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하늘의 별을 따서 달랠까, 달을 따서 달랠까 ?...사랑 서신 제088호





"철창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청아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꽃 피울 날 언제일까
임 그리는 나든 총각 너를 반겨 놀았도다"

일주일 전 쯤, 키가 10cm 정도 자란 봉선화 두 그루를
이웃집에서 분양 받아 옥창틀에 놓았습니다.
봉선화도 그렇지만 그 화분이 정말 일품이네요.
페트병을 재활용하여 왕관 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제작자의 그 기발한 착상과 재주에 감탄이 절로 납니다.

혜송님께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네요.
바깥 세상의 무궁무진한 풍요로움과는 달리 너무 궁한 곳이다 보니
길가에 개똥도 예술품으로 빚어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랍니다.
궁하면 통한다잖아요.
수십 년을 거스르며 숱한 시행착오 속에 누적되어 온
지혜와 재주의 산물인 ‘궁핍의 예술품’들이 가끔 이렇듯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내게 한답니다.

하기사 담장 안에서 축적된 그 지혜와 재주들이 얼마나 비상하면
옥중 재소자들을 한 달 간만 감시하질 않고 자유로이 둔다면
비행기를 만들어 15척 담장을 너머 날아갈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다 나돌겠습니까.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담장 안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별난 창작품들을 몇 가지 혜송님께도 소개해 드릴 게요.

하여튼, 화분이 명품(?)이어서인지
그 속에 자리 잡은 봉선화도 신명난 듯 쑥쑥 잘 자라네요.
바깥 같으면 엄두도 못 낼 만큼의 정과 사랑을 흡수한 탓도 있겠지요.
아침에 깨어서 보면 밤새 2~3cm씩은 커가는 듯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를 정도입니다.

처음 가져올 땐 자그마하더니 일주일 새 저리도 멀대가 되었네요.
하나는 20여cm 다른 또 하나는 25cm 정도 되었습니다.
처음 가져왔을 때 작았던 녀석이 지금은 더 많이 자랐습니다.
잎사귀 수의 많고 적음 때문인 듯합니다.
잎사귀가 많은 녀석, 뿌리 혼자서 여러 식구들을 먹이고 물 대는게 벅찬 건지
키가 쉬이 자랄 수는 없었나 봅니다.

두 그루의 봉선화,
하나는 크고 하나는 작은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흡사 한 쌍의 연인과도 같아 보입니다.
그래요, 키 크고 잎사귀가 적어 약간 홀쭉해 보이는 게 나라면
키가 작고 잎사귀가 많은 탓에 약간 통통해 보이는 쪽은 혜송님입니다.

재미 삼아 우리 내기 한 번 할까요.
어느 쪽이 먼저 꽃을 피울런지 말입니다.
이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봉선화 꽃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내기이니만큼 뭘 걸어 볼까요 ?
내가 담장 밖을 나선 이후에 그 어떤 부탁이든 세 가지 들어주기,
이 정도면 괜찮을래나요.

그래요, 올 여름은 우리 한 번 봉선화가 되어
온 세상의 꽃들이 시샘할 만큼의 예쁜 봉선화 꽃을 피워봅시다.

내길 걸고 나서 가만 보니
아무래도 혜송님이 먼저 꽃을 피울 것만 같으네요.
키만 컸지 실속없어 보이는 나에 비해
혜송님은 작아도 잎이 무성한 게 알지고 당차 보이거든요.
그러나 두고는 봐야겠지요.
난 벌써부터 시원한 김칫국물을 마시고 있답니다.

“저 하늘의 별을 따서 달랠까 ? 아니면 달을 따서 달랠까 ?”


오래 전 7월 13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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