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마라! 지금 머 찍고 있는데!!






동일한 사물이나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저마다 드는 생각'이란 관점에 따라 천양지차인가 봅니다. '귀엽다' '논리적이다' '당돌하다' '버릇없다'...... 이 영상을 보고난 사람들의 댓글 반응을 일독해보니 대략 이같은 반응입니다. 

1. 어린애들이 마냥 귀엽다
2. 어린데도 대단히 똘똘하고 논리적이다
3. 어린애들이 지나치게 당돌하고 버릇없다

저는 2번을 주목하고 1번으로 정리되더군요. 근데 영상에 달린 댓글들 중에서 제 생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몇몇 분들이 계시더군요, 원문 그대로 소개하면, 

"이게 재밌다고 웃을 동영상인가..? 빽빽 악다구니 쓰는 애나 그걸 찍고 않았는 어른들이나.."

"뭐가 귀여워ㅋㅋ  싸가지보소 어따 쌍으로 폐륜납셨네? 교육좀 잘시키소 저런승질머리 따위로 앞으로고생좀하겠네"

"크면 대형 싸운싸움날꺼같다"

"저게 귀엽냐??? 나중에 대가리 크면 장난 아닐 성깔인데 존나 꼴보기 싫타 사투리도 듣기싫고"

"어이구. 둘째 정말못됫네.언니한테 대들고 교육좀 똑바로 시키세요 ㅉㅉㅉ"

"애가 뭘보고 자랐는지 버릇이없네. 좋다고 웃는어른이나"

"어른한테반말은쫌ㅋ 찍지마라..ㅋ"

"꼭 저런것들이 커서 지말만하고 다른사람말 안듣는다"

"저런걸귀엽다고부모들술판에애들말싸움찍지마라웃을일이가고슴도치도지자식은이쁘다지만이건아니지정신차리라"

위 글들은 3번의 관점에서 단 댓글들입니다. 글맵시로 보아 대략 나이드신 분들의 반응이 이같은 것 같습니다. 마지막 댓글은 다소 과해 보이는 언사가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네요. 아마 유교적 전통가치를 지고지순하게 받아들이는 이 시대의 마지막 유생으로 남고픈 분인지도 몰겟구요^^.

경상도 아이들의 당찬 말쌈이 마냥 귀여붜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거리는 분들의 댓글은 차치하고 윗분들과는 전혀 상반된 관점의 댓글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애가 아니네요 ㅋㅋ 요목조목따지는것이 --언니가 좀 딸린듯 ㅋㅋ 보통아이가 아녀 ㅋㅋ"

"똘똘하네 ㅋㅋ 말도잘하고"

"자기주장을 표현할줄아는 요즘 얼라들~ 구엽습니다"

"이쁜따님둘 키우신분행복하시겠어요)부럽습니다 ㅎ"

"애들이 아이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잘하는거 대단한거고 애들아직 자라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웃긴게 아닌가? 본인들은 성격이 천사신가?ㅋㅋ"

"뭐랄까 부모가 안말리는것도 쫌 그런데.. 애들이 주먹다짐안하고 말로 해결하려는것도 대단한듯?ㅋㅋㅋㅋㅋ"

그렇네요, 파란색 마지막 댓글이 이 영상을 보면서 제가 가장 주목했던 부분을 잘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관점에선 영상 모습만 놓고 보면 아이들의 부모가 욕 먹을 일이 아니라 칭찬받을만한 일입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얼굴이라고들 하죠. 아이들 앞에선 싸우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게 최선이겠으나 살면서 여의치 않게 아이들 앞에서 언쟁을 하더래도 저런 모습이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차선의 모범을 보였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형제 중에 큰 놈과 작은 놈, 어른과 아이, 부부의 관계에서 약자의 편에 놓이는 측의 가장 큰 불만이 고리타분한 유교적 서열질일 겁니다. '감히 동생이 언니한테 대들어!' '어디서 마누라가 남편한테 큰소리야!' '자식새끼가 어디 부모한테 말대꾸야!' 이런 논리들 앞에선 공정한 소통이란 언감생심입니다.

