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수경제연구소는 뭘 연구하는 걸까.~

*'이뻐라 하는 분'의 글 한 편 옮겨왔습니다.

광수경제연구소는 뭘 연구하는걸까.~
작성자:'루울'
작성일:09.08.04



고장난 시계는 하루에 2번은 정확하다.

김광수 경제 연구소의 글을 보면 고장난 시계전법을 충실하게 구사하는 것 같다.
이 곳은 작년부터 쭉 아파트 값 대폭락, 주가 대폭락, 경제 대공황설등 부정적인 경제전망의 근원지인데 올 들어서 맞은것은 하나도 없다. 강남 재건축은 지난달 말에만 1억 2천 가까이 올랐으며 강동구 등 전세도 쭉쭉 오르는 중이다.. 언제 폭락하려나? 공황은 언제 올 것인가? 글쎄 계속 저런 주장만 하다보면 고장난 시계처럼 2번은 맞겠지.

나는 작년 하반기에 저사람들의 글을 처음 봤었는데 그때는 미네르바를 위시하여 폭락이 대세라는 시기라 '집사지 말라'고 부르짖는 저 사람들이 대단한 분석집단인 줄 알았다. 그러나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 걸 보면 한마디로 간판만 연구소이지 실제로는 동네 부동산 업자보다도 현실인식이 정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 연구소(?)가 자꾸만 틀린 전망을 내놓는다는 것은 자신들의 관점을 대폭 수정해야 할 시기가 도래했다는 것이며 분석 과정에서 큰 오류를 간과해왔다는 말이다. 정부의 대응 등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미흡했다면 그 간의 오류를 인정하고 다시 수정하여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줄곧 모든것이 정부 탓이며 '멸망은 곧 도래할 것' 이라는게 저들의 분석이다.

또 한가지 문제는 이들이 사용하는 어법이다. 경제 연구소의 말하기는 설명하는 방식의 말하기여야 한다. 최대한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드러난 현상과 사실을 근거로 예측해야 한다. 뒷받침 논거로 각종 경제지표와 수치와 도표를 해석할 때에도 이런 관점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경제연구소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게 정치 이념을 논리 전개의 전제로 삼고 있으며 당위적인 말하기('-해야 한다'로 끝나는 문장)를 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강남의 아파트가 수십억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가격은 떨어져야 합니다

'거품에 취하다 보니 사람들의 판단력도 흐려지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타락과 탐욕, 맹목이 어느 정도는 자취를 감출 수 있을까요' '건설업체에 퍼준다는 증거' ...

위 구절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구구절절 동감하는 말이지만 경제 연구소라는 곳에서 이런 식의 편견을 전제로 예측하는건 선동에 가까우며 경계해야 할 태도다. 아무리 도표와 수치를 들먹여도 친 정부 혹은 반 정부 등의 가치 판단이 개입되면 각종 지표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볼 수가 없고 마치 사학자들이 역사 해석하듯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추어 자료를 해석하게 되므로 정확성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실제로 김광수 경제 연구소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당위에 자료들을 끼워 맞추고 있다. 일본의 버블 붕괴와 우리나라의 상황이 유사하다는 점을 들어 우리나라도 버블 붕괴가 코 앞이라고 예측했던 '케네디언( 김광수 연구소의 다른 필명)'의 글은 이미 다른 논객들에 의해 자료를 폭락론에 끼워 맞추기식으로 해석했다는게 속속들이 드러났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러한 방식의 인용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정당에서 쓰는 방법이지 경제 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건 곳에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비난하는 조중동도 이런식으로 자신들의 논거를 정당화 한다. 계속 이럴거라면 차라리 연구소라는 간판을 떼고 '김광수 경제 가이드'로 간판을 바꾸던지..

더 재미난것은 관객이다. 어째.. 멸망한다는데 관객들은 더 좋아한다. 멸망하면 가장 힘들어질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사람들까지 같이 망해서 힘들어질거라는 환타지에 빠져 다함께 만세를 부른다. 종말론에 심취해서 제3의 행성x가 다가온다며 헛소리하는 사람들과 경제 대공황론에 빠져 '다 망해버려라'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처지는 매우 비슷한 것 같다. 실제로 원조 스마일이라는 사람은 서로 다른 id를 만들어 두가지 주장을 한꺼번에 하고 있더라(가짜 신동아k이메일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함) 그리고 그런 부류들의 말에 혹하는 수준을 가진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서 뭐에 쓰려고 하는지 김광수 경제연구소의 타겟과 영업 전략은 실로 안타깝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경제 공황/ 부동산 멸망은 언제 오는가? 나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부동산이 망할 일은 적어도 향후 20년( 짧으면 10년) 안에는 없을 것 같다. 간단하게 사람 심리면에서 접근해봤을 때 그렇다. 특정 재화가 재태크 수단으로 몰빵되는 이 상황이 옳으냐 아니냐를 따지는것은 먹고 먹히는 이 상황에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그렇게(재태크 수단으로) 믿고 있으면 쭉 그렇게 흘러가는거다. 게다가 현재 사회 초년생의 목표1위는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결혼준비 하려면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집'의 소유 유무이다. 집을 소유하는것이 어렵더라도 삶의 기본이자 훌륭한 재태크 수단이므로 집한채를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현실 세계의 유주택자들의 정서와는 달리 아고라 같은 곳에서 주택 가격 폭락을 기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 역시 집을 갈구하는 무주택자들이 많다는 얘기다. 무언가가 엄청나게 욕을 들어먹고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을 갈구하는 자들의 결핍과 욕구불만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철수가 커피를 마시는 순이를 종종 따라다니며 그녀의 사적인 소비생활에 대해 된장녀 등등 동네방네 갖은 비난을 하고 다니는 근본원인은 순이에게 뜯겼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순이를 '사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광수오빠가 바라는 폭락은 없을것이다.

게다가 가진자 vs 못 가진자의 구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세상은 가진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정책 입안자들도 가진자, 결정권도 가진자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덜 가진 자들을 배려하는 사회 안전장치는 아직 우리사회에선 말 그대로 최소한의 생계보전으로써의 역할 그 뿐이다. 만약 작년 말처럼 자산가치가 폭락할 상황이 닥치면 정책 입안자들은 최대한 버블이 연착륙 하도록 하기위해 갖은 조치를 다 하게 된다. 아니면 공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 시스템은 사회가 최대한 양적 질적으로 번영하도록, 최소한 사회안정을 유지하고 공멸만은 면하도록 돌아간다. 결국 폭락은 현실화되지 못하며 위기는 극복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런식으로 들쑥 날쑥하는 과정을 거치며 경제는 꾸준히 성장한다.

하지만 더 무서운것은 가지기를 갈구하는 덜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중도성향이라고 지칭하는 3-40%의 사람들이며 대개 선거때는 보수 정권을 지지하는 굳건한 부동층이다. 발은 땅에 있으나 눈은 하늘에 가 있는 이 사람들을 보면 아무리 진보적인 세력이 기적적으로 정권을 창출한다고 해도 결국 얼마 못 버티고 보수(라고 불리는 수구)에게 정권을 넘겨주는게 수순인 것 같다. 예컨대 진보가 복지를 이룩하고 경제성장까지도 안정적으로 달성한다고 해 보자. 사람이 먹고 살 만해지면 자연히 보수화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이번 정권 교체기때 여실히 드러난 것 아닌가. 노통 때 그냥 저냥 먹고 살던 사람들은 2006-7년쯤 경기가 좋아지자 전부 부동산 펀드 투자의 열풍에 동참했다. 그리고 그런식으로 확보한 자산 뻥튀기의 환상에 올인해서 ceo출신의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당시 돈에 대한 대중의 열기는 실로 대단했다. 자산을 늘리고자 하는 군중의 욕망은 정치인의 각종 의혹 따위 앞에서는 끄덕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처럼 민주주의 위기 어쩌고 신경 쓸 일 없이 그저 팔자좋게 돈돈하던 시절, 자신들의 손아귀에 들어온 것 한 개도 놓치지 않으려 동네 아파트 어귀마다 '뉴타운 환영'플랭카드를 걸어대던 주민들을 기억하는가. 그것이 바로 나와 당신과 평범한 이웃들의 속셈이다. 국가에서 종부세, 투기 억제책으로 군중들의 욕망을 통제하려 했을 때 사람들은 더욱더 서로의 팔을 걸어 이를 악물고 더 드세게 버텼다.

경제분석한다고 나불거리는 사람들은 그냥 개인의 속성이 원래 그런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욕망을 죄악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정치인들이나 김광수나 아가리언의 착각처럼 도덕적으로 훈계해야 할것도,나쁜것도, 좌도 우도 아니다. 광우병 파동 때 길바닥에 나온 유모차 엄마 중에 아파트 가격 담합에 찬성한 사람은 없을 것 같은가. 광우병 사태때 100만이 길바닥으로 나온것은 좌파였기 때문이 아니라 새끼들한테 미친소 멕이기 열불나는 마음에서였다. 더럽지만 세상일이 원래 그런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이나 돈문제 앞에서 이념이고 뭐고 얄짤없다. 자기 이득대로 움직인다. 너나할 것 없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집값 안정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사실 '집값 안정시켜 달라'는 부탁은 '남의 집값 안정'이지 결코 내 집값 안정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이것은 명백한 진리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보면 우리의 영악한 이웃들도 돈 앞에 좌우 없는데 김광수 연구소는 이념에 따라 경제를 해석하며 큰 패착에 빠져 있다. 집 값 폭락과 대공황론을 거론하며 집사지 말라고 하는 주장 역시 어느정도 가려들어야지 무턱대고 믿고 있다가는 손해를 볼거라고 생각한다. 김광수 연구소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전망이랍시고 내놓으며 각종 찬사를 받으며 아고라에서 이름을 팔았던 부류들을 보면 세상이 당장 망한다며 신도들을 꼬드겨 놓고는 막상 세상이 멸망하지 않자 '기도의 힘' 덕분에 지구 멸망이 늦춰졌다고 발뺌하는 종말론 집단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진짜 미네르바는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지만 아직은 내놓을 때가 아니다'는 readme의 말처럼 언젠가는 공황이 올거라는 이 사람들의 주장은 판에 박았다. 차라리 대폭락은 내년 연말에 산타클로스가 갖다줄거라고 해라. 아직 산타클로스를 믿는 애색킈도 있거든.

이 쯤되니 떠오르는 사람도 있다. 작년 하반기에 김광수 연구소의 글을 읽고서 하나 있는 집을 팔고 보험과 자산을 모두 현금과 한 뒤 전세 얻었네 어쩌네 하며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았던 사람들 말이다. 당시 분위기를 봐서는 진짜였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은데 설마 진짜라면 그 사람은 올 해 휴가 갔다올 정신은 있을까?
...
세상의 복잡 다양한 일들을 좌우의 이분법으로 밖에 해석할 줄 모르거나 이념에 꿰어 맞추느라 보편 타당한 상식을 간과해버리는 사람들에게서는 얻을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의 말은 오히려 빗나가는 화살이다. 미네르바 사태에서도 보았듯, 절대적으로 서민(약자)를 생각해 주는 누군가는 나타나지도 존재하지도 않는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정체 모를 보험 설계사, 복덕방 주인들(배씨도 이 업종이라며?), 정치 실업자, 출판업자(인터넷 게시판에 깔려있음)들이 속내를 감춘채 얼마나 드글거리는지 몰라서 저런 의견들을 진지하게 참고하는건지. 내 장담하는데 여기서 경제 고수소리 들으며 아가리언 구미에 맞는 폭락론이나 감상적인 패배주의에 젖은 내용을 '시리즈'로 도배하다시피 하는 사람은 대개 유료서비스 업자나 책 홍보하는 출판 업자들의 밑밥 뿌리기 작업의 일환으로 개입된 사람들이다. 나중에야 깨닫겠지. 어차피 읽어봤자 자위비슷할 뿐 별로 도움되는 얘기도 아니던데. 정말 실용적으로 살고 싶다면 폭락론자들의 지루한 예언을 참고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좃선일보를 보면서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무시하고 그들이 다루는 정보와 팩트만 뽑아서 참고하는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좃선일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으레 한겨례만 보는 사람을 떠올리지만 좃선일보를 싫어하는 사람중에는 실제로 이런식으로 좃선을 '활용'하는 사람도 많다. 힌트를 얻을 수 있거든. 나는 이게 좌/우나누면서 편협해지는 것 보다는 살아가는데 현명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광수 경제 연구소를 보면 정확성을 위해 냉혹할 정도로 가치 중립적이어야 할 곳이 마치 정당의 산하기관 (ex 여의도 연구소)처럼 정치 논리를 기반으로 움직이며 반 쥐명박쪽의 상처받은 유료 관람객을 꼬드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시종일관 바긔를 까줌에도 불구하고 별로 담담당당하게 보이지 않는다. 한 때 '공황전야' 어쩌고 하며 실컷 경제 공황설 퍼트려 책 홍보하고 나서 싹 사라져 버린 몇몇 장사꾼들과 비슷한 영업 전략을 쓰는 듯. (그러나 폭락론에 위로받는 아고라의 고객들은 추천은 날릴지언정 지갑은 안연다. 그것만 아세요.)

김광수 경제 연구소의 오류에서 알 수 있듯이, 연구 집단의 결과물은 그들의 연구 방식이 정치(이념)중립적일수록 정확하다고 할 것이다. 경제에 적합한 방식을 따라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관점을 가지고 예측하는 사람들과 경제를 역사평론이나 정치선동하듯 하는 사람들 중 누구의 말을 더 신뢰할 것인가. 자신들이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경제 상황의 청사진이나 대중이 혹할만한 청사진을 제시해 놓고 모든 현상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당위 논법으로 호소하는 것은 정당이 할 일이다. 경제 예측에 정치성향을 반영해서는 안된다. 경제 연구소는 분석하는 곳이지 희망사항을 얘기하는 곳이 아니거든.

그러나 각종 연구소보다도 확실한 것은 주변의 멍청한 인간들을 '인간지표'삼고 그 반대로 움직이는 것임.
세상은 정확히 그들과 반대로 돌아간다.
그들은 항상 잘못된 선택을 하며 운명을 원망한다.

written by ==='루울'===
(이 글의 저작권은 '루울'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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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속아주며 살아야 맘 편한 법인디..^^
밥 먹다가 밥상 건너편 사람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면 밥맛은, 아뿔싸!
큰 창자, 작은 창자, 십이지장, 간, 쓸개, 콩팥에다 때에 따라선 창자 속 회충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면 거 참 밥맛 없는 세상 아이가.

마주 앉는 사람마다 속 들여다보인다고 마냥 패대기쳐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 보면 밥상머리 같이 하고 앉을 사람인들 어디 찾을 수나 있겠남..ㅎ~
겉과 속이 같고 맑은 속을 가진 사람이 우리 주변에 몇이나 될꼬.
남들 나무라는 내 속도 이리 시꺼머죽죽하건만.
그래도 적지는 않을 거라 믿고는 살아야제.
미우나 고우나 무리지어 함께 살아가야할 지구별 동포들이자나요..쩝!

그나저나 살 날이 긴데 그리도 형형한 '매구'를 지녀서 어쩌누.
통찰력이 남다른 것도 괴로운 일이여요.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 늘그막에나 가질 법한 눈으로(머, 죽기 직전까지도 청맹과니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늘렸지만서도..아골나의 푼수들처럼) 사람들, 세상사를 대하면 삶이 너무 일찌감치 잼없고 덧없잖우...ㅎ~

그래도 그런 '서늘한' 눈을 주신 부모님은 찬양받아도 좋겠어요.

노짱처럼 사람만이 희망인 줄 알고 평생을 살다가 그게 아님을 알고 때 늦게 절망하는 것 보다야 사람이 항상 희망이 아니라 때론 웬수임을 일찌감치 지각하고 기대치를 낯추노라면 적어도 사람과 세상에 크게 절망할 일은 없겠지요.
희망과 절망의 근원이 남이 아닌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자신에게 절망하지만 않는다면 세상은 도전적으로 충분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거든요.

자신만이 희망임을 믿는 자는 매사에 활력이 있고 일을 그르쳐도 남탓하지 않고 자신을 탓하니 문제해결과 자기계발의 속도도 남다른 거죠.
인생의 패배자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이 '남탓'이죠.
그 중에서도 특히 죽은 조상탓하는 인간들이 젤 못난이들이죠.

통찰력 못잖게 감성도 남다르니 차지도 뜨겁지도 않게 36.5도의 정상 체온을 유지하며 자신의 운명을 슬기롭고 멋지게 꾸려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이번에도 속 션~한 일갈이네요.
속 션~한 내용에 걸맞는 예의 속 션~한 어투도 짱이고 좌우의 날개를 거느리는 몸통이 지녀야할 사고의 균형감을 보여준 예리하고 깔끔한 지적과 분석입니다.

브롸보오~~루울!

===東山高臥===

에~또~그러니까, 음~아흐, 머시랄까, 거시기....

흐이유~~대충 정리된 것 같다.

template구성만을 놓고 볼 때 구글 블로그의 장점은 이용자의 입맛대로 template의 편집이 가능하다는 것과 블로그에서 가젯의 활용폭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기본으로 제공된 template이 성에 차지 않아 Deluxe Templates(http://www.deluxetemplates.net/)에서 blog용 template을 무료로 다운받아 메인 메뉴를 약간 수정하고 나니 그럴싸하다.
주배경색을 흰색과 회색의 투톤 조합을 원했는데 딱이다.

또 하나, 코드만 확보하면 HTML/JavaScript를 맘껏 실행할 수 있으니 좋다.
때깔좋은 visitor counter(http://www.histats.com/)와 flag counter(http://www.flagcounter.com/index.html)를 배치하고 구글 번역기(http://translate.google.com/translate_tools?hl=ko)를 곁들이니 노는 물이 달라뵈잖아..ㅎ~
앵두의 사랑타령이 드뎌 온 세계 만방으로까지 울려퍼지것다..ㅋ~
탄력받은 김에 post 하단에 blog sign(http://www.mylivesignature.com/)까지 덧붙이니 이 또한 그럴싸하다.(펌글과 자기글을 구분키 위한 용도다)

이래저래 염불보다 젯밥에 눈 돌아간 한 주였다.
다시는 옮기지 않을 제대로 된 블로깅 터를 다져두고자 심력을 쏟은 만큼의 결과를 얻은 듯하다.

내 성정이 궁뎅이 한 번 붙이면 엔간해선 자리를 잘 옮기지 않는다.
낚시를 할 때도 그렇고 매사에 그런 편이다.
나쁘게 말하면 게으른 탓이고 좋게 말하면 에~에~~ 마땅한 표현이 없네, 쩝.

암튼 3년여 이상을 뭉개던 야후를 떠나 이곳에다 새 둥지를 틀었다.
닭알이든 참새알이든 메추리알이든 알을 까는 일만 남았다.
일상이 무난하고 자극이 없으니 알까는 일이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나 틈나는대로 똥심 써 볼란다.
엔돌핀이든 아드레날린이든 삘을 팍팍 돌게 하는 자극이 있어야 알 까는 일도 원활할 텐테 이거 속빈 강정 꼴 나지 않을련가 몰것다.

아래처럼 거창하게 야후에 작별의 변까지 남겨 놓고서 기껏 들르신 손님들에게 따닷한 녹차는 커녕 냉수인들 제댜로 한 잔 대접할 수 있을론지 띠리리~~..ㅎ~

이곳을 찾는 분들 중에 야후에서 링크 타고 오신 님들께 우선 반가운 인사를 드린다.
버선발로 쬬르르르르르르르릌.....☜^^☞.....어서 오이소!
근데 차린 기 업슴다, 늘 먹던 그 나물에 그 밥이라서 억수로 죄송합니대이대이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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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후여, 안녕~~~~======================




^...ㅁㅁㅁㅁㅁㅁㅁ...^ http://anemos0120.blogspot.com/


깊은 산중 절간 같은 블로그 東山高臥(참 좋은 하루)는 3년여 여정 만에 가까스로 1일 조회수 일이백에 도달한 두실와옥이다.
나의 신상을 알고 블로그를 찾는 이는 아마 ‘전세계적으로’ 통틀어도 네댓 분 안팎일 게다.
세 분 정도는 전면적으로 두 분 정도는 피상적으로나마 東山高臥의 신상을 파악하고 계신 분들이다.

그분들과 영업 목적의 방문자를 빼고 나면 대략 이삼십 여분 정도가 東山高臥의 돼먹잖은 글질에도 꾸준히 관심을 보여주시는 걸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볼거리도 없는 이곳을 즐겨 찾는 분이 단 한 분이라도 계실 거라 생각하면 포스팅의 주기나 포스트의 내용을 포함해 대문의 개폐 여부를 결정하는 일까지 조심스럽다.
공개 블로그란 동네 우물과도 같아서 제가 팠다고 함부로 메워버리는 것도 예가 아닐 터.

