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07※爐邊새실.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07※爐邊새실. Show all posts

검사외전...강동원의 붐바스틱, 이것이 원조다^^





선거철의 소음,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데 걍 봐 주자.

이른 아침 늦잠을 깨우는 소음, 길을 막아서는 무례함,
믿음 가지 않는 공약,
그래도 욕 본다며 봐 주자.

체육관 선거보단 낫잖는가.
민주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잖는가.

근데 기왕 떠들거면 저 정도의 귀요미는 갖추고 떠들어주면 
'더' 좋고 '더,더,더' 잘 봐 주고 싶어진다.

흥겨움이라도 남겨준다면
찌푸둥한 세상,
찍지는 않더라도 밉상이진 않을 터!^^


하늘도 찌푸덩한데 이런 날엔 비라도 내렸으면...






.
신
.
영
.
복
.

..사랑과 희망, 자유, 그리고 평화..



과유불급 - 과한 늠과 모자라는 늠 - 만용과 비굴의 닮은 꼴

과유불급
과한 늠과 모자라는 늠
만용과 비굴의 닮은 꼴
꽃샘추위를 부르는 미친 늠 하나, 둘 !! 
역시나 세상은 요지경 
그래 이런 게 사람사는 맛이지
모두가 과유불급의 도를
알고 행하면
그게 사람사는 세상이가
도인사는 무릉이지
아니 그런가^^


검찰이 지난 5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김기종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6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김 대표가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불현듯 떠오른 노래...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아침 불현듯 떠오르는 노래 하나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그 때, 그 때는
그 때는 누군가 우리 곁을 속절없이 떠나갈 때 부르던 노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드러나는 추악함,

그런 어이없는 어른들의 호작질 놀음으로
속절도 없이 희생된 아이들을 먼먼 곳으로 보내노라니
보름 내내 먹먹하고 답답하던 가슴을 이 노래로 달래 보았습니다





조작이 몸에 배여 조문마저 짜고치는 천인공노할 작태




오체투지 사죄라도 부족컨만 엎드려서 절 받는 양 사과도 공주처럼 도도하게




대한민국의 최고 존엄은 명실상부 선거유세라도 하듯 듬직하게 참으로 냉철했다. 아니 저승사자처럼 냉정했다. 무릎꿇어 내 새끼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에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눈물 한 방울 없이 그래 언니가 철의 여인 짱 맞다 짱 먹어라 짱!

희망고문...감성과 이성의 딜레마


*아래글은 펌글입니다. 굳이 이런 글을 이 시점에 퍼온 사유는 '희망고문...감성과 이성의 딜레마'라는 제목으로 대신합니다. 부연하면, 펌글을 보면서 별안간 '에어포켓이 감성과 희망이라면 시신수습은 이성과 현실'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과 감성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상반된 가치가 아니기에 '딜레마'란 단어에 기대었습니다.

/////////////////////////////////////////////////////////////////////////////////////////////





메인에 올라있는 글 대부분이 비전문가들의 엉터리 얘기들이라 실소를 금할수가 없네요. 관련 지식이 없으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야하는데, 대한민국 사람들의 아는척 떠버리는 모습과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오오 그런갑다하고 정부까는 얘기 조금만 섞어주면 그냥 우루루 추천해버리는 아고라의 행태도 정말 갑갑합니다.

저는 현재 노가다 20년 정도 하고 있는데, 그동안 바닷가에서만 15년정도 일했습니다. 항만, 방파제, 등대,.. 동해, 서해, 남해 싹다 돌아다녀봐서 각지역 수중상황도 나름 알고 있고, 선박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알고, 각 현장들 직접 수중에 들어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급할때는 직접 수중작업도 할 다이버실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우선, 배는 균형을 잃고 넘어가지 시작하면 자력으로 다시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 배들이 선저에 여러가지 장치들을 이용해서 조절을 하곤하지만, 그것도 어느 선을 넘어서면 무의미해집니다. 언론들 살펴보니 최초 신고시각이 7시20분경으로 나옵니다. 그러면, 이때 주변의 중형급 선박들 수배부터 들어갔어야 맞습니다. 중형급 선박들이 재빨리 이동해서 세월호와 결박하는것이 침몰을 막을수 있었던 유일한 방벙이었다고 봅니다. 이게 사실 가장 중요하고 어떻게 보면 상식적이라 할수 있는데, 언론에 나온 전문가라는 사람들중 그 누구도 언급을 않더군요.

