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의 ‘죶 같아서’란 표현에 반대한다

난 기본적으로 '죶'이란 단어를 좋게 바라보고 그 의미 또한 좋은 방향에서 사용되었으면 하는 입장이다.
기존의 관성 탓에 쉽진 않겠지만 ‘죶 같은’이란 표현보다는 ‘죶 같지도 않은’ 이란 표현의 사용을 권장하고 싶다.

배설이라는 생리적 기능에 더해 인류의 존속에 기여하는 그 숭고한 기능까지 나아갈 것도 없다.
난, ‘체’ 떠는 세상에서 죶 만큼 진실한 걸 못 봤다.
다룬 만큼 즐거움을 주는 정직한 놈이다.
그 즐거움 앞에선 남녀노소, 동서양이 따로 없고 고금이 따로 없다.
때에 따라 요놈을 잘못 놀려 인생을 잡치거나 ‘죶 같지도 않은’ 난망한 상황이 벌어지는 부작용만 조심하면 말이다.
하긴 머 이 부작용조차 점차 일상화되고 보편화되어가는 세상이니 부작용을 부작용이라 하기도 멋쩍은 세상이 곧 올런지도 모를 일이다.

‘죶’을 유독 싫어하는 사람도 많은데 ‘죶’을 자주 들먹거려서 미안하다.
아침에 아고라의 일기들을 보다가 ‘해피니스’라는 분이 인용한 김지하의 글을 보고서 삘 받아서 예정도 없이 쓰는 글이다.
이 분의 글에선 정작 ‘죶’이란 단어를 공개게시판에 쓰기가 쑥쓰러우셨던지 배꼽기호로 표현하셨다.(아니면 조선일보에 기고된 시론의 원문을 그대로 옮겼을 수도 있다)

소개된 내용은 조선일보 시론에서 김지하의 이런 언급이 있었다 한다.

“죶 같아서 얼굴 돌린 것뿐이지!"

그리고 그 글 바로 아래선,

“이 '죶'이란 말 꼭 지우지 말기 바란다.”라는 당부까지 했다.

나아가 김지하는

“조선일보가 물론 '막말 코리아'란 특집까지 내면서 쌍소리 천국에 개탄을 거듭하는 줄은 잘 안다. 그러나 15세기 피렌체와 베네치아는 막말 천지였다. 르네상스의 도화선이었다. 지금 이 나라에 네오 르네상스가 오고 있다는 증거다. 르네상스 없었으면 오늘까지 세계를 잡아 흔든 유럽 권력과 서구문명은 없다. 그런데 그 네오 르네상스가 다가오는 발자국이 곧 막말이니 지우지 말기 바란다는 말이다.“라며 친절하게도 부연까지 달았다.

과연 욕질의 해학에 달통한 사람이다.
‘죶 같아서’를 ‘죶 같지도 않아서’라고 사용했음 더 좋았을 껄 하는 개인적 아쉬움은 남지만 글 내용을 떠나 내숭 없는 저 글빨 하나는 맘에 든다.

7,80년대 드라마에서 가장 흔했던 고전적 주제가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사랑과 야망’ 정도 되겠다.
흔하다는 건 공감을 얻기가 쉽다는 거고 그만큼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란 것이다.

근데 세월을 한참이나 건너뛴 21세기 개명천지의 대한민국에서는 여적지 그런 일들이 드라마처럼 일어나기도 한가 보다. 지인에게 전해들은 얘기다.

개천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한 여자도 있었다.
개천 출신의 남자는 고시에 매달렸고 여자는 자신의 온 몸을 바쳐 희생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투자는 로또 복권 당첨되기를 바라는 그런 투기가 아니라 그 자체로 지순한 사랑이었다.
책값도 주었고 배때지에 기름도 제때제때 칠해주었다.
고시공부에 매달린 그의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기꺼이 하꼬방의 침대가 되기도 했었고 그야말로 ‘온 몸을 다한 기약없는 희생’을 다한 지 어언 몇 년, 남자는 해냈다.
그리고...........................................................................................
가란다. 사랑이 아니었단다. 자신은 여자를 처음부터 사랑한 것은 아니었단다...............