지난 한 주, 블로그 이전을 위해 꽤나 바지런을 떨었다.
블로그 카테고리 중 甲乙論朴의 글들만 옮기면 끝나지만 가장 큰 짐이다.
정말이지 블로그 이사에 들이는 노고가 실제 집 이사에 못잖다.
아니 그 이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거라.
글과 음악과 영상만 업로드 되면 천지분간 없던 초짜 블로거 때와 달리 새집을 구하고 리모델링하고 도배하고 장판 깔고 액자 달고 가구에 장식까지 새집 꾸미는 수고가 어이구 정성이다 싶다.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학실히 쬐금 아는 게 병이고 업인 것을 뉘라서!
블로그 이사, 짐 많은 사람은 엄두도 못낼 일이고 짐 적어도 두 번은 못할 짓이다.
나처럼 세간이 누추한 두실와옥 정도야 며칠 수고거리라지만 대가집 살림을 꾸리는 블로거들은...흐미야~~~???

동네 사람들아, 東山高臥가 바람났다, 바람났어. 것도 아주 큰 바람이여~~.
열흘 남짓 뒷방 취급했더니 야후 블로그가 눈에서 제법 멀어져 있다.
정 떼기가 가능할까 싶었었는데 막상 결행을 하니 그렇지도 않다.
멀어져 잊히지 않는 정 없고 헤어져 잊히지 않는 얼굴 없다더니 야후와의 3년 인연이 덧없다.
하여간 미워 등돌리면 남이라니깐...ㅎ~
옛집에 대한 실망이 컸던 만치 새집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도 더불어 큰 탓이다.

프로든 아마든, 다작이든 빈작이든, 창작이든 펌질이든, 문예와 정보를 생산 가공하여 업로드하는 블로깅을 생활의 낙 삼는 블로거들에게 통보조차 없는 무단 삭제나 업로드의 불편함은 어떤 경우든 기분 좋을 리 없다.
때마침 개정 저작권법의 시행과도 맞물려 사이버 망명객들이 무리를 짓는 이유다.
좋은 세상의 존재조차 모르던 무지렁이 시절에야 그러려니 했다지만 좋은 세상의 존재를 알고서는 마냥 ‘익숙한 게 최고’도 아니고 변화를 겁낼 필요는 없다.
익숙해서 편했으나 올 들어 야후의 지나치리만큼 각박해진 태그 필터링 강화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다른 포털을 경유하여 자료를 올리는 번거로움이야 감내할 수 있었다지만 귀띔조차 없는 무단 삭제의 그 황망함이란!
아무리 단순해 뵈는 포스트라도 블로거의 정성이 들어간 것이라면 일방적 관리 기준에 따른 마구잡이 삭제는 곤란하다.
이용자가 이용 약관에 동의했다손 쳐도 그런 원칙을 돋보이게 하는 ‘운영의 묘’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거다. 유돌희, 몰러?
가끔은 관리자의 주관적 선입견이나 성급한 판단을 목도할 때도 있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가 좋겠지만 길게 보면 야후나 이용자들에게도 나쁠 것 없는 ‘건설적 불평’으로 여기시길...

당분간은 야후 블로그를 폐쇄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메인 메일도, 인터넷 오프닝 페이지도 야후로 설정해둘 만큼 야후는 여전히 나름의 강점이 있고 넷세상에선 내게는 고향 같은 곳이다.
블로그의 이사가 끝나면 폐쇄할 지 폭파할 지 걍 내비둘 지 적정선에서 관리하며 두 집 살림을 할 지 생각해볼 요량이다.
어찌 됐든 어찌 되든, 야후에게나 그간 야후를 통해서 이곳을 찾아주신 님들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누추한 곳에 걸음 하시느라 괜스레 발에 때만 끼진 않았는지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맘이었다.
‘참 좋은 하루’와 ‘東山高臥’를 기억하는 님들 모두,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에 대박나시길 빈다.
사랑과 희망, 자유 그리고 평화를 님들에게!!

글 서두에 새로 이사갈 구글 블로그 주소를 남긴다.
혹여 잊잖고 지나는 길에라도 들르시면 버선발로 맞을 테니 따닷한 녹차라도 한 잔 들고 가시길......*^^*

*오늘 글의 배경곡은 가장 오랫동안 블로그의 대문곡으로 내걸었던 ‘영광의 탈출’로 선정한다.
금단의 벽을 넘어 말 타고 조낸 톢끼는 '참 좋은 하루'와 춤추며 좋아죽는 '東山高臥'를 상상해주길 기대하며...ㅎ~

===東山高臥===

저작권법 시행..광란의 폭주만 말어라..

저작권법 시행..광란의 폭주만 말어라..
작성일:2009.07.2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2787807

7월23일은 개정된 저작권법이 시행된 첫날이라 한다.

블로그에 유튜브 음악 동영상(국내가수) 올리는데 강제로 블록된다.
묶이면 풀고 묶이면 풀고 관리자와 무언의 힘겨루기를 하다 아차 싶어 뒤적여보니 어제 오늘, 그제가 장날인 거였다.
저작권법 시행 사흘째인만치 조그만 티거리라도 블로그 관리자로선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긴장하고 있는 게 역력해 뵌다.
유쾌하진 않지만 이해키로 했다.
참다 참다 못 참을 지경이면 중이 떠날 수밖에.
요즘 유행한다는 ‘사이버 망명’이라도 결행해야지 우야겠노.
규제가 덜하고 물 좋다는 구글 블로그 쪽으로 일찌감치 집 한 채 분양받아 둘 생각도 든다.
여차하면...........가는 거다.
사랑과 희망, 자유 그리고 평화를 찾아서!
이러다 지구별을 떠나 안드로메다 은하로까지 망명해가야 할런지도 모르겠다.

편해진 만치 머리가 복잡해지는 세상이다.
문명의 이기를 충분히 누리기 위해선 알아야 할 것도 많고 따져야 할 것도 많다.
우리네 부모 세대만 해도 노년층에 접어들면 마땅히 놀꺼리가 없어 자식 쳐다보는 게 낙이었건만 언제부턴가 인터넷 모르면 시골 경로당에서도 왕따 당하는 세상이 되었다.
요즘 노인들은 자식들 찾아오는 것도 귀찮아라 하신다.
컴에만 뛰어 들어도 놀아줄 사람 쌔고 쌨는데 손주 녀석 똥기저귀 가는 일이 무슨 낙이랴!
요즘엔 예전처럼 용돈 많이 드리고 손주 재롱 안겨주며 부모님 밀착 공경하는 게 효도가 아니다.
나드신 부모님께 인터넷 갈차 주고 블로그 하나 맹글어 주는 늠이 최고의 효자다.
그렇듯 왕따 당하지 않으려 자식들한테 물어물어 어렵사리 컴과 인터넷을 배워 블로깅 생활을 늘그막의 낙으로 알고 잘만 노시난데 난데없이 ‘저작권’이란 넷 폭풍이 휘몰아친다.

어르신들만 당황스런 게 아니다.
그 놈의 저작권법이란 ‘저승사자’ 탓에 애 어른 할 것 없이 대한민국 온 네티즌의 엉덩이가 뜨겁다.
이거 참, 웬 놈의 듣보잡법들을 그리도 많이 만들어대는 겨.
법 없어도 법 몰라도 잘만 살아갈 사람들이 온통 저작권법 타령으로 카페나 블로그마다 호떡집에 불난 듯한 광경이다.
아니 호떡집에 불 난 정도가 아니라 히로시마에 원폭 떨어진 듯한 광경이다.
저작권법에서 자유로운 순수 자기글과 자기 사진과 자기만의 영상으로 꾸며진 카페나 블로그가 몇이나 될까.
개인 블로그나 카페에서 상업적 목적이 아닌 불펌은 어느 정도 용인될 거라고는 하지만 불펌은 불펌이고 재주 피워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인지라 찝찔한 여운을 지울 길이 없다.
행복하자고 하는 넷질에서 범죄의 그림자를 달고 다니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특히나 글빨 없고 사진빨 없고 영상빨 없는 네티즌들은 무슨 재주로 넷질을 하나.
넷 세상에서도 부익부 빈익빈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능력 없으면 넷질도 하지 말고 눈팅만 하라 그런 겨.
차라리 먼지 앉은 일기장이라도 꺼내들까.
연필심에 침 바르고 지우개로 빡빡 문질러가며 촛불 아래서 침침하게 구닥따리로 살다 뒈져라 이거니.
좋은 거는 누릴만한 능력되는 늠들만 누리고 재주 없는 무지랭이들은 걍 만날 눈팅이나 하맨서 침이나 흘리라고?
니미럴, 이러다 몇 년 안 가서 눈팅조차 돈 내고 해야될 지도 모를 일.

대중문화 생산자의 권리를 지켜줌으로써 창작 의욕을 북돋고 건전한 대중문화의 중흥을 꾀하겠다는 게 저작권법의 취지고 명분인 셈인데 그건 허울좋은 개소리고 한마디로 점점 기업화되어가는 생산자와 유통자의 '돈벌이를 보장'해주겠다는 거다.
더불어, 넘쳐나는 법자격자들을 '넷파라치'로 활성화시켜 그 불만을 다독이는 덤도 있으니 도랑치고 동전까지 줍겠다는 속셈도 없잖다.
대중문화의 생산자와 유통자들이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대중문화의 A에서 Z까지 '대중'을 빼고는 '대중문화'란 없다는 거다.
까불어밨자 생산자와 유통자가 그토록 노리는 '돈'은 결국 최종 소비자이자 확산자인 대중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대중문화의 절대 소비자인 대중을 뿔나게 해놓고 '돈'만 뽑겠다는 생각을 대중적 표현으로는 '도둑놈 심보'라고 한다.
지들 눈에야 대중들이 도둑놈 심보를 가진 잠정 범죄자들로 뵐 테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대중들은 대중문화의 알파이자 감마다.
생산자의 창작물은 대중들에 의해서 재창작됨으로써 그 가치가 배가되는 법이고 생산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유통자의 유통은 대중들의 악의 없는 불펌에 의해서 그 유통 효과가 극대화되고 있음을 인정하고 공존의 구도를 모색해야 한다.
어디 대중들이 2차 창작물의 재산권을 주장하디? 유통 영업비를 청구를 하디?
대중들을 대중문화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생각하거나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며 적대하다가는 큰 코 다친다.
모든 블로그나 카페에서 '텔미'와 'Gee'를 내려봐라.
나 같은 구닥따리 아잣씨가 우찌 '원더걸스'를 알고 '소시'는 또 어디서 보고 알은 체 하것냐.
창의력은 니들만 가진 게 아니고 트렌드를 유통시키는 능력도 니들만 가진 게 아니다.
쥐도 빠져나갈 구녕은 있어야지 마구잡이로 몰면 사람한테 뎀빈다.
대중이 뿔 나면 대중들 스스로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고 니들이 대중들에게 '돈' 내고 구걸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대중문화의 3각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생산자'와 '유통자'와 '대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대중이라는 걸 한시도 망각하지 않는 '겸손한' 법 시행이 되길 빈다.
저작권법의 취지와 명분에 도전할 생각은 없다.
함에도 실컷 맛 들여 놓고 초 치는 꼴 같아서 영 못마땅하기가 그지없고 법 없이도 잘만 살아갈 사람들한테 무리수만은 두지 않길 당부하는 맘으로 늘어놓는 푸념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몇 해 전 황우석 교수 사건 때는 줄기세포 전문가가 되어야만 했고 작년 광우병 사태 때는 광우병 전문가가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올해, 난데없이 미디어법에서부터 저작권법까지 법 타령이 끊이질 않으니 법 전문가까지 되게 생겼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기가 숨이 찬다, 숨이 차.
이제 컴퓨터랑도 맘껏 못 놀게 하면 우리네 어르신들은 오데 가서 놀라꼬 고리도 야박시런 법을 마구 들이대는 겨?
다섯 살 박이 알라가 가수 흉내내는 UCC도 걸었담서, 에뤠이~캭!
암만 좋은 차도 냅다 인도로 달려들면 눈쌀찌푸려질 흉기에 지나지 않거든요.
인도로 뛰어들어 광란의 폭주를 벌이며 생사람 잡지 말고 조심조심 잘들 운전하길 비꾸마...

문득 플루토가 그리워지는 밤이다.

===東山高臥===



내 블로그 이야기..

내 블로그 이야기..
작성일:2009.07.09


블로그 개설한 지가 3년을 훌쩍 넘어섰다.

신기해하면서 블로그의 스킨을 단장하고 불펌의 기술을 익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ㅎ~
하긴 머 너나없이 모든 블로그들의 시작은 불펌으로부터 시작하더라만...ㅋ~

내가 처음 블로그를 열었던 목적은 오래된 편지들을 정리해두기 위함이었다.
편지들 속엔 세월 따라 무심하게 잊고 묻어 버리기엔 너무도 소중한 사람들의 흔적들이 있었다.
아팠던 만치 그들과 나눈 사랑과 정은 다시는 느껴볼 수 없을 끈끈한 그 무엇이었고 어떤 형태로든 간직하고 싶었다.
때마침 블로그라는 기똥찬 인터넷 일기장이 유행했고 휩쓸려 문패를 달았었다.

‘참 좋은 하루’(2009.7.24에 '東山高臥' 로 변경)

프로필에서 간략히 소개한대로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가족과 지인들의 편지가 아직도 수북하다.
블로그의 빈 방(희망서신, 자유서신)들을 채울 것들이지만 쉽게 손이 가질 않는다.
처음 블로그를 개설했을 때의 호기심으로 마구잡이로 포스팅했으면 가능했을 일인데 이제는 새삼스레 오래된 구닥따리 야그들을 포스팅하려니 꺼려지기도 한다.
어느 날 문득 휑한 빈 방들에 가구들을 들이고픈 맘이 동할지는 모르겠다.

사적인 편지글들을 포스팅한 블로그의 공개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기억도 새롭다.
오래된 구닥따리 야그들을 누가 기억이나 하랴 까짓꺼 공개를 결정하고서 ‘엄격한 19금(?)의 기준’에 따라 선별된 편지글들만 포스팅 했다지만 낯 뜨겁긴 여전하다.
그래도 처음 블로깅할 때 비하면 많이도 무덤덤해진 내 모습에 놀랍다.
속곳이 보일 새라 늘 주의하면서도 노출의 정도와 빈도가 도를 더해가는 걸 보면 노출도 병이라더니 그런 듯싶다.

머잖은 장래에 아이가 뒤적거려 볼 거라 생각하면 글맵시를 좀 더 반듯하게 가져가야 하겠건만 세상에서 제일 잼없는 게 교과서 아닌가.
교과서 같은 블로그, 이건 암만 생각해도 ‘명랑사회 건설’에 도움이 못 될 것 같아 싫다.
‘씨밸류마’라 소릴 질러대고 때론 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리는 아빠의 경망스런 모습에 아이가 행여 실망치 않도록 평소에 좀 더 발랄한 모습으로 아이와 충분히 소통해둬야겠다...ㅎ~

원래는 아이 엄마와의 오래된 약속이 하나 있었다.
결혼하면, 담장을 넘나든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들을 소복이 담아둘 ‘사랑의 유리함’을 하나 만들기로 했었다.
알록달록한 편지들이 담긴 유리함을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두고, 삶이 권태로울 때 손 쑤욱 찔러 아무 편지든 하나 꺼내 읽노라면 그게 바로 사랑의 묘약이 되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엄마 아빠의 사랑 이야기를 자연스레 접할 수 있다면 아이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리라는 생각도 했다.
여자 아이에 대한 성교육이 어디 별스런 겐감.
태고 적부터 함께 살아온 남자는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충분히 사랑할만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게 아빠가 딸에게 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성교육이 아닐까.
비둘기처럼 부비부비하며 알콩달콩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행복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다.
남정네를 적대하면서 행복한 여인네 없고 여인네를 적대하면서 행복한 남정네 없다.
사랑의 유리함은 그런 점에서 딸아이의 성장에도 일정한 기여를 할 것도 같았다.

아이까지 배려한 사랑의 유리함, 하~이 얼마나 거창하고 알흠다운 구상이었던가!
그러나 웬걸, 이런 저런 뎐차로 미적거리다 결국 부도가 나고 말았다.
사랑의 유리함을 놓을 자리에는 블로그가 들어앉았다.
아내에게 완전 공수표는 아니니 블로그로 퉁 치자며 얼렁뚱땅 훌쳤고 먹혔다.
아이도 블로그에 엄마, 아빠의 사랑 이야기가 있음을 알기에 좀 더 크면 제 맘대로 들락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부도난 수표 절반 정도는 회수한 거지 머.
청소하다 깨뜨릴 지도 모를 유리함보다야 깨질 리 없는 블로그가 나을 수도 있자나.
흐훕, 쓰다 보니 인지부조화적 억지가 전개되고 있음이야.^^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글들이 처음 의도와 달리 점점 잡탕이 되어간다.
가급적 무거운 얘기를 피하려 노력하는데도 이야기가 늘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맘먹은 대로 세월을 거슬러, 공간을 거슬러, 순간 이동하면서 ‘꺄르르르르르르릌ㅋㅋㅋ’거리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블로깅은 생활의 청량제임엔 틀림이 없다.
뉘신지 블로그를 처음 개발한 자여, 돈 많이 버시라..ㅎ~

사랑과 희망과 자유와 평화를 만방의 블로거들에게~~~~~~~~~~~~!

===東山高臥===



최고의 낚시대는..


최고의 낚시대는..
작성일:2009.07.08


낚시대는 무사의 검이고 서예가의 필이다

낚시대, 낚시인들에겐 무사의 검, 서예가들의 필과 같은 도구다.
무협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최고의 검은 주인을 느끼고 부르르 떨며 소리를 내기도 하고 홀로 알아서 적을 베어 주인을 지켜주기도 하는 신검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물고기가 접근하면 부르르 떨며 꾼에게 신호하고 스스로 물고기를 걸어주는 그런 낚시대는 없을까...훗~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고들 한다.
‘무슨 일이든 무릇 경지에 이른 자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말로 이 말을 붓(도구)의 중요성을 간과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왕희지가 붓을 창칼에 비유한 것은 도구로서의 붓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진대 전장에 나서는 이가 죽도를 들고 나설 수 없고 낚시꾼이 물에 갈대를 드리울 수는 없다.

인류의 문명은 도구의 발전사와 다름없고 ‘편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도구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첨단의 도구들이 소속 개발되면서 사람이 할 일이란 그저 머리를 쓰는 일 뿐이다.
굳은 살 배긴 거친 손으로 창칼을 쓰는 대신 섬섬옥수를 놀려 버튼으로 전쟁치고 붓 대신 포토샵을 휘두르면 왕희지도 부러울 것 없는 세상이다.
듣기로 낚시계에선 자동 챔질 도구마저 개발되었다고 하니 ‘작은 수고’조차 꺼리는 인간의 욕심이 과연 끝도 없긴 한가 보다.

누가 낚시를 빈자들의 오락이라 하는가.

최고의 도구를 향한 인간의 욕심, 가히 눈물겹다.
낚시꾼들이 최고의 낚시대를 찾는 욕심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낚시계에서 공인되는 낚시대의 최고봉은, 우리보다 낚시가 더욱 상업화되고 발전된 일본의 유명 명인이나 공방에서 제작한 죽간(대나무 낚시대)으로 그 한 대 가격만 해도 우리 돈으로 천만 원을 호가하는 낚시대들이 있다 한다.
자동차 한대를 물에 드리우고 붕어 잡는 셈이다.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잌후!
해서 이런 낚시대의 용도는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주로 소장용에 가깝다.
워런 버핏 정도면 실전용으로 쓸 수도 있겠다...ㅎ~

낚시가 빈자들의 오락이라 불리던 것도 옛말이다.
십여 년 전에 일본에서 도입된 떡붕어(헤라)낚시기법인 중층낚시가 국내에 정착하여 트랜드를 구축하고 그 외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일인들의 상술이 국내 낚시인들의 호기심을 꽤 많이도 자극하여 왔다.
그런 중층낚시 장비를 모양새 있게 갖추고자 한다면 우리 돈 천만 원을 쉽사리 넘나든다.
중층낚시인들이 욕심을 내는 실전용 중층낚시대 한 대 가격이 작게는 삼사십 만원에서 팔구십 만 원대에 이르니 이런 낚시대를 서너 대만 구비하려 해도 일이백만 원을 훌쩍 넘는다.
구색을 갖추려면 최소 대여섯 대 내지 최대 열 대는 필요하니 낚시대 구입 가격만 삼사백이 넘고 찌 하나가 삼사만 원(십만 원이 넘는 찌도 있다)은 기본인데다, 낚시꾼 점심값보다 비싼 떡밥에 고가의 각종 편의 장비까지 더하면 아뿔싸, 누가 낚시를 빈자들의 오락이라 했는가!

낚시터에서도 어김없이 부익부 빈익빈의 세태는 존재한다.
남의 시선쯤이야 아랑곳 않는 나드신 어르신들이야 일이십만 원 정도로도 낚시 장비를 다 구비할 수는 있다.
아직도 일이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 무명의 낚시대들도 많고 떡밥 대신 수채 주변을 훑어 지렁이 몇 마리 챙기거나 옥수수나 콩을 삶아 미끼로 대용하면 여전히 ‘가장 돈 안 드는 오락’으로 낚시를 즐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 눈치를 세월 따라 흘려보내고서 조선이나 조성의 경지에 이른 어르신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트랜드와 메이커를 중시하는 세태에 찌든 요즘 젊은이들이 고가의 일제 낚시대를 향한 지름신의 유혹을 버텨낼 재간이 과연 있을지나 모르겠다.
자작의 경지에는 이르렀노라 자부하는 나 역시 낚시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거늘...헐.

