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와 안철수가 삐쳤다. 나도 삐쳤다 - 삐친 자들의 천태만상


어제 드디어 김지하가 박근혜 지지선언을 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쉰 목소리 게워내는 모습이 역겹다 못해 안쓰러웠다. 놀랍지도 않다. 우리들 기억 속의 ‘위대한 저항시인’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다.

최루탄에 범벅인 옷 탈탈 털며 막걸리 한 사발에 오적을 타서 마시던 시절 그는 대학가 후배들의 우상이었다. 그랬던 그가 출소 후 어느 날 독재에 저항하며 온 몸을 불사르던 후배들에게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일갈했다.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랍셨다. 남들 다 하는 독방 생활을 어떻게 했는지 선하디 선한 목자가 되어 돌아왔다. 많이도 다소곳해졌다. 어떻게든 오래오래 살고 싶었던 모양이다. 할 만큼 했고 쉬고 싶은데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깡통'들에게 역정이 났었을 수도.

더 이상 그에겐 전태일의 죽음이나 광주시민들의 죽음, 김세진 이재호 등 숱한 젊은이들의 죽음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지닐 수 없는 죄악일 뿐이었다. 오, 생명주의자시여, 평화주의자시여! 시인의 통 큰 아량은 죽이는 자는 용서했으되 어둠을 넘어 죽음에 이른 자들에겐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그 시절 투옥된 민주인사들 중에는 다년간의 독방안거 후 출옥하면 느닷없이 생명과 평화주의자로 변태(환골탈태?)한 인물들이 많았다. 희한한 일이었다. 박노해도 그랬다. 니미럴, 어디 징역이 간디를 복제하는 공장인가벼! 그랬으니 박정희나 전두환이 마구잡이 투옥을 인간교화의 만병통치약으로 써먹었을 만도 했겠다. 환골탈태한 그들을 향해 변절이라는 웅성거림이 인구에 회자되는 건 빤한 일. 인간이란 곧 죽어도 꽥 하는 존재라서 손가락질하면 더욱 몽니를 부리는 법이다. 한동안 박홍과 짬짜미로 잘도 놀았다, 김지하!

그런 그를 김대중 정부도 노무현 정부도 외면했었다. 그래서 삐쳐도 오지기 뻐쳤었나 보다. 그 때 오적 척살의 기개를 높이 받들어 사모라도 하나 올려 줬더라면 어제의 그 눈 뜨고는 못 볼 꼴을 보지 않을 수도 있었겠건만. 국민의 정부 때보다 참여정부 때 유독 삐친 인사들이 많았다.

참여정부에 참여한 당시 386 어린 늠의 색휘들이 권력을 전횡하며 감히 선배들을 내팽개친 것에 대한 삐침이었다. 유신에 저항했던 70년대 선배 민주화 세대들은 전두환 군부에 항거했던 듣보잡 80년대 후배들이 운 좋게 정권을 일궈낸 재간으로 버릇없고 방자하게 나대는 모습이 영 고까왔을 게다. 글터래도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드러내놓을 순 없었다. 속 좁은 소인배 같고 떡고물이나 기다리는 속물처럼 비치는 것도 무척이나 자존심 상할 터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선택한 게 은근한 몽니부리기였다. 삐친 늠들의 전형이다. 노무현은 386에 둘러싸인 비주류 운동권 출신의 협력자 정도로 평가절하 되었고, 민주화 세력 간에도 서자와 적자 타령은 은밀하게 행해졌다.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는 김근태의 어록은 그런 세력 간 알력을 잘 반영해주고 있다.

열린 우리당이 민주당에서 분화해 나올 때, 김대중 가신그룹 출신의 민주화 세대들과 일부 70년대 학번 세대들이 몽니를 부리면서 그 앙금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 후로 내내 소위 민주당내 ‘친노파’라고 지칭되는 전대협 출신 중심의 80년대학번 세력은 그들에겐 당내의 공적(公敵)으로 몰렸다. 좀 노골적으로 말하면, 참여정부 구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후배들의 전횡에 대한 선배들의 질투와 시기가 민주당내 당권투쟁의 본질이라 봐도 무방하지 싶다.

지역 간, 세대 간, 선후배 간의 민주당내 알력은 여전히 현존하는 문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선출 과정에서의 손학규의 모습, 안철수 후보 사퇴 후 문재인과 민주당을 향해 볼멘소리를 해대는 김영환의 모습도 다 내 눈엔 삐친 자들의 몽니부리기에 다름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장관을 지냈던 강금실이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문재인보다는 안철수의 입장에서 문재인을 비판한 것도 참여정부 때 문재인에 대한 섭섭함의 발로라는 분석도 있다. 사실이라면 그것도 결국은 당내 주류를 형성한 386에 삐친 여인의 몽니부리기다.