아뿔싸, 이걸 어째.
이런 상황이 드라마속에서 벌어졌대도 애꿎은 TV가 20층 난간 밖으로 날아갈 상황 아닌가.
이 일을 당신 딸이 겪었다면?
이런 일을 당신 여동생이 겪었다면?
아니 딸이나 여동생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겪었다면?

“엉엉엉, 제게 왜 이러세요. 전 당신을 사랑했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이럴 수는 없자나요..엉엉...엉엉엉...흑흑...매달리고 매달리고....또 매달리고..우리 사랑했자나요..흑흑흑~~~~~~~~”

이러면서 바지가래이 부여잡고 매달리실래요? 아니면

“야 이런 개씨바르 개죠까치도 않은 새퀴야. 이 개호르 샹녀르느무씨바르 새퀴야. 니가 사람 닮은 짐승 새퀴야 짐승 닮은 사람 새퀴야. 검, 판사 뺏지 다는 날 술 쳐먹고 길가다가 동네 개색퀴랑 흘레붙어 먹다가 죶이 낑겨서 고대로 동물병원에 실려 가서 개망신이나 당하거라. 이 호랑말코개쌥숑가리샹녀르느므개씨바르새퀴야! 으휴 재섭서!”

이러면서 샤대기를 후려치고 죶몽딩이를 부러뜨려버리실래요?

전 제 딸에게 좀 더 크면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욕질하는 법도 갈차줄 생각입니다.
똘똘하게 크다보면 제 알아서 배우기도 하겠지만.

이야기 속 개천 출신의 남자는 이미 인간되기 글러먹은 개새퀴입니다.
울며불며 매달리거나 설득할 대상이 아니란 거죠.
그런 늠들을 상대하면서 욕 말고 고상하고 우아한 ‘인격의 나눔’을 가져보시겠다구요?
빛 좋은 개살구죠.
쉰 국에 따끈한 밥 말아봤자 개밥거리도 못됩니다.

후~, 그래도 근자에 ‘죶’ 관련해서 저를 포함 어중이떠중이들 간에 대화가 잦다보니 경방에서 ‘죶’이란 단어가 자연스럽고 우아하게 떠다니는 일이 잦아졌군요.
김지하의 권위까지 빌었으니 앞으론 더욱 탄력을 받겠군요.
이 모두 죶밥님의 눈에 뵈지 않는 공로입니다.
죶을 아이디로 걸치는 그 깊은 해학에서 각설이를 봅니다.
밍크를 걸친 사모님의 눈은 막걸리보다 탁해 보이는데 누더기를 걸친 각설이의 그 눈은 수정처럼 맑아 보입니다.

주말 아침, 살다보면 참 씨잘데기 많을 '죶’에 대한 단상이었습니다.

===東山高臥===

readme-혁명의 위험한 유혹

새벽 쓰린 가슴 위로
깡소주를 적시며
꾀었다

what is to be done?

propaganda
agitation
for
revolution!

노동자의 천국을 위하여

지화자, 조오타,
건빠이!

술값은?

다들 톢꼈다

계산대 앞

노동자도 없었고
노동계급도 없었다
혁명가도 없었고
혁명도 없었다

죽은 자는 땅을 이었고
산 자는 하늘을 이었다
차이는 그뿐

그 용기를
그 비겁을
기억할 자 아무도 없다
기억한들
이제
김세진과 이재호는
낡은 인명 전화부 속
동명이인들 틈에 낑긴
석 자 활자로
남았을 뿐

목숨 걸고
염병 떨 것까진 없다
가고 나면
모두가 허방인 것을

다만
노동자가 아닌
사람으로
살고픈 사람들

사람들 손에
피의 칼을 들리지 말라

사람들 입에
칼의 노래를 불리지 말라

사람들 눈에
피에 물든 삐라를 들추지 말라

네 막장 인생
마지막 들러리가
필요하거들랑
네 사랑하는 아내와
네 피로 키운 딸 아들이면
세상에 빚은
남기지 않을 터


원한다면
알카에다가 되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미친!




