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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마지막 편지...사랑 서신 제199호





이 글은 감옥으로부터의 마지막 편지입니다.
담장을 나서기 전 채우려던 사랑글 200호는 부러 남겼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다시 또 육필로 편지를 쓰게 될 일이 없을라치면
남은 마지막 200번째 편지만큼은 백지로 남겨 두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백지 편지에는
우리가 함께 꾸려갈 우리들의 남은 삶을 써 넣고 싶었습니다.
‘지금처럼 가슴으로’ 함께 나누어갈 우리들의 소중한 미래가
바로 사랑글 제200호에 쓰여질 내용입니다.
이 다음에, 이 다음에 나중에 언젠가 우리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는
제200호 사랑글의 마침표와 서명 칸은 공란으로 비워두어야겠지요.

그 두 번째 이유는,
99란 숫자가 지닌 매력 때문입니다.
내 지난 번 언젠가도 99란 숫자가 지닌 매력에 관해 얘길 했었지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숫자,
그래서 외려 100보다 완벽해 보이는 숫자가 99라 했던가요.
혜송님을 두고 숫자 99와도 같은 사람이라고도 했었지요.
확실히 99는 뭔가 모자라 보이는 98이나 답답해 보이는 100보다는
한결 유연해 보이고 미래지향적인 숫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완성이란 달리 말하면 무한한 가능성과 꿈과 희망의 역설적 표현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99란 미완의 숫자는 확실히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숫자입니다.

오늘 감옥으로 오는 혜송 님의 마지막 사랑글을 받았습니다.
혜송님의 100번째 사랑글은 날 품에 안는 것이라 했던가요.
그러지요, 담장을 벗어나는 날
그 누구도 우릴 감시하지 않는 파란 하늘 아래서 힘차게 포옹하는 것으로
혜송님의 100번째 사랑글과
나의 200번째 사랑글의 첫줄을 함께 쓰도록 하지요.
짧지 않은 세월, 참으로 고생 많았던 혜송님에게
이곳에서 사랑글로 전하는 나의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혜송님, 그간 정말, 정말,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가슴으로'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오래 전 3월 20일 **옥에서

봄, 사랑 그리고 자유...사랑 서신 제197호






봄, 사랑 그리고
자유




때 아니게

그윽히

눈 내리는 봄, 밤

그저 좋아라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렇게 좋을 뿐인데

이 봄이 좋고

이 밤이 좋아라

사랑이 좋고

님이 좋아라

자유가 좋고

살아있음이 좋아라



오래 전 3월 18일

**옥에서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사랑 서신 제196호



이 글부터는 글보다 내가 먼저 혜송님에게로 갈지도 모르겠네요.
몸은 이미 담장 밖인데 뒤차 타고 오는 감옥으로부터의 편지라?
묘한 맛이 날 것 같은데요.

봄이 왔다 갔다 합니다.
이곳의 내일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5도까지 내려 갈 거라네요.
바람이 봄꽃 피는 걸 시기하는 ‘꽃샘추위’가 아니라
나의 출소를 샘하는 감옥의 ‘옥샘추위’인 양 합니다.
어제 봄비 내릴 때는
‘이 비 그치면 십오 척 담장 따라 싱그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싶더니만
웬걸 싱그러운 풀빛은커녕 징그러운 꽃샘 한파가 짙어오네요.

이 지역의 겨울이 꼬리가 길다고들 하더라만 올해는 유독 더해 보입니다.
이곳에서 맞는 세 번의 봄 중에서 가장 더딘 봄인 듯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다 내 맘 급한 탓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봄’ 타령한 김에 어느 책에서 본
‘진달래꽃에 얽힌 사랑’ 이야기 하나 옮겨보겠습니다.
이미 아는 얘기일련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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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평안도 땅 영변 고을 약산은 진달래꽃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얼마나 유명하냐고요?
아무려나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이라는
소월의 시구만큼은 모르는 이가 없지 않겠어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진달래꽃은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입니다.
봄철만 되면 우리나라의 모든 산과 들에서 진달래꽃이 피지요.
그런데도 유독 평안도 땅 영변 고을 약산의 진달래꽃이
그처럼 유명하게 된 것은 까닭이 없는 것도 아니랍니다.

옛날, 그 약산 기슭 작은 마을에 한 젊은이가 살았습니다.
젊은이는 너무너무 가난했습니다.
남의 집 품팔이도 하고 산에 올라가 부지런히 나무를 해다가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지만 살림은 조금도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이는 앓아누워 계신 홀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했거든요.
돈을 버는 대로 어머니의 병구완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약값이라는 건 가난한 사람의 사정 같은 것과는 아랑곳없이
턱없이 비싼 법이어서 젊은이는 내내 가난에 쪼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젊은이는 어느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 그만 사랑에 푹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떡합니까.
그 아가씨는 바로 이 고을 원님의 무남 외동딸이었으니 말입니다.
가진 거라곤 한 푼도 없는 가난한 젊은이로선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황송할 뿐인 귀한 아가씨를 감히 사랑하게 되었으니!
그건 참으로 여간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젊은이는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아가씨를 한 번 본 순간 가슴 속에서 뜨거운 불이 활활 타올랐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가씨를 붙들고 자기의 뜨거운 마음을 호소하였습니다.
정말이지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일과 어머니를 돌보는 것 밖에 모르던 젊은이에게
그 아가씨는 마치 선녀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얼굴이 곱다고 해서 마음씨까지 고운 것은 아니지요.
더구나 원님의 외동따님쯤 되고 보면
좀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바로 그 아가씨가 그랬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응석받이로 자란데다가
무어든지 부탁만 하면 다 들어주는 사람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여간 도도한 게 아니었지요.

“좋아요! 그런데 당신은 내게 무엇을 해줄 수가 있지요?”

하고 아가씨는 말했습니다.

젊은이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가진 것 없는 자기를 비웃고 있는 게 분명했습니다.
아가씨의 거만한 눈길은 젊은이의 아주 아픈 곳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젊은이의 눈은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는 큰 결심을 한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침을 꿀꺽 삼키더니 마침내 소리쳤습니다.

“무엇이든지! 무엇이든지 해드리지요! 아가씨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그러자 아가씨는 차가운 표정으로 웃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짓궂은 데가 있는 웃음이었습니다.
‘정말이에요?’하는 것과도 같고
‘아마 할 수 없을 텐데요!’하는 것도 같은 웃음이었지요.
아름다운 대신 좀 쌀쌀하고 짓궂은 데가 있었던 그 아가씨는
조용히 손을 들어서 아래쪽을 가리켰습니다.
아가씨가 가리킨 곳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고,
그 절벽 깊은 한 가운데에는
붉은 진달래꽃 한 무더기가 소담스레 피어 있었습니다.

“저 꽃을 꺾어다 주시겠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표시로 말이어요.”

비웃음을 띠며 아가씨가 이렇게 말했을 때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누가 저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내려가서
진달래꽃을 꺾어 올 수가 있단 말인가요.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다음에야 말입니다.
대담하고도 깜찍한 소녀였습니다.
사람들은 옆에서 숨을 죽이고 젊은이의 대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입니까!
젊은이는 아무 불평도 없이 바위를 타고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이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것은 깜찍한 제안을 던진 아가씨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아가씨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핼쑥하게 바뀌었습니다.
모두들 개미소리 하나 없이 젊은이의 무서운 집념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사랑에 취한 젊은이의 몸은 마치 잔나비와도 같이 날렵했습니다.
그리하여 젊은이는 마침내 그 소담스러운 진달래꽃을 꺾었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위쪽을 바라보고는 싱긋 웃어 보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승리의 웃음도 잠시뿐,
젊은이는 한순간 몸을 기우뚱하더니 그만 저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떨어져
지푸라기처럼 흔들리며 아득하게 사라져가고 말았습니다.

잠시 후 사람들이 가위눌린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아! 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였습니다.
이번에는 새파랗게 질려 떨고 있던 아가씨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더니 젊은이의 뒤를 따라
그 깊은 벼랑 속으로 빨려들 듯 미끄러져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의 꽃다운 생명을 삼킨 깊은 골짜기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다만 바위 위에는 몇 방울의 붉은 피가 점점이 스며 있을 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젊은이와 아가씨의 무덤을 나란히 만들었습니다.
이듬해 봄이 오자 그 무덤가에는 유난히 더 붉고 짙은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진달래꽃은 불이 번지듯 번져서 온 골짜기와 산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사람들은 그 진달래꽃이야말로 두 젊은이의 넋이며 사랑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지금도 평안도 땅 영변 고을 약산은
봄철만 되면 온통 짙은 진달래꽃 속에 묻히게 됩니다.
그걸 보고서 소월 시인은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하는 시를 지었던가 봅니다.
어쨌거나 분홍빛 아름다운 진달래꽃에 얽힌 이 슬프고 안타까운 이야기는
아직까지 남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한 젊은이의 불타는 사랑을 생각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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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연인들을 위해 이 봄을 축복합니다.
아울러 진달래꽃처럼 붉고 짙은 사랑들을 나누기를 희망합니다.


오래 전 3월 17일 **옥에서

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사랑 서신 제191호



아래에 쓰여지는 글은 신영복 선생께서
대학 새내기들을 위해 모일간지에 기고한 글의 전문입니다.
살면서 가끔은 음미해 볼만한 글이란 생각에서 옮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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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


예비합격자 명단에서 당신의 이름을 보고
축하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여 왔습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수능점수 1백점으로 예비합격한 당신을
축하할 자신이 내게도 없었습니다.

지금쯤 당신은 어느 대학의 합격자가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있거나,
아니면 기술학원에 등록을 해두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나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축하의 편지를 씁니다.
이제 대학입시라는 우리 시대의 잔혹한 통과 의례를 일단 마쳤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건축’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한동안 그 노인의 얼굴을 상기합니다.

