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과학과 상식의 오류..




제목 : [펌] 비과학과 상식의 오류 -by cona
글쓴이 : 자유인 날짜 : 07-01-14 06:46 조회 :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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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과학과 상식의 오류

상식(常識)이란, 누구나 흔히 알고 있는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 「개미는 곤충이다.」(거미는 곤충이 아니다.), 「인간은 공기와 물이 있어야 살 수 있다」...와 같은 것들이 이른바 상식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그 상식이라는 것이 진리(眞理)라고 생각함으로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오랜 옛날 사람들은 「무거운 물체가 빨리 떨어진다」거나, 「태양은 지구를 돌고 있다」와 같은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요.

그리하여 「물체는 무게에 관계없이 똑같은 속도로 떨어진다」거나,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등의 상식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상식이라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오류가 밝혀지고 새로운 상식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상식들도 언젠가는 오류가 밝혀질 수 있으며, 새로운 상식으로 대체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미래의 일이 아니라 해도 현재의 상식이 진리가 아닌 것은 얼마든지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건 상식이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은 잘못되었고, 진리는 따로 있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실례로 우리는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상식을 갖고 있지만, 분명히 말하건데 이건 진리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류는 「지구와 태양은 서로의 중력 중심을 기준으로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식의 오류는 흔히 무지에서 발생하기 쉽습니다. 무지라는 것은 두가지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모르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들이 흔히 상식의 오류를 일으키는 것은 후자의 잘못 알고 있는 것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그 잘못 알고 있는 것 역시 모르는 것이나 다를바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쌓아놓았다고 해도, 그것이 모두 잘못되었다면 진리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러한 상식의 오류는, 의도적/혹은 비의도적으로 조장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종교에 의한 과학 탄압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갈릴레오의 종교 재판」을 의도적으로 부풀리는 사례(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을 받은 원인도, 그리고 과정이나 결과도 전혀 다르게 각색되었습니다.)이며,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의 상징이라고 하는 것」(자유의 여신상은 뉴욕이 아니라 뉴저지주에 있습니다.) 등. 다채로운 각색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상식의 오류라는 것은 바로 무지(無智)에서 나옵니다. 바로 진리, 즉 올바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식의 오류는 흔한 사례이지만, 그 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비과학(혹은 반과학)이라고 불리는 것을 추종하는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대개는 그 진영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장된 상식(대표적으로 종교를 들수 있습니다)」을 따르는 이 비과학은, 비교적 진리에 가깝고 항상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스스로에 대한 비판을 마지 않는 과학에 대한 무지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크게는 외계인의 UFO 방문(이 말엔 오류가 있습니다, UFO는 그 정체가 뭔지 모르는 비행물체인데, 외계인의 우주선이라면 UFO라고 부를 수 없겠지요.)이나 MIB(맨 인 블랙), 혹은 초차원의 여행자나 세기의 예언에서부터, 작게는 점성술이나 강령술, 혹은 염력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비과학이 존재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이를 따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비과학의 사례 중에는 「감정을 가진 식물」이나, 「훈련받은 동료를 먹은 플라나리아가 똑똑해진다」는 등의 소문에 의해 만들어진 -그리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설처럼 알려진- 사례도 있습니다만, 그 중 대부분은 어떤 이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장되고 꾸며진 상식에 의해서 진리처럼 믿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이렇게 상식의 오류에서 생겨난 비과학입니다만, 그들은 상식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유령이나 초능력, 혹은 예언이나 외계인들을 믿고 있으며, 그것을 상식이라고 생각하고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비과학에 빠져들곤 합니다.

비과학에서는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상식을 버려라.」 라고...

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다시 들어보면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상식을 잘못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진리이므로 이것은 의심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상식을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주장하는 상식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것이야 말로 비과학의 특징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과학의 특징은 「모든 상식을 의심하고 재검증해 보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래전부터 많은 과학자들은 -그것이 어떤 위대한 학자에 의해 주장되었다고 해도- 이른바 상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의심하고 거기에 매달려서 재검증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어느 조직에서나 마찬가지로 과학계에서도 권위는 존재하고 있지만, 그 어떤 권위조차도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으며, 어떤 점에서 볼 때, 그 권위야 말로 재검증의 손길을 피할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위대한 과학자로 알려진 거의 모든 이들은 말년에 이르러 불만을 호소하곤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되먹지 않았어. 매일 같이 내 잘못만 캐려고 애쓰니 말이야」라고...

하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과학의 특징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자신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이 바로 그 ‘잘못을 캐려는 의심증’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갈릴레오는 「무거운 것이 더 빨리 떨어진다」는 상식에 의문을 갖고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우리들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피사의 사탑 실험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일단 무시하고, 그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상식을 재검증하였으며, 결과적으로 그 상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대학자의 권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깃털과 쇠공을 떨어뜨려 「무거운 것이 빨리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무게 외에 요소들을 제외하고 실험을 실시함으로서 무게에 대한한 과거의 상식이 틀렸다는 것을 밝혀낸 것입니다.

과학사의 이야기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케플러가, 뉴튼이, 아인슈타인이,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학자들이 과거의 상식을 의심하였고, 문제 요소를 배제하고 재검증함으로서 각각 과학사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그리도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는 수많은 과학자들이 기존의 상식에 도전함으로서 인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과학의 특징이 바로 이러하기에, 다시 말해 모든 조건, 모든 상황, 그리고 모든 시점에 있어 진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 「기존의 과학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비과학은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상식에 도전하라고 하고, 또한 기존의 지식을 의심하라고 하며, 기존의 권위를 무시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 자신의 무언가를 주장하며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그리하여 뉴 에이지(신 세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기도 합니다.)

이 점에 있어 비과학과 과학은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두가지에는 매우 심각한 차이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비과학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외계인 신봉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외계인은 존재한다. 그들은 바로 우리 곁에 있으며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려고 한다. 전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외계인에게 납치되었고, 전세계의 수많은 이들이 외계인을 만났으며, 수많은 UFO 사진이 이를 입증한다.」
강령술사들은 이야기합니다.
「영혼은 유령으로서 존재한다. 그들은 우리의 몸을 빌려서 너희들에게 고대의 진실과 지식을 가르쳐 준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점성술사들은 이야기합니다.
「별은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들의 운명은 별을 통해서 예측할 수 있고, 별의 변화에 따라서 세상의 흐름은 정해진다.」
초능력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초능력은 존재한다. 바로 이런 이런 일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를 입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으라!」고 할 뿐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성격을 가진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습니다. 바로 종교라는 시스템을 말입니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글귀는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는 이들은 흔히 보는 말이기도 하지만, 카톨릭이건, 프로테스탄트건, 불교건, 이슬람교건, 힌두교건, 아니면 여기저기 널려있는 크고 작은 다른 종교들이건, 그들은 「진리의 증명」이라는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라는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닌지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용인되지 않으며, 「부처님이 마귀와 대항하여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얘기가 대체 진짜인지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그 사건이 있었는지 등을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힌두교의 수드라는 원래부터 천한 존재이기 때문에 천한 것이고, 그들이 어떠한 이유에서 정말 천한지를 증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 또 한편으로는 「다른 종교는 무시하고 오직 우리만을 믿으라」는 것이 종교의 특징이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원리주의자를 비롯한 일부 광신도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은 그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야 어떻든 현재의 -대다수- 종교는 과학과 대립하려 하지 않는 반면, 이른바 신흥 종교라고 할 수 있는 비과학 진영은 종교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과학에 대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특성상 그러한 도전은 큰 문제가 없는 일이겠지만(과학은 매일같이 자기 자신의 도전을 받고 있으므로...) 비과학은 과학에서의 도전과는 달리, 종교와 마찬가지로 실증되지 않는 사실을 계속 주장하고 「무조건 믿고 의심하지 말라」고 주장하는데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들은 기존의 종교들이 했던 구습과 마찬가지로, 「진리를 탐구하는 과학」을 무시하고 이들의 주장을 모두 거짓이라고 일출합니다. 비과학주의자들에 있어서 「과학적인 검증 과정」은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상식」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타 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들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으로 그친다면 큰 상관은 없을지도 모릅니다.(세상에는 언제나 바보가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자신이 믿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처럼 그 자신들이 주장하는 ‘상식’으로 다른 많은 이들에게 폐를 끼치고 있는 것입니다.