===東山高臥===

고수님들, 다음 주식회사 주식을 지금 살까요, 말까요?

서뿌라이즈라는 곳이 있었슴미다.

참여정부의 탄생에 힘입어 노무현이란 이름을 팔아 친노빠 정치사이트로서의 입지를 굳혀갈 즈음 황우석 사태를 맞았고 무뇌황빠 양산의 본거지가 되었슴미다.
서뿌라이즈의 경영 주체들은 약삭빠르게도 황빠 현상을 동력 부족으로 비실거리던 사이트 활성화 사업의 기폭제로 활용코자 했고 수많은 황빠들은 기꺼이 호구가 되어 주었슴미다.
의도된 대로 노빠황빠를 필두로 수많은 황빠 호구들의 후원금이 한 때 꽤 짭짤했던 걸로 암미다.

그러다 일부 황빠들이 탈‘노빠편향’을 선언하면서 민초리, 광장 등의 여타 사이트를 신설하거나 증, 개편하면서 분화되어 나갔슴미다.
그 후 서뿌라이즈 공식 입장인 노빠황빠적 입장을 견지하던 서뿌 잔존 황빠들의 세력은 쇠퇴 일로를 걸었슴미다.
초기의 황구라 사태로 촉발된 애국질 광풍이 잦아들고 차츰 이성과 합리와 객관에 근거한 황까적 입장이 대세를 장악할 즈음 서뿌라이즈는 그저 미쳐버린 잔존 황구라 광신도들의 예배당으로 전락하고 말았슴미다.

결국 서뿌라이즈의 눈팅 독자들은 그 비이성적 광기에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서뿌라이즈의 이미지는 비이성과 비합리와 비과학의 상징처럼 여겨지기에 이르렀습니다.
후원금의 축소는 필연, 재정에 큰 타격을 입은 서뿌라이즈 경영진은 황구라 사태 초기에 서뿌라이즈의 얼굴처럼 황빠들에게 거창하게 내줬던 황토방을 눈에 뵈지도 않는 후미진 뒷방으로 내돌리기에 이르렀슴미다.
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는 때늦은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을 것임미다.
서뿌라이즈 창고방에는 4년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줄기교도들의 ‘줄기 타령’이 여전함미다.
한 번 둉신은 영원한 둉신임을 증명하는 황빠라는 한국산 돌연변이 인류들은 썩뿌라이즈의 박물관에서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슴미다.

황빠와 썩뿌라이즈, 웬 뜬금없는 소리냐구요?

다음의 경영진에게 ‘둉신 장사 결코 오래 못 간다’는 걸 일러주고 싶어서입니다.

다음 아고라의 위상은 작년 미친 쇠고기 정국과 미네르바가 팔딱 대던 시절까지는 ‘집단지성’을 운운할 정도로 인터넷 여론을 주도하는 리더격이었습니다.
그랬던 다음 아고라가 미네 구속 사태 이후 9개월여 만에 지금은 ‘둉신들의 천국’으로 조롱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썩뿌라이즈가 그랬던 것처럼 비이성과 비합리와 비과학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거죠.
명예도 잃고 페이지뷰도 점차 다운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혹자들은 그게 모두 알바와 알밥 탓이라 질알하드라만 그런 평가는 수만 수십만의 다음 눈팅들을 모독하는 발언입니다.
아고라 바깥의 여느 세상 사람들처럼 다음 아고라를 눈팅하는 수만, 수십만의 독자들은 지극히 이성적이며 그들은 다음 아고라에 노정된 문제가 무엇인지를 현명하게 잘 판단하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아마 모르긴 해도 다음 주식회사의 게시판 관리팀과 경영진 사이에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전략회의가 있었을 걸로 봅니다.