형제간, 부모자식간, 부부간, 나아가 세상의 모든 소통은 억압없이 쌍방향의 평등한 의사교환이 담보될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한 손에 회초리를 들고 할 말 해보라는데 뉘라서 하고픈 말 제대로 뱉어낼까요. 나이가 어리기에, 여자이기에, 자식이기에, 아랫사람이기에 일단 꿇고 말하라면, 그런 유형무형의 억압 아래서 과연 제대로 된 소통이 가능할까요.

저 아이들과 저 아이들의 부모를 훈육하고 있는 분들께선 자신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과거적 모습을 회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저 정도 감정이 고조되면 욕을 하거나 밀치고 봅니다. 하고픈 말 채 뱉지도 못해보고 큰 아이가 작은 애를, 부모가 자식을, 남편이 마누라를 힘으로 제압하면서 난장판이 되고마는 게 소통없는 우리네 가정의 흔한 일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집에는 주먹다짐하는 애들 키우면서 영상속 아이들의 말빨이 보통이 아니라고 커서 뭐가 될지를 걱정하는 분들은 걱정도 팔자입니다. 쟤들 아주 훌륭합니다. 저 정도로 감정이 고조된 속에서도 여느 아이들처럼 욕지거리나 주먹을 앞세우기보단 자신의 논리를 조목조목 전개해 나가는 모습이 제게는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마치 토론의 기술을 배운 아이들처럼요. 자신의 말만 들입다 내지르는 게 아니고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반박하는 자세도 저 정도면 훌륭합니다. 동생말 듣다 보면 동생말이 옳은 것 같고, 언니 말을 듣다 보면 언니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할 정도로 둘 다 논쟁 주제에 충실하고 논점일탈하지 않는 모습도 대단하고, 동생이 끝까지 야,자를 동원하지 않고 '언니'란 호칭을 놓지 않는 감정절제력도 어른들보다 훨 낫습니다. 그야말로 형식면으로 보나 내용면으로 보나 제대로 된 논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전 이 아이들과 이 아이들의 부모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아이들 아주 제대로 키운 겁니다.

사족 하나 더 달면, 이 영상의 하일라이트 부분인 마지막 앵글, 찍지마라!는 갱상도 분들한테 익숙한 정경입니다. 요즘에야 갱상도에서도 젊은부모들이 첫돌지난 아이한테 경어를 써가면서 경어사용에 익숙토록하는 조기 언어 훈련의 결과 아이들이 부모한테 경어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가정도 많아졌다지만 아직도 갱상도의 웬만한 집에서는 아이가 부모한테 반말하는 거 익숙한 모습입니다. 나쁘게 보면 버릇없고, 좋게보면 그 지역문화권에서는 나름 정겨운 모습입니다. 반말하는 거 때 되면 스스로 알아서 고치는 게 이 지역의 전통이라면 전통이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어려서 부모님한테 반말투로 소통했대서 악당이 된 것도 아닙니다. 찍지마라!는 한마디에 애새끼 버릇 졸라 없게 키웠다고 나무라시면 그건 이 지역의 정서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입니다. 

저는 어른들이 아이들 키우면서 가장 잘 가르쳐야 할 것을 영상속 저 아이들은 제대로 습득하고 구현하고 있는 듯해서 보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하고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인 소통! 어른들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소통을 입이 아닌 주먹으로 하려는 아이들을 참으로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집에서 주먹질하는 애 바깥에서도 하고, 어려서 주먹질 하는 애, 커서도 합니다. 동물 때리는 아이가 사람도 때리게 됩니다. 폭력이 문제인 것이지 언쟁은 인간사에서 피해갈 수 없는 일상입니다. 대화가 부드러운 소통이라면 언쟁은 감정이 동반된 격한 소통의 한 형태일 겁니다.  

저는 저 아이들이 커서도 주먹을 앞세우는 일 없이 그 당찬 입놀림으로 세상과의 소통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고통받는 이웃들을 대변할 수 있는 그런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암튼 당찬 아이들 덕에 모처럼 속이 뻥 뚫린 듯 웃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