최고의 낚시대는 과연 어떤 것일까?

최고의 낚시대는 ‘내 마음의 낚시대’이다.
낚시 사이트를 돌다 보면 어김없이 발견하는 질문들이 있다.
중층낚시에 새로이 입문하는 새내기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중층낚시대를 사려는데 어느 메이커 무슨 낚시대가 좋을까요?’
각종 조구업체의 영업성 리플에서부터 낚시꾼들의 자기 낚시대 자랑하는 리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리플들을 보면 거의, 대당 칠팔십 만원을 호가하는 시마노나 다이와 같은 일본 유명 조구사의 고가 낚시대를 최고의 낚시대로 추천하는 걸 볼 수 있다.
좋은 소재, 매끈한 마감 등 제품의 완성도가 높고 좋은 낚시대들임에 분명하지만 ‘무슨 메이커의 무슨 낚시대는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낚시대가 스스로 알아서 고기를 제압해 줍니다’라는 식의 과도한 찬양 리플들을 보노라면 살짝 어이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가끔 이런 리플들 사이에서 가슴을 쩌엉 때리는 은둔한 고수의 ‘낚도’가 배인 리플을 만날 때가 있다.

‘내 손, 내 맘에 맞는 낚시대가 최고의 낚시대입니다.’

그렇다. 국산이든 일산이든 유명의 메이커든 무명의 메이커든 실전용으로 쓰기도 아까운 천만 원짜리 낚시대이든 고속도로 휴게소 노점상에게 구매한 단 돈 만 원짜리 중국산 낚시대든 가격이나 유명세에 아랑곳없이 내 손에, 내 맘에 맞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낚시대이고 강태공의 낚시대다.

무사가 칼을, 서예가가 붓을 귀히 여기듯 낚시꾼에게 낚시대는 가장 소중한 도구인 건 분명하지만 스스로 알아서 고기를 낚아내고 천상의 손맛을 안겨주는 그런 낚시대는 없다.
같은 칼이나 붓, 낚시대라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도 다르고 그 평가도 다른 법이다.

밀집 모자를 두르고 낡고 허름한 장비로 쑴퍼덩쑴퍼덩 붕어를 잘도 낚아내는 촌로의 바로 옆자리에서 삐까뻔쩍한 고가의 낚시대와 장비들을 구비하고도 하루 종일 꽝을 치고 앉은 낚시꾼이 안절부절 못하거나 투덜대고 있는 걸 본 적도 있다.
물론, 낚시의 도가 고기를 많이 잡고 안 잡고를 따짐은 아니지만 낚시를 통해서 마음속의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면 낚시를 잘 못하고 있음이다.

오래돼서 남들 앞에 내 놓기에 볼품없어도 그 속에 세월의 손때가 있고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깃든 낚시대라면 괴기 한 마리 걸지 못해도 그 낚시대는 언제나 자신에겐 최고의 낚시대이자 동반자인 거다.

흔히 바둑인들이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듯 낚시인들은 낚시를 인생에 비유할 때가 있다.
낚시를 인생에 비유할 때 내 인생의 최고의 낚시대는 무엇일까.
재물, 명예, 권력? 아니다.
내 인생 최고의 낚시대는 지금 이 순간,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손길에 익숙하고 내 삶의 여정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내 아내와 내 아이라 할 것이다.
더불어 나 또한 그들의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그들 손에 그들 맘에 딱 맞는 최고의 낚시대가 되어 그들과 여생을 함께 안온하게 나눌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인생의 낚도가 아닐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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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일천 10척과 비절 13척, 내가 가장 좋아라 하는 낚시대들이다.
하나는 내 아내, 하나는 내 아이처럼 바라만 보아도 참 기분 좋은 낚시대들이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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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山高臥===

소녀시대-Gee.....이런 정도면?


소녀시대-Gee.....이런 정도면?
작성일:2009.07.03



어느 뉴스에서 컬러링의 유행지표를 조사한 내용이 실렸다.
최신 유행 컬러링 인기곡 1위가 이승기의 <결혼해 줄래>란다.
이승기가 출연 중인 드라마 <찬란한 유산>의 인기 덕이 크다 한다.
<찬란한 유산>은 머고 <결혼해 줄래>는 또 먼지 내겐 생소하기만 하다.

기사에서 언급하기를,
‘네이트의 컬러링 차트를 보면, 30대까지는 댄스곡 등 경쾌한 음악을 주로 고르는 데 비해 40대 소비자들은 여기에 SG워너비 등의 부드러운 발라드를 추가하고, 50대 이후는 김종국의 '따줘', 주현미와 소녀시대의 '짜라자짜', 박현빈의 '대찬 인생' 등 트로트 일색으로 완전히 바뀌고 있다.’고 전한다.

컬러링? 그기 머꼬?
일헌 구닥따리 아자씻!
이건 내게 해당되는 말이렷다.

언제부턴가 휴대 전화를 걸 때면 음악 감상은 필수인 세상이 되었다.
내게는 손전화의 용도는 단 하나, ‘용건만 간단히’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런 저런 기능들과 서비스가 많은 것도 같은데 굳이 알려 들지 않았다.
구닥따리 아잣씨란 소릴 들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휴대폰에 대한 인식만큼은 삐삐시대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
냉장고라 불리던 초기 휴대폰 시절부터 십수년을 손전화를 들고 살았어도 통화 기능 외의 서비스에는 요상하리만큼 관심이 가덜 않았다.
사무적 용도 말고 대화 용도로서 문자메시지를 활용했던 기억도 거의 없다.
얼마 전 아이 엄마에게 문자메시지로 결혼기념일에 즈음한 데이트 신청을 했었다.
구두통화가 머쓱해서 한 짓인데 어라, 구두통화로 맛볼 수 없는 이색적인 재미가 쏠쏠키도 하더라.
넷 댓글놀이와는 또다른 별맛에 혼자 미친 늠처럼 키득거리며 잠시 헤롱거렸었다.
아하, 요런 맛에 아해들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자질하느라 넋을 빼는 거였구나,...
^^;... 에혀라 디여~궂은 날이면 도지는 앵두의 뒷북질이여!

그럴 정도로 폰맹인 내 전화의 통화연결음은 ‘띠레레레레레레~’다.
해묵은 소리, 추억의 소리, 옛날의 소리, 바로 그 소리, 기계음!
할배, 할매들 사이에도 유행한다는 그 흔한 컬러링조차 설정해 놓고 있지 않은 거다.

꼭 폰맹이라서가 아니고 나름의 이유는 있다.
구닥따리같은 소견머리일런가는 몰러도 ‘컬러링은 상대를 배려하는 서비스가 결코 못된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끊기거나 치직거리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고 소음이다.
요즘은 조금 나아진 것도 같더라만 난 상대방의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컬러링을 매끈하고 멋지게 감상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컬러링은 상대의 기분이나 정서와는 상관없이 행해지는 일방적 소통의 형식이다.
대상에 따라서는 ‘좋은 노래를 너와 공유하고 싶다’라는 나눔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니까 너도 들어봐’라는 강요의 악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부고를 알리려는 사람에게 ‘대박이야, 대박이군~’이란 컬러링은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순간적 불쾌감을 안겨주진 않을까.

하긴 머, 구데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밥상머리에 앉는 일이 재미없을 지도 모르겠다.
컬러링에 대한 내 생각이 그렇고 그렇다는 거다.
그래도 난, 컬러링은 구닥따리 기계음을 고수하지만 착신 벨소리만큼은 가장 최신 유행하는 스딸의 노래로 설정해두고 싶은 욕심은 있다.
사람 많은 곳에서 불시에 울려도 애들한테는 구닥따리 아자씻 소리 듣지 않고 나드신 어르신들의 눈살도 찌푸리게 하지 않을 그런....

이런 정도면 할배 할매들도 눈살 찌푸리지 않고 들어줄래나?....*^ㅡ^;;

(딸내미 근처에서 얼쩡거리며 접한 쥐가 꽤 된 듯한데 이 노래 벌써 유행 다 끝난 구닥따리는 아니것쥐, 쥐, 쥐, 쥐, 쥐....
근데 얘들은 자꾸 이리 '쥐, 쥐, 쥐, 쥐,..베이베, 베이베, 베이베'거려도 괘안은 기가?...쥐, 쥐, 쥐, 쥐,...새끼, 새퀴, 색휘------------->쥐색뀌?????????....ㅎ~)

===東山高臥===



'그냥 펭귄'과 '황제 펭귄'..


'그냥 펭귄'과 '황제 펭귄'..
작성일:2009.06.25



“아빠.”

“응.”

“난 깨달았어.”

“멀.”

“내가 펭귄이라는 걸.”

“왜?”

“오늘 체육시간에 멀리뛰기 시험 쳤는데 105cm야.”

“에게, 꼴랑 105.”

“응.”

“아빠 한 걸음이네.”

“그러치...^^;..”

“우째 뜄노? 함 뛰바.”

토도독, 탁, 폴짝!

(흐걱~ 도약선에서 두 발 '탁' 멈춰 모으고서 뛴다. 실컷 달려와서는 급브레이커 밟은 꼴이다. 가속 탄력을 죽였으니 우째 도약이 되랴.)

“아니지이~~그게 아이지이~도약선에선 한 발로 굴려야지이~. 이렇게.”

휘리맄, 척, 슈우웅~!

“해바.”

톡톡톡, 촉, 파닥파닥~!

(이제야 날개치는 소리가 들린다. 1m 30쯤은 되겠다.)

“그러치, 그러케 해야지이~~쫌만 연습하면 참새 되것네"

뽀시시....*^^*

“아빠, 그래도 난 꼴찌는 아냐.”

“그래? 니보다 더 못 뛴 아도 있는가베?”

“응."

"가가 누고?"

"영미.”

"생일잔치 때 왔던 똥또부리하던 칭구?"

"응."

“가는 얼마 뜄노?”

“80cm.”

...@!@...

“있잖아, 난 '그냥 펭귄'이고 영미는 '황제 펭귄'이야.”

흡...............황제 펭...
황제 펭귄? 쿠쿡, 꺄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나름 진지한 어투였건만 난 결국 디비지고 말았습니다.

그냥 펭귄과 황제 펭귄의 상큼한 노래 한 곡 z~~하시면서 좋은 오후를......*^^


(밑에 똥또부리한 언니는 춤추는 모습까지 황제 펭귄처럼 귀엽습니다..ㅎ~)






===東山高臥===



발가락이 닮았다

발가락이 닮았다
작성일:2009.06.22



지난밤부터 시작된 장대비가 아침 이 시간까지도 땅바닥에 내려꽂습니다.
적벽대전이란 영화에서 조조군이 공명에게 화살을 쏟아 붇던 장면이 연상되는 아침 풍경입니다.

나의 조조는 딸내미입니다.
세상 겁 없던 내게도 딸내미는 가장 무서운 대상입니다.
이제 고작 10살인데 제가 꼼짝을 못합니다.
누굴 닮아 저래 무섭게 컸나 싶습니다.

순한 제 어미를 닮지도 않았고 다른 누군가를 닮을 일은 없습니다.
굴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도 아니고 제 어미의 첫사랑이 남긴 선물이 아닌 것도 확실합니다.
그치는 아이가 이 세상에 오기 이미 오래 전에 지구별을 떠났거든요. 예수님 말입니다.
그렇다고 새로 생긴 아내의 애인은 만난 지가 아이의 나이보다 훨씬 적으니 그치의 선물도 아닐 테구요. 부처님 말입니다.
저 아이는 분명 나를 닮은 내 아이인 게 맞습니다.
무엇보다 나랑 발가락이 '학실히' 닮았거든요.
가운데 발가락과 발톱이 몹시도 건방지게 발랑 까진 형상입니다.
나나 아이가 천성이 건방진 건 모두가 가운데 발가락 탓입니다.
가운데 발가락이 건방끼의 원천인 셈입니다.
이런 발톱은 관상학의 신체적 특성 통계에서도 잘 잡히지 않는 희귀종임에 분명합니다.
희소가치가 느껴질 땐 자랑스럽다가도 그 유별성이 느껴질 땐 쪽팔리기도 하는 그런 발가락입니다.
그렇다고 E.T를 연상하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보면 깜찍하고 예쁜 발가락입니다.

난 아이가 발랑 까진 제 가운데 발가락을 자랑스레 여기길 바랍니다.
부츠로 여름을 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난 길 다닐 때 예쁜색 매니큐어를 살짝 올린 발톱 가지런히 드러낸 샌달 신은 여인들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이 담에 딸내미한테 모양별로 색깔별로 요런 조런 샌달들 많이 많이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제 어미에겐 샌달을 사준 기억은 그닥 많지 않습니다.
이 글 보고 열 받지 않을려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요즘엔 누군가의 블로그를 탐닉하느라 내 블로그엔 별 관심도 없으니 이 글 때문에 후환을 두려워 할 일은 당분간 없지 싶습니다.

아무튼 나랑 발가락이 꼭 닯은 딸내미는 평소엔 아주 지순한 스딸의 콩쥐 같다가도 한 번씩 씅깔 부릴 때 보면 영락없는 팥쥐 같습니다.
장대비 퍼붇는 오늘 아침, 학교 교문 앞에서 딸내미에게 디지게 혼났습니다.
한 주가 시작하는 첫날과 끝날은 제 엄마 대신 내가 아이의 등굣길을 수행합니다.
그리 험한 길은 아니어도 인도 구분이 없는 차도의 갓길을 200여미터쯤 걷는 등굣길이기에 오늘 같이 장대비라도 내리면 위험한 길입니다.
비를 좀 맞더라도 안전을 위해 둘이 우산 하나만 받치고 교문 앞까지 다정하게 함께 걸었습니다.
근데 그 다정도 딱 200미터 만큼의 짧은 행복이었습니다.

교문 앞 건널목에서 딸내미 손에 들린 삼단 접이 우산을 펼쳐주는데 요게 말썽인 겁니다.
잘 펼쳐지지가 않습니다.
접었다 펴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동안 흐트러진 자세 탓에 조조군의 화살에 둘다 금세 옷이 젖고 말았습니다.
저보다는 내가 훨씬 많이 젖었습니다.
억울해도 저보다야 내가 훨씬 억울합니다.
근데 비화살을 수십 발 맞은 데다 아빠 하는 양이 신통찮아 보였던지 슬슬 짜증이 났던 모양입니다.
“꽤~액, 압빠, 머해! 지각한단 마리야~~빨리 쫌 해바! 꽥! 빽! 캮!....궁시렁 궁시렁..!!”
장대비는 내리지요. 우산은 펼쳐지질 않지요. 조그만 게 소리는 빽빽 질러대지요.
날궂이 참 제대로 하고 있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누굽니까.
저 못지 않게 나도 가운데 발가락 발랑 까진 천하의 ‘예끼’ 아닙니까.
맞받아서 “예끼!”하고 꽥 하려는 순간, 이 사단의 처음부터 내 곁눈질에 포착된 예쁜 아줌마의 미소, 그게 내 인생에 태클이었습니다.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장대비속 온 몸을 던져 나름 분투했건만 조그만 놈한테 실컷 퉁박만 당하던 그 순간, 정말 한 대 콩 쥐어박고 싶었습니다만 건널목에서 교통 도우미 하시던 예쁜 아줌마의 방글방글 미소에 넋을 잃고스리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영악한 녀석인데 좀처럼 걸려들지 않을 겁니다.
걸렸다가도 귀신처럼 빠져나가는 녀석이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벼리고 벼려온 나의 이 콩주먹을 사용할 기회가 점점 적어집니다.
담에 또 걸리면 예쁜 아줌마들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그 땐 정말 얄짤 없습니다.

평소엔 알사탕 같다가도 한 번씩 효리처럼 꽥하면 애비가 오금이 다 저립니다.
귓밥 팔 때가 되었을까요.
귓밥이 꽉 차 있을 때 꽉 막힌 귀(氣?)를 뚫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생기면 저리 빽빽거리는 걸로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 같은 날 저녁에는 무릎에 눕혀 놓고 딸내미 귀를 뒤적여 보면 틀림없이 귓밥이 꽉 차 있을 겁니다.
딸내미의 귓밥 파기는 제 몫입니다.
제 엄마는 맘이 약해서 남의 귀를 제 귀처럼 마구 후벼대질 못합니다.
게다가 엄살이 어지간한 대상이라야 말이지요.
귀파기를 둘한테 맡겼다간 밥 굶고 날쌔기 딱 좋습니다.
보는 사람 숨넘어갑니다.
보다가 하도 답답해서 시작했던 일인데 어느새 아이의 귀는 제 손길에 더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치만 한 번도 속시원하게 귀를 파본 적은 없습니다.
마지막 몇 조각을 눈 앞에 두고 철수해야 하는 아이 귀파기의 찝질함은 안 해 본 사람 잘 못 느낄 겁니다.
실제 아프기도 하겠지만 엄살도 적지 않을 거란 의심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내 귀가 아니니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귀가 예민한 곳인만치 똥누다 마는 찝질함을 늘 제 몫으로 감수하고 맙니다.

비 오는 날 시작한 딸내미 얘기가 삼천포를 지나 남해대교까지 들어섰군요.

한 대 쥐어박지 못한 억울함(?)을 너스레로 푸는 중입니다.
요즘들어 딸내미가 자주 부리는 애교가 있습니다.
어디서 본 건지, 지가 필요한 게 있으면 코 앞까지 바짝 붙어 콧바람 쏭쏭 불어대며 ‘아빠~~앙, 아~잉~~’하며 살인 윙크를 날리곤 합니다.
그런 맛에 웃으며 삽니다.
노짱의 죽음으로 인한 한 동안의 무력감을 달래 주는 힘이 지척에 있었습니다.
산사까지 찾지는 않아도 될 성 싶습니다.

손녀와 노짱이 어울리던 정경들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그런 알사탕 같은 손녀를 두고 벼랑끝으로 내디딘 걸음걸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발가락이 닮은 새끼조차 하나 없는 ‘늙은 아이’ 김동길이 어찌 그 고통을 언감생심 헤아려나 볼까요.
애들은 가라, 철부지가 왈가왈부하기에는 격이 다른 어른이셨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장대비는 지적 재산권에 상관 않는 익명의 노래꾼이 유포시킨 MP3 파일처럼 다 함께 공유하고 싶은 그 무엇과도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옵니다...

===東山高臥===

글쓰기, 그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위하여

글쓰기, 그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위하여
작성일:2009.06.20



글쓰기, 누구에게나 참 어려운 작업이다. 잘 훈련된 전문 글꾼들조차 한 번 정도씩 맞닥뜨리는 생각이지 싶다. 어떻게 써야 잘 쓴 글이고 좋은 글일까. 나 나름 평소 생각해본 잘 쓴 글, 좋은 글을 평가하는 몇 가지 기준은 이렇다.


첫째, 독자가 읽기에 부담 없고 편안한 내용일 것.

--전문가용 글이 아니라면 자신의 현학을 뽐내듯 쓰인 글은 독자들에겐 부담 백배다. 이런 글은 독자들을 괜스레 주눅 들게 하고 불편케 한다. 마치 자신의 유식함을 과시하는 게 목적인 양 쓰인 글은 독자들로선 역겹고 왕재수다. 쉬운 말을 어렵게 표현하기보다는 어려운 말을 쉽게 표현하는 거야말로 독자들을 배려하는 바람직한 글쓰기다. 수시로 사전을 뒤적거리게 만드는 글은 독자들을 지치게 한다. 자고로 익은 벼는 고개를 숙이지만 빈 깡통은 요란한 법이다. 얄팍한 지식을 늘어놓으며 독자들 앞에서 건방을 떨거나 나대어서는 절대로 안 될 일이다. 간섭을 않을 뿐이지 그 얄팍함을 꿰뚫어 보는 매서운 눈은 도처에 깔렸다. 흔적 없는 말보다 흔적이 뚜렷한 글은 그래서 더 무섭고 책임감이 뒤따른다.

둘째,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것.

--호가호위하는 글쓰기 습관을 경계하자. 고사 성어나 명언, 한문이나 영문, 유명인의 이름이나 어록을 과도하게 인용하는 글들이 있다. 이것도 첫 번째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이런 습관은 은연중에 자신의 해박함을 과시하려는 목적이거나 남의 권위를 빌어 자신의 글을 돋보이게 하는 수작에 다름 아니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인용을 절제하고 자신의 평소 주관이나 사색의 결과물들을 잘 정리해서 전달할 일이다. 유명인의 어록을 인용키보다는 자신만의 멋진 표현들을 상상하고 창작해보자.

셋째, 간결한 문체를 사용할 것.