삐치기는 젊은사람보다는 늙은사람들이 잘 삐치고 남자사람보다는 여자사람들이 잘 삐친다.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제 성이나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 삐친다. 상대에게 원하는 게 있는 데 그게 원만하지 않을 때 삐치는 걸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다.

한 번 삐친 사람 달래기가 참 어렵다. 대 놓고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은연중에 뭔가를 요구하는 액션(몽니부리기)에 대처라는 일이란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늙은사람 김지하 , 뭘 챙겨 드릴까요? 여자사람 강금실, 무슨 자릴 원하세요? 선배투사 김영환, 뭐가 불만이라서 전쟁 중에 아군 등짝에 총질일까요?

문재인이 어렵게도 되었다. 안철수까지 삐쳤단다. 삐친 늠 제 때 달래놓지 않으면 몽니부리기로 들어간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김지하를 달래 놓지 않았더니 결국 어제 같은 꼴을 보게 된 거다. 노무현이 삐친 정몽준을 찾아 밤길 추위에 서성였던 장면일랑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치사하고 더러붜서 그렇다.

어렸을 적 동네 골목, 주머니에 사탕 몇 알 넣고 동무들 줄 세우며 거들먹거리던 삼성약국집 아들래미가 떠오른다. 안철수의 지지자들 중 80% 정도는 문재인 지지로 돌아섰다고 하고 20% 남짓은 여전히 삐친 상태로 조사되고 있다. 그 20%는 안철수가 삐칠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몽니도 부려볼 수 있는 힘이고 빽이다. 안철수가 그토록 목청 높여 인용하던 ‘국민’이 그들이다. 3자 대결 구도에서 안철수를 선택했던 안철수의 국민들 20% 중의 20% 정도면 그 수가 비록 크지 않다고는 하나 박빙의 선거 판세에서 문재인 후보든 박근혜 후보든 빨고 싶은 사탕임엔 분명하다.

유비가 삐친 방통을 중용하여 그의 자존심을 세워주니 방통은 마침내 유비에게 죽음으로 익주를 선사했다. 삐친 지식인들을 달래는 최고의 처방은 구겨진 자존심을 세워주는 일이다. 삐친 안철수가 정몽준처럼 유치한 몽니까지야 부리겠냐마는 그를 진즉에 달래놓지 않으면 대선이 아닌 대선 후가 더욱 걱정스럽다. 삐친 안철수의 몽니부리기가 대선 후에라도 도지는 건 막아두어야 한다.

이 나라에 중도당이 설 자리는 없다. 남북통일 전까지는 빨갱이당 아니면 파랭이당이 전부다. 선거 때마다 빨갱이 파랭이 줄 세워가며 이합집산하노라면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는 대선 후의 안철수 신당이란 것도 민주당이나 새누리당 만큼 구태스럽게 되는 건 시간문제다. 혼란만 야기한 채 먹튀할 게 불 보듯 빤한 일인데 애초에 그 싹을 틔우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멀리 보면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길이다.

그러기에 줘라. 안철수가 구겨졌다고 생각하는 자존심만큼 양껏 줘라. '통 큰 양보'가 진정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지분을 주든지 명예를 주든지 민주당 내에서 삐거덕거리는 게 좋다. 그가 대선 후의 결과와 상관없이 ‘새로운 정치’라는 이상주의자의 순진한 발상으로 정치 룸펜들의 집합소 같은 어정쩡한 신당놀음으로 정국을 혼란에 빠뜨리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안철수의 신당놀음으로 정가가 정치룸펜들의 놀이터가 되는 걸 보느니 새누리당의 집권을 한 번 더 견디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자고로, 삐친 늠들이 시끄럽다. 삐친 철새들 푸득대는 소리에 귀가 다 멍하다. 아무리 태생이 철새라지만 제발 앉을 자리 설 자리 구분만은 제대로 하고 살자. 선거가 무슨 빈 논에 철새들 짝짓기 놀이야?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 대해 김지하만큼이나 삐칠대로 삐친 나도 몽니나 한 번 부려볼까. 반값등록금이니 경제민주화니 다 일 없고 박근혜가 '보안관찰법 폐지'를 공약하면 나도 박근혜를 지지! 지지!! 지지!! 지지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