세월호가 약 7000톤급 정도 되던데, 이거 가라앉아 버리면 사실상 해상크레인으로 인양하는거도 무지 버겁습니다. 뭐 3000톤급 세대가 간다고 하는데, 감당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다른 부력 장치를 설치해서 인양을 할듯한데,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습니다. 해상에서는 10톤짜리 돌을 옮기는데도 50톤짜리 크레인이 휘청휘청합니다. 

지금 뒤늦게 군잠수인력 수백명을 투입한다고 설치고 있는데, 제발 헛짓거리 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사고해역 수심 37m에 시야가 20cm 나온다고 하는데, 들어가서 도대체 뭘 할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쪽은 조류도 무지 세다고 하는데, 그냥 하는 시늉만 하고 나오는 수준밖에 작업이 이루어질수가 없습니다. 일반인들은 이거 이해 못하시겠지만, 서해쪽 조류가 센 곳은 물살에 마스크(수경)가 날아가 버리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리고, 만약 에어포켓속에 생존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을 무슨 방법으로 구조를 하겠습니까? 수압에 의해 갇힌곳의 문을 열수도 없을 뿐더러 구멍을 뚫을 수도 없습니다. 설령 문을 열었다치더라도 밀려들어오는 물살에 그냥 전부 즉사합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치더라도 또 그분들 입에 호흡기 물려서 다시 부상해야되는게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그냥 웃음밖에 안나옵니다.

간혹, 어느 언론에서는 생존자들을 위해 산소(공기겠죠)를 주입한다는 기사도 보이는데, 이또한 말도 안되는 얘기입니다. 그냥 구라100%입니다. 생존자들이 있을법한 공간에다 구멍을 뚫고 공기를 주입하면, 그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압사합니다. 그리고 시간적으로 내려가서 구멍뚫기도 불가능하고, 그 구멍에다 방수처리하고 호스를 연결해서 공기를 밀어넣는거 자체가 그냥 상상이지 현실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유가족들분 심정은 알겠지만, 무리한 수색을 종용하는건 자제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군잠수사들 대부분이 제가 언급한 내용들 알고 있고, 무의미한 짓거리임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위에서 까라고 하니 어쩔수없이 까는 겁니다. 군잠수병력들도 누군가의 남편이고 형이고 오빠고 동생입니다. 또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하면 이에 대한 책임은 또 누가 져야겠습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잠수부를 통한 무의미한 수색은 그만두고, 한시라도 빨리 배를 인양하는게 최선으로 보여집니다. 관계부처에서도 이러한 사실들을 여과없이 유족들에게 알려야한다고 봅니다. 답도 안나오는 상황에서 헛짓거리하며 유가족들 희망고문하는건 정말 무책임하다고 봅니다. 유가족분들 한데 모아서 정확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추후 피해보상에 대해서 책임있는 자세를 보였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다시는 이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대로된 사고대처에 관한 메뉴얼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사고신고 시간은 제가 착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8시이전에 사고소식을 접한걸로 분명히 기억이 나는데, 관련기사들 검색이 안됩니다. 이부분은 저도 사람이니까 실수할수 있으니 양해바라며, 사고시간을 고의로 조작하여 무슨 음모론을 만들어서 정부 비판하려는 의도따위는 추호도 없습니다.

~ 이해가 가지 않거나 이견이 있으신 분들은 답글로 고견을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설명드린바와 같이 저자신이 많이 아는 부분이라서 자신있게 글을 적었지만, 혹시 제가 착각한 부분이 있을수도 있고 설명이 빈약해서인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들도 계신거 같습니다.