‘차치리’라는 사람이 어느 날 장에 신발을 사러 가기 위해
발의 크기를 본으로 떴습니다.
이를테면 종이에 발을 올려놓고 발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한자로 그것을 ‘탁(度)’이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장에 갈 때는 깜빡 잊고 탁을 집에 두고 갔습니다.
신발가게 앞에 와서야 탁을 집에다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제법 먼 길을 되돌아가서 탁을 가지고 다시 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장이 파하고 난 뒤였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는 사람들이 말해습니다.
“탁을 가지러 집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소.
당신의 발로 신어보면 될 일 아니오.”
차치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려면 발이 탁만큼 정확하겠습니까.”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던 그 노인이 발로 신어보고 신발을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탁과 족(足), 교실과 공장, 종이와 망치, 의상과 사람, 화폐와 물건,
임금과 노동력, 이론과 실천.........이러한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우리 사고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하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닙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 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대학의 강의실에서 이 편지를 읽든,
아니면 어느 공장의 작업대 옆에서 읽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 있건 탁이 아닌 발을 상대하고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당신이 사회의 현장에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살아있는 발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대학의 교정에 있다면
당신은 더 많은 발을 깨달을 수 있는 곳에 서 있는 것입니다.
대학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종속의 땅’이기도 하지만
그 연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의 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이 안겨줄 자유와 낭만에 대한 당신의 꿈을 모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얽매여 있던 당신의 질곡을 모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러한 꿈이 사라졌다고 실망하고 있지나 않은 지 걱정됩니다.
그러나 ‘자유와 낭만’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와 낭만은 ‘관계의 건설 공간’이란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우리들이 맺는 인간 관계의 넓이가
곧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의 크기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들의 일상에 내장돼 있는
‘안이한 연루(連累)’를 결별하고 사회와 역사와 미래를 보듬는
너른 품을 키우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그동안 만들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게 해 준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만나는 연대의 장소입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발의 임자를 깨닫게 하는 ‘교실’입니다.
만약 당신이 대학에 아닌 다른 현장에 있다면
더 쉽게 그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수능시험 성적 1백점은
그야말로 만점인 1백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올해 당신과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한 67만 5천명의 평균점수입니다.
당신은 친구들의 한 복판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간은 필요한 자리입니다.
수많은 곳,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보다 더 큰 자유와 낭만은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다가
넓고 밝은 길로 나오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실개천도 이윽고 강을 만나고
드디어 바다를 만나는 진리에 감사하였습니다.
주춧돌에서부터 집을 그리는 사람들의 견고한 믿음입니다.
당신이 비록 지금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로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언젠가 넓은 길, 넓은 바다를 만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드높은 삶을 ‘예비’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어디쯤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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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머리맡에서 쥐며느리를 보았습니다.
마루바닥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올라왔나 봅니다.
이 봄의 생기를 물씬 느끼게 하는 작은 생명입니다.
나의 긴 잠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봄, 힘차게 깨어 십 수 년 전 대학 신입생 때의 각오로
새로운 시작을 예비하겠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되
색 고운 지붕보다는 실한 주춧돌부터 먼저 살펴 놓도록 하겠습니다.


오래 전 3월 10일 **옥에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붙이고 !’...사랑 서신 제154호


하나, 둘, 셋, 넷, 다섯, 붙이고 !
하나, 둘, 세, 넷, 다섯, 붙이고 !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

하루도 조용할 날은 없다지만
오늘은 정말 경쾌하게 떠들고들 있네요.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구령소리입니다.
지루박인지 뭔지를 배운답시고 저리들 난리랍니다.
춤을 가르치는 사람은 나이가 꽤 지긋하신 분인데
강남 제비이셨는지 아님 시골 캬바레 참새이셨는지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한창 신바람(춤바람?)이 났습니다..
좀 전까지는 춤으로 사모님들 홀리던 전력을 영웅담인 양
설레발치는 것 같더니 실기 전수에까지 나섰나 봅니다.
마룻바닥 쿵쾅대는 소리, 구령 소리, 구경꾼들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징역의 또 하루가 부서져 내리고 있습니다.
볼 순 없어도 소리만으로도 그 정경이 어떨지는 눈에 선합니다.

우리 마을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한쪽 면으로만 사방이 쭉 늘어서 있고 복도의 전장이
대략 40여 미터 쯤 되는 2층 건물의 상층입니다.
여타 저타의 사유로 출역(옥중에서 각종 사역에 종사하는 일,
공안사범은 기본적으로 미출역 사범으로 분류됩니다)에서 제외되거나
출역 미지정 대기 상태의 재소자들은 상층,
출역 재소자들이 하층에 수용되어 있습니다.
낮 시간에도 출역을 하지 않기에
밤낮없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껴야만 하는 상층은
하층에 비해 하루 종일 소란스럽고 소동도 잦은 곳이기도 합니다.
상층은 모두 11개의 사방이 있습니다.
복도 맨 끝의 2개 방은 독방이며 그 중 하나가 내 방이지요.
(보증금도 월세도 없는 전망 좋은 방이랍니다........하~)
내 옆의 독방은 거의 비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뭐가 그리도 마렵고 구린지 징역 안에서조차
공안사범들을 최대한 격리시켜 놓으려는 당국의 노력은
배려인지 탄압인지 언제 보아도 눈물겹습니다.

지금 한창 춤의 향연을 벌이고 있는 방은 내 방에서 2방 건넌 9방입니다.
4평 남짓한 크기에 14~5명 정도가 수용되는 방이지요.
밀폐된 공간에서 독방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청각이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게 많으니 지척에 있는 이웃들의
코고는 소리, 방귀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대도 독방 생활이 항상 적막한 것만은 아니랍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 동네가 낮, 밤 없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끄러운 동네인데다 징역살이라지만 어차피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제한적이나마 이웃 간에 인정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붙이고 !
하나, 둘, 셋, 넷, 다섯, 붙이고 !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 밤에 !
딱따닥, 따다닥, 딱, 딱, 딱딱 !

흥이 제대로 오른 건지 이젠 노랫가락에다 젓가락 장단까지 얼씨구.
대개는 바깥세상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던 사람들인지라
저리라도 ‘시간을 깨지’ 않으면 궁둥이에 좀이 쑤셔 못 견딜 겁니다.
다소 소란스럽긴 해도 깔깔거리며 흥겹게들 잘들 놀고 있네요.
놀러 가고 싶은 맘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 춤판이 벌어지고 있는 9방은
길어야 일주일 남짓 머물다 가는 신입자 대기방입니다.
가끔 저런 재미난 분들이 머물고 가는 며칠 동안은
한갓진 내 독방까지도 생기가 폴폴 전해져 온답니다.
별난 이웃들 덕에 오늘 오전은 덩달아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혜송님도 오늘 하루, 신명나게 보냈으면 합니다.


오래 전 12월 12일 **옥에서

겨울잠...사랑 서신 제152호




오래 전 12월 7일 **옥에서

신방에 드는 심정으로...사랑 서신 제150호


일주일 내내 혜송님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신방에 드는 새신랑의 심정으로...

단벌 외출복인 푸른 수의는 수요일쯤 미리 세탁해 두었습니다.
토닥토닥 잘 두드려 바짝 펼쳐 말리는 것으로 다림질을 대신했습니다.

소풍 전날 밤 아이처럼
간밤 내내 선잠으로 뒤척였습니다.
곤히 잠든 해님을 보채며 이른 아침에 깨었습니다.
들뜨고 설렌 맘에 밥이 메어 아침 그릇은 결국 다 비우지도 못했습니다.
1분이면 끝날 세면을 1시간인 양 했습니다.
얼마나 문질렀던지 뺨이 다 얼얼합니다.
칫솔모는 또 얼마나 시달렸던지 펑퍼짐해졌습니다.
화장도 했습니다.
옥중 화장이라야 기껏 스킨과 로션을 범벅 치는 일이겠지만
평상시엔 좀처럼 손이 가지 않던 목 뒷덜미까지 도포하였습니다.
향수를 대신하여 푸른 수의 곳곳에 스킨을 살포해 두었습니다.
혜송님 꼬옥 껴안을 때 징역 냄새나 홀아비 냄새가 폴폴 나면 곤란하잖아요.
평소엔 쓰지 않던 스킨을 오늘 특별히 옆집에서 빌렸습니다.
길지도 않은 머리 거울 보며 정성스레 빗질도 하였습니다.
삐져나온 코털은 없는지 눈썹은 가지런한지 눈곱은 끼진 않았는지
얼굴에 까칠하게 일어난 잡티는 없는지
잘 뵈지도 않는 플라스틱 거울이 구멍날 뻔 했습니다.
팬티도 가장 새것으로 골라 입었습니다.
옥빛 은은한 아주 예쁜 팬티입니다.
내복도, 티셔츠도 모두 새것으로 갈아 입었습니다.
양말도 가장 뽀얀 것으로 신었습니다.
운동화에 묻은 먼지 때는 물걸레로 깨끗이 훔쳐내었습니다.
렌즈만 닦던 안경도 테두리까지 반짝반짝 윤나도록 손질했습니다.
맘먹고 몸단장하는 일이 그렇게도 시간이 많이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오늘 아침 따라 별스레 헤벌쭉하여 싱글거리던 내 모습이
동네 사람들의 눈에 실없어 보이지나 않았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오늘까지 일주일 내내,
신방에 드는 심정으로,
혜송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랬었길래,
오늘 특별접견장에서 꼭 잡았던 혜송님의 손을 놓고 떠나보내기가
정말 정말 아렸답니다.


오래 전 12월 2일 **옥에서

잔을 높이 듭니다 !...사랑 서신 제148호














지난 23일 첫눈 오던 날,
십 수 여년을 묵고 묵었던 체증이 단번에 가시는 듯했습니다.

5.18특별법 제정 결정 !!!

기쁨에 눈시울이 다 뜨거웠습니다.
5.18은, 광주는, 한이었습니다.
망월동 묘역에 혈육을 묻은 이들의 한이었고
민족의 한이었고 역사의 한이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가신 이들 앞에 작은 웃음이나마 지을 수 있겠습니다.

제정 결정된 5.18특별법의 내용이나 그 시행 과정이
완벽한 모양새를 갖출 것이라곤 기대하진 않습니다.
항간의 평가가 분분하지만 당국의 이번 결정은
누가 뭐래도 잘한 일입니다.
일각의 평가처럼 비자금 정국의 국면 전환용이든 인기 만회용이든
그게 무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어차피 정치적 결정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나는 이번의 5.18특별법 제정 결정을 두고
‘건국 이래 최대의 역사적 쾌거’라고 할 만큼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단 한 번도 부정한 과거사의 청산 경험을 가져보지 못한 이 땅에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첫 시도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대통령 자신의 발언처럼 ‘이 나라에 정의와 진실,
그리고 법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쾌거입니다.
역사와 정의와 국민들과 광주의 정신이 일궈낸 값진 승리입니다.

작은 시작일 뿐입니다.
첫 삽을 떴으니 샘이 솟을 때까지 잘 독려해야 하는 건
살아남은 자들에게 여전히 남겨진 몫이겠지요.
이 고귀한 승리가 그 어떤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에 의해
훼손되거나 변질되지 않도록 잘 감시하고
나아가 이 값진 승리가 단순한 ‘한풀이’를 넘어 21세기 조국과 민족의
전진과 도약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잘 다듬어가야겠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광주의 영령들과 민주주의를 수호하다 산화해 가신
이 땅의 모든 민주 열사들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암흑의 역사에서 이제야 한 줄기 서광을 보는 듯합니다.
기쁩니다. 몹시도 기쁩니다.
정말 축배라도 들고 싶습니다.
혜송님과 꿈속에서라도 만나 잔을 높이 들어야겠습니다.

‘5.18특별법 제정을 위하여 !! 전, 노 일당 처단을 위하여 !!’


오래 전 11월 28일 **옥에서

산봉우리가 아닌 사람을 보라...사랑 서신 제140호


joone4u님이 촬영한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On the top of CheonwangBong in JiriSan.


