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없는 낙관이 나를 설레게 한다

낚시꾼의 맘이란 게 늘 그렇습니다. 출조 때마다 매번 정도 이상의 부푼 기대와 희망, 그리고 낙관으로 설레입니다. 저녁 무렵엔 비바람이 그칠 거야. 동틀 무렵엔 대물을 보게 될 거야. 담번에 대박 조황을 만나게 될 거야...

지난 주말에도 그랬습니다. 지난 주말, 기상청이 토욜 낮밤에 이어 일욜 아침까지 비바람을 예보하고 있었음에도 기상청 예보가 틀릴 수도 있을 거라는 근거없는 낙관이 기어이 우중출조를 감행케 합니다. 비바람이 불어도 토요일은 밤이 좋은 건 낚시꾼에게도 예외는 아닙니다. 

즐겨찾는 낚시터에 얼마전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수상좌대가 설치되었습니다. 깊은 곳 수심은 족히 7~8m는 나올 듯하고 계곡형 저수지이기에 물가운데 수심이 꽤 되는 곳입니다. 똬리를 틀고 앉은 곳은 부상형 수상좌대 끝지점 거의 저수지 한 가운데 쯤이었습니다. 연안 쪽에 설치된 좌대는 얼마 못가 물에 잠길 듯해서 부상형인 수상좌대로 자리를 잡은 겁니다.

지난 번 언젠가는 낚시터의 화장실에서 한 차례의 오싹한 소동을 겪었더랬는데 비바람 몰아치는 저수지 한 가운데엘 앉고 보니 낚시터 화장실보다 더욱 등골이 오싹합니다.

우중에 먼저 낚시 중이던 네댓의 환자들은 어둠이 내릴 즈음 도저히 멈출 기세가 없는 비바람을 원망하며 하나 둘씩 떠나갑니다. 먼저 잠든 낚시터 쥔장과 조우를 제외하곤  산중 저수지에 또 한 번 덩그러니 홀로 남았습니다. 저수지 한 가운데 작은 텐트 속에 거미처럼 웅크린채 몰아치는 비바람에 몸을 적셔갑니다. 미쳤습니다. 단단히 미쳤습니다. 자학인지 만용인지 맘만은 아직도 팔딱팔딱 청춘입니다.


*강지민 - 귀거래사






























위의 사진들은 화창했던 지지지난주 4월 첫째주말 낚시터 풍경입니다. 이토록 그림 같은 낚시터에 지난 주말 오후 낚시대를 부러뜨릴 듯 비가 내리칩니다. 1~200mm 정도 쏟아진 비랍니다. 하룻밤새 5~6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졌다던 제주도는 어땠을까요.









오후 5시 무렵입니다. 이 때만 해도 사람도 있고, 붕어도 있고, 풍경도 있고, 비바람도 그닥 드세지 않아서 운치 있는 저수지의 풍경였습니다. 비바람에 카메라를 꺼낼 겨를도 없어 손전화로 수상 한 가운데서 상류를 바라보면 우선 두 컷 찍어둔 사진입니다. 저 위 골짜기에서 쏟아내리는 흙탕 빗물이 밤새 저수지를 뒤집어 놓습니다.









밤 10시를 향해가는 시각입니다. 파란 써치 불빛에 반짝거리는 하얀 찌는 물귀신의 소복 같습니다. 주위엔 아무도 없습니다.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에 카메라 렌즈를 겨누기도 어렵습니다. 바람결에 텐트가 날아갈 새라 텐트를 떠나지도 못하고 텐트에 웅크려 잠깐의 휴식을 취해 봅니다. 세상에 이런 잠자리가 있을까요. 산중 저수지 비바람 몰아치는 저수지 한 가운데의 텐트 물침대! 그 와중에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요. 잠귀가 사나와 불현듯 선잠에서 깨어 텐트문을 열고 보니 크흑, 잠시 잠들었던 2시간 사이에 이거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난리가 났습니다. 토욜밤 자정을 갓 넘긴 시각입니다. 하마터면 저 놈들이 거치해 둔 낚시대를 부러뜨릴 뻔 했습니다. 계곡에서 겨우내 묵었던 낙엽과 마른 가지, 짚들이 낚시대를 밀어부치고 있었던 겁니다. 황급히 채비들을 회수하고서 불청객들의 면면을 찍어둡니다.