--간결한 문체는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숨 쉴 여유를 주고 글 읽기를 지루하지 않게 한다. 문장이 지나치게 늘어지면 읽는 독자는 숨이 가쁘고 답답함을 느낀다. 탈고 전에 독자의 입장에서 두세 번 글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호흡에 압박을 받는 부분은 없는 지 두루 살피면서 문장을 가다듬는 일은 꼭 필요하다. 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문맥을 다듬고 굴려보자. 정말 잘 써진 산문은 그 길이에 상관없이 한 편의 시처럼 와 닿기도 한다.

넷째, 적절한 어휘나 개념을 구사할 것.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어휘나 개념의 사용은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고 글의 권위를 떨어뜨린다. 잘못된 어휘나 개념의 사용은 스스로 사용한 어휘나 개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어려운 용어나 개념을 남발하는 현학적 욕심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하지만, 난해한 용어나 개념이 뒤범벅된 글은 절대 잘 쓰인 글이 아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기만의 지적 유희일 뿐이다.

다섯째,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충실할 것.

--앞서 언급된 내용들에 아무리 충실해도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엉망이면 이 역시 글의 권위를 곤두박질치게 한다. 올바른 띄어쓰기나 맞춤법의 사용은 전문 글꾼들조차 어려워하는 글쓰기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띄어쓰기나 맞춤법은 글의 옷에 해당한다. 아무리 고운 몸매도 누더기 옷을 걸치면 볼썽사납다. 심혈을 기울여 쓴 글에 날개를 달아주지는 못할망정 누더기를 걸치는 일은 없도록 하자. 허례허식은 경계해야겠지만 맞춤한 형식은 내용을 더욱 알차고 돋보이게 한다.

여섯째, 글의 주제가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전개될 것.

--글의 주제가 불분명하고 논리 전개가 중구난방이면 곤란하다. 글을 읽고 독자의 머리가 혼란스럽다면 실패한 글이다. 논리의 전개는 전적으로 주제를 명확하게 하기 위함이다. 논리와 주제는 항상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하자. 인터넷 유행어인 ‘닥치고 세 줄’이란 말은 장황한 사설로 주제를 흐리지 말고 간결하고 명확한 논증을 통해 주제를 분명히 하라는 말을 압축한 표현이다. 주제가 불분명하고 논리 전개가 중구난방인 장문의 글보다는 주제가 분명한 세 줄 문장이 훨씬 잘 쓴 글이고 좋은 글일 수도 있다.


이상으로, 개인적으로 평소 생각해왔던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몇 가지 기준들을 나열해 보았다. 스스로는 그처럼 글을 쓰지도 못하면서 이런 글을 쓴다는 게 참 많이 낯간지럽다. 그럼에도 굳이 한 번 정리해본 건 스스로를 향한 채찍질이다.

세 줄짜리 댓글이든, 10권짜리 대하소설이든 잘 쓴 글을 읽고 나면 감동이 남는다. 사람들은 좋은 글에 공감함으로써 글쓴이와 교감하고 나아가 사회적 동물로서 세상과 연대하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좋은 글이란 궁극적으로 사람 사는 세상의 사랑과 희망, 자유와 평화에 크게 기여한다고 보는 것이다.

지구별의 사랑과 희망, 자유 그리고 평화를 위해 오늘도 저마다 창작한 글을 나누며 공감하고 연대하는 세계 만방의 블로거들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며 인사드린다. 건,강,건,필,행,복,만,땅!!....^^

===東山高臥===

옛다, 쳐먹어라..

옛다, 쳐먹어라..
작성일:2009.06.04



붕어는 없었다


살며 요즘처럼
무력감을 느낀 적 드물다

걸림 없다면 산사라도 찾고프다
딱 보름만

----------------------------------------------


홀로 앉은 물가

대 드리우면
한 길 물속조차 천 길 만 길인 양
속내가 어지럽다

휘~익,
아쿠, 헛챔질

편납 탓이다
괜스레 편납에다
메스를 댄다
1mm만 컷팅,
꼬인 심사에 손끝이 떤다

휘~익,
어라, 헛챔질

바늘 탓이다
낚시 바늘로 손톱을 할퀸다
촉은 예리하기 흠 없다
그래도 못 미덥다
바늘 바꾼다

휘~익,
또, 헛챔질

목줄 탓이다
목줄마저 바꾼다
25cm에서 30cm로
두 줄에서 한 줄을 잘라
외줄이다

휘~익,
다시, 헛챔질

찌 탓이다
너무 까분다
십여 년 지기여도
의심이 간다
바꾸고 만다
우직한 놈으로
3.5푼에서 5푼으로 간다
둔해도 묵직해서 좋다
이젠......

휘~익,
역시, 헛챔질

성이 바짝 마른다

떡밥 탓이다
마지막 처방이다
꾼의 점심값보다 비싼 떡밥
또 갠다
사람보다 비싼 걸 쳐먹는 늠들
아침상, 저녁상이 다른 늠들
변덕이 죽 끓는 늠들

옛다, 쳐먹어라!


--------------------------------------------------

가뭄으로 물갈이한 저수지라면 붕어는 없다
없는 붕어를 잡겠노라 이탓저탓 들이댄 그 모든 억지는
정작 붕어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은 아니었는지...
모든 게 내탓인 것을...

----------------------------------------------------------------------------------------------------------===東山高臥===

삼성 카드 삼송전자 불매운동..ㅋㅋ

늦밤에 글 한 편 옮겨 봅니다. 언제 보아도 총기와 패기가 출렁넘실거려 '이뻐라 하는 분'의 글입니다.

삼성 카드 삼송전자 불매운동..ㅋㅋ
작성자:'루울'
작성일 : 2009.6.13



좀 등신같다.

이것은 실패할 게 뻔할 뻔자인 운동..ㅋ

나는 멍청한 애들이 뭔가 실효성 없는 일들을 굉장히 열렬하게 하는 것을 보면 좀 안타깝다.

애초에 그저 삼성에 대한 반감 표출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노린 거라면 몰라도 불매운동으로 정말 삼성이 타격을 입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이들의 계획이라면.. (설마?-_-;; )엄청 웃긴 개그다. ㅋㅋ

이건 뭐랄까.. 머저리들이 모여서 '우리 함께 서울대에 입학하지 말도록 하여 대학 재정을 파탄시켜 입시 제도를 붕괴시키자'며 '서울대 입학거부 운동'을 벌이는 상황과 비슷...
어차피 개별적 인간은 이기적이라 대의 앞에서는 강한 척 할지 몰라도 코 앞의 이득 앞에서는 무쟈게 약하지.
나 하나쯤이야~ >>> 넘사벽 >>> 정의, 대의.
그리고 이것은 이명박 당선으로 정확하게 증명된 사실이자 작금의 현실이다.
그래서 누구나 서울대 욕하면서도 다들 서울대 가려고 그 좁은 문을 엿보며 야금야금 학원 다니게 되어 있어.

끓어올라 터질 정도가 아니라면, 대다수의 군중에게 '투쟁'이란 것은 남이 해주는 것, 남이 해 주길 바라는 것이지.
아고라에서 20대들에게 데모 안 한다고 나불거리며 푸념하는 늙다리들을 보라, 그거야말로 아직까지는 혁명하러 거리로 당장 튀어나가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만하다는 현실상황의 반증 아닐까. 남이 해주길 바라는 심보를 가진 그들이 잘도 뭉쳐서 삼성 불매하겠다?ㅋㅋㅋ니들 행색을 보니 구매력이 있는지도 불분명 할 뿐더러 삼성 테레비가 10원이라도 싸면 금방 허물어질 의지를 가진 인간들...

삼성불매? ㅋㅋ 친일반대 구호와 비슷하네.
그렇게 추상적이고 흐릿한 구호로 한 숨 바람에 흩어지는 쌀알 같은 이기적 군중을 어떻게 응집시킬 것이며
돈 10원 앞에서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뭘 어떻게 불매운동을 유지하겠다는 건지.

어떤 잘난 구호를 걸어봐라, 어느 놈이 대학입시 서열화 타파를 위해 학원 안 가고 입시거부 투쟁할까?
결국 대다수의 소비자는 삼성 티브이가 lg보다 싸고 삼성카드 서비스가 좋으면 이용할 수밖에 없는 거지..
결국 실패가 수순..


나도 삼성 이건희 일가 졸라 싫어해서 시사in 창간호 사보며 김용철 변호사가 이기길 바랐던 사람으로서 니들의 답답한 마음은 알겠는데 좀 다른 방식, 다른 걸 개발해 봐라. 좀 영속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걸 개발해봐라.
한심한지고... 아고라는 역시나 오늘도 .. ㅋ


그리고..20대들보고 거리로 안 뛰쳐나온다고 욕하는 인간들도 참 드럽게 못난 인간들이다 ㅋㅋㅋㅋㅋ
이봐, 시대가 달라졌어.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학생운동--> 시민단체 등으로 핵이 바뀌었거든?
학생운동의 쇠퇴는 어찌 보면.. 시대의 번영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란 말이다. 그만큼 사회 구성원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지식층이 두터워지게 되었고 공권력에 맞서 돌격하는 청년층의 혈기가 굳이 필요 없어도 제도개선과 합법적 소통만으로 문제해결이 가능할 정도로 사회가 민주화, 다양화 된 결과인 거지.. 학생들이 그저 무개념에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거든.
그리고 그런 제도적 보완책이 완전하게 사라져 유혈 혁명이 필요한 세상도 아니잖아 지금은.
아휴..20대를 나무라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짱돌 들고 거리로 뛰어나오지 않는다며 화내는 늙다리 인간들을 보면 진짜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니들이 뭔데 개인들의 행복 추구권을 왜 대의와 맞바꾸라고 강요합니까.
사회 변화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고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개인들의 행복추구와 개인주의가 뭔 죄인가요. 합리적 개인주의는 사회 변혁과 단합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겠지만 절대로 '해악'을 주지는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인주의자들을 욕하는 그런 인간들이야말로 니 욕망을 위해 파쇼도 불사하는 인간들이더군요.
그런 인간들이 다수가 되면 사회는 묻어가려는 인간들이 늘어 광기에 빠지게 되며 멍청한 독재자를 낳고 결국 부패하고 침체됩니다. 아파트 땅값 올려달라고 어깨에 힘주며 쥐박 찍었을 인간들. 혹은 남의 땅 값 올라갈 때 배 아파서 노무현 졸라 욕했던 캐 서민. 그들이 바로 그런 파쇼들 아닌가.

20대의 행동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물론 비정치적인 성향은 있지만 어느 집단이나 일정 퍼센티지는 그런 자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 선택 또한 그들의 자유이지. 그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때가 안 되었다는 걸 반증하는 거라고 보는데.

욕망을 '성취'하려는 개인주의자들을 욕하며 쇠파이프 들기를 종용하는 자들은, 욕망에 압도당하거나 욕망 앞에 패배한 자들이다.

written by ===루울===
(이 글의 저작권은 '루울'님에게 있습니다)


브롸보오~ 속 션한 일갈입니다 !

이 분이 이 분이 아니고 이 분?

이 분이 이 분이 아니고 이 분?
작성일:2009.07.15



왜,


이 분에게서


이 분이 아니고,


이 분이 연상되는 걸까?


=====================================================================================

오늘, 야후 메인 화면에서 3번 화보를 보는 순간,
얼마 전 기사화된 1번 화보와 함께
어제 '이뻐라 하는 분'의 집에 들렀다가 눈에 띈 2번 화보가 순간적으로 오버랩되는군요...
'이뻐라 하는 분'아, 애인 사진 몰래 훔쳐와서 먄혀~~ㅎ~







===東山高臥===

미네르바는 역쉬 안드로메다 스딸이다.

미네르바는 역쉬 안드로메다 스딸이다.
작성일:2009.06.29



천재인지, 천재끼가 일시적으로 드러났다 만 건지 그도 아니면 너무 떠서 겉멋이 든 건지 참 헷갈리는 친구다.
천재들의 행동이 으레 범인들의 상상을 초월할 때가 많다더니 이번도 그런 경우일까 아니면 그저 그런 수준의 철부지 청년의 좌충우돌인 걸까.

유학 준비를 한다길래 잘 됐다 싶었고 잊고 지냈다.
근데 오늘 뜬금없이 ‘돌아온 미네르바’란 타이틀이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한다.
한 때 ‘인터넷 경제대통령’으로까지 불리었던 만치 여전히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황색 언론에겐 타깃인가 보다.
그야말로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모습이 이젠 식상해지려 한다.
물론 그게 어디 그 자신만의 탓일까마는 그를 상품화하려는 집단의 이해관계에 지속적으로 휘둘리는 건 자신의 책임이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거라면 더 할 말도 없다.

휘둘리지 말고 좀 진득했으면 좋겠다.
그간 그를 옹호해 왔던 입장에서 보면 그렇다.
설마 뽕발에 취해 그러는 건 아닐 거라 믿고 싶다.
당대 경제학 석학들까지 나서서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 세상이 고만고만하고 졸로 뵈나보다.
까불다가 밑천 드러나서 우물 안 개구리로 돌림빵 당하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 되는 것도 뜰 때 처럼 한순간이다.
그 땐 이런 쓰레기 같은 토론방에서조차 변호해줄 사람 하나 없게 된다.
상대에게 밑천 드러나기 전에 쌈지부터 빵빵하게 채울 일이다.
계획했으면 유학이나 끝내고 어느 정도 ‘본’을 정리하고서나 ‘활동’할 일이지 서둔다. 너무 서둔다.
그런 모습이 영 가벼워 보이고 믿음이 가질 않는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면 이런 방법 말고도 여러 다른 길도 있을 것도 같은데...
난 속으로 그가 유학 간다니 참 잘 됐다 싶었고 넓은 물에서 맘껏 유영하면서 고래가 되어 귀향하길 기대했다.
근데 하는 양을 보니, 천재끼가 의문스러울 정도로 생각의 여물기는 여러모로 유치해 뵌다.
사실, 삼십 초반의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 정도 나이면 이런 주변의 우려들을 불식시킬 수 있는 생각과 처신을 할 나이도 되었다.

공부하려 들었으면 거기에만 집중할 일이지
이 무슨 엉뚱하고 조급한 세상과의 결탁이신가.
작년 미넬바의 허실은 이미 다 드러난 거고 무슨 재주로 왕년의 영광을 재현할 거라고 그리도 보무가 당당하실까.
또 다시 무단 인용과 기사 짜깁기로?
아님 멍박과 정권 까대기로?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썼던 글들의 많은 부분에서 출처에 대한 해명도 없이 인용과 짜깁기가 행해졌던 걸로 아는데 그런 것에 대한 분명한 입장 표명도 없이 ‘이제부터 할 말은 하고, 쓸 건 쓰겠다’고 선언을 하니 무모한 건지 아니면 정말 ‘자신만의 뭔가’가 있는 건지 ‘노려보고’ 싶은 심산이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의 대중적 명망에 눌려 공개적으로 개진되지 못했을 뿐이지 이미 작년부터 여러 경제 전문가들이 미네르바의 글들이 지닌 맹점을 꿰뚫어보는 비판을 수행해 왔던 걸로 안다.
이제 그런 눈들조차 겁내지 않고 공개적으로 세상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골방에서 훔쳐온 남의 글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대한민국 경제학 석학들과 정면으로 맞짱 떠보겠다는 그 가상한 용기가 무모한 객기로 보이는 건 비단 나만의 우려일까.
기왕 선언했으니 요란한 잔치에 먹을 것도 많길 바란다.
인터넷상에 떠도는 경제 지면들의 뉴스를 취합, 분석, 정리하는 기사 수준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동시에 갖는다.

행여라도 왕년의 미네르바의 환상과 뽕발에 취해서 좌충우돌하는 거라면 리뒴이 담댕이 나무랄 거 뭐 있나.
그 나물에 그 밥인 게지.
그렇다면 그저 그렇고 그럴 뿐인 젊은이 하나 기 죽이지 않으려 설친 알밥들도 이곳에 상주하는 아골나 듕신들처럼 괜스레 듕신짓한 거지 머.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3&fid=540&articleid=2009062913005662608

*노짱 타살 음모론을 퍼뜨리던 일부 알밥들한텐 참 유감이었다...^^

===東山高臥===

주께서 이르기를, 뿌린대로 거두리라!

주께서 이르기를, 뿌린대로 거두리라!
작성일:2009.05.15



상상 ‘하나’


내가 만약,
임을 향한 일편단심 열혈 리빠 담빠로서,
봉황 가튼 임들이 내리시는 말씀들을 한 자락이라도 흘릴 새라
눈 초롱 귀 쭁끗 옷고름 여미며 경건히 받잡고
한편으론, 입 쬭 내밀어 무시로 알밥 색휘들을 까대기를 깐죽깐죽,

근데, 그게 말짱 ‘수굼포질’였음을 알게 된다면...??????????????

대갈휘 싹 밀고 달마가 오신 서쪽 벽을 향해
무소처럼 달려 두어 차례 들이받고 흘린 피로써
‘애비의 듁음을 알밥들에게 까지 말라!’는 피의 유훈을 남기우고
땅 끝까지 하염없이 달리고 달려 마침내 땅 끝에 이르면
미련 없이 짬뿌하여 지구를 떠나삐리고 싶을 끼다.

‘쪽 팔리서......건달이 쪽 팔리면 안 된다 아이가!’

일개 건달 준석(유오성)이도, 쪽팔리느니 차라리 죽자 하는데
하물며 조국과 민족을 구원켓노라 떨쳐나서신 애국지사 글쟁이들이시니 일러 뭣할꼬.


상상 ‘둘’


연이은 폭로로 제법 밑그림이 그려졌다.
매 앞에는 장사(壯士) 없어도 돈 앞에는 장사 있다.
그럼 그러치, 장삿꾼(브로커)의 눈이 그냥 지나쳤을라고.
책팔이는 몰라도 ‘주식 컨설팅’은 돈 된다.

작년 미넬바는 ‘족집게 무당’으로 떴다.
과외도 족집게 과외는 기냥 과외보다 열 배는 비싸다.
족집게 무당 미넬바의 주식 컨설팅의 부가가치는?
흐미~ 그 고객수만 손꼽아도 지천에 돈이 늘렸네.

누군가 그 돈을 탐했다?

누가? 장삿꾼과 그 일당들이!
언제? 지난 연말부터!
어디서? 700을 거점으로 아고라에서!
무엇을? 사기를!
왜? 돈 벌려고!
어떻게? 음모와 협잡으로!

글 쓰는 꼬라지 함 바라.
한 줄짜리 댓글로 원글 이백 줄을 꾸며내는 자다.
아이템 하나 잡히면 천 쪽 짜리 사업보고서를 꾸미고도 남을 위인이다.
자칭 타칭 ‘동북아 최고의 대북 사업가’ 출신 아니신가. 흡~

지난 연말 우리 모두는 온라인에서 일개 글쟁이의
경제 예측글이 조회수 이삼십 만에 찬성수만도 십만을 오르내리는
촛불 때도 보지 못했던 천지개벽을 목도했다.

동북아를 떠돌던 시라소니의 매서운 눈이 먹잇감을 놓쳤을 리가 있나.
돈 냄새를 맡아버린 장삿꾼의 동물적 후각이여!
보고서니 비망록이니 글빨로서
길가는 개색휘 똥꼬까지 들쑤시는 게 전문이던 그의 이력을 보노라면
어중이떠중이 홀리는 거야 빨대로 콜라 빨아먹기 아닌가.

‘미네르바 족집게 주식 컨설팅!’

바로 이거다.
체계화된 조직(700)도 있고 아이템도 있고 기획된 사업의 수순대로
신동아에 작업까지 걸었다. 그러다 아차,
예상치 못했던 사업상 차질, 진짜 미넬바 박대성의 출현!
미네 1인 족집게 과외 시스템 사업 계획은 급변경이 필요했고
‘날라리즘의 주창과 아고라로부터의 집단망명’을 선동하면서 급처방 했다.
와중에 덤으로 자칭 타칭의 고수들을 대거 합류시키는 기염도 토했다.
투자 분야별 전문 상담 떡고물로 유혹했을라나?
책의 출판 기획과 판매까지도 적극 보장해주는 그럴싸한 유혹도 있었을래나?
과연, 급격한 상황의 변화에도 사기꾼스런 기민한 대응이다.

아고라는 어느 순간부터 그들에겐 신인 발굴과 스타 양성소가 되었다.
스타 만들기 프로젝트에는 700의 핵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스타 탄생을 알리는 홍보용 도배질, 뽕발 멕인 댓글쓰기,
조회수와 찬성수 융단 폭격으로 베스트글 올리기, 등등.

700이 전위형 정예 조직이라면 아정포나 기타 공개 카페는
700의 외곽에서 700의 인적 물적 토대를 제공하는
보다 느슨한 방계형 조직처럼 활동한다.

이 늠들 하는 짓이 참으로 요사스럽기 그지없다.
알밥들이 벌써 한 달여 전에 이런 조직적 행태를 느끼고서
관련 내용을 개진한 바도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의뭉스런 늠들이다.
질이 아주, 몹시, 고약하게, 억수로 나뻐!
어디 팔아 쳐묵을 게 없어 민주와 개혁과 진보를 팔아서
사기꾼 비스무리한 장사꾼 나부랭이와 그 일당들의 배떼지를 쳐불릴 생각이었더냐!
장담컨대 세상에 양심과 정의가 있다면,
니늠들의 말로는 반드시 반드시 까막소여야 한다.