영란씨가 눈치를 챘었나 보네요.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서 등정을 마다했다면
뭇사람들이 조성한 작위적인 분위기가 못내 어색했었나 봅니다.

교감이 없는 남녀 간을 짝 지우는 게 쉽지가 앉지요.
다른 사람들의 눈에야 두 사람이 천생연분인 것 같아도
둘 중 누구라도 ‘느낌’이 없으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다른 건 다 인위적으로 조장할 순 있어도 그 ‘느낌’이란 것만은
절대 강제할 순 없는 법이거든요.
그런 오고가는 느낌이 없다면
주위에서 아무리 신방차려 불까지 꺼준대도 여보당신 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쨌거나 산행을 통해 영란씨와 태영씨의 짝 만들기 작업은
겉으로만 보면 도로였네요.
어차피 내숭 떨 나이도 아닌데다 영란씨가 그처럼 자존심도 센 만치
그런 은근한 방법보다는 차라리 정공법을 택했으면 어쨌을까요.

한 가지 아쉬운 게 더 있습니다.
이유야 어쨌든 천왕봉을 코앞에 두고 등정을 포기해버린
영란씨를 혼자 두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입니다.
나름 ‘목적을 지닌’ 태영씨가 되었든 그 누구든 간에
그 마음을 헤아려 영란씨 곁에 머물러 말벗이라도 좀 되어 주잖고서
다들 한순간 천왕봉의 일출에 눈이 멀었었나 보네요.
그런 의미에서 당사자인 태영씨를 비롯, 짝 만들기에 공모했던
모두의 작당은 안팎으로 모두 실패한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란 으레
물에 대를 담그면 물고기만을 생각하고
산에 오르면 산봉우리만을 생각합니다.

여럿이 함께 산엘 가보면 사람들의 성향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뉩디다.
그 한 부류는 산봉우리를 우선 챙기는 사람이고
다른 한 부류는 사람을 우선 챙기는 사람입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전자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의 눈이 줄곧 산봉우리를 향해 있다면
후자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의 눈은
산행 중에 뒤처지는 동료들을 향해 있습니다.
전자가 앞을 본다면 후자는 뒤를 보는 거지요.
내가 예전에 몸담았던 공장의 산악회 동료 중에 모씨가
딱 그런 후자에 속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매번 산행 때마다 이 사람이 정상을 먼저 밟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체력이 안돼서도 아니고 게으름을 피워서도 아니건만
그는 언제나 꼴찌였습니다.
산행 중에 가장 뒤처진 사람들의 까진 발을 치료해주거나 무거운 짐을 나누며
후미에서 온갖 궂은일을 다 챙기다 보니 그랬던 겁니다.
뒤처진 동료와는 말벗하면서 보조를 맞추고
때론 등정이 불가능한 동료가 있으면
기꺼이 함께 등정을 포기하여 소외된 동료를 배려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산봉우리를 보지 않고 사람을 보던’ 사람이었습니다.
체구는 자그마했지만 그는 산보다 더 커 보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산에서만이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한결같이 향기롭고 신뢰가 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떤가요, 혜송님.
오늘 내 얘기가 천왕봉 일출만한 값어치는 되나요?
살면서 ‘산봉우리만 보지 말고 사람을 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영란씨와 태영씨가
좋은 느낌, 좋은 인연으로 맺어지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산행 후 뻐근해졌을 종아리 주물러주는 건 나중으로 미루겠습니다.


오래 전 11월 14일 **옥에서

가을, 비, 바람, 그리고 겨울...사랑 서신 제136호


올 겨울은 추울 거라더니
요 며칠 날씨를 봐서는 과연 그럴까도 싶습니다.
어느덧 입동이 밤 하나 남겨 두었네요.
세상 바람들 모두 모여 입동 전야제라도 치르는 것일까요.
사나운 바람에 옥창 떠는 소리가 하도 요란해서 잠 미루고 글 씁니다.

오늘 낮엔 내내 비 내렸습니다.
막바지 늦가을은 종일 내린 비에 삭아 내리고
나의 마지막 옥중 겨울은 이렇게 바람과 함께 시작되려나 보네요.

혜송님은 겨울이 별로이다 했던가요.
홀로 있는 사람들에겐 겨울은 그저 춥고 짓궂은 계절일 수도 있겠지만
사랑 넘치는 연인들에겐 ‘추울수록 외려 따뜻한’ 것이
겨울이란 계절의 또 다른 얼굴은 아닐까요.

난 왠지, 한여름의 해변 연인보다는
한겨울의 눈길 연인들이 더욱 정겹습니다.
내 손이 별스럽게 따뜻한 편입니다.
갇힌 손이라 그 진가를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겨울이 별로인 혜린 님에게
꼭 필요한 겨울 명품(?)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혜송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명품 손은 항상 따끈따끈하게 잘 데워 놓겠습니다. 푸.

바람들의 소란이 약간은 가라앉은 듯도 하네요.
요 정도 써 두고 억지 잠이라도 청하렵니다.
혜린 님도 잘 자요 !

-오래 전 11월7일-


오늘은 입동, 혜송님 보내고서 어제 밤 쓰다만 글에 이어 씁니다.
지리산 산행 계획 얘기를 하던 중에
‘함께 갈 수 없어 아쉽다’ 라며
스쳐 지나듯 무심코 던진 나의 한 마디가 문제였나 봅니다.
혜송님의 시종 밝던 표정이 그 한 마디로 흐트러진 듯해서요.
내게 미안한 맘이 들어 그랬었나요.
혜송님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니라
생각 없는 말을 불쑥 던진 내가 미안해 할 일입니다.
어깨를 내리고 접견장을 나서던 혜송님을
떠올리면서 지금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헤아림이 부족한 말로 그만 혜송님을 울적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사려 깊지 못했습니다. 미안한 맘이 쉬 가시질 않습니다.
괜한 일로 혜송님의 산행길이 무겁지 않아야 할 텐데요.
지난 번 여름휴가 때도 나 때문에 맹맹하게 보내고 말았잖아요.
혜송님의 이번 산행만큼은 세상일 싹 잊고 여유롭고 편안했으면 합니다.
혜송님이 편안하면 나도 편안합니다.
혜송님이 기쁘고 신나고 즐거우면 나도 덩달아 기쁘고 신나고 즐겁습니다.

멋진 산행, 좋은 추억 만드세요 !!
산행 중 재미난 얘깃거리 많이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오래 전 11월 8일 **옥에서

이게 웬 삭풍?...사랑 서신 제135호



며칠째 이곳의 아침 최저 기온이 빙점에서 오락가락하네요.
새벽 한기가 바짝 독 오른 독사처럼 매섭습니다.
그야말로 군인들이나 노숙자들, 재소자들에겐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실감나는 계절입니다.

이런 날들에 꾸며지는 내 잠자리 모양을 그려볼까요.
생마루 바닥에 얇은 모포 1장,
그 위에 군용 매트리스 1장,
그리고 그 위에는 침낭을 하나 얹고
다시 침낭 위로 담요 2장을 덮은 후 침낭 속으로 파고듭니다.

감방 추위 모르는 사람들이야
담요에다 매트리스에다 침낭 등 무려 5겹이나 되는
푹신푹신(?)한 잠자리를 두고서도 그 무슨 호사스런 푸념인가 할 테지만
그게 말입니다, 생 마루 바닥과 날 콘크리트 벽의 냉기와 외풍이
얼마나 고약한지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오늘 새벽, 늘 깨던 시각에 눈을 떴습니다. 여섯시쯤.
3년 별리 끝에 만난 각시 껴안듯 휘감았던 담요를 밀어내고
자라 목 내듯 머리를 빼에~꼼 내미는 순간 휘이~잉!
헉, 이게 웬 만주 벌판에서나 만남직한 그런 삭풍인가요.
게 눈 감추듯 휘리릭~ 침낭 속에 그만 머리를 다시 묻고 말았습니다.
잠깐 담요를 들쳤다 말았건만
감방의 새벽 한기가 침낭 속을 매섭게 헤집고 달겨듭니다.
이건 뭐 춘향이 뒤꽁무니 쫒는 변사또의 심술과도 같습니다.
징역의 새벽 한기, 찬 계절 내내 웬수가 따로 없습니다.

깰까 말까 깰까 말까..............
그렇게 십여 분을 꼼지락거리다
이번엔 큰 맘 먹고 단박에 모포를 화~악 까 제치며 벌떡 일어섰습니다.
허~억, 근데 이게 또 내 맘 같질 않네요.
담요 밖으로 머리만 살짝 내밀었을 때랑
온 몸을 까발렸을 때랑 그 느낌이 결코 거서 거가 아니더군요.
하, 오늘 이거 스타일 제대로 구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 !
결국, 기지개 한 번 켜보지도 못하고서
난 다시 침낭 속으로 볼 성 사납게 찌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뒤 기상나팔의 힘을 빌어서야
비로소 징역의 아침을 깨울 수 있었습니다.

“여보 님, 일어나서 밥해야지”
“으~응, 니가 해”
“싫어, 이렇게 추운데 니가 해”
“나도 싫어, 그냥 굶자”
“......................................”
“......................................”

후후, 이게 장래의 우리 모습이면 곤란하겠지요.
학창 시절 난방이 안 되는 자취방의 고충, 솔찮이 겪어 보았습니다.
어쩌면 난방 안 되는 집의 새벽은 감방의 새벽보다 못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적어도 징역살이에선 추운 새벽에 일어나 밥할 걱정은 않아도 되니까요, 큽.
근데 세상살이가 몹시도 궁핍한 혹자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농이 아닌 현실인 경우도 없질 않습니다.
춥고 배고픈 바깥세상 겨울나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역부러 무전취식 같은 작은 범죄를 저지르고
감방을 찾아드는 이들도 있다하니 말이지요.
그들 앞에선 ‘배부른 징역’보다야 ‘배고픈 자유’가 낫다는 주장일랑
제대로 배곯아 보지 않은 자들의 사치일련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사는 모습이 저마다 다르고 생각 또한 천차만별이니만치
배고픈 자유보다는 배부른 징역을 선택한 그들의 그 절박한 선택을
뉘라서 쉬이 ‘그르다’며 속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배부른 구속보다는 배곯아 죽을지언정
배고픈 자유가 한결 낫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지금은 오전 10시를 약간 넘은 시각인데
혜송님은 지금 뭣하고 있을래나요?
당번 근무 중일까요.
그러고 보니 벌써 또 한 주가 흘렀네요.
변덕스런 내 맘 따라 세월이 빨랐다 늦었다 하네요.
내일 면회 때는 유정 후배랑 함께 찾을 지도 모른다 했나요.
내 얼마 전 편지에서 유정 후배 험담(?)을 늘어놓았던 탓에
도둑 제 발 저린 격으로 콩닥콩닥 가슴조리고 있습니다.
뻔뻔스럽게 잘 맞이해야 할 텐데요.
오늘 밤 면벽하며 표정 연습 좀 해두어야겠습니다.
말로 지은 죄 씻어 주십사 부처님 전에 미리 용서도 빌면서요.
보살, 보살, 보살, 보살, 보살, 보살,. ..............

