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독한 침묵의 카르텔을 향한 장자연의 노래


*침묵의 카르텔 : 어떤 사회집단이나 이해집단에 불리한 문제나 현상에 대해 동일한 집단 구성원 간에 서로 침묵하고 비판을 하지 않는 현상, 예를 들어, 언론기관끼리는 서로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지 않고 동종 기업들 간에 서로의 흠결을 묵인하는 것과 같이 팔이 안으로 굽거나 제 식구 감싸기와 같은 일종의 패거리 문화 현상을 말한다. 원래 카르텔은 기업 상호간 경쟁을 제한하거나 완화할 목적으로, 동종 또는 유사산업 분야의 기업 간 협정을 통해 결성되는 기업결합형태. 기업연합(企業聯合)을 가르키는 경제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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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르텔!

2년 전, 장자연양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국회에서 이 문제를 쟁점화 하던 민주당 이종걸 의원, 민노당 이정희 의원에 대해 조선일보가 명예훼손 혐의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행위를 반박하면서 이종걸 의원은 "이런 침묵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 도구가 면책특권"이라고 했고, 이정희 의원은 "침묵의 카르텔을 깬 국회의원과 언론을 본보기로 삼아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것"이라면서 ‘침묵의 카르텔’을 언급한 바 있다.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119481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546

한 배를 탔던 난봉꾼들이야 입이 만 개인들 글타 치고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대한민국 상류층의 입이 이토록 무거운 줄 미처 몰랐다(아니, 이미 알았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관심병 환자들처럼 나대던 각계의 입방정들도 주뎅이에 자물쇠라도 채웠는지 고요하다. 참으로 오묘하고 요상한 ‘침묵의 카르텔’이다. 유독 이 사안에 관한 한 한국 사회의 주류는 2년째 묵언수행 중이다. 하긴 이 사회에서 방귀깨나 끼는 남정네들치고 자신만은 뱃놀이 카르텔 밖의 존재라고 장담할 선량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어제인가 이 지독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배우 문성근이 1인 시위에 나섰다. 그간 여배우 김여진, 시골의사 박경철, 대중문화평론가 진중권, 야당 대변인들의 짧은 논평 몇 마디 등이 이 지독한 침묵의 카르텔에서 삐져나온 목소리들의 전부였던 것 같다. 이 사건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여성 인권 신장에 앞장을 서야 할 여성부나 여성 의원들의 목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다. 재력과 권력을 지닌 여인네들도 남정네들 모르게 감춰둔 알사탕이라도 있는 건지 그래서 남성들이 주류인 침묵의 카르텔에 암암리에 동조하는 것일까? 도진개진이라서? 거 참 희한한 일이다.

이게 참 그래서 어렵고 묘한 사건이다. 수사하는 검경이나 보도하는 언론이나 지켜보는 정부나 국민들까지 말간 가슴보다는 구린 가슴들이 많다. 어른들의 세상을 아직 모르는 어린 청년들 말고 이 사안에 대해 뉘라서 담담하고 당당하게 돌을 던지겠는가. 이런 혼탁한 세상에 당사자는 목숨을 던져 항거했으나 31인의 악마들은 단 한 톨의 죄의식도 없을 건 자명하다. 해로운 줄 알면서도 빨아대는 담배처럼 그들이 밤마다 일상처럼 누리던 은밀한 사치가 ‘재수 없이’ 세간에 공개된 데 따른 작은 쪽팔림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수사의 대상자들은 일말의 죄의식도 없으며 수사하는 자들도 모두가 침묵의 카르텔에 한 발을 걸친 구린 가슴으로 참여하는 터에 사건의 구성 또한 녹록치 않다고 들린다. 압수 수색을 통해 확보한 장자연 편지의 원본에 조작 흔적이 있다고도 하고 핵심 증인은 벌써 잠적을 했다고도 하는 본새가 2년 전처럼 또 언제든 얼렁뚱땅 봉합하고 끝낼 만한 조짐이 다분해 보인다. 31인의 악마들은 장막 뒤에서 주도면밀하게 그런 환경을 만들고도 충분히 남을 만큼의 위력을 지닌 자들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63&articleid=2011031011550042798&newssetid=487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63&articleid=20110310113827783e7&newssetid=33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4&articleid=20110311153119538e7&newssetid=1352
(2011.03.11추가)

역시 이번에도 갑의 승리로 끝날 것 같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여성보단 남성이 갑이고 권세 있고 돈 많은 자가 갑이요, 잘 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갑이며, 권모술수에 능한 자가 갑인 세상이다.

