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인을 위한 변명 - 낚시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우문에 현답


‘낚시 그거 하지 마세요. 생명을 희롱하는 나쁜 취미잖아요?’

낚시인들이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한 번쯤씩은 부딪혀본 타박이리라. 맥없이 난감해지는 순간이다. 이런 타박을 놓는 사람들이란 대개 나름 생명을 귀히 여기는 소박하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들이다. 그 타박의 동기가 좋은 뜻이란 걸 알면서도 낚시인을 향한 그 일말의 편견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집집마다 개 한 마리씩은 키우고 살던 어릴 적, 동네 골목에선 F2 생산을 위한 개들의 본능적 향연이 심심찮게 목격되곤 했다. 이른 아침 시간, 성깔이 좀 지랄 맞은 쥔장네 대문 앞에서 그런 염치없는(?) 향연을 즐기다가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뜨건 물세례를 뒤집어쓰고 줄행랑치기 일쑤였다. 크흑, 사람들 참 못됐었다. 절정의 순간(?)에 식겁한 개들로선 정말 개 같은 기분이었을 게다. 실컷 즐기는 중에 뜬금없이 관두라니!^^

위와 같은 타박에 부딪혀본 낚시인들의 기분이 아마 개같은(?) 기분이었을 게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픈 게 사람 맘이라 뜬금없는 시비에 고까운 숨을 참고 걍 넘어갈 낚시인이 과연 몇 될까 싶다. 어디 낚시인만 그러랴. 제 좋아라죽는 일 말리는 사람 고까운 맘이사 뉘라서 다를까.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 타박하면서, 등산하는 사람 산타지 말라 하고 골프 치는 사람 필드에 나서지 말라 하고 꽃꽂이 하는 사람 꽃을 꺾지 말라 하면 그치들인들. 

예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진다.

‘혹시 소나 돼지고기 드세요? 생선회는요? 몸보신 한답시고 영양탕까지?’

‘먹는 것과 잡는 것을 왜 비교해요?’

‘먹으니까 잡죠. 먹지 않으면 소, 돼지나 개가 물고기가 죽을 일이 있을까요?’

‘그래도 당신네들과는 달리 적어도 산 생명을 희롱하진 않잖아요?’

‘낚시인의 희롱은 나쁜 거고 생업과 입맛을 위한 살생은 좋은 거군요.’

‘생계유지를 위한 살생과 취미로 하는 희롱은 구별되어야죠.’

‘대략 불가에서는 생계를 위한 살생도 말리던 걸요’

‘입에 바늘이 걸리면 물고기가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그러쎴세예?^^ 물고기의 고통을 그처럼 헤아리시니 생선요리는 결코 못 드시겠군요...’

‘뭐, 그 정도까지야. 헤헤~^^;;’

‘^^;;...ㅠㅠ’(대략난감!)


취미를 넘어 낚시는 레포츠


떼엑끼! 오지랖도 넓다 넓어. 헤헤는 무씬 헤헤~!^^ 사람은 머리, 생선은 대가리라며? 생선의 대가리를 사람 머리처럼 존중하면 인간계에선 오지랖 넓은 처사라고 욕먹는다. 무슨 일에서든 생각의 심연이 깊고 외연이 넓은 사람이라면 까칠하지 않고 온유하며, 유별나지 않고 평범하며, 굳이 가름하지 않고 조화로운 법이다. 아서라, 사람의 마음조차 헤아리지 못하면서 물고기의 고통을 헤아리려 드는 것도 주제 넘는 짓이다. 한낱 미물일지언정 생명을 존중하여 인정과 동정을 베푸는 거야 나무랄 일 아니고 크게 권장할 일이다만 타인의 기분을 상케 하면서까지 오지랖을 휘두를 필요는 없다. 스스로부터 언행이 일치하며 생명존중의 삶을 완벽하게 살아가지 못할 거라면 더더욱.

열혈 생명자연주의자들은 길거리에 구르는 돌멩이 하나에도, 풀잎과 꽃잎 하나에도 생명성을 부여하더라니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무릇 온 우주가 생명일진대 버려지는 페트병조차 자연에서 온 변형된 생명이라 가히 함부로 해서는 안 될 일이겠다.

생명을 그처럼 사랑하사 물고기의 입가에 스미는 고통까지 함께 나누고픈 이여, 당신은 앞으로,

‘등산도 하지 마세요. 당신의 삐까뻔쩍하는 K2등산화 발치에 개미가 밟혀 죽을지도 몰라요.’

‘살육된 생명들을 재료로 한 모든 음식거리들일랑 거부하세요. 평생 풀만 뜯으시고요’

‘아, 넓게 보면 식물도 생명이에요. 그러고 보니 꽃꽂이도 해선 안 되겠네요.’

‘골프도 치지 마시구요. 골프장 관리로 인한 환경오염은 뭇 생명들에겐 크나큰 위협이에요’

위 물음들에 당당할 수 없다면 애꿎게 낚시인들을 향해 시비 걸지 말 일이다. 경직된 생명주의자들의 눈엔 낚시인들이 한낱 생명이나 경시하는 못된 취미를 가진 사람들 쯤으로 보이나본데 낚시인들로선 실로 유감천만이다.

낚시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는 생계유지의 주요한 수단이었고(아직도 문명의 보급이 저급한 나라들에선 주요한 생계유지 수단이 되고 있다) 지금에 이르러선 단순한 취미나 오락을 넘어 레저스포츠로서 현대인들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여가는데서 크게 활용되고 있다. 

생명을 상대로 한 레저스포츠란 점에서 여전히 꺼림칙해 보인다면 스포츠 종목 중 유도나 태권도 권투 레슬링 등과 같은 격투 종목들을 떠올려 보라. 그에 비하면 낚시는 양반격이다. 생명 중에 으뜸이라는 사람 간에 피터지게 치고 박는 것에는 환호하면서 낚시인들을 향해서는 하얗게 흘기는 눈은 곱지가 않다. 입에 바늘 걸린 물고기의 고통은 헤아리면서도 상대선수를 혼절시킨 우리 선수의 뒤돌려차기 한방에 환호를 내지르던 당신이 과연 철두철미한 생명주의자? 


낚시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요즘엔 낚시 전문 채널들이 많이 활성화 되어 있다. 무슨 프로그램을 보든 낚시인들이 물고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낚시하는 상황을 한번이라도 눈 여겨 보라. 그들이 생명을 함부로 경시하는 사람들인지 아닌지를. 

대한민국의 낚시인구가 4,5백만 명을 상회한다는 통계도 있고 보면, 낚시는 생명을 경시하는 소수가 누리는 못된 취미가 아니라 이미 많은 다수가 자신들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 공유하는 레포츠로 각광받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낚시하지 말란 ‘법’은 없다. 낚시가 인간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들 중에서 통념상 비난받아 마땅하고 해서는 안 될 몹쓸 행위였으면 진즉에 낚시하지 말란 ‘법’이라도 생겼을 게다. 생명을 존중한답시고 잡식의 본성을 가진 인간에게 굳이 풀만 뜯고 살자고 요구할 게 아니라면 낚시하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 흰 눈 뜨고 타박할 이유는 없다. 그 하얗게 흘긴 눈으로 내 밥상 여기저기 널브러져 죽어있는 생명들부터 어엿비 살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