활기찬 휴일을 보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래 전 11월 5일 **옥에서

님의 볼을 깨물듯...사랑 서신 제134호







님의 볼을 깨물듯....




혜송님이 주신 사과 여덟 알

동네 이웃들과 나누었습니다.

내 몫으로 두 알을 남겼다가 어제 밤 한 알

오늘 밤 또 한 알을 먹습니다.



발그레한 사과가 흡사

님의 고운 볼을 닮았습니다.



님의 볼을 깨물듯

한 입 쿡 물었습니다.

달콤한 사과향이 코끝에 돌고

마른 목젖을 넘어가는 사과즙이 싸합니다.

님의 사랑 같은 그런 맛입니다.



곰실곰실 내 옥창을 넘보는

달님의 볼도 누가 베어 갔는지 움푹합니다.



다시 님의 볼을 깨물듯

사과 한 입 또 베어 물었습니다.

이빨 지난 자리에 사과즙이 촉촉히 넘쳐납니다.

님을 향한 내 마음도 넘쳐납니다.

님을 생각하면 달도 내 달이요

별도 내 별이며 세상도 온통 다 내 세상입니다.



님의 볼을 깨물듯 아플 새라

다시 사과 한 입 살며시 깨물었습니다.

앞으로 두세 입이면 못 먹을 씨방만 남겠습니다.



지난 면회 때

동료 몇몇의 사랑과 이별을 전해주셨지요.

누가 떠나고 누가 보냈든

아픔이고 슬픔입니다.

잘들 견뎌내기를 기도합니다.

산다는 게 또 그런 건가 봅니다.



님의 볼을 깨물듯

두 입을 연이어 베어 물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한 입 남았습니다.



멀어져가는 사랑이 있다기에

곁에 머무는 사랑이 더욱 커 보입니다.

머무는 사랑이 고맙습니다.

머무는 사랑이 시리게 고맙습니다.



님의 볼을 깨물듯

마지막 한 입 마저 베어 물었습니다.

이제 사과는 다 먹었습니다.

사과 들었던 빈손에는 그리움만 가득 남았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남아있는 그리움입니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사랑입니다.




오래 전 11월 2일

**옥에서



님의 볼을 깨물듯


혜송님이 주신 사과 여덟 알
동네 이웃들과 나누었습니다.
내 몫으로 두 알을 남겼다가 어제 밤 한 알
오늘 밤 또 한 알을 먹습니다.

발그레한 사과가 흡사
님의 고운 볼을 닮았습니다.

님의 볼을 깨물듯
한 입 쿡 물었습니다.
달콤한 사과향이 코끝에 돌고
마른 목젖을 넘어가는 사과즙이 싸합니다.
님의 사랑 같은 그런 맛입니다.

곰실곰실 내 옥창을 넘보는
달님의 볼도 누가 베어 갔는지 움푹합니다.

다시 님의 볼을 깨물듯
사과 한 입 또 베어 물었습니다.
이빨 지난 자리에 사과즙이 촉촉히 넘쳐납니다.
님을 향한 내 마음도 넘쳐납니다.
님을 생각하면 달도 내 달이요
별도 내 별이며 세상도 온통 다 내 세상입니다.

님의 볼을 깨물듯 아플 새라
다시 사과 한 입 살며시 깨물었습니다.
앞으로 두세 입이면 못 먹을 씨방만 남겠습니다.

지난 면회 때
동료 몇몇의 사랑과 이별을 전해주셨지요.
누가 떠나고 누가 보냈든
아픔이고 슬픔입니다.
잘들 견뎌내기를 기도합니다.
산다는 게 또 그런 건가 봅니다.

님의 볼을 깨물듯
두 입을 연이어 베어 물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한 입 남았습니다.

멀어져가는 사랑이 있다기에
곁에 머무는 사랑이 더욱 커 보입니다.
머무는 사랑이 고맙습니다.
머무는 사랑이 시리게 고맙습니다.

님의 볼을 깨물듯
마지막 한 입 마저 베어 물었습니다.
이제 사과는 다 먹었습니다.
사과 들었던 빈손에는 그리움만 가득 남았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남아있는 그리움입니다.
퍼내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사랑입니다.


오래 전 11월 2일 **옥에서

열려라 참깨 ! 열려라 들깨 ! 열려라 주근깨 !...사랑 서신 제130호



언젠가 편지에서,
20여년 이상 옥살이 했던 신영복 선생께서
출소 후에 겪었다는 일화들을 언급했던 적이 있었댔지요.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갈 생각조차 하덜 못해
동생 내외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까지 방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
(감방문이란 게 누군가가 밖에서 자물쇠를 해제하지 않으면
결코 문 밖을 나설 수 없기에 그런 관성이 몸에 배어 있었던 거지요),
길을 가다 두 세 걸음 딛고서는 깜짝깜짝 놀라 뒤돌아서더라는 얘기
(감방 크기가 두세 걸음이 고작이니 감방에서 걷기 운동이라도 할라치면
두세 걸음 후엔 되돌아서야 했던 오랜 관성이 무심결에 작동했던 탓입니다),
그 모두 오랜 옥살이의 관성이 빚어낸 슬픈 일화들이었던 게지요.

근데 그게 정말 남의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교도소내 어떤 곳에 갔다가 내 손으로 문을 열고자 밀었습니다.
어라, 자물쇠 채워진 문도 아니건만
계속 힘주어 밀어대는데도 꿈쩍도 않습디다.
‘열려라 참깨 ! 아닌가 ? 열려라 들깨 ! 열려라 주근깨 !’
약간은 당황스럽게 꾸물대는 순간, 근처에 있던 직원이 다가와서는
씩 웃으면서 문을 안쪽으로 가볍게 당겨 주더이다.
세상에나 ! 이거 참, 나 참, 원 참, 그 순간의 당혹감이라니 !
이런 일이야 밖에서도 가끔은 겪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두세 번 밀다 안 되면 당겨보는 게 정상일 터
그러지 못하고서 냅다 들이밀 생각만 했었지요.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의 반복에서 오는 몸에 밴 관성이란 게 참.

그랬네요, 미는 문에 익숙해진 세월이 어언 3년을 넘었군요.
대개 문을 여닫는 건 직원들의 몫이다 보니 밖에서 자물쇠가 해제된 문을
그저 안에서 밖으로 밀고 나가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겁니다.
생활상의 관성이야 쯤으로 친다지만 정작 내가 경계하는 건
사고방식에서의 잘못된 관성이 몸에 밸까 하는 점입니다.
‘존재의 양식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의 중심 명제는
항상 옳은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는 옳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아침에 눈 떠서 밤에 눈 붙일 때까지
통제와 감시로 점철된 닫힌 공간이니만치 내 사고방식조차 행여
경직되고 폐쇄적으로 변해가지나 않을 지 못내 염려하며 살았습니다.
몇 해 전 첫 징역살이의 교훈도 있었던 데다
(그 때 출소 후 나의 심신의 상태에 대해
작금의 기준으로 진단을 해 보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옥살이에선 가장 경계하며 노력해온 부분이기에
나름 자족하고는 있습니다만 이 문제는 아무래도 출소 후
다른 사람의 이목에 따른 객관적 평가를 받아봐야 할 대목입니다.
...............................................................................


요즘은 저녁 식사 후 이내 어둑해지네요.
해님의 걸음이 많이도 빨라졌습니다.
그래도 겨울 오는 느낌은 아직입니다.
담장 너머 미류 나무 잎들이 듬성듬성하긴 해도
아직은 쉬이 셀 만큼은 아녀 보입니다.

시내 운전이 익숙해지면 빨간 프라이드를 타고 올 거라 했나요?
도심 외곽도로를 달리는 혜린 님과 빨간 프라이드 !
참 좋은 그림으로 상상되지만
올 겨울을 넘길 때까진 도심을 벗어나지 말길 바래요.
내년 봄 개구리 뛸 때쯤 해서 그럭하세요, 욕심은 토닥여 두세요.

내일은 또 혜송님 오시는 날이네요.
아까 저녁 전에 뒷마당에 까치 울더니 내일 오시는 길에
맛깔나는 소식도 함께 달고 올려나요.
오늘 밤은 무척 긴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자요, 꿈속에서나마 멀리 버선발로 마중 나가 있겠습니다.


오래 전 10월 29일 **옥에서

'누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사랑 서신 제126호


따듯한 햇살, 파아란 하늘, 솜사탕 같은 구름,
팔랑대는 만국기, 축하 비행인 양 비둘기들도 떼 지어 날던
오늘은 재소자 체육대회 날이었습니다.
년 중 한 번 열리는 체육대회,
1년 내내 창살과 콘크리트 벽 속에서
무미건조하게 살아가는 재소자들이 억압된 끼와 에너지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옥중 최고의 잔칫날이기도 합니다.
공안수들이야 직접 경기에 참여할 순 없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겨웠던 하루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에서나 옥중에서나
체육대회의 가장 큰 볼거리를 꼽으라면
단연 응원전, 릴레이, 가장행렬을 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이곳 옥중 체육대회의 백미도 그랬습니다.
남자들만 사는 곳이어서인지 가장행렬에는
어김없이 여장 남자들이 등장하여 분위기를 한껏 데워 놓는답니다.
그 순간만큼은 분장한 당사자나 지켜보는 남정네들 모두가
억제된 성적 에너지를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하는
이색적 즐거움을 만끽하는 거지요.
하얀(?) 속살을 훤히 드러낸 채
야시시한 브래지어와 초미니 차림의 늘씬한 미녀(?)들이
눈앞에서 간들거리는 모습을 앞에 두고
굶주린 남정네들의 마른 침 넘기는 소리,
그 미모(?)에 탄성을 내지르는 소리,
애인이나 마누라를 그리워하는 한숨소리에
땅이 꺼지고 하늘도 무너질 것만 같던 걸요, 후후~
자지러지는 듯한 환호와 탄식, 하하 이건 뭐 거의
우리에 갇힌 수컷들의 '난장발광'이라 보면 돼요(이거 너무 저속한 표현인가요?).

근데, 올해 등장한 미녀들은 작년 수준에는 못 미쳤어요.
작년의 그녀 ! 대단했었습니다.
일천여명의 굶주린 남정네들의 마음을 일거에 뒤흔들어 놓았던 그녀 !
생김과 몸매만을 놓고 보면
실제 여인네도 그 앞에선 고개를 떨굴 만큼 수려했던
그녀(그 남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출소해서 시집간(?) 것일까요. 올해는 볼 수가 없네요.
하지만 작년의 그 하마 같은 몸매의 뚱보아줌마는
그 모습 그대로 또 나타났네요. 뱃살이 더 오른 듯도 했고요.
작달막한 키에 몸무게가 무려 110킬로에 가까웁다니
그야말로 제대로 물이 오른 ‘뭍에 오른 하마’인 게지요.
그 커다란 살집이 브래지어와 초미니 차림으로
이겹인지 삼겹인지도 모를 희멀건 뱃살을 출렁거리며
교태(?)를 부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하, 올해는 그래도 두 번째라 면역이라도 생겼으니 망정이지
작년에 처음 그 기괴한 모습을 대했을 땐 정말
‘오 하느님, 실수하셨습니다 !’ 였다니까요.

