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과 그리움...사랑 서신 제012호


혜송님,
큰 일입니다.
아직도 담장 안에서 살아야 할 날들이 많은데
기다림과 그리움의 농도가 점점 짙어만 가니.....

언젠가 그랬지요.
나는 꽤나 오랜 세월 동안
애써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잘 가공된 처신이 몸에 배여 버린 듯 하다고.
그랬던 내가 사회의 막장이라는 담장 안 생활로 제법 낯살이 두꺼워진 탓인지
이제는 점점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막무가내의 숫기만 왕성해져가나 봅니다.

감시자의 검열과 참관이 영 찝질하고 떨떠름킨 하지만
창살을 사이에 둔 제한된 만남과 편지글만으로 영그는 사랑은
세상의 많은 연인들의 그것처럼 은밀하고 달콤한 속삭임 하나 없이 멋적긴 해도
담장 안 생활에서 체득된 막무가내식의 숫기가
그런 찝질하고 떨떠름한 방해를 아랑곳하지 않는 뻔뻔함을 길러주기도 하고
담장 안의 지루한 일상을 이겨내는 활력이 되기도 합니다.

금요일 오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페이지의 책 읽기도 못하고서 그저 기다림과 그리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소동으로 우리의 만남이 한 주를 건너 뛰게 된 후과가
이리도 클 줄은 내 미처 몰랐습니다.

정말 큰 일입니다.
난생 처음 사랑의 열병을 앓는 사춘기 소년 같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이 참 새삼스럽습니다.
창피한 노릇입니다.

밖이라면 차라리 한 잔 소주라도 들이키고 한 개피 담배라도 피워 문다지만
누가 문이라도 열어 주지 않으면 꼼짝도 할 수 없는
1평 남짓의 폐쇄된 독방에서 그리움과 기다림을 삭이는 일이란
갇힌 자들이 가장 아파하는 비애 중의 하나일 겝니다.

이런 아픔을 때에 따라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어떤 규칙적 틀로 적정히 통제해 놓지 못한다면
그제나 어제, 오늘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서
이렇게 글만 쓰고 앉아 있거나
옥창 너머 멀리 푸른 하늘만 올려 보며 넋을 놓는 게으름뱅이가 되고 맙니다.

이리 지내선 안되겠지요.
아직도 이 곳에서 살아야 할 날들이 적지 않으니 말입니다.

혜송님, 요즘들어 난 가끔 이런 생각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건
귀여운 아기의 보드랍고 빨간 입몸을 뚫고 봉긋 솟구치는 새하얀 이빨 두 개 !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사무치는 연인들의 선홍색 심장 두 개 !


오래 전 1월 15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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