일욜 오전 10시경입니다. 낚시터 쥔장이 물길을 수리하고서 모습을 드러낸 연안좌대는 온통 뻘물로 뒤덮였습니다. 수상좌대 오른 편 물에서 걷어낸 잔가지 덤불이 수북합니다. 저 곳이 내 머물던 곳입니다. 간 밤의 광란이 벌써 아련한 옛기억처럼 저장됩니다. 






밤 좋은 토욜을 망치고 맘 급해진 꾼들이 일욜 오전 하나 둘 씩 황톳물에도 대를 담기 시작합니다. 아마 붕어 대신 잔가지 월척 손맛을 많이 보게 될 겁니다. 촬영하는 중에도 장어 같은 가지를 낚아내더군요.ㅎ~


















뉘 집인지 밤새 물에 잠겼다가 폐허가 되었습니다. 유실되지 않은 게 다행입니다. 낚시터의 아파트로 통하는 튼실한 메이커의 텐트인데도 밤새 몰골이 많이도 망가졌습니다.












그렇게 토요일은 밤이 좋아라며 떠난 지난 주말, 비바람에도 애드벌룬처럼 빵빵하던 기대와 희망은 멈추지 않는 비바람 뻘물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붕어 1마리라도 만난 것에 자족하며 근거없는 낙관은 벌써 다음을 기약합니다. 이름 모를 풀이 잘 가시라는 듯 살랑입니다. 

'일그러진 영웅' 문대성 누가 일그러뜨렸나


옳거니, 내 말이! 글 좋다. 장문이어도 글의 행간 리듬이 경쾌해서 읽기에 좋고 전달하려는 메세지도 굿이다. 링크만 걸려다 글쓴이의 수고가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맘으로 통째로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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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수많은 체육계 박사들 도매금 매도당하게 만들어 전도유망한 청년들 정치판에 끌어들여 망가뜨리지 말자 

작성인 : 신성대 (출판인) 
작성일 : 2012.04.24 11:29:17

  
꽃의 미덕(美德)은 말이 없는 미소, 소리 없는 웃음이리라. 인간들의 시끄러운 저질 막말이 듣기 싫었던지 이번에는 꽃조차도 선거가 끝난 뒤 찾아왔다. 허나 수신(修身) 제가(齊家)하지 못한 두 당선자만 늦게 찾아온 꽃들과 함께 웃지를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하겠다. 그 두 사람에겐 일생을 두고도 가장 잔인한 봄이 될 것이다.

한국인들의 권력욕과 감투욕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 욕심이 지나치다보니 그 반대의 경우도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는 민족 아닌가? 벼슬 못한 조선 유학자들의 시샘과 적개심이 어디 갔겠는가? 자신이 가지고 싶지만 가지지 못한 것을 자기보다 못한 놈이 운 좋게 혹은 잔꾀 부려 차지하게 되면 도무지 그 꼴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효제충신(孝悌忠信) 예의염치(禮義廉恥)?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든 단어가 바로 ‘부끄러움’이고 가장 흔한 단어가 ‘뻔뻔함’이 아닌가 싶다. 지난 세기 동안 식민지배, 동족상쟁, 독재정권, 고도성장을 거치면서 때로는 구차스럽게 살아와서 그런지 낯가죽이 많이 두꺼워졌다. 다들 저 잘난 맛에 살고, 저 잘나지 못해 안달을 하는 세상이다. 목적과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용감무지함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성장만큼 건강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부끄러운 짓을 부끄럽지 않게 해치우는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종교를 빙자해서, 혹은 자선 사업을 한다며 ‘도가니’짓으로 돈 버는 일이 아예 유망 직종으로 자리 잡았다. 신성한 종교조차도 야바위 상품 되기 일쑤다. 성추행한 동료를 위해 탄원서를 꾸미는 교사들. 검사에게 자기 마누라 흠담하는 인사를 기소해달라고 청탁한 판사. 그 검사는 양심선언하고 사표 냈지만 그 판사는 아직 건재하다. 명색이 교육감이 실형을 선고받고도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론 이 땅에서 염치를 모르기는 정치인들이 단연 으뜸이다. 똥색도 동색(同色)이라고 “내가 몸통이다”고 우기며 변명을 거드는 주변머리 정치인 등등. 예나 지금이나 왕은 무치(無恥)이고, 권(權)자를 잡으려면 먼저 무치가 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남이 하니 따라서 했다” “나도 모르게 마누라가 한 일이다” “오래된 관행이다” “기억나지 않는다” 등등 구차한 변명쯤은 부끄럽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사회가 된지 오래다. ‘뻔뻔함’이 도처에서 묻어나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던지, 이제는 막말까지 출세의 도구로 각광받고 있다.