유난히도 햇살이 따사로왔던 오늘,
운동장 스탠드 응원석 한켠에 앉아서,
이런 저런 놀이들과 경기들에 흠뻑 취해서 흥겨워하는
재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해맑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들 개개인의 범죄 이력을 떠올리노라면 ‘해맑다’는 표현이
많이 어색할진 몰라도 오늘 하루만큼은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순수하고 천진난만해 보였습니다.
사랑에 굶주리고, 돈에 굶주리고, 배움에 굶주린 사람들,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허덕이다 사회의 천덕꾸러기들로 내돌린 사람들,
오늘 하루만은 그들의 표정에서 그 어떤 굶주림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의외로 이곳의 사람들은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소 거칠고 공격적이긴 해도 가식적이진 않습니다.
사람들은 대저 나이가 들수록 많이 배울수록 많이 가질수록
그에 비례하여 위선과 가식도 늘어나지 싶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
체육대회 끝나고서 오늘자 신문을 보았습니다.
누구누구의 비자금과 관련된 모 의원의 폭로 기사가 실렸더군요.
죄를 진 자나 알고도 덮어주는 자나 모두 다
참으로 후안무치한 군상들입니다.
그들이야말로 응당 이곳의 가장행렬에 끼어 있었어야 할 작자들입니다.
위선과 가식, 가장의 달인들 아니던가요.
오늘 이곳 재소자들의 해맑았던 웃음과 함성이 한순간,
번연히 죄를 짓고도 응분의 죗값을 치르지 않을 수완을 보여주는
소위 배우고 가진 자들의 교활하고도 뻔뻔스러운
위선과 가식을 향한 비웃음처럼 되살아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
누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오래 전 10월 20일 **옥에서

당신은 누구시길래...사랑 서신 제125호





편지지 빛깔이 참 고웁네요, 혜송님처럼.
우편물을 담당하는 우리 ‘교뚱’(교무과 뚱뗑이의 애칭입니다)이
편지 2통을 한 번에 보낸 적은 있어도 4통을 쌓아 두었다 보낸 적은
결코 없노라고 지레 결백을 주장하고 나서더니 그랬었군요.
마냥 후덕하고 태평스레 보이기만 하는 교뚱도
공안 사범 관리하는 일에는 아무래도 잔 신경까지 쓰이나 봅니다.
난 혜송님 글 보고나서는 따질 마음이 생기기는 커녕
외려 그리된 게 고마울 지경인데 말입니다.
우체국에서 많이 밀렸으리라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한꺼번에 편지 4통을 받아든 기쁨이 쏠쏠했나 보네요.
감방에 앉아 바람난 것도 아닐 터인데
편지가 한 동안 뜸했으니 속으론 은근히 투덜거렸겠네요.
이거 참 난 영문도 모른 채 귀가 왜 이리 간지럽나 했었지요, 크~
자장면과 비빔밥은 오래 비빌수록 맛있다잖아요.
오래 비빌수록 양념이 잘 뒤섞여서이기도 하겠지만
비비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이나 입 속에 많은 침이 고일 테고
입맛을 다시는 침의 양에 비례하여 맛의 양도 커지는 거 아닐까요.
마치 마른 땅에 단비 내리듯 참고 기다렸다 일거에 터뜨리는
맛의 집중 효과 내지는 심리 효과 탓이겠지요.
편지의 내용이 흥미롭지 않아도 단박에 4통이라는 수량만으로도
그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혜송님이나 나나 우린 서로의 편지 맛에 중독된 지 오래인지라
편지가 제 때 제 때 공급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금단현상 그거
밥 굶는 것보다도 더 무섭다는 걸 익히 잘 알잖아요.
암튼 나의 무더기 편지가 혜송님께 그토록 큰 기쁨이 되었다니까
덩달아 신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그런 작은 기쁨들을 더욱 자주 안겨드리지 못해서요.
맛난 음식도 너무 자주 접하면 식상해질 거라는
핑계 같잖은 핑계로 이 상황을 얼버무리고 넘어갈랍니다.

그건 그렇고 봄도 아닌데 웬 제비 타령인가요?
내 글과 마음이 어디 아무에게나 다 그리 이뻐 보일라구요.
혜송님처럼 눈에 콩깍지 씌인 사람에게나 효력을 발휘하는 게지.
‘휘적휘적 살고 싶다’라던 나의 지난 번 언급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언이 필요할 듯하네요.
‘세상살이에 대해 지나치게 느슨한 태도’라는 오해의 소지가 없질 않아서요.
분명, 이 풍진 세상을 살면서 억척 근성 없이 휘적휘적 살아간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지난 번 나의 말은 ‘가급적’ 그리 살도록 노력하리라는 희망을
피력한 정도라 보면 됩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살아가는 데서 ‘인간 관계’보다
더 소중한 게 무에 있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살다 보면 때론 그 소중한 관계를 해치면서까지
과욕을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소중한 관계들을 훼손하면서까지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
그게 바로 내가 말한 ‘휘적휘적 살아가는 삶’의 뜻입니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얘기를 좀만 더 부언해 보겠습니다.
휘적휘적 사는 삶이란 얼핏 그 어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그런 두리뭉실한 삶을 뜻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필요한 만큼의 삶의 내용과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최선을 다하여 치열하게 살아가되 다만 필요 이상의 욕심을 절제함으로써
최대한 ‘심신의 여유’를 확보하여 그 여유를
소중한 사람 관계와 여가 선용에 돌리고자 하는 삶을 뜻합니다.
좀더 속되고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이 풍진 세상 가끔은 달도 보고
해도 보고 별도 보며 사람도 보면서 살자’라는 뜻입니다.

의외로 주변을 돌아보면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지 지척에 부모 형제가 있는지
혹은 친구나 소중한 이웃들이 있는지조차 가늠해 볼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나부터 유별나게 그리 살아왔으니까요.
그랬기에 이제는 ‘휘적휘적 살아가는 삶’에 대해
더더욱 남다른 애착을 지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치열하다 못해 미쳐 버릴 정도로 집중하는
날 견제해줄 사람은 혜송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함께 휘적휘적 살지요.
혜송님 말처럼 ‘해야만 하는 당위’가 아니라
‘자연스레 우러나는 기풍’으로
휘적휘적 살아가는 삶의 궤적을 함께 그려갈 수 있도록 노력하지요.
가깝게는 내 부모 내 형제들로부터 멀리는 인류와 우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치고 체득해 나갑시다.

혜송님의 일흔 번째 사랑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벌써 대 여섯 번은 재독했을 겁니다.
혜송님,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게 이토록 큰 기쁨을 안겨주시나요.
언제나 내게 큰 기쁨인 혜송님, 사랑합니다!


오래 전 10월 18일 **옥에서

탈출기...사랑 서신 제123호





언젠가 ‘빨치산?’의 후속편으로
‘탈출기’를 쓸 거라 했었지요. 오늘 글이 그것입니다.
**년 어느 여름날이던가 가을날이던가요.
교내에서 모방송국 차량 한 대가 전소되었던 그 날, 혜송님도 기억나지요?
그날의 교내 집회와 시위를 제가 이끌었댔지요.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회 후 정문을 막고선 전경대를 돌파하려는
시위가 공식처럼 진행되었습니다. 혜린 님도 있었던가요?
나가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 간의 격렬한 공방,
돌과 각목, 화염병, 최루탄과 지랄탄이 난무하던 전장이었지요.
언제나처럼 난 그 격렬했던 전장의 최전방에서 시위대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혜송님도 아실려나 모르겠지만
원래 최루탄이 난무할 때는 시위대의 최전방은 의외로 안전지대랍니다.
백골단이 뛰어들 때야 다소의 위험 부담도 없잖지만
주동을 보호하는 각목조가 따로 배치되니까 방어는 가능하지요.
외려 부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위험 지대는
시위 대열의 가운데나 후미입니다.
전경들이 발사하는 최루탄이 경사각을 이루면서
시위대의 가운데를 겨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일단 최루탄이 발사되면 절대 고개를 돌리고 달려서는 안 되지요.
그랬다간 무수히 날아드는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을 수 있습니다.
최루탄이란 게 총알처럼 빠르지는 않기에 조금만 훈련되면 육안으로 감지하고
피할 수가 있으므로 최루탄이 발사되면
가급적 되돌아 뛰기보다는 뒷걸음으로 정면을 주시하면서
날아오는 최루탄의 방향과 탄착 지점을 적절히 계산하여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아무래도 여학생들이나 후배 학번들이 그런 게 잘 안되다 보니
최루탄에 맞아 큰 부상을 입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했었지요.
허나, 가끔 시위 진압대 중에 시위대 전열을 향하여 직격탄을 날리는
성깔 못되먹은 천둥벌거숭이 같은 전경들이 한 둘 씩 끼어 있을 경우에는
시위대의 전열도 상당히 위험 부담이 커지긴 하지요.
이한열 열사도 아마 그런 경우에 의한 희생이었으리라 봅니다.

빠바방 ! 빵 ! 빵 ! 빠바바방 !
베토벤의 교향곡 <운명>의 첫 시작음이 터져나오듯
셀 수도 없이 들어왔던 그 익숙한 소리가 귓전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건 운명처럼 찰나지간이었지요.
습관처럼 하늘을 보았습니다.
파란 하늘을 가르며 먹이를 쫒아가는 사나운 매들처럼
날아오는 시커먼 뭉치들, 하나, 둘, 셋, 넷, 다섯,..............................
별을 세듯 백주의 하늘을 주시하던 일순간,
왼쪽 숲 속에서 시커먼 뭉치 하나가 예기치 않게 불쑥 삐져 나오더만요.

빨간 메가폰을 향하여 처음부터 겨냥된 것이었을까요.
날다가 나뭇가지에 걸려 방향을 틀며 불시착한 것이었을까요.
사과탄 정도야 재기를 차듯 하고
빗발치던 최루탄도 훌라우프 돌리듯 요리조리 허리만 돌려 피하며
지랄탄 숲을 누비던 역전의 싸움꾼도 그 순간만은
양발이 땅에 붙박힌 듯 속수무책으로 굳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의 느낌, 기분? 아득했던 것 같습니다.
천 길 만 길 낭떠러지로 떨어져내리는 느낌이 그럴 것이라 어림해 봅니다.
나의 반사신경도 결코 무딘 편이 아닌데 열추적 미사일과도 같이
어느새 눈 앞에 꽉차오는 그 놈을 피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체념의 순간, 내가 기껏 할 수 있는 동작이라곤
눈을 질끈 감고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리는 것이었지요.
그랬네요, 그런 일이 있었네요. 삼신 할매가 돌보셨을까요.
고개를 돌림으로써 정면 타격은 피했으나 눈가에서 터져버린 최루탄에
이미 얼굴은 희뿌연 최루가루 범벅이었고 왼쪽 눈을 뜰 수조차 없었지요.

