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사랑 서신 제114호


금쪽같은 접견 시간을 낭비해 가며
혜송님을 앞에 두고 그에게 괜한 역정을 낸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최근 들어 그가 뭔지 모르게 빗나간 착각을 하는 듯했고
얄팍한 머리 굴림을 보여 왔기에
그에게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5, 6공 독재치하도 아닌 시절에
아직도 그런 류의 실랑이를 해야 하는 게 영 씁쓸합니다.
교도소란 곳이 교정, 교화의 기능보다는
억압과 구속, 징벌의 기능을 우선시하던 ‘까막소’ 시절의 관성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한 까닭일 겁니다.
범죄자들을 격리시키는 특화된 공간임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교도소만큼 행정의 자율성과 창의성이 봉쇄되고
무소신 행정으로 일관하는 곳도 없을 겁니다.
하나는 있되 둘은 없고, 위는 있되 아래는 없고,
앞은 있되 뒤는 없고, 우는 있되 좌가 없는
일차원적이고 원시적인 평면의 세계라고나 할까요.
이런 곳에서 수년씩 지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관과 소신, 자율성과 창의성을 잃어버리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자율과 소신과 창의가 보장되는 근본적인 행정 개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직원에게든, 재소자에게든 예외 없이 교도소란 곳은 정말
사람 살 곳 못되는 삶의 오지임과 동시에
범죄자를 교정, 교화하여 사회에 적응시키는 ‘교도소’가 아닌
분노와 절망과 적개심과 범죄의 기술을 전수하여
누범자를 양성하는 '교악소'라는 오명을 결코 떨쳐버리진 못할 성 싶습니다.

어찌 보면, 학교의 교사들이 하얀 백지 같은 학생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지식의 첫 그림을 그려 주는 ‘선생님’이라면
이곳의 직원들은 잘못 그려진 그림 탓에 인생이 빗나간 범죄자들에게
잘못 그려진 그림을 수정하고 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교정, 교화하는 ‘선생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소신과 자부심으로 이 흉악한 삶의 오지를 인생의 행로로 택한
젊고 의욕적이었던 직원들이 근무한 지 채 1년을 넘기도 전에
‘교도소 직원은 출퇴근하는 재소자’일 뿐이라는
자조 섞인 고백을 하는 걸 보면서
교도행정에도 참 많은 손질이 필요하단 걸 느끼곤 합니다.
위로는 앞뒤 꽉 막힌 무자율, 무창의, 무소신 행정에 치이고
아래로는 재소자들과 부대끼며 1~2년 정도의 낮과 밤을 지새다 보면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근본적 회의가 들게 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터입니다.

그런 저간의 정황들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오늘 난 그에 대해 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의 지나치리만치 소신 없고 수동적인 사무적 태도에 생채기가 난
나의 자존심이 향후로는 더 이상 손상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론 상호 배려하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오직 나와 우리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를 대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서로 간에 배려할 것도 배려 받을 것도 없는 철저히 사무적인 관계,
그가 스스로 그런 선택을 원하면 나 또한 거리낌 없이
그리 응해 주리라고 작심하니 마음은 한결 편해집니다만
그간 닦았던 도가 한순간에 도로아미 꽝불 되는 아쉬움은 진하게 남습니다.
언제나 내가 예수나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들 수 있을까요.
수양이 덜된 건지 적절히 분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네요.
아직도 공부가 많이 더 필요한 가 봅니다.