1. 정부의 중도실용주의에 호응하는 둉신 장사를 계속할 것인가
2. 진보 개혁 이미지의 ‘집단 지성’이란 아고라 본래의 위용을 되찾을 것인가


결론은 1번이 대세였을 걸로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참여정부 치하였다면 2번의 결정을 내렸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참여정부 치하였대도 돈이 되지 않으면야 굳이 2번을 고수할런지도 의문입니다.
기업의 모든 판단의 기준은 돈이 되냐 마냐는 것이니까요.
어쨌거나 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노라고 호언장담해대는 정권 아래서는 2번이 돈이 된다 한들 내 돈일 수 없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1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다음주식회사를 나무랄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사람 사는 세상이란 호구는 늘 있고 그런 호구들을 등쳐먹는 무리들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무리들 간의 경쟁이란 누가 먼저 호구들을 등쳐먹느냐가 언제나 관건이죠.
‘기는 늠 위에 뛰는 늠 있고 뛰는 늠 위에 나는 늠 있는 세상’입니다.

다음 아고라 광장에는,

*기는 늠들......아구라의 일천 둉신들(호구들)이 있고,

*뛰는 늠들

700리........종말론적 세계관을 지닌 의뭉스런 시삽의 주도하에 고급정보 교환을 미끼로 까페장사
아정뽀.......호기로운 절믄 사기꾼 하나가 자유언론의 기치를 들고 카페 장사를 시도
리쥐미.......절믄 날에 이루지 못한 꿈들을 이진법의 세상에서 구현코자 하는 몽상가
돰돰돵돵....반일의 기치로 기어이 호구들을 낚아 성공한 기업인이 되어보려는 야심가
빚을잉크....가정도 사업도 말아먹은 삶을 넷세상의 연애질로 보상받아보려는 낭만거지
크래미, 멬파일....기득권 진입에 실패하고 그 원성을 넷 세상에 쏟아 붇는 청춘 낙오자들
기타 자칭 타칭의 고수들.......책팔이등 기타 금전상의 목적을 노리는 지식장삿꾼들이 있고,

*나는 늠들......다음 주식회사와 정부가 있고,

그리고 나는 늠 위엔 공중부양과 순간이동이 가능한 알밥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도입부 새실은 요 정도 떨고 다음 주식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예비 투자자로서 다음주식회사에 건의 겸 충고 하나 드리고자 합니다.

돈은 다음에 벌면 되지만 이미지란 한 번 굳어 버리면 다음이란 기약이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돈이 된다면 당장은 내 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위에 예시된 2가지의 선택 중에서 2번을 선택하십시오.

지금 정권이 오 년 십 년 천 년 만 년 가는 거 아닙니다.
레임덕, 선거준비 기간 빼면 3년도 채 남지 않은 정권입니다.
모든 기업이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언론 기업이란 이미지로 먹고사는 기업입니다.
인터넷 포털 중에서 다음이 상대적으로 개혁적 이미지를 지닌 점은 커다란 경쟁력입니다.
한 번 잘못된 판단으로 기업 이미지가 찌질 이미지로 고착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현실에 안주하면서 둉신들 등쳐먹는 걸로 자족하고 임기응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 아고라가 황빠의 길을 걷던 썩뿌라이즈처럼 둉신들의 천국이란 이미지로 고착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리되면 인터넷 사업의 주소비층인 미래지향적 네티즌들로부터 버림 받습니다.

아고라에 상주하며 원글과 댓글, 그리고 찬성과 반대를 표시하는 네티즌 수는 기껏해야 일천 정도입니다.
하지만 수만 수십만의 눈팅 독자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음은 자칫 현상유지 차원의 둉신 장사질로 안위하다가 지켜보는 수만 수십만의 눈팅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설마 속으로 리쥐미나 돰돰돵돵 같은 자들이 이뻐보이는 건 아니시겠죠.

