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낚시대는..


최고의 낚시대는..
작성일:2009.07.08


낚시대는 무사의 검이고 서예가의 필이다

낚시대, 낚시인들에겐 무사의 검, 서예가들의 필과 같은 도구다.
무협 소설에서나 나옴직한 최고의 검은 주인을 느끼고 부르르 떨며 소리를 내기도 하고 홀로 알아서 적을 베어 주인을 지켜주기도 하는 신검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물고기가 접근하면 부르르 떨며 꾼에게 신호하고 스스로 물고기를 걸어주는 그런 낚시대는 없을까...훗~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고들 한다.
‘무슨 일이든 무릇 경지에 이른 자는 핑계를 대지 않는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말로 이 말을 붓(도구)의 중요성을 간과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왕희지가 붓을 창칼에 비유한 것은 도구로서의 붓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진대 전장에 나서는 이가 죽도를 들고 나설 수 없고 낚시꾼이 물에 갈대를 드리울 수는 없다.

인류의 문명은 도구의 발전사와 다름없고 ‘편하고 행복하게 해주는 좋은 도구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는 첨단의 도구들이 소속 개발되면서 사람이 할 일이란 그저 머리를 쓰는 일 뿐이다.
굳은 살 배긴 거친 손으로 창칼을 쓰는 대신 섬섬옥수를 놀려 버튼으로 전쟁치고 붓 대신 포토샵을 휘두르면 왕희지도 부러울 것 없는 세상이다.
듣기로 낚시계에선 자동 챔질 도구마저 개발되었다고 하니 ‘작은 수고’조차 꺼리는 인간의 욕심이 과연 끝도 없긴 한가 보다.

누가 낚시를 빈자들의 오락이라 하는가.

최고의 도구를 향한 인간의 욕심, 가히 눈물겹다.
낚시꾼들이 최고의 낚시대를 찾는 욕심도 예외가 아니다.
흔히 낚시계에서 공인되는 낚시대의 최고봉은, 우리보다 낚시가 더욱 상업화되고 발전된 일본의 유명 명인이나 공방에서 제작한 죽간(대나무 낚시대)으로 그 한 대 가격만 해도 우리 돈으로 천만 원을 호가하는 낚시대들이 있다 한다.
자동차 한대를 물에 드리우고 붕어 잡는 셈이다.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잌후!
해서 이런 낚시대의 용도는 실전용이라기보다는 주로 소장용에 가깝다.
워런 버핏 정도면 실전용으로 쓸 수도 있겠다...ㅎ~

낚시가 빈자들의 오락이라 불리던 것도 옛말이다.
십여 년 전에 일본에서 도입된 떡붕어(헤라)낚시기법인 중층낚시가 국내에 정착하여 트랜드를 구축하고 그 외양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지난 10여년간 일인들의 상술이 국내 낚시인들의 호기심을 꽤 많이도 자극하여 왔다.
그런 중층낚시 장비를 모양새 있게 갖추고자 한다면 우리 돈 천만 원을 쉽사리 넘나든다.
중층낚시인들이 욕심을 내는 실전용 중층낚시대 한 대 가격이 작게는 삼사십 만원에서 팔구십 만 원대에 이르니 이런 낚시대를 서너 대만 구비하려 해도 일이백만 원을 훌쩍 넘는다.
구색을 갖추려면 최소 대여섯 대 내지 최대 열 대는 필요하니 낚시대 구입 가격만 삼사백이 넘고 찌 하나가 삼사만 원(십만 원이 넘는 찌도 있다)은 기본인데다, 낚시꾼 점심값보다 비싼 떡밥에 고가의 각종 편의 장비까지 더하면 아뿔싸, 누가 낚시를 빈자들의 오락이라 했는가!

낚시터에서도 어김없이 부익부 빈익빈의 세태는 존재한다.
남의 시선쯤이야 아랑곳 않는 나드신 어르신들이야 일이십만 원 정도로도 낚시 장비를 다 구비할 수는 있다.
아직도 일이만 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 무명의 낚시대들도 많고 떡밥 대신 수채 주변을 훑어 지렁이 몇 마리 챙기거나 옥수수나 콩을 삶아 미끼로 대용하면 여전히 ‘가장 돈 안 드는 오락’으로 낚시를 즐길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남 눈치를 세월 따라 흘려보내고서 조선이나 조성의 경지에 이른 어르신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트랜드와 메이커를 중시하는 세태에 찌든 요즘 젊은이들이 고가의 일제 낚시대를 향한 지름신의 유혹을 버텨낼 재간이 과연 있을지나 모르겠다.
자작의 경지에는 이르렀노라 자부하는 나 역시 낚시대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거늘...헐.