강령술사들은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죽은 친지를 만나게 해주겠소. 그러니 내게 돈을 바치시오.」
초능력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지금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체험을 하게 해 주겠소. 그러니 내게 돈을 바치시오.」
외계인 신봉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외계인의 능력과 지식으로 영적인 체험을 하게 해 주겠소. 그러니 내게 돈을 바치시오.」
점쟁이, 점성술사, 그리고 예언가들은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미래를 알려주겠소. 그러니 내게 돈을 바치시오.」
각종신문 (주로 스포츠신문)이나 정화운세상담등,오늘의 운세를 점처준다는 사람
오늘의 운세를 알려주겠소. 그러니 내게 돈을 바치시오.
사이비 물리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영구 동력 엔진을 만들어 주겠소. 그러니 내게 돈을 바치시오.」

.....

그들의 주장은 여러 가지가 있고, 또한 그것은 다채로운 분류로 나뉘어지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주장은 「무언가를 해 주겠소. 그러니 돈을 바치시오.」로 분류됩니다. 많은 비과학 신봉자들이 우러러 보는 조지 아담스키나 유리겔라, 혹은 에드가 케이시 등은 이제까지 수많은 주장을 해 왔고, 수많은 일을 해 왔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이 한 것은 돈을 버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각지를 돌아다니며 강연료를 벌고 책을 내어 인세를 받으며, 예언 등에 대해 보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났는지 모를 요상한 물체들을 「외계인의 선물」이나, 「초능력 도구」나, 「고대의 신비한 무언가」라고 말하면서 통신 판매를 하여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입니다.

물론, 이러한 형태로 돈을 받는 것은 과학에서도 흔히 벌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많은 과학자들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기업의 후원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지식으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합니다.

이점에서도 비과학과 과학이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게 사실이겠지만, 돈을 버는데 있어서의 비과학과는 달리 과학은 그 누구나 간단하게 「재연할 수 있고」, 또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습니다.

과학에서는 그것이 아스피린이건, 증기기관이건, 혹은 초전도체건, 실제로 우리들에게 결과를 제시할 수 있는 것으로 돈을 벌어들입니다. 독일의 모 학자가 만들어낸 아스피린은 -비록 부작용으로 많은 이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지만- 이제껏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으며, 증기기관은 열차와 동력선의 개발을 낳고 그 후의 모든 동력 기관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초전도체는 그 어떤 것보다 빠른 슈퍼 컴퓨터를 원활하게 작동시키게 하고, 열차를 공중에 띄워 달리게 해 줍니다.

더욱이 과학의 산물을 사용하는데 있어 그것을 이해하거나, 혹은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스피린을 먹는데 아스피린이 어떤 성분으로 되어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배울 필요도 없고 하물며 「이건 아스피린이므로 내 병을 낳게 해 줄거야」라고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믿음을 가진다면 효과는 더 올라갈지도 모르지만(이건 인간의 몸이 마음의 영향을 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스피린이라고 믿고 먹은 사탕(즉, 위약)」과는 달리, 아스피린은 분명하게 우리 몸에 작용해서 아픔을 덜어주고 통증을 약화시켜 줄 것입니다.(마찬가지로 혼수 상태에 빠진 환자에게 약을 주사하면, 그것은 「그 환자가 알건 모르건」 반드시 환자를 회복시켜 줄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증기기관이나 초전도체, 혹은 컴퓨터나 TV,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은 그 원리를 모르면서 매일 같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사용하는데 별도의 믿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흔히 비과학에선 물리학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는 양자 역할을 자주 들고 나오지만, 양자 역학은 설사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실제로 그걸 입증할 수 있으며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양자 역학이 과학인 이유입니다.)


그러나 비과학은 다릅니다. 마치 원수를 갚기위해서 무술을 배우러온 제자에게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때까지는 무술을 배울 수 없다」고 허드렛일만 시키는 스승처럼, 비과학은 전혀 뜬구름을 잡는 이야기를 떠들며 이해를 시키려고 하고, 그것에 대해 믿음을 갖고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하여, 유리겔라의 초능력 도구는 우리들이 초능력을 쓸 수 있게 해 주지 못하고, 에드거 케이시의 예언은 이제껏 맞은 일이 거의 없으며, 조지 아담스키가 말한 금성인은 우리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은 그나마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지만, 이들의 상식에 돈을 뿌리는 것은 그야말로 사기에 속은 바보 이상의 어느 것도 아닌 것. 바로 이것이 비과학의 특징인 것입니다.

아니, 그들은 어떤 점에서 살인자와 동격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보았던 동남아의 사기 전기 치료사의 일을 생각해 봅시다. 별 것도 아닌 전기 슬리퍼를 이용한 사기로 의료 행위를 하고 돈을 버는 그 자... 그리고 그 밖에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먼 곳에서 어렵게 와서 시간과 돈을 버려가며 가능성 없는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를 통해서 병을 치료하듯이 기적을 바랄 가능성은 있습니다.(암조차도 수만명 중의 한 명 정도는 자연 치유가 된다고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다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데 사용할 수 있을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결과 환자가 죽는다면 결국 살인자 이상의 어떤 것이 되겠습니까?(재미있는 점은 비과학론자들은 영역을 가리지 않습니다. 유리겔라나 에드거 케이시도, 심지어 조지 아담스키까지 심령 치료를 하기도 했으니까요. 실제로 수많은 비과학론자들이 심령 치료를 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수많은 이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식은 진정한 진리에 접근하는 것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은 이야기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일도 있지 않은가?」라고...

왜냐하면 「과학은 반드시 진리라곤 할 수 없다」라는 것 역시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어떤 사실도 진리라고 확정하지 않습니다.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서는 바뀔 수 있는 「법칙」이라고 말하지요. 뉴튼의 물리학 법칙은 분명 '상식’의 하나이지만,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특정 상황 속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분명히 ‘상식’이지만, 역시 양자 역학의 세계에 적용할 수 있는 법칙은 아니지요.

또한,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모든 것을 조사한 것도 아닌 이상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확실히 통계 조사를 비롯한 어떤 과학적 조사 방법으로도 모든 상황, 모든 조건에서 모든 경우를 시험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한다면, 어쩌면 어딘가에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는 신비한 현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요.(사실, 이 점에서는 심각한 오류가 있지만 이는 일단 무시합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한가지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하면, 「거짓이라고 증명할 수 없다고 그것이 진실은 아니다」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이지요.

과학 진영의 비판에 대해서 비과학론자들이 흔히 하는 말은,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거짓임을 입증해 보여라」입니다. 그러나, 이는 과학적인 방법과는 전혀 다른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는 우리나라를 증오한다」는 말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밝힐 수 없다.」가 「그것이 진리다」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지요.

비과학이 기존의 과학이나 지식, 혹은 상식에 대해 도전하고자 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타당하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들 자신이 그렇게 해야 할 입장이지 과학이 「비과학은 거짓이다」라고 밝혀야 할 입장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과학은 현 시점에서 진리 혹은 상식으로 「입증」된 반면, 비과학은 그렇게 입증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과학에서는 무리하게 나서서 비과학의 모든 분야에 대해서 거짓임을 입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가 존재한다」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므로 기는 존재한다」라고 하지 말고, 「기는 이러이러해서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라고 주장해야 합니다.(단순히 기가 있어서 이런 현상이 나온다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모든 내용이 기라는 존재를 제외하고도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유령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유령은 이러이러해서 존재한다」라고 주장해야 합니다.(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영혼의 무게 따위는 얘기하지 맙시다. 인간이 죽을때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 어떤 과학적 실험에서도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더욱이 그러한 것은 「그것을 믿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행해져야 합니다. 내 친구가 「우리집에 금송아지가 있다」라고 백날을 떠들어 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바로 그 금송아지를 가져다 그 사람에게 보여주면 되니까요. 바로 「증거」를 제시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증거라는 것은 그것을 의심하는 사람도 인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금송아지는 높이가 1m 쯤 되고 소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두 눈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서 형용하게 빛을 낸다」라고 설명해 주는 것은 농담에 지나지 않으며, 자기가 찍어온 금송아지의 사진 따위 진짜인지 가짜인지 누구도 입증할 수 없는 단지 장난 사진에 불과할 뿐입니다.

「의심하는 사람 앞에서는 제대로 안 된다」는 초능력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그것은 「벌거벗은 임금님」이나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초능력이 안 되면 「의심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 끝... 부적 태운 물을 병자에게 먹여서 낳으면 부적 덕분이고, 죽으면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하는 고대의 사이비 종교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비과학을 추종하는 이들 중에는 또 다른 착각을 하고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런 얘기가 많으므로 진실이다」라고 믿는 것이지요. UFO의 사진이 수없이 많은데 그 중 99.99999%가 가짜라도, 그 정도로 많으면 진짜도 하나쯤은 있지 않겠냐고 얘기합니다.

