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을 떼세요--인생 오묘할 것 없습니다

대강의 사람들에겐 범상한 욕도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욕이 될 수도 있나 봅니다.

논쟁 중에 ‘에레이~ 못 배워 쳐먹은 늠아!’라는 욕은 적당히 가방끈이 되는 사람들에겐 한 귀로 듣고 흘려지겠지만 못 배운 게 한이 된 사람에겐 치명적인 아픔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듯 성별과 나이, 학력과 신분, 신체적 특성, 등등 상대의 신상을 알고서는 쉽게 뱉지 못하는 욕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의 신상을 알 길 없는 인터넷 게시판에선 서로 간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인터넷 공간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당사자들이 스스로 유연하게 대응하고 소화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런 유연한 대응을 감당할 수 없다면 아예 이런 공간에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인터넷 게시판에 글질 하면서 욕먹지 않을 수 있는 왕도란 없으며 욕을 덜 먹도록 노력하는 게 최선입니다.
제 아무리 고운 말로 사리에 맞는 글을 써낼지라도 누군가로부터는 욕을 먹기 마련입니다.
제 지난 글 중에는 234명이 찬성한 글에도 반대를 누른 사람 1명이 있었고 100여 편 되는 글들 중에 반대나 안티성 댓글이 없는 글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더군요.
백가쟁명식의 주장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인터넷 토론방에선 어느 누구로부터도 욕을 먹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나 붓다가 환생하여 아고라에 글질한대도 누군가로부터 욕먹긴 마찬가지일 겁니다.

성경이나 불경에서 권하는 이상형의 인간상을 이런 토론방에서 구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간혹 눈에 띕니다.
차라리 문학 카페나 개인 블로그 같은 곳에서나 글질 하면 어울릴 정서를 지니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은 본인의 정서 안정을 위해서라도 이런 터가 센 곳에 발을 딛지 않는 게 좋습니다.
자신이 백로라고 생각되시면 백로 노는 곳에서 놀면 됩니다.
굳이 까마귀 노는 곳에 와서 까마귀들한테 니들 왜 그리 새카맣냐면서 하얀 털로 털갈이할 것을 요구해봤자 미틴 늠이란 욕 밖에 돌아올 게 없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욕먹을 일을 자초하는 건 자칫 자학성 뵨태끼를 지닌 사람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고운 말 쓰기 운동하시는 분들의 ‘거룩한 뜻’을 폄훼하고 싶진 않습니다만 게시판에서 욕 없이 고상하게 논쟁하라는 건 소설가에게 욕 없는 소설 쓰라는 것과 같고 운전자에게 운전 중에 욕 하지 말라는 소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사기꾼들이나 정신병자들조차 참여 가능한 이런 난상 토론장에서 품격 있고 고상한 토론을 기대하는 자체가 비현실적이고 몽상가적 발상입니다.
초중고의 도덕 교실도 아니고 고운 말 바른 말 쓰기 국어 교실도 아닌 인터넷 게시판에서 백날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고운 말을 씁시다’라고 주장해봤자 헛수고일 뿐이란 걸 깨닫지 못한다면 그건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애써 현실을 무시하는 아집에 다름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다소 거친 언어가 몸에 밴 남성들과 언어 사용이 비교적 온화한 여성들 간에는 언어생활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도 같습니다.
이런 게시판에서 욕질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의 성별은 대개 여성일 경우가 많고 특히 미혼 여성일 경우 한층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기혼 여성들은 미혼 여성들에 비해선 많이 유들유들한 편이죠.

