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위험한 도박 / 독대는 없었고 음모만 있었다

그간 ‘독대’에 대한 나의 사전적 이해가 오해였었나 보다.
 
*독대(獨對)[명사] :
1.(역사)벼슬아치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
2.어떤 일을 의논하려고 단둘이 만나는 일. 주로 윗사람과의 만남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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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이 기십 년만의 혹한에 수도관이라도 터질 새라 전전긍긍하던 며칠 사이 여의도 정가에선 생뚱맞은 궁뎅이 자랑질이 한창이었다. 총선을 머금은 병신년인 만치 아니나 다를까 새해는 벽두부터 요란했다. 탈당과 창당, 몽니와 텃새, 영입과 퇴출, 중앙과 지방의 정가에선 온갖 꾼들의 재주넘기가 시전되었다. 정가의 어르신들을 알현하고 눈도장 찍기는 기본, 죽은 자의 상석에도 산 자의 문지방에도 먼지가 일었다. 산 자의 한 축인 이희호 여사도 표심 사냥꾼들의 타깃이 되는 건 당연지사일 터 일말의 사단은 바로 그 희호 여사와의 만남에서 터졌다. 호남의 민심을 다투는 자리에서 고작 8분 머문 문재인의 궁뎅이는 토끼궁뎅이요, ‘독대’ 포함 25분씩이나 머물렀다는 안철수의 궁뎅이는 하마궁뎅이라는 자랑질로 한껏 기세를 올리던 ‘안팀’(얘들은 걍 ‘팀’ 수준으로 호칭하는 게 제격이다)이었다. 아뿔싸 근데 오늘, 궁뎅이 자랑질로 튀긴 침이 채 땅에 닿기도 전 안의원의 대가리가 먼저 땅에 닿는 개쪽팔림이 있었다. 굳이 쪽팔림의 농도를 따져보자면, 사실 이거슨 전 제주지검장 김수창의 일탈에 못잖은 쪽팔림일 게다. 에고, 에고, 철수야! 영희는 쪽 팔려서 우찌 살라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421&aid=0001860013(안철수, '낙상' 이희호 여사 문병…녹취록 공개 사과)

 


*사기(詐欺)[명사] : 나쁜 꾀로 남을 속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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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독대는 없었고 음모만 있었다. 철수와 안팀의 행위는 나쁜 꾀로 남을 기망한 사기였다. 불가피한 몇 경우를 제외하고 동의 없이 상대방의 입을 녹취하는 행위는 뒤 구린 자들이나 저지르는 음습한 행위다. 법으로도 금하는 범법행위다. 더욱 개탄스러운 건 그들이 위법적 무단녹취에만 머물지 않고 상대방의 선의를 왜곡하고 악용하는 것도 모자라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세간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근데 이를 어쩔까. 떠억 하니 자랑스레 공개한 녹취록의 내용을 보니 이보다 더한 자살골이 있었나 싶다. 녹취록의 언론 공개는 안팀이 제 얼굴에 침 아닌 가래를 뱉고만 꼴이 되었다. ‘철수와 안팀’은 국어공부도 바른생활 공부도 초딩용부터 다시 해야겠더라. 초등용 바른생활만 제대로 공부했더라도 무단녹취와 같은 음모와 사기는 없었을 테고, 초등용 국어의 기본 독해만 익혔어도 녹취록의 내용 어디에도 아전인수식 해석이 기어들만한 대목이 없단 걸 알았겠다. 내 보기엔 녹취록에 등장한 희호 여사의 어투는 참으로 무미건조하고 상투적이었으며 개인적 해석을 덧붙이자면 철수를 조롱하고 있을 정도였는데도 말이다(철수가 ‘꼭’ 하겠다니까 희호 여사가 ‘꼭’ 하랬다ㅎ~). 하긴 눈에 콩깍지가 씌면 에일리언도 내 새낄 배는 법! 얼마나 호남의 표심이 간절했으면 뚝방에 빨대 꽂고 내 논에 물 대어 보겠노라는 그토록 무모한 도전을 감행했을까. 애처롭기가 그지없다. 이번에 철수와 안팀은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을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모둠세트로 제대로 보여줬다. 하긴 원래부터 소인배가 소인배답게 행했으니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만 문제는 그 소인배가 주제 넘게 대인의 영역인 대통의 자리를 탐하고 있으니 배알이 뒤틀려 이처럼 입이라도 털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 날짜 안팀의 해명을 보니 예의 그 ‘독대’ 자리에는 꽤 여럿이 있었던 모양이더라. 정형돈이 광고에서 그랬지. “짜장 아닌데 짜왕인데!!”라고. 그러네, “독대(獨對) 아닌데 다대(多對)인데!!” 근데도 무씬 독대를 20분씩이나 했네 어쩝네 그렇게 쌩구라를 까댔던 겨? 이 쪽 비서, 저 쪽 비서, 이 여사1, 이 여사2, 머여? 단상에 이렇게 수두룩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만 분초까지 비교하며 그토록 독대 자랑질을 해대더니 차라리 독대 말고 독도 자랑이라도 했으면 애국자 소리나 듣지. 암튼 여럿이서 참 바빴겠다. 녹취하는 넘 따로, 대변하는 이 여사2 따로, 유도 심문하는 넘 따로, 새정치 설레발 들어 줄랴, 유도심문 피할랴, 앉았기도 힘들었을 노구의 여사가 참 많이도 힘들었겠다. 양반 동네에선 저딴 식으로 어르신 불편케 하는 넘을 일러 호로색뀌라 한다.
 