물론, UFO의 사진은 진짜일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UFO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비행물체의 총칭이니까요. 그것이 평범한 과학 기구 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건, 혹은 극비리에 추진 중이라는 오로라기를 찍은 것이건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있어서 그것은 UFO의 사진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진이나 영상도 그것이 UFO가 외계인의 우주선이라고 입증해 준 바는 없습니다. 외계인을 만났다는 사람이 그린 그림이나, 그들이 가져온 뭔지 모를 물건(대개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그들의 몸에 생긴 흉터 같은 건 당연히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통계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1명은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고 하는데(그야 그런 결과가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통계 조사를 실시한 것은 바로 그런 집단을 대상으로 한 것이니까요.), 이정도로 많은 사람이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지극히 속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상식의 오류가 바로 그런 식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장난 도형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시각이 얼마나 쉽게 속아넘어갈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조용하고 어두운 곳에 가만히 있으면 환청이나 환각을 보지 않는 이들이 없다고 할 정도로, 인간은 감각에 굶주려 있으며, 가위 눌림 현상을 통해 귀신이나 유령, 혹은 외계인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설사 그 시간에 바로 옆에서 파티를 열고 있었다고 해도 말입니다.)

게다가 사람의 기억은 언제나 바뀔 수 있습니다. 외계인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면 꿈에서 외계인을 보는 것은 당연하고, 다른 사람들이 「너는 외계인을 보았어」라고 계속 얘기하면 「어? 정말 보았나?」라고 생각하는게 인간이지요.

이렇게 속기 쉬운 인간들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진실로 받아들일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말이 아무리 사실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소설이나 영화 이상의 가능성을 갖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주장하는 흔적(상처 등)이나 물증이라는 것이, 황금 송아지의 사진보다도 가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말입니다.

과거라면 모르겠지만, 언론이 발달하고 많은 이들이 생각을 공유하게 된 지금, UFO나 외계인의 가짜 증거들, 혹은 심령 사진이나 초능력의 이야기가 퍼지지 않는 것은 도리어 이상한 일입니다. 그들 중 전부가 가짜가 아니라는 법도 없습니다.(일단 지금까지는 과학적 견지에서 진짜라고 증명된 바는 없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건수가 많기 때문에」 그 중에 진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한 발상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겠지요. 심지어 「가짜가 있다는 건 진짜가 있다는 증거」라고 하지만, 그 역시 지나친 생각의 비약에 지나지 않습니다.(판타지 작품이 있다고 해서, 그 안의 요정이나 용들이 실존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모든 것이 인간의 상상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므로, 아예 없는 것에서 가짜가 나오는 것도 당연히 가능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비과학론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는 이 역시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이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과학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또 한가지 오류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과학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것은 모두 조작이다.」 혹은, 「우리는 정부(혹은 조직)에 의해서 속고 있다.」는 생각의 오류입니다.

CIA나 FBI 같은 정부 조직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나, 프리메이슨같은 구시대의 친목 조직을 신성시하는 것은 일단 제쳐두고, 「비과학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어째서 「비과학 자체에 대한 의문」을 갖지 않는지 그것을 일단 지적하고 싶습니다.

과학 진영이 비과학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는 이유는 상당히 다양하지만(그 중에는 질투라는 이유를 드는 이들도 있지만, 저는 그보다는 분노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 공통된 이유는, 그것이 과학의 특성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여러 가지 상식에 대한 의심을 갖고 그것을 검증하려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검증되지 않은 비과학에 대해서 의심을 갖고 그것을 검증하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비과학은 그 자신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비과학에 대한 과학 진영의 비판은 「의심하라」고 합니다. 확실히 말해서 모순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믿지 못할 것을 믿어라」고 하는 이들이, 「자신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이들은 모두 의심해라」라니... 과거 이단 논리로 수많은 참상을 일으켰던 광신도를 연상케 하는 대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이나 각종 신화에 의문을 갖고 이 사실을 제기했던 이들을, 수많은 종교에서는 이단이나 악마의 수족이라는 식으로 밀어붙이곤 했습니다. 보다 ‘민주화’된 지금의 대형 종교들에선 그런 일이 거의 없지만, 이제는 새로운 종교, -자칭 뉴에이지라고 하는- 비과학 진영이 중세시대 종교 진영에서 하던 짓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그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자신이 갖고 있던 각종 상식들을 버리고 새로운 상식을 받아들여서, 그리고 그 상식의 오류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의심조차 하지 못하면서 말입니다.(「믿어라」와 「의심하라」는 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정도 ‘상식’은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더욱이, 비과학은 과거의 3류 언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다량의 쓰레기가 혼재되어 있는 정보의 바다」에서 더욱 더 증식되고 있습니다. 「오직 믿고 싶은 것만 보는 많은 이들」은 인터넷에서 그런 정보를 뒤져서 다른 이들에게 알립니다. 그것이 이미 가짜라고 증명되었다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지요.

심지어 불과 며칠 전에도 팔로마산 천문대 근처의 식당 종업원이었던 조지 아담스키를 「위대한 천문학자이자 UFO 학자」라고 실어둔 홈페이지를 보았을 정도입니다.(이 사실은 UFO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미 잘 알려진 일로서, 상당 수의 UFO 전문가들은 그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금성의 표면 온도가 400도에 달하고, 수백 기압에 이르는 환경이라는 것이 알려져 있음에도, 아직도 금성인이 존재한다는 그의 주장을 진실이라고 믿고, 이를 인터넷에 올리는 이들이 있습니다.(그 인터넷의 내용을 보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이들 역시 증식되어 갑니다.)


과학 진영의 글들은 대개 무시되곤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바라는 것」이 아니며, 그런 모든 것이 정부와 과학자들의 음모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저 같은 사람은 새끼 음모론자라고 불리겠지요.^^) 그럼에도 과학 진영으로서는 비과학의 글을 보고 일일이 비판을 가합니다. 하지만, 비과학 진영은 「정부의 음모」니, 「과학자들의 속임수」 같은 식으로 치부할 따름입니다.(그 다음은 위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주장들이 이어지지요. 「거짓이라고 증명되지 않은 이상 참이라고 할 수 있다」던가... 「이렇게 많은 주장들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걸 입증한다」거나...)

물론 과학 진영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세계의 모든 문명은 과학에 의해서 만들어져 있으며, 과학에 의해서 발전되며 과학에 의해서 향유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비과학(반과학)이 존재하고 많은 이들이 따른다는 사실 만으로도 과학 진영은 패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세계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비과학 진영은 우리 인류의 한정된 재원과 자원과 노력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경찰이나 정보 기관에서 사이코메틀러(물체의 과거를 읽는 능력자)나 텔레파시스트(먼 곳의 사람에게 생각을 전달하거나 마음을 읽는 능력자)들에게 투자할 돈이면, 과학 수사대를 창설하고 여기에 충분한 시설을 준비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우징(금속 막대로 물이나 자원을 찾는 일) 전문가나 풍수학자들에게 줄 돈이라면 더 좋은 장비로 더 많은 지역을 조사할 수 있겠지요.
점장이나 예언가에게 줄 돈이면, 보다 많은 자료를 준비하고 보다 많은 분석가들을 고용해서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영구 동력 연구가나 상온 핵융합 연구자들에게 줄 돈이라면, 보다 효율적인 동력과 보다 우수한 원자력 발전 시스템에 투자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비과학들이 사기를 통해서(그나마 사기라고 비난받지도 않으면서) 돈을 벌고 있는 사이, 과학 진영을 위해서, 그리고 현실을 위해서 투자되어야 할 인류의 자산은 낭비되고 있습니다. 비과학 진영의 세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과학의 발전은 늦어지고 경제는 나빠지고 인류는 손실을 보게 되겠지요. 과학 진영은 1에서 10을 낳기 위해 노력하지만, 비과학 진영은 0에서 100만을 낳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그것은 아무런 효과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 낭비 이상의 어느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나마 아무 것도 갖지 않고 뭘 한다면 모르겠지만, 유리겔러만 해도 사이버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도 없는 싸구려 펜던트나 뭔지 모를 부적, 그리고 -마술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푼 벤딩(스푼 구부리기 등의 기술)의 비밀(?)을 담은 책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그가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전세계에 폭로된 지금에도 말입니다.(아쉽게도 초능력이나 심령수술 같은 비 과학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을 사기꾼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습니다. 어쩌면 골프치느라 바쁜 의원들이 그들의 저주를 걱정하거나, 혹은 그들의 예언을 진실로 믿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러한 현실은 바로 인류에 대한 엄청난 죄악에 다름없습니다.(과학 진영이 비과학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것 역시 과학 진영에 있어 큰 손실일 수 있습니다. 칼 세이건 같은 석학이 비과학에 대해 비판을 가할 필요가 없었다면 그 시간에 다른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겠지요.) 단순히 ‘상식의 오류’라고 쉽게 생각해 버릴만한 문제는 아닌 것이지요.


