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에 눈을 어지럽히는 뉴스 2 - ‘똥대생’들의 합창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오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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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하게 좌충우돌할지언정 청춘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청춘들만이 가진 때묻지 않은 열정과 정의감 때문이리라.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람이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때가 청년기가 아니던가. 너무 어려서 철없이 저지르는 실수도 세파에 찌든 교활함도 없는, 과실로 보면 설익지도 너무 익어 상하지도 않은 그런 시기인 청년기는 진정 인생의 황금기라 하겠다.

누구에게나 그렇게 빛나는 인생의 황금기를 낭만과 자유와 정의를 향한 열정적 추억 하나 남겨보지 않고 소진한다면 그 또한 불행이다.

알바를 하든, 봉사활동을 해보든, 여행을 해보든, 사회 참여 활동을 해보든, 학업 외에도 젊기에 가능한 '인간 활동'의 경험들은 살다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참 소중한 삶의 자산으로 또는 좋은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세상말로 출세했다고 말하는 '사'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메마른 인성’은 어쩌면 청년기에 누렸어야 할 각종 인간활동의 빈곤에서 초래되는 결과로 미루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공부에 방해되니 집회를 중단해 달라"

위는 홍익대 총학생회가 내뱉은 말이라고 한다. 차라리 내 눈을 의심하고 싶었다. 전후 사정을 모르면야 지극히 학생다운 향학열이 느껴질 발언이다. 그런데 저간의 사정은 그런 게 아니다. 홍익대는 지난 2일 용역 계약을 해지한 청소 경비 노동자 170명을 대신해 대체인력을 투입했다. 그 때문에 계약 해지 노동자들의 항의 농성과 집회가 본관1층 사무처에서 열리고 있었고 홍대 총학생회가 이들을 방문한 자리에서 저런 발언을 행했단다. 청년 시절 대학 총학과는 남다른 인연을 지녔던 나로선 어안이 다 벙벙해지고 청소원 아주머니들을 '어머니'라 부르며 응석 부리고 너스레를 떨던 기억이 마치 저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겪었던 일처럼 새삼스럽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1010700024067840&linkid=33&newssetid=470&from=rank

지금 하는 얘기는 혹독한 정치적 암흑기를 살던 이전 세대 선배들이 추구했던 정치적 정의를 따라 배울 것을 권고하는 얘기가 아니다. 그 때와는 달리 취업이 곧 전쟁이 되어버린 각박한 사회 풍토를 따라잡기 위해 애쓰는 젊은 학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짐짓 모른 체 하며 공자왈맹자왈을 되뇌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변했어도 짐승과 인간을 구별해주는 변치 않는 진리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약육강식의 논리에 대한 저항은 정의라는 거다. 제 혈통과 상관도 없는 약자를 돌아보는 건 어떤 짐승도 흉내낼 수 없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성적이고 정의로운 행위다. 이런 정의는 인생의 청년기에 무엇보다 우선시하며 절차탁마(切磋啄磨)해야 할 지고의 가치관이 아닐까도 싶다. 적어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면에서 볼 때 홍대 총학의 저런 언동은 '빛나는' 청춘들답지 않게 다분히 이기적이고 정의롭지 못하며 비겁해 보이기까지 한다. 홍대 총학이 '청소원 아주머니들을 도우면, 기업들에 홍대생은 노조 친화적이라는 이미지가 생겨 취업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홍대생들의 일반적 우려를 대변하고 나선 것이라면 나느니 한숨이다.

허허 참, 내게도 학창시절의 씁쓸한 기억이 하나 있다. 당시 수배중이던 나는 총학생회장과 함께 경찰들의 학내 기습 수색을 피해 고시대비반실로 잠시 대피코자 했다. 근데 위 홍대생들처럼 공부에 방해된다 생각했음일까, 아니면 수배 학우를 숨겨준 데 따른 후과(?)가 두려웠음일까. 세상일과는 담 쌓고 오직 '고시'에만 매달렸던 그 곳의 학우들로부터 야멸치게 문전박대를 당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절반의 사람들은 남을 돌아보면서도 살지만 절반은 자신만을 보고 사는 건 변함이 없다는 '절반의 인간론'에나 의탁해야 이 안타까움이 억지로라도 덜어질 모양이다. 인간의 절반은 선하고 절반은 악하며 절반은 이타적이고 절반은 이기적이며 절반은 고운 사람이고 절반은 미운 사람이다. 홍대 총학은 그저 후자의 절반에 속할 뿐이며 홍대생 전부가 그런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총학 전부가 그런 것도 아닐 것임에 애써 자위해본다. 새해 벽두에 참으로 눈을 어지럽히는 뉴스다. 휴~~~

끝으로, 제 어미가 곧 청소원임을 알지 못하는 한 백날 공부해봤자 인간이 아닌 인간의 그림자로만 살게 될 것이란 걸 자각하길 바라면서 '똥대생'들에게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말로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공부한다는 교훈이 담긴 그림 하나 선사한다.

http://www.ajnews.co.kr/view.jsp?newsId=2011010100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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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관련기사 추가)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11011011332032624&newssetid=16

(*2010.01.11 관련기사 추가)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50&articleid=2011011105050061698&newssetid=1270

(*2010.01.11 관련기사 추가)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91&articleid=2011011118133930280&newssetid=1270




===東山高臥===

새해 벽두에 눈을 어지럽히는 뉴스 1 - '똥별'들의 합창





권력은 마약과도 같고 권위주의에 길들여지면 부모, 자식도 몰라보더라.