일천 둉신들 못지않게 다음 경영진도 정신들 바짝 차리시길 바랍니다.
게시판의 요지경들을 감상하며 웃고 히히덕거릴 때는 아니지 싶습니다.
일천의 둉신들과 사기꾼 비스무리한 인간들을 필요악으로 활용하시려다 아고라=다음=둉신들의 천국이란 이미지로 고착되면 다음이 죶 되는 것도 한 순간입니다.
뱃속에서 독사의 새끼들이 자라고 있음을 인지하고 지금의 시기를 비상한 시기로 인식하고 베스트글 선정시에 다음 측의 적극적인 개입과 방향지도가 당분간만이라도 필요할 겁니다.
그런 강압적 통제가 옳지 않음을 알지만 작금의 아고라엔 도대체 자정 능력이 감지되질 않아서 하는 소리입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다음 아고라 베스트 글을 보면 기함을 합니다.
둉신들의 천국이라고!

둉신들의 질알을 보면서 강 건너 불 구경 하듯 뒤편에서 웃고 즐기고 계실지 모르지만 다음의 등짝 저편에서 독 묻은 화살이 날아오고 있음을 인지하시라고 오지랖 넓은 의견 함 내봤습니다.
여윳돈 생기면 다음 주식 좀 살까 말까 고민하는 다음 주식회사 예비 주주의 자격으로....^^

===東山高臥===

폰부스 식 치료

주말 휴일은 모두들 싸~하고 쿠울~하게 보내셨겠죠?

또 한 주를 명랑사회건설을 위해 알밥차게 지내봅시다..^^

주말 동안 쓰인 글과 댓글들을 훑어보니 점점 종말이 다가오나 봅니다.
광신도들의 종말은 언제나 집단자살로 끝나는 경우가 많더군요.
이곳 경방에도 그런 조짐이 서늘한 가을바람처럼 가만히 느껴집니다.
요즘 들어 부쩍 리빠담빠 광신도들 중에 스스로 분을 못 이겨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자폭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군요.
HUE님은 이들의 집단발작을 절벽으로 내달리는 레밍 떼의 행렬에 비유하더이다.
딱 들어맞는 참 좋은 비유입니다.
빤빤하던 경방이 스폰지밥 피부처럼 자폭자국들로 여기저기 구멍 송송합니다.
행여라도 자폭 후에 갱생의 의지를 불태우신다면 어느 늘근 개의 염원처럼
‘담 생애엔 둉신 아닌 사람으로 태어나 멋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이제 다시는, 다시는, 이제 다시는, 정말 다시는,
개구라 사기꾼들을 교주로 모시며 똥바닥을 구르는 둉신짓을
다시는, 다시는, 이제 다시는, 정말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다시는 않기를!

동네 선술집에서나 직장 회식자리에서 또는 집안 친인척 모임 자리에선
나름 천하의 둘도 없을 똑똑이라 자부하였건만 넓은 세상에서 시험에 들고 보니
그게 결국 빙시이 수준일 뿐이었음을 통렬히 깨달으셨을 겁니다.
아, 텍사스 벌판의 소떼처럼 아스라이 밀려오는 지적 열등감이여!
철썩 같은 믿음이 깨어져 나가는 상실감이여!
자신이 둉신임을 기어이 자인해야만 하는 자괴감이여!
황빠 수굼포질, 디워빠 수굼포질, 리담빠 수굼포질로 이어지는
연이은 망신살 끝에 밀려오는 허무감, 아~ 인생무상 구라무상이여!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연거푸 수굼포질이라니 둉신 둉신 상둉신
이런 지기미옹헤야맏개후아ㅐ닝기리댯드랴떠그랄잉릴뽀마자!
지나가는 15톤짜리 땀푸 트렄과 뜨거운 육체적 접촉이라도 하고 싶을 낍니다.