더 예쁜 여인도 많고 권모술수가 횡행했던 그 곳에서 자연 양은 결코 갑이 될 순 없었다. 엄마도 아빠도 없이 몸뚱아리 하나로 버티기엔 자연 양에겐 너무도 벅찬 세상이었다. 한 어린 여인이 청춘을 송두리째 난자당하고 급기야 생명을 내건 고발조차 이 거대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기에는 이란격석이었던가 보다. 자연 양의 죽음이 청운의 꿈을 안고 연예계에서 갑의 인생을 꿈꾸는 많은 어린 예비 연예인 지망생들에게라도 냉엄한 교훈이 되었으면 한다. 자연 양에게 그 옛날 투사들에게 바치던 꽃 한 송이, 노래 한 곡 올리며 그 억울한 영혼을 위로해본다. 내 눈엔 자연 양도 거대한 권력의 비리에 맞서 생명까지 내던져 저항했던 투사였기에.




http://kr.kpost.search.yahoo.com/messageBoard/topicPageDisplay?forumID=ad1f6a4b-04df-44ca-b3f9-6a55de1996ff&selfURIEncoded=v1%252Fmb%252Fboard%252Fad1f6a4b-04df-44ca-b3f9-6a55de1996ff%252Fthread%252F1299732245749-8f06b782-e5e8-458a-abb0-6a2396c4ab15
(2011.03.16추가)

(2011.03.16추가)

(2011.03.16추가)

(2011.03.16추가)

무기력한 봄이다. 곧 이 산하를 붉게 물들일 진달래를 환하게 웃는 얼굴로 바라볼 수나 있을지......죽은 자연 양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성인 남성들에게 묻는다.

“아저씨는? 아저씨는 깨끗한가요?”


===東山高臥===

다시 보는 장자연 사건...갖다 바치는 봉헌의 문화



1.봉헌 [奉獻, offerings]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이 미사·성사 집행·전례, 또는 심신 행위와 관련하여 자발적으로 바치는 예물이다. 봉헌의 근본적인 목적은 하느님에 대한 흠숭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최상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은혜를 구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또한 죄에 대한 속죄의 행위로서 하느님께 어떤 예물을 봉헌한다. 봉헌의 2차적인 목적은 예식을 유지하고 그 예식에 위임된 직무자들의 생활을 위한 것이다. 처음에 봉헌물은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이었으나, 점차 신자들의 신앙심이 감소하면서 봉헌물이 줄어들어 이미 5세기에 와서는 의무적인 경향을 보였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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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로 나뉜다. 힘은 때론 상대적이고 때론 절대적이다. 고양이는 쥐 앞에선 절대적 힘을 행사하지만 사나운 개 앞에선 자신이야말로 ‘고양이 앞의 쥐’ 신세가 될 뿐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나 봉헌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 봉헌은 자발적 봉헌과 강제적(의무적 봉헌)으로 나뉜다. 서울 시장 재직 당시 이명박 장로가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천명한 건 자발적 봉헌의 의지였지만 장자연양의 소속 기획사가 ‘31인의 악마’에게 장자연양을 봉헌하듯 갖다 바친 것은 어떤 성격의 것일까?

봉인되다시피 했던 장자연양의 사건이 다시 뜨겁다. 갖다 바친 자들은 단죄되었으나 봉헌을 요구한 31인의 악마들은 ‘무혐의’로 지금껏 건재하다. 며칠 전 뉴스에서 죽은 자연양이 남겼다는 편지들이 세상에 재개봉되었을 때 놀라서 다들 밥숟갈을 눈으로 디밀었겠다. 아니다. 그런 뉴스가 보도되리란 걸 이미 알고 있을 만한 힘 있는 자들인 만치 눈깔 하나 깜빡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밤의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천하에 힘 있는 나으리들 아니신가, 뜨아.

위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을 아래와 같이 바꿔 보았다.