대북한 호전적 성향에 대한 우려와는 별도로 연평 사태 이후 새로 취임한 김관진 국방장관이 군 개혁의 일환으로 군 장성들이 타고 다니는 관용차의 성판을 떼기로 했던 모양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35&articleid=2011010700243299319&newssetid=1270

불필요하게 거드름이나 피워대는 권위주의적 요소를 척결하여 조직 상하 간의 위화감을 없애려는 개혁적 의도로 보인다.

그런데 이미 한물 간 예비역 똥별들이 또 납셨단다. 일부 인사들은 김관진 장관 집무실로까지 전화해 '성판은 장군의 상징이다. 아예 계급장도 떼지 그러느냐'라며 조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 당시에도 미군으로부터의 전작권 회수에 대해 극렬히 반발하고 나섰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호된 질책을 받은 바 있다. 군 시절 쬰심 꺾은 아부와 각종 권모술수로 어렵사리 딴 별, 온누리에 세세토록 누려보겠다는 건지 아무도 봐주지 않는 똥별이 되어서도 그 구린내를 도통 거둘 줄을 모른다.

이에 대해 한 영관급 장교는, "장군이 합리적인 지휘통솔로 존중을 받으면 되지, 성판을 붙이고 안 붙이고가 중요하냐"며 그들의 몰지각한 태도에 혀를 찼고 결국 군은 더러워서 피하는 심정으로, 성판은 허용하되 사복 착용시에는 성판 부착을 금지하는 세부 지침을 마련하는 걸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개혁, 참 쉬운 게 없다. 사회의 어떤 분야에서든 '합리적 개혁'이 제자리를 잡기가 이토록 어렵다. 기득권의 단맛에 이가 다 썩도록 길들여진 자들이 막대 사탕을 움켜쥔 아이처럼 징징대고 버티는 힘이 참으로 강고하다.

어느 날 갑자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일거에 개혁적이고 민주적인 인간상으로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사회 요소요소에 잠복해 있는 부조리한 폐단들을 걷어내는 개혁 작업은 개미가 개미굴을 파듯 다수의 노력으로 한 알 한 알 차곡차곡 쌓아가는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탁상형이 아니라 야전형이라는 김관진 국방장관이 임기 동안에 쉽진 않겠지만 북한에 대한 호전성만큼이나 강력한 태도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군 안팎 똥별들의 손에 들린 달달한 사탕 대신 입속 구린내를 닦아줄 칫솔을 쥐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고래 심줄만큼이나 끈끈한 조선인 특유의 선후배 문화에 눌려 슬며시 꽁지를 내빼는 졸장부가 되지는 말고!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증진하는 개혁 앞에서만큼은 '우리는 남이다'라는 자세로 계속 전진, 계속 개혁하는 일이야말로 강군건설의 초석임을 명심해주셨으면 한다.

끝으로, 징징대는 똥별들에게 신묘년 '씅질 급한 토끼가 먼저 듁습니다'라는 우리 속담을 덕담으로 건네면서 노래 한 곡 선사한다.


두 개의 작은 별 / 윤형주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이 물들은 밤 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까지 별이 지면 꿈도 지고
슬픔만 남아요 창가에 피는
별들의 미소 잊을 수가 없어요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이 물들은 밤 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까지

지난 겨울 눈 내리던 창가에 앉아서
단둘이 나눈 영원한 약속
잊을 수가 없어요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이 물들은
밤 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까지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빛이 물들은 밤 같이 까만 눈동자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까지






===東山高臥===

성질 급한 토끼가 먼저 죽는다





*그대 내 맘에 들어오면은 / 조덕배



정초부터 쌈박질 동영상을 올리려니 거시기 합니다만
영상을 보다가 스쳐지나는 메시지가 있길래 소개합니다.

우리 기억 속 토끼란, '겁 많고 온순한' 그러면서도 '꾀 많고 영리한' 동물입니다.
전자가 실제 이미지에 가깝다면 후자는 동화속 이미지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막상 토끼가 깡총깡총 뛰는 모습을 연상해 보노라면
위와 같은 긍정적 이미지들보다는 '경망스럽다'는 부정적 느낌도 듭니다.

각설하고, 소개한 동영상에서 이들이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위 영상에서 흰 옷을 입은 사람이 유독 눈에 띕니다.
토끼처럼 하얀 티셔츠의 사내는 정의의 수호자일 수도 있고
무리의 힘을 믿고 깝치는 악당일 수도 있습니다.

쌈 내막을 알 길 없는 관전자로서는,
여럿을 상대로 홀로 싸우는 사람을 로빈훗처럼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여기게 됩니다.
위 영상에선 홀로 싸우는 검은 티셔츠의 사내가 주인공'스럽고'
떼를 지어 달려드는 흰 셔츠의 사내와 그 무리들은 악당'스럽게' 보입니다.

흰 셔츠의 사내는
무리 중에서도 별스레 토끼처럼 깡총깡총 경망스럽게 깝치더라니
남들보다 몇 방이나 더 얻어 맞고서 급기야 공중부양 중에
우리의 주인공이 내지른 마지막 일격에 장렬히 전사(?)하고 맙니다.

올해는 토끼띠의 해, 신묘년(辛卯年)입니다.
토끼와 관련된 우리 속담 중에
'성질 급한 토끼가 먼저 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이든,
그저 길거리를 오가는 사람1, 사람2로 살아가든
영상에서처럼 경망스럽게 깝치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모두들,
매사에 분수를 알고,
씅질도 좀 죽이면서,
곱등곱등하게 신묘년 한 해를 잘 보냈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명심,

씅질 급한 토끼가 먼저 듁습니다.^^


===東山高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