아마 여러분은 머잖은 날에 개구라 교주들 간의 피 튀기는 개싸움을 목도하시게 될 겁니다.
사기꾼들의 세계가 원래 피도 눈물도 없는 이전투구의 전형이거든요.
구라로 흥한 인생 구라로 망하는 겁니다.
철썩 같이 믿었던 리쥐미와 담당 같은 개구라 둉신교회 교주들의 끝없는 수굼포질,
알밥들과 붙었다 하면 백전백패고 댓글 하나 온전히 맞대응치 몬하는 저런 상둉신들에게
1년여 세월을 몰빵 했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시죠?
새 신이라도 신고 팔짝 팔짝 뛰고 싶으신 게죠?
앞다리가 쏘~옥 뒷다리도 쏘~옥 팔짝 팔짝 개구리, 아니 개구라 밥 된 거죠.

오, 주님이시여, 제게 왜 이런 사기꾼들과 흘레붙여 시험에 들게 하시나이까!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 되고 그리하면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길래
알밥들이 내미는 ‘fact'는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고
리쥐미와 담당이의 구라 속 K만을 0.1% 그 분으로 철썩 같이 믿고 또 믿으며
막상 천국에 이르렀건만 이 무슨 ‘둉신들의 천국’인가요.

아마, 지금쯤 리빠 담빠 광신도 언냐, 옵화들은
이런 심정들로 가슴 벌렁 대가리 알딸딸하실 겁니다.
자폭을 아니할래야 아니할 수 없는 죶 같지도 않은 상황의 연속인 거죠.
그래서 며칠 전 죶밥님께선 님들의 그런 심정을 일찌감치 헤아리사
아래와 같이 옆집 김씨네 옥주처럼 영롱하고 청순한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믿었던 배씨한테 뒤통수 후려 맞으니까
대가리가 알딸딸하죠?
하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정신병자를 모시는 광신도의 최후입니다.

이 돌대가리들아."


현명한 사람은 길이 아니면 돌아서 새 길을 찾지만 길이 아님을 알고도
악랄하게 뚜벅뚜벅 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둉신이라 합니다.
무식한 것들이 원래 용감한 법이죠.
무식한 것들이 용감하면서 부지런까지 떨면 집안 말아먹기 딱 좋습니다.
지들은 그런 둉신짓을 선비들의 기개와 절개라 일컫더군요, 미친!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잘못된 판단과 실수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수가 나쁜 게 아니라 실수를 인지부조화로 면피해보려는 억지와 궤변이 나쁜 겁니다.
자신에게나 남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매우 비겁한 짓이고
덜떨어진 머저리들이나 하는 짓인 거죠..
둉신, 머저리, 빙시이, 돌대가리, 무식한 늠, 광신도, 리빠담빠, 등등
이런 조롱 섞인 말들을 들으면 좌우측 다리 대퇴부에서부터
뒷대갈휘에 이르는 동맥을 타고 왕쫘증이 쓰나미처럼 뻗쳐오르죠?
그건 좋은 현상입니다. 그게 다 치료의 과정입니다.
그나마 그런 반응이라도 있으면 일말의 치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이런 조롱에도 아예 무덤덤한 광신도들이 있다면 갸들은 아예 처방불능 백약무효입니다.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다는 사람들인 거죠.
시간 나실 때 폰부스란 영화 함 보세요.
한인간의위선을산산조각내어완전바닥까지유도하는스나이퍼의심리전이참인상적입니다.
한 번쯤 모든 위선의 껍데기가 산산이 부서져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눈곱만한 알량한 자존심마저 남김없이 발기발기 찢겨져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파괴가 아닌 재건축을 위한 해체의 과정으로 받아들이세요.
부서져 내리는 동안 쓰라리겠지만
재탄생될 새까만 눈과 새빨간 심장, 새하얀 뇌를 떠올리며 참아내세요.
그런 치료의 과정을 다 거치고 나면 여러분들의 뽕에 찌든 영혼이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영롱해집니다.