막힌 하수구마냥 저급한 막말이 넘쳐난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고,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라다 보니 이젠 아예 겨 묻은 개, 똥 묻은 개가 구분조차 안 된다. 옛말에 ‘예(禮)가 있는 자 서로 위하다 죽고, 예(禮)가 없는 자도 역시 서로 위하다 죽는다’고 했다. 도처에 마주보며 눈알 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시원한 뒤후려차기 하나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태권도인 문대성이 그 후 모교 교수가 되고, 젊디젊은 나이에 IOC위원에까지 올랐다. 그것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내친 김에 국희의원까지 하겠다고 나섰다가 박사논문 표절로 망신을 당하고 있다. 교수직 사퇴, 새누리당 탈당에 이어 IOC위원직까지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IOC 위원인 슈미트 팔 전 헝가리 대통령도 박사학위 논문이 표절로 확인되어 학위를 취소당했다. 지난번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했다가 귀국하자마자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산이 가파르면 무너지기 쉽고, 연못이 차면 넘치기 쉽다”고 했다. 사람이 한 번 망가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법, 거짓을 거짓으로 인정하지 않고 우겨대려니 계속 악수를 두고 있다. 체육인, 그것도 무도체육인으로서의 기개와 단호함은 찾아 볼 수 없고, 서른여섯의 나이가 무색하다 못해 문밖의 엄마를 쳐다보며 떼를 쓰는 그저 홑 여섯 살짜리 어릿광대 모습만 연출하고 있다.

박사학위논문을 심사하고 학위를 준 국민대학도 알아줘야겠고, 그 모교 동아대학도 우습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태권도 영웅이라며 간판으로 내세운 태권도계, 대한민국 스포츠계 모두의 망신이다. 그러면 그렇지 운동만 한 선수가 무슨 놈의 박사? 논문 작성은 고사하고 읽을 줄이나 알까? 베끼는 것조차도 자신이 직접 했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많은 체육계 박사들이 도매금으로 평가절하 되고 무시당하게 생겼다.

금메달리스트에 대한 무조건적 배려, 유일한 국산 종목에 대한 무제한적 애정이 낳은 오만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이게 어디 스포츠계만의 일이던가. 학연, 지연, 혈연, 종교연, 업종연 등등 한국인의 고질병인 맹목성과 편협성에서 나온 것이리라. 아무튼 목에는 금메달, 가슴에는 금배지를 단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역겨운 아이러니다.

옛글에 “거짓에 힘쓰면 길게 갈 수 없고, 헛된 것을 좋아하면 오래갈 수 없다”고 하였다. 문덕(文德)이자 무덕(武德)이다. 그게 스포츠맨십이다. 스포츠의 가장 큰 사회적 책임은 공정한 경쟁을 통한 건강성 함양일 것이다. 그저‘정신없이' 스포츠를 출세의 수단으로 배우고 가르쳐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 하겠다.

‘문대성법’을 만들어야

짝퉁 영웅만들기로 이토록 망신을 당하고도 학습하는 것이 없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는가? 표절문제가 이 나라에선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고 그 끝도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기억상실. 그나마 정치 입문, 총장 경선, 청문회 과정에서만 불거진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철없는 항변을 그저 치졸하다고 무시하고 한 귀로 흘러 넘기기엔 너무 거북하다. 왜 아니 그렇겠나!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표절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학문을 핑계로, 출판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저작권 보호도 못 받는 논문, 청춘과 돈을 들여 고생스럽게 논문 발표하고도 다 늙도록 시간강사로 전전하는 판에 누구는 놀고먹다가 표절하거나 요령껏 베껴먹기로 학위 얻어 교수 자리 차지하고 출세도 하니 그 아니 얄밉겠는가? 논문대필이 전문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 이제 곧 논문파라치가 유망업종으로 떠오르게 생겼으니 세상에 이런 나라가 또 있다던가?

