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짱의 죽음에 대한 몇 가지 단상들..

노짱의 죽음에 대한 몇 가지 단상들..
작성일:2009.06.05



그는 맑았으나 주변은 흐렸다

그가 떠난 지 열 사흘이 지났건만 충격이 쉬 가시질 않는다. 애닯기가 그지없다. 김대중 대통령이 ‘내 반쪽을 잃은 듯하다’라고 했던 말이 내게도 낯설지 않음은 고난의 동시대를 공유한 동지적 연대감 때문일 게다. 돌아보면, 대통령 당선 첫 해의 그는 폭압의 세월을 이겨낸 민주주의의 꽃이었고 상징이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희망은 꺼졌고 실망은 부풀었다. 어느 때부터는 고개 푹 숙인 할미꽃처럼 생김도 못나 보여 저 모습이 과연 민주주의 상징이고 꽃인가도 싶었다. 시나브로 말라서 죽어가는 꽃대에 물 주기도 귀찮아졌다. 죽든 살든 권력을 관장하는 지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싶었고 가뭄으로 목말라 할 때도, 짐승의 발길에 짓눌렸을 때도, 굳이 고개 돌려 살펴보지 않았었다. 권력을 향유하는 자들의 우는 소리가 호사스런 엄살로만 들렸고 더해서, 저런 난장을 보고자 몸에 불 놓아 투신하면서까지 그 고난의 행군을 거듭했던가 싶은 분노가 치밀기도 했었다.

전임 정권에서 민주화 보상 심의법이 발의되고 보상 심의 위원회가 꾸려졌을 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건만 우려대로 참여정부 내내 ‘민주와 개혁을 팔아 제 배 채운다’는 도덕적 비난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신청조차 거부하고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 살아가는 '그 때 그 자리 그 사람들'도 적지 않건만 싸잡혀 도매급으로 넘어갔다. 어물전 망신 꼴뚜기들이 다 시키는 꼴이다 싶었다.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도 꼭 한 번 쯤 내뱉고 싶은 말이었다. 그간 그러지 못했던 건 그 보상 심의법의 수혜가 꼭 필요한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뭏든, 여타저타한 이유들로 점점 애정은 식어갔고 386을 싸잡아 매도하는 자들을 향해 ‘저들은 386의 주변부일 뿐 정통이 아니다’라는 항변도 변명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는 대세 앞에서 탄식은 분노를 거쳐 무관심이 되었다. 급기야 난, 우린, 우리가 그들 탓에 얼토당토않게 도매급 취급을 당한 만큼 그렇게 노짱과 그들을 싸잡아서 싸구려 도매급으로 취급하고 외면했다.

지금에야 깨닫기는, 그는 맑았으나 그를 둘러싼 주변이 흐렸다. 역시 그들은 정통이 아니었고 주변부의 수준이었던 거다. 노짱은 프로였으나 그의 주변은 아마츄어일 뿐이었다.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그들의 아마츄어적 행태는 결국 노짱을 벼랑으로 떠미는 천추의 한을 남겼다. 노짱의 영전에 그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난 아직 알지 못한다.