‘안경이 없다. 눈이 따갑다. 최루가스에 따가운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
왼쪽 눈가를 만져보니 손에는 선홍빛 피가 묻어난다.
아, 이런, 아뿔싸, 제기럴~~아무 생각이 없다.
실명, 실명, 실명, 실명, 실명..............‘

텅 빈 것 같은데도 머릿속에선 온갖 회한이 끊임없이 밀려들더군요.

누군가 고꾸라진 날 부축하고 시위 대열에서 빠져나가더군요.
수배 중이었던 난 학교 근처 병원을 이용할 수조차 없는 처지였었지요.
간단한 응급치료 후에 ‘탈출’을 계획해야만 했습니다.
그 상태로는 정문이고 후문이고
학교 밖으로 나가는 출구를 걸어서 나가기란 불가능했었지요.
아직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았기에 피검을 각오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요.
‘나와 우리들의 주장와 행동’에 대해 언제나 응원을 보내주시던
일부 교직원들과 교수님이 ‘비상탈출작전’을 계획하고 나서주시더군요.
그 위기의 순간에, 그들은 기꺼이 내게 솟아날 구멍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 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증발되었지요.

캠퍼스에서 멀찍이 떨어진 어느 안과 의원,
눈꺼풀 안팎으로 박혀있는 안경유리 조각을 제거하던 의사가
천만다행히도 각막이나 동공 쪽으론 큰 손상이 없으며
외상의 정도도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라네요.
의사의 그 한마디, 내겐 천상에서 내리는 복음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 날, 의사와 간호사는 내내 울면서 날 치료했더랬습니다.
뭐 그게 가냘픈 학생의 애처로운 몰골을 보고 가슴이 저미어서거나
시국이 서글퍼서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치료 중에 내 몸과 옷가지에 범벅이 되어있던 최루가스 매운내를
종내 참아내질 못하고서 재채기 뒤섞인 통곡(?)을 했던 게지요, 풉.
우리들이야 객기 부리느라 최루가루를 막걸리에 타서도 마신다지만
최루가스가 익숙치 않은 사람들에겐 그게 아주 독가스나 다름없거든요.

나중에 전해들으니 후배들은 내가 최류탄을 맞고
쥐도 새도 모르게 어디론가 증발된 것을 두고
학생처에서 날 경찰에 넘겨준 걸로 오해하여 대단히 격앙된 항의를 하였고
그 와중에 학내에 있던 모 방송국 차량이 화염병에 전소되는
애꿎은 피해를 입었다는 얘길 전해 들었습니다.

사실, 그 시간에 나는 이미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도로를 달리는 검은 세단 트렁크 속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그랬지요, 그 비상계획이란 건
바로 교수님의 승용차 뒤트렁크를 이용한 탈출이었습니다.
이거 무슨 영화 속 한 장면과도 같지요.
씁쓸하지만 그 시절엔 우리 모두 그렇게 살지 않았던가요.
그 비상탈출은 날 진심으로 걱정해준 교수님이나 일부 교직원들의
헌신적인 도움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겁니다.
지금 돌아봐도 존경받아 마땅한 참 좋은 은사이셨고 교직원들이었습니다.
그 때, 차 트렁크 속에서 칠흑처럼 암울했던 이삼십 분 남짓의 순간에
절망과 체념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를 제대로 느껴 보았습니다.
사람이 위기에 처하면 살아온 지난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잖아요.
그 어두운 공간에서 ‘실명과 구속’을 우려하며
피 내린 눈두덩을 다독이던 그 순간은 자못 처연하기까지 했었지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그런 황망한 경험이었습니다.

물론, 독재에 항거하다 분연히 산화해가신 이들에 비하면
그런 걸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아픔’이라고 말하기조차
쑥스럽기 그지없지만 얘깃거리 삼아 이런 기억을 편지글로 옮겨 보았습니다.
별 재미도 없는데다 무슨 연서가 맨날 이리 딱딱한가 싶기도 하겠네요.
교도소에서 검열 받아 밖으로 나가는 연서이다보니
사랑글다운 촉촉한 표현들을 어디 맘 놓고 쓸 수나 있어야 말이지요.
이런 전후 사정을 넉넉히 감안해 주시옵고 너무 투덜대지 않기를 바래요.

낙엽도 아직인데 요즈음의 내 마음은 이렇답니다.
‘빨리 빨리 눈이라도 좀 내렸으면!’
‘저 멀리 산등성 위로 개나리와 진달래가 쑥쑥 기어왔으면!’


오래 전 10월 12일 **옥에서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사랑 서신 제114호


금쪽같은 접견 시간을 낭비해 가며
혜송님을 앞에 두고 그에게 괜한 역정을 낸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최근 들어 그가 뭔지 모르게 빗나간 착각을 하는 듯했고
얄팍한 머리 굴림을 보여 왔기에
그에게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5, 6공 독재치하도 아닌 시절에
아직도 그런 류의 실랑이를 해야 하는 게 영 씁쓸합니다.
교도소란 곳이 교정, 교화의 기능보다는
억압과 구속, 징벌의 기능을 우선시하던 ‘까막소’ 시절의 관성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 까닭일 겁니다.
범죄자들을 격리시키는 특화된 공간임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교도소만큼 행정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봉쇄되고
무소신 행정으로 일관하는 곳도 없을 겁니다.
하나는 있되 둘은 없고, 위는 있되 아래는 없고,
앞은 있되 뒤는 없고, 우는 있되 좌가 없는
일차원적이고 원시적인 평면의 세계라고나 할까요.
이런 곳에서 수년씩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관과 소신, 자율성과 창의성을 잃어버리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자율과 소신과 창의가 보장되는 근본적인 행정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직원에게든, 재소자에게든 예외 없이 교도소란 곳은 정말
사람 살 곳 못되는 삶의 오지임과 동시에
범죄자를 교정, 교화하여 사회에 적응시키는 ‘교도소’가 아닌
분노와 절망과 적개심과 범죄의 기술을 전수하여
누범자를 양성하는 '교악소'라는 오명을 결코 떨쳐버리진 못할 성 싶습니다.

어찌 보면, 학교의 교사들이 하얀 백지 같은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지식의 첫 그림을 그려 주는 ‘선생님’이라면
이곳의 직원들은 잘못 그려진 그림 탓에 인생이 빗나간 범죄자들에게
잘못 그려진 그림을 수정하고 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교정, 교화하는 ‘선생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소신과 자부심으로 이 흉악한 삶의 오지를 인생의 행로로 택한
젊고 의욕적이었던 직원들이 근무한 지 채 1년을 넘기도 전에
‘교도소 직원은 출퇴근하는 재소자’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고백을 하는 걸 보면서
교도행정에도 참 많은 손질이 필요하단 걸 느끼곤 합니다.
위로는 앞뒤 꽉 막힌 무자율, 무창의, 무소신 행정에 치이고
아래로는 재소자들과 부대끼며 1~2년 정도의 낮과 밤을 지새다 보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근본적 회의가 들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터입니다.

그런 저간의 정황들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오늘 난 그에 대해 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의 지나치리만치 소신 없고 수동적인 사무적 태도에 생채기가 난
나의 자존심이 향후로는 더 이상 손상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론 상호 배려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오직 나와 우리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를 대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서로 간에 배려할 것도 배려 받을 것도 없는 철저히 사무적인 관계,
그가 스스로 그런 선택을 원하면 나 또한 거리낌 없이
그리 응해 주리라고 작심하니 마음은 한결 편해집니다만
그간 닦았던 도가 한순간에 도로아미 꽝불 되는 아쉬움은 진하게 남습니다.
언제나 내가 예수나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 수 있을까요.
수양이 덜된 건지 적절히 분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네요.
아직도 공부가 많이 더 필요한 가 봅니다.

오늘, 예기치 않게 모가 나 버린 하루를 돌아보면서
새삼스럽게 ‘소신 있는 삶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단상을 가져보았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참으로 천차만별이라지만 난
사람 사는 삶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봅니다.
그 하나는 ‘소신 있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무소신의 삶’이라고나 할까요.
전자가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며
양심과 도덕과 정의에 따라 사는 대자적 삶이라면
후자는 대체로 일신의 안위와 명리를 중시하며
시류와 현실에 영합하거나 때에 따라선 비양심과 부도덕과 불의와도
타협하며 살아가는 즉자적 삶이라 할 것입니다.
전자가 적극적, 자율적, 능동적, 주체적 삶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소극적, 타율적, 수동적, 비주체적인 삶인 게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역사를 창조하고 전진시키는 힘은
전자의 사람들로부터 추동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언제나 고난과 핍박의 한 가운데에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역사를 전진케 한다는 그런 소명 의식이 있었기에
기꺼이 고난과 핍박을 감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이 고난과 핍박을 꿋꿋이 감내할 수 있었던
가장 절박한 이유는 그런 역사적 소명 의식 말고도
바로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 따라 살고자 하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렬한 지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요, 결국은 그것입니다.
모든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게 하는 힘,
그것은 바로 자유와 자유로운 삶에 대한 의지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자유를 확대해가는 과정’이었다 할 것입니다.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온갖 굴레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자유,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인종의 자유, ..............................

