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10122316295479401&newssetid=1352
이명박 대통령은 23일 동부전선 최전방 군부대를 방문, "우리 군은 철통같이 국토를 지키면서 기습공격을 받을 때는 가차 없이 대응해야 한다. 앞으로는 하지 못하도록 대반격을 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대반격’의 의미는 무엇일까?
얼핏 듣기엔 북이 도발한 수준을 넘는 강력한 반격의 의미로 들린다. 만약 그런 뜻으로 말한 거라면 대통령의 전쟁에 대한 인식이 대단히 안이하고 사려 깊지 못하다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다.
지난달 북한의 연평도 도발 직후 대통령은 ‘강력히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했던 걸로 전해졌다. 대통령 취임 후 행한 발언 중 처음으로 공감했을 만큼 충분히 이성적이고 ‘대통령다운’ 발언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대통령의 발언에 큰 반감을 표출했고 청와대는 비등한 여론에 밀려 발언의 진원지로 지목된 김태영 전 국방장관을 경질시키는 것으로 사태를 무마했다.
'생각 있게' 말했다가 '생각 없는' 여론에 식겁한 탓일까. 그 후 남북한 간에 전운이 감도는 긴장 국면에서 다분히 감정적인 여론의 구미에 맞춘 듯 대통령은 전혀 ‘대통령답지 못한’ 발언과 행보를 이어가는 듯하다.
헌법 제69조에서는 「대통령은 취임에 즈음하여 다음의 선서를 한다. "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선언에 나오는 대통령의 책무 중 주변국의 침략에 대응해서 영토를 수호하는 국가 보위의 책무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쟁과는 상극인 책무들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한민족 모두의 재앙이다. 주변국의 침략을 막아내는 것 못지않게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 또한 국가를 보위하고 보전해가야 할 대통령의 중요한 책무다.
작금의 한반도는 전쟁 후 지난 60년래 그 어느 때보다도 남북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어 있다.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갈만한 돌발변수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때에 대통령이 말한 ‘대반격’의 의미가 행여 전쟁 불사의 감정적 대응이라면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다. ‘대반격’ 후 야기될 불시의 사태에 대해서 과연 대통령으로서 심도 깊은 고민이 있었는지 의문스럽다.
‘강력히 대응하되 확전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은 어쩌면 이런 시기에 가장 대통령다운 발언이었다. 단호하고 신속하게 도발에 상응하는 반격을 가하되 전면전을 촉발할 수도 있는 ‘대반격’을 경계하라는 지극히 이성적인 주문이었던 셈이다. 근데 한 달여 만에 '확전 경계'의 자리에 '대반격'이 들어섰다. 대통령의 의중이 평화 중심적 사고에서 전쟁 중심적 사고로 무게 중심이 이동한 것이다. 평화와 전쟁에 대한 대통령의 철학은 포 몇 발에 왔다갔다해서는 안될 만큼 확고하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실 엄밀하게 보면,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말을 모순된 언사라며 비난했던 국민감정이나 여론 또한 모순적이라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국민들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몇 배의 강력한 응징을 주문하지만 동시에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도발에 대해 몇 배로 응징하는 즉 '대반격'을 가하고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모순된 심사고 그게 연평도 사태에 대한 여론이 지닌 함정이다. 대통령은 이런 모순된 국민감정과 여론에 휘둘려서는 곤란하다.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집단이 북에 있다."라고 대통령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다시피 북한은 굶주린 살쾡이와도 같고 궁지에 몰린 쥐와도 같다. 벌에 쏘였다고 벌집을 쑤시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다. 정권과 체제가 불안한 상태에서 권력의 세습이 진행 중인 북한 내 어떤 호전적 집단이 ‘대반격’을 빌미로 한반도의 전쟁을 권력투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려들거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집단이 모두 같이 죽자는 식의 돌발 상황을 조성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과 신임 국방장관의 배포 있는 호언들이 국민들의 가려운 등을 일시적으로 긁어 줄지는 몰라도 한반도의 전쟁에 대한 불안감은 비례해서 그만큼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강력한 대응을 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고, 도발을 억제할 수 있고, 전쟁을 막을 수 있다"라는 대통령의 말은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만용이고 궤변일 뿐이다. 대통령은 "그동안 많은 인내를 했다. 인내하면 이 땅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다."라고 후회할 게 아니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더욱 인내하면서 기존의 강경일변도의 대북 정책에서 일대 변화를 모색해야만 한다.
북한을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는 경쟁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장차 다가올 평화통일의 한 축으로서 온전히 설 수 있도록 잘 다듬고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보다 통 큰 인식을 대한민국 대통령과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깊이 공유했으면 싶다. 헐벗고 굶주려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란 심정으로 전쟁불사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