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같아요'를 남발하지 말자

우리말 중에 <같다>라는 말이 있다. 그 사전적 뜻을 살펴보면, 형용사로서 <크기, 생김새 따위가 서로 다르지 않고 한 모양이다.>라는 뜻이다.

하마 같은 사람
촉새 같은 말투
백옥 같은 피부
마음씨가 비단 같다.
세월이 유수 같이 흐른다.
옛날 같으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내가 너 같은 줄 아니?
착한 사람 같아서 내가 참는다.

위에서 사용된 용례와 같이 <같다>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는 어떤 사물의 상태를 은유하거나 비유하기 위해 선행 명사에 종속되어 '형용하는 대상 명사를 수식하거나’(ex.백옥 같은 피부) 그 자체로 선행명사 뒤에서 술어로 사용되는(ex.마음씨가 비단 같다)'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우리들의 일상적 언어생활에서는 불완전명사 ‘거’ ‘것’에 동반하여 불확실한 일을 예측하거나 상태를 설명하거나 또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에 술어로서 과도하게 차용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남용 수준이다. 한국인의 실생활 대화중에 <~거 같다>라는 술어의 무차별적인 남용은 범국민적 말버릇으로 자리할 만큼 가히 우려할만한 수준이다. ‘<~거 같아요> 남용 방지 운동’이라도 주창하고 싶은 심정이다. ‘~거 같아요’라는 어휘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습관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는 방송 인터뷰나 대담을 유심히 살펴보라. ‘~거 같아요’란 말의 홍수 속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1.기분이 좋은 같아요.-->기분이 좋다.
2.오늘 날씨는 추운 거 같아요.-->오늘 날씨는 춥다.
3.냉면 국물이 무척 시원한 거 같아요.-->냉면 국물이 무척 시원하다.
4.방이 참 따뜻한 거 같아요.-->방이 참 따뜻하다.
5.당신은 매우 멋있는 거 같아요.-->당신은 매우 멋있다.
6.그는 내일 12시쯤에 올 거 같아요.-->그는 내일 12시쯤에 올 것이다.
7.오늘은 일찍 일어난 같아요.-->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8.숙제 때문에 머리가 터질 거 같아요.-->숙제 때문에 머리가 터지겠어요.
9.배고파 죽을 거 같아요.-->배고파 죽겠어요.
10.오줌을 쌀 것 같아요.-->오줌 싸겠어요.

위의 예문들에서 보듯 우리는 습관적으로 좌측의 표현들을 구사한다. 우측의 교정된 표현들이 훨씬 깔끔하고 명쾌한 표현임에도 굳이 ‘~거 같아요’로 마무리하는 언어습관은 고쳐져야 한다. ‘기분이 좋은 거 같다’는 말은 듣기에 참으로 어색하지 않은가. 기분이 좋으면 좋은 거지 ‘좋은 거 같다’는 무슨 뜻일까. 본인조차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서 그리 표현한다면 굳이 ‘좋은 거 같다’라고 표현하기보다는 ‘기분이 그저 그래요’라고 하면 어떨까. 근데 ‘기분이 좋은 거 같아요’라는 말이 사용된 대개의 경우들을 보면 누가 봐도 저 사람은 기분이 참 좋은 상태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그런 상황임에도 정작 당사자의 표현은 ‘기분이 좋은 거 같아요’라는 식으로 모호한 말투를 동원한다. 십중팔구는 딱히 무슨 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고 습관적으로 행해진 잘못된 말버릇이다.

위 인용된 예문들 모두 마찬가지의 경우라 하겠으나 1~5번까지의 예문과 6~10번까지의 예문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1~5번까지의 예문은 사물의 상태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형용사(좋은, 추운, 시원한, 따뜻한, 멋있는)를 수식하는 술어부로서 '~거 같아요'가 사용된 예이고 6~10번까지의 예문은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올, 일어난, 터질, 죽을, 쌀)를 수식하는 술어부로서 ‘~거 같아요’가 사용된 예다. 형용사를 뒤받치며 사용된 ‘~거 같아요’는 앞에서의 지적처럼 명백히 잘못된 용례임에 틀림없으나 동사를 뒤받치며 사용된 ‘~거 같아요’는 반드시 잘못된 사용법이라고 볼 순 없지만 이 역시 권장할만한 사용법은 아니다.

