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눈 뜨는 아침”...사랑 서신 제107호


혜송님을 어제 밤 꿈속에서 보았네요.
비 탓인지 오늘 새벽녘 한기가 사뭇 으슬으슬 하던 걸요.
깰까 말까 깰까 말까
한참을 선잠으로 뒤척대다 결국은 깨고 말았습니다.

자다 깨어 이부자리 판갈이에 나섰지요.
요 한 장 더 깔고 여름용 홑이불을
담요로 바꿔 덮었더니 아, 천국이 따로 없더만요.

담요가 그리도 포근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줄
3년을 쓰고서도 내 미처 몰랐었네요.
온 몸으로 퍼져오는 그 따스함, 아늑함이란!
올 여름 들어 처음 덮어 보는 담요에서 포근함을 느끼다니
어느새 또 한 번의 가을이 스멀스멀 다가오나 봅니다.

혜송님의 체온을 느끼듯
아름 가득 담요를 안고선 이내 다시 새벽 깊은 잠 속으로....

너무도 아늑하고 깊은 잠 탓이었을까요.
좀처럼 꿈을 꾸질 않는 내가
꿈을, 그것도 아주 아주 단꿈을, 혜송님과 함께 하는 꿈을!
주간 내내 혜송님 보고픈 마음에
넋을 빼 놓고 지낸 탓인가요.
그리움이 꿈이 되었네요.

동료 공안 사범 7~8명과 더불어
어디론가 갑작스레 이감을 가야만 했습니다.
부랴 부랴 짐을 싸다가 옆을 보니
그 7~8명의 무리 속에 혜송님이 빙긋 웃고 섰더군요.

우리들 무리가 도착한 곳은 어느 황량한 벌판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우리들만을 위한
특별 사옥이 몇 동 새로 지어져 있었답니다.
2명 1조가 되어 각기 수용되었는데
이런 행운이, 혜송님과 내가 한 방을 쓰게 되었네요.
남녀가 같은 방을 쓰는 징역살이가
세상 그 어디 있을까마는
이런 ‘꿈 같은 일’이 꿈 속에서 결국 이루어지고 말았답니다.

어쨌든 혜송님과 난
이감된 황량한 벌판 사옥에서 '꿈 같은'(?) 하룻밤을!
이게 무슨 횡재수인가요!
오늘 난 억세게도 운 좋은 새벽을 열고 있었던 거지요.
그 작은 사옥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답니다.

다음 날 아침,
우린 함께 눈 뜨는 아침을 맞았습니다.
그 얼마나 기다려왔던 순간인가요.
함께 눈 뜨는 아침!
아침에 깨어보니 그 곳은
감시자도 없고 출입의 통제도 없는 열린 감옥이었습니다.
혜송님과 난 감옥 밖 한참 멀리까지 아침 조깅으로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덧 벌판을 넘어
우리가 다다른 곳은 차와 사람들로 아주 번잡한 도로변이었습니다.
혜송님과 손을 잡고 건널목을 막 건너려는 순간,
“빠~앙”하는 경적 소리에
깜짝 놀라 깨어 보니 혜송님은 간 곳 없고
차도 사람들도 건널목도 하나 없는 삭막한 감방,
내 살고 있는 2층 맨 끄트머리 독방이네요.

나의 꿈, 내 사랑, 나의 간만의 자유를 앗아간 그 경적 소리는
바로 옆 사동의 어느 독거방에 수용된 어느 재소자가
지 사방문을 발로 차대는 소리였던 겁니다.
그 친구는 평소에도 새벽녘이면 무슨 연유에선지
사방문이 부서져라 차대며
재소자들의 새벽 단잠을 짓부수는 광기를 보이곤 했었던 친구이지요.
글쎄요, 뭔가 나름의 연유는 있을 터이지요.

그래도 오늘 아침 만큼은 그리도 얄미울 수가 없었다네요.
그만 그 친구 탓에
그 신나고 황홀했던 새벽 단꿈을,
일년 내내 웬간해선 꿈을 잘 꾸지 않는 내게
그토록 귀하게 다가선 소중한 꿈을 그만....
조금만 더 꿀 수 있었으면
조깅 끝나고서 혜송님과 함께
조반까지 나눌 수 있는 완벽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건만
고거 참 아까와 죽겠어요.

혜송님, 근데 참 그렇지요.
모처럼 꿈 속에 찾아 온 혜송님과 하룻밤을 지낸 곳이
호사스런 왕궁은 못될지라도
그나마 내 숨어 살던 ‘숲속의 방’ 정도의 운취는 있어야 할 터인데
황량한 벌판에 덩그러니 급조된 사옥이라니 이거 참,
아무리 징역살이 중에 꾸는 꿈이라지만
꿈속에서까지 징역사는 꿈을 꿀 건 뭔가요.

혜송님께 미안(?)하네요.
하룻밤 꿈속이긴 하지만 당신까지 징역을 살리고 말았네요.
그래도 혜송님과 함께 보내노라니 징역방도 왕궁 못지 않던 걸요.
가끔은 꿈도 꾸어 볼 만 하군요.
그런 꿈이라면 천 번 만 번이라도 꾸고 싶어지는 걸요.

비가 쉼 없이 내리고 있네요.
혜송님 사는 동네는 비 피해로 시달림 받고 있진 않나요.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 이리저리
서민들의 걱정은 끊일 날이 없을 테지요.
옥 뒷마당의 개미들의 고생도 이만 저만이 아니네요.
어지간해선 비오는 날에는
개미들도 전혀 집 밖을 나돌지 않는데
며칠 내내 내리는 비에 피해가 큰 때문인지
비 내리는 중에도 바깥을 분주히 나도는 개미들이 눈에 띄네요.
이번 여름 장맛비 피해가
개미들에게도 사람들에게도 고만고만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전 8월 26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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