자, 여기서 여기까지의 모든 말을 잊어버리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 앞에 두 사람의 장사꾼이 있습니다.(여러분은 물 장수라고 해 봅시다.)

한 사람은 「이 단지는 엄청난 힘을 보유하고 있다. 이 단지의 힘은 너무도 강력해서, 당신이 진정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이 엄청난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이 단지를 집에 모셔두고 매일 같이 신념을 다해 기도를 올리면 반드시 상상도 못할 이익을 보게 된다. 게다가 이 단지는 고작 1000원 밖에 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한 사람은 「이 단지는 예전의 단지에 비해서 훨씬 튼튼하고 가벼운 재질로 만들어졌다. 자, 이 단지를 들어 보라. 게다가 이렇게 (실연해 보인다) 높이 들었다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다. 이 단지의 가격은 1000원이지만 그만한 가치는 할 것이다.」

자, 여러분은 어떤 단지를 구입하시겠습니까?


솔직히, 이 글을 보고 「믿으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인터넷이건 어디건 비과학을 접하는 일이 생긴다면, 한번쯤 「상식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의 시점에서 자신의 눈에서 보다 비판적으로 대상을 보고 판단해 보십시요. 그것이 바로 「과학적인 태도」이니까요.(만일, 지식이 부족하고 판단력이 떨어진다고 생각되면, 다른 비판적인 사람들의 말을 들어봐도 좋습니다. 그 사람이 과학 진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비과학 진영의 사람들과는 달리 여러분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으로 「상식의 오류」를 지적해 줄 것입니다. 과학은 이해하지 어려운 학문일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누가 해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 사실, 과학이 극도로 발달한 요즘 같은 시대에 비과학이 더욱 번성하는 것은, TV나 언론 등의 영향이 큽니다. 여기에 워낙 많은 작품들이 나옴으로서 아이디어 고갈 사태에 빠져버린 영화나 만화, 소설과 같은 작품의 문제들도 있지요.
식물이 감정을 갖고 있다거나, 훈련된 동료를 먹은 플라나리아의 이야기, 혹은 심장 이식에 의해서 기억이 전달되었다는 이야기 등은 모두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가 없습니다만, 우리는 영화나 만화, 소설 등을 통해서 이것이 사실인 것처럼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기실 그 출처가 얘기 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돈을 벌고 있는 3류 잡지라는 것은 모른 채 말입니다.)

(* 고 칼 세이건 박사나 마술사 제임스 랜디씨처럼 비과학의 비판에 앞장서고 있는 이들 역시 이를 통해서 강연료나 수입을 얻고 있는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비과학 진영과 이들의 차이는 그들은 비과학을 비판하지 않고 자신의 일만 할 경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니, 만일 그들이 비과학 분야에 뛰어들어 일을 한다면 그보다도 훨씬 많은 돈과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칼 세이건 교수는 20세기 최고의 점성술사로 국가 수준의 예언으로 명성을 떨칠 것이며, 랜디씨는 유리겔라 같은 이는 차마 따라올 수 없는 최강의 초능력자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을 것입니다. UFO관련 책이나 강연, 혹은 심령수술이나 상품 판매 같은 게 아니면 돈을 벌 수 없는 그런 비과학론자들과는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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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07-01-1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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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논리 오류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논리 오류

copyright 이우혁

모르는 게 죄는 아니지만, 모른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간판으로 내거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모르는 것 때문에 잘못이 무조건 용서된다고 믿는 것은 죄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논리학 개론 반권만 읽었어도, 연구나 공부가 아니라 그냥 한 번 읽어보기만 했어도 범하지 않을 짓거리를 해대면서 자신이 가장 잘난 사람인척 하는 예가 너무도 자주 보이기에, 범 네티즌 계몽 및 홍보운동 차 몇 자 끄적거려본다.

이런 것은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이기에 이런 것을 쓴다고 잘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며,똑같이 못난 사람이 될 뿐이다. 이런 것도 모를 정도의 세상이 한스러울 뿐이다. 다만 이 글은 대상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스크롤의 압박' 이 있으면 무조건 안보고 배를 째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므로 최대한의 배려를 하여 전문용어나 기타 등등은 하나도 섞지 않으며, 이론을 먼저 제기하고 그 다음에 예를 드는 것보다 알기 쉽게 예를 먼저 들고 해당되는 논리적 오류를 (좀 알기쉽게 풀어 써서) 적어 보겠다.

하나 전제가 있다면, 여기 나온 오류론 자체를 의심하는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 1+1이 왜 2가 되어야 하나요? 라고 묻는 것이 낫겠다. 논리학의 오류라는 것은 이미 수없는 논증과 심판을 거쳐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미 1+1 = 2 라는 것 만큼이나 확실하게 정해진 것이니까.

몇몇가지는 아주 유명한 오류이고, 나머지 몇 개는 좀 복합적인 것도 있는데 내가 알기 쉽게 바꾸어 표현한 것도 많다. 그것에 대해 논박하려면 최소한 논리학 책을 읽고 공부해야 할 터이니, 그런 수단을 써서라도 공부를 하게 만들겠다.

1) 누구도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은 없다.

-> 그 말은 애당초에 증거불충분이다.

논리의 근거가 되는 자격조건의 예시가 없다. 아울러 그 논리를 주장할 경우, 역작용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 말이 맞다고 치면, '누구도 다른 사람을 옹호할 자격은 없다.'는 말이 되는가 생각해 보자.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만약 '법관 자격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벌 줄 수 없다.' 고 한다면 현행범은 누구도 체포할 수 없을 것이다. 법관 자격이 없으니 말이다. 그 역을 생각해보자. 누구도 벌을 줄 수 없다면 누구도 옹호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변호사 자격을 따기 전에는 누구도 죄 지은 사람에 대해 변론을 할 수 없다. 실제로는 법관이 아니고서도 현장에서 범인을 체포하기도 하고,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법정에서 자기 변론을 할 수 있다. 단죄하는 데에는 법관의 자격이 필요할지 모르나 비판이나 옹호는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왜 이게 말이 안되는지 대봐라!'고 대드는 것도 오류이다. 욕먹고 싶지 않으면, '왜 욕하냐'라고 따지기 전에 '나는 왜 정당하다'라고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왜 이게 말이 안되느냐'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해주자. '왜 말이 되는지부터 설명해라. 그 다음 말해 주겠다.' 논리 오류적으로도 스스로 증거를 댈 수조차 없는 강변을 논리적인양 위장하는 오류이다.

편의상 이것을 '자격 오류'라 해두자.

2) 옹호는 좋은 것이고, 비판은 나쁜 것이다.

-> 두 가지 경우 전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될 수 있다.

좋은 것, 나쁜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대상에 따라 다르다. (주관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연쇄살인범을 동정에 의해 감춰 주어 경찰을 피하게 해주어서 수없는 살인을 더 저지르게(어쩌면 그 자신도 살해될지도 모른다.) 하는 것은 옹호라 해도 옳은 것이 아니다. 물론 죄없는 자에 대한 무조건 적인 비판은 당연히 나쁜 것이다. 그러나 정당한 과정과 합당한 이유를 지닌 비판은 결코 악이 아니며, 그것을 일컬어 '정의'라고 부를 수 있다. 정의의 탈을 쓴 악덕도 많으며, 동정심이나 옹호의 탈을 쓴 죄가리기나 뭉개기도 많이 눈에 띈다. 이 자체는 좀 더 세밀히, 눈을 크게 뜨고 구분할 일이다. 물론 사람이라면 동정심도 가져야 하고, 옹호도 할 수 있으나 무분별한 동정이나 옹호 때문에 정의가 악덕으로 규탄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행동은 무분별한 비난과 똑같은 책임을 져야 한다. 무분별한 옹호나 무분별한 비난은 똑같다 볼 수 있다. 옹호나 비판이나 같은 선상에 있다. 만약 비판의 자격을 묻는다면, 옹호의 자격도 물어야 한다.

별도의 항으로 분류하려다 말았는데, 여기서 파생되는 가장 웃기는 경우가 '타당한 근거도 없이 무조건 옹호하는' 형태이다. 이는 싸구려 무협 혹은 폭력만화나 영화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이런 대사, 장면 많지 않은가? '아니! 비겁하게 한 사람에게 세 명이 동시에 달려들다니! 나는 그런 불의를 보고 참아 넘길 수 없다! 내게 덤벼라!' 식이다.