최고의 낚시대는 과연 어떤 것일까?

최고의 낚시대는 ‘내 마음의 낚시대’이다.
낚시 사이트를 돌다 보면 어김없이 발견하는 질문들이 있다.
중층낚시에 새로이 입문하는 새내기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중층낚시대를 사려는데 어느 메이커 무슨 낚시대가 좋을까요?’
각종 조구업체의 영업성 리플에서부터 낚시꾼들의 자기 낚시대 자랑하는 리플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리플들을 보면 거의, 대당 칠팔십 만원을 호가하는 시마노나 다이와 같은 일본 유명 조구사의 고가 낚시대를 최고의 낚시대로 추천하는 걸 볼 수 있다.
좋은 소재, 매끈한 마감 등 제품의 완성도가 높고 좋은 낚시대들임에 분명하지만 ‘무슨 메이커의 무슨 낚시대는 가만히 들고만 있어도 낚시대가 스스로 알아서 고기를 제압해 줍니다’라는 식의 과도한 찬양 리플들을 보노라면 살짝 어이가 없을 때도 있다.
그러나 가끔 이런 리플들 사이에서 가슴을 쩌엉 때리는 은둔한 고수의 ‘낚도’가 배인 리플을 만날 때가 있다.

‘내 손, 내 맘에 맞는 낚시대가 최고의 낚시대입니다.’

그렇다. 국산이든 일산이든 유명의 메이커든 무명의 메이커든 실전용으로 쓰기도 아까운 천만 원짜리 낚시대이든 고속도로 휴게소 노점상에게 구매한 단 돈 만 원짜리 중국산 낚시대든 가격이나 유명세에 아랑곳없이 내 손에, 내 맘에 맞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낚시대이고 강태공의 낚시대다.

무사가 칼을, 서예가가 붓을 귀히 여기듯 낚시꾼에게 낚시대는 가장 소중한 도구인 건 분명하지만 스스로 알아서 고기를 낚아내고 천상의 손맛을 안겨주는 그런 낚시대는 없다.
같은 칼이나 붓, 낚시대라도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도 다르고 그 평가도 다른 법이다.

밀집 모자를 두르고 낡고 허름한 장비로 쑴퍼덩쑴퍼덩 붕어를 잘도 낚아내는 촌로의 바로 옆자리에서 삐까뻔쩍한 고가의 낚시대와 장비들을 구비하고도 하루 종일 꽝을 치고 앉은 낚시꾼이 안절부절 못하거나 투덜대고 있는 걸 본 적도 있다.
물론, 낚시의 도가 고기를 많이 잡고 안 잡고를 따짐은 아니지만 낚시를 통해서 마음속의 평화를 누리지 못한다면 낚시를 잘 못하고 있음이다.

오래돼서 남들 앞에 내 놓기에 볼품없어도 그 속에 세월의 손때가 있고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깃든 낚시대라면 괴기 한 마리 걸지 못해도 그 낚시대는 언제나 자신에겐 최고의 낚시대이자 동반자인 거다.

흔히 바둑인들이 바둑을 인생에 비유하듯 낚시인들은 낚시를 인생에 비유할 때가 있다.
낚시를 인생에 비유할 때 내 인생의 최고의 낚시대는 무엇일까.
재물, 명예, 권력? 아니다.
내 인생 최고의 낚시대는 지금 이 순간, 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내 손길에 익숙하고 내 삶의 여정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내 아내와 내 아이라 할 것이다.
더불어 나 또한 그들의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그들 손에 그들 맘에 딱 맞는 최고의 낚시대가 되어 그들과 여생을 함께 안온하게 나눌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인생의 낚도가 아닐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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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일천 10척과 비절 13척, 내가 가장 좋아라 하는 낚시대들이다.
하나는 내 아내, 하나는 내 아이처럼 바라만 보아도 참 기분 좋은 낚시대들이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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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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