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웬 삭풍?...사랑 서신 제135호



며칠째 이곳의 아침 최저 기온이 빙점에서 오락가락하네요.
새벽 한기가 바짝 독 오른 독사처럼 매섭습니다.
그야말로 군인들이나 노숙자들, 재소자들에겐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실감나는 계절입니다.

이런 날들에 꾸며지는 내 잠자리 모양을 그려볼까요.
생마루 바닥에 얇은 모포 1장,
그 위에 군용 매트리스 1장,
그리고 그 위에는 침낭을 하나 얹고
다시 침낭 위로 담요 2장을 덮은 후 침낭 속으로 파고듭니다.

감방 추위 모르는 사람들이야
담요에다 매트리스에다 침낭 등 무려 5겹이나 되는
푹신푹신(?)한 잠자리를 두고서도 그 무슨 호사스런 푸념인가 할 테지만
그게 말입니다, 생 마루 바닥과 날 콘크리트 벽의 냉기와 외풍이
얼마나 고약한지를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오늘 새벽, 늘 깨던 시각에 눈을 떴습니다. 여섯시쯤.
3년 별리 끝에 만난 각시 껴안듯 휘감았던 담요를 밀어내고
자라 목 내듯 머리를 빼에~꼼 내미는 순간 휘이~잉!
헉, 이게 웬 만주 벌판에서나 만남직한 그런 삭풍인가요.
게 눈 감추듯 휘리릭~ 침낭 속에 그만 머리를 다시 묻고 말았습니다.
잠깐 담요를 들쳤다 말았건만
감방의 새벽 한기가 침낭 속을 매섭게 헤집고 달겨듭니다.
이건 뭐 춘향이 뒤꽁무니 쫒는 변사또의 심술과도 같습니다.
징역의 새벽 한기, 찬 계절 내내 웬수가 따로 없습니다.

깰까 말까 깰까 말까..............
그렇게 십여 분을 꼼지락거리다
이번엔 큰 맘 먹고 단박에 모포를 화~악 까 제치며 벌떡 일어섰습니다.
허~억, 근데 이게 또 내 맘 같질 않네요.
담요 밖으로 머리만 살짝 내밀었을 때랑
온 몸을 까발렸을 때랑 그 느낌이 결코 거서 거가 아니더군요.
하, 오늘 이거 스타일 제대로 구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 !
결국, 기지개 한 번 켜보지도 못하고서
난 다시 침낭 속으로 볼 성 사납게 찌그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뒤 기상나팔의 힘을 빌어서야
비로소 징역의 아침을 깨울 수 있었습니다.

“여보 님, 일어나서 밥해야지”
“으~응, 니가 해”
“싫어, 이렇게 추운데 니가 해”
“나도 싫어, 그냥 굶자”
“......................................”
“......................................”

후후, 이게 장래의 우리 모습이면 곤란하겠지요.
학창 시절 난방이 안 되는 자취방의 고충, 솔찮이 겪어 보았습니다.
어쩌면 난방 안 되는 집의 새벽은 감방의 새벽보다 못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적어도 징역살이에선 추운 새벽에 일어나 밥할 걱정은 않아도 되니까요, 큽.
근데 세상살이가 몹시도 궁핍한 혹자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농이 아닌 현실인 경우도 없질 않습니다.
춥고 배고픈 바깥세상 겨울나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역부러 무전취식 같은 작은 범죄를 저지르고
감방을 찾아드는 이들도 있다하니 말이지요.
그들 앞에선 ‘배부른 징역’보다야 ‘배고픈 자유’가 낫다는 주장일랑
제대로 배곯아 보지 않은 자들의 사치일련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마다 사는 모습이 저마다 다르고 생각 또한 천차만별이니만치
배고픈 자유보다는 배부른 징역을 선택한 그들의 그 절박한 선택을
뉘라서 쉬이 ‘그르다’며 속단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배부른 구속보다는 배곯아 죽을지언정
배고픈 자유가 한결 낫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지금은 오전 10시를 약간 넘은 시각인데
혜송님은 지금 뭣하고 있을래나요?
당번 근무 중일까요.
그러고 보니 벌써 또 한 주가 흘렀네요.
변덕스런 내 맘 따라 세월이 빨랐다 늦었다 하네요.
내일 면회 때는 유정 후배랑 함께 찾을 지도 모른다 했나요.
내 얼마 전 편지에서 유정 후배 험담(?)을 늘어놓았던 탓에
도둑 제 발 저린 격으로 콩닥콩닥 가슴조리고 있습니다.
뻔뻔스럽게 잘 맞이해야 할 텐데요.
오늘 밤 면벽하며 표정 연습 좀 해두어야겠습니다.
말로 지은 죄 씻어 주십사 부처님 전에 미리 용서도 빌면서요.
보살, 보살, 보살, 보살, 보살, 보살,. ..............

활기찬 휴일을 보내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오래 전 11월 5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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