뭐 그게 멋있다고는 해두자. 그러나 그런 논리를 무작정 인터넷이나 통신의 논리에 적용한다면,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면 당신은 눈뜬 장님이며, 범죄자이다. 보통 통신상의 비판을 보자. 그 중 일대일이 아닌 것이 있는가? 잘 생각해보라. 한 사람의 글에 대해 100개의 비판 리플이 붙었다고 보자. 당신같은 눈뜬 소경은 그것을 '100명이 한 명에게 덤비다니!'라고 생각하여 싸구려 모조품 정의감을 불태우며 뛰어들지도 모르겠다. 가끔, 아주 가끔 그것이 장님소 뒷걸음에 쥐 밟는 식으로 맞을 때도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러나 바보짓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리플을 붙이거나 비난 글을 올리는 것은 엄연히 1대 1의 작용이다. 글을 올리는 상황에서는 글을 올리는 사람과, 그 글을 보는 당사자 밖에 없다. (물론 리플 내에서 붙은 격전은 당사자에게 행해진 것이 아닐지도 모르나, 그것 역시 1대 1이다.) 한 명의 글에 100개의 비판글이 붙었다는 이유는 한 명을 백명이 동시에 달려들어 때려눕히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사람이 백 명을 하나씩 상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채팅방에서 백명이 한 명을 몰아붙여 말도 못하게 만든다면 당연히 뛰어들어 마땅할지도 모르지만(사실 뒤에 설명하겠지만 그것도 잘못이다), 글에 시간 순으로 리플이 줄줄이 달렸다고 분노하는 사람의 머리구조는 어떻게 되어 먹었는지 궁금하다. 설령 그것에 부당성을 느끼더라도, 일단은 다시 한 번 이렇게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정상 아닌가?

'이 사람이 정말 100명에게 집단 따돌림이라도 당하는 것인가? 아니면 정말 잘못이 많아서 100명에게 욕을 먹을 만한 사람인가?'

우선 이 과정을 스스로 판별하고 뛰어들려고 해도 뛰어 들어야 한다. 보통 무협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위와 같은 멋진 말을 하고 보통은 선량한,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의당 옳다는 꼭두각시적 세뇌를 은연중 당했는지는 모르겠는데, 반대의 경우를 무협지적으로 생각해보자. 주인공이 구파일방의 장문인들을 모아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악의 원흉 마교 교주를 전 무림을 희생시켜가며 간신히 포위했는데, 뜬금없는 미친놈들이 '아니, 열한명(구파일방 장문인 10명, 주인공 1명)이 한 사람을 동시에 공격하다니! 나는 그런 불의를 보고 참아 넘길 수 없다! 내게 덤벼라!' 하고 우스스 달려들어서 끼리끼리 싸움이 붙느라 그 사람들과 주인공, 구파일방 장문인만 죽도록 싸우다가 다 죽고 마교 교주는 웃으며 달아났다. 이게 옳은 일인가? 웃기는 해프닝이다. 뛰어든 사람들이 정의의 사도였나? 미친 놈들 아닌가?

무협지를 모른다면 일반 형사드라마를 생각해보자. 평생을 목표로 한 범인을 찾기위해 세 형사가 10년을 헤매지만 범인은 잘도 피해다닌다. 어느날 10년동안 매일매일 사복차림으로 잠복한 끝에 범인을 잡아 격투가 벌어졌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들이 아주 정의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거 왜 이래? 멀쩡한 세 사람이 한 사람에게 덤비다니! 죽어라 퍽퍽!' 결국 세 형사는 떡이 되게 혼나고, 범인은 다시 자취를 감추어서 영원히 찾을 수 없었다. 멀쩡한 상황이 코미디가 되어 버렸다.

뭐 그냥 대강 든 예이고 비유이니 그 예의 논리구성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말기 바란다. 이런 예를 든 것은,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 정의의 주인공이 된다고 무조건 착각하지 말고 정황과 사정을 잘 살피면서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나타나는 인간군상이 있다. '나는 비록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렇게 한 사람을 공격하는 꼴은 도저히 못봐주겠네요!' 라면서 스스로의 부자격성, 비논리성, 쌍무식성을 있는대로 드러내면서도 스스로 정의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끼어든다. 차라리 혀를 물고 죽어버려라. 차라리 친인척이나 이해당사자라면 그래도 봐주겠다. 친분이나 하다못해 작은 인간관계라도 있었다면 그래도 이해는 간다. 허나 아무 것도 모르는데 무엇을 평가하려고 하는가?

일단 그 대상이 옳고 그르고는 알아야 할 것 아닌가? 자기가 무슨 전투의 화신, 혼돈의 화신이라고 나대면서도 끝끝내 잘난 척하는 미친 족속이 많고, 그런 족속을 이용하여 항상 빠져 나가는 악당들이 더 많다는 사실에 명심하자. 이 글을 한 번이라도 보았다면, 앞으로 그런 '자칭 무림고수의 오류'는 범하지 말자. 물론 무분별한 옹호와 마찬가지로 무분별한 비판도 똑같은 악덕이나 한가지, 일단 무분별하더라도 옹호부터 해놓고 볼 때가 있는데, 그것은 한 사람의 생명(진짜 생명)이 달렸을 때 뿐이다. 그 외의 통신 논의에서 사람이 죽는 일이 없고, 대부분 잘잘못을 가리는 일인 이상, 그런 무분별은 범하지 않는것이 좋다.

혹자는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른다. 비판이나 옹호의 자격은 없다고 해놓고 왜 끼어드는 것에 자제를 가하려 그러느냐? 그에 미리 답해본다. 비판이나 옹호의 대상 자격논의가 아니라 제대로 된 논의에 참가하는 자세인가 묻는 것이다. 뭐 자기가 알아서 자기 망신 당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한 번 양자의 의견이나 입장을 찾아 보지도 않으면서 잘났다는 듯 끼어드는 지식인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가짜 지식인이며,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판 것이다.

끼어 들어라. 자격은 있으니까. 허나 처절히 매도되고 비웃음 사는 것도 자기 일이니 알아서 하라고 할 일이다. '모르면 나서지 말라'는 말은 모른다고 나설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모르면 나서도 망신을 당한다는 뜻이다. 옛적부터 '말조심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는가? 물론 이것은 무분별한 비판을 가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정말 못된 놈이네...' 이것 역시 헛소리다. 아무것도 모르는데 정말 못된 놈이란건 어떻게 아는가? 모두가 조금더 말조심 할 일이다.

2) 내가 한 짓이 못마땅하면 너도 해봐라. 능력도 없는 것들이

-> 역시 쌍무식한 티를 그대로 드러내는, 선도해야만 하는 오류적 발언이다.

가령 그 대상이 문제성이 있는 일이라 치자. 그렇다면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이다'로 대응할 수 있다. 상점에 진열된 물건을 공연히 때려부수지 않는 것은, 그럴 힘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나쁜 짓이므로 안하는 것이다. 만약 도덕성의 차이를 능력의 유무로 끌고 들어가거나 같은 짐을 짊어지게 하는 이러한 오류를 일단 '너도 해봐라 오류'라 명명짓자.

3) 너희 중에 죄짓지 않은 놈이 '나'에게 돌을 던져라. 너희는 잘못 한 적도 없느냐?

-> 죄 지은 자들이 가장 많이 부르짖는 형식이다.

예수님이 다 좋은 말씀을 남기셨는데, 무분별한 쌍무식장이들이 예수님 말씀까지 곡해하여 이용해 먹으니, 이것은 논리단계를 넘어서서 종교모독에 이르른다. 그 이야기는 제 3자의 입장에서 해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며 죄를 벌하되 '인간적 모독을 가하거나 동정을 베풀 여지를 남겨라' 즉 사랑의 가르침을 설파하신 것이지 죄인도 다 용서하자는 뉘앙스를 가진 것이 아니다.

사회 계약론에 의하면 죄가 있는 자도 다른 죄를 단죄할 수 있다. 아울러 다른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잘못을 저지른다고 그 잘못이 정당화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조리 잡아다가 잘못에 대한 댓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잘못이 있다고 잘못에 대한 논의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간사회가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이나 석가모니께서 재림하셔서 몸을 60억으로 나누어 하나씩 맡아 카운셀링을 해주지 않는 한에 있어서는 말이다. 결국 기본적으로 뻔뻔스러운 무식의 소치이다. 이것을 편의상 '돌던져라 오류'라 명명하자. 혹은 '우물에 독을 타는 오류(poison to well)' 이라는 멋진 시적 뉘앙스를 지닌 비유에 해당한다.

내가 죽을 것 같으니 우물에 독을 타서 다 죽자, 즉 모두 끌고 들어가자는 악의서린 흉계의 주장이며, 일고의 가치가 없는 말이다. 또 다른 말로 '물귀신 오류'라고 해두자.

