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경쟁으로 내몰린 KAIST학생들...의사의 칼과 강도의 칼


KAIST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소식이 예사롭지가 않다. 어쩌다 한 번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지만 올 들어 벌써 네 명 째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건 무슨 공포특급도 아니고 KAIST 캠퍼스에 죽음을 부르는 혼령이라도 있단 말인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에 어찌 단 한 가지의 이유만 있을까마는 지금으로선 ‘등록금 차등제’가 학생들의 연이은 죽음을 부르는 혼령으로 지목되고 있다.





등록금 차등제는 서남표 현 카이스트 총장이 부임하면서 도입한 제도다. 서남표 총장은 2007년 7월 13일 취임 1주년을 앞두고 “KAIST를 세계적인 이공계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내부개혁과 외부지원이었다”이라며 “앞으로는 그동안 마련한 내부개혁안을 실행에 옮기고 외부지원을 더욱 확대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나아가 서 총장은 “한국이 세계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이를 위해서는 KAIST가 세계 유수의 대학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며 “필요한 내부개혁을 중단 없이 진행하고 있는 만큼 이제 집중과 선택의 원칙에 입각한 외부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 총장이 밝힌 내부개혁의 주된 사업이란 새로운 영년직 교수제(New Tenure System)와 특훈 교수(Distinguished Professor) 제도, 100% 영어강의제도, 인성 중심의 신입생 선발제, 학과장 중심제 등과 같은 것이었고 학점별 등록금 차등제 역시 대표적 개혁 정책 중의 하나였다. 국내 대학에서는 볼 수 없었던 서 총장의 개혁안들은 당시로선 타성에 젖어 있던 국내 대학들에 경종이라도 울리듯 신선하게 여겨졌으나 카이스트 교수들이나 학생들에겐 뭔지 모를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켰다. 어쨌거나 외적 강제에 의한 면학 분위기는 조성된 셈이었다. 그렇게 내부 개혁안들을 실행에 옮겨온 지 4년여, 야심차고 강단 있게 추구해온 개혁의 이면에서 농익던 고름이 결국 터져버렸다.

이미 지난 1월 전문계고 출신의 ‘로봇 영재’ 1학년 학부생이 영어수업 진행에 따른 학업부담 등의 원인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바 있듯 서 총장이 내건 각종 개혁안들의 부작용은 사례별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영년 교수 임용에서 탈락되거나 카이스트에서 퇴출된 교수들 중 누군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서 총장이 추진해온 개혁안들 모두에서 학생, 교수 가릴 것 없이 사안별로 자살 샘플이 완결될 판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110410214100782h2&newssetid=1331(*2011.04.10 링크 추가)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11041103281587702&newssetid=1331(*2011.04.11 링크 추가)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10411041124232h2&linkid=33&newssetid=470&from=rank(*2011.04.11 링크 추가)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1041201211750102&linkid=4&newssetid=1352&from=rank(*2011.04.12 링크 추가)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110412101647321j3&newssetid=16(*2011.04.12 링크 추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는 것도 어리석다지만 카이스트의 상황은 구더기 무서운 게 아니라 장독에 구멍이 뚫린 수준이다. 서울대 조국 교수는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 서남표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 교수는 8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에 "KAIST 학생이 네 명 자살한 후에야 서 총장은 '차등 수업료제' 폐지를 발표했다. 학생을 '공부기계'로 만들려고 수업료로 위협하며 비극을 낳게 한 장본인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남겼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과 이후 진행 양상을 보면서 어제 오늘 많은 생각들이 요동친다. 시행착오, 사후약방문, 무책임, 강제와 자율 그리고 효율성........

서 총장이 내건 개혁안들은 유청소년기를 숨돌릴 틈도 없이 달려온 학생들 모두에게 결코 멈추지 않을 스파르타의 채찍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최고가 되기 위한 최대의 효율적 수단으로 선택된 개혁은 동의되지 않은 강제였고 강압이었다. 학생들의 죽음은 강압에 따른 필연이자 강력한 반작용이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어떤 학생들인가. 학력과 두뇌에서만큼은 단 한 번도 열등감을 가져본 바 없을 대한민국 최고의 영재들이고 부모들을 실망시키지 않은 효자들이다. 그런 자부심 쩌는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차등화된 등록금으로 줄을 세우고 부모님에게 등록금이나 부담지우는 불효자로 자리매김하였으니 그들로선 때늦은(?) 열등감과 모멸감을 떨쳐내기가 쉽진 않았을 거다. 숨 쉰다고 산 게 아닌 듯 그들이 처한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학생의 대자보 내용은 우리를 몹시도 슬프게 한다.

