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한 메아리...사랑 서신 제110호


코스모스(들국화인가요?) 두 송이가
멋대가리 없는 희멀건 규격 봉투의 기를 한껏 살려 주는군요.
난 혜송님의 그런 아기자기한 정서가 참 좋습니다.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 역시 무뚝뚝이 앞에선 무뚝뚝이가 되고
아기자기한 사람 앞에선 아기자기한 천성이 살아나게 되거든요.
긴장감과 비장함에 짓눌려 멋대가리 하나 없이 건조하던 나와 내 삶에
한껏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는 혜송님이야말로
내게는 희멀건 규격봉투 위에 그려진 코스모스 같은 존재랍니다.

예순 번째 글 받았습니다.
윗사람들이나 고마운 사람들의 생일날만은 챙기고 살자는
혜송님의 주문에 깊이 공감합니다.
기념할 날 많은 특별히 잘난 사람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겐
생일은 년중 유일의 소중한 기념일일 수도 있겠지요.
암튼 생일이란 잘났든 못났든 그 누구에게나
챙겨 줘서 기쁘고 축하 받아 기쁜 날인 것만은 분명할 겁니다.
기왕에 내 삶에서 '큰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만치
그간 뒷전에 물려 두고 소홀하게 대해 왔던 자잘한 삶의 양식 전반을
가다듬어 볼 수 있도록 두루두루 애쓰겠습니다.
이번처럼 내 삶 여기저기에 숭숭 뚫려 있는 구멍들을
소리없이 메워주는 혜송님이 곁에 있다는 게 내겐 참 큰 복입니다.

사라진 진달래와 개나리 편지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가슴 속에서
시들지도 퇴색하지도 않으면서 언제까지나 활짝 피어 있을 것을 생각합니다.

민호가 나이에 걸맞잖게 의젓하네요.
난 솔직히 아빠의 글보다 민호의 글이 훨씬 감동적이고 가슴을 떨게 합니다.
오선배의 글을 대하는 순간 마치 10여년의 세월을 역류하는 듯했습니다.
애국하는 마음과 열정이야 시공을 초월할 수도 있겠지만
애국하는 방법은 아무래도 그 시대의 정신을 도외시하고서는
그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오선배의 혁신 정당론에 대해선
그 순수한 애국적 열정을 십분 이해하면서도
그 인식의 내용과 표현의 양식은
급변하는 작금의 시대 정신을 반영치 못하고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음을 지적치 않을 수 없습니다.
가혹한 혹평일진 모르겠으나 내겐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와닿습니다.
작금의 시대 정신으로 보면
‘혁신 정당’, ‘혁명’, ‘상층통전, 하층통전’이니 하는 용어들은
학술적 개념으로서만 유효할 뿐 이제는
그 실천적 의미가 상실된 지 오래인 박제화된 개념입니다.
오선배가 실천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그런 용어와 개념들의 자리에는
‘개혁정당(진보정당)’, ‘시민운동; 시민사회운동’,
‘정보,통신,과학기술,환경,문화’, ‘정당 정치;의회 정치’ 등등
보다 다원화되고 탈이념적인 용어와 개념들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오선배의 주장들이 설령 그 논리적 정합성과 타당성을 지닌다손 치더라도
시대적 여건과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생명력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80년대 초,중반에나 먹혀듬직한 박제화된 주장일 뿐이란 겁니다.
근자에 논의되는 ‘21세기를 지향하는 한국사회운동의 쟁점’들에 견주어 볼 때 느닷없이 맞닥뜨린 오선배의 글은 참으로 어색하고 거북하게 다가옵니다.
컴퓨터로 게임이나 통신을 하는 어린이의 귓전을 때리는
갓 쓰고 상투 튼 할아버지의 공자 왈 맹자 왈인 게지요.
21세기를 예비하는 시대정신의 주류가 ‘사랑과 조화, 상생’이라는 화두 아래서
그 큰 틀들이 짜여가는 지금에도 오선배의 인식은 여전히
‘투쟁과 대립’이라는 20세기적 시대정신에서
한 치도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 열 서넛 모여서
'무슨 무슨 대오'라는 써클을 형성했다가 적발되었다는 보도를 접했을 때도
오늘 오선배의 글에서 받은 느낌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더랬습니다.
그 모두 관념적 좌편향들이라 지적치 않을 수 없습니다.
불행하게도 오선배가 8페이지에나 걸쳐 쏟아 부은 열정이
내겐 전혀 무감동한 언설의 낭비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80년대 지하 팜플렛에서나 봄직한 그런 오선배의 고루한 주장들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작금의 나의 사색과는 하등의 연관이 없어 보입니다.

돌아 보면,
‘사상을 획득하는 것’만큼이나 ‘사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쉽지가 않네요.
사실, 사상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정녕 작지 않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3년여 동안 난 줄곧 그 고통을 인내하며
기존의 사상을 점검하고 변화하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신사고를 정립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습니다.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고 탁상머리굴림 속에 이루어지는
관념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다만 '변화와 새로운 시작'에 그 의미를 두려합니다.

혜송님, 혹여라도 민호 어머니를 통해 나의 반응을 물어 오면
그냥 두리 뭉실 넘어가세요.
세상이 급변해 가는 만치 조만간 그 어떤 계기를 통해서든
오선배 역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시도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 다 이성과 합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요.

혜송님, 오늘 글은 많이 무거웠네요.
추석 휴가는 잘 보낸 건가요?
어머님, 아버님과 친지들께서 명절날에도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
혜송님의 짝을 많이 탓하시진 않던가요?
그 죄스러움일랑, 아쉬움일랑, 안타까움일랑 조금만 더 삭여둘 수 밖에요.
혜송님의 처신이 여러모로 난감할 터입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조금만 더 힘 내고 견뎌가자라는 말도 이젠 낯간지럽네요.

운전하게 되면 조심, 조심, 또 조심하세요!
잘 지내요. 언제나 나의 사랑은 하늘만큼 땅만큼입니다.


오래 전 9월 5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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