조금 더 구체적으로 넘어가자. 이제까지는 드러난 잘못에 대한 평가를 했는데, 교묘히 숨어 있는 잘못에 대한 몇가지 평가를 해보자.

4) 내가 당신을 좋아하니 당신은 항상 정당해요.

-> 그것은 아무리 잘 보아주어도 그 당사자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다.

자신을 우주 전체인양, 혹은 인간 사회를 대표한다는 총체적 착각에 사로잡히지 않고서는 내뱉을 수 없는 말이다. 그런 찬사를 듣는 다면, 얼른 그 사람에게서 멀어지라고 권하고 싶다. 그 '우주의 신'이 언제 마음이 변하여, '내가 당신을 싫어하니 당신은 모든 것에 있어서 다 나빠요! 소멸되어라! 죽어!' 할지도 모르니까. 이것을 반장난삼아 '당신만을 오류'라 칭해본다.

5)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니 비판하지 말아주세요.

-> 열심히 한 것은 아무리 나름대로 했건, 알아줄만큼 열심히 했건 비판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열심히 했다는 것이 비판받지 않을 이유나 행동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일종의 동정심 유도의 작전일 뿐이다. 열심히 했다는 것은 '열심히 했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만 해답이 된다. 도둑질도 열심히 하면 비판 받을 수 없는 것이고, 살인도 연쇄살인을 하면 비판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긴 중국에는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백만명을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속담도 있긴 하다. 그러나 그것은 비유일 뿐이다. 정말 백만명을 때려 죽여봐라. 영웅으로 변하나.

열심히 한 것이 모든 근거의 척도가 된다면 고시도 가장 오래 시험본 사람을 무조건 붙여줘야 하고, 미술 국전도 제일 나이 많은 사람에게 무조건 대상 줘야 하고, 가장 긴 영화가 가장 명작이 되어야 하고, 수능도 굳이 시험 칠 것이 아니라 학생 하나하나마다 씨씨티비라도 설치하여 '누가 더 덜자고 열심히 했나' 로 뽑는게 맞겠다. 앞에 든 예를 한 번 정정해보자면 '열심히 했으니...' 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뜻을 가지고 열심히 했으니...' 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데 이러려면, 굳이 열심히... 라기 보다는 그 나름대로의 뜻이 뭐였는지 밝히는 편이 맞을 것이다. 즉 '나름대로 이러이러한 근거 하에서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이러이러하게 한 행동이니...' 정도가 설득력있게 전개된다면 된다면 합격점이다. 그리고 '비판하지 말아주세요...' 가 아니라 '타당성 있게 비판해주세요...'로 바꾸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무조건 비판만 하지 말아달라니? '열심히'는 우주적 면죄부를 지닌 단어였단 말인가? 이것을 일단 '열심히 오류'라 지어두자.

6) 그래. 나는 못배워서 무식하다! 나이 어려서 모른다. 그렇다고 나를 무시해도 되는 거냐?

-> 물론 못배워서 무식하다고 말하거나 나이 어리다고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데 그 잘못의 범위는 그냥 도의적이고 윤리적인 선의 잘못이지, 원칙적으로는 잘못이 아니다. 그 잘못도 어리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거나 무식하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무시했기 때문에'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무시'라는 말이 대단히 우습게 쓰인다. 무조건 자기 말을 안들어 주면 무시한다고 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의 정당성은 '무시'가 정말 무시인가? 아니면 무조건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무시'로 받아 들이느냐에 있다. 일단 두 경우를 함께 생각할 때, 여기서는 두 가지의 오류를 검출 할 수 있다.

첫번째는 못배워서 무식한 것을 면죄부라도 되는 양 들고 일어난 오류이다.

못배운 것은 죄가 아니지만, 떳떳하거나 자랑할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모두 많이 배우고 유식해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면 스스로 그 대열에서 뒤쳐진 낙오자라는 뜻이오, 그러지 못할 여건이 있었다면 하고 싶은 바를 하지 못했다는 울분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못배우고 무식한 것은 바람직 하지 못한 일이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겸손을 가지고 잘 언급하거나 약점 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 남의 쓰라린 부분을 건드리는 것은 도의적으로 좋지 않다 여기기 때문에, 혹은 그 사람에게 너무 충격을 줄 지 모르므로 좋은 의도에서 그런 행동을 삼가는 것 뿐이다. 그런데 그런 약점을 둘러 잡아 그것을 가면처럼 둘러 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방패 삼으려 한다면, 더 이상 인의도덕을 따질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앞장서서 스스로 둘러썼으니 만큼 그것이 치부도 아니고, 그런 치부를 공격한다고 도의적이지 못한 것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좀 못할 짓이지만 처절하게 못배운 것을 놀려주고, 못 알아먹을 말만 해주고, 배운 다음에 다시 오라고 끊어버려도 논리적으로는 결코 죄가 되거나 무시한 것이 되지 않는다. 일단 이렇게 자신의 약점을 방패삼아 둘러써서 상대의 윤리관을 이용해먹는 것은 행동패턴이고 오류 자체는 아니지만 일단 대별하여 대강 '무식의 오류'라 해두자.

물론 정말 상대가 못배운 것을 조롱거리로 삼아 선공을 한 경우에 응답으로 이 말을 쓴다면 그것은 한맺힌 정당한 항의의 표현이 될 것이다. 허나 뻔히 논거를 들어 정연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런 말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스스로가 쓰레기임을 공인한 처사이니 고민하거나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지 말고 그냥 청소기로 쓸어서 밖으로 치워버리면 그만이다. 나이도 마찬가지다.

나이가 어리다는 건 많은 가능성을 지녔다는 의미이므로 많은 잘못이 있어도 넘어가주며, 봐주는 경우가 많다. 가령 미성년자는 어른보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훨씬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이것은 미성년자가 잘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못배우고 아직 생각이 짧기 때문에, 아울러 앞으로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정한 것이다. 즉 좀 심한 말로 표현하면 '아직 모자라고 덜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 질 수 없을 수 있으며' 그때문에 그만큼 많은 여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한 많은 특권을 주는 것을 권한으로 인정하는 되바라진 미성년자라면, 혼부터 내는 것이 맞다.

미성년자에게도 성인과 동등한 권리가 있다. 다만 그것이 달라서, 어린사람의 잘못은 처벌보다는 훈계나 가르침으로 넘어가며, 대신 어린 사람은 나이 많은 사람들의 지도를 따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물론 정당하지 못하거나 나쁜 어른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른의 말이라고 하여 무조건 이렇게 앞장세우며 거부하는 것은 같은 미성년자 입장에서 보아도 옳지 않을 것이다. 이것 역시 오류라고 부르기에는 좀 어패가 있지만 관성의 법칙에 따라 '미성년의 오류'라 해두자.

아울러 이 두 오류의 전제가 되는, 타당한 논거도 자기가 패배할만하면 '무시'라고 이름붙이는 못된 습관을 일단 '무시의 오류'라고 해두자

7) 저런 *가 있는 저기는 쓰레기통이야...

-> 완벽한 일반화의 오류 형태이다.

만약 *라는 인간말종이 어딘가의 단체에 들어간다 치자. 그렇다고 그 단체를 모조리 *와 똑같은 쓰레기통으로 생각하고 일반화, 정형화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쓰레기나 다를 바 없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게 따진다면 최소한 그 *가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모두 같이 있으므로 모두가 다 쓰레기이며, 자신도 쓰레기가 될 것이다. 단체라고 했지만, 집단, 가족, 기타 등등 모두 포함된다. *가 속한 집단을 욕하려면 그 집단의 행동양태를 볼 것이지, * 자체의 존재가 집단의 성격을 대별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저질러서는 안된다. 이것을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두자.

이 외에도 수백가지의 오류들이 있으나 가만히 살펴보면 그 거의 모두가 논리학에서 나오는 대여섯가지의 기본적 오류체계로 이루어져 그것들이 중복, 혼합되어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여섯가지의 기본오류는 여러분들에게 숙제로 남겨 두겠다. 그래야 책을 보고 나름대로 공부를 할 것 아닌가?

좌우간 이 글을 읽고, 논리를 생각한 사람은 우선은 그 스스로가 쌍무식한 사람이자 아무리 잘 보아주어도 궤변론자 뿐인, 입하고 밥통만 달린 기형적 인간이 되지 말고, 혹 그러한 인간을 만났을 적에도 잘 대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논리학은 아주 중요한 학문이다. 서양 중세에서도 일단 언어만 습득하고 나면, 다른 무엇보다도 이 논리학부터 먼저 가르치고, 다음에 형이상학을 가르쳤으며, 그 다음에야 실제 전문과목을 가르쳤다.

