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의 고독...사랑 서신 제049호



간 밤에 이루어진 역사인 듯 합니다.
녹슨 창살을 기둥 삼고 서까래 삼아 다각형의 아담한 집 한 채가
옥창에 들어서 있습니다. 거미집 !

지난해 늦가을 경에 동면에 들어갔던 거미가
올 들어서 비로소 그 첫모습을 드러내 보인 겁니다.
참 반갑기가 이를 데 없는 귀한 손님입니다.

귀뚜라미가 가을의 전령이라면 거미는 봄의 전령입니다.
적막하기 짝이 없는 이 폐쇄된 공간에서
살아 움직이는 무엇인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적지 않은 위안입니다.

거미, 파리, 모기, 나방, 매미, 지렁이, 그리마.....
이렇듯 계절따라 내 자그만 옥방에 나타나는
귀한 손님들은 여럿 됩니다만
거미만큼 귀엽고 앙증스런 놈도 없을 겁니다.
가장 절친한 나의 이웃이고 벗이기도 합니다.

겨울을 제외한 연중 내내
한결같이 늘 있던 그 자리에 머물러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 녀석에게서 웬지 모를 정을 느끼게 되는 건
나의 감수성이 별스런 때문만은 아닐 겝니다.

누구나 담장 안에서 오랜 독거 생활을 하다보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들에 대한 외경심을 갖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곤충이든
옥 뒷마당에 버려진 듯 피어나는 이름도 모를 아주 자그마한
들풀, 잡초에 이르기까지....
이 또한 세상과 더불어 살고 싶어하는
인간 본연의 속성이지 싶습니다.

밖에서야 한낱 징그럽고 혐오스러울 수도 있는
추한 미물에 지나지 않겠지만
거미는 내게 더없이 소중한 이웃이고 친근한 벗입니다.

거미가 하루를 살아가는 일과들이
그리도 귀엽고 깜찍하고 예쁜 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어떨 땐 혜송님 같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선 참 미안합니다.
어디 비유할 데가 없어 혜송님을 거미에 비유했으니 말입니다.)

어쨌든,
거미가 집을 짓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 신기하고 기막힌 재주에 넋을 놓을 때도 있을 지경입니다.
옥창살을 기둥 삼아 선을 잇고, 각을 지며, 원을 그려가는 모습은
마치 삶과 노동의 정수를 상징하는
잘 짜여진 한 판의 춤사위와도 같아 보입니다.

이 곳 옥방의 창틀에 둥지를 튼 거미는 야행성입니다.
낮 시간엔 창틀 후미진 구석에 웅크리고 있다가
해가 지면 낮 시간에 삭아 내린 제 집을 말끔이 보수하고는
원심에 쿡 박아 놓은 한 점이 되어 밤을 지샙니다.
흡사 내 잠든 옥방을 지키는
듬직한 파수꾼의 모습 같아 보입니다.

거미는 2~3일 건너 한 번씩 공들여 지은 제 집을 허물고
새 집으로 다시 단장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거미가 집을 철거하는 모습 또한
집을 짓는 모습 만큼이나 경이롭습니다.
마치 하늘을 나는 곡예사처럼 앞다리로 줄을 타고
뒷다리로는 말똥구리처럼 줄을 똘똘 뭉쳐 말아 감습니다.
이윽고 다 감은 줄을 뒷다리로 툭 털면 하얀 보풀 같은 거미줄은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아갑니다.

아마도 며칠에 한 번씩 거미가 새집으로 교체, 단장하는 일은
거미줄에 묻은 끈끈액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보통 2m/m 정도 크기의 아주 작은 거미가 짓는 집의 크기는
지름이 약 10cm 정도이고 4~5m/m 정도 크기의 거미는
지름이 약 20cm 정도 되는 집을 짓습니다.
내 어릴 적만 해도 살던 집의 처마나 정원의 나뭇가지 사이에서
잠자리가 걸려들 만한 궁궐같은 집을 짓고 살던
왕거미들도 쉬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온갖 화학 먼지와 공해 탓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사는 품새가 너무 말끔해져서인지
도심지에서 왕거미를 본 게 언제였나 싶습니다.

거미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무수한 생명체들 중에서
태어나는 순간에서부터 홀로 살아가는 것들이 적지 않건만
거미만큼 철저한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도 드물 것이라는.....

덩그러니 홀로 원심에 자리하여 미동도 하지 않는
거미의 초연한 모습이야말로
어느 이름 없는 심산유곡의 산사에서
수행, 정진하는 은자의 고고한 풍모, 바로 그것입니다.

나는 때로는
그렇게 지그시 고독을 인내하는 거미의 고고한 풍모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기며 무언의 힘과 위안을 얻을 때가 많습니다.
옥창에 일렁이는 실바람에 살랑대는 거미줄에 깃든
거미의 삶과 고독과 기다림을 보면서
오늘도 나는 이 독방 안에서 내가 꾸려가야 할
삶과 고독과 기다림의 의미들을 되새겨 봅니다.

혜송님,
행여 온 종일 내내 나와 함께 하며 정을 나누는 거미에게서
질투를 느끼시진 않겠지요.
내 비록 거미와 함께 고독을 노래하고 사는 날들이지만
당신이란 존재로 해서 나의 고독은
거미의 고독에 결코 비견될 수 없는
사치스런 것임을 잘 알고 있기에
아무래도 거미도 한 집에 두 마리가 모여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내내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혜송님이 있어 오늘도 참 좋은 하루였습니다.


오래 전 4월 14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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