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라 참깨 ! 열려라 들깨 ! 열려라 주근깨 !...사랑 서신 제130호



언젠가 편지에서,
20여년 이상 옥살이 했던 신영복 선생께서
출소 후에 겪었다는 일화들을 언급했던 적이 있었댔지요.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갈 생각조차 하덜 못해
동생 내외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까지 방에 갇혀 있었다는 얘기
(감방문이란 게 누군가가 밖에서 자물쇠를 해제하지 않으면
결코 문 밖을 나설 수 없기에 그런 관성이 몸에 배어 있었던 거지요),
길을 가다 두 세 걸음 딛고서는 깜짝깜짝 놀라 뒤돌아서더라는 얘기
(감방 크기가 두세 걸음이 고작이니 감방에서 걷기 운동이라도 할라치면
두세 걸음 후엔 되돌아서야 했던 오랜 관성이 무심결에 작동했던 탓입니다),
그 모두 오랜 옥살이의 관성이 빚어낸 슬픈 일화들이었던 게지요.

근데 그게 정말 남의 얘기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교도소내 어떤 곳에 갔다가 내 손으로 문을 열고자 밀었습니다.
어라, 자물쇠 채워진 문도 아니건만
계속 힘주어 밀어대는데도 꿈쩍도 않습디다.
‘열려라 참깨 ! 아닌가 ? 열려라 들깨 ! 열려라 주근깨 !’
약간은 당황스럽게 꾸물대는 순간, 근처에 있던 직원이 다가와서는
씩 웃으면서 문을 안쪽으로 가볍게 당겨 주더이다.
세상에나 ! 이거 참, 나 참, 원 참, 그 순간의 당혹감이라니 !
이런 일이야 밖에서도 가끔은 겪을 수 있는 일이라지만
두세 번 밀다 안 되면 당겨보는 게 정상일 터
그러지 못하고서 냅다 들이밀 생각만 했었지요.
지극히 단조로운 생활의 반복에서 오는 몸에 밴 관성이란 게 참.

그랬네요, 미는 문에 익숙해진 세월이 어언 3년을 넘었군요.
대개 문을 여닫는 건 직원들의 몫이다 보니 밖에서 자물쇠가 해제된 문을
그저 안에서 밖으로 밀고 나가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겁니다.
생활상의 관성이야 쯤으로 친다지만 정작 내가 경계하는 건
사고방식에서의 잘못된 관성이 몸에 밸까 하는 점입니다.
‘존재의 양식이 의식을 규정한다’는 유물론의 중심 명제는
항상 옳은 건 아니겠지만 대체로는 옳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아침에 눈 떠서 밤에 눈 붙일 때까지
통제와 감시로 점철된 닫힌 공간이니만치 내 사고방식조차 행여
경직되고 폐쇄적으로 변해가지나 않을 지 못내 염려하며 살았습니다.
몇 해 전 첫 징역살이의 교훈도 있었던 데다
(그 때 출소 후 나의 심신의 상태에 대해
작금의 기준으로 진단을 해 보면 결코 좋은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옥살이에선 가장 경계하며 노력해온 부분이기에
나름 자족하고는 있습니다만 이 문제는 아무래도 출소 후
다른 사람의 이목에 따른 객관적 평가를 받아봐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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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저녁 식사 후 이내 어둑해지네요.
해님의 걸음이 많이도 빨라졌습니다.
그래도 겨울 오는 느낌은 아직입니다.
담장 너머 미류 나무 잎들이 듬성듬성하긴 해도
아직은 쉬이 셀 만큼은 아녀 보입니다.

시내 운전이 익숙해지면 빨간 프라이드를 타고 올 거라 했나요?
도심 외곽도로를 달리는 혜린 님과 빨간 프라이드 !
참 좋은 그림으로 상상되지만
올 겨울을 넘길 때까진 도심을 벗어나지 말길 바래요.
내년 봄 개구리 뛸 때쯤 해서 그럭하세요, 욕심은 토닥여 두세요.

내일은 또 혜송님 오시는 날이네요.
아까 저녁 전에 뒷마당에 까치 울더니 내일 오시는 길에
맛깔나는 소식도 함께 달고 올려나요.
오늘 밤은 무척 긴 밤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자요, 꿈속에서나마 멀리 버선발로 마중 나가 있겠습니다.


오래 전 10월 29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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