요즘 시간이 좀 나서 댓글들 읽어보고 최대한 상세히 설명을 드리고 있는데, 같은 내용을 두번, 세번 계속 반복해서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뭐 일베니 까스통이니 하는 인신 모독성 발언도 많으신데, 저 오프라인에서는 빨갱이 소리 듣고 다니는 중도를 지향하는 소시민입니다.  다른글보기 해보시면, 제가 거짓말을 하는게 아니란걸 느끼실겁니다.
/////////////////////////////////////////////////
*위 글은 원글자의 동의없이 퍼온 글이며 원글자의 삭제요청이 있으면 언제든 응하겠습니다.


....................어린 꽃들과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가족분들을 위로합니다.





변호인 - 내 생에 가장 재미없었던 영화


 
어둠 속 두리번거리며
발광하는 C열16, 17 불빛을
찾던 그 순간까지는
기대도 있었다
 
일베가 어쨌다나
노빠가 어쨌다나
개봉도 전에
영화는 이미 세상 밖에 있었기에
 
지울 수 없는 기억
그럼에도 지우고 싶은 기억들
 
변호인

















객석을 나서는 발걸음
 
모두들 먹먹하다는데
울화가 치민다는데
눈꺼풀이 습해졌다는데
 
내 탓에
두 번 보는
옆구리가 묻는다
어떻냐고
 
하~
그냥 그래
그저 그래
 
아무런
분노도 슬픔도 감동도 없다
그저 덤덤할 뿐였다
너무도 재미없어서
 
진짜사나이
김형근과 장혁의 이별 장면에도
함께 울던 나인데
아직 눈물이 마른 것도 아닌데
 
거실에 똥 누고 달아나는
강아지 놈에게 빽해대는 나
아직 분노도 남아 있는데
 
그랬다
내 거울속 영화였다
만 번도 백만 번도 더
거울 속에서 보았던 영화
한 번 더 본들
새삼스러울 것도
짠할 것도
전율이 오를 것도 없는 그런
오늘도 난 거울 속에서
몇 번이고 변호인을
보고 또 보았다
 
어머니의 모습도, 고무신도,
너덜너덜하던 국방색 군복도,
사명감에 이글거리던 형사도,
거미줄에 걸린 파리처럼 파르르 떨던 ‘빨갱이’도,
욕조도, 테이블도,
최루탄, 도로, 국밥집,
변호사, 검사, 판사, 
법정, 짜고치는 고스톱판과도 같은
 
장면 장면이 너무도
생생해서
아니 식상해서
하나도 재미없었다
눈물 한 방울도 없었다
분노게이지에는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난
삼십여년 동안
보고 또 보아온 거울 속
변호인을 2014년 겨울 어느 날
스크린에서 또 본다
 
지울 수 없는 기억
그럼에도 지우고 싶은 기억들
 
변호인 어땠냐고?
 
백만 번도 더 본 영화를
한 번 더 보는 느낌였다
짝지야...
 



벌초 가는 길


40여년만의 최고라는 여름 폭염은 
벌초일을 앞둔 내내 마음 한 켠의 큰 짐이었다
조상 살피는 일을 마음 한 켠 '짐'으로 재워두는 게 불경한 줄 알면서도 
 올 여름 더위는 학시리 몸과 맘을 움츠리게 했다

벌초 가는 길,
한번쯤은 기록으로 남겨보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려 오르지 못할 수도 있음에...

후손들이 조상을 잘 둔 탓인지 조상들이 후손을 잘 둔 탓인지
다른 집안의 벌초일은 반나절 수고거리일 뿐이더만
우리네 벌초일은 1박2일의 여정이 아니고선
감당키가 녹녹찮은 년중행사다 

벌초일 전날, 각지에서 모여든 일곱 여덟 남짓 일가 형제들은
벌초를 빙자하여 간만의 회포를 푸는 판을 벌인다
무려 13기에 이르는 산소 벌초는
담날 새벽부터 한 나절, 때론 한 나절 반 이상의 공을 들여야만 하기에 
그런 성전(?)에 나서기 전의 사전 몸풀기인 셈이다