더 이상 상아탑의 양심에 맡기기엔 표절로 인한 사회적 에너지 낭비가 너무 크다. 제발이지 이번에는 대안(정책)이 나와야 한다. 문제가 된 논문과 그로 인한 학위 취소를 해당 학교에 강요하고, 본인에겐 그 학위를 밑천삼아 얻어낸 온갖 자격과 혜택을 취소시킬 것은 물론 사회의 공정한 룰을 어지럽힌 죄를 형법으로 물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 논문 지도교수의 교수자격을 박탈시키고, 심사에 참여한 교수들에게도 그에 대한 응분의 제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 교수들의 논문부터 검증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힘들게 논문을 쓴 제대로 된 학자라면 결코 그렇게 가볍게 심사하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기업신용평가기구, 과거사규명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미술품감정위원회 등이 있다. 공공단체든 민간단체든 이참에 ‘석박사논문표절조사위원회’를 만들어 그동안 발표된 대한민국 모든 석박사학위 논문에 대한 검증작업을 해야 한다. 표절 심사는 물론 더하여 함량미달 논문도 걸러내고 등급까지 매기는 기능도 했으면 한다. 표절 사실을 알면서도 쉬쉬 하는 것은 학자의 양심이 아니다. 소비자고발센터처럼 당장 논문표절고발센터라도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결과를 대학종합평가에 반영시키는 것은 물론 심할 경우 해당 대학원과정의 폐쇄까지도 강제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순 없다. 당장 문대성이 지적했듯, 역시 의혹이 불거진 정세균과 강기윤 당선자 역시 서둘러 검증해야 한다. 본인이 표절 아니라고 해서 아닌 것이 아니다. 이젠 경희대와 중앙대가 대답할 차례다. 표절이 아니라면 앞으로 누구든 그런 식으로 논문을 써도 학위를 줘야 한다. 어쩜 박사지망생들이 대거 그 대학교로 몰려들지도 모른다. 문대성이 억울해 하게도 생겼다. 그런 요령을 미처 몰랐으니 말이다. 또 정우택 당선자와 같이 해외 대학의 학위논문도 표절 의혹을 털어내야 한다. 표절대한민국! 이미 국제적으로 정평이 났으니 망설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문대성, 아직 사퇴할 때가 아니다?

호랑이는 죽어서도 가죽을 남긴다지만, 실은 그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사 해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털갈이를 마친 적당한 시기에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해 가죽이 벗겨져야 가능한 일이다. 비록 영웅의 끝이 추하지만 이왕지사 철저히 망가져 주길 바란다.

정말 하루를 해도 65세 이후 국회의원 평생연금이 나올까? 그렇다면 탈당이든 사퇴든 아무리 망신스럽더라도 5월 30일(개원일)까지는 버텨야 하지 않는가? 아무튼 그렇게 해서라도 연금을 받기를 바란다. 그래야 열 받은 국민들이 의원연금 폐지운동을 벌일 것 아닌가? 이왕 버릴 사석(捨石)이라면 그렇게라도 이용해야 그동안 헛짓에 대한 반면교사 내지는 보상이라도 되지 않겠나?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 허나 어쩌랴! 천지불인(天地不仁)하듯 정치 또한 불인(不仁)한 것을! 모두가 탐내는 권력이라지만, 누구에겐 약도 되고 누구에겐 독이 됨을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남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잘못부터 인정하고 진즉에 물러났어야 했다. 어쩌다 발차기 한 방이 가져다 준 행운으로 그동안 분수를 넘는 영광을 누렸다. 아무쪼록 평생 누릴 복을 한꺼번에 다 누렸다고 생각하고 무도체육인답게 툭툭 털고 원래 가던 자기 길을 가길 바란다.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정당을 믿으라!

