
그런 성전(?)에 나서기 전의 사전 몸풀기인 셈이다

앞산팀, 옆산팀, 뒷산팀
난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앞산팀을 자원했다
특전사 출신의 조카가 작년 모처럼 조상 학습(?) 삼아
앞산팀에 붙었다가 불어난 뱃살을 감당치 못하고
앞산 절반도 오르지 못하고 중도 하산 했을 만큼
앞산팀은 우리네 벌초팀의
최정예 부대다

모르는 혹자들이야 사서 하는 고생으로 뵐 테지만 
집집마다 사연이 있고
조상님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후손들의 편의를 위해 약삭빠른 이장을 도모하는 것도 
그리 간단치가 않다.

산소마다 변변한 비석 하나 제대로 놓아드리지 못하는 연유도
조상들이 누운 지세가 호랑이의 꼬리 자락이라
호랑이 꼬리 위에 돌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집안 조상들의 명령 때문이란다 ㅎ~

앞산 4기 옆산 2기 뒷산 7기
내 기준으로 앞산 4기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5촌 당숙 어른,
옆산 2기는 사촌 형님, 복잡한 사연의 산소1기
뒷산 7기는 할머니, 첫째 큰아버지, 큰어머니, 둘째 큰아버지, 큰어머니, 5촌 당숙,
그리고 아부지의 산소다

동 트기 전 뒷산 7기 중 4기는 이미 초벌을 했고
아침 식사 후 앞산과 옆산 그리고 뒷산으로 3팀을 꾸렸다
새벽부터 뒷산 벌초에서도 나섰던 난 
이번 벌초에서 앞산 뒷산 방방 뛰노라면 올 한해 조상님들께서 많이
예뻐해주시라는(^^) 은근하고도 굳센 믿음과 
고난의 행군을 무탈하게 끝낼 결기를 다잡으며 
이승과 저승으로 가르는 저승문(ㅋ 오죽했으면)으로 들어섰다 



2.8미터 높이의 저승으로 가는 문이다



오름길은 오른쪽길
내림길은 왼쪽이다



저승문에서 100미터 남짓
딱 여기까지만 이승의 여운이 남았다



앞산의 기슭 경계하는 풀밭을 지나고



수확 후의 자두 과수원을 지나서



길 없는 길 저승길의 시작이다



제1과제, 5촌 당숙 어른의 산소.
직계 후손들도 있건만 가는 길 어귀여서
그냥 지나치지는 못한다



사촌 막내 동생의 익숙한 손놀림이 가히 농군의 솜씨다
도회지로 나간 형들 대신 마을을 지키느라
몸고생 맘고생도 많을 텐데도
시골에서 함께 하는 사촌 큰형님의 잔소리를
무던하게 받아내는 모습이 대견함을 넘어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혹자들 보기엔 어떨진 몰라도
처삼촌 벌초하듯 하지 않으려 나름 애도 썼건만
갈 길이 구만리라 이리 사진으로 보니 서둔 티가 역력하다



지금부터의 가시밭길은
특전사도 포기한 고난의 행군길



애초에 길은 없었다
작년처럼 길잃고 헤매지나 않았으면...



작년 우중 벌초 때보단 
그나마 덜 미끄러워 다행이다 



등짝엔 제수 한 배낭 왼 손에는 낫을
오른손엔 갈퀴
길 없는 산비탈 
종군 사진기자 놀이를 보태기가 무척이나 버겁다



누군가는 신발장에 1억4천 거금을 꼬불쳐 두었다는데
여차하면 구를 듯
비탈에 발목이 휘청일 때마다  
아끼느라 신발장에 꼬불쳐 둔
질 좋은 내 등산화가 억만금보다 더 사무치더라