앞산팀, 옆산팀, 뒷산팀
난 작년과 재작년에 이어 올해도 앞산팀을 자원했다
특전사 출신의 조카가 작년 모처럼 조상 학습(?) 삼아
앞산팀에 붙었다가 불어난 뱃살을 감당치 못하고
앞산 절반도 오르지 못하고 중도 하산 했을 만큼
앞산팀은 우리네 벌초팀의
최정예 부대다

모르는 혹자들이야 사서 하는 고생으로 뵐 테지만 
집집마다 사연이 있고
조상님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후손들의 편의를 위해 약삭빠른 이장을 도모하는 것도 
그리 간단치가 않다.

산소마다 변변한 비석 하나 제대로 놓아드리지 못하는 연유도
조상들이 누운 지세가 호랑이의 꼬리 자락이라
호랑이 꼬리 위에 돌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집안 조상들의 명령 때문이란다 ㅎ~

앞산 4기 옆산 2기 뒷산 7기
내 기준으로 앞산 4기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5촌 당숙 어른,
옆산 2기는 사촌 형님, 복잡한 사연의 산소1기
뒷산 7기는 할머니, 첫째 큰아버지, 큰어머니, 둘째 큰아버지, 큰어머니, 5촌 당숙,
그리고 아부지의 산소다

동 트기 전 뒷산 7기 중 4기는 이미 초벌을 했고
아침 식사 후 앞산과 옆산 그리고 뒷산으로 3팀을 꾸렸다
새벽부터 뒷산 벌초에서도 나섰던 난 
이번 벌초에서 앞산 뒷산 방방 뛰노라면 올 한해 조상님들께서 많이
예뻐해주시라는(^^) 은근하고도 굳센 믿음과 
고난의 행군을 무탈하게 끝낼 결기를 다잡으며 
이승과 저승으로 가르는 저승문(ㅋ 오죽했으면)으로 들어섰다 



2.8미터 높이의 저승으로 가는 문이다



오름길은 오른쪽길
내림길은 왼쪽이다



저승문에서 100미터 남짓
딱 여기까지만 이승의 여운이 남았다



앞산의 기슭 경계하는 풀밭을 지나고



수확 후의 자두 과수원을 지나서



길 없는 길 저승길의 시작이다



제1과제, 5촌 당숙 어른의 산소.
직계 후손들도 있건만 가는 길 어귀여서
그냥 지나치지는 못한다



사촌 막내 동생의 익숙한 손놀림이 가히 농군의 솜씨다
도회지로 나간 형들 대신 마을을 지키느라
몸고생 맘고생도 많을 텐데도
시골에서 함께 하는 사촌 큰형님의 잔소리를
무던하게 받아내는 모습이 대견함을 넘어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혹자들 보기엔 어떨진 몰라도
처삼촌 벌초하듯 하지 않으려 나름 애도 썼건만
갈 길이 구만리라 이리 사진으로 보니 서둔 티가 역력하다



지금부터의 가시밭길은
특전사도 포기한 고난의 행군길



애초에 길은 없었다
작년처럼 길잃고 헤매지나 않았으면...



작년 우중 벌초 때보단 
그나마 덜 미끄러워 다행이다 



등짝엔 제수 한 배낭 왼 손에는 낫을
오른손엔 갈퀴
길 없는 산비탈 
종군 사진기자 놀이를 보태기가 무척이나 버겁다



누군가는 신발장에 1억4천 거금을 꼬불쳐 두었다는데
여차하면 구를 듯
비탈에 발목이 휘청일 때마다  
아끼느라 신발장에 꼬불쳐 둔
질 좋은 내 등산화가 억만금보다 더 사무치더라