우리말의 체계가 서양의 언어에 비해 다소 복잡하고 우리말속엔 서양 사람들이 쉽게 파악하기 힘든 우리네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도 하다. 서양의 언어생활에서는 직설적 표현과 논리를 중시하는 것에 비해 유교적 예를 중시했던 우리네 언어생활에는 완곡한 표현과 격식을 중시했음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그렇듯 백 번 양보하여 우리식의 완곡한 표현이란 관점으로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한대도 ‘~거 같아요’라는 표현은 분명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전달하는 데서 모호하기 짝이 없는 무분별한 언사이고 그 사용이 무절제하다고 여겨진다. 불완전명사 ‘거’ ‘것’'같아요'를 종속시켜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현하는 ‘~거 같아요’라는 수사는 운명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때에 따라 불완전한 사물을 비유하거나 불확실한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경우라면 굳이 그 쓰임을 나무랄 순 없겠지만 시도 때도 없는 말버릇으로 사물이나 상태를 모호하게 표현하는 습관은 고쳐질 필요가 있다.

언어란 사람 간에 전쟁을 일으키는 독이 될 수도 있고 평화를 부르는 약이 될 수도 있기에 더욱 그렇다. 언어의 최고 목적은 누가 뭐래도 인간 상호간의 정확한 의사 소통에 있다.

===東山高臥===

챌린조이 세대가 곱다


2010밴쿠버 동계 올림픽 폐막을 며칠 앞둔 날, 현지에 차려진 모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메달리스트 세 선수를 인터뷰했다. 스피드 스케이팅 10000m 금메달리스트 이승훈,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금메달리스트 모태범,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금메달리스트 이상화였다. 스물 한 살의 동갑내기들이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 예상했던 일을 해냈다.

불가능의 꿈에 도전하고 마침내 그 꿈을 현실로 이뤄내는 순간에도 고난의 행군을 떠올리며 눈물짓기보다는 성취감을 만끽하며 환하게 웃는 그들을 일러 혹자는 ‘챌린조이 세대’라 일컫는다. ‘도전(challenge)을 즐기는(enjoy) 신세대’라는 의미다. 일이십년 전만 해도 올림픽이나 세계 대회에 출전하여 메달을 따내는 우리 젊은 선수들의 외모와 세레모니는 투박했다. 그들은 금메달이 결정된 순간에도 웃기보다는 울부짖다시피했다. 그들에게 올림픽 메달 경쟁은 원풀이가 아닌 한풀이와도 같아 보였다. 그처럼 빛바랜 기억을 간직한 나는 '학실히' 구세대인가 보다.

라면을 주식이 아닌 간식으로 즐기는 경제적 풍요의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챌린조이 세대를 보면 곱기도 참 곱다. 연예인 못지않을 고운 외모들로만 보면 쟤들이 운동선수일까 싶고 무슨 힘이 있을까도 싶은데 그들은 60억분의 1, 2, 또는 3이라는 챔피언의 자리에 올라앉아서 당당한 젊음을 만끽한다. '챌린조이 세대’를 작명한 혹자는 ‘스마트(SMART)하다’는 수식어까지 조어하며 그들을 연거푸 칭송하기를 마다지 않는다. 섹시하고(Sexy) 팔방미인이며(Multi-player) 적극적으로 도전하면서도(Aggressive) 지킬 것은 지키고(Respect) 뚜렷한 목표(Target)를 향해 나아간다. 거침없는 그들 앞에 장애물은 없으며, 즐기는 일을 하기 때문에 겁이 없고 당당하다. 성공하면 거리낌 없이 승리를 만끽하고, 실패해도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 때문이란다.

앞서 말한 방송 인터뷰에서 방송 진행자가 2010 밴쿠버 동계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500m 금메달리스트이자 1000m에서는 미국의 샤니 데이비스 선수보다 0.18초 모자란 기록으로 은메달리스트에 오른 모태범 선수에게 물었다.

