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홀로 섰을 노짱을 기리며...

벼랑 끝에 홀로 섰을 노짱을 기리며...
작성일:2009.05.27


*망부곡-노무현 대통령님 추모



기껏 하룻밤 지났을 뿐인데 어제의 풍경들이 벌써 아련한 느낌이다. 피로 탓일까...

26일 오후, 그 이의 마지막 흔적이라도 보려 봉하 마을로 향했다. 그의 귀향 후 관광 명소가 되었다는데 여느 이들처럼 진즉에 찾아볼 열성은 없었던지라 머잖은 곳임에도 첫걸음이었다. 줄서기를 워낙에 싫어하는 성정 때문인지 명절 기차표 예매를 위해 줄 서본 기억 말고는 어제처럼 오랜 시간 긴 줄을 기꺼이 감내한 기억이 있나 싶다.

“저 봐라, 아이들도 많이 왔잖아”
“쟤들도 다 나 처럼 끌려왔을 꺼야”

초3 딸아이의 볼멘소리에 할 말이 없다. 아이한테 사전 예고도 없이 방과 후 낚아채다 시피해서 결행된 일정이었으니 아이가 툴툴거릴 만도 하다. ‘끌고 온 게 맞다.’고 자인하는 대신 ‘예끼, 욘석!’ 하고는 얼버무리고 말았다.

달랑 국화 한 송이 영전에 올리고서 못내 아쉬웠던지 아이 엄마가 운다. 많이 운다. 서럽게 운다. 곁눈질로 살피다가 내 차오른 눈물샘도 넘쳐흐를 새라 애써 아이와 딴전을 피웠다. 저 치가 양가의 아버지들 여의었을 때 말고 저리도 슬피 눈물 진 적이 있었던가...나야 언제부터인가 남 앞에선 눈물을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혼자서만 몰래 눈물짓던 습성이 여전하다. 노짱의 죽음 앞에서도 그저 남몰래 가만히 눈물 지어왔을 뿐이다. ‘끌려온’ 아이의 눈에는 연신 눈물을 훔쳐대는 에미와 더불어 분주한 도심 같은 시골 모습이 참 많이도 낯선 풍경이었으리라.

노짱의 발때가 묻었을 마을길을 따라 돌았다. 그 어디에서도 언론이 그토록 요란 떨며 악담해대던 '아방궁'은 없었다. 그저 그런 촌동네에 눈에 띄는 별장 정도였던 걸 그 난리였으니...쯧. 얼마나 비렁뱅이 인생들이었으면 저 정도를 '아방궁'에 빗댔을까도 싶다. '아방궁(?)'은 초라했으나 '부엉이'는 사뭇 위압적이다. 기사에서 보던 것보다 부엉이는 훨씬 크고 높았다. 깎아지른 저 벼랑 끝에 홀로 서 있었을 노짱을 떠올리노라니 과연 ‘삶과 죽음이 자연의 한 조각’이란 생각에 절로 이른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 맘이 얼마나 아팠으면 저 벼랑 끝에 섰을까. 검찰과 언론의 살기 띤 난도질이 횡행할 때조차 난 그 ‘살기’를 살기로 느끼진 못했다. 아니, 그 예리한 검날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기에 침묵하며 묵언의 동조를 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벼랑 앞에 서고서야 비로소 이 ‘죽음’에서 나도 공범인 것을 깨친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대통령께 정말 미안하다. 미안해 하지 말랬건만 정말 정말 미안하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내 성질머리도 저 양반 못잖은 동류일진대 동류에게서조차 외면당한 그 고독감이 어떠했을지 그 절망감이 어떠했을지 꼭 일을 치러야만 깨치는 이 아둔함에서 언제나 벗어날까.

잘 가시라. 휘적휘적 멀리 멀리 가시라. 바람처럼 오고감에 제약도 없고 기약도 없는 자유를 맘껏 누리시라. 이제는 사람 사는 세상 저 너머 세외선당에서 고향에서 찾다만 영원한 평화를 누리시라. 당신을 벼랑 끝에 서게 한 모든 악업들일랑 예의 그 소탈한 너털웃음으로 끌끌끌 용서하시고 이 날선 세상에 자유와 평화의 신이 되어 다시 오시라.

자유와 평화, 그게 님의 마지막 바람인 것을 안다. 자유와 평화를 찾아 고향으로 떠나왔건만 당신은 죽어서야 자유와 평화를 얻었다. 자신의 고통은 참을 순 있어도 이웃의 고통만은 끝내 참지 못했던 당신, 그런 의로운 당신이었기에 당신의 마지막 선택은 자신과 더불어 온 세상 이웃들의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나래 꺾인 독수리의 마지막 비상이었음을 세세토록 기억하리라.

세상의 모든 부정과 불의 앞에서 비굴하지는 말되 끝없는 고통을 잉태하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더디 가도 함께 가는 자유와 민주와 평화의 정신으로 당신의 죽음이 휘황찬란하게 되살아오길 빌고 또 빈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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