죽음에 이른 병은 절망이었다

그를 벼랑으로 내몬 외적 동인은 검찰이나 정권의 압박이었으나 내적 동인은 절망이었다. 나는 그의 자살은 외적 동인보다는 내적 동인에 보다 크게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주장은 추모정국에선 자칫 돌 맞을 일일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주장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그렇다고 검찰과 정권에 책임이 없다는 건 결코 아니다. 국민 대다수가 인정하듯 누가 뭐래도 노짱을 절벽으로 떠민 데는 검찰과 정권의 보복식 수사가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보이는 외적 동기만으로 그의 죽음을 해석하면 오해가 생긴다. 그의 죽음에 대한 오해는 추모정국을 풀어가는 정확한 해법을 찾을 수 없게 할 뿐더러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던 그의 유언의 참된 의미도 계승할 수 없게 한다. 그의 죽음을 부른 외적 동기와 더불어 내적 동기로서 내가 ‘절망’을 거론하는 것은 노짱의 진정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일화로 전해지는 그의 강직한 성품을 보건대 그가 ‘몰랐다’고 하면 몰랐던 거다.(기사 참조 : 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090524002171&subctg1=&subctg2= 기사 참조 : http://www.cbs.co.kr/Nocut/Show.asp?IDX=1159647)그가 유서에 남긴 ‘미안해 하지 마라’는 언급은 비리에 연루된 가족들과 측근들을 향한 마지막 배려였지 지지자들이나 국민들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한 때나마 갸우뚱했던 의심을 거두고 그가 정말 가족과 측근이 연루된 비리를 몰랐음을 굳건히 믿게 하는 대목이다. 노짱 류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은 있다. 병적일 정도로 거짓말을 싫어하고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들이 있다. 자존심 센 사람들, 진정한 명예를 아는 사람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길 원하는 대장부들이 갖는 특징이기도 하다. 노짱 스타일의 대장부는 단지 억울하다고 해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진 않는다. 그건 졸장부들이나 할 짓이다. 그는 불의 앞에서 결코 굴하지 않는 담대함을 지닌 사람이다. 그는 결백했고 측근들에 의하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 재판에서 승리할 자신도 있었다 한다. 그랬기에 그런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건 모욕이나 억울함이 아닌 절망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모욕이나 억울함이야 앙갚음하거나 오해를 풀면 될 일이지만 절망은 풀 길이 없다. 절망이야말로 진정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에게 사람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한 떨기 고고한 난초 같은 성품의 그는 두 가지의 절망에 순차적으로 이르렀던 듯하다. 먼저 그는 주변사람들에게 절망했고 다음으로 자신에게 절망했다. 도를 넘도록 그를 압박해온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 과정에서 밝혀진 측근들과 가족들의 부정행위는 일차적으로 그를 절망케 했다고 여겨진다. 그가 유서에서 남긴 주변사람들이 겪는 고초에 대한 안타까움은 표면상의 아픔이었고 그 이면에는 그가 믿었던 사람들에 대한 실망도 있었다. 실망은 절망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노짱은 지난 3월5일 홈페이지에 <정치하지 마라>는 제하의 글을 올렸다.(경향 기사 참조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051906095&code=910100) 이 글에서 “정치인은 거짓말, 정치자금, 사생활 검증, 이전투구, 고독과 가난의 수렁을 지나가야 하는 것”, “나는 지옥 같은 터널을 겨우 지나왔지만 남은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언급한 대목에서 자신은 그 수렁을 지나왔지만 측근들이 과연 그 수렁을 무사통과할 만큼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지녔는지에 대한 짙은 회의와 안타까움이 묻어 난다. 더군다나 자신으로 인해 그런 수렁에 빠진 측근들에 대한 미안함은 그가 남긴 유서 전문에서 표현하는 그대로다. 최종적으로 그는, 정치하는 동기가 이기적 목적이든 이타적 목적이든 정치를 통해 ‘얻는 것 보단 잃는 게 많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정치하지 마라’고 권고한다. ‘깨끗한 자신도 그렇게 힘들었는데 부정한 너희가 어떻게 견디랴’는 오만함도 느껴지는 권고지만 정치하는 동기나 결과가 모두 순수했던 노짱으로선 당연히 할 수 있는 언사라 생각된다. 자신 탓으로 돌리긴 했어도 어쨌든 부정은 있었고 그가 가장 믿었던 가족들과 측근들에 대한 절망은 곧 자신에 대한 절망으로 이어졌다. 가족과 측근들의 부정이 까발려지고 세상으로부터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그 모든 고통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죄책감은 그 자신에게도 절망케 했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라고 했던 유서 내용은 스스로에게 절망한 심정의 일단을 보여준다. 남이든 자신이든 더 이상 그에게 사람은 희망이 아닌 절망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절망이 어떤 것인지 약간은 이해한다. 나 역시 오래 전 목숨까지 나누기로 맹세했던 동지들과 가족들에게 실망을 넘어서 절망했던 기억도 있고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서 담장 안팎의 여러 죽음들을 목도해야만 했던 아픔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절망 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그것도 가장 지근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절망했을 때 사람 사는 세상이 두렵고 세상과 소통하는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싶어진다. 서재에 웅크렸던 노짱의 절망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정적들, 검찰, 박연차, 측근들과 가족, 대중들까지 그를 둘러싼 전방위의 사람 사는 세상 모두가 그의 진심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특히나 정치하는 사람은 스크린의 스타와도 같아서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살며 자신과 대중을 엮는 연대의 끈이 상실되는 순간 절망하고 만다. 대중들이 스타를 향한 사랑을 철회하는 순방향이든 스타가 대중들을 향한 사랑을 철회하는 역방향이든 절망하는 건 어떤 경우든 마찬가지다. 노짱의 경우는 순방향에서 역방향으로 전이되면서 양방향의 절망 모두를 겪었으니 그 상심의 정도는 비할 바가 없었을 것이다.