700이고 아정포고 기타 관련 카페고 순수한 맘으로
참가한 회원들도 물론 있을 게다.
그런 분들은 지금이라도 정신차리시라!
사기꾼들이 어디 ‘나 사기 치고 있소’라고 광고하고 사기치는 거 절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알흠답고 영롱한 소리를 울리는 게 그들이다.
더 길게 가다간 영영 헤어나지 못한다.
지구 끝에서 짬뿌하긴 싫거든 이 쯤에서 정신들 차리시라.

미넬바를 장삿속으로 이용해 쳐먹으려다 까막소 가게 생긴
상층부 사기꾼들에게는 알밥들이 원쑤처럼 느껴질 테지만
알밥들이 울려대는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혼의 소리가
사기꾼들의 최면에 걸려 판단력이 몽매해진 우리의 이웃들을 깨우는
각성의 나팔이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이런 늠들이 사기꾼이다----


=사기꾼 치고 못 생긴 늠 없다.
(단, 2늠은 예외, 권,배!)

=사기꾼의 주변에는 항상 그림자처럼 따르며 바람잡는 여인네들이 있다.
(몸, 돈, 집, 바칠 거 다 바쳤으니 오갈 데 없는 가련한 여인들이다.)

=언변이 화려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인맥이 화려하고 잡기와 잡식에 능하며 사교술이 뛰어나다.
(사기를 위하여 워낙 많은 대상들과 접촉하다보니 깊이는 없어도
딱 사람 홀리기 좋을 만큼의 잡식과 잡기에 능하다)

=양말을 벗겨보면 오리발을 하고 있다.
(사기가 들통이 나도 담담하고 당당키가 이를 데 없다.
장황한 화술로 따지러 온 피해자들에게 제2의 투자를 유치해낸다.
첫 피해 때 빠져나오지 못하면 영영 사기꾼의 올가미에 갇히고 만다.
같은 늠에게 연거푸 두 번을 당하면 피해자들은 못난이가 되지 않으려
인지부조화에 빠지고 동료 피해자들 간의 동병상련을 위안 삼아
사기꾼에게 자신의 삶을 통째로 맡겨버린다.
사기친 늠과 사기 당한 늠이 교주와 신도의 관계로 재설정되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되는 거다
JMS 신도들의 상태와 다를 바 없다.)

=언제나 비전과 희망을 제시한다.
(세상은 넓고 먹잇감은 많다.
사람들이 꿈을 쫒아 사는 건 사기꾼들에겐 크나큰 홍복이다.
‘비전과 희망’, 사기꾼들이 사기를 획책하는 보고서의 표지 제목이다.
오라, 이진법 세상에서 꿈꿀 자유를 빼앗긴 난민들이여!
여기, 꿈꾸는 자들의 희망 라도니아가 있나니 와서 맘껏 누리시라, 사기 당할 자유까지도!)

=사기꾼들의 말로는 까막소!
(주께서 이르기를, 뿌린대로 거두리라!)

===東山高臥===

리듬이와 담댕이..

리듬이와 담댕이..
작성일:2009.05.09



남들 욜씨미 싸우는데 뜬금없이
‘이제 고마 해라’는 분들이 봉숭아 씨방 터지드끼 톡톡 불거지신다.
나서 생전 쌈질 한 번 안 하고 곱게 크신 분들인가 보다.

속으론 싸울 맘 없이 목소리만 큰 가짜배기 쌈판에서는
'재미'의 측면만으로 보면 말리는 사람의 역할은 꽤나 크다.
금세라도 칼부림 날 것 같아도 그런 가짜 쌈판에선
정작 말리는 사람이 말림을 관두면 판이 금세 삭아들고 만다.

근데, 작금의 아고라 경방은 그런 가짜 쌈판이 아니다.
벌써 한 사람은 옥고를 치렀고
몇 사람은 옥고가 예비 되어 있는 제법 큰 쌈판이다.
이런 진짜 쌈판뗴기에서 쌈 관두라 잘못 말리다간 파편에 코 벤다.
미네르바 진위만큼이나 쌈판의 진위도 잘 살펴 처신할 일이다.

그라고, 이미 벌어진 쌈은 굳이 말리려 들지 말라.
아고라 담당 말고 까막소 담당 중에 진짜 노련한 담당은
도둑늠들 간에 쌈 붙으면 가만 놔둔다.
좁은 공간에서 지들 간에 서열이 정해질 때까진
말린다고 끝날 쌈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일은 고작 아작난 늠 의무과로 데려가는 뒤처리만 담당할 뿐이다.

‘세상살이란 게 다 그렇지 머’ 정도로 생각하자.
사람 사는 곳에 쌈 나는 거 당연한 일 아이가.
명절날 피붙이 간에 고스톱 치다가도 칼부림도 나더라.
더군다나 요지경인 넷 세상에서야
얼란지 어른인지 암컷인지 숫컷인지 계급장 다 떼 놓고서
할 말 다하노라면 쌈 안 나는 게 이상한 거지.

쌈질도 재밋게 하면 재밋다.
하는 것도 재밋고 보는 것도 재밋다.

솔직히 요즘 들어 묘한 걱정거리 하나 생길라 칸다.
리듬이와 담댕이를 끊고선 무슨 낙으로 살까?, 풉!...*^^*
수년 전 타바꼬 끊었을 때의 금단 현상, 오~생각만 해도 괴로운 일이다.
리듬이와 담댕이 없는 아고라 경방은 상상키도 싫다.
내 지난 글 90빠센뜨 이상이 이들과 관련된 글이다.
이들 떠나면 나도 경방에 머물 일 없다는 소리다.
새로운 알밥 일거리를 찾아 머나먼 별나라를 여행해야만 한다.
우주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무리를 찾아서!

지구별에 붙인 정 떼기가 참으로 어렵다.
지구별 대한민국 다음 아고라 경방에서 쌓은 미운 정 고운 정이
어느덧 134340번 소행성만큼이나 커졌다.
난 아직 지구를 떠날 준비가 안 되았는데 그들이 불시에 떠날까 그게 큰 걱정거리다.

리듬아, 너 거기 있거라, 그래야 나 여기 있고
담댕아, 너 여기 있거라, 그래야 나 거기 있지.

작년 미네 할배 오기 전까지 난 아고라 경방이 있는 줄도 몰랐다.
미네 할배가 띄워 놓기 전엔 그저 그런 수준의 게시판이었으리라.
쌈 말리시는 분들, 미넬바고 리듬이고 담댕이고 알밥들 다 가고 나면
먼 재미로 아고라 경방 들르려오. 미워도 고마운 줄 아오.

서뿔아이즈 황토방을 아시나요.
황까들 다 쫒아내고 줄기 천국을 이룰 거라더니
황까들이 자리를 비우니 삭막한 사막 되어 인적조차 드물더이다.
알밥전서 제5장 16절,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리듬이와 담댕이 그리고 알밥들 없는 아고라는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 되고 고추장 없는 비빔밥이 되리라!’ 하셨다.

리빠, 담빠 신도니마들 요즘 힘 마이 빠지시지요?
숭배하던 교주 둘이서 돌아가맨서 삽질하는 거 볼라카이 돌아뿌리고 십찌요?
첨엔 꽤 그럴듯해 보이던 쌍교주들의 밑바닥을 직시하자니
니미뤌, 줄 존내 잘못 섰다 싶으시지요?
미넬바 믿었다가 개쪽 팔고 그 쪽을 줄여보려 리듬이와 담댕이를 숭배했다가
더 큰 쪽 팔게 생겼으니 이야말로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노릇 아니던가요?
담댕이는 자꾸만 ‘굿판’을 걷어치라는데
내 보기엔 니마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굿판’인 걸요.
살면서 다시는 다시는 썩은 동아줄을 붙들지 않을
영험한 뽑기 능력을 주실 분은 오직 그 분입니다.

다들 따라해 보세요.

삼신할매에~~~ 용 빼는 무당 하나 보내주세요!
리듬이 담댕이 같은 선무당 말고!


===東山高臥===

사람아, 아~사람아..

사람아, 아~사람아..
작성일:2009.05.08



미네르'빠'에게, 그리고 미네르바에게... [0] (2009.1.17)
--------------------------------------
---------------------------------(략)
다 까고 보니 그는 그저 '수완 좋은 기자'일 뿐이었다. 그런 에서 오마이가 그를 면접해 보겠노라 일찌감치 찜뽕한 건 싹수 있는 재원을 알아보는 재바른 행보임는 틀림없어 보인다. 그간 박대성씨는 좋은 기사를 써왔다고 볼 수 있다. 범인들이 쉽게 근접하기 어운 사건과 사례와 정보들을 잘 정리하고 가공하여 독자들의 구미에 맞춰 누구보다 속도감 있고 풍부 기사를 제공하여 왔다. 특종에 대한 강박관념이 종내 그를 곤경으로 몰기도 했지만 비일비재한 제도 기자들의 쓰레기 같은 소설 기사들에 비하면 그 정도쯤이야 애교로 봐줄 만도 하잖는가. 허나, 그가제공한 정보가 지닌 가치의 정도를 떠나 그의 진면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지금에서까지 그가 나의 상 속 미네르바로 자리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에 난 이제 내 상상 속의 미네르바를 내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우려 한다. 박대성씨에게는 그간 좋은 기사들을 접하게 해준 것에 개인적 감사 드린다. 아울러 그가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머잖은 장래에 어느 특종 경제 기사 맨 하단에서 미네르가 아닌 박대성이란 이름 석 자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이 글을 쓰는 내내 나 부끄럽게 하고 머뭇거리게 하였던 글 한 단락을 인용하는 것으로 미네르바님에게 작별을 고한다....

<나는 '상징' 60~70대이건 30~40대이건 그 나이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10대의 천재도 존재한다. 나이답지않게 세상 읽기에 밝았던 이들은 많았다. 그러므로 그가 이진법에서 썼던 그 언어와 사실, 그리고 애의 가치만이 우리가 이진법에서 보는 그 상징의 존재감으로 남아 있으면 된다. 그 상징이 설혹 구속 이와 생면부지라 하더라도 좋다. 그상징이 설혹 우리가 들은 바처럼 대한민국의 1% 내외가 아니라 리와 더불어 사는 99%의 인생사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 그가 이른바 기득권으로 가는 리트 코스를 밟지 않았다면 더더욱 좋다. 그렇다면 그는 확실히 그가 주장해온 '천민의 상징성'을 대로 말한 것이니까.> ==='담담당당'님의 <어떤 '상징성'과 지난 일주일에 대하여>라는 글 중에서===

\\\\\\\\\\\\\\\\\\\\\\\\\\\\\\\\\\\\\\\\\\\

위 인용글은 네 달 전에 포스팅했던 알밥 예끼의 글이다.
저 때만 해도 알밥 냄새가 덜해 보이쥐?
악바리 아줌마 예끼의 순수했던 처녀적 모습이라고들 생각혀.
요즘에야 놀부 마눌화 뒷마당 돌쇠 부르드끼 ‘담탱이’라 막 불러대지만
저 때만 해도 양반집 도련님 대하듯 ‘담담당당 님’이라며 정중히 호칭했었네.
담댕이가 제 스스로 격(格)을 떨어뜨렸으니 그리 대우 받은들 어쩌겠누.
이성이를 배반하고 감성이랑 붙어먹는 ‘난봉’을 선택한 자업자득인 게지.
그려, 꼴리는 데로 살어. 제 몫 만큼 책임만 지면 되잔혀.

어제 오늘 완죠니 맛이 가 버린 담탱이를 보면서
새삼스레 저 글을 썼던 기억이 치욕스럽게 떠오르더라구.

선각자의 깨침을 받잡듯 그가 쓴 글 한 자락을 다소곳이 따와서 경계로 삼는 것 좀 바.
저렇게 ‘예 바르고 참한’(?) 예끼를 누가 알밥이라 하느뇨, 크흐~
사실은 저 글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드로메다 알밥 총단에 매수되아 버렸쓰.
연봉 360조에 눈이 머러 영혼을 팔았어도 가슴에 총 맞은 듯한 아픔은 엄꼬
날마다 행복 만땅의 아름다운 날들을 보내고 있어효.
그 덕에 우리 초딩 얼라 일제고사 대비 족집게 과외도 시키게 되았고
미친 소 대신 목장길 따라 밤길 거닐며 곱게 큰 우리 한우를 것도 꽃등심으로다가
매 끼니 사이사이 간식 삼아 먹는 호사도 누리는 중이에효.
9급 알밥이 이 정도니 고급 알밥들의 사생활은 미루어 짐작해 주세효.

어, 쌨네..정신, 바짝! 정신일도 하사불성!

위 글을 새삼 떠올려보는 건 담당의 음흉함을 한 번 살펴보려 함이다.
저 글이 쓰인 1월 중순이면 박대성 구속 열흘 쯤 지났을 때이고
아고라 경방은 ‘새벽 미네르바’ 놀이가 한창일 즈음이었다.
그 즈음 나 역시 ‘볼품없는(기대에 비해서)’ 30대 초반의 젊은이가
미네르바였다는 사실에 허탈해하긴 마찬가지였다.
구속 후에 보이는 그의 어눌한 처신 또한 내심 마뜩치 않았기에
맘속 미네르바를 정리키로 결정하고
그의 글에 관심을 기울였던 독자로서 마지막 인사차 남긴 글이었다.

당시 나는 초라한 스펙의 박대성을 미네르바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성의 편견을 명쾌히 벗어던지지 못하는 스스로의 태도가 못내 부끄러웠고
그런 어물쩡한 태도의 경계로 삼고자 담담당당의 글의 한 단락을 인용한 거였다.

‘30대면 어떠랴, 10대면 어떠랴, 나이를 따지지 않고,
1%의 상위층이 아니라 99%에 속한 평범한 스펙일지라도 미네르바를 있는 그대로
담담당당하게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담담당당의 글은 나를 부끄럽게 하였다.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지 못하고 박대성을 ‘부족하게’ 여겼던 나를 나무라는 듯했고
편견에서 벗어나 현실을 냉철히 직시하자는 올곧은 이성의 외침으로 들렸다.

시박, 그 때는 그리도 올곧고 이성적으로 보였던 글이(나를 부끄럽게 하던)
어라, 다 까고 나서 지금 다시 보니 참으로 음흉한 복선들이 깔렸던 글이 아닌가!
흐미~정말 흉측스런 인간일세.

<나는 '상징'이 60~70대이건 30~40대이건 그 나이가 중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10대의 천재도 존재한다. 나이답지 않게 세상 읽기에 밝았던 이들은 많았다.>
===>지금 보니 ‘30대 박대성’을 인정한다‘ 뜻이 아니고 ‘미네르바가 30대가 아닐 도 있다’는 복선이었짜나. 10대의 천재니 뭐니 뒤에 딸린 말들일랑 양념일 뿐이고....일헌, 나쁜 놈!!

<그러므로 그가 이진법에서 썼던 그 언와 사실, 그리고 애정의 가치만이 우리가 이진법에서 보는 그 상징의 존재감으로 남아 있으면 된다.>
===>이건 ‘진짜 미네르바는 우리들 가슴 속에 있어효~’를 선동하는 이진법의 주이었네. 신동아 미네르바가 가짜일 경우 발생할 저항을 대비하는 방어논리가 이 때 벌써 준비되고 있던 게야. 스스로도 자신과 연계된 신동아 K에 대한 정체에 대해선 한번쯤 의문을 가졌을 게고 발생할 있는 만에 하나의 경우에 대비하여 망명지로서 이진법의 세상을 설정해둔 거였군....일헌, 모사꾼!!

<그 상징이 설혹 구속된 이와 생면부지라 더라도 좋다. 그 상징이 설혹 우리가 들은 바처럼 대한민국의 1% 내외가 아니라 우리와 더불어 사는 9%의 인생사를 함께 사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 그가 이른바 기득권으로 가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았다면 더더욱 좋다. 그렇다면 그는 확실히 그가 주장해온 '천민의 상징성'을 제대로 말한 것이니까.>
===>이 때 이미 담당은 자신이 소개한 신동아 미네르바 K와 리드미의 K가 서로 다름을 알았. 적어도 자기가 알고 있는(믿고 있는) 신동아 미네르바 K는 리드미의 K와 달리 외국에 거하는 인물 아니라는 것도, 1%에 속하는 극상위층의 인물까지는 못 된다는 것도 알았다. 리드미를 향해서는 은히 자신이 아는 미네르바가 진짜임을 과시하고 박대성이 만에 하나라도 진짜로 밝혀질 것에 대비한 서비스???? 아무튼 이때 이미 담당은 리드미의 K에 대해선 불신했던 것 같고 자신이 알고 있는 K와박대성 사이에서 장고를 거듭하다 결국 그는 조회수와 찬성수가 안겨다주는 ‘뽕발’을 택하고 말았다....일헌, 모질이!! (룰루님 댓글 참조 수정)

사람 하나 망가지는 게 순식간이다.
원래 그릇이 그 정도였는지 아니면 뽕발에 잠시 헤까닥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은 없다.

분명한 건,
담탱이의 어제 오늘의 저급한 글질을 보노라면
‘원래 그런 인간’이었던 걸로 생각하고 싶다.

인터넷에다 글질한 이래 저 따위 저급한 인간의 글 한 자락을
내 옥주가튼 글의 대미로 장식했던 저 글질이 가장 큰 치욕으로 기억되지 싶다.
지워버리고 싶은 맘이 꿀떡 같지만 실수를 반복치 않으려는 교훈으로 삼고자
꾸욱 참는다.

사람아, 사람아, 아~ 사람아!

===東山高臥===

제 버릇 개 줬을라구..

제 버릇 개 줬을라구..
작성일:2009.05.08



이진법의 세상에선 나름 글빨 말빨 세우며
온 세상이 다 내 것인 양 ‘논객’(?)의 반열에 있건만
십진법의 세상에선 마이너 리그는커녕
동네 조기축구회에도 끼지 못하는 비루한 삶,
내 탓은 햄스터 똥줄기만큼도 없고 모두가 남 탓,
에뤠이 쉬뷜, 숏다리는 에미 탓, 무능함은 애비 탓,
집 없는 서러움은 전과 16범 맹바기의 사기질 탓인 걸 날 더러 어떡하라구.
어무이, 아부지 왜 저를 낳으셨나요!
씨뷔랄 놈의 세상, 전쟁이나 빠바방 터졌으면!
이 모든 기 맹바기와 매국노들, 쪽발이와 양키 늠들 탓인 거야!
베스트로 가는 내 글빨을 가로막는 알밥들을 저주한다, 저주한다고, 흑흑흑.

일부 못난이 아고라 군상들의 자화상이다.

아이들 ‘곱게’ 키우라던 룰루 알밥 대장의 점잖은 충고가 살뽀시 생각나네.
(‘곱게’라는 말은 ‘포시랍게(유복한)’의 뜻이 아닌 ‘교양 있게’ 정도로 해석해 두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곱게 커야 새싹들의 이성과 상식이 건강하고
새싹들의 이성과 상식이 건강해야 나라와 사회가 바로 선다.
'명랑 사회 건설'을 위해선 곱게 키운 잔디가 막 큰 진저보다야 낫잖겄어.
학교 교육만 탓하덜 말고 집안 교육에도 신경들 마니 쓰셈.
사회교육 한답시고 초중고딩 자식들 앞에서
대한민국 사법부가 가짜 미네르박 사기 재판을 음모하고 있다면서 주책 떨거나
문학교육 한답시고 리뒤미나 담탱이 사설(詐說)을 강독하는 꼴값들일랑 떨지 말고 마리야.

‘어무이, 아부지 왜 저를 낳으셨나요?’ 라고라?

그러치, 인생이 고달프면
자신의 존재부터 세상만사 모두 남 탓이고 음모처럼 느껴질 게야.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부분이 인정하는 상식조차 거부하는
아고라의 일부 기이한 군상, 남 탓 리빠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외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음모다’ 라고!
‘그 모든 것은 맹바기 탓이다!’ 라고!


아고라에서만 유독 박대성을 가짜라 하는...
리빠 현상은 병적 현상으로 보는 게 맞다.
적어도 대한민국 평균치 정도의 이성과 상식을 지닌 사람이라면
지난 몇 개월 간 진행되어온 미넬바 진위 논란을 통해 제공된 사실관계를 통해
리빠적 입장을 취할 수가 없는 게 정상이지 싶다.
‘등쉰들’과 ‘중우’라는 숱한 조롱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뚜벅뚜벅 악랄하게 고집을 부리는 그들은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
조롱과 모욕에 익숙한 경험적 ‘내성’을 지닌 집단임에 분명해 보인다.

몇 해 전 리빠들과 아주 아주 유사한 인간 군상들이 있었다. 황빠들!

탄생 배경과 행동 양태, 정치적 성향,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등
여러 특징적 징후를 살펴볼 때 리빠 현상은 황빠 현상의 아류 내지 동류다.
집단의 주된 구성원들의 사고 체계나 가치관 등은 놀랄 만치 유사성을 띈다.
아직은 노골적으로 자신들을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적극적으로 리빠임을 자처하는 무리들 간의 인적 연대의 바탕에는
700 leaders 못잖게 과거의 황빠 관계를 고리로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모르긴 해도 700 클럽 저 곳도 인적 줄기나 성향이 황빠스럽지 싶다.

