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싫어하는 사람들...사랑 서신 제 045호


토요일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벌써' 토요일 같고
또 어찌 생각해 보면 '아직' 토요일 같기도 합니다.
자고로 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침과 월요일을 기다리지만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저녁과 토요일을 기다린다던가요.

담장 안의 사람들은 어떨까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대체로 일하기를 싫어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며 남의 것을 뺏고 훔치고 넘보던 사람들이 많은만치
당연히 일 없는 주말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라는 당연한 추측이 무색하리만큼
이 곳의 사람들은 주말을 싫어합니다.

그 이유가 일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성향상의 차이에서가 아니라
'자유와 구속'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랍니다.
이미 자유를 잃고 구속된 담장 안에서 또 무슨 자유와 구속 타령이냐구요?
그런 건 아닙니다. 이미 십 오척 담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큰 자유는 잃었을지언정 담장 안에서나마 이동이 가능한
'작은 자유'가 있는 날과 없는 날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자유와 구속의 차이'라고 했을 때의 자유는
이 '작은 자유'를 말함입니다.

이 곳 사람들의 하루 일정 중에서
놓칠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시간은 밥 시간을 빼고선
접견과 운동 시간이 단연 으뜸입니다.
접견과 운동 시간 만큼은 폐쇄된 옥방을 벗어나 '작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참으로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운동이나 접견 시간이래야 채 삼십분을 넘지 못하는 짧은 시간들이지만
짧기에 더욱 기다려지고 소중한 시간들로 다가서는 거지요.
근데 이런 소중한 소자유 만끽의 기회가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는 전면 금지되니
어찌 담장 안 사람들이 주말이 오는 걸 반길 수가 있을까요.
전쟁 치르듯 치열한 일상을 살아가는 바깥 세상에서야
주말이란 곧 일상으로부터의 자유, 해방과도 같은
설레임과 희망으로 다가올 터이지만
그나마 보장되던 '소자유'마저 완전 박탈되는
담장 안의 주말은 해방이 아닌 완전한 구속의 지리한 시간들에 진배없습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간사한 사람의 마음이라고
담장 안의 사정이 이럴진대도
주말이 되면 괜스레 설레고 들뜨게 되는 건 또 무슨 연유일까요.
그건 아마 오랜 세월 바깥 세상에서 몸에 배인 관성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하기를 좋아하든 놀기를 좋아하든
담장 안에서든 담장 밖에서든 역시 주말은 주말입니다.
나 또한 여전히 주말이면 설레는 것은 어언 3년을 넘보는 옥살이에도
변함없이 남아 있는 바같 세상의 관성 탓인가 봅니다.

'관성'을 말하니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형을 언도받고 또박 20여년을 담장 안에서 보낸
신영복 선생의 출소 후 일화입니다.

신선생님이 출소 직후 동생 집에 잠시 머물 때였습니다.
어느 날, 동생 내외가 외출하고 돌아와 보니 신선생님이 방 안에서
연신 문을 두드리고 있길래 급히 문을 열어 보니
신선생님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더랍니다.
얘기인즉슨, 신선생님이 볼 일이 있어 문 밖엘 나가야겠는데
동생 내외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더라나요.
그래서 끼니도 걸른 채 그러고 있었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밖에서 문을 열어 주지 않으면 자의로는 옥방 문을 나설 수 없었던
20여 년 간의 닫힌 생활에서 오는 관성이 선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문을 열 수 있다는 지각을 송두리째 앗아간 버린 게지요.

그리고 또 한 번은
신선생님이 길을 걷다가는 순간 순간 깜짝 깜짝 놀라며
멈춰서서는 뒤돌아 서는 자세를 취하더라는 겁니다.
두 세 걸음이면 이 쪽 벽에서 저 쪽 벽까지 맞닿는 폐쇄된 공간에서
두 세 걸음 걷고는 돌아서곤 하던 20여 년 간의 옥방 안 걸음 운동 습관이
길을 걷는 중에 무의식적으로 돌출되어 나온 게지요.

슬픈 이야기입니다.

많은 장기수 선생님들의 반 세기에 가까운 옥살이를 떠올리노라면
햇수를 세는 것 조차 가당찮은 주접일 테고
3~4년 정도의 옥살이로 어찌 신선생님의 '슬픈 몸짓'을
다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마는 담장 안에 살든 담장 밖에 살든
우리의 몸과 마음에 나쁜 관성 말고
좋은 관성이 밸 수 있도록 늘 주의, 경계해야겠습니다.

4월 둘째 주말엔 대구로 출장간댔지요.
이 글이 도착할 때 쯤이면 혜송님은 지방에 있을런가요.
비록 업무차 가는 여행길이지만
보람있고 발걸음 가벼운 주말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먼 길 혼자 다니실 때는,
사람 조심, 길 조심, 차 조심,......이런 것들 머리 속에 잘 갈무리하고 가세요.


오래 전 4월 1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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