부디 알밥들의 쓴 소리를 치료약으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쓴 법입니다.
알밥들의 쓴 소리는 리쥐미와 담당이가 공급해온 달콤한 뽕에 취해
잠들어버린 여러분의 이성을 일깨우는 유일무이한 명약이라 생각하시고
날마다 식사 후 1일 3개 정도의 알밥 글을 복용하십시오.
정신 가출한 여러 님들의 조속한 정신 귀가를 기원하면서 이만.

===東山高臥===

바보플레이는 주입식교육의 문제인가

작성자:루울
작성일:2009.09.20 00:27



흔히들 벼엉신들을 가리켜 주입식 교육의 문제..ㅉㅉ 라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투입시간 대비 산출 효율성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으로 주입식 교육의 많은 장점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는 편이다.

나는 학교 다닐때에 주입식 교육이 내 스타일에 잘 맞다고 느꼈다. 지극히 당연한 걸 설명하는데 곁가지 시시콜콜한것들을 다 따지고 이 친구 얘기 저 친구 얘기 다 들어가면서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느낌이 들어서 짜증이 났다. 딱 한가지 확실한 원리를 선생님이 정확하게 설명 해주면, 기본 원리를 이해한 뒤 외울건 외우고 모르는건 물어보고 패스. 이게 좋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은 그런 방식으로 획득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게 사고를 정지시킨다던가 바보로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들은 그런 방식 이상의 뭔가가 필요할 만큼 대단한 깊이가 있는 내용이라는 생각도 별로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내가 주입식 교육의 수혜자라고 느낀다. 안녕 메리 안녕 탐부터 시작해서 튀김온도는 몇도가 좋으냐까지 오만 가지 잡다한 지식을 나는 주입 받았다. 나는 그렇게 마구잽이로 대가리에 넣어놓은 지식들이 적정한 타임에 맞춰 입에서 흘러나오는 걸 보고 아 이런 방법도 꽤 쓸모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중이며 그것을 가끔 꺼내어 활용할 수 있는 퀴즈 맞추기를 좋아한다. 그런식으로 대가리에 쌓아놓은걸 심심할 때 마다반추해 보며 얄팍한 경험들과 비교해서 휴지통에 버릴 때도 있고, 수정할 때도 있고, 뭐 그렇다. (주입식 교육은 교수 방법상으로는 일명 강의식 교수법을 말하는 것 같음)

내가 생각하는 주입식 교육의 장점

1.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고의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입식 교육은 빠르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다수의 학습자들이 단시간에 평균이상 수준에 도달하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우리나라에서 강의식 교수법이 줄곧 애용되는것은 열악한 교육상황과 부모의 큰 기대(교육열)이 한 몫하고 있는 것 같다.

2. 대부분의 기초 지식들은 반복 강조와 지시적 전달방식만으로 충분히 습득 가능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각 과목과 단원의 성격에 따라 적합한 교수법이 있는 것이지 무조건 토론 교육이 주입식 보다 우월하다고 할수는 없다.

3. 주입식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이 습관처럼 교육 방식의 대안이 토론식 교육 어쩌고 하지만, 일정수준의 기초지식들이 곳간에 차곡차곡 쌓여 있어야 그걸 바탕으로 논리를 펴거나 논박할 여지도 있다. 빈 깡통들끼리 모여서 얘기 나눠봤자 토론다운 토론이 될리 만무하며 극도의 저효율을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생각을 비판하고 나의 논리로 상대방의 논리를 반박 수용하는 과정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서는 상호 모두 최소한의 지적수준과 논리력을 가져야 하며, 이 기본소양을 갖추는데 주입식 교육이 도움을 줄 수 있다.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개념조차 소화 못한 자들이 자신의 교육적 실패 상황을 정당화 하는 방책으로써 '주입식 교육 비판' 이 왜곡된 측면도 있다고 봄.