황빠들, 한 때 얼마나 똑똑하고(?) 대단하였쓰, 천하의 헛똑똑이들!
애국이란 애국 혼자 다하고 진실이란 진실 혼자 다 알며
안드로메다와 뿌리메이숑을 넘나들며 온 우주의 음모란 음모는 다 궤뚫어 보며
모두가 다 세상 이치에 통달한 도인들이었고,
온갖 영롱한 선전 선동 창작물을 쏟아내던 문인들이었으며
황구라도 모르는 줄기의 창조 과정을 줄줄 꿰던 세기의 과학자들이었고
미래의 경제적 잉여 가치까지 산술해내던 불세출의 애국자들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생명과학계의 선무당과 교조놀이의 진수를 보여주던, 황빠니마들!

그들이 돌아온 게야, 그들이 돌아 왔어! 리빠라는 명찰만 바꿔 달고서!
어제의 용사들이 다시 뭉친 거야, 흐미~공포스러붜라.
잡초와 바퀴벌레도 울고 갈 질기디 질긴 생명력이여, 휘튤러의 후예들이여!
가가 가라면 그들의 아고라에서의 리빠적 집단 광기를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제 버릇 개 못 주고 선무당 사람 잡는다’ 라는 말들이
그들을 빗대는 데는 딱 제격이다.

어물전 망신시키는 늠이 꼴뚜기란 늠 맞쥐?
‘영문자 K’를 망신시키는 건 리드미와 담탱이란 작자고, 그자?
서뿌라이즈의 노빠 망신은 황빠들이 시키더니 아고라의 노빠 망신은 리빠들이 나섰고나.
세상에서 젤 무서운 게 무식한 늠이 부지런 떠는 거라더니
이 무식한 늠들의 생명력과 번식력 하나만은 인정해야 돼.
이성의 창과 상식의 방패와 합리의 갑옷으로 무장한 알밥들의 간단없는 견제에도 불구하고
황빠들이 보여준 내성과 변종으로의 진화 능력은
그 활동의 기간과 명성만큼이나 가히 슈퍼바이러스급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은 ‘내성(耐性)’을 이렇게 설명한다.

---내성(耐性)

1 약물의 반복 복용에 의해 약효가 저하하는 현상.
2 <생물>세균 따위의 병원체(病原體)가 화학요법제(化學療法濟)나 항생 물질의 계속 사용에 대하여 나타내는 저항성.
3 <생물>환경 조건의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생물의 성질. 내열성(耐熱性), 내한성(耐寒性) 따위가 있다.

심심해서 이걸 이렇게 바까바따.

--황빠들의 내성

1 조롱의 반복 복용에 의해 부끄러움이 저하하는 현상.
2 <음모론>을 퍼뜨리는 황빠나 리빠 따위의 병원체(病原體)가 알밥조롱제(albab嘲弄濟)나 각성 촉구의 계속된 자극에 대하여 나타내는 저항성.
3 <황빠>환경 조건의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전이의 성질. 리빠성(rebba性), 담빠성(dambba性) 따위가 있다.


M.I라 하든 S.I라 하든
황빠라 하든 리빠라 하든 그 이름이 무엇이든
모든 전염성 질병은 대유행이 오기 전에 초전에 박살내야 하는 법.

벌초 때는 쑥대를 우짜꼬?
뿌리 채 뽀바삐고 조상님께 사랑받자!!!

전염성 정신 질환자가 발생하면 우짜꼬?
격리 조치하고 명랑 사회 건설하자!!!

===東山高臥===

동정은 반성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이성의 선물..

동정은 반성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이성의 선물..
작성일:2009.05.08



세상에서 쌈구경, 불구경이 젤 재밋다지만
그건 남의 일일 때 하는 말이고
제 집안 일일 때는 흉사임에 틀림없다.

알밥 진영에서 묘한 흐름이 감지된다.
알밥들이 지령대로 움직여야지 제멋대로면 안된다.
제멋대로인 순간 알밥은 알밥이 아닌 게 된다.
알밥들이 원칙과 기준을 잃어버리면
그간 무수히도 들어온 ‘알밥’이란 모욕은
역설적 명예가 아닌 정말 모욕이 된다.
떠나고 싶음 말 없이 떠나는 게 좋고
방귀는 뀌고 가지 말아야 한다.
남은 사람일랑 밥은 먹게 해줘야지.

누누이 말해왔던 바,
파시즘을 생성하는 건 파워풀한 소수의 선동적 엘리뜨가 아니라
무지한 대중들의 감성이다.
완장을 채워 놓으면
도시의 동건이보다 시골의 삼돌이가 더 무섭다.
무지한 자가 부지런 떨면 사고뭉치가 된다.

알밥들에게 내려진 지령은 광신도들을 각성시키라! 라는 거다.
각성도, 반성도 하기 전에 용서해버리면 곤란하다.
호로 색휘라는 욕 먹지 않으려면
벌초 때는 쑥대를 뿌리 채 뽑아야 한다.
동정은 반성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이성의 선물이다.
그 선물을 내릴 대상의 선별은 안드로메다 알밥 총단에서 한다.
반성 없는 자들을 향한 알량한 동정은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분별없는 행위다.

어물쩡 끝낼 일이었으면
그 긴 시간, 그 가당찮은 모욕, 오호라~마조히스트들은 아니잖는가!
뉘라서 사람 까는 일이 즐거운가.
그저 비뚤어진 줄을 바로 세우고 헝커러진 퍼즐을 맞추려 나섰는가.
결벽증들이라도 있어서?
여린 가슴에 상처 받으며 그래도 ‘깠던’ 것은
결벽증에서가 아니라 세상을 흐리는 사술을 퇴마하기 위함이었다.
혼탁한 세상 고거라도 해야 존재의 의미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다들 아니 그랬는가?

관용은 아무 때나 베푸는 게 아니다.
무지하다고 아무나 용서받는 것도 아니다.
무지는 각성시켜야 할 대상이지 관용의 대상이 아니다.
무지가 공동체를 말아먹는 사술에 활용된다면
그런 무지는 퇴치시켜야만 할 범죄가 된다.

미네르바 같은 우상을 만든 것도 무지한 대중들이었고
리드미 같은 선무당을 만든 것도 무지한 대중들이었고
히틀러 같은 독재자를 만든 것도 무지한 대중들이었고
그들 모두를 잡아먹은 것도 무지한 대중들이었다.
무지는 용서받을 권한이 아니라 깨우쳐야 할 의무다.
무지하여 공동체에 위해를 가하는 자들을
무지하니 용서하자고, 천만에!

글을 쓰는 것도 자유고 철수하는 것도 자유다.
그러나, 남은 자들을 뻘쭘하게 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남은 알밥이든, 떠나는 알밥이든, 떠나갈 알밥이든,
몹시도 정든 알밥들이여!

===東山高臥===

'lee'의 예언..

'lee'의 예언..
작성일:20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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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진실을 말해야 할때!
작성자 : 'lee'
번호 631285 2009.04.27 IP 211.54.***.56 조회 62

"대중은 냉혹하리만큼 영민한데, 우둔을 가장하여 제단에 바칠 희생양을 우상으로 받든다!"


인간의 본능은 약육강식에 기반을 두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기에 인류문명으로 진화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살아남기 위한 약자의 생존 전략은 고개를 숙이고 비굴한 존경을 내비추면서 강자의 자만심, 공명심 등을 자극하여 그를 앞자리로 내몰고, 기회가 왔을 때 무참하게 더 강한 자에게 던져 버리는 것이다!

아고라의 맹목적인 지지자들의 심연에는 이러한 예리한 칼날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불혹이란 어휘는 마음의 행로가 자만에 빠져 미혹의 길로 빠져드는 것을 경계하여 공자가 한 말이다. 40을 넘기면 대개는 이런 유혹에 말려들지 않는다하여 나이 40을 일러 말하기도 한다. 이제라도 마음을 비우고 미혹의 그늘에서 벗어나길...

"제단에 바칠 희생양은 장단에 맞춰 공녀처럼 춤을 춘다.... 불구덩이에 던져질 줄은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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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렬하게 싸워주십시오..


윗글은 며칠 전 그 옥주가튼 값어치에 비해 큰 주목을 못 받았던 ‘lee' 님의 글입니다. 아골러들과 리드미 또는 미네르바의 관계에 대하여 한 번쯤 써보고 싶었던 주제였는데 ‘lee’ 님의 speed에 밀린데다 귀차니즘도 작동하여 새글쓰기를 포기하고 오늘 타이밍상 이 글의 진가가 돋뵈는지라 다만 재생할 뿐이고......꾸~욱!

오늘 영민한 아골나들은 제단에 바칠 희생양으로 Kramer를 ‘간택’하였고 우리의 공녀 Kramer는 불구덩이에 던져질 줄은 모르고 장단에 맞춰 춤을 추며 ‘토알밥격문’을 토하니 이들은 아래와 같이 Kramer를 완전 골로 보내려는 굳센 의지를 축복의 변에 담아 화답합니다. 아~, 누가 누가 아골나들을 중우라 했나, 누가 누가 아골나들을 둉쉰들이라 했나.....이토록 냉혹하고 영민한 하이에나떼들인 것을!!!!!

smilemania// 두께를 가늠하기 어려운 한이 가슴 속에 자꾸만 쌓여 숨이 막혀 옵니다..국민들의 한풀이를 위해 장렬하게 싸워 주십시요..다음생까지라도 사랑과 존경으로 보답하겠습니다... 14:19 14:20 IP 118.131.***.44


2 천기누설-다음 차례는?


영문 아이뒤를 지닌 이들이여, 모다 모다 조심하시기를. 예부터 아골나의 제단에 바쳐지는 희생양들은 영문 아이뒤들로 간택함이 불문율로 전해지더라. Minerva를 자바 무근 그들이 Readme를 자바 묵고 Readme를 자바 무근 그들이 Kramer마저 자바 묵더라. 함에 이 곳 경방에 출몰하는 HUE, bizlink, e_pluribus 등등 영문 아이뒤의 주인들은 함부로 자신의 신끼를 내보이지 말지니라.

그라고 보니, ‘lee’님의 아이뒤도 영문인데다 그 신통방통한 신끼가 ‘리먼 폭삭’을 예측한 미넬바에 못지 않으니 Kramer의 다음 차례는 누구? ‘lee’! 다음 차례는 누구? ‘lee’! 다음 차례는 누구? ‘lee’! 다음 차례는 누구? ‘lee’! 다음 차례는 누구? ‘lee’! 다음 차례는 누구? ‘lee’! 다음 차례는 누구? ‘lee’!........................

===東山高臥===

밥하고 싸우러 가니?

밥하고 싸우러 가니?
작성일:2009.04.29



<세계일보> 2009년 04월 28일(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를 이틀 앞둔 28일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서 임채진 검찰총장(가운데)이 문성우 대검차장(왼쪽), 한명관 기조부장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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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은 인생을 무슨 낙으로 사실까????????
사람들 후리고 생일날 난 화분 받고 도열한 쫄따구들 앞에서 옷깃 세우고,
일가친척들의 칭송을 아우르며 펠리스에 거하고,
밤엔 자연스런 춘풍에 넥타이 날리우며 받들엇, 총!...
그러코 그러케 살아간다면......
하긴 것도 인생의 큰 낙이긴 하긋다..ㅋㅋ~

근데 말이어유,
다 좋은디 밥 무러 가시는 분들의 자태치곤 어째 영????
밥 자시러 가는 거유, 밥하고 싸우러 가시는 거유?
다 묵자고 하는 짓거리인데 밥 무러 가는 길이 너무 비장하지 않으유?

Off로 나설 것을 선언한 Kramer든,
경찰서로 출두하게될 더드미든,
밝은 세상으로 나설 때 걸음걸이로 참고하라고 함 올리바따.
너무 뻘쭘해 하지도 말고
저 어르신들처럼 보무는 담담하고 당당하게,
명예훼손죄를 범한 잡범이 아닌
자유와 해방을 위해 만주벌판을 말 달리던 독립군의 자부심으로, 아라쩨?

더드뮈 홧팅!
Kramer도 홧팅!
라도니아 공화국의 자유와 해방을 위해~~~~~


===東山高臥===

"누구를 위하여 '찬 종'이 울리냐"고 묻는 리뒤미에게..

"누구를 위하여 '찬 종'이 울리냐"고 묻는 리뒤미에게..
작성일:2009.04.27



리드미의 오늘 새벽 글이 여러 사람 욱꼇나 보다.
‘둥둥’ 님의 글 읽고 찾아가보니 과연.
패떳의 X멤버로 스카웃할지라도 손색없겠다.

해병대는 무씬 쥘알! 해병대 아자씨들 쪽 깔일 있어.
머스마 색뀌가 질질 짜대기는.

씨밸류마가 장황하게 찔찔거린 걸
‘둥둥’ 님이 기똥차게 잘 요약해 놓으셨대.
그걸 다시 딱 한 줄로 요약하면,

‘함만 봐도고..OTL.. 왜 이래 아마츄어처럼..ㅠㅠ..’


이런 소리 아이가.

했던 말 복사질 않아도 경방에만 입장하면
삘이 빡빡 도는 얘깃거리가 줄금줄금 쏟아져 나오니 멈출 수가 엄써.
암튼지 지난 몇 달 리뒤미와 담댕이 덕에
내 가씨메 아직도 청춘의 불씨가 남았음을 본 건 나름의 성과다.
글치만 분유통 패대기치고 냄비에 밥 타는 줄도 모리고 싸랐던
불량맘(?), 불량주부(?) 땜시 우리 얼라하고 신랑이 더불어 고생 마이 해따 아이가.
고것만 생각하믄 가씨미, 가씨미 억수로 아푸다.

오늘 새벽 리드미의 글 두 편은
리뒤미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유치찬란뽕짝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케이스다.
삘 받은 김에 몇 부분 인용하면서 실컷 조롱이나 해줄란다.

토론의 성지 아고라에서 조차
짓이겨버리고 싶을 정도로 야비하고 비열한 자들,
몇 푼 돈에 영혼마저 팔아버린 자들의
변태적인 짓거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난생 처음 당하는 수사관의 취조,
명예훼손이란 엉뚱한 죄목으로 고소까지 당했습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늙은 여우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요?


초극상위 0.001%의 욕질 언어를 동원하여 맹박 정권을 겁또 없이 까대며
시국 전과 빵빵한 열혈 전사처럼 행세하두만 이기 머꼬?
일개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앞에서도 똥 마려분 개색휘처럼 절절 매는 색꾸가
그간 무슨 용기로 외교분쟁 운운하면서 육십만 대군의 통수권자 맹박이를 까댄 거니?
왕년의 해병대 얘기와 포스터의 사진들로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위장해보려는 몸부림이 안쓰러워 안구에 해일이 덮친다.

그래서 가늠자 안에 표적이 들어와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였습니다...
이제는 그 순간이 온 것 같군요.
이제는 방아쇠를 당겨야만 하는 순간이 온 것 같군요.
이제는...
과거의 날들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이 온 것 같군요.
총구에서 섬광이 반짝이는 그 순간과 함께
이진수의 은밀한 평화는 무참히 깨져버리고
노출된 나는 다른 운명의 세계로 떨어져야만 할 것 같군요...


라면서 혁명전야 세느강의 강물처럼 비장하게 흐르던 글이
삽시간에 청계천 도랑으로 꼬부라지맨서,

그냥 떠나가버릴까?
가상 공간, 메아리도 되돌아오지 않는 완전한 공허,
이곳에 인간의 정을 붙일 이유도 전혀 없으니까요.
그냥 떠나가버릴까... 현명하게?
아마... 이것이 진짜 미네르바 K의 선택이기도 했을 겁니다...
그것은 비굴일까요?
하지만 타인에게는 누구를 비난할 권리도 도덕의 기준도 없을 것입니다.
떠남은 한 사람의, 그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강요된 떠남에 대해 누가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요렇게 청계천 도랑 미꾸라지처럼 구녕속으로 내빼는 리뒤미 오라버니에게서
텍사스 벌판의 소떼처럼 아스라이 밀려오는 내 첫사랑의 잔영을 보고 말았다.
아~씨밸류마여, 내 사랑 꼴깝 시밸류머여!
그러더니 색꾸는 다시 기수를 돌려 방랑의 가족사를 들먹이고 눈물지며
행길가의 거지새끼마냥 쭈그러진 동냥그릇을 내미나니
육천(조회수)의 행인 중에 육백(찬성수)이나 동전을 떨구고 가더라.
'우이 싯퐁, 오늘도 한우 꽃등심으로 걸판지것네'라며 클클거리는 색꾸의 비웃음은
바람에 홀홀히 날리는 벚꽃처럼 육백 행인의 뒷통수에 사뿐히 내려 꽂더라~~~

사실상 거의 아무 의미도 없는 미네르바의 정체.
미네르바라는 친구 K의 이름을 차마 밝히지 못하는 오래된 우정,
그래도 가짜가 가짜임을 알려야만 하는 양심의 딜렘마.
수많은 중요한 진실들이 질식해가는 이 나라에서,
수구매판 친일매국 조중동이 언론이라는 가면을 쓰고
표현과 정보의 자유를 가장 간악하게 탄압하는 이 나라에서,
한낱 이진수적 존재의 불일치를 증명하려는
작은 진실의 갑작스런 욕망이 과연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이렇게 없는 우정과 털난 양심 사이에서 번민하는 우리의 우상이 마침내, 드디어,
끝내는 외치기를,

누구를 위하여 '찬 종'은 울리나?


“병만아, 사람들 퇴근 시간 다 되따.
영화 다 봤으면 동냥 그릇 챙기고 퍼뜩 기 나오거래이!”
팔순 노모의 숨가쁜 재촉이 움막의 정지간 문틈 사이로 앙칼지다.

병만아, 누구를 위하여 ‘찬 종’이 울리느냐고?

‘찬 종’은 진실을 위해 울리고,
니 동냥 그릇에 떨어지는 동전 소리는
너를 위해 울린다, 씨밸류마!


===東山高臥===

미네르바 진위 논쟁을 아직은 관둘 수 없는 이유..

미네르바 진위 논쟁을 아직은 관둘 수 없는 이유..
작성일:2009.04.26



이 곳 경방에,

미네르바 진위 논쟁을 소모전이나 적전분열로 걱정하며 ‘이제 그만 관두자’ 라는 분들이 가끔 계십니다. 진정어린 선의로 이런 우려를 표하는 분들도 계신가 하면 뒤가 구린 탓에 이 논쟁으로부터 한시바삐 벗어나고픈 악의적 의도를 지닌 분들도 계십니다. 선의든 악의든 올바른 태도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미네르바 진위 논쟁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로 보아야만 합니다. 더디 가더라도 ‘근본’에서 문제를 보인 사람들을 솎아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들과는 차라리 함께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여기서 ‘근본’이라 함은 정치적 지향을 떠나 사람을 소중히 알고 사람다운 가치를 지향하는 인본에 기본을 두는 가치관을 말합니다.

정치적 지향이 일치한다고 해서 근본에서 문제를 보인 사람들의 패악질을 마냥 덮고 갈 일이 아닙니다. 근본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란 ‘언젠가는’ ‘어떤 식으로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치명적 해를 입힐 수도 있는 암적 존재들입니다. 그런 근본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걸러내는 작업이 미네르바 진위 논쟁의 최종 목표이어야 합니다.