“어땠었어요, 마음이? 0.18초차 진짜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요?”
0.18초 차이, 거리로 환산하면 1m 남짓 성인 한 걸음 정도의 차이란다. 그 정도 차이로 금과 은이 갈렸던 그 순간, 방송진행자의 물음은 누구나 가졌음직한 생각이고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마지막 스퍼트를 좀만 더 했으면’ 하는 생각은 분명 경기를 지켜본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가졌던 생각임에 틀림없다. 방송 진행자도 못내 아쉬웠던지 그 물음을 던졌던 모양이다. 근데 이 물음에 답하는 모태범 선수의 답변이 신통방통하기 짝이 없다. 마치 경지에 오른 도인처럼 초연하다.

“만약 마지막 스퍼트 순간에 욕심을 냈더라면 실수를 했을 거 같아요.”

한 순간 띵 했다. 난 속으로 모태범 선수가 ‘마지막 스퍼트에서 최선을 다해 좀 더 힘을 내지 못한 진한 아쉬움을 토해내리라’는 답을 벌써 내리고 있었다. 그랬다. 그는 더 이상의 힘을 내지 못할 만큼 이미 최선을 다해 온 힘을 마지막 스퍼트에 쏟아 부었고 만약 그가 욕심을 부렸더라면 빙판에 엎어졌을지도 모른다.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코너링 중에 넘어지던 성시백 선수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도 모태범 선수가 언급한 그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문에 현답이다. 방송 진행자 아니 모든 국민들의 물음은 우문이었고 모태범 선수는 사람이기에 가질 법한 일말의 아쉬움을 표한 것 말고는 욕심을 제어하면서 당당하고 또렷한 현답을 내 놓았다. 금메달과 은메달의 차이를 두고 계산 빠른 사람들의 속물근성을 질타하는 명쾌하고도 경쾌한 답이었다. 챌린조이 세대와 구세대를 가름하는 결정적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은연중 나의 구세대적 관성에 쩐 욕심이 부끄럽고 그 욕심의 경계를 알고 최선을 다한 젊은 모태범 선수가 참으로 대견하다. 기왕지사 경쟁사회를 살아가야 한다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할 줄 아는 정신이야말로 명랑사회, 건강사회를 떠받치는 올곧은 힘이다. 기성세대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대해서 빽이나 조건, 학연이나 지연 등의 외적 요인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강하다. 일시적이지 않고 모범이 될만한 좋은 결과를 얻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발전의 동력을 자신의 내부로부터 찾아내고 자신을 채직찔한다. 도전 목표를 세우고 자신만의 부단한 노력으로 성공을 일구어내기에 그 성공이 더욱 빛나는 사람들이다. 위 소개된 챌린조이 세대의 우리 선수들이 그렇다.

어찌 이쁘지 않으랴. 한 송이 꽃처럼 뽀얗고 해맑은 얼굴을 온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 우리의 챌린조이 영맨들은 짧지 않은 세월 스케이트화 속 발꿈치 구석구석 싯누런 굳은살을 그렇게도 덕지덕지 올렸나 보다. 도전하고 이루어내는 젊음이 아름답다. 무엇을 이루었든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하는 정신이 우왕ㅋ굳ㅋ이다. 모태범 선수, 이상화 선수, 이승훈 선수, 그리고 챌린조이 세대인 국가대표 선수 모두들 큰 수고들 했다. 맘껏 영광을 누리시라. 이규혁 선수에게도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http://netv.sbs.co.kr/sbox/sbox_index.jsp?uccid=10000492747&st=0&cooper=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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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Winner가 누리는 영광의 그늘에서 ‘프리타’로 자처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배부른 소리로만 전달되지 않고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싶다.(‘프리타’는 free와 arbeiter가 합쳐진 말로 고졸·대졸자중 학업을 계속하거나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편의점 계산대에서 일하거나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일 등 저임금 단순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부류의 젊은이들을 일컫는다.)


===東山高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