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추의 한 !!!

천추의 한 !!!
작성일:2006.01.26.13:26


천추의 한


갈 길은 먼데
서산에 해는 저물고 바람도 길을 멈추니
산도 물도 말이 없네

그 뉘는
산을 산이라 하고 물은 물이라 했건만
알고 보니 산도 산이 아니고
물도 물이 아니었던 것을
무에 이끌려
그리도 헤매었던가

야속한 인정이여
너의 믿음도
나의 소망도
우리의 사랑도 헛된 지금
깊어가는 어둠은 속절없이 두터웁구나

해 지고 나면
산도 물도 이토록 허망한 것을
미쳐 날뛰던 생떼와 집착은
아물지 않는 생채기로 남누나

내일 또 다시 해 뜬다 해도
그 땐 우리 이미
한 웅큼 새벽 안개로 사그라지고 말 뿐

지난 자리 돌아보면
허망, 허망, 허망토다
내가 너를 믿지 못하고
네가 나를 믿지 못하고
우리가 그들을 믿지 못하고
그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건만
무슨 미련이 남아 검은 밤에 촛불 밝히리

그저
진실은 하늘이 되고 거짓은 땅이 되어
땅은 발을 붙들건만
머리 위로 저 아득한 곳에 하늘 있어
언제나 저 곳에 이를건가
다만 캄캄한 하늘은
너와 나, 우리의 거짓을 굽어볼 뿐 말이 없누나

비록 오늘
너와 내가 서로를 기망하여
달을 해라 하고 해를 달이라 해도
달은 달이고 해는 해인 것을
하늘이 열리면 그 때는 알리라

무엇을 바래야 하나
무엇을 버려야 하나
가슴 속 남은 앙금이야
어둠 속에 감추이면 된다지만
세상을 기망한 업은 끝 닿을 데 없고
수천, 수만 년 업이 되어 하늘에 기억되니
이를 두고 '천추의 한'이라 했는가

진실을 묻은 이들
그대들의 모든 이름이
하늘에 기억되니 그 뉘라서
손바닥 내밀어 하늘 가릴까
이윽고 밤은 가고 새벽이 온다

새벽 열린 밝디 밝은 하늘 아래서라면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랴
어둠 속에서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한통속으로
땅을 딛고 선 거짓이었건만

이제
내가 너를 살리랴
네가 나를 살리랴
이미 우리는 모두 죽어 있는데...

내가 너를 모욕하며 가르킨 엄지
네가 나를 조롱하며 가르킨 검지
그 둘이 굽어져 하나되어 원이 되어 돌고 있나니
이제사
산은 산이 아니었고
물은 물이 아니었고
산은 비로서 물이 되고
물은 비로서 산이 되누나

璜이 煌이 아니고
凰이 遑이 된 지금
이를 일러 하늘은 일찌기
'혼돈'이라 하는구나.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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