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도 백미러가 있을까 ?...사랑 서신 제041호





농부님네들 이맛살을 쫘-악 펴줄 봄비 좋은 아침입니다.

멍하니 옥창 너머로 봄비 감상하다가 허겁지겁 펜을 들었습니다.
혜송님께 글 낸 지가 벌써 5일 남짓이나 되었네요.
한 주 내내 텅 비었을 우편함을 뒤적이다
헛물켜고 속상해 할 당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콕콕 쑤시네요.

웬 종일 사람과 일에 시달리고 있을 혜송님에겐
내 글이 적잖은 힘과 낙인 줄 뻔히 헤아리면서도 며칠 동안
딴 짓(?) 하느라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미안합니다.

대신 내 오늘 글에선
한 주 내내 찌푸렸을 혜송님의 마음을 웃겨줄 만한
담장 안에서 일어나는 우스꽝스럽고 재미난 얘기 하나 들려 줄게요.

담장 안의 은어 중에 '심리 붙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케케 묵은 테엽형 괘종 시계 불알 왔다 갔다 하듯 지리한 일상이 반복되는
담장 안 생활에서 그 무료함을 달래고 시간을 깨는 데는
이 '심리 붙는 일' 만큼 재미난 것도 없을 겝니다.

'심리 붙는 일'이란 정말 엉뚱한 질문 하나 던져 놓고
정답을 찾는 담장 안 사람들의 말장난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담장 안에서 흔히 붙는 심리는 대개 비행기나 지하철과 관련된 게 많습니다.

예를 들면,
<비행기에는 백미러가 있을까, 없을까 ?>
<지하철 차량 한 칸에는 출입문이 몇 개 있을까 ?>
<옥수역과 약수역 사이에 있는 역이 금호역일까, 아닐까 ?>
<신도림역 서울 방면 플랫포옴에는 공중 전화 부스가 몇 개나 있을까 ?>
등등.........

위와 같은 대개의 물음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접하고 익숙한 것들이지만
막상 대답을 할라치면 알쏭달쏭해지는 그런 것들입니다.
그 외에도 대통령의 나이라든지, 연예인들의 신상에 관한 것, 스포츠, 음악,
동식물, 인명, 지명에 이르기까지
온갖 시시콜콜한 것들이 다 심리붙기의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일단 심리가 붙으면
내용에 따라 어떤 것은 하루 저녁에 결판나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몇 날 몇 일을 두고 심리가 진행되기도 한답니다.
몇 날이 지나도록 다 큰 어른들이 얼굴 벌겋게 붉히고 마른 침 튀겨가며
내가 맞네 니가 틀렸네 하는 모습이란
세상일 바쁜 바깥 사람들이 보면 정말 혀를 끌끌 찰 만큼
유치하고 하릴 없는 짓거리로 보일 테지만
정작 심리에 몰입된 당사자들은 심각하다 못해 우격다짐을 넘어서
종국엔 주먹다짐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답니다.

난 홀로 방을 쓰는지라
그 심리붙기에 직접 참여한 바는 없지만
가끔 밥 잘 먹고 난 한가한 저녁 시간 때 쯤해서
옆 방에서(일반 사범들은 대개 5~10명 정도가 한 방 생활을 합니다)
웅성대는 소리가 나는 듯 싶다가 어느 순간
쿵쾅거리는 소리와 욕설이 온 사동을 뒤흔들 때가 있지요.
아침에 일어나 소식을 들어보면
어김없이 심리붙기의 마지막 단계까지 진행된 결과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심리붙기의 유형에는
'자연 발생적'인 것과 '목적 의식적'(?)인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전자는 일상의 자연스런 대화 중에
쟁점이 불거져 시비가 붙는 경우이고
후자는 장난끼 많은 누군가가
고의로 농간을 부려서 판이 형성되는 경우입니다.

후자의 경우 판을 고의적으로 만들어내는 사람들도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그 첫째 부류는 '바람잡이형'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알쏭달쏭한 물음 하나를
의도적으로 던져 놓고는 바람을 잡기 시작하면
워낙에 시비 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으레 미끼에 걸려드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나 둘 끼어들다 판이 커지고 열기가 고조된다 싶은 순간에
정작 판을 조장한 바람잡이는 뒤로 슬그머니 물러나 앉고
막판까지 가는 심리붙기의 아수라장을 넌즈시 감상하면서
자기 시간을 교묘하고 즐거이 깨는 부류이지요.

그 둘째 부류는 '시치미형'입니다.
이 시치미형은 처음부터 자신의 주장이 틀린 줄 알면서도
시치미 딱 떼고 온 저녁 시간이 다가도록
우김질하면서 상대들의 부아를 잔뜩 뒤집어 놓고서는
잠자리에 들 때 쯤해서야 기껏 한다는 소리가
"그래 니 말이 맞아. 나도 알아. 그냥 시간 한 번 깨볼려고 그래 봤어."라며
좌중에 허무와 황당을 남기고 돌아서는 부류입니다.
이 경우는 바랍잡이형이나 판에 참여한 이들이나 구경하는 이들까지
일거에 몽땅 바보로 만들어 놓게 됩니다.
정말 뛰는 놈(바람잡이형) 위에 나는 놈(시치미형) 있다더니 딱 그 짝입니다.

어찌 보면 참 소모적이고 안타까운 담장 안 문화의 한 단면이지요.
교정 정책 분야에서 많이 연구되어야 할 대목입니다.

어쨌건 그렇게 그렇게 담장 안의 하루는
그 누군가의 농간 속에서든 부서져 내리고
태양은 어김없이 또 누군가의 농간 속에 깨어져 갈
또 다른 하루를 토해 놓습니다.

하기사 고희를 몇 해나 넘긴 할아버지들 조차도
시간아 어서어서 깨져라고 소망할 정도로
답답하고 무료하고 사람 살 곳 못되는 징역살이다 보니
한 편에선 이해 못 할 것도 없지만
글쎄요, 담장 안의 시간들이 마냥 무료하고 깨어져야만 할
의미없고 가치 없는 시간들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해 주어진 귀한 시간들이라는
생산적인 사고가 나의 이웃들에게도 필요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 넓은 담장 안 어느 옥방에선가는
무료한 징역의 시간을 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들이
또 한 바탕 벌어지고 있을라나요.

혜송님, 어찌 재미있었나요.
마냥 재미로만 듣기에는 비애가 서려올 수도 있는 얘기인 터라
혜송님을 웃겨줄려는 내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는 지 의문입니다.
가끔 내 딴엔 무척 재미있는 얘기라고
입에 침 튀겨가며 재잘거린 후에 상대의 표정을 보면
정말 요강 뚜껑으로 물 떠 마신 사람 같은 그것을 볼 때가 있거든요.
설마 오늘이 그런 경우는 아닐......

혜송님의 뾰루퉁한 목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하겠습니다.
.........그것도, 얘기라고 하니 !!!.......


오래 전 3월 24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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