근자에 새삼스레 논란거리가 되었던 ‘죠슬 까세요’란 표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남성들이야 어려서 첫 자위를 시작할 무렵부터 죠슬 까기 시작하여 죽기 직전까지도 까대니까 ‘죠슬 깐다’라는 표현을 그닥 낯설게 느끼진 않습니다.
‘죶밥’이란 어휘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주택 환경이 좋아 ‘죶밥’이 먼지도 모르고 크겠지만 나이 웬만큼 드신 남성들은 어렸을 때 포경 전에 꼬츄에 낀 죶밥들을 다들 아실 겁니다.
골똘히 생각지 말고 손톱 밑에 낀 때 정도로 생각하세요.
근데 그런 어휘나 표현들에 무슨 에이즈균이라도 묻은 듯 과민반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성인들께서 멀 그리 못 볼 거나 본 거처럼 손사래들 치시는지 정말 곱게들 크셨나 보군요.
아니면 곱게 큰 척 내숭이라도 떠는 건가요.
(‘죶’이란 단어를 그토록 혐오하면서 돌아서선 야동을 즐기는 일은 없기를 바랍니다.)
암튼 실생활에서도 ‘죠슬 까는 것’과 ‘죶밥’에 익숙해서인지 남성들의 대부분은 이런 류의 어휘나 표현들에 대체로 무덤덤한 반응을 보입니다.
여성들 중에도 아줌마들의 경우는 그나마 좀 덜한 편입니다.
‘죠슬 깐다’는 게 별로 낯선 일도 아니고 짜달시리 수줍어하면서 내숭떨만한 표현도 못 된다는 걸 남성들만큼이나 경험적으로 알기에 굳이 민감한 반응을 내보이진 않는 거죠.
남성들 못지않은 걸쭉한 욕질 입담을 구사하는 아줌마들도 적지 않자나요.

별스런 분석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런 어휘나 표현들에 몹시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황상 노처녀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혼기 전의 어린 츠자들은 이런 표현에 직면하면 민망해하면서 더 이상의 언급을 꺼리거나 어마뜨거라며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근데 노처녀들의 경우는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동년배의 아줌마들처럼 경험적으로 죠슬 까보기는 커녕 죠슬 구경조차 몬해본 스트레스가 히스테릭하게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거죠.
그러고 보면 노처녀들에게 ‘죠슬 까세요’라는 표현은 굉장한 도발이 될 수도 있겠네요.
글 서두에서 언급했듯 가방끈 짧은 사람에게 ‘못 배워 쳐먹은 늠’이라고 욕하는 것과 같은 강도의 자극적인 언사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익명이 보장된 넷상에서 그런 저간의 사정을 알게 뭡니까.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어떤 표현이 그 누군가에겐 상상 이상의 자극이 되리란 걸 알 도리가 없는 거죠.

그래서 드리는 말인데요.
욕을 주고받는 게 일상화된 인터넷 게시판에 글질 하면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 덜 받으려면 스스로 알아서 계급장을 떼고 임하세요.
나이나 성별, 출신지, 사회적 지위나 신분, 기혼 여부 등등 자신이 오프에서 달고 있는 모든 계급장을 떼고 글질에 임하시란 말입니다.
그래야 모나지 않고 티 나지도 않습니다.
남들은 그저 피식 웃으며 지나치는 욕 한마디에 밑천 다 드러내며 어린애처럼 떼쓰지 말구요.
오프세상에서 자신이 달고 있는 온갖 계급장이란 인터넷 게시판에선 그 어떤 의미도 가치도 권위도 부여받을 수 없는 말 그대로 사족일 뿐입니다.
논쟁하는 상대는 당신의 그런 계급장들을 일일이 헤아려서 예를 갖추어 주지 않습니다.
욕을 하거나 비난, 또는 비판할 때도 맞춤형으로 배려하면서 아량을 베풀지도 않습니다.
확인하기 전엔 그 누구도 믿을 수도 없고 믿어서도 안 되는 게시판에서 자신의 신분을 까밝히며 상대의 배려와 자비를 구하거나 스스로 권위를 내세우는 것만큼 빈티 나거나 추해보이고 어리석은 짓도 없습니다.
오프에서의 계급장을 내세우며 대우 받으려 들지 말고 욕을 덜 먹으려면 자신의 글에서 논리적 오류를 줄이는 길이 최선입니다.