오늘, 예기치 않게 모가 나 버린 하루를 돌아보면서
새삼스럽게 ‘소신 있는 삶과 자유로운 삶’에 대한 단상을 가져보았습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참으로 천차만별이라지만 난
사람 사는 삶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봅니다.
그 하나는 ‘소신 있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무소신의 삶’이라고나 할까요.
전자가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며
양심과 도덕과 정의에 따라 사는 대자적 삶이라면
후자는 대체로 일신의 안위와 명리를 중시하며
시류와 현실에 영합하거나 때에 따라선 비양심과 부도덕과 불의와도
타협하며 살아가는 즉자적 삶이라 할 것입니다.
전자가 적극적, 자율적, 능동적, 주체적 삶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소극적, 타율적, 수동적, 비주체적인 삶인 게지요.
역사적으로 보면, 역사를 창조하고 전진시키는 힘은
전자의 사람들로부터 추동되었고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언제나 고난과 핍박의 한 가운데에 있었으며
그들에게는 역사를 전진케 한다는 그런 소명 의식이 있었기에
기꺼이 고난과 핍박을 감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들이 고난과 핍박을 꿋꿋이 감내할 수 있었던
가장 절박한 이유는 그런 역사적 소명 의식 말고도
바로 자신의 소신과 신념에 따라 살고자 하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열렬한 지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요, 결국은 그것입니다.
모든 고난과 핍박을 이겨내게 하는 힘,
그것은 바로 자유와 자유로운 삶에 대한 의지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이 ‘자유를 확대해가는 과정’이었다 할 것입니다.
인간들 스스로 만들어 놓은 온갖 굴레로부터의 자유,
정치적 자유,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거주 이전의 자유,
인종의 자유, ..............................

그러나 이토록 수많은 형상의 자유들이 지향하는
궁극적 이데아는 바로 ‘정신의 자유’라고 할 것입니다.
이 ‘정신의 자유’는 모든 자유의 근원이며 궁극입니다.
앞서 내가 말한 ‘자유로운 삶’이란
바로 이 ‘정신의 자유를 향유하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을 얻기 위하여 고대 희랍의 어느 철학자는
기꺼이 길거리의 개처럼, 거지처럼 살기를 마다지 않았고
고대 인도의 어느 왕자는 왕관을 버리고
보리수나무 아래서 고행을 마다치 않았으며,
20세기 한반도의 어느 사회개혁가들은
반백년의 세월을 0.75평 감방에서 쪽잠을 마다치 않았습니다.
내일 당장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노라던 어느 서양 철학자의 금언이나
불의와 타협하며 금뱃지를 두 번 세 번 달기보다는 초선의원으로서
장렬한 전사를 맞이하겠노라던 어느 국회의원의 비장한 일갈이나
굵고 짧게 살겠노라던 어느 군인의 좌우명 그 모두
‘정신의 자유’를 향한 소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렇지요, 결국 소신 있는 자만이
이 정신의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으며 자유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소신껏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때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소신 있는 사람들이 감내하는 자기 핍박의 이면에 서린
그 무한한 자유의 기쁨을 그 행복감을 그들은 결코 알 수는 없을 겁니다.
길바닥을 구르는 거지라 할지라도
자신의 소신에 따라 스스로 정신의 자유를 만끽하는 삶이라면
그 뉘라서 그 삶을 감히 헛되거나 모자라다 비난할 수 있을까요.
세속적 기준으로 내로라하는 그 갖은 잘난 사람들조차 종국에는
십자가 앞에 무릂 꿇고 절간의 미소 앞에 엎디어
자유와 평화를 갈구하지 않던가요.
모든 건 인간의 기준입니다. 잘나고 못나고도 인간의 기준입니다.
배우고 못배우고도 인간의 기준입니다. 있고 없고도 모두 인간의 기준입니다.
그 기준 모두가 굴레입니다. 그 기준과 굴레로부터 벗어나는
무한 자유, 정신의 자유를 위하여, 소신껏 살아가는 삶을 위하여,
참으로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정녕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난 오늘 그를 공박치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일어난 사단이 그간 접견실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짧은 만남을
은연중에 압박하던 무형의 그 무엇인가를
걷어내는 계기가 되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에겐 얼마나 소중하고 애틋한 시간인데 그만 달리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많이 아쉽지만 자유로운 삶을 위한 의미 있는 대항이었다 자위합니다.
접견 감상문이 괜스레 무거운 글로 메꿔지고 말았네요.
혜송님, 오늘 있었던 불쾌한 기억일랑
길 가다 옷깃에 앉은 먼지인 양 털어버리세요. 나 또한 그럴게요.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오래 전 9월 18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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