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을 위한 사색...사랑 서신 제006호


전례 없이 여름이 그렇게도 뜨거웠던지라 그와 상극하여
올 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라는
근거 없는 뜬 말들에 조바심도 없잖았건만
올 겨울은 예년에 비해 짧고 포근할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잃어 버린 돈 지갑을 되찾은 기분입니다.

혜송님의 남녘 여행 소식이
옥방에 슬며시 기어든 겨울의 머리 자락을
한 대 콕 쥐어 박은 고소함 만큼이나
훈훈하고 정겨웠습니다.
어머니께 큰 힘을 안겨 드렸을 혜린 님의 이쁜 몸가짐이야
보지 않아도 장면 장면이 눈에 선히 연상됩니다.
집 식구들과 혜송님의 정서가 서로 모나 뵈지 않는
친근함으로 교감되면 좋겠습니다.
이미 그랬으리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시간 눈치 볼랴, 사람 눈치 볼랴,
썰렁하고 멋대가리 하나 없는 접견실에선
아무래도 진지한 얘기들이나 정담을 나누기란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지 않고서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접견 중에 두서없이 꺼내었다가 매듭도 없이 말아 넣고만
출소 후의 전망에 관한 구상을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계속 이어갈까 합니다.
출소 후의 전망과 관련한 그간의 나의 사색을
혜송님과 공유해야 하는 건 내게는 의무이고
혜송님께는 권리란 생각을 갖습니다.
혜송님은 어느덧 가장 주요한 내 삶의 공동 창조자로서
내 삶에 관여하고 있고 때문입니다.

자유를 잃은 지도 어언 2년 3개월여,
그간 나의 사색의 핵심 과제는
첫째, 지난 날들의 사상과 실천과 삶에서의
긍정과 부정적 요소들을 가름하는 일이고
둘째, 그에 기초해서 운동의 새로운 전망을 모색하는 일이었으며
셋째, 출소 후 내 삶의 형태를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세월을 거치며 수행한 그간의 옥중 사색은
"여타의 국내외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내가 추구해온 지향과 가치는
여전히 인류 보편의 지향과 가치에 합치하는 것이며
내게서 오류가 확인된 지점은
실천 과정에서의 방법론적 좌편향이었음"을 깨닫는
중간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상과 실천에서 방법론적 좌편향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언제나 주의, 경계해야 할 바는 완벽주의적 사고에서 잉태되는
'지나침의 유혹'을 참아내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란 책 내용 중에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신심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다. 이단자가 성자에서 나오고 신들린 자가 선견자에서 나오듯이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조심하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저 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라는 구절을
의미 심장하게 되새겨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스탈린의 철권 통치가 그랬었고
마오의 문화 혁명이 그랬었고
김일성의 소위 '조국 해방 전쟁'이 그러했듯이
행여 나의 사상과 실천 또한 상기의 인용문이 경계하는 바 처럼
진리와 정의에 대한 지나친 집착과 격정과 자기 도취 속에서
'이단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건 아닌 지
겸허한 자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보편 가치나 진리 혹은 절대선을 추구한다는
자아 도취적 미명과 명분을 앞세운
선각자들의 그릇된 방법론적 독단은
그 자체가 해방의 대상인 대중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쇠사슬로 오작동하였던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인간 해방의 궁극적 가치의 중심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간이어야 함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지난 날들의 사상과 실천과 삶에 대한
자기 반성적 평가를 토대로
체제와 사회의 급속한 국내외적 변화에 조응하면서도
보편 가치의 지향이라는 원칙만은 잃지 않는 새로운 운동에 대한
전망과 향후 내 삶의 진로를 모색하는 일은
그리 만만해 보이는 작업은 아니었습니다.

<감옥 생활에서 내가 가장 염려한 것은 나의 생각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딱딱하게 얼어 붙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새로운 시각들에 대해 마음을 열어 놓고 있었다. 그것이 색다른 것이라거나 내 생각과 다른 것이라 해서 배척하지 않으려 했다. 그 덕택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었다>

혜송님, 위의 인용문은 넬슨 만델라의 회고 중 일부입니다.
나의 옥중 사색과 생활에서
공감하는 점이 많은 글이라 옮겨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깥 세상의 역동적 변화에 둔감할 수 밖에 없는
닫힌 공간, 닫힌 시간 속에서 살아 가는 사람들이
도태되거나 퇴보하지 않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끝 없는 진화를 향한 열린 사고'라는 넬슨 만델라의 회고는
참으로 일리 있는 충고로 와 닿습니다.



<.........................중략........................>



혜송님, 오늘 나의 얘기들이
어떤 느낌으로 와 닿을 진 모르겠으나
바쁜 일상 중에 혜린 님이 수행하는 사색의 범주를
함께 공유코자 하는 바램으로
재미 하나 없고 지루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포근할 것이라고는 하나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겠지요.
날씨가 찹니다.
이불 꼭꼭 잘 덮고 아무리 바빠도
끼니 걸르는 일 없기를 바랍니다.
혜송님의 건강과 기쁨은 곧 나의 건강과 기쁨입니다.


오래 전 11월 28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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