소신과 신념을 갖추고 떳떳하다면 남들이 알바라 하든, 알밥이라 하든, 양키쪽바리매국노새퀴라 하든, 죠슬 까라고 하든, 죠슬 빨라고 하든 그게 뭔 대수랍니까.
상생의 도는 절간이나 교회에서나 챙기시고 이런 게시판에선 때에 따라 욕질도 섞어가며 니 주장 내 주장 까대다가 깨지기도 하고 승복하기 싫으면 ‘그래 니 잘 났다 씨밸류마’라고 욕도 한 번씩 날려가면서 티격태격하다가 하세월 하면 되는 거지 아고라에 글질하는 게 무씬 그리도 성스럽고 큰일이라고 오만 거 때만 거 다 따져가면서 글질 하려 드는 건지 내 참.

소망이 과하면 욕심이 되고 욕심이 과하면 집착이 되고 집착이 과하면 마침내 병을 부르나니 제 병 제가 만드는 어리석음이여, 소욕이면 지족이라, 욕질을 해도 삼십방이요 욕질을 않아도 삼십방인 것을, 헛헛헛 웃고 나면 너도 나도 모두가-모든 게 헛방일세, 아느뇨, 쾅!

===東山高臥===

나영 양 사건과 법에 대한 오해

작성자:루울
작성일:2009.10.05



세간에는 판 검사들이 공공의 적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오해라고 생각한다.

어느 집단이나 조직을 욕먹이는 꼴통들이 있듯이 사법부의 불신을 부채질하는 일부 정치겸업 판검사들도 있을 것이며 이들이 지난 독재시절에 저질렀던 과오도 크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많은 평범한 법조인들은 자기 손에 사람의 인생과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에 다른 직업보다 소명 의식이 철저할 수 밖에 없고 강박에 가깝게 법 마인드를 단련한다. 정말 그것은 평생 공부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직업..

또한 법은 수백년 동안 괴물같은(뭐라고 비유할 말이 없음..- -)인간들이 각종 철학을 치밀하게 다듬어 집대성 해 놓은 정교한 체계이고, 이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 역시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로서 최적의 프로세스로 가장 합당한 형량을 도출하기 위해 많은 공부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대중의 감정과 상당히 유리되어 보이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내 경험을 말하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법돌이/법순이와 논쟁을 해 본 사람이라면 그들이 천인 공노할 사건 앞에서도 감정과 법리를 분리시키며 정황 하나하나를 매우 치밀하게 따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법돌이와 논쟁을 할 때마다 그들이 도출해낸 결과가 나의 감정과 꽤 유리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오해(꼴통 아닌가 하는..)를 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많은 공부를 한 후에야 그러한 오해를 풀 수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진 철학이나 성향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의 양에서 발생한 오해였다. 나는 사건의 전체적인 인상과 느낌을 위주로 형별의 경중에 대해 판단하지만 사건을 다루는 쪽은 피고인과 피해자간의 자세한 정황을 전부 개미 핥듯이 고려하고 참작하는 거라서 사건의 인상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그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사건 결과에 대한 '인상'과 '개미핥기'의 간극이 바로 일반인들의 법 감정이 악화되는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사건에서 잠시 개미핥기가 되어 형량이 어떤 과정으로 도출되었을까를 뒤적거려 봤다. 그 결과 이번 사건의 형량 결정 과정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돌아다니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당한 오해가 퍼져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형량은 범행의 결과 뿐만 아니라 범행과정과 동기 등이 전부 정밀하게 반영되어야 하는데 잘못된 팩트로 형량에 대해 판단하며 법 체계 전반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여론이 득세했기 때문이다.
세세하게 적기는 너무 길어서 생략하겠지만 .. 몇개만 적어보겠다.