그러나 이토록 수많은 형상의 자유들이 지향하는
궁극적 이데아는 바로 ‘정신의 자유’라고 할 것입니다.
이 ‘정신의 자유’는 모든 자유의 근원이며 궁극입니다.
앞서 내가 말한 ‘자유로운 삶’이란
바로 이 ‘정신의 자유를 향유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을 얻기 위하여 고대 희랍의 어느 철학자는
기꺼이 길거리의 개처럼, 거지처럼 살기를 마다지 않았고
고대 인도의 어느 왕자는 왕관을 버리고
보리수나무 아래서 고행을 마다치 않았으며,
20세기 한반도의 어느 사회개혁가들은
반백년의 세월을 0.75평 감방에서 쪽잠을 마다치 않았습니다.
내일 당장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노라던 어느 서양 철학자의 금언이나
불의와 타협하며 금뱃지를 두 번 세 번 달기보다는 초선의원으로서
장렬한 전사를 맞이하겠노라던 어느 국회의원의 비장한 일갈이나
굵고 짧게 살겠노라던 어느 군인의 좌우명 그 모두
‘정신의 자유’를 향한 소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결국 소신 있는 자만이
이 정신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며 자유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소신껏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때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소신 있는 사람들이 감내하는 자기 핍박의 이면에 서린
그 무한한 자유의 기쁨을 그 행복감을 그들은 결코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길바닥을 구르는 거지라 할지라도
자신의 소신에 따라 스스로 정신의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라면
그 뉘라서 그 삶을 감히 헛되거나 모자라다 비난할 수 있을까요.
세속적 기준으로 내로라하는 그 갖은 잘난 사람들조차 종국에는
십자가 앞에 무릂 꿇고 절간의 미소 앞에 엎디어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지 않던가요.
모든 건 인간의 기준입니다. 잘나고 못나고도 인간의 기준입니다.
배우고 못배우고도 인간의 기준입니다. 있고 없고도 모두 인간의 기준입니다.
그 기준 모두가 굴레입니다. 그 기준과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무한 자유, 정신의 자유를 위하여, 소신껏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정녕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난 오늘 그를 공박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일어난 사단이 그간 접견실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짧은 만남을
은연중에 압박하던 무형의 그 무엇인가를
걷어내는 계기가 되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에겐 얼마나 소중하고 애틋한 시간인데 그만 달리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많이 아쉽지만 자유로운 삶을 위한 의미 있는 대항이었다 자위합니다.
접견 감상문이 괜스레 무거운 글로 메꿔지고 말았네요.
혜송님, 오늘 있었던 불쾌한 기억일랑
길 가다 옷깃에 앉은 먼지인 양 털어버리세요. 나 또한 그럴게요.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오래 전 9월 18일 **옥에서

꽃 도둑의 궤변...사랑 서신 제113호







***역 꽃밭에서 봉숭아 꽃잎을 탐하다가 혼났었다구요?
이럴 때 웃는다면 놀려먹는 것일 테지요.
근데, 그 양반도 좀 그러네요.
‘당연히’ 혼쭐을 내는 거야 뉘라서 뭐라겠냐마는
기왕에 딴 것마저 싹 빼앗아 가다니 조금은 야박한 응징이네요.
주위에 눈들이라도 있었으면 많이 멋쩍었을 터인데, 쩝.
원래 아저씨들이 아가씨들한테는 맘 약해지는 법이거늘
역 근무 중에 유사한 일들이 잦아서 어지간히도 짜증났었나 봅니다.
내 키우던 봉숭아가 에프킬라 먹고 죽지 않았으면
지금쯤 한 움큼 수확해서 편지에 담아 보낼 수도 있었을 것을.

‘봉숭아는 여느 꽃들과 달리
꽃잎을 따다 물들이는 게 보는 것보다 우선하는 꽃‘이라 항변했다면서요.
크~, 혜송님도 보기보단 참 맹랑하네요.
떽끼, 죄 지어 놓고 고딴 궤변이나 늘어놓으니
역무원 아저씨가 당연히 손에 든 것마저 홀라당 뺏을 수밖에요.
살살 웃으면서 아저씨 비위를 맞춰드려도 시원찮을 판에
꽃 도둑 아가씨의 맹랑한 항변이라니, 그 상황이면 내라도 뺐겠네.

무릇 사람들이란 너나없이
비록 알량한 수준의 것일지라도
사회나 조직이 자신에게 부여해준 권한과 권위를 행사하면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은근~히 과시하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거든요.
사실 그런 것도 다 세상사는 맛의 하나 아니던가요.
아저씨의 나름 세상사는 맛에 고처럼 맹랑(명랑?)하게 초를 쳤으니
역무원 아저씨께서야 당연히 적개심을 드러내셨겠지요.
혜송님은 역무원 아저씨의 세상사는 맛에 초를 쳤을 뿐만 아니라
생뚱맞게도 ‘꽃은 따는 게 아니라 보고 즐기는 것’이라는
아저씨의 ‘소신’에도 정면 도전했던 겁니다.
그러니 이미 딴 봉숭아조차 몰수당하는 그런 가혹한(?) 응징이 가해질 수밖에요.
아니 어쩌면 혜송님 앞에서 몰수한 봉숭아를 발로
쿡쿡 짓밟아 버리지 않은 것만도 감지덕지 하셔야지요, 풉.
하하, 파란 가을 하늘 아래 한적한 간이역 꽃밭,
시꺼먼 늑대 같은 우람한 아저씨와
하얀 여우 같은 조그만 아가씨가
붉으락푸르락, 떽떽, 쫑알쫑알, 궁시렁궁시렁, 투덜투덜대며
대치하고 있는 모습, 정말 볼만했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정겹고 재미난(?) 한 폭의 그림이네요.
내가 옆에 서 있었음 누구 편을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참 난처한 상황이네요.
혜송님, 이다음에 함께 나들이라도 나갔을 때
이번처럼 엉뚱한 사고 쳐 놓고서 나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하는 건 아니겠지요.
고런 방향도 예측할 수 없는 럭비공 같은 엉뚱함이
조신한 혜송님의 또 다른 얼굴이라니 이거 참 많이(?) 고민되네요.
고민, 고민, 고민....................................


벌써 가을인가요.
아침에 깨면 옥창너머 뒷마당 풍경이 제법 풍성합니다.
창을 열면 상큼한 가을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두 뺨에 살갑습니다.
언제 만나도 반갑고 정겨운 가을 아침 바람입니다.
오늘 아침엔 한동안 뜸하던 까치가
뒷마당에 장승처럼 뻗친 잣나무 가지에 앉았습니다.
교도소 까치는 신통력이 덜한 건지 저리도 요란스레
까치까치 울어대도 별로 덕 본 일도 없습니다.
예전에 내 옆방에 살던 어떤 이웃은 외려
까치 울면 재수 없노라고 그러데요.
하기는 빤한 징역살이에 좋고 나쁜 일의 구분이 무에 그리 대수겠어요.
매번 지녔던 기대가 실망으로 축적되던 끝에 나온 푸념이었을 겁니다.

참, 개미들이 드디어 이사를 했네요.
먼저 번 비 난리 때 내내 물에 잠겨 지내더니
도저히 힘겨웠던지 잣나무 밑동 높은 지대로 옮겨 갔답니다.
여름 내내 농사는 안 짓고 집수리에만 매달린 터라
찬바람 나기 전에 월동 준비나 제대로 할 수 있을래나 모르겠네요.
내년 봄 집터 잡을 때는
여왕개미가 ‘올여름의 고생’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할 터인데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미물이나 여하간 대장 잘못 만나면
것도 큰 고생이라니까요.

잣나무는 참새들도 잘 노는 곳이랍니다.
참새라면 길거리 돌멩이만큼이나 흔하디흔한 새이건만
이젠 도심지에선 참새 보기가 쉽지 않지요.
참새가 참 이쁘다는 생각을 이곳에 와서 새삼 지니게 되었습니다.
다소 경망스러워 보이는 그 움직임이
생기 없는 옥중에선 그게 더 큰 매력으로 보이네요.
그 재바른 움직임이 옥중의 아침을 한결 활기차고 생기 넘치게 한답니다.

그리고 가끔 누런 고양이 한 마리가 어슬렁대지요.
이 고양이는 내가 이곳에 왔던 2년 전부터 보아 왔었는데
무슨 죄를 지었는지 징역 꽤 오래 사네요.
밤낮없이 옥중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이곳의 무법자랍니다.
몇 마리 다른 고양이들도 있지만 이 누렁 고양이가 대장인 듯합니다.
하여간 얼마나 능글맞고 거들먹거리는지
어떨 땐 가만 보고 있으면 헛웃음 날 때도 있다니까요.

그래도 매일 아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뒷마당에 찾아드는 단골손님은 비둘기랍니다.
많을 땐 3~40마리가 떼거리로 다니다가도
적을 땐 한 쌍, 혹은 달랑 한 마리만 올 때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엔 열 댓 마리 정도 왔는데 아주 웃긴 장면을 보았어요.
다른 비둘기들은 먹이 찾느라 시골 장날처럼 분주한데
비둘기 한 쌍이 술래잡기 하듯 까불거리는 모습이 유별나데요.
뽀빠이처럼 떡대 좋은 수컷 한 마리가
날씬하고 빛 고운 깃털을 가진 암컷 뒤를
쉼 없이 종종거리며 쫓아다니는 겁니다.
싫은 건지 내숭인 건지 내 보기엔 암컷이 아주 귀찮다는 듯 피하는데도
수컷의 고집이 꽤나 억척스럽더군요.
사람이나 비둘기나 하여간 수컷들이란 암컷을 ‘귀찮게’ 하는 건 거서 거네요.
근데 한 순간 웃기는 일이 벌어지데요.
암컷이 도망을 다니는 와중에도 먹이를 발견하고는 콕 쪼아 물었는데
그걸 본 수컷이 느닷없이 암컷 입에 물린 먹이를
뺏으려 험악하게 달려드는 거 있지요, 그거 참.
지켜보던 내가 다 민망해지던 걸요.
죽어라고 쫓아다닐 땐 언제고 먹이 앞에서 그런 결정적인 추태를 보이다니
고놈이 세상 수컷 망신 다 시켜놓지 뭡니까.
아마 오늘 중에, 그 한 쌍의 비둘기가 부부였으면
도장 찍고 서류작성해서 비둘기 법원 갔을 게고
연인이었으면 그 암컷 비둘기가 중대 선언을 하진 않았을까요?

어떤가요? 혜송님,
이런 장면들이 아침이면 내가 보는 옥 뒷마당의 정경들입니다.
아 참, 오늘 아침엔 한 가지를 더 보았네요.
파란 하늘 점점이 떠가는 구름 사이로 혜송님도 보았습니다.
혜송님의 생활 구석구석에 내가 있다 했나요.
마찬가지로 혜송님도 내 머문 곳 어디에나 함께 자리하고 있네요.
바람 속에도 구름 속에도 별 속에도 달 속에도 있고
아침에도 있고 밤에도 있고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머물지 않는 곳이 없답니다.

내일이면 혜송님이 오시는 날이네요.
혜송님이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혜송님에게로 갈 수 있는 그 날이 어서어서 오길
파란 하늘 하얀 구름에게 한껏 소망해보는 아침입니다.


오래 전 9월 17일 **옥에서

공허한 메아리...사랑 서신 제110호


코스모스(들국화인가요?) 두 송이가
멋대가리 없는 희멀건 규격 봉투의 기를 한껏 살려 주는군요.
난 혜송님의 그런 아기자기한 정서가 참 좋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 역시 무뚝뚝이 앞에선 무뚝뚝이가 되고
아기자기한 사람 앞에선 아기자기한 천성이 살아나게 되거든요.
긴장감과 비장함에 짓눌려 멋대가리 하나 없이 건조하던 나와 내 삶에
한껏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는 혜송님이야말로
내게는 희멀건 규격봉투 위에 그려진 코스모스 같은 존재랍니다.

