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언의 진정한 의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유언의 진정한 의미..
작성일:2009.05.25


이명박 대통령이 봉하 마을을 직접 찾아 조문하겠다고 한다.
일이 이리도 난처한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을 떠나
그리하는 게 마땅하고 그게 고인에 대한 예의가 맞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봉하 마을로 옮겨진 첫날부터
조문 온 여러 정치인들이 고인의 지지자들부터 봉변을 당하고 있다.
적자만이 생존하는 정글과도 같은 정치판에서
고인과 한 때나마 척을 짓던 정치인들이 그들이다.

그런 정적들 중 가장 대표된 이가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고인의 살아생전 단순한 정적을 넘어
고인을 죽음에 이르도록 압박해온 검찰 수사의 실질적 배후라 의심받기에 더욱 그렇다.
그를 향한 지지자들의 원성과 분노를 새삼 따져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그는 고인의 지지자들에게 최대 최고의 타깃임은 자명해 보인다.

그런 그가 현직 대통령의 자격으로 봉하 마을을 직접 찾아 조문하겠다 하니
예기치 않은 불상사라도 벌어질까 염려스럽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늙어 죽든 요절하든, 병사든 사고사든,
전직 대통령이었든 무명의 낭인이든, 죽어 마땅한 놈이었든 죽기 아까운 위인이었든,
그 어떤 죽음이든 모든 ‘죽음’은 숭고하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사람의 마음은 숭고해질 수밖에 없다.
정말 뒈졌으면 싶을 정도로 공분을 사던 사람도 막상 죽으면
그 죽음 앞에서 숭고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그런 마음을 갖는 게 사람이다.

몇 해 전 미국의 버지니아 공대에서 희대의 살인 행각을 저지르고
자살했던 조승희씨가 생각난다.
호들갑 떨던 한국인들의 예상과 달리, 버지니아 공대에 세워진 희생자들의 추모석들 사이에
가해자 조승희씨의 추모석을 함께 세워 애도하던 미국민들의 성숙된 태도를
참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모든 죽음 앞에서는 이승에서의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애도하는 성숙된 문화였다.

그런 성숙된 시민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한과 분노와 보복의 문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고인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 스스로 한과 분노를 근간으로 입문했던 정치 세계로부터 버림받는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 죽음에 이르는 절망의 병을 앓은 끝에 자기를 버림으로써
그는 산 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 하나를 남겼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이것은 자신을 버림으로써 고인이 지키고자 했던 마지막 가치이자
산 자들에게 당부하는 평화의 메시지였다.

그 숭고한 가치 앞에 온갖 때 묻은 자들을 서게 했으면 싶다.
오욕으로 얼룩진 정치판과 정치인들에게
양심과 명예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깨우칠 기회를 오롯이 제공했으면 한다.
흰 국화를 든 두 손을 떨게 하고 고인의 영전 앞에서 참회의 눈물들을 쏟게 하자.
고인이 산 자들에게 남긴 유훈은 원한과 복수가 아니라 화합과 평화였음을 알리고
이 나라 정치판과 정치인들 나아가 온 국민들이 환골탈태하는 계기로 삼자.

고인의 숭고한 의도를 저버린 채 경거망동하는 불상사가 없었으면 한다.
지지자들의 한과 분노를 모르는 거 아니지만
조문을 하겠다는 걸 막아 나서는 것도 도리가 아니다.
조문객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고인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조문을 허락하거나 용서를 하는 권리는 지지자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고인에게 있음을 잘 헤아려 이명박 대통령의 조문을 앞두고 자중했으면 한다.

국화를 든 손만은 해하지 말 일이다.
그가 고인 앞에 잘못을 되새겨 볼 경건한 순간을 박탈하지 말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조문을 앞두고 나쁜 기운이 감도는 게 안타깝다.
상중에는 싸우지 말고 최대한 경건했으면 하는 게 필부 예끼의 생각이다.

이제는, 사람 사는 세상 밖, 格外仙堂에서 바람처럼 자유롭기를 빌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깊이 애도합니다...

===東山高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