2.봉헌 [奉獻, offerings]

한국 사회에서 힘 없는 자들이 사업이나 인사, 또는 여타의 이권과 편의를 목적으로 힘 있는 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바치는 예물이다. 봉헌의 근본적인 목적은 힘 있는 자들에 대한 흠숭이다. 그러므로 힘 없는 자들은 봉헌을 통해 힘 있는 자들의 최상의 힘을 인정하고, 힘 있는 자들로부터 은혜를 구하며,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또한 청탁에 대한 속죄의 행위로서 힘 있는 자들께 어떤 예물을 봉헌한다. 봉헌의 2차적인 목적은 힘의 질서를 유지하고 그 질서에 위치된 권력자들의 신선놀음을 위한 것이다. 처음에 봉헌물은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이었으나, 점차 힘 없는 자들의 경계심이 증대하면서 봉헌물이 줄어들어 근래에 와서는 반강제적인 경향을 보였다.
-출처/동산고와 백과사전

‘봉헌’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의 설명을 풍자하면서 못내 씁쓸하다. 재작년 자연양이 죽음으로써 세태를 고발했을 당시에도 우리는 이미 일의 결말을 예측했었고 그 예측대로 유야무야 봉합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2년이 지난 지금 다시 언급되는 31인 악마의 명단에는 '감히 건드려서는 안 될' 밤의 대통령이 끼어 있었기에 그랬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그 어떤 비리와 부정에도 건재하듯 대한민국 사회에는 그런 밤통령들이 많고 자연양 사건에 연루된 모일간지 사주 또한 그런 그들 중의 1인이다. (재개봉된 편지의 글들이 사실이라면) 자연 양은 편지에서도 그를 악마들 중의 짱급으로 언급했다. 대기업 임원이니, 방송국 PD니, 연예기획사 대표니 하는 나부랭이들은 운 좋게도 짱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소리가 있지만 이들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면죄부를 득템하는 행운을 누렸다.

노무현 정부 치하에서라면 모를까 장담컨대, 이명박 정부는 절대 '31인의 악마'를 못 잡는다. 그들 중의 ‘악마의 짱’뿐만 아니라 나머지 악마들조차 단 1명도 건드리진 못할 거다. 이 사건의 성격이 그렇다. 편지에 언급된 그 누구라도 단죄될 경우 나머지 모두도 단죄되어야만 한다. 밤통령을 쳐낼 용기가 없으니 피라미조차 건드리지 못하고 사법부의 권위는 땅바닥이다. 많은 결함을 지닌(때론 그들과 야합하는) 정부가 ‘감히’ 밤의 대통령을 쳐낸다는 건 그야말로 언감생심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쥐 앞에선 절대적 힘을 지니고 거들먹거리는 고양이도 개 앞에선 쥐 꼴이다. 이명박 정부의 온갖 비리를 폭로하고 초토화시킬만한 만한 절대적 힘을 지닌 밤통령이 개라면 이명박 정부는 개 앞에서 기죽은 고양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자 시절 밤통령을 ‘알현’하고 머리를 조아리던 모습을 기억한다. 이명박 장로가 서울시나 대한민국을 하나님이 아니라 밤통령에게 봉헌한다고 하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다. 자연 양이 죽어서 하나님께 고발을 해도 하나님도 어쩌지 못하는 밤통령을 뉘라서 ‘감히’ 단죄하겠는가. 내 볼 땐 죽은 노통 말고는 밤통령을 단죄할 수 있는 대통령을 앞으로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이런 비관적인 결말을 예측하는 게 죽은 자연 양에겐 참으로 미안하다. 대한민국엔 밤통령들이 한둘이 아니다.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진 기득권 집단들 간의 합종연횡의 힘은 참으로 공고하고 작금의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힘이다. 서로의 흠을 약점으로 잡고 서로가 서로를 지켜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생공멸의 연대감으로 똘똘 뭉친 그들의 명줄을 끊기란 혁명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다. 인터넷 여론의 불길이랬자 또 다른 흥밋거리가 하나 터지면 곧장 사그라들고 마는 즉흥적인 것이라 자연 양의 그 억울함과 원통함을 근원적으로 풀 길 없음에 내 가슴 또한 먹먹하고 답답하다.

사방팔방을 둘러보아도 선인이 없다. 갖다 바쳐야 사는 봉헌의 세상, 어둠의 자식들이여! 이명박 장로여, 대한민국을 하나님께 봉헌하면 하나님이 과연 이 어둠을 걷어줄 능력과 권세와 정의를 보여줄 거란 믿음은 있는가? 장자연 양 사건을 그대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정의롭게 해결치 못한다면 살아있는 우리 모두가 악마인 것을.


===東山高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