4. 다만, 창조성 .. 그런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백지상태에서 절대로 창조적인 것들이 나올 수 없다는것 만은 확실하다. 대가리에 잡다한 지식들이 가득 차면 정리하고픈 욕구와 응용 하고싶은 호기심도 생긴다. 그런 것들을 스스로 정리해 보거나 책을 읽으며 탐구하면 된다. 주입식 교육 세대인 나는 내가 창조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으;외로 꽤 창조적이라는 말도 들어봤다. 나의 창조력은 내가 암기하거나 걍 머리에 집어넣은 것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5. 학교에서 잡다한걸 가리키는것도 문제라고 하는데, 나 역시 학교 다닐 때에는 '왜 요딴 쓸데없는걸 배우냐 선진국에서는 안 배운다는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엄청 많았다. 하지만 쓸데없는거라고 생각한 것들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정신 능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나는 학교다닐 때 연필로 연습장에 뭘 쓰면서 계산하는게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덧셈 뺄셈이나 배우면 되지 뭐하러 쓸데없이 수학을 배우는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바보같은 질문이었다. 수학을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콩나물 계산하라는게 아니라 뇌 근육에 논리력을 심어주라는 거였다. 요걸 외우든 어쨌든 수학정석을 찢어먹든 간에 열심히 공부해서 소화를 시킨 사람은 앞 뒤 안맞게 말하는 인간의 위선을 조목 조목 비판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논리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는 이런 최소한의 개념 조차 소화 못하는 사람들이 토론식 수업을 통해서 뭔가 생산적인 결론을 얻을 수 있다는데 대해서 회의적이다.

6. 그리고 그 당시에 주입식 교육을 훌륭하게 소화한 다수의 아줌마 아저씨들은 지금 나름대로 제 역할 하면서 기술 발달을 훌륭하게 이룩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지 큰 문제를 나는 찾지 못하겠다. 테레비 반도체 등등 별 무리없이 잘만든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주입식 교육이 전형적인 몰개성형 표준인간을 만들어 버려서 선진국에 비해 '더' 창조적이고 '더' 휼륭한 생각을 고안하는걸걸 방해하는 요인은 되겠지만, 이런 교육 방식이 적극적 '바보생산'의 원인은 아니라는 거다. +를 못해서 아쉽다는거지 - 를 적극적으로 양산하는 원인은 절대 아닌 듯..

내 생각에 아골라의 바보 유형으로 제시되는 인간들의 원인은 단지 주입식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조차도 소화를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스타일의 교육이든 그걸 잘 소화해 내고 그 교육 과정이 추구하는 최소한의 교육목표를 마스터한 사람은 절대로 벼엉신짓을 하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딱 '국민표준'이 되는거지.

일례로,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예를 들면 역 참 대우 p이면q이다 같은 것들.. 그런것들만 제대로 배우고 머리속에 박아도 배교주나 담당패밀리의 개소리에 속는 벼엉신이 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음을 알고, 그것을 비판하거나 가려듣는 능력은 꼭 토론식 수업이나 사람들이 좋아서 환장하는 핀란드식 선진교육이 아니라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p이면 q이다 q이면 r이다 p이면 r이다. 요런거..

아무튼 벼엉신이 양산되는 원인은 교육방식이 후진적이어서라기보다는 그 교육 자체를 소화할 능력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아무리 우리나라 교육이 핀란드 뺨치게 바뀌더라도 일정수의 사람은 결국에는 벼엉신 짓을 할것이다.

어쩌면 이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의 피해자가 아니라 가장 큰 수혜자들이다. 무슨 벼엉신 짓을 하든 주위 사람들이 '너 대가리탓이야~' 라고 말하기 보다는 니가 이렇게 된것은 '주입식 교육탓이야 ~' 라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결국 이 사람들은 자기 반성과 탐구를 게을리하며 시스템 탓으로 돌리며 계속 그렇게 산다. 내 관점이 상당히 편협하다는걸 나도 알고,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것은 분명하지만,, 시스템이 바뀌더라도 항상 일정 부류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은 변치 않는다. 암만 생각해봐도..


written by '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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