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시길래...사랑 서신 제125호





편지지 빛깔이 참 고웁네요, 혜송님처럼.
우편물을 담당하는 우리 ‘교뚱’(교무과 뚱뗑이의 애칭입니다)이
편지 2통을 한 번에 보낸 적은 있어도 4통을 쌓아 두었다 보낸 적은
결코 없노라고 지레 결백을 주장하고 나서더니 그랬었군요.
마냥 후덕하고 태평스레 보이기만 하는 교뚱도
공안 사범 관리하는 일에는 아무래도 잔 신경까지 쓰이나 봅니다.
난 혜송님 글 보고나서는 따질 마음이 생기기는 커녕
외려 그리된 게 고마울 지경인데 말입니다.
우체국에서 많이 밀렸으리라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어쨌거나 한꺼번에 편지 4통을 받아든 기쁨이 쏠쏠했나 보네요.
감방에 앉아 바람난 것도 아닐 터인데
편지가 한 동안 뜸했으니 속으론 은근히 투덜거렸겠네요.
이거 참 난 영문도 모른 채 귀가 왜 이리 간지럽나 했었지요, 크~
자장면과 비빔밥은 오래 비빌수록 맛있다잖아요.
오래 비빌수록 양념이 잘 뒤섞여서이기도 하겠지만
비비는 시간이 길어지는 만큼이나 입 속에 많은 침이 고일 테고
입맛을 다시는 침의 양에 비례하여 맛의 양도 커지는 거 아닐까요.
마치 마른 땅에 단비 내리듯 참고 기다렸다 일거에 터뜨리는
맛의 집중 효과 내지는 심리 효과 탓이겠지요.
편지의 내용이 흥미롭지 않아도 단박에 4통이라는 수량만으로도
그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혜송님이나 나나 우린 서로의 편지 맛에 중독된 지 오래인지라
편지가 제 때 제 때 공급되지 않았을 때 생기는 금단현상 그거
밥 굶는 것보다도 더 무섭다는 걸 익히 잘 알잖아요.
암튼 나의 무더기 편지가 혜송님께 그토록 큰 기쁨이 되었다니까
덩달아 신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그런 작은 기쁨들을 더욱 자주 안겨드리지 못해서요.
맛난 음식도 너무 자주 접하면 식상해질 거라는
핑계 같잖은 핑계로 이 상황을 얼버무리고 넘어갈랍니다.

그건 그렇고 봄도 아닌데 웬 제비 타령인가요?
내 글과 마음이 어디 아무에게나 다 그리 이뻐 보일라구요.
혜송님처럼 눈에 콩깍지 씌인 사람에게나 효력을 발휘하는 게지.
‘휘적휘적 살고 싶다’라던 나의 지난 번 언급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언이 필요할 듯하네요.
‘세상살이에 대해 지나치게 느슨한 태도’라는 오해의 소지가 없질 않아서요.
분명, 이 풍진 세상을 살면서 억척 근성 없이 휘적휘적 살아간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지난 번 나의 말은 ‘가급적’ 그리 살도록 노력하리라는 희망을
피력한 정도라 보면 됩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살아가는 데서 ‘인간 관계’보다
더 소중한 게 무에 있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살다 보면 때론 그 소중한 관계를 해치면서까지
과욕을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소중한 관계들을 훼손하면서까지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
그게 바로 내가 말한 ‘휘적휘적 살아가는 삶’의 뜻입니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얘기를 좀만 더 부언해 보겠습니다.
휘적휘적 사는 삶이란 얼핏 그 어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그런 두리뭉실한 삶을 뜻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필요한 만큼의 삶의 내용과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선
최선을 다하여 치열하게 살아가되 다만 필요 이상의 욕심을 절제함으로써
최대한 ‘심신의 여유’를 확보하여 그 여유를
소중한 사람 관계와 여가 선용에 돌리고자 하는 삶을 뜻합니다.
좀더 속되고 간결하게 표현하자면,
‘이 풍진 세상 가끔은 달도 보고
해도 보고 별도 보며 사람도 보면서 살자’라는 뜻입니다.

의외로 주변을 돌아보면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지 지척에 부모 형제가 있는지
혹은 친구나 소중한 이웃들이 있는지조차 가늠해 볼 겨를도 없이
미친 듯이(정신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겁니다.
나부터 유별나게 그리 살아왔으니까요.
그랬기에 이제는 ‘휘적휘적 살아가는 삶’에 대해
더더욱 남다른 애착을 지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면 치열하다 못해 미쳐 버릴 정도로 집중하는
날 견제해줄 사람은 혜송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야 함께 휘적휘적 살지요.
혜송님 말처럼 ‘해야만 하는 당위’가 아니라
‘자연스레 우러나는 기풍’으로
휘적휘적 살아가는 삶의 궤적을 함께 그려갈 수 있도록 노력하지요.
가깝게는 내 부모 내 형제들로부터 멀리는 인류와 우주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사람답게 사는 법’을 깨치고 체득해 나갑시다.

혜송님의 일흔 번째 사랑글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벌써 대 여섯 번은 재독했을 겁니다.
혜송님, 당신은 누구시길래 내게 이토록 큰 기쁨을 안겨주시나요.
언제나 내게 큰 기쁨인 혜송님, 사랑합니다!


오래 전 10월 18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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