( 이 사건을 처음 부터 지켜본 이 모 기자의 글)
-판사가 피해자 어린이를 돕기위해 이 모 기자에게 이 어린이의 사건과 경제사정을 알리면서 이 일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건은 '썅놈'이 자신의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데다가, 검사의 논고가 불충분하여 유.무죄를 가리기 힘든 사건이었다. 범인이라는 확증이 의심스러운 경우에는 피의자에게 유리하게 판결한다는게 법의 원칙임을 고려하면 자칫 무죄가 될 가능성이 큰 사건 이었다.
-판사가 검사 논고의 불충분함을 상당히 메워준 재판이었다. (미국의 경우 검사의 논고가 불충분하면 무조건 무죄 방면인 반면, 우리나라의 이 사건의 경우 판사가 검사를 도와준 형국이었다고 한다.)
-이런 정황을 고려해보면 12년 형이라는 결과는 현행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적극적으로 형을 이끌어 낸 판사의 공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피해자 아동에 대한 루머가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왜곡된 루머로 인해 피해자 어린이도 두 번 죽는다. 피해자의 아버지도 그 점을 걱정하고 있다.

성범죄 썅놈에게는 공기도 아깝지만, 그러한 형이 도출되게 된 이유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었으며 형 도출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대중의 공분이 법조인 개개인에게 향하는 것은 대상을 잘못 선택한 것이며 이미 판결난 사항을 뒤집으라는 것도 작금의 상황을 '개선'하는데에 아무런 실익이 없는 행위라는 것이다. ( 배대가리가 그 동안 박대성씨를 농락한 것이 분명하지만 명예훼손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처리 된 것처럼, 썅놈의 논고 불충분으로 인한 무죄 가능성도 이와 비슷한거 같다.)

법 감정이 갈수록 악화되는데에는 언론의 얄팍한 보도도 한 몫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면, 성범죄에 대한 기소율이 떨어지는 것을 두고 '법조인 개개인이 성범죄에 대해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며 문제의 원인을 개인 범주로 분석해 놓은 기사를 종종 보았을 것이다. 나는 개별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런 분석에 동의할 수 없다. 똑같은 유형의 성 범죄라도 사건의 세부 정황에 따라서 기소나 판결에 현격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판 검사들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판결에 '중대한' 영향을 줄 정도로 법이라는 시스템은 핫바지가 아니다. 만일 법이 그렇게 호락 호락한 것이라면 '시스템'이라는게 존재할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차라리 구조탓으로 분석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법조인들에 대해서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악의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대체로 법조인 대학동기를 가진 기자들일 경우가 많다고. 결국 이런 기자들은 기자 때려치고 로스쿨로 간다고 함..)

나는 이 지점에서 다소 원론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사회의 공분을 자아내는 패악 범죄의 경우, 국민 여론과 법 감정에 따라 처벌을 가감하도록 판사의 재량을 확대하게 되면 자의적인 판결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므로 그것 또한 상당한 위험을 가져온다. 결국 가장 정의에 합당한 방법은 철저히 법리적인 테두리 안에서 형을 선고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비해 판결이 보수적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첫째,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범죄의 경우 루머가 파다하여 실체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고 둘째, 우리가 가진 정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떠한 과정으로 그런 형이 도출되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며 셋째, 법조인 개개인이 꼴통이라서가 아니라, 누구보다도 법의 무서움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판례 하나가 미칠 사회적 파장과 그로 인해 역 훼손 될 가능성이 있는 모든 가치를 고려하다보니 그렇게 느껴지는게 아닌가 싶다. 법의 적용을 받는 것은 범죄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니까. 수많은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억울한 한 명의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법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막연하게 불신하거나 반감을 가지게 되는 원인에는 그것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법에 대해 막연한 반감과 불신을 가지게 되는것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박대성 공판 때 택도 아닌 논리로 판 검 변 3위 일체론을 설파하던 사기꾼들과 그들의 말에 아무런 의심없이 동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확신하게 된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전히 음모론의 한쪽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오해받는 거친 민심의 물결 속에서, 법원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섣불리 개정논의에 숟가락을 올리기 보다는 일단 왜 그런 형량이 도출된 것인지 정보 공개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공분을 가라앉히고 실익을 가져올 수 있는 논의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암튼 난 법맹을 가까스로 면한 수준이지만 법은 정말 극도로 정교한 건축물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 법이 거짓말 하는 사기꾼들의 아가리를 닫게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대산아 몸조리 잘해라.



written by '루울'
(이 글의 저작권은 '루울'님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