현재 드러나고 있는 정황을 종합해보건대, 그들은 그들의 알량한 자존심 또는 어떤 사적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 개인의 인격을 서슴없이 난도질해온 모리배들입니다. 그들의 야비한 행위는 보통 사람의 양심으로서는 도모하기 힘든 범죄자적 특성까지 보였습니다. 그들의 그런 범죄적 행위는 스스로 이성과 상식과 합리를 거부하고 패거리 여론몰이를 통해 무지한 대중들을 선동하며 아고라의 건전한 토론 문화를 파괴해온 반동세력이었음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목표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과정이 치졸하면 결과도 초라해지는 겁니다. 사실, 리드미나 담당 따위의 선무당들과 궤를 같이해온 사람들의 숫자는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소수임에도 그들의 활동(700 leaders의 탄탄한 지원이 있었겠지요)이 워낙에 유별나고 적극적이었기에 아고라 경방의 주류처럼 행세했을 뿐입니다. 리드미나 담당이가 글을 올렸을 때 동조하는 유형을 보면, ‘찬성’을 클릭하는 소극적 동조자 칠팔백여 명과 ‘댓글’로 맹목적 추종을 보여온 적극적 동조자 일백 남짓이 그들입니다. 그 수는 리드미나 담당 글 조회자의 십분지 일 정도입니다. 달리 말해 아고라 경방 이용자의 십분지 일 정도의 사람들이 그간 아고라를 분탕질하며 여론을 조작하고 건전한 토론 기능을 마비시켜왔던 사람들로 보면 얼추 맞을 겁니다. 박대성씨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아고라 이용자의 주류처럼 보이는 건 일종의 착시현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침묵하며 추이를 살피는 십분지 구의 사람들이 사실은 주류입니다. 미네르바 진위 건은 긴가민가하는 의심의 여지는 충분히 있었고 여전히 명확하게 정돈되지 못한 상황이니만치 침묵하는 절대 다수의 입장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허나, 그 어떤 억지나 사술도 통하지 않을 거대한 힘이 수면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뭉쳐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지금은 미네르바 진위 논쟁이 다소 지루해 보일지라도 일부 모리배들의 음흉한 사술이 하나 둘씩 까발려지고 있는 만치 조만간 침묵하는 다수의 공분이 주류 여론을 형성하며 모리배들을 퇴치시켜 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집단 지성’이란 훈장까지 가슴에 걸었던 아고라의 명예를 실추시킨 일부 모리배들의 작당과정은 반드시 검증되어야 하고 그 과실에 대한 문책 또한 있어야 합니다. 오류를 피할 수는 없으나 오류를 검증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노력으로 인해 역사는 바른 방향으로 전진합니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벌초 때 발견되는 쑥대는 뿌리 채로 뽑아야 합니다.’ 귀찮다고 방치하거나 건성으로 뜯으면 조상이 잠든 묘가 쑥대밭 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동네분들에게 호로자식이라 욕 먹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좋은 의도로 ‘이제 그만 관두자’라고 하신 분들께는 적극적으로 논쟁을 벌여온 한 사람으로서 양해를 구합니다. 동시에, 대세가 기우는 걸 보고 리드미스런 잔꾀로 조금이라도 덜 쪽팔려보고자 ‘이제 그만 관두자’라는 분들께는 ‘예끼!’ 세 개 날립니다. 예끼, 예끼, 예끼! 이 몹쓸 인간들아!

===東山高臥===

대담 보니까 박대성이 미네르바 맞네..

대담 보니까 박대성이 미네르바 맞네..
작성일:2009.04.26



얼마나 말과 글이 일치하지 않길래 그 야단일까 싶어 오늘에야 오마이 동영상을 보면서 글을 쓰는 중이다. 과연 ‘박’을 의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간 ‘박’을 변호해왔던 사람들까지 ‘실망’시킬만하다.

이곳 경방에서 그나마 말빨이라도 세우고 글질 하는 사람들 중엔 대학 다닐 때나 혹은 사회진출 이후 각종의 공간에서 나름대로 토론이나 대담 같은 말하기 훈련이 된 사람들도 많을 게다. 그런 눈으로 보면 박대성의 수준이 참으로 한심해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대가 컸던’ 데서 오는 실망일 뿐, 그를 둘러싼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보통 사람의 모습’ 정도로 봐줄만했고 그 눌변만으로 ‘그는 가짜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성급한 판단이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통 사람’은 아니었기에 실망한 사람들을 한사코 닦달할 생각은 없다.

허나 그를 이해하려고 들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박대성이 어제 보여준 말하기의 수준은 보통 사람들의 평균치 정도는 된다. 술집에 열 명 모이면 개중에 말 잘하는 사람은 한 둘 정도다. 대부분은 그저 듣기만 하거나 목소리만 크거나 고집만 부리는 수준인 건 다들 경험해 보았으리라.

박대성은 그 나이도 그렇고, 사회 활동 이력도 그렇고 지속적인 학업이나 사회활동을 통해 말하기 훈련이 된 사람이 아니라 골방에서 정보 검색을 통한 글쓰기로 그만의 장점이 특화된 케이스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의 대담을 지켜본다면 기대가 컸던 만치 실망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티거리 잡으려 혈안이 된 사람들의 눈엔 더욱 그리 보일 게다.

각설하고,

대담을 보다가 박대성의 말하기에서 귀에 거슬릴 정도로 반복되는 습관적 어휘가 있었다. 대표적인 게 ‘이제’, ‘부분’, ‘측면’, ‘상황’ 등의 어휘가 그것이고 자주 사용되지 않지만 ‘선제’라는 어휘도 살펴볼만하다. 말하기와 글쓰기에서 사용되는 어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습관적’ 어휘만큼은 말할 때나 글 쓸 때나 무의식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은 높다. 미네르바의 경우 문어체의 글이 정보 검색을 통해 다른 사람의 글이나 기사를 원(차)용한 짜깁기 글이라면 쉬 판단키가 어렵겠지만 구어체의 글은 자신만의 말 습관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에 어제 대담에서 보여준 박대성의 어휘 습관이 구어체 글에도 반영되었을 거란 생각에서 구어체로 쓰인 그의 짤막한 글 몇 편을 살펴보았다.

*‘이제’라는 어휘가 반복된 글의 예문--아래--

(다른 어휘들은 시간 여유 있으신 분들께서 검색해보시라. 위에 거론된 어휘들을 미네르바의 글 전반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지금 은행은 완전 개 삽질을 하는구나.
[759] 미네르바 번호 341199 2008.10.29 IP 211.178.***.189 조회 98059


------------------------------(략)
외국 애들이나 국내에 있는 애들이 그런거 모를 눈 뜬 장님이라고 생각 하니?.
보다가 하도 웃겨서 말해 주는거야... 지금 돌아 가는 판떼기가.
그리고 이젠 노인네 좀 그만 들 볶아라... 이젠 찾지 마.... 오전 장사 나갔다가 들어 와서 빨래 빨려는데 그냥 침묵은 금이다로 지금은 쥐죽은 듯이 있으면 되는거야..
태풍 지나간 다음에 이젠 재건 해야지.. 이런날이 오지 말기를 진짜 바랬는데 솔직히 이젠 어처구나가 없네.

-------------------------(략)-늙은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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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다..
[772] 미네르바 번호 339261 2008.10.29 IP 211.178.***.189 조회 87517


당분간 오프 라인에서 영업에 열중 해야지 살해 위협까지 받고 그만 쓰라니.
노인네가 이젠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겠네.
이젠 고구마나 팔면서 개인 고객 관리 하는데만 열중해야지..
역시 인터넷은 한계가 있어.
돈 안되는데 솔직히 너무 시간 낭비한 것 같다.

------------------------(략)
올 겨울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제 늙은이가 죽을때는 온전하게 죽어야지 이 나이 먹고 살해 협박에 밖에서는 들어 본 적도 없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을 이유는 없죠.
그래서 카오스가 사라진 거군... 음.........
시간은 돈인데 그 정성으로 개인 고객 관리나 할 것을... 괜히 오버 했어..
늙어서 잠시 인터넷 문화라는거에 발 좀 담가 본 것 뿐이야. 그리고 이제 그 한계를 분명히 알 것 같군..

----------------------(략)
가끔 시골에 있는 엄마 한테 전화 좀 넣고.
노인네가 이 나이 먹고 쌍욕 들어 가면 시간 투자할 필요는 없잖니...차라리 미자 한테 포트 폴리오를 찍어 주고 말지.
내일은 2단지로 가서 영업 준비 해야지. 그럼 돈 많이들 벌고.
갑자기 흥미가 반감 되서 이젠 재미 없다.. 명절날 오면 이젠 컴퓨터 손주 녀셕한테나 줘야지.
그래도 최신형인데 워드나 치다가 인터넷이란걸 하는데 이젠 워드도 350 타 정도 나오고 나름 수확도 있었어..^ ^..
나도 이젠 우리 동네 아줌마 단골 고객들 관리 해야지.. 그래도 장사 단골 고객인데 엇그제는 온천 계 모임이라고 노인네인데 월 5만원짜리 하나 들었어.
그걸로 온천에나 가서 뜨신데 지지고 와야지.
온천도 잘 골라 다녀... 가짜도 많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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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이 글을 쓰면서 귀로는 대담의 후반부를 듣고 있는 중인데 박대성이 대담하면서 짧은 시간 경과했을 뿐인데 말하기가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 양반, 이런 식의 대담 서너 번만 더하면 말빨도 금방 늘 걸로 뵌다. 골방에서 벗어나 밖으로 불려다니면서 말하기 기회가 늘어나고 스스로 익숙해진다면 내년 쯤 해선 백분토론에서 박대성을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東山高臥===

사랑이 저 만치 가네

사랑이 저 만치 가네
작성일:2009.04.24



리드미 드디어 폭발!


했다는 건 아니고 할 거 가트.
박대성이 요즈음 너무 잘 나가자너.
잡으면 저 만치 가고 또 잡으면 저 만치 가니
리드미의 그 앙칼스런 질투가 곧 폭발할 거 가타는 뜻이에욤.

크흐~ 내 그래짜너.
리드미는 절때로 절때로 박대성을 따라 잡을 수 없다고.
둘의 관계는 천년을 이어온 운명과도 가터.
어제 밤 꿈에 그 분이 전해 주신거야.
내가 신끼가 쪼매 이꺼등.

리드미의 분노에 불을 땡기는
노래 한 곡, 자작시 한 편 올려드릴께염...즐감하삼..ㅎ~
그리고 나서 우린 가만히, 서늘하고, 담담하고, 당당하게
리드미의 대폭발을 기다리면 될 뿐이고.....

\\\\\\\\\\\\\\\\\\\\\\

사랑이 저만치 가네 / 김종찬


사랑이 떠나간다네 이 밤이 다 지나가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
사랑이 울고 있다네 이별을 앞에 두고서

다시는 볼 수 없음에 가슴은 찢어지는데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네 사랑이 떠나가네
나는 죽어도 너를 잊지는 못할 꺼야

아침이면 떠날 님아 사랑이 저만치 가네
나 홀로 남겨 놓고서 세월아 멈춰져 버려라
내 님이 가지 못하게
이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네 사랑이 떠나가네

나는 죽어도 너를 잊지는 못할 꺼야
아침이면 떠날 님아 사랑이 저만치 가네
나 홀로 남겨 놓고서 세월아 멈춰져 버려라
내 님이 가지 못하게 내 님이 가지 못하게
내 님이 가지 못하게




\\\\\\\\\\\\\\\\\\\\\\\\\\\


===난 리드미를 보면은 공쎄미가 생각나===


1. 공쎄미와 달쭝이


공쎄미는 평생 달쭝이의 그림자여찌
그가 엄스면 존재의 의미도 엄는
마시마로 닮은 그림자여찌

에스라인 가방끈도 기러꼬
남해안 며르치가 다 제 거시어도
그 놈 아페만 서면 왜 자가지는 지
치미는 분노일랑
시비지장 기픈 고세 남몰래 감추이고

마침내 기회가 일렁일 때
쓰리 돌림빵으로 몸 바쳐 대통을 머거껀만
아이메푸로 온 나라 거덜 내니 아 시박 쪽팔려

망연자실한 때에 달쭝이는
홀연히 사전오기의 뒤심을 이르켜
오뉴월 땡벼테 냉국수 퍼마시듯 후루룩 난장을 끝내우니
온 세상이 합창으로 노피 바뜨러
노벨이가 메달 들고 악수를 청하더라
눈꼴시러버! 눈꼴시러버!

아를 낳아도 등쉰을 낳았던지
텅 빈 눈에 개불 주딩이라 새끼마저 떠밀리니
그 한이 놉띠노파 하늘님 똥꼬를 찔러
메마른 하느레 날벼락 치면
그건 공쎄미의 해꼬지

달쭝이가 저 만치 가네
나 홀로 남겨 놓고서
첩처비 쌓인 한 달랠끼리 엄서
아치메도 저주, 점시메도 저주, 저녀게도 저주라

공쎄미의 저주는 그러케 그러케
사라미 되고픈 그림자의 한푸리라고
대한의 역사는 기리기리 전하였더라



2. 리드미와 民愛淚朴


리드미는 한 세월 民愛淚朴의 부엉이여찌
그가 엄스면 존재의 의미도 엄는
눈만 뚱그런 부엉이여찌

파리파리 가방끈도 기러꼬
아,골,나 망둥이떼가 다 제 거시어도
그 놈 아페만 서면 왜 자가지는 지
치미는 질투일랑
췌장 기픈 고세 남몰래 감추이고

마침내 기회가 출렁일 때
꼬치터래끼를 흩뿌리며 짱을 머거껀만
알바들이 꼰질러 짝불알을 들켜쓰리 아 시박 쪽팔려

망연자실한 때에 民愛淚朴은
홀연히 유판사의 보험판결로 나래를 펼치니
아,골,나고 오,마,이고 신문마다 방송마다 배요옹준이 따로 엄따
온 세상이 합창으로 노피 바뜨러
저러다가 석, 박사로 만학하여 진짜 교수되게쪄
눈꼴시러버! 눈꼴시러버!

찬성을 눌러주는 등쉰들이라곤 면면이
텅 빈 눈에 개불 주딩이라 미들 늠 한 늠 엄꼬
그 한이 놉띠노파 하늘님 똥꼬를 찔러
메마른 하느레 날벼락 치면
그건 리드미의 해꼬지

民愛淚朴이 저 만치 가네
나 홀로 남겨 놓고서
첩처비 쌓인 한 달랠끼리 엄써
아치메도 저주, 점시메도 저주, 저녀게도 저주라

리드미의 저주는
미네르바가 되고픈 부엉이의 한푸리라고
아,골,나의 역사는 기리기리 전하였더라


===東山高臥===

말과 글

말과 글
작성일:2009.04.21



말 잘한다고 글 잘 쓰는 것도 아니고
글 잘 쓴다고 말 잘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기와 글쓰기는 대체로 비례한다고는 하나
사람의 개성에 따라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박대성의 말과 글이 비례하지 않음을 들어 ‘가짜다’라고 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내 지인들 중에 말은 청산유수인데 글은 고인 웅덩이처럼 뵈고
글은 물 찬 제비 같은 데 말은 뒤뚱거리는 오리 같은 사람들도 있더라.

자신의 무지를 탓하잖고서 남 탓한다.
자신의 조막만한 지식과 경험의 틀로 세상을 재단하려니
세상만사가 온통 이해불가고 음모론에나 기댈 수밖에 더 있남.

이해를 못하겠거든 겸손이라도 하든가.
장님 눈에 돋보기 갖다 댄다고 눈 뜨이고 앞 보이나.
마음 문이 닫혔는데 뜬 눈인들 엇다 쓸꼬.
박대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으로 보라.

출소 인터뷰하면서 글 다시 쓸 거라자나.
가짜가 저런 호언장담을 하겠니?
빤쓰까지 홀랑 벗어봐야 남잔지 여잔지 알겠다고?
내 볼 땐 니들은 빤쓰까지 벗어줘도
‘성 전환 음모론’을 들이대며 호적 조사해보자고 할 늠들이야.

가슴에 손들 얹어봐.
‘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콩닥거릴 게다.
머스마 색뀌들이 옹졸하고 추잡시럽꾸로 그기 뭐꼬!
틀렸을 것 같으면 ‘잘못 생각했었다’고 유감을 표하면 그 뿐이지
모기 뒷다리만한 알량한 자존심이라도 세워 볼끼라고 요리 뺀질 조리 뺀질..
그 꼬라지에 나라 걱정, 세상 걱정은 혼자 다 해요.
에뤠이~상것들아, 날도 더븐데 가서 쭈쭈바나 빨어!

똥통에 발을 잘못 담갔으면
발 빼고 발을 씻으면 그 뿐인 걸 갖고
똥통의 똥은 똥이 아니고 된장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면 덜 쪽팔리니?

그라고 딱 한 가지만 더 씨부릴 게.
줄 바꿀 땐 치사하게 바꾸지 말고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
친일 기생충들이 해방 후엔 타도 빨갱이를 외치며 애국자인 양 설레발치듯
은근슬쩍 줄 바꾸지 말고..
그 잘난 아이디라도 유지하고 싶으면
박대성씨나 아골러들에게 유감 정도는 표하는 게 예의지 않겠니?
예의고 조시고 음모론 놓기 싫으면 아이디나 바꾸고 쥘알하든가.
대세가 쏠리니 ‘안 그런 척, 이쁜 척’하는 거는 보기에 조까트.

박대성 출소하면 글질 관두고
소리 없이 사라져야지 생각했다가 막상 또 이 꼴 저 꼴 보니까
것도 뜻대로 잘 안 되네 시박.
넷 글질이란 게 마무리가 항상 어려워.
임창용 나무라면 안 돼. 마무리는 정말 어려븐 거야.
어쨌거나 저쨌거나 결산일은 다가오고
지난 6개월여 미네르바 장사는 완전 밑 깠네, 밑 깠어.
다음 아이템은 잘 골라서 본전 뽑아내얄낀데........

===東山高臥===

미네르바 박대성에게...

미네르바 박대성에게...
작성일:2009.04.21



가당찮은 옥살이 하느라 고생 많았소.
파렴치범은 아녔으니 좋은 경험으로 승화시키길 바라오.
아직은 성숙이 덜 된 사회이기에
펜으로 정권을 맘껏 찔러댔던 만큼의 보복을 당한 거라 생각하시면
차라리 맘 편할 게요.

우선 푹 자고, 먹고 싶은 거 배불리 드소.
어무이, 아부지 찾아뵙고 그간 심려 끼친 거 잘 다독여 드리고.

그러고 나서 한 보름 정도 여행도 좀 하소.
골방도 감방도 충분히 지겨웠을 터
조선의 산천을 두루두루 돌아보면서
오장육부 속에 찌든 땟국물일랑 션하게 물갈이도 할 겸 말이오.
가까운 바다를 찾아 갈매기 나는 것도 보고
파도소리가 정말 ‘철썩’하고 소리 내는지도 들어보소.

단, 여행을 가더라도 멀리 마이애미나 하와이 같은 데는 가지 마소.
이젠 당신은 공인이고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걸
업으로 삼는 자도 없지 않다고 장담 못하오.
당신은 신혼여행을 하와이로 가더라도 프락치 소릴 듣게 될 거요.
당신이 없는 동안 혹자들의 광기를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소.

그렇게 심신을 가지런히 한 다음에,
아고라에 글로써 자신의 명예 회복을 도모코자한다면
노파심에서 몇 가지만 귀띔하리다.
참고하든 말든 그건 당신의 자유니 힘들게 찾은 자유 맘껏 누리시오.

첫째,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댓글 응대는 사절하시오.

잡늠들까지 당신을 검증하겠노라 벼르고 있기에 어설픈 댓글 논쟁은
당신의 심신을 피폐하게 하고 종내는 당신을 거덜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오.
당신에겐 스스로 거덜 나지 않을 자유와 권리가 있으니 것도 맘껏 누리시오.
담담당당과 리드미, 나너너나 등이 이미 그 자유를 무한대로 누리고 있소.
작정하고 떼거리로 달라 드는 다중을 상대할 땐
원글의 형식이 댓글의 형식보다 유용하고 당신에겐 효과적 일 것이라 믿소.

둘째, 작년과 달리 미네 할배로서의 카리스마가 무너진 박대성씨로선
분야의 전문가들과 일일이 논쟁을 벌이지 않는 게 좋을 성싶소.


작년에 당신이 보여준 해박한 경제 이론과 실무 지식에
아고라 안팎의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쉬 반론을 펴기 힘들었던 건
당신의 가려진 실체가 주는 ‘신비감’의 득이 사실상 컸소.
이제는 무장 해제된 당신을 깔보고 있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당신을 발가벗기겠노라 덤벼들면 당신은 당해낼 재간이 없으리라 보오.
당신의 실력을 얕보아서가 아니라
육군 대장이 병장과의 사격 시합에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 거요.
아고라 경제방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소.
당신이 미네르바라는 걸 믿고 당신의 참실력을 검증하고 싶은 사람들과
당신이 미네르바가 아니라는 걸 믿고 당신이 가짜라는 걸 검증하고 싶은 사람들.

셋째, 글을 쓸 때는 담담하고 당당하게 쓰길 바라오.

이미 까졌다고 해서 위축될 필요는 전혀 없다고 보오.
학력과 연령 등의 모든 편견을 극복해내는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주길 바라오.
나중엔 그럴 필요 없더라도 당분간만은 당신의 글쓰기 품새는
작년의 미네 할배가 보여준 거침없는 이미지가 좋을 것 같소.
기왕 이리된 거 아주 뻔뻔해졌으면 하오.
학력 위조 파문을 일으켰던 탤런트 장미희씨는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에서 아주 뻔뻔스런 연기를 보여주었소.
역시 연기자는 연기로 승부해야 한다는 걸 잘 보여주었더랬소.
난 그녀의 뻔뻔스런 연기력에 감탄했고 그녀의 과거를 용서했소.
주눅 들지 말고 당신이 가장 잘하는 걸 자신 있게 보여주면 되오.
평가와 판단은 관객의 몫인 거요.

몇 가지 더 보태고도 싶지만
오지랖 넓은 참견도 분수가 있어야 할 것 같기에 요 정도로 맺소.
이 글을 보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위의 몇 가지 귀띔들이 그저 노파심일 뿐이었단 걸
젊고 똑똑한 친구, 박대성씨의 이후 행보에서 보게 되길 기대하오.

무죄석방, 그나마 다행이오.

===東山高臥===

<잊혀지다>와 <잊히다>

<잊혀지다>와 <잊히다>
작성일:2009.04.18



님들은 혹시 <잊혀지다>와 <잊히다>를 아시나요.