거의 80도를 넘어



직벽에 가까운 경사면을 다시금 보노라니
지난해 뱃살 무거워 중도 하산했던
특전사 출신 조카의 맘도 이해간다
오죽했음 올해는 따라나서지도 않았을까
장가도 안 간 조카녀석, 
불혹과 지천명을 넘고 낼 모래 환갑을 앞둔
삼촌, 오촌 아재비들의 날렵한 몸놀림 앞에선
특전사 무용담일랑 다시는 못 꺼낼 성싶다
대한민국 특전사도 능가하는 벌초특공대!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가시덤불 헤치고~~
우리는 간다



차라리 소수 정예가 낫더라
대여섯 정도 무리지었던 작년에 비해
소수 정예 3인이 움직이는 이동 속도는 한결 빨랐다
헥헥거리며 뒤쳐지던 특전사 챙길 일도 없으니 ㅋ~
특전사 출신 조카에겐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듯 ㅎ~



다리에 쥐가 내릴 즈음 



해발 200여미터 높이의 산중턱



이윽고 할아버지의 산소에 도착



해마다 멧돼지 파헤친 흔적에
맘이 짠해도 어쩌지도 못한다
종손인 사촌 큰형님의 벌초 후 제가 이어지고



다시 비탈진 산길을 횡단하여
몇 구비 골을 지난 뒤



증조 할머니를 뵌다
작년 봉분에 그늘 드리우던 주변의 솔가지를 
쳐낸 탓에 햇살이 밝다



내 몫은 낫과 갈퀴였기에
벌초중인 형제들을
짬짬이 사진에 담을 여유가 가능했다



산중 깊은 곳이라 자주 돌볼 수 없음에 
세월의 흔적 만큼 봉분은 일그러졌어도
연중 한 번 작은 정성이라도 들이니 한결 낫다



다시 산비탈을 비스듬히 따라 올라



사촌 형님의 발끝 감을 따라 걷는다
작년에 참 많이도 헤맸었다



올해는 사촌 형님의 촉이 살아 있나 보다



발목을 휘감는 칡넝쿨과 가시덤불을
헤치며 나아가니



오늘의 마지막 정성을 들일 
증조할아버지의 묘소에 이른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내겐 사촌형님이 한마디 하신다
아직 한창인데 이거 갖고 헥헥거리나!
겸연쩍은 웃음 머금고 속으로 나직히
행님, 한창 아임니더. 저도 물 만큼 뭇심니더^^
라고 읊조려 보는데 이그 못낫다 싶다



사촌 동생과



사촌 형님의 익숙한 마지막 손놀림이 끝나고



깊은 산중 봉분 위로 뻥 뚫린 하늘에
뭉게구름이 비죽이 지나간다. 
등짝은 땀으로 범벅인데 마지막 벌초를 끝낸 맘은
뻥뚫린 하늘 구멍만큼이나 시원하다



내려가는 길



가시덤불 우거진
내려가는 길은 더욱 난관이다



오를 때는 횡단도 있었지만  
하향 직진으로 뚫고 내려가는 길은 더욱 가파르다
신발장에 꼬불쳐둔 등산화여!
낚시용 경등산화를 신고 나섰던 걸
두고두고 후회케 만드는 내림길이었다



산도 말이 없고 앞서가는 동생도 형님도
말이 없다



산기슭을 벗어날 즈음



환한 이승의 세상이 멀찌감치 보인다
시원하다 바람없어도
눈이 다 시원하다



밭둑을 따라




밭고랑이 반갑다 
오전 내내 첨 밟아보는 길 아닌 길이다



우측길로 올랐다가 산을 한 바퀴 휘감아
좌측으로 내려오게 된다 



이윽고 도착한 이승과 저승의 경계
2.8미터 이승으로 가는 문! 



이쪽에서 보면 저기가 앞산
저기서 보면 여기가 앞산



뒷산을 맡았던
 다른 형제들의 매끈한 솜씨에서
앞산 특공대에 비하면
한결 여유가 느껴진다



저곳이 앞산
오전 내내 헤매고 다녔던
조상들의 얼이 숨쉬는
마치 저승과도 같았던...

그렇듯 해마다 녹록치 않은 벌초가
돌아서면 기쁨인 것은



아부지 잘 계신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아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