노짱의 죽음을 이용하지 말라

이제 그는 가고 없다. 많은 과제가 남았다. 그가 당부하여 남긴 과제도 있고 우리가 스스로 풀어야 할 과제도 남았다. 오늘 뉴스 하나를 접했다.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부인 이모(50)씨가 남편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상품권 1억원 어치를 홧김에 자신이 다 썼다고 진술했단다. 방귀 뀐 늠이 큰소리치는 기세다.(기사 참조 :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090605160344489f3&newssetid=1331) 기사를 보며 순간적으로 화가 치민다. 이건 아니잖아, 이건 아니잖아! 기가 찰 노릇이다. 앞서 언급했듯 노짱의 죽음 앞에선 모두가 죄인이다. 노짱의 가슴을 후벼댔을 절망의 한 축을 구성했던 측근 비리의 한 당사자 가족의 입에서 저런 객기를 보아야 하다니 이런 우라질 일이 있는가.

분위기 참 묘하게 흘러간다. 부정은 부정이고 범죄는 범죄다. 노짱의 흘린 피로 대속하여 죄사함 받고 구원이라도 얻을 속셈인가. 노짱의 죽음을 팔아 면죄부를 얻으려는 그 어떤 작태도 용인되어선 안된다. 노짱을 두 번 죽이는 일이고 그 죽음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후안무치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명예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 같이 던진 노짱 앞에 병아리 오줌 만큼의 미안함이라도 있다면 지은 죄를 숨기지 말고 이 참에 당당하게 털고 가야 한다. 주군을 비명횡사케 한 수하들은 노짱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절대 비겁하거나 비굴함을 보여선 안될 일이다. 노짱이 무엇 때문에 절망했는지를 사색하고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하라. '노짱은 맑았으나 주변이 흐렸다'는 얘기를 실증이라도 하듯 오늘 저 아낙이 보여준 추태에는 분노가 치민다. 머시라, ‘상품권 1억을 홧김에 다 썼다’라니! 권여사가 박연차로부터 받은 1억짜리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보도(왜곡된 보도로 알려졌지만)에 분노하고 실망하던 국민들의 눈은 뵈지 않고 추모의 눈물만 보인단 말인가. 노짱의 영전에 머리 숙인 수십만 수백만 국민들의 충심을 농락하는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여인이 아닌가. 두 눈 뜨고 지켜보리라. 비록 치졸스런 검찰의 보복성 수사의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비리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측근들이 어찌 처신하는지. 노짱을 모시며 하나라도 제대로 배운 게 있다면 목숨을 끊지는 못할망정 국민들을 농락하지는 말아야 한다. 노짱의 죽음을 회생의 기회로 삼으려는 얄팍한 잔꾀는 부리지 말아야 한다. 노짱을 제대로 닮은 측근이 하나라도 나타나주길 기대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사람은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되고 노짱의 죽음도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된다.

추모 정국을 어떻게 풀어갈까?

추모정국의 끝은 검찰과 정권이 진정어린 사죄를 하고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인적 문책과 제도적 보완을 행하는 수준이면 된다. 추모 정국에서 무리하게 욕심내다가 입에 문 고기마저 개울에 떠내려 보내는 욕심 많은 개 꼬라지가 될 수도 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유언에서 노짱은 자신의 죽음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내비쳤다. 그는 어떤 특정한 대상에 절망한 게 아니라 세상 모두에 절망했다.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는 건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책임몰이를 경계코자 함이었다. 원망의 주체와 대상은 보는 시각에 따라 전도될 수도 있는 일인 만큼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노짱의 죽음과 추모 정국을 이용하여 정도 이상의 것을 얻고자 과욕을 부려선 안 된다. 노짱의 죽음의 가치는 너무도 신선하고 맑은 것이기에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만의 전유물이 아닌 이 나라와 민족 전체에게 희망을 부르는 정신적 자산으로 남아야 한다. 그 누구도 사익을 위해 노짱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 노짱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고단했던 삶으로부터의 자유와 평화였다. 더하여 자신 때문에 그 누군가의 삶이 고단해지고 자유와 평화가 깨어지는 걸 결코 원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것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뿐, 우리가 추구하던 목표는 그냥 저 멀리 있을 뿐”이라는 그의 회한 섞인 어록이 내내 머릿속을 감돈다. 십여 년 전, 이제는 모든 짐을 벗고 쉬고자 귀향을 결정했을 때 내가 숱한 밤을 새며 붙들고 놓지 않았었던 화두였기에........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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