거의 80도를 넘어



직벽에 가까운 경사면을 다시금 보노라니
지난해 뱃살 무거워 중도 하산했던
특전사 출신 조카의 맘도 이해간다
오죽했음 올해는 따라나서지도 않았을까
장가도 안 간 조카녀석, 
불혹과 지천명을 넘고 낼 모래 환갑을 앞둔
삼촌, 오촌 아재비들의 날렵한 몸놀림 앞에선
특전사 무용담일랑 다시는 못 꺼낼 성싶다
대한민국 특전사도 능가하는 벌초특공대!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가시덤불 헤치고~~
우리는 간다



차라리 소수 정예가 낫더라
대여섯 정도 무리지었던 작년에 비해
소수 정예 3인이 움직이는 이동 속도는 한결 빨랐다
헥헥거리며 뒤쳐지던 특전사 챙길 일도 없으니 ㅋ~
특전사 출신 조카에겐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듯 ㅎ~



다리에 쥐가 내릴 즈음 



해발 200여미터 높이의 산중턱



이윽고 할아버지의 산소에 도착



해마다 멧돼지 파헤친 흔적에
맘이 짠해도 어쩌지도 못한다
종손인 사촌 큰형님의 벌초 후 제가 이어지고



다시 비탈진 산길을 횡단하여
몇 구비 골을 지난 뒤



증조 할머니를 뵌다
작년 봉분에 그늘 드리우던 주변의 솔가지를 
쳐낸 탓에 햇살이 밝다



내 몫은 낫과 갈퀴였기에
벌초중인 형제들을
짬짬이 사진에 담을 여유가 가능했다



산중 깊은 곳이라 자주 돌볼 수 없음에 
세월의 흔적 만큼 봉분은 일그러졌어도
연중 한 번 작은 정성이라도 들이니 한결 낫다



다시 산비탈을 비스듬히 따라 올라



사촌 형님의 발끝 감을 따라 걷는다
작년에 참 많이도 헤맸었다



올해는 사촌 형님의 촉이 살아 있나 보다



발목을 휘감는 칡넝쿨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나아가니



오늘의 마지막 정성을 들일 
증조할아버지의 묘소에 이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겐 사촌형님이 한마디 하신다
아직 한창인데 이거 갖고 헥헥거리나!
겸연쩍은 웃음 머금고 속으로 나직히
행님, 한창 아임니더. 저도 물 만큼 뭇심니더^^
라고 읊조려 보는데 이그 못낫다 싶다



사촌 동생과



사촌 형님의 익숙한 마지막 손놀림이 끝나고



깊은 산중 봉분 위로 뻥 뚫린 하늘에
뭉게구름이 비죽이 지나간다. 
등짝은 땀으로 범벅인데 마지막 벌초를 끝낸 맘은
뻥뚫린 하늘 구멍만큼이나 시원하다



내려가는 길



가시덤불 우거진
내려가는 길은 더욱 난관이다



오를 때는 횡단도 있었지만  
하향 직진으로 뚫고 내려가는 길은 더욱 가파르다
신발장에 꼬불쳐둔 등산화여!
낚시용 경등산화를 신고 나섰던 걸
두고두고 후회케 만드는 내림길이었다



산도 말이 없고 앞서가는 동생도 형님도
말이 없다



산기슭을 벗어날 즈음



환한 이승의 세상이 멀찌감치 보인다
시원하다 바람없어도
눈이 다 시원하다



밭둑을 따라




밭고랑이 반갑다 
오전 내내 첨 밟아보는 길 아닌 길이다



우측길로 올랐다가 산을 한 바퀴 휘감아
좌측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윽고 도착한 이승과 저승의 경계
2.8미터 이승으로 가는 문! 



이쪽에서 보면 저기가 앞산
저기서 보면 여기가 앞산



뒷산을 맡았던
 다른 형제들의 매끈한 솜씨에서
앞산 특공대에 비하면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저곳이 앞산
오전 내내 헤매고 다녔던
조상들의 얼이 숨쉬는
마치 저승과도 같았던...

그렇듯 해마다 녹록치 않은 벌초가
돌아서면 기쁨인 것은



아부지 잘 계신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아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