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10년...행복한 투정, '행복병'

잃어버린 10년...행복한 투정, '행복병'
작성일:2009.06.19



그래도, 청와대 시계는 돈다. 이래저래, 1년하고도 4개월 남짓. 레임덕이 시작되는 막판 1년 빼고 나면 2년 8개월. 차 띠고 포 띠니까 거진 다 되어 보인다. 얼매나 맴이 급했으면 요런 주먹셈으로라도 위안을 삼을까. 남은 3년 8개월, 처절하고 뼈저린 후회들이 있었으면 한다. 통한과 격분이 푹푹 쌓였으면 한다. 절치부심하면서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통렬하게 자각했으면 한다. 동시에 남은 세월 동안 어차피 겪게 될 분통[憤痛]일랑 튼실하고 복스런 희망돼지를 출산하기 위한 산고로 여겼으면 한다.

대선 직전, 어떤 술자리 모임에서 가벼운 시국토론이 있었다. 이명박 후보가 각종 여론 조사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이던 때였으니 좌중의 주된 논조는 ‘어떻게 하면 이길까’보다는 ‘정권 교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였다. 그 때 취기를 빌려 대한궁민들을 맘껏 조롱하던 기억이 새롭다.


결코 존중할 수는 없는 여론이지만 받아들여야지 우야겠노.
경제만 살린다면 전과 14범의 사기꾼도 괜찮다는데 우야겠노.
거들먹거리는 386이 죽도록 싫다는데 우야겠노.
원칙과 정도보다 편법과 속도가 좋다는데 우야겠노.
노무현도 싫고 노사모도 싫고 민주고 진보고 개혁도 싫고 싹 갈아엎자는데 우야겠노.
잃어버린 10년이란 기차를 타고 과거로 회귀하자는데 우야겠노.
그래라,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고 먹어봐야 똥 맛인지 된장 맛인지 아는 법이지.
그리들 원한다면 시간여행을 떠날 수밖에. 10년 전, 아니 20년 전도 괜찮다.
유신과 5,6공 치하의 개고생은 어차피 하는 늠만 사서 하는 고생이라 이거지.
내 집값 올려주는 늠이면 개호로잡늠이라도 밀어주겠다 이거지.
아서라, 말어라 어느 개호로잡늠이 옆에 늠 아픔까지 돌아볼까.
애당초 도덕성이 결여된 개호로잡늠의 눈엔 ‘궁민’은 없다.
대통령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거지가 사장되고 없는 집이 생길 것 같으면
1년에 한 번씩 대통령 선거하지 멋하러 5년씩이나 기둘려.
전지전능한 신들 중에서 대통령을 뽑는 것도 아닐진대
인성과 도덕성보다 종이 한 장 차이의 능력을 우선한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부조리한 선택인가.
모자란 능력이야 유능한 참모들을 잘 부리면 될 일이지만
모자란 도덕성은 대체할 길이 없음을 역사를 통해 깨닫지도 못한 걸까.
그래, 아직 민주주의의 향연을 누릴 준비가 덜된 국민이라면
그 수준만큼 제한된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면 될 뿐인 거다.
못난 사람 못난 대로 살고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사는 거야, 헐헐!
10년 세월 '행복병'에 겨워서 유신과 5,6공의 교훈을 망각한 것이라면
다시 한 번쯤 일깨워 보는 것도 괜찮다.
아픈 만큼 성숙할 수 있다면 한 번 더 아파보는 거다.
역사는 우리에게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를 명했다.
그저, 이명박 정부가 기대 밖의 선전[善戰]을 해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마지막 기도는 결국 헛된 꿈이었고 그 때의 조롱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근데 그 현실이 예상보다 훨씬 당혹스럽다. 예상은 했다지만 근자에 보이는 억압의 풍경들 위로 20여 년 전 내 젊은 날의 초상이 오버랩 될 정도일 줄은 몰랐다. 노짱 서거 후 노짱의 퇴임 전후 어록들이 새삼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노짱은 임기말 2007년 6월 참평포럼 특강에서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생각하니 끔찍하다’ 라고도 했고, 퇴임 후인 지난 해 여름 ‘정권이 국세청, 경찰, 검찰, 국정원을 장악하는 순간 국민들이 추위를 타기 시작하고 그 사회에는 공포가 엄습한다’라고도 경고했다. 비무장 평화 집회를 방패와 쇠파이프로 죽일듯이 찍어대는 ’끔찍한 공포‘ 앞에서 노짱의 경고들은 ‘예언’으로 격상되는 모양새다. 알 만한 사람들에게야 당연한 상식선의 얘기였건만 먹고살기 바쁜 ‘궁민’들은 언제나 그렇듯 먹어봐야 맛을 아는 거다.

되돌아보면,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 정부로 이어진 지난 10년간의 정치 실험은 민주주의의 역사와 경험 자체가 일천한 정부의 관료들이나 국민 모두에게 생소한 첫 경험이었다. 그 생소한 첫 경험을 국민들은 불쾌하게 여겼다. 분단국가라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이념적으로 심각하게 제한되고 왜곡된 정치의식은 교육 수준에 비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렀고 10년간의 민주적 소양 훈련은 결국 ‘집값’이라는 개인적 욕망 앞에서 한순간에 헛방이 되고 말았다. 하긴 머 국민 직선에 의한 정권 창출의 역사가 고작 이십년 남짓인 만큼 비교할 만한 경험 테이터가 너무도 일천하기에 마냥 국민들의 낮은 정치의식수준을 탓하기도 그렇다.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를 존중하고 정책 대립이 가능한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는 여전히 그 이론적, 인적 기반을 구축하지 못했으며 냉전적 이념이나 혈연, 지연, 학연에 토대를 둔 패거리즘과 구시대의 반칙과 편법에 찌든 낡은 반민주적 잔재들은 도처에 늘렸다. 민주적 소양을 지닌 선진 국민으로 성장하기에는 지난 10년은 몹시도 짧은 세월이었나 보다.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이 피할 수 없는 ‘역사와 국민의 선택’이라면 차라리 민주주의 학습의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한 번 쯤은 거쳐 가야할 민주주의 교양 실습 과정이라 생각하면 된다.

때로는 좋은 경험도 독이 될 때가 있고 나쁜 경험이 약이 될 때도 있다. 국민들은 지난 10년간 과거에 비해 충분히 좋은 경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권태를 느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권태를 느끼는 사람들에겐 언제든 등을 돌려버릴 정도로 냉혹하고, 간단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돌보는 사람들만이 얻고 누릴 수 있는 현대 사회 최대 최고의 축복임을 이명박 정권 5년의 나쁜 경험 속에서 모두가 뼈저리게 느껴 보았으면 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이명박 정권 5년은 약이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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