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장모님 만세, 만세, 만만세 !!!...사랑 서신 제013호





담장 안에 살면서
더구나 이렇게 홀로 앉은 적막한 공간에서
웃을 기회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가끔 거울 속에서
책 속에서나 묘사될 법한 수도승의 무뚝뚝한 얼굴이라도 만날 때면
씨익 한 번 웃어 주곤 한답니다.

나만의 웃음 연습이지요.
그런데 매번 그렇게 애써 지어낸 표정이 왜 그리 어색한지
꼭 요강 뚜껑으로 물 떠 마신 사람의 그것과 영락 없습니다.
아무래도 인위적인 웃음이란
나 같은 필부가 넘보기에는 힘든 재능 있는 배우들의 몫인가 봅니다.

이렇듯 웃을 일 별로 없는 담장 안에서 오늘 참 맘껏 웃어 보았습니다.
길 가다 돈지갑을 줏은 사람처럼 혼자서 히죽히죽 웃었습니다.
혜송님이 글로써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음을 미처 몰랐습니다.
적지 않은 긴장감을 동반한 통화였을 터인데
마치 잘 준비된 희극의 대사를 주고 받는 듯한
두 모녀의 표현들이 나를 웃겼습니다.

우리 장모님(너무 성급했나요, 혜송님 만큼이나 나도 흥분...) 만세, 만만세입니다.
예비 장모님께 세세토록 충성을 맹세할까 봅니다.
혜송님 굼벵이도 기는 재주가 있다고
내가 가진 재주 중에 내세울 만한 재주가 하나 있다면
그건 사람들을 내 편 만드는 재주일 겁니다.
그 재능은 남산의 수사관들 몇몇에게도 유감없이 발휘된 바도 있는
위력적인 것이랍니다.
장모님은 이제 내 손 안에 있음을 천명해야겠습니다.

그런데 큰 일입니다.
또 무슨 큰 일이냐구요?
그렇게도 어머니께 나를 과대 포장해 놓았으니
담장 안 숙제가 또 한 짐 늘었습니다.
모질기 짝이 없던 인간성도 좋게 다듬어야 하고
벤뎅이 속은 넓고 깊게 파서 고래 속처럼 공사해 놓아야겠고
못난 얼굴은 이리 저리 당기고 문질러서 어떻게라도 탈을 바구어야겠고
텅 빈 머리는 만 권의 책을 탐독해서라도 양식을 채워놓아야 하겠고
한푼 없는 거지가 돈 버는 비법도 터득해야겠고
키까지 잡아 늘여야 한다니
에고, 이 엄청난 숙제들을 어찌 다 감당할까요.
세상의 모든 예비 신부들이여, 신부 수업 어렵다 푸념하질랑 마세요,
신랑 수업은 더욱 기가 막힌답니다.

허허, 복에 겨운 투정인가요.
큰 고비 넘겼다는 점에선 한 짐 덜었지만
상승하는 책임감은 두 짐의 무게로 짓눌러 오네요.
어쨌거나 참 기쁘기가 한량 없는 순간입니다.
사람들은 너무 기쁜 순간에는 지난 날들의 아팠던 기억들을 떠올린다는데....
이 순간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영상들이 있습니다.

영상 하나...

공장에 위취해 있을 때였습니다.
스무살 남짓한 이쁜 동생 녀석 하나가 그러대요.
"형이랑 술을 마시면 정말 재미가 없어..무슨 사람이 좀 취하는 맛도 있어야지,
아니면 술 취한 시늉이라도 내던가.
같이 술 마시면서 남들 다 취해 있는데 혼자만 늘 그리 멀뚱멀뚱하냐고...
왜 그리도 무드가 없냐고.."
그랬네요, 그 때는 술자리 순간까지도 빈틈을 노출할새라
빵 한 조각만한 여유도 없는 긴장감으로 살았었네요.
나를 타박하던 그 녀석이 문득 보고 싶어집니다.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이젠 맘껏 함께 취해 볼 수도 있을 것도 같은데...

영상 둘...

8여년 전 첫 구속때였습니다.
장안평 대공 분실에서 어머니를 뵈었습니다.
원래 면회가 안되는 곳이건만
'어머니'란 이름이 갖는 빽은 곧 '하느님 빽'이 아니던가요.

많이 우시더만요.
그다지 크시지도 않은 눈매 속에 어쩜 그리도 많은 눈물을 담고 계셨댔는지...
나의 온 몸을 샅샅이 더듬어 살펴 보시더만요.
어디 생채기 하나라도 발견되면 도끼라도 휘두를 맹렬한 기세로
수사관들을 압박하시더만요.
내게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들이 어머니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보며
적지에서 잠시나마 호가호위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그 순간을 내가 어찌 견뎌내었는지, 가슴으로 운다는 말
난생 처음 체험해 보았습니다.
적들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되겠노라는 오기로
어머니의 눈물을 쓸어 내 눈 깊이 꼭꼭 담아 눌렀습니다.
퀭 하니 독기 서린 마른 눈매를 억지로 다잡고서 위축감 없는 건조한 목소리로
"어머니, 울지 마세요,
어머니는 죄인을 키우신 게 아니라 자랑스런 투사를 기우셨습니다."
이제사 돌아보면, 참 모진 대응이었습니다.
수사관들마저 혀를 끌끌 찰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요즈음 젊은 놈들이 다 요 모양 요 꼴이라나요.
연유야 어찌됐든 어머니께는 정말 큰 불효에 불효를 거듭하고 있으니
이 또한 내가 감당해 가야 할 내 인생의 가장 크나큰 짐이 되었습니다.

