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님을 떠나 보내기가 퍽이나 아쉬웠습니다...사랑 서신 제082호


오늘은 혜송님을 떠나 보내기가 퍽이나 아쉬웠습니다.
사방으로 돌아온 지금 이 시간까지도
뒤돌아 접견실 문을 나서던 혜송님의 잔상이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공허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네요.
이런 날에는 장대비라도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으면...

알고 있나요 ?
전혀 의도하진 않았을지라도
오늘 혜송님은 나의 보호 본능을 아주 아주 많이 자극하고 있었다는 걸.

예기치 않은 발걸음을 의아해하는 ‘무딘’ 내게
전날 고향 친구가 짝을 짓는 모습이 그리도 시샘 나서
새벽을 당겨 발걸음을 떼었노라는 혜송님의 얘기가
나의 온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런 혜송님의 투정(?)이 한 편으론 정겹기도 하고
한 편으론 안쓰럽기도 해서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기다림과 그리움은 참 큰 아픔이 되어 옵니다.
뭔가 새로운 변화라도 있었으면 하는 강렬한 바램이
담장 안의 하루를 천 년 인양 더디고 지루하게 합니다.

근자에 들어 혜송님이나 내나 기다림과 그리움의 정도가
평상심마저 잃게 하는 과포화의 수위에 이르렀나 봅니다.
그래서인지 요즈음은 멀뚱멀뚱 넋 나간 듯
벽에 붙은 혜송님의 작은 사진을 보며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들 때가 부쩍 늘었습니다.
혜송님도 그러한가요 ?

가끔은 말입니다,
기분 전환을 위해 실컷 울어보는 것도 괜찮습니다.
이 지리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아픔을 이겨내는
한 방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혜송님, 지금의 우리의 처지와 상황이
모질게도 야속하게 느껴질 땐 가끔은 속 시원히 울어 버리세요.
내 사진에다 대고 마구 욕도 하고 쥐어 뜯기라도 하세요.
왜 아직도 창살에 감겨서 틀어박혀 있냐고
이 바보야 ! 멍청아 ! 라고 한껏 소리라도 질러 보세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음 다시 또 울어 버리고요.
그렇게라도 몇 번 하고 나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진 않을래나요.
차라리 접견 중에 날 눈 앞에 두고서
그리할 수만 있다면......
지켜보는 누군가를 옆에 두고 그리는 못할 혜송님이기에
더욱 안쓰럽습니다.

오늘은 종일 다른 아무 일에도 집중치 못하고 멍하니 하루를 보냈습니다.
허한 마음에 기운이라도 얻을까 먼 길 달려온 혜송님에게
힘 될 만한 아무런 확언하나 전해줄 수 없는 나의 모자람이
내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북스럽습니다.
이 모두 내 부덕의 소치입니다.

기운을 얻으러 온 혜송님의 남은 기운마저
쏙 빼 놓은 듯해서 참 많이 속상합니다.
혜송님에게 내 언제나 기쁨이 되고자 철썩같이 다짐했건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듯해서 속상합니다.
혜송님에게 내 언제나 행복이 되고자 철썩같이 다짐했건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듯해서 속상합니다.
혜송님에게 내 언제나 희망이 되고자 철썩같이 다짐했건만
그러지 못하고 있는 듯해서 속상합니다.
그러나 이 모두 마음 뿐일 수 밖에 없는
내 갇힌 처지가 너무도 안타깝고 속상해서 눈시울이 뜨겁습니다.

지난 주에 글 많이 못 썼던 게 못내 후회스럽습니다.
이번 주 내내 빈 우체함을 뒤적이다
헛탕치고 기운 빠져할 혜송님을 생각하면 나의 게으름이 미워집니다.

안되겠습니다.
힘 좀 내어야겠습니다.
심기일전 해야겠습니다.
사랑만을 생각해야겠습니다.
혜송님만을 생각해야겠습니다.
그 외 잡스런 것들일랑은 당분간 생각지 말아야겠습니다.
성급한 고민도 무리한 고민도 뻔한 고민도 당분간은 밀쳐두어야겠습니다.
점점 후덥지근해지는 날씨 탓에 여러 가지 잔짜증도 늘어날 터인데
오직 사랑만을 생각하는 게 옥중 생활에 생기와 신명을 불어넣는
유일한 방편이지 싶습니다.

기다림은 기다림대로
그리움은 그리움대로
그것들이 지닌 그 이면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그 아픔은 아픔대로 슬기롭게 삭여나가야겠습니다.
이 사무치는 기다림과 그리움은
우리 사랑을 한층 빈틈없이 조여매고 다져주는
기회와 축복으로 여기며 인고해 나가야겠습니다.
사랑이 있는 기다림은 아름답습니다.
사랑이 있는 그리움도 아름답습니다.
기다림과 그리움이 있는 사랑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내 아낌없이 사랑하는 이가
날 아낌없이 사랑하는 이라면
그 사랑 그대로가 영원이고 우주인 것을.....

혜송님, 기운 내세요 !
혜송님을 영원과 우주로 생각하는 사랑이 늘 곁에 있습니다 !
당신을 사랑합니다 !


오래 전 6월 28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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