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안의 계절은 두 개.....사랑 서신 제004호


혜송님,
그게 옥살이의 고역 중의 하나이지요.
가끔 이번처럼 예기치 않은 낭패(?)가 발생하는...

"오늘은 약속이 있으니 내일 봄세"라는 전화 한 통이면 매끄러울 일상의 박탈 ,
빼앗긴 자유가 아쉬운 순간입니다.

접견 횟수 제한에 걸려 발길을 되돌렸을
혜송님의 허망한 순간을 떠올리면 못내 밥알이 목에 걸리웁니다.
먼저 접견 수속하신 '희' 누님은
오랜 세월 내가 무척이나 좋아하고 존경해 온 분입니다.
혜송님과도 좋은 사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영치하신 복숭아는 이 곳의 이웃들과 참 맛있는 나눔을 가졌습니다.

혜송님의 모처럼의 휴가, 좋으셨나 봅니다.
'혜'씨의 존재와 미더움 탓이었겠지요.

언제이던가, '강'이 운전하던 똥차(?)를 타고
북악 터널 너머 어디에선가 '혜'씨와 셋이서 함께 삼겹살(갈비였던가?)에
소주 한 잔 하던 날이 문득 그립습니다.

힘든 나날을 묵묵히 이겨내는 '혜'씨의 씩씩하고 의연한 모습이
감탄 반 안스러움 반으로 교차하던 날이었습니다.
"혜'씨의 사별한 사랑이 그다지도 크고 깊은 것이었다는 '강'의 전언이 있었기에
못내 마음 무겁기도 했던 그런 자리였습니다.
이 다음에 '혜'씨를 볼 때면 나의 충심을 담은 응원과 안부 인사 부탁 드립니다.

옥에서의 가을 내음, 글쎄요...
아직은 그리 확 와 닿는 건 없네요.
가을의 전령사들도 쉬이 넘기엔 15척 담장이 적잖이 높은 탓일까요.

그래도 며칠 전 뒷마당에서 운동하다
성급한 귀뚜라미 한 마리 튀는 걸 보았답니다.
또 며칠 전에는 새벽 한기에 깜짝 놀라 깨어 모포 두 장에
온 몸을 칭칭 감던 기억도 있지만
아직은 이 곳 이웃들의 입에선 가을을 들먹이는 입담은 오가질 않습니다.

옥 중에 떠도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지요.
담장 안의 계절은 오직 여름과 겨울, 두 철 뿐이라는...
일찌기도 달려와서는 느적느적 삐져나가는 담장 안의 여름과 겨울...
마치 밤 하늘 뿌연 구름이 예쁜 달을 슬금슬금 먹어 치우듯
봄과 가을을 밉살스레 슬그머니 먹어 버리는 게지요

그래서인지
담장 안에서 몇 해를 살았거나
나처럼 선 경험을 지닌 영리한(?) 빵잽이들은 여름이 끝나가는 지금
가을의 정취를 회상하는 감상보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일찌감치 월동 준비에 돌입하는 재바름을 보인답니다.

혜송님,
담장 안엔 가을이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을은 가을이겠지요.
'담장 안의 계절은 둘 뿐'이라는 수인들의 명제는
어쩌면 몸도 마음도 결코 녹녹할 수 만은 없는 수인들의 과장된 엄살의
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환절기 찬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


오래 전 9월 1일 **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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