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용기에 관하여...

진정한 용기에 관하여...
작성일:2009.02.19



진정한 용기에 관하여

The time is now!
(제기럴, 아는 거라곤 효리한테 배운 딸랑 이거 하나...^^;)

고백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고백이 단 한 톨의 의심조차 남기지 않고
그 순수성과 진정성에 가치를 부여받으려면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고백'이 때를 놓치면 강요된 '자백'이 되고 그조차 때를 놓치면 그 종말은 '자뻑'이 된다.

*고백(告白)....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감추어 둔 것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말함.
*자백(自白)....자기가 저지른 죄나 자기의 허물을 남들 앞에서 스스로 고백함.
*자뻑(自뻑)....한자 '스스로 자(自)'와 강렬한 자극으로 정신을 못 차린다는 의미의 속어인 '뻑'이 합성된 신조어이다.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어 정신을 못 차린다.' '제 정신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통상적 뉘앙스로 볼 때 고백은 능동적이고 자백은 수동적이다.
'신앙 자백' 보다는 '신앙 고백', '강요된 고백' 보다는 '강요된 자백'이란 말이 듣기에 부드럽다.)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가?
쪽팔림을 무릅쓰고 진실을 고하는 건 용기 있는 행위다.
그 용기가 때를 놓치지 않고 행해진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용기랄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많은 고백과 자백들을 보아왔고
때를 놓친 고백이 자뻑으로 진화하는 경우들을 참 많이도 경험했다.
특히, 거짓이 득세를 거듭해온 이 나라에선....
과거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더라.>는 때 놓친 고백이 자뻑이 된 대표적 사례다.
근자에는 <미네르바 K는 개인이 아닌 그룹이다>라고 진술했던 한 언론사의 때늦은 고백이
자뻑으로 치닫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자뻑의 주체는 위 소개한 사전적 언급처럼
'자신에게 도취되어 제 정신을 놓아 버린 미친 놈'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우리 주변을 보면, '미친 놈'이라 욕 먹는 부류들이 의외로 못난 사람보다 잘난 사람들이 많다.
지들 나름대로 다 잘 배우고 잘난 인간들인데 '미친 늠'이란 욕이 딱 제격일 때가 많다.

잘 배우고 잘난 부류일수록 고백이 서툴다.
꼴찌의 열등감을 겪었을 리 만무하니 구부려 고백하는 일이 못내 꺼려질 수밖에.
그런만치 검찰에서 엉거주춤 구부리고 있는 '볼품없는 박대성'을 인정하는 일일랑
더욱 더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뛸 노릇이었으리라.
애재라, 차라리 '박지성' 정도라도 되었으면! 그런가? 그런 건가?
권하고 싶다.
Fact를 손에 쥐고 사설하는 게 아니라 단지 추측과 상상으로 자존심으로
대중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고백하길 바란다. 때를 놓쳐 자뻑을 치기 전에.

The time is now!!


진정한 명예에 관하여

<진정한 명예에 관하여>란 readme님의 글을 읽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열독해도 머리속엔 '명예'란 단어는 없고 '변명'이란 단어만 맴돌 뿐이다.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전위로서 아침해가 뜨면 이슬처럼 사라져줄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자가 아니면 도저히 미네르바가 될 수 없다는 겐가?
뉘라서 감히 무슨 권위로 미네르바의 자격 요건을 정할 수가 있겠는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미네르바가 미네르바의 의지대로 미네르바가 될 수 없고
누군가가(대중?) 정해 놓은 자격 요건과 구미에 맞아야 미네르바가 될 수 있다니....
자격 요건을 빌미로 나름대로 상상의 날개를 펼쳐 보니
과연 미네르바는 아침에는 유럽의 파리에서 밤에는 아메리카의 보스턴에서 새벽에는
한국의 봉천동에서 온 세계를 일보천리의 신공으로 넘나드는 세기적 영웅의 모습이다.
아니 계신 곳이 없고 이미 '정신'으로 존재하고 있다잖는가!

'수수' 님이 정확한 지적을 했지 싶다.
우리들은 현실 속의 '천재' 미네르바가 아닌 상상 속의 '영웅' 미네르바를 갈구했던 것은 아닐까.
천재는 현실이지만 영웅은 상상이다.
천재는 고독하지만 영웅은 댓글의 환호를 만끽한다.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아고라의 익명은 고귀한 자유>라는 선언이 나와야만 하는가.
몇 개월 사이 아고라는 난장이 되었다.
우린 벌써 박대성과 권오홍이란 실명을 거침없이 접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익명의 자유가 깨어졌으므로 <이름과 사람은 단순히 껍데기일 뿐>이라는 건가?
그래서 박대성과 권오홍이란 실체는 부정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맛깔나던 조개 껍데기 속의 속살들은 벌써 똥덩어리라도 되었단 말인가.

'미네르바'와 '담담당당'은 있되 박대성과 권오홍은 없다?
그건 아니잖는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외려 껍데기는 가고 속살만 남았지 않는가.
껍데기 미네르바와 담담당당은 없고 속살 박대성과 권오홍이 더욱 생동감있게 와닿고 있다.
그게 실체고 진실이며 Fact인 거다.
난 오늘 우연히도 readme님의 글에서
참으로 가당찮은 '지독한 변명', 아니 '말장난'을 보고 말았다.
그건 마치 고백해야할 무엇인가를 애써 짱박고 싶은 그만의 눈물겨운 투쟁이었다.

<진정한 명예는 내게 돌아올 명예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이다.>
라는 readme님의 선언을 아래처럼 바꿔 본다.

<진정한 명예는 내게 돌아올 명예를 내 스스로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이자 용기다.>
옥중에 있는 박대성씨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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