기승전결 없는 잡설이니 문맥에서 벗어난 또 다른 얘기 하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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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매체가 이날 공개한 녹취록에 의하면 안 의원이 "꼭 건강하셔서...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꼭 정권교체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정권교체가 되도록 밀알이 되겠다는 마음입니다"라고 말하자, 이 여사가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덕담을 한 게 전부였습니다.(위 링크 기사 발췌)
 
위 기사 발췌문에서 밑줄 친 안철수의 발언을 보면 딱 두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니 엄밀히 나누면 불완전 문장을 포함해서 세 문장이다. 이 짧은 두 줄짜리 세 문장 단문에 ‘꼭’이라는 단어가 세 번씩이나 등장한다. 항간에 박근혜 번역기가 한창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다. 도저히 알아 묵을 도리가 없는 박근혜의 구어체 문장을 끼 많은 네티즌들이 정상적인 문장으로 번역하여 돌려보는 유희의 산물이었다. 박근혜 못지않은 안철수의 유아적 어투를 보면서 안철수의 측근 중에 조만간 제2의 전여옥이 나타남직하고 안철수 번역기의 탄생 또한 보게 되지 싶다.
 
‘꼭’, ‘꼬옥’, ‘꼬오옥’......원래 기꾼이들이 과장이 심한 법이다(내 글도 과장이 많은 편인데 나 역시 기꾼이과에 해당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안다^^.). 한 때 난 블로그에서 나홀로 ‘굉장교도’ 놀이를 했던 적이 있었다.

박근혜의 말에서 유독 자주 눈에 띄는 형용 수사가 ‘굉장히’였다. 그에 천착하여 정치인들 중 또는 유명인들의 어록에서 누가 누가 ‘굉장히’라는 단어를 '굉장히' 많이 사용하는지를 찾아내는 놀이였다. 프리메이슨이 주고받는 그 무슨 ‘굉장한’ 비밀암호라도 발견한 양 '굉장히'를 남발하는 이들은 모두 박근혜와 교감하는 굉장교도로 낙인찍는 아무런 의미 없는 혼자만의 장난이었다. 문재인도 유시민도 모두 걸려 들었더라. 하기사 일상 언어생활에서 ‘굉장히’를 사용치 않는 한국인이 과연 몇이나 될까마는 적어도 난 박근혜의 언어습관에서 '굉장히'란 단어가 적잖이 남발되고 있다는 걸 포착한 이후로 ‘굉장히’란 단어를 굉장히^^ 피하게 되었다. 마누라 미우면 처가 화장실도 꼴 뵈기 싫은 것처럼ㅎ~. 마찬가지 연유로 이젠 ‘꼭’이란 단어도 기피 대상 제2호 어휘로 ‘꼭’ 등재해얄까 보다. 사실 ‘꼭’이나 ‘굉장히’와 같은 수사는 긍정적으로 봐주면 굳센 의지를 드러낼 때 사용하는 단순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왜곡과 과장, 허세와 같은 부정적인 뉘앙스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매사를 삐뚜룸하게 재해석하는 내겐 후자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그래, ‘굉장히’와 ‘꼭’은 기꾼이들이 애용하는 수사라고!!
 
대개 사람들은 ‘말 못하는 기꾼이는 없다’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뒤집어보면 ‘말을 잘하면 기꾼이’이라는 생각도 통한다. 논리학에서 말하는 필요충분조건과 전제와 범주의 개념까지 동원하여 반박할 필요는 없고 편하게 넘어가자. 말을 잘 하면 기꾼이라는 생각을 추인하고 보니 어라, 노무현도 유시민도 이정희도 김제동도 유승민도 전원책도 선전선동의 달인들인 왕년의 빨갱이들도 천국과 극락을 입만으로도 뚝딱 지어내는 교회의 목사도 절간의 스님들도 모두 모두 기꾼이였네.ㅎ~
 
근데 현실은 기꾼이라고 모두가 말 잘하는 것도 아니다. 기꾼이들 중에도 말없이 내밀하게 음습하게 사기치는 늠들도 많다. 이번에 자행된 안팀의 음습한 녹취 행위를 보라! 그래도 말 잘하는 기꾼이들이 차라리 덜 위협적이다. 말이 많아서 그렇지 적어도 가려운 곳은 긁어주는 소통은 되니까. 원래 짖는 개가 물지 않고 목소리만 큰 양아치가 허당인 경우가 많다. 정말 무서운 개와 양아치는 소리 없이 음습하게 다가와서 물거나 푸욱 찔러버린다. 그런 게 진짜 무서운 거다.
 
위에서 소개된 말 잘하는 꾼들이란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하고 즐겨하는 사람들이다. 소통을 위해 발휘되는 달변이야 어쨌든 보기엔 좋다. 나중에 당할 때 당하더라도 소통의 순간 만큼은 속이라도 시원하다. 이들에 비하면 박근혜와 안철수는 소통과는 정반대의 영역에 있는 말 없는 꾼들이다. 말이 없거나 말 못하는 꾼들! 속내를 알 수 없는 꾼들! 상대와의 교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꾼들!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사고체계로 천하제일을 꿈꾸는 꾼들! 나르시스적 자기애에 도취된 꾼들!을 경계하라. 
 
참으로 참아내기 힘든 건 존경을 표할만한 그 어떤 학식도 품성도 처세도 없건만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그들이 왕자인 양 공주인 양 대중들 위에 군림하려 드는 모습이다. 대중들이 얼마나 우숩게 보였으면! 새해벽두부터 나는 안팀의 사기 행위가 ‘굉장히’ 불쾌하고 다가오는 총선에서는 ‘꼭’ 철수교체, 아니 철수아웃이 있기를 소망한다. 말 없는 기꾼이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학습이 되었을 대중들을 '꼬옥' 믿어본다. 백 번을 곱씹어도, 삼십 년 전에도, 삼 년 전에도, 삼 일 전에도 철수는 아니다. 정말 아니다. 굉장히 아니다. (2016.1.2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