예순 번째 글 받았습니다.
윗사람들이나 고마운 사람들의 생일날만은 챙기고 살자는
혜송님의 주문에 깊이 공감합니다.
기념할 날 많은 특별히 잘난 사람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겐
생일은 년중 유일의 소중한 기념일일 수도 있겠지요.
암튼 생일이란 잘났든 못났든 그 누구에게나
챙겨 줘서 기쁘고 축하 받아 기쁜 날인 것만은 분명할 겁니다.
기왕에 내 삶에서 '큰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만치
그간 뒷전에 물려 두고 소홀하게 대해 왔던 자잘한 삶의 양식 전반을
가다듬어 볼 수 있도록 두루두루 애쓰겠습니다.
이번처럼 내 삶 여기저기에 숭숭 뚫려 있는 구멍들을
소리없이 메워주는 혜송님이 곁에 있다는 게 내겐 참 큰 복입니다.

사라진 진달래와 개나리 편지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가슴 속에서
시들지도 퇴색하지도 않으면서 언제까지나 활짝 피어 있을 것을 생각합니다.

민호가 나이에 걸맞잖게 의젓하네요.
난 솔직히 아빠의 글보다 민호의 글이 훨씬 감동적이고 가슴을 떨게 합니다.
오선배의 글을 대하는 순간 마치 10여년의 세월을 역류하는 듯했습니다.
애국하는 마음과 열정이야 시공을 초월할 수도 있겠지만
애국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그 시대의 정신을 도외시하고서는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오선배의 혁신 정당론에 대해선
그 순수한 애국적 열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그 인식의 내용과 표현의 양식은
급변하는 작금의 시대 정신을 반영치 못하고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음을 지적치 않을 수 없습니다.
가혹한 혹평일진 모르겠으나 내겐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와닿습니다.
작금의 시대 정신으로 보면
‘혁신 정당’, ‘혁명’, ‘상층통전, 하층통전’이니 하는 용어들은
학술적 개념으로서만 유효할 뿐 이제는
그 실천적 의미가 상실된 지 오래인 박제화된 개념입니다.
오선배가 실천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그런 용어와 개념들의 자리에는
‘개혁정당(진보정당)’, ‘시민운동; 시민사회운동’,
‘정보,통신,과학기술,환경,문화’, ‘정당 정치;의회 정치’ 등등
보다 다원화되고 탈이념적인 용어와 개념들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오선배의 주장들이 설령 그 논리적 정합성과 타당성을 지닌다손 치더라도
시대적 여건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생명력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80년대 초,중반에나 먹혀듬직한 박제화된 주장일 뿐이란 겁니다.
근자에 논의되는 ‘21세기를 지향하는 한국사회운동의 쟁점’들에 견주어 볼 때 느닷없이 맞닥뜨린 오선배의 글은 참으로 어색하고 거북하게 다가옵니다.
컴퓨터로 게임이나 통신을 하는 어린이의 귓전을 때리는
갓 쓰고 상투 튼 할아버지의 공자 왈 맹자 왈인 게지요.
21세기를 예비하는 시대정신의 주류가 ‘사랑과 조화, 상생’이라는 화두 아래서
그 큰 틀들이 짜여가는 지금에도 오선배의 인식은 여전히
‘투쟁과 대립’이라는 20세기적 시대정신에서
한 치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 열 서넛 모여서
'무슨 무슨 대오'라는 써클을 형성했다가 적발되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도
오늘 오선배의 글에서 받은 느낌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더랬습니다.
그 모두 관념적 좌편향들이라 지적치 않을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오선배가 8페이지에나 걸쳐 쏟아 부은 열정이
내겐 전혀 무감동한 언설의 낭비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80년대 지하 팜플렛에서나 봄직한 그런 오선배의 고루한 주장들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작금의 나의 사색과는 하등의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돌아 보면,
‘사상을 획득하는 것’만큼이나 ‘사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쉽지가 않네요.
사실, 사상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정녕 작지 않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3년여 동안 난 줄곧 그 고통을 인내하며
기존의 사상을 점검하고 변화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신사고를 정립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탁상머리굴림 속에 이루어지는
관념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만 '변화와 새로운 시작'에 그 의미를 두려합니다.

혜송님, 혹여라도 민호 어머니를 통해 나의 반응을 물어 오면
그냥 두리 뭉실 넘어가세요.
세상이 급변해 가는 만치 조만간 그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오선배 역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다 이성과 합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요.

혜송님, 오늘 글은 많이 무거웠네요.
추석 휴가는 잘 보낸 건가요?
어머님, 아버님과 친지들께서 명절날에도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
혜송님의 짝을 많이 탓하시진 않던가요?
그 죄스러움일랑, 아쉬움일랑, 안타까움일랑 조금만 더 삭여둘 수 밖에요.
혜송님의 처신이 여러모로 난감할 터입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조금만 더 힘 내고 견뎌가자라는 말도 이젠 낯간지럽네요.

운전하게 되면 조심, 조심, 또 조심하세요!
잘 지내요. 언제나 나의 사랑은 하늘만큼 땅만큼입니다.


오래 전 9월 5일 **옥에서

"왜 안 쓰고 그래 !"...사랑 서신 제108호





1.
혜송님 보고 나서 날아갈 듯 하네요.
기쁜 마음에, 들뜬 마음에, 행복한 마음에
운동 시간에 농구하면서 덩크슛이라도 가능할 듯 펄펄 날았지요.
밥맛도 꿀맛이고 머리도 무겁질 않아 책 읽는 일도 한층 가벼웁네요.
오늘 밤엔 잠자리도 아늑할 듯 싶은 걸요.

2.
오늘은 시간에 쫒기질 않고 제법 여유로웠지요.
준비한 얘기들 빠뜨린 것도 없는 것 같고.
그래도 눈치 보이대요.
면회 담당자가 출근 길에 돈지갑이라도 주웠던 걸까요.
모처럼 시간 눈치 보질 않는 한가로운 면회를 가졌었네요.
그래봐야 1시간 남짓인 걸.
1시간 정도 약속 시간 어기는 걸 너무도 수이 여기는
바깥 세상 시간 많은 연인들이 무려 1시간이나 되는 긴(?) 만남에
이토록 감읍(?)하는 연인들도 있음을 알까요.
1시간이 주는 여유, 오늘 참 새삼스러웠습니다.

3.
나를 보지 않을 땐 얼굴도 연심도 망각할 듯 하다는
혜송님의 감정이 천박한 게 아니라
그런 걸 두고 인지상정이라 하지 않나요.
눈에 보이면 좋아라 하고
보이진 않을 땐 샐쭉 토라지는 건
세상 많은 연인들의 한결 같은 심보일 겁니다.
세상의 평범한 이치로 보더래도
헤어져 흐리지 않는 얼굴 없고 멀어져 잊히지 않는 얼굴 없다잖아요.
못보아도 안보아도 그 연이 끊길래야 끊기지 않는 혈육과는 달리
연인들 간엔 끊임없는 부대낌을 통해
사랑을 확인하고 다져가는 사랑의 작업은
결혼 이후에도 끝없이 이어가야만 하는 평생의 업이라 할 테지요.
연애도 결혼도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입니다.
흔히 ‘순애보’란 관념적으로 형상화된
소설에서나 구전을 통해 전해지는 아주 특별한 사례로서의 얘깃거린 아닐까요.
누구나 특별한 사랑의 주인공이 되고픈 꿈을 갖지만
그런 꿈은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그리 흔한 건 아닐 겝니다.
예나 지금이나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절대 다수 사람들의 평범한 삶 속에선
아무래도 사랑이란 여타의 다른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주고 받는 데서 그 특유의 생동감과 현실감이 우러나고 유지되어 가는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
한 나절만 나다녀도 몸이 쉬이 피곤해진다는 걸
나이 탓으로 돌리는 건 건강에 대한 태만이네요.
우리가 육, 칠십 넘은 노인네는 아니잖아요.
내 볼 땐, 나이 탓이 아니고
혜송님의 몸이 활동량을 감당해내기에 버거운 듯 보여지네요.
건강 관리 잘 하세요.
혜송님의 몸이 건강하질 못하면
우리들의 2세 계획은 요원해질 수도 있습니다.
사랑도, 결혼도, 2세도 내겐 처음부터 사치스런 욕심으로 작정된 터였기에
처음부터 없던 욕심을 버리는 일은
남들과 달리 내겐 의외로 간단한 일이 될 수도 있답니다.
지금의 내겐 혜송님의 건강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욕심이자 소망임을 잊지 않길 바래요.

5.
“왜, 안 쓰고 그래 !”
하하, 혜송님의 토라진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아무리 썩은 고목나무처럼 멋대가리 없고 무뚝뚝하대도
샐쭉 토라진 여인네의 흘김 앞에서 버텨낼 재간을 지닌 남정네들이 있을까요.
토라진 혜송님의 모습을 글로서 밖에 볼 수 없음이
마냥 아쉬울(?) 따름입니다.
어느덧 그렇게 되었네요.
지금의 우리들에겐 편지는 마약과도 다를 바 없지요.
사방 밖으로 구두 발자욱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그저 머리 속엔 온통 혜송님의 사랑글에 대한 기대로만 가득하게 된답니다.
혜송님이나 내나
편지글 쓰느라 잠 시간 줄이지 마세요 하면서도
속심은 전혀 그렇지 않은 걸 이거 참 금단 현상도 아니고...
누구는 하루라도 글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댔는데
우린 하루라도 편지글을 읽지 않으면 눈에 가시가 돋을 판이네요.
편지 한 장 받고서
몇 번이고 보고 또 보며 저녁 내내 갖고 놀다가
다음 날 눈 뜨면 ‘또 편지 안 오나’하고
들뜬 기대에 하루 하루를 넘겨가게 되지요, 그렇지요?
징역살이 이거 아무래도 오래 하다간 편집증이라도 생길까 겁납니다.
워낙에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제한된 닫힌 공간이다 보니
애착이 가는 사물과 현상에 집착하는 증세가 날로 심해가는 듯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사실, 기다림과 그리움의 아픔을 이겨내는 데는 편지만큼 큰 힘도 없지요.
혜송님이 예전에 말했듯이,
그 어떤 영화도 소설도 우리가 주고받는 편지글만큼
신나고 재미있고 설레는 감동을 안겨주진 못할 성 싶습니다.
혜송님, 혜송님보단 내가 아무래도 시간이 많으니
여기 저기 편지 쓸 곳이 많더래도
혜송님께 글 쓰는 일을 가장 우선으로 열심히 쓸 게요.
이제 그만 토라진 표정 풀고 밥 많이 챙겨 드세요.

6.
오늘은 유정 후배가 정면에 않았대서
혜송님을 찬찬히 살펴보기가 못내 쑥스럽고 눈치보였답니다.
유정 후배가 알기나 할래나, 내 이런 유치한 삐짐을 말입니다.
유정 후배 언제 봐도 씩씩하고 참 고맙고 정겨운 사람입니다.
먼 길 마다 않은 수고와 격려에
무척이나 고마워 하더라고 다시 한 번 인사 전해 주세요.
찰나간이었지만 접견장을 나서는 혜송님의 바지 차림 뒷모습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지내요!!
특히, 새벽녘엔 이불 잘 덮어야 합니다!!


오래 전 8월 28일 **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