(괴테의 '파우스트'참조)
서양이 수천년간 앞서가던 동양을 이기고 수백년만에 급속하게 번성하게 된 근본적 힘이 바로 이 논리학에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이 논리학이며, 특히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이 논리학은 가장 중요한 기본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논리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사람이 많아져서 보다 원활하고 발전적인 인터넷 생활이 이루어지는 꿈을 꾸며 대강 잡글을 마친다.

copyright 이우혁(이우혁은 퇴마록의 작가다.)

출처 : [기타] 누리집

타블로의 성적표에 대한 몇 가지 의혹들



타블로 학력 진위 논란과 관련하여 설득력 있는 글 한 편을 보았습니다.
내용의 타당성 유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며 소개합니다.
무단 인용인만치 원저자의 삭제 권고가 있으면 언제든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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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gall.dcinside.com/epikhigh/315734
이 름:로비스트
제 목:성적표 분석이다. 머 이거 빼도 박도 못하겟네(까페펌글)
작성일:2010-08-27 06:47:38


그들이 왔다.
나치는 우선 공산당을 숙청했다.
나는 공산당원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유대인을 숙청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숙청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가톨릭교도를 숙청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20세기 독인신학자 마르틴 니묄러 (1892~1984)

위 글은 게시판의 댓글 중 “참음”님이 올리셨던 글입니다.
그냥 댓글로 묻히기에는 너무도 인상이 깊어 다시 인용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비리와 부정에
단지 우리가 그 직접적인 피해당사자가 아니라고 방관하고 침묵을 지킨다면
언젠가는 그 피해당사자가 되어 그 방관과 침묵의 대가를 뼈저리게 겪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때 가서 타인의 방관과 침묵을 탓하며 세상을 원망하지는 마십시오. 바로 그러한 세상을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 때 방관하고 침묵했던 그 자신들이니까요.

제가 쓰고 있는 장문의 글 중 성적표와 관련된 일부만 참고 삼아 올립니다.

- FRENLANG 60F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2000-2001 Autumn 학기에 과목 FRENLANG 60F, “The ‘Other’ in French films: An Inquiry into Race, Nationality & Gender Issues in France”이란 과목을 수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00-2001 스탠포드 교과목편람을 보면 FRENLANG 60F이란 과목코드도 존재하지 않고, 과목명에 있는 여러 단어와 그 조합을 이용하여 검색을 해도 “The ‘Other’ in French films: An Inquiry into Race, Nationality & Gender Issues in France”이란 과목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ENGLISH 187C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2000-2001 Winter 학기에 과목 ENGLISH 187C, “Seminar: Imagining the Modern World: James Joyce’s Ulysses”이란 과목을 수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00-2001 스탠포드 교과목편람을 보면ENGLISH 187C이란 과목코드도 존재하지 않고, 과목명에 있는 여러 단어와 그 조합을 이용하여 검색을 해도 “Seminar: Imagining the Modern World: James Joyce’s Ulysses”이란 과목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187C란 코드를 가진 유일한 과목은 역사학과의 HISTORY 187C이란 과목코드로서 그 과목명은 “Women in the Modern Middle East”입니다.

- English 296

석사학위프로그램을 위한 스탠포드 대학의 2000-2001 및 2001-2002 교과목게시판을 보면, 영문학(English and American Literature)전공의 석사학위를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During the first two weeks of the first quarter, candidates for the master's degree in English and American Literature should consult the adviser designated by the Director of Graduate Studies in order to draw up a three-quarter study plan. The student’s program consists of the following: English 296; two courses in literature before 1800; two courses in literature after 1800, …”
“Candidates for a coterminal master's degree must fulfill all requirements for the A.M. in English (including the language requirement), as well as general and major requirements for the A.B. in English.”
English 296의 교과목 명칭은 ‘Critical Theory and the Profession: An Introduction to Graduate Study for A.M. Students”입니다.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에는 English 296이란 수강과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타블로는 전공필수과목인 English 296을 수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탠포드 대학으로부터 석사학위를 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 JAPANGEN 156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1998-1999 Spring 학기에 과목 JAPANGEN 156, “Japanese Cinema”이란 과목을 수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98-1999 스탠포드 교과목편람을 보면 “Japanese Cinema”란 과목명을 가진 JAPANGEN 156이란 과목코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Japanese Cinema”란 과목명은 JAPANGEN 156이란 코드가 아니라 JAPANGEN 56이란 코드로만 존재합니다.

- English 165E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1999-2000 Autumn 학기에 과목코드 English 165E에 대하여 “The Invention of Middle English Literature 1300-1400”이란 과목명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탠포드의 교과목게시판의 과목코드 English 165E에는 1300이 아니고 1330이 분명히 찍혀 있습니다. 만약 성적증명서 발급시스템이 전산화되어 있다면 1330대신에 1300이 출력되는 일이 도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스탠포드 대학은 교과목에 대한 코드시스템은 도대체 왜 운영하는 것일까요?

타블로의 성적증명서가 조작이나 위조가 아닌 진본이라면, 우리는 스탠포드 대학에 과연 전산화된 성적증명서 출력시스템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와 교과목편람

다음은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상의 과목명(T)과 스탠포드 교과목목록에 나오는 과목명(B)과의 차이점을 나열한 목록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사소한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컴퓨터의 시각으로 볼 때는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CHILANG 1 (T) 1ST YEAR MODERN CHINESE – 1ST QUARTER
(B) FIRST YEAR MODERN CHINESE
CHILANG 2 (T) FIRST YEAR MODERN CHINESE – 2ND QUARTER
(B) FIRST YEAR MODERN CHINESE
CHILANG 21 (T) 2ND YEAR MODERN CHINESE – 1ST QUARTER
(B) SECOND YEAR MODERN CHINESE
CHILANG 22 (T) SECOND YEAR MODERN CHINESE – 2ND QUARTER
(B) SECOND YEAR MODERN CHINESE
COMM 1 (T) MASS COMMUNICATION AND SOCIETY
(B) MASS COMMUNICATION AND SOCIETY: MEDIA TECHNOLOGIES,
PEOPLE, AND SOCIETY
ENGLISH 164G (T) CALIFORNIA LITERARY IMAGINATION
(B) CALIFORNIA LITERARY IMAGINATION: The 19TH CENTURY
ENGLISH 165E (T) THE INVENTION OF MIDDLE ENGLISH LITERATURE 1300-1400
(B) THE INVENTION OF MIDDLE ENGLISH LITERATURE 1330-1400
ENGLISH 379B (T) VIRGINIA WOOLF
(B) SEMINAR: VIRGINIA WOOLF
ENGLISH 187E (T) MODERN POERY AND THE VISUAL ARTS
(B) SEMINAR: MODERN POERY AND THE VISUAL ARTS
ENGLISH 367 (T) AMERICAN LITERATURE AFTER WORLD WAR II
(B) SEMINAR: AMERICAN LITERATURE AFTER WORLD WAR II

CHILANG 1, 2, 21 및 22의 차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CHILANG 3 및 23의 경우에는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와 교과목목록상의 명칭에 차이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ENGLISH 379B, 187E 및 367의 차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ENGLISH 185A란 과목에는 “SEMINAR:”란 단어가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와 교과목목록상의 명칭에 모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COMM 1의 차이에 주목하는 이유는 COMM 211이란 과목의 명칭도 “MASS COMMUNICATION AND SOCIETY”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교양필수과목

교양필수과목의 수강여부를 분석해 본 결과, 스탠포드 대학이 요구하는 교양필수분야 중 다음 두 분야가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에서는 빠져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GER 2a: Natural Sciences subarea
GER 2c: Mathematics subarea
즉, GER 2a 및 2c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과목들을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어떠한 스탠포드의 학생이라도 교양필수과목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는 스탠포드 대학으로부터 학사학위를 받을 수 없습니다.

“While courses taken in fulfillment of the General Education Requirements should be taught by Stanford faculty members who are Academic Council members or Senior Lecturers, students may propose that work taken at another college or university be accepted in fulfillment of a General Education Requirement. In such cases, the Office of the Registrar's Credit Evaluation staff determines, after appropriate faculty consultation, whether the work is comparable to any of the specifically certified courses or course sequences.”

