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넷, 다섯, 붙이고 !’...사랑 서신 제154호


하나, 둘, 셋, 넷, 다섯, 붙이고 !
하나, 둘, 세, 넷, 다섯, 붙이고 !
하나, 둘, 셋, 넷, 둘, 둘, 셋, 넷 !

하루도 조용할 날은 없다지만
오늘은 정말 경쾌하게 떠들고들 있네요.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구령소리입니다.
지루박인지 뭔지를 배운답시고 저리들 난리랍니다.
춤을 가르치는 사람은 나이가 꽤 지긋하신 분인데
강남 제비이셨는지 아님 시골 캬바레 참새이셨는지
젊은 친구들과 어울려 한창 신바람(춤바람?)이 났습니다..
좀 전까지는 춤으로 사모님들 홀리던 전력을 영웅담인 양
설레발치는 것 같더니 실기 전수에까지 나섰나 봅니다.
마룻바닥 쿵쾅대는 소리, 구령 소리, 구경꾼들 낄낄거리는 소리와 함께
징역의 또 하루가 부서져 내리고 있습니다.
볼 순 없어도 소리만으로도 그 정경이 어떨지는 눈에 선합니다.

우리 마을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한쪽 면으로만 사방이 쭉 늘어서 있고 복도의 전장이
대략 40여 미터 쯤 되는 2층 건물의 상층입니다.
여타 저타의 사유로 출역(옥중에서 각종 사역에 종사하는 일,
공안사범은 기본적으로 미출역 사범으로 분류됩니다)에서 제외되거나
출역 미지정 대기 상태의 재소자들은 상층,
출역 재소자들이 하층에 수용되어 있습니다.
낮 시간에도 출역을 하지 않기에
밤낮없이 좁은 공간에서 서로 부대껴야만 하는 상층은
하층에 비해 하루 종일 소란스럽고 소동도 잦은 곳이기도 합니다.
상층은 모두 11개의 사방이 있습니다.
복도 맨 끝의 2개 방은 독방이며 그 중 하나가 내 방이지요.
(보증금도 월세도 없는 전망 좋은 방이랍니다........하~)
내 옆의 독방은 거의 비어 있을 때가 많습니다.
뭐가 그리도 마렵고 구린지 징역 안에서조차
공안사범들을 최대한 격리시켜 놓으려는 당국의 노력은
배려인지 탄압인지 언제 보아도 눈물겹습니다.

지금 한창 춤의 향연을 벌이고 있는 방은 내 방에서 2방 건넌 9방입니다.
4평 남짓한 크기에 14~5명 정도가 수용되는 방이지요.
밀폐된 공간에서 독방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청각이 예민해지기 마련입니다.
보는 것보다는 듣는 게 많으니 지척에 있는 이웃들의
코고는 소리, 방귀 소리까지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대도 독방 생활이 항상 적막한 것만은 아니랍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 동네가 낮, 밤 없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시끄러운 동네인데다 징역살이라지만 어차피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제한적이나마 이웃 간에 인정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붙이고 !
하나, 둘, 셋, 넷, 다섯, 붙이고 !
오동잎~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가~을 밤에 !
딱따닥, 따다닥, 딱, 딱, 딱딱 !

흥이 제대로 오른 건지 이젠 노랫가락에다 젓가락 장단까지 얼씨구.
대개는 바깥세상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던 사람들인지라
저리라도 ‘시간을 깨지’ 않으면 궁둥이에 좀이 쑤셔 못 견딜 겁니다.
다소 소란스럽긴 해도 깔깔거리며 흥겹게들 잘들 놀고 있네요.
놀러 가고 싶은 맘이 들 정도입니다.

지금 춤판이 벌어지고 있는 9방은
길어야 일주일 남짓 머물다 가는 신입자 대기방입니다.
가끔 저런 재미난 분들이 머물고 가는 며칠 동안은
한갓진 내 독방까지도 생기가 폴폴 전해져 온답니다.
별난 이웃들 덕에 오늘 오전은 덩달아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혜송님도 오늘 하루, 신명나게 보냈으면 합니다.


오래 전 12월 12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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