언젠가 어느 포털 기사에 달린 댓글 하나가 기억납니다.
기사 원문에서 <잊어진>이란 어휘를 사용한 기자를
아주 맹렬하게 나무라는 댓글이었습니다.
‘<잊어진>은 잘못된 사용이고 <잊혀진>이 맞다’면서
기자의 학력을 의심하는 핀잔과 더불어
그런 기자를 채용한 신문사까지 싸잡아 혼쭐내시는데 서슬이 퍼렇더군요.
댓글 다신 분이 한글사랑의 자부심이 꽤 높았던 분이었나 봅니다.

이와 관련된 국문법 지식을 포털에서 검색해보면,
<잊혀지다>는 경상도 지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히>라는 피동접미사에
<-어지다>라는 피동형이 중복된 ‘이중피동’이기에 잘못된 용례로 적시합니다.

<잊혀지다> --> <잊히다>, <잊어지다>
<잊혀지지> --> <잊히지>, <잊어지지>
<잊혀질> --> <잊힐>, <잊어질> 로 사용함이 옳고

좀 더 엄격히 구분하면,
<잊혀지다>는 ‘틀린 사용’이고
<잊어지다>도 ‘틀린 건 아니나 잘못된 사용’으로 분류키도 합니다.
‘잊히다’라는 올바른 피동형이 엄연히 존재하는 터에
굳이 ‘잊어지다’라는 피동형을 이중으로 구사할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따라서 <잊다>의 피동형으로 가장 올바른 용법은 <잊히다>입니다.

잊혀진 사람, 잊어진 사람--->잊힌 사람
잊혀질 사람, 잊어질 사람--->잊힐 사람
이런 식으로 어미 활용하여 사용함이 옳고 바른 사용법이라 합니다.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참 많이도 사용하고 있는 이 단어를
저 역시 작년에서야 비로소 그 정확한 용법을 깨쳤습니다.

한글 워드로 문서를 작성하다보면 어휘 아래 ‘빨간 줄이 쫙 그일 때’가 있습니다.
문법상 잘못된 사용임을 지적하는 한글 워드의 프로그램 장치이지요.
개인적으론 한두 해 전까지만 해도 빨간 줄을 아주 가배얍게 무시했더랬지요.
오랜 기간 확신 속에 거침없이 사용해왔던 내 어휘에다 ‘감히’(?) 빨간 줄이라니!
쉬이 용납할 수 없는 지적으로 여겼습니다.
‘컴이 틀릴 수도 있자나...까불어봤자 제까짓 프로그램 주제에...
한컴 프로그래머가 대한민국 최고의 국문법 박사라도 되나...홍홍홍!’

제대로 알고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저처럼 무지한 자들이나 위와 같이 턱도 아닌 시건방을 떱니다.
진리처럼 확신하던 자신의 앎이 깨어졌을 때
그 누구나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저 역시 <잊혀지다>에 대한 확신이 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한글 워드 2005에게 굴복했고 한글 2005 앞에서 많이 고분고분해졌습니다.

글 서두에 예를 든 스포츠 신문 기자의 <잊어진>의 용법은
<잊힌>으로 했으면 완벽했겠으나 틀린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틀리지 않았음에도 정말 억울한 욕을 얻어 쳐먹어야만 했습니다.
스포츠 신문 그것도 모 일간지 소속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지적하신 분의 글쓰기 품새를 볼 때 나름 국문법에 자신이 있었던 것 같고
자신의 앎에 대한 확신 또한 대단해 보였습니다.
저 역시 재작년까지만 해도 한글 워드를 업수이보고,
단 한 번도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의심해보지도 않은 채,
자신만만하게 <잊혀지다>를 사용하면서 한글 2005의 빨간 줄을 무시했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자'가 '제대로 알고 있는 자'를 나무라는 적반하장입니다.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지 않는 편견과 선입견과 아집과 무관심이란 그래서 무섭습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고 우물 안 개구리가 호랑이를 비웃는 꼴입니다.
위 소개된 댓글 다신 분이나 제가 바로 선무당이고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겁니다.
‘고개 한 번 돌리니 극락이 예구나’라는 불가의 말이 있습니다.
<잊혀지다>의 한 뼘 바로 옆 고개 한 번 돌리면 <잊히다>가 있건만
고개 한 번 돌리는 게 그토록 어려웠던 겁니다.
수십 년의 세월 끝에야..

진실에 다가서는 길을 막는 건 외부의 장벽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아집과 편견과 무지와 무관심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담담하고 당당하게 정도에 선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를 말하고,
모두가 ‘아니오’라고 할 때 ‘예’라고 할 수 있는 용기(때론 ‘무모함’)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자유’입니다.

아고라의 알바들이,
누구들처럼 찬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기백이 아닌 수 명 뿐일지라도
‘알바’란 모욕조차 즐기며 담담하고 당당할 수 있는 건,
모두 다 그런 ‘행복한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박대성의 스펙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미네르바가 될 수 없고
고매한 인격의 신선 같은 존재로 미네르바를 환상하는 자들의 맹목으로는
열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바로 눈 앞에 선 미네르바를 볼 수 없습니다.
환상이 깨어지는 두려움에 떨며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기 싫은 여러분의 알량한 자존심이
벌거벗은 미네르바를 직시할 용기를 막아서고 있음을 한시바삐 깨치시길 바랍니다.
나는 리빠나 담빠들에게서 젊은 예수를 부정했던 유대인들의 위선을 봅니다.

모두가 아집이고 미련이며 환상입니다.
박대성을 탓하기 전에 눈앞에 있어도 볼 수 없는 자신의 맹목을 탓하시고
아집과 미련과 환상과 무관심에서 깨어나시길 바랍니다.

미네르바 진위 건이,
단순히 인터넷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티격태격이라면
이다지 집착할 일도 없겠으나
미네르바는 작년 말과 올 초에 걸쳐
위기의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상징했던 ‘아이콘’이었고
그는 지금 인신이 구속된 고난에 처해있는 과거가 아닌 현재임으로 해서
그의 글을 클릭했던 우리 모두는 아직은 ‘적어도 아직은’
그가 겪고 있는 고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미네르바를 만든 것도 우리였고 그를 구속시킨 것도 우리였으며
박대성을 부정함으로써 미네르바를 두 번 죽이고 있는 것도 우리란 사실을
통렬하게 깨닫는 게 멍박 정부 비난하는 일보다
훨씬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을 망각하지 마시길....

그 이유는 바로,
거짓된 자들의 백 마디 외침보다
진실한 자들의 한 줄기 눈빛이 세상을 바꾸는 참된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묵언의 내공’인 것을!!


===東山高臥===

사람아, 아 사람아~

사람아, 아 사람아~
작성일:2009.04.16



담당의 요즘 생각이 궁금하던 차였다.
흐머, 근데 이게 머시야.
제 버릇 개 주기가 그렇게도 힘들었나 보다.
과연 장사꾼에 브로커 출신답다.
저 따위를 ‘선생님’이라 빨아대는 인간들은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봐서 선생님 구경도 못한 인생들이니?
니들 말마따나 천민다운 천박함이다.

내 그랬자너. 든 사람보다는 된 사람을 가려 보라고.
감옥에서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쉽잖은데
인터넷에 오른 질문에 답변할 정신이 어디 있으며
그나마 감옥에서 글 한 편 쓰는 것도 변호인 측에 구술해서
대필케 하는 부자유한 사람더러 질문 던져 놓고 대답 않는다고
공박해대는 인간이 니들 눈에는 ‘된 인간’이고 ‘선생님’으로 보이니?
입에서 개쌍욕 나올려는 거 정말 힘들게 꾸우욱 참는다.
시간 남아 돌면 월간조선과 신동아랑 싸워. (어영부영 꼬리 내렸니?)
감옥에서 대응할 아무런 수단도 갖지 못한 미네르바 이름 팔지 말고.

코드가 맞아도 어쩜 그리 잘 맞을까. 돌아가맨서.
선무당과 브로커와 천민들의 삼박자 맞춤 코드, 어얼쑤~쥐라알~ 조오타!
이 늠이나 저 늠이나 그 늠이나 하나같이
뽕발에 취해도 단단히들 취했고나.
니들 모두 따~악 보니까 이젠 진짜로 틀렸다, 틀렸어!
왕년의 황뽕이든 노뽕이든 작금의 리뽕이든 담뽕이든 뽕에 완전 뿅 갔으면
나머지 인생 절반은 종친 거지 머. 누가 말려, 것도 다 지 인생인 걸.
근데 이 색휘들은 뽕에 뿅 가서 지 인생들만 조지면 되는데
남의 멀쩡한 인생까지 난도질하려 드니까
그게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킨단 말야.

사람들이 대개 어떤 ‘판단’을 내릴 때는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나 ‘뭐 눈엔 뭐만 보인다’라는 말도
다 그런데서 기인한 말일 게다.
어찌보면 담당이 음모론에 함몰되어 헤어나질 못하는 것도
그의 경험과 이력을 보노라면 이해도 간다.
‘대북 사업가’란 점잖은 명함이고
속된 말로 ‘대북 장삿꾼이자 브로커’로 십수년을 살았던 사람이다.

권력의 언저리에서 떡고물이나 줏으며 놀던 자들을 보면
제한된 정보에 접근했던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자부하는 경향들이 있다.
담당도 예외는 아닐 게다. 그럴 법도 하다.
때론 제한된 정보의 소유 정도가
곧 사회적 지위를 반영키도 하는 세상이니까.
극동을 누비며 음지이긴 해도 한때나마 권력의 실세들과 놀기도 했으니
지잡대 출신치고 그 정도면 출세했던 거다.(기껏해야 들러리였을 뿐이겠지만)
관련해서 떠벌이고 싶은 권력의 생리나 비화들도 많을 텐데
말 많은 양반이 참는 것도 꽤나 고역이것다.

그런 구정물에서 놀았으니 더런 물이 몸에 배였어.
음지에서 음모놀이 놀다보니 매사가 음모로 뵈는 것도 당연해.
담당을 보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의 명제는
사회현상이나 인간을 분석할 때 그저 그만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담당이 박대성은 가짜 미네르바고
대한민국 정부가 그런 가짜를 잡아두고 모든 검 판사들과 공모하여
희대의 연극을 벌이고 있노라는
그 '담담하고 당당한' 주장을 대하노라면
내 손 끝에 느껴지는 키보드조차 허상일까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담당, 정말 그게 가능해?
많이 모자라긴 해도 국민들이 직접 투표로 뽑은 대통령이 수반인
21세기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는 재판을
짜가 피고인을 들러리로 조작질하고
희대의 가짜 재판극을 벌이는 작태가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리고 리드미와 담당의 동조자들은 그런 주장을 정말 믿는 거니?

우째, 말리겠노. 에혀, 에혀, 이를 우야야야야야~꼬!
이게 다 멍박 탓이야, 니미뤌.
시박, 대통이 속임질의 대가다 보니 온 세상이 다 꼬치터래끼로 뵈는 거야.

니들 말대로 박대성이 차라리 가짜였으면 좋겠다. 프락치였으면 좋겠다.
천여 명의 다수보다는 삼십여 명의 소수가 틀리는 게
이 사회와 이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도 백 번 천 번 좋은 거니까.
허나 박대성이 진짜 미네르바라면 말이다.
readme와 담당, 그리고 그에 동조한 니들 모두는
멀쩡하고 똑똑한 한 젊은이와 그 가족의 인격과 명예를
멍박정부보다 더욱 더 비열하고 잔인하게 난도질해왔기에
결코 쉽게 용서되지 않을 죄업을 쌓게 된다는 걸 명심하라!

더하여, 그런 더러운 양심과 어눌한 이성으로
멍박과 정부를 까대는 짓일랑도 그만두라!
니들은 그럴 자격 절때로 절때로 없는 인간들이다!
똥 묻은 개색휘들이 겨 묻은 개색휘 나무라는 꼬락서니다.

니들의 그런 치졸하고 더러운 짓거리는
박대성을 잡아 가둔 멍박 정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못하지 않다.
참으로 어이 없는 인간들이로고!
예끼, 이 몹쓸 사람들아, 사람들아!

===東山高臥===

묵언의 내공

묵언의 내공
작성일:2009.04.13



바빠 죽겠는 이 방의 모든 투사들은,
영상 속의 이쁜 언냐에게 잘 배워 보세요.
질책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고 그윽한 눈빛만으로
무심했던 대중들을 묶어세우는 저 묵언의 내공을!
백 마디의 언설보다 한 줄기 눈빛이 더욱 위맹한 것임을!

동영상일 뿐이라고? 천만에, 만만에!
진정한 고수는 ‘닥치고 한 줄’ 만으로도,
더욱 진정한 고수는 언냐처럼 ‘묵언의 눈빛’ 만으로도
상대를 설득하고 불같은 신뢰를 일으키는 자!

때론 쟁투보다 사랑이 훨씬 더 위력할 때가 있습니다.
질책보다 포용이 훨씬 더 매서울 때도 있습니다.

신앙이든 좋은 세상 만들기든
전도는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한다더군요.

익숙할 만큼 세월이 흘렀는데도,
‘네가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옳다’며 다가오는 사람 하나 없다면
계몽가로서 전도자로서 선각자로서 지식인으로서 자부해온 모든 지위를
스스로 박탈하고 자성의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며칠 사이 노통 사건으로 언쟁하느라 지친 심신들을
매력적인 선율에 맡기고 딱 5분만 쉬어가자는 의미로.......



===東山高臥===

더디 가도 더불어 가는 걸음이 좋다.

더디 가도 더불어 가는 걸음이 좋다.
작성일:2009.04.09



박지성 1년 연봉도 안 되는 돈 땜시 쑥대밭이 된 바깥세상을 보맨서
'20억불 짜리' 재판 받는 미네르바가 웃는다, 웃어......
욱껴, 윅껴, 클클클, 피라미들 가트니라고!

한 늠부터 제대로 잡아야 다음 늠을 잡등가 하지.
그 늠한테 바람나서 집 나간 아고라의 이성들을 제자리로 갖다놔야
너나나나 '님의 부정'도 '이성적으로' 평가해볼 꺼 아이가.

입장 까리한 님들은 서둘 껀 엄따.
이 건도 족히 1년 남짓은 우려먹을 만큼 재기발랄한 사건이구만, 머.
웬만하면 따~악 보고 처~억 하며 밤칼을 뽑아들겠으나
노통 껀만은 '까기'를 서둘고 싶진 않다. 인간이 너무 '삭막해' 보일까바서.
사랑하며 보냈든 미워하며 보냈든 그는,
우리에겐 언제나 '떠나간 첫사랑'을 회억시키는 인물 중 하나가 아닌가.
첫사랑은 현실이 아닌 추억으로 머물 때 아름답건만
자의든 타의든 현실과 추억의 경계를 넘나드는 님의 미망이 안타까울 뿐.

함에도, 혼탁한 세상에 '기준과 기본'은 있어야겠기에
내리는 결론은, 욕먹어 마땅하다!
먹어랏! 욕! 욕! 욕!...................!!!!!!!!!!!!!!!!!!!!!!!!!!!!!!!!!!!!!!!!!

블로그 거실에 걸린 2MB clock을 보니 1416일 12시간 남았음을 알린다.
초를 가리키는 숫자들의 순간 변화가 무쌍하다.
그 쾌속감도 한순간, 얼마 전 노안 진단을 받던 생각에 이르자
세월이, 인간만사가 덧없다는 생각도 든다.
제 늙는 건 모르고 남 늙길 학수고대하는 꼬락서니다.
감옥에 갇힌 칠순 노인네, 해 뜨자 달력장에 꼽표 치는 게 낙이듯.

나도 까고 너도 까고 한 1년 쯤 노통을 까다보면 3년 남짓 남는 겐가.
이래저래 세월은 가네....클!
조금은 젊었던 날에는 밖을 까느라 밤을 깠건만
나이를 더해가니 이젠 안을 까느라 낮을 까게 되는구나.
쉬 그러지도 못하면서 마음만 무겁다.

누가 그랬던가, '나는 깐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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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에서 진보와 보수를 논할 때는
현학스런 사회과학적 용어와 개념들을 원(차)용하기보다는
모두가 쉽게 이해하는 통속적(대중적) 용어와 개념들로 소통하는 게 낫고 좋다.
경제학 원론을 대중의 눈높이로 맞춰 생동감 있게 타전했던
미네 할배의 방법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송해 할아버지가 '전국 노래 자랑' 무대에서 남녀노소 온갖 대중들을 장악하는 기술,
교훈삼아 눈여겨 살펴볼만한 모델이다.

전국 노래 자랑 무대를 에워싸고 있는 대중들(이게 진짜 표밭이다)의 눈높이로 보면
노빠는 진보고 명빠는 보수다.
이 때 사용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학술적인 게 아니고 통속적인 것이다.
아고라는 전국 노래 자랑 무대처럼 발랑 까진 초딩도 노래가 가능한 곳 아닌가.
아고라처럼 초딩들에게까지 개방된 대중 광장에서는
세미나실에서나 들을 법한 현란한 학술적 개념이나 이론보다는
통속적 어휘나 개념을 사용하는 게 보다 원활한 소통을 담보한다.
초딩조차 포함된 대중들을 이론 무장시켜 혁명가로 키울 요량이 아니라면.

대중 일반의 눈엔 대북관을 달리하는 진보신당이나 민노당이나
FTA를 추진했던 민주당이나 그에 반대하는 민노당이나 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이런 대중적 기준과 평가를 애써 부정하고 보다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신자유주의자 노무현'의 개념을 믹싱하여 진보와 보수를 논하게 되면
고마 얼키설키 대가리 복잡해지고 할 말 드럽게들 많아진다.
스스로 진보임을 자랑으로 알고 선민의식을 지닌 사람들을 향해
인정사정없이 '얌마 너, 진보가 아니고 보수야'라고 까버리면 다들 꼭지 돌아버린다니깐.
이런 곳에서 헤겔과 그람시 찾아가며 '분류(분리?)하면' 미친 늠 되는 거 한순간이다.

'혁명적 방식'이 아니라 어차피 '표 따먹기'로 좋은 세상 만들고자 하는 일에 동의한다면
표를 행사하는 대중들의 인식과 수준을 예우하고 그에 따라야지
책에는 그렇지 않다고 백날 대중들 나무라봤자 헛방이다.
돌아보면, 세월 참 금방이자누.
무학 논쟁을 필두로 엔피 간의 노선 논쟁 역사가 어언 30년이다.
그 지난한 논쟁의 결과는?
스스로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노빠나 민주당 지지자들을
이리저리 다 '분리'하고 나면 학술적 의미의 진성 진보층의 두께는 10%?
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존재의 이유만 확인될 뿐인 미미한 세력이다.
이인제도 이회창도 박찬종도 단기 필마로 10%는 먹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말은 괜스런 조롱이 아니다.
'통전'의 각종 방법론적 이상은 보기에는 좋으나 먹으면 체하는 게 현실이다.
이상적 목표가 아닌 현실적 목표로서의 '좋은 세상 만들기' 정도로
목표를 줄인다면 굳이 가름하지(분리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더디 가도 더불어 가는 걸음이 좋다.

세상이 스피디할수록 이성이 감성을 따라잡기가 벅차다.
느낌이 생각을 앞서는 건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성은 그저 느낌이 일으키는 오류를 줄이려 언제나 후순위로 작동할 뿐이다.
스피디한 세상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며
'닥치고 세 줄 요약'이 대세인 인터넷 공간은 더욱 그렇다.
'세 줄'로는 장황한 이성적 설명보다는 짤막한 감성적 탄성을 담기가 훨씬 수월해 보인다.
이곳은 readme 따위의 선무당에게도 환호하는 감성적인 사람들이 지배적인 공간이다.
나 역시 미네르바 진위 건으로 여적지 바락대곤 있지만
소수의 이성이 집단의 감성을 이겨낼 거란 자신감은 없다.
그래도 나팔은 불어야겠기에 ....불고 있을 뿐...............................
이성의 역할은 감성의 제압이 아니라 주의와 경계를 그 임무로 하면 된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인터넷 공간이든 바깥세상이든
대중을 홀리는 가장 큰 무기는 이성이 아닌 감성이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라거나 '리드미는 선무당'이라고 외쳐봤자
'조슬 까세요, 조슬!'이란 메아리만 요동치는 곳에서
지나치게 원대한 목표는 스스로만 망가뜨릴 뿐이다.
목표가 지나치게 원대하여 대중들의 감성과 정면 충돌하면서까지 악전고투하시는 분들,
깔 때 까더라도 1일 1회 이상은 까지 마세요.
엊그제 병원 다녀왔더니 제 처방전에도 그렇게 쓰여 있네요.
'1일 1회 이상 까지 마세요!'
제가 해보니까 남 까는 거 1일 1회 이상이면 심신 건강에도 좋질 않아요.
나발도 너무 많이 불어대면 머리 지끈둥해지자나요...*^^

각종 이성들은 각종 감성들을 제압하려 들지 말고
주의와 경계를 환기시키는 정도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십시다.

단, 벌초 때마다 발견되는 쑥대는 뿌리 채 뽑아줘야 한다는 건 유효!

===東山高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