영상 셋..

이번 구속 때 남산에서였습니다.
이십여일 간의 남산의 지하는 나로선 살아서 맞닥뜨린 지옥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이십여일을 지내는 동안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몇 차례 순간들이 있었댔지요.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내 손으로
호흡이라도 멈춰버리고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하루 웬 종일의 전쟁을 끝내고 겨우 눈이라도 부칠 때면 이를 앙다물었습니다.
그리고 간이 침대의 군용 모포 자락을 움켜쥐고 저들에게 들킬새라
소리없는 울음 속에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지요.
지금 돌아보면, 내 작은 육신과 영혼이 감당하기엔
정말 벅찬 공간이었습니다.
사람아, 아 사람아 !

혜송님, 이런 기억들이 혜린 님이 주신 기쁜 소식 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가장 아팠던 내 삶의 조각들이었습니다.

빈 틈을 드러내지 않으려 술 한잔 마음놓고 마셔 보질 못하고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피도 눈물도 감추이며 살아야만 했던 그런 삶이
전사의 삶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의 천성은 누구나 그러하듯이 참으로 여리고, 잔정 많고,
장난스럽고, 다정하고, 감성적이었답니다.
중학교 다닐 적 담임 선생님이 붙여 준 별명이 '새색시'였댔거든요.
아이들 보는 TV만화 영화 보다가도 슬픈 장면에선 눈물을 훔칠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선
결코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삶을 각오하면서
그 많은 우여 곡절의 부침 속에서도 어머니와 가족들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떨궈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돌아서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 낼 뿐이었지요.
과연, 사상으로 무장된 강력한 목표 의식이 사람을
이렇게도 변화 시켜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혜송님,
내가 왜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에 익숙한 사람을 좋아하는 지 짐작이 가나요?
그건 내가 한동안 그래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레 울고 웃는 혜송님의 모습에서
그간 인위적으로 억제되어 있던 내 본래의 천성이 자극되면서
조금씩 순화되어 가는 나를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내겐 큰 위안이자 행복입니다.
신경숙 작가의 '깊은 슬픔'이란 소설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고향'과도 같은 느낌을 혜린 님에게서 발견케 됩니다.

지난 십 수 년 간의 인위적 긴장감과 비장감으로 점철된
내 삶 속에서 억눌려 온 내 본래의 천성을 자연스레 되살릴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 그것이 혜린 님께 부과된 사명과 역할이지 싶습니다.

나의 이런 요구를 짐스레 받아들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그저 그냥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혜송님의 천성과 품성, 생각과 가치관이나 분위기 즉,
혜송님의 향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일입니다.
이제는 홀로서가 아니라 함께 울고 웃는 대상으로서 혜송님의 향기가
내 온 몸 가득히 배어들 수만 있다면
나의 이번 옥살이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는 셈이라 여기겠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혜송님 앞에서 슬프거나 기쁠 때는
자연스러이 눈물을 지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하겠습니다.
가급적이면 슬픔의 눈물보다는 기쁨의 눈물이면 더욱 좋겠지요,
아니 슬픈 눈물이래도 감지덕지하겠습니다.

오늘은 혜송님 어머니의 넓고 깊은 사랑과 이해가
나의 천성을 많이도 자극했댔습니다.
처음엔 혜송님의 편지글 표현들이 우선 기쁘고 재밌기만 했는데
거듭 읽을수록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이 아파 오는 게 자못 숙연해집니다.
보지 않고도 믿어 주시는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과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그런 이쁜 자식들로 되기 위해 오늘 밤엔 우리의 사랑과 효도의 밑그림을
새로이 그려보고 다잡아 보겠습니다.

근자에 들어 글쓰기의 주도권을 혜송님께 빼앗겨 버린 듯 합니다.
혜송님의 글에서 내 글의 소재를 얻어 글을 꾸려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네요.
담장 안 생활의 딱딱한 소재들 보다야
자유분방한 바깥 세상의 일들이 한층 생동감있고 정겨우니까요.

작년 첫 면회 때 농담반 진담반의 내 얘기가 기억나나요?
"창살만 없으면 꼬옥 껴안았을텐데..."
그랬더니 혜송님 왈,
"이 다음에 바깥 세상으로 나오는 그 날에 그렇게 해 주시면 되죠"라고 했나요.
어쩌면 그 약속 앞 당겨서 실행할 수도 있겠습니다.
특별 접견 하는 날에!!!

한 번 더 외쳐보고 싶네요.
우리 장모님 만세, 만세, 만만세 !!!


오래 전 1월 17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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