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사랑 서신 제191호



아래에 쓰여지는 글은 신영복 선생께서
대학 새내기들을 위해 모일간지에 기고한 글의 전문입니다.
살면서 가끔은 음미해 볼만한 글이란 생각에서 옮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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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출발점에 선 당신에게---


예비합격자 명단에서 당신의 이름을 보고
축하를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망설여 왔습니다.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수능점수 1백점으로 예비합격한 당신을
축하할 자신이 내게도 없었습니다.

지금쯤 당신은 어느 대학의 합격자가 되어
대학생활을 시작하고 있거나,
아니면 기술학원에 등록을 해두었는지도 모릅니다만
어쨌든 나는 당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축하의 편지를 씁니다.
이제 대학입시라는 우리 시대의 잔혹한 통과 의례를 일단 마쳤기 때문입니다.

나와 같이 징역살이를 한 노인 목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 노인이 내게 무얼 설명하면서 땅바닥에 집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내가 받은 충격은 잊을 수 없습니다.
집을 그리는 순서가 판이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붕부터 그리는 우리들의 순서와는 거꾸로였습니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렸습니다.
그가 집을 그리는 순서는 집을 짓는 순서였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습니다.
세상에 지붕부터 지을 수 있는 집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붕부터 그려온 나의 무심함이 부끄러웠습니다.
나의 서가(書架)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낭패감이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건축’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한동안 그 노인의 얼굴을 상기합니다.

‘차치리’라는 사람이 어느 날 장에 신발을 사러 가기 위해
발의 크기를 본으로 떴습니다.
이를테면 종이에 발을 올려놓고 발의 윤곽을 그렸습니다.
한자로 그것을 ‘탁(度)’이라 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가 장에 갈 때는 깜빡 잊고 탁을 집에 두고 갔습니다.
신발가게 앞에 와서야 탁을 집에다 두고 온 것을 깨닫고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되돌아 갔습니다.
제법 먼 길을 되돌아가서 탁을 가지고 다시 장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장이 파하고 난 뒤였습니다.
그 사연을 듣고는 사람들이 말해습니다.
“탁을 가지러 집까지 갈 필요가 어디 있소.
당신의 발로 신어보면 될 일 아니오.”
차치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려면 발이 탁만큼 정확하겠습니까.”
주춧돌부터 집을 그리던 그 노인이 발로 신어보고 신발을 사는 사람이라면
나는 탁을 가지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탁과 족(足), 교실과 공장, 종이와 망치, 의상과 사람, 화폐와 물건,
임금과 노동력, 이론과 실천.........이러한 것들이 뒤바뀌어 있는
우리 사고를 다시 한 번 반성하게 하는 교훈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로’는 진정한 애정이 아닙니다.
위로는 그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케 함으로써
다시 한 번 좌절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이 대학의 강의실에서 이 편지를 읽든,
아니면 어느 공장의 작업대 옆에서 읽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어느 곳에 있건 탁이 아닌 발을 상대하고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당신이 사회의 현장에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살아있는 발로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당신이 대학의 교정에 있다면
당신은 더 많은 발을 깨달을 수 있는 곳에 서 있는 것입니다.
대학은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종속의 땅’이기도 하지만
그 연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가능성의 땅’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대학이 안겨줄 자유와 낭만에 대한 당신의 꿈을 모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얽매여 있던 당신의 질곡을 모르지 않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러한 꿈이 사라졌다고 실망하고 있지나 않은 지 걱정됩니다.
그러나 ‘자유와 낭만’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자유와 낭만은 ‘관계의 건설 공간’이란 말을 나는 좋아합니다.
우리들이 맺는 인간 관계의 넓이가
곧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낭만의 크기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우리들의 일상에 내장돼 있는
‘안이한 연루(連累)’를 결별하고 사회와 역사와 미래를 보듬는
너른 품을 키우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당신이 그동안 만들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게 해 준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만나는 연대의 장소입니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발의 임자를 깨닫게 하는 ‘교실’입니다.
만약 당신이 대학에 아닌 다른 현장에 있다면
더 쉽게 그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수능시험 성적 1백점은
그야말로 만점인 1백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올해 당신과 함께 고등학교를 졸업한 67만 5천명의 평균점수입니다.
당신은 친구들의 한 복판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간은 필요한 자리입니다.
수많은 곳,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그보다 더 큰 자유와 낭만은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늦은 밤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다가
넓고 밝은 길로 나오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아무리 작은 실개천도 이윽고 강을 만나고
드디어 바다를 만나는 진리에 감사하였습니다.
주춧돌에서부터 집을 그리는 사람들의 견고한 믿음입니다.
당신이 비록 지금은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발로 당신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한
언젠가 넓은 길, 넓은 바다를 만나리라 믿고 있습니다.
드높은 삶을 ‘예비’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의 어디쯤에서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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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머리맡에서 쥐며느리를 보았습니다.
마루바닥 갈라진 틈새를 비집고 올라왔나 봅니다.
이 봄의 생기를 물씬 느끼게 하는 작은 생명입니다.
나의 긴 잠도 이젠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봄, 힘차게 깨어 십 수 년 전 대학 신입생 때의 각오로
새로운 시작을 예비하겠습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되
색 고운 지붕보다는 실한 주춧돌부터 먼저 살펴 놓도록 하겠습니다.


오래 전 3월 10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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