언제였던가? 정말 미더운 정치인에게 기분 좋게 한 표 찍어준 적이? 이 나라에서 한 번이라도 정치를 잘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인이나 정당이 있었던가? 언제나 분수를 모르고 설치다가 제 풀에 엎어지는 바람에 상대에게 갖다 바치지 않았던가? 하여 당장 덜 미운 놈 찍은 기억밖에 더 있는가? 더 한심한 일은 그런 일이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거다.

과반 의석? 전쟁에서 군사들의 숫자만 많다고 이긴다던가? 모택동의 공산당이 군사가 많아서 장개석의 국민당을 몰아내었나? 누가 대의명분과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법이다. 당명 바꾸고 인물 몇 명 바꿨다고 헌나라당이 새누리당 된다던가? 대선까지 아직 8개월 남았다. 이 역동적인 나라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 세상이 뒤집어놓을지 누가 알겠는가? 누더기 걸레 되는 건 순식간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사람 어디 있는가 하는 세상에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는 고리타분한 격언을 고집할 만큼 까칠하게 살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먼지 뒤집어 쓴 채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날마다 집안 먼지를 털어내야 하고, 밭의 잡초는 끊임없이 뽑아내야 한다. 소 잃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무능한 정당, 사후약방문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지도자에게 다음 일을 믿고 맡길 수 있겠는가?

도마뱀 꼬리 자르듯 수신제가 못한 두 당선자의 탈당으로 새누리당의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원상태로 돌려놔야 한다. 제명이 아니라, 의원 취임하기 전에 당선무효를 시키든, 아니면 스스로 당선을 취소하게 해서 이번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다. 가혹한 것 같지만 그게 다 공정사회를 위한 일이다.

그들이 금배지 달고 돌아다니는 꼴을 국민들더러 계속 두고 보게 하지 말란 말이다. 그들이 국민 세금으로 만든 종신연금 타 먹는 꼴을 보게 하지 말란 말이다. 더 이상 국민들더러 쓰레기 치우게 하지 말란 말이다. 어디 그들뿐이랴? 언제부터 이 나라 국회의원이 국가유공자고 보훈대상자였더냐? 왜 국민 세금으로 종신연금 챙기는가? 정히 필요하면 자신들의 월급을 떼 내어 공제회든 상조회든 만들란 말이다.

젊은이들을 정치노름에 끌어들이지 마라

비록 본인의 탓이긴 하지만, 어쨌든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섣불리 정치판에 발을 들여놓았다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이 망가져버렸다. 정치계는 더 이상 병든 청춘을 위로한답시고, 멘토해준답시고, 꿈을 키워준답시고 젊은이들을 불러 모아 홍위병, 표벌이, 앵벌이로 부리는 짓 그만하라. 제발이지 청춘들 스스로 꿈꾸게 내버려 두라. 이용하려 들지 말고, 가르치려 들지 말고, 정치인들 스스로 모범을 보이란 말이다.

새누리당 비대위원 이준석은 이제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그 나이에 올인 할 만큼 한국 정치가 성숙하지 않고, 본인의 수신(修身)도 아직 많이 부족해 보인다. 천리마 엉덩이에 붙어 쇠파리도 천리를 달릴 수 있다지만, 배우는 것과 물드는 것은 다르다. 정치가 원칙과 패기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 이제부터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여의도란 그런 곳이다. 스스로 큰 길을 찾아야 한다. 지난번 안철수도 빌 게이츠 만나 식사 한 번 못하고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왜 그랬을까? 보다 넓은 세상에 나가 배우고 꿈을 키우길 바란다.

노름이든 스포츠든 가장 짜증나는 일은 중간에 다투어 경기를 중단시키거나 결과가 억울하다며 억지 부리는 일일 것이다. 젊은 패기와 두둑한 밑천으로 노름판에 뛰어들었다가 한 방에 다 날린 문대성 선수가 개평이라도 챙기겠다며 버티는 모습에 뒤늦게 찾아온 봄꽃들이 민망스러워하는 것만 같다. 허나 그도 잠시, 봄비 한 번 내리자, 발걸음도 고개도 이미 가을로 돌려버렸다. 외양간은 누가 고치노?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