타 대학으로부터의 Transfer Credits에 대한 위 구절을 감안해 본다면, 타 대학에서 교양과목의 학점을 취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탠포드 대학이 자체 자료의 검토를 통해서 최종 결론을 내려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타블로가 자신의 성적증명서로는 학사학위조차 받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 English 190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동일한 과목코드 English 190으로 표기되는 “Intermediate Fiction Writing”이란 동일한 과목을 3학기(1999-2000 Winter, 2000-2001 Winter and 2001-2002 Autumn)에 걸쳐, 그 평점도 동일한 A를 받으면서, 반복하여 재수강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학기당 5학점씩 총 15학점을 스탠포드 대학으로부터 취득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아무리 반복하여 재수강하더라도 오직 과목당 하나의 학점만이 인정되고, 단지 과거의 나쁜 평점을 대신하여 보다 나은 평점이 부여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일한 과목을 세 번 반복 수강하더라도 한 과목 학점인 5.00만이 인정되고 평점은 C에서 A로 개선될 수는 있습니다.
아마도 스탠포드 대학의 학점체계는 우리의 상식과 이해를 뛰어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 영문학과 신입생으로 전공인 영문학 수강과목이 없다.

영문학과 신입생으로 보낸 첫 3학기(1998-1999 Autumn, 1998-1999 Winter, 1998-1999 Spring) 동안 영문학과관련 전공과목을 하나도 수강하지 않았다는 것은 믿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 한국어 대신 중국어를 6과목 수강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1998-1999 Autumn 에서 1999-2000 Spring 까지 6학기 연속하여 중국어관련 과목을 6과목(30학점)이나 수강했고 그 성적도 A 또느 A+ 로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에 나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블로는 한 TV쇼에서 중국어를 단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중국어를 단 한 마디도 말하지 못했던 그의 무능력은 차치하고, 한국어 원어민으로서 타블로가 한국어대신 굳이 중국어를 스탠포드 대학에서의 외국어로 선택한 비합리적인 점을 우리는 지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모든 해외유학 한국인들은 소속대학이 한국어를 외국어강좌로 제공하는 경우 항상 한국어를 외국어로 선택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좋은 평점을 취득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스탠포드 대학은 많은 한국어관련 강좌와 AP시험까지도 제공했었습니다.

또한 타블로가 한국이 아닌 일본 영화 및 문학과 관련햐여 3과목(12학점)을 수강한 점도 또한 매우 이상합니다.

타블로는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또는 거주경험상으로 중국이나 일본을 배경으로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우리가 의혹을 가지는 또 다른 강력한 근거입니다.
대부분의 한국유학생들이 하는 것과는 반대로, 타블로는 비록 한국어 원어민이기는 하지만 한국과 관련된 어떠한 과목도 수강한 적이 없습니다.

타블로가 한국어대신 중국어를 외국어로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
아마 여러분은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WCT 3A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1998-1999 Winter 학기에 과목 WCT 3A, “Writing and The Arts of Persuasion”이란 과목을 수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98-1999 스탠포드 교과목편람을 보면, 이 과목은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타내는 과목중의 하나입니다.
“INTRODUCTORY (FOR NON-MAJORS)
Classes for students whose major is undeclared, or who are not majoring in English.”
다시 말해, 이 과목은 전공이 지정되지 않았거나 영문학을 전공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과목입니다. 그러나 타블로는SAT나 GPA점수도 없이 단지 하나의 엣세이를 제출하여 스탠포드 대학의 영문학과에 입학했다고 본인이 분명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 ME 191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기초필수과목들을 이미 수강했던 기계공학 전공자들이 3,4학년에 수강하는 기계공학과목 ME 191이 들어 있습니다. 그것도 타블로가 영문학과의 신입생인 1998-1999 Winter 학기에 들은 과목 중에 있습니다.
이제 스탠포드 교과목게시판의 ME 191에 대한 다음 설명을 봅시다.
“ME 191. Engineering Problems and Experimental Investigations - Directed study and research for undergraduates on a subject of mutual interest to student and staff member. Student must find faculty sponsor and have approval of the advisor.”
밑줄 친 마지막 문장을 고려해 볼 때, 기계공학의 배경이 없는 영문학 전공의 1학년 학생이 상기 기계공학과목 ME 191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타블로는 자신이 기계장치를 다루는데 문외한이며, 그래서 운전면허증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라도 사랑하는 부인을 위해 면허증을 따겠다는 말을 2010년에 TV에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더욱이 그는 다음에 언급되는 바와 같이 경제학에서 나오는 숫자나 공식조차도 싫다는 말을 한 적도 있습니다.

- ENGR 297B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2학년 때인 1999-2000 Winter 학기에 공학과목 ENGR 297B, “Ethics of Development in a Global Environment (EDGE)”이란 과목을 수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99-2000 스탠포드 교과목편람을 보면, 이 과목은 “PRIMARILY FOR GRADUATE STUDENTS”란 제목하에서 제공되는 항목입니다. 또한 스탠포드 교과목편람을 보면, 과목코드 중 숫자 297은 주로 공과대학의 대학원학생이나 그 선행학습을 하는 학부학생을 위한 과목에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학의 배경이 없는 영문학 전공의 2학년 학생이 상기 공학과목 ENGR 297B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경제학

TV쇼에 나와서 타블로가 한 말에 의하면, 그는 숫자나 공식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월스트리트를 대상으로 한 영화를 통해 주식이란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또한 그 영화에는 경제학과 관련되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었다는 우스광스런 평까지 곁들였습니다. 어쨌던 이 배움을 바탕으로 그는 경제학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고, 담당교수님과도 원활한 대화가 이루어졌으며, 다른 급우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고 그 결과 A+란 탁월한 성적으로 그 과목을 마칠 수 있었다는 회고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입문수준의 경제학에서는 주식이나 주식시장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 것조차도 모르는 타블로의 무식함은 차치하고, 그의 성적증명서에서는 경제학과목이 보이지 조차 않습니다. 슬프지만 타블로의 우스광스런 영화평 중 ‘많은’을 ‘모든’으로 바꾸면 그것이 바로 맞는 말입니다. 경제학을 모티브로 하면서 월스트리트를 대상으로 한 영화가 혹시라도 있습니까?

- 영어교사 자격증

타블로는 스탠포드 재학시절에 미국 고등학교 영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기에는 교사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교사자격증 취득을 위한 교직관련 과목학점을 먼저 취득한 후 교사자격을 발급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 타블로의 성적증명서에서는 그와 관련된 어떠한 교과목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 뉴욕대학에서의 12학점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뉴욕대학에서 12학점을 취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3.5년 이란 정말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그는 한국에서 다양한 활동과 뉴욕에서의 영화조감독 역할과 더불어 뉴욕대학에서 학점까지도 취득한 눈부신 성과를 보여줍니다. 3.5년이란 기간 동안 정말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타블로는 여교수와의 사랑이야기까지도 TV에서 떠벌릴 정도로 그야말로 떠벌이 입니다. 그런 그가 뉴욕대학에서 정말 공부를 했다면 그 일을 떠벌리지 않았을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 뉴욕대학에서 기간에 대한 미스테리

‘다니엘선웅리’의 뉴욕대학에 관한 NSC자료를 보면, 그 수강기간이 ‘2000.06 - 2000.08’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스탠포드와 뉴욕 두 대학의 일정표입니다.
Stanford 1999-2000 Spring Quarter : 2000.03.27 – 2000.06.07
New York Summer Session I : 2000.05.22 – 2000.06.30
New York Summer Session II : 2000.07.05 – 2000.08.15

타블로가 여름계절학기 I & II를 둘 다 수강했다면, NSC자료는 ‘2000.05 – 2000.08’로 제시되어야만 합니다. 타블로가 여름계절학기 I 만을 수강했다면, NSC자료는 ‘2000.05 – 2000.06’로 제시되어야만 합니다. 타블로가 여름계절학기 II 만을 수강했다면, NSC자료는 ‘2000.07 – 2000.08’로 제시되어야만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NSC자료상으로 기록된 기간은 논리적으로 도출된 위 기간들과는 합치하지 않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기말시험이 2000.06.02에서 2000.06.07까지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타블로가 여름계절학기 I을 수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기간불일치는 차치하고, 여름계절학기 단 40일 동안 12학점을 취득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 AP학점으로 16학점

타블로의 성적증명서를 보면 고등학교에서의 선취학점인 AP학점이 16학점이 있습니다. 그는 1998년에 SIS(서울국제학교)를 졸업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AP학점제도가 도입된 학교는 2001년 민족사관고가 그 처음이었고, 2002년에 첫 시험이 있었습니다.
더욱이 타블로는 고등학교 재학시 여러 과목에서 낙제점인 F를 받았던 사실을 스스로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비록 그가 고등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했다고 주장하고 있기는 해도,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을 것이란 합리적인 의심의 근거도 있습니다.그가 제시한 고등학교졸업사진 중 다른 모든 급우들은 졸업까운을 입고 있으나 오직 그 만이 평상복차림으로 사진에 나온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최우등 졸업의 근거로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을 제시했으나, 그 사진 속 인물의 복장과 호수가 보이는 배경으로 인하여 그가 아닌 그의 형 사진인 것으로 밝혀 진 바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