"학점경쟁에서 밀려나면 패배자 소리를 들어야 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 고민을 나눌 여유조차 없는 이 학교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 숫자 몇 개가 사람 평가에 있어 유일하고 절대적인 잣대가 됐고 우리는 선택하기보다 학점 잘 주는 강의를 찾고 있다"

http://www.ajnews.co.kr/view.jsp?newsId=20110408000078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104061840491&pt=nv(*2011.04.11 링크 추가)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11041205595193970&newssetid=470(*2011.04.12 링크 추가)

막상 무한경쟁에 내몰린 카이스트 학생들의 어이없는 죽음을 마주하고 보니 <한 번만 더 '나는 가수다'를 떠올리며>란 내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대신할 혁명을 실패로 선언했으면 무한경쟁도 받아들일 일이다. 무한경쟁이 언제나 절대악인 것도 아니기에 그 폐단을 알고서 단맛은 빨되 쓴맛은 경계하면 된다. 나가수에서의 무한경쟁도 약간만 보완하면 쓴맛보다는 분명 단맛이 많은 장치다."라고 했던 주장이 돌연 무색해진다.

'의사의 손에 들린 칼은 사람을 살리는 이기(利器)이지만 강도의 손에 들린 칼은 사람을 죽이는 흉기(凶器)가 된다'는 말로 나의 지난 언급을 보강해본다. 사실, 지난 몇 주 내내 이슈가 되었던 나가수 사태에서도 ‘무한 경쟁’이 문제의 시발점인 듯했다. 그러나 무한 경쟁이라는 칼은 김영희 피디의 손에서는 죽어가는 노래와 가수를 살리는 이기가 되어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서남표 총장의 손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흉기가 되어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겼다.

나가수에서 가수들은 자발적 동의로 참여하였고 최선을 다해 선의의 경쟁을 벌였으며 몇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최상이었다. 그러나 카이스트에서의 무한경쟁 구도는 그렇지 못했다. 서 총장은 최고들을 다루는 방법에서 아주 미숙했다. 공부가 좋은 사람들은 다그치지 않고 냅둬도 스스로의 자부심을 지켜가기 위해서라도 공부 잘 한다. 강제와 강압보다는 자율적 방식으로도 충분히 그 능력과 창의성을 극대화시켜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잘 하는 사람들을 더욱 잘하게 하는 선의의 경쟁은 자발적 동의에 의한 참여로서 유도할 때 최상의 결과를 내는 법이다.

그깟 무한경쟁조차 버텨내지 못한다며 학생들의 심약함을 나무라는 모진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사람들은 머리에 박힌 볼트를 드러내고 스스로 로봇임을 천명하는 게 낫다. ‘무한’이나 ‘극한’이나 매한가지 뜻이겠으나 그 어감만으로 굳이 구분한다면 '정도를 넘는 무한경쟁'을 별도로 ‘극한 경쟁’이라 부르고 싶다. 다시 말해, 선의가 없거나 원칙(룰)이 없거나 사람(인성)이 없는 무한 경쟁이 그것이다. 잘 하는 사람들을 더욱 잘하게 만들기 위해 서 총장이 도입한 무한경쟁은 ‘사람(인성)’이 빠진 ‘극한 경쟁'에 다름 아니었다.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104061840491&pt=nv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11041318180829424&newssetid=16(*2011.04.14 링크 추가)

학생들의 연이은 죽음에 대한 책임은 서 총장의 몇 마디 사과 말씀으로 끝날 일은 아닌 듯싶다. 서 총장이 지닌 의욕이나 동기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싶진 않다. 허나, 결과적으로 그 선의의 의욕이 과욕이 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통제하지 못한 서 총장 개인적 소신과 가치관과 철학은 지탄 받아 마땅하다. 선의의 경쟁이라 부르기엔 과도한 극한 경쟁을 도입하여 학생들을 '행복하지 않게 하였다'면 총장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으로 일선에서 물러남이 마땅하다. 불명예 퇴진을 통해서 학생들이 느꼈을 열등감이 어떤 건지도 공유해 볼 겸.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1041018001480726&linkid=4&newssetid=1352&from=rank(*2011.04.11 링크 추가)

휴, 잘난 아버지 밑에서 자식 노릇 하기 힘들다더니 잘난 총장 밑에서 학생 노릇 하는 데도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세상이라니. 오늘은 아이의 눈을 한 번이라도 더 보게 될 것 같다. 뒤늦은 관심으로나마 고인들과 그 가족들을 위로해본다.


===東山高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