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닮았다

발가락이 닮았다
작성일:2009.06.22



지난밤부터 시작된 장대비가 아침 이 시간까지도 땅바닥에 내려꽂습니다.
적벽대전이란 영화에서 조조군이 공명에게 화살을 쏟아 붇던 장면이 연상되는 아침 풍경입니다.

나의 조조는 딸내미입니다.
세상 겁 없던 내게도 딸내미는 가장 무서운 대상입니다.
이제 고작 10살인데 제가 꼼짝을 못합니다.
누굴 닮아 저래 무섭게 컸나 싶습니다.

순한 제 어미를 닮지도 않았고 다른 누군가를 닮을 일은 없습니다.
굴다리 밑에서 주워온 것도 아니고 제 어미의 첫사랑이 남긴 선물이 아닌 것도 확실합니다.
그치는 아이가 이 세상에 오기 이미 오래 전에 지구별을 떠났거든요. 예수님 말입니다.
그렇다고 새로 생긴 아내의 애인은 만난 지가 아이의 나이보다 훨씬 적으니 그치의 선물도 아닐 테구요. 부처님 말입니다.
저 아이는 분명 나를 닮은 내 아이인 게 맞습니다.
무엇보다 나랑 발가락이 '학실히' 닮았거든요.
가운데 발가락과 발톱이 몹시도 건방지게 발랑 까진 형상입니다.
나나 아이가 천성이 건방진 건 모두가 가운데 발가락 탓입니다.
가운데 발가락이 건방끼의 원천인 셈입니다.
이런 발톱은 관상학의 신체적 특성 통계에서도 잘 잡히지 않는 희귀종임에 분명합니다.
희소가치가 느껴질 땐 자랑스럽다가도 그 유별성이 느껴질 땐 쪽팔리기도 하는 그런 발가락입니다.
그렇다고 E.T를 연상하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보면 깜찍하고 예쁜 발가락입니다.

난 아이가 발랑 까진 제 가운데 발가락을 자랑스레 여기길 바랍니다.
부츠로 여름을 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난 길 다닐 때 예쁜색 매니큐어를 살짝 올린 발톱 가지런히 드러낸 샌달 신은 여인들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이 담에 딸내미한테 모양별로 색깔별로 요런 조런 샌달들 많이 많이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제 어미에겐 샌달을 사준 기억은 그닥 많지 않습니다.
이 글 보고 열 받지 않을려나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요즘엔 누군가의 블로그를 탐닉하느라 내 블로그엔 별 관심도 없으니 이 글 때문에 후환을 두려워 할 일은 당분간 없지 싶습니다.

아무튼 나랑 발가락이 꼭 닯은 딸내미는 평소엔 아주 지순한 스딸의 콩쥐 같다가도 한 번씩 씅깔 부릴 때 보면 영락없는 팥쥐 같습니다.
장대비 퍼붇는 오늘 아침, 학교 교문 앞에서 딸내미에게 디지게 혼났습니다.
한 주가 시작하는 첫날과 끝날은 제 엄마 대신 내가 아이의 등굣길을 수행합니다.
그리 험한 길은 아니어도 인도 구분이 없는 차도의 갓길을 200여미터쯤 걷는 등굣길이기에 오늘 같이 장대비라도 내리면 위험한 길입니다.
비를 좀 맞더라도 안전을 위해 둘이 우산 하나만 받치고 교문 앞까지 다정하게 함께 걸었습니다.
근데 그 다정도 딱 200미터 만큼의 짧은 행복이었습니다.

교문 앞 건널목에서 딸내미 손에 들린 삼단 접이 우산을 펼쳐주는데 요게 말썽인 겁니다.
잘 펼쳐지지가 않습니다.
접었다 펴기를 몇 차례 반복하는 동안 흐트러진 자세 탓에 조조군의 화살에 둘다 금세 옷이 젖고 말았습니다.
저보다는 내가 훨씬 많이 젖었습니다.
억울해도 저보다야 내가 훨씬 억울합니다.
근데 비화살을 수십 발 맞은 데다 아빠 하는 양이 신통찮아 보였던지 슬슬 짜증이 났던 모양입니다.
“꽤~액, 압빠, 머해! 지각한단 마리야~~빨리 쫌 해바! 꽥! 빽! 캮!....궁시렁 궁시렁..!!”
장대비는 내리지요. 우산은 펼쳐지질 않지요. 조그만 게 소리는 빽빽 질러대지요.
날궂이 참 제대로 하고 있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누굽니까.
저 못지 않게 나도 가운데 발가락 발랑 까진 천하의 ‘예끼’ 아닙니까.
맞받아서 “예끼!”하고 꽥 하려는 순간, 이 사단의 처음부터 내 곁눈질에 포착된 예쁜 아줌마의 미소, 그게 내 인생에 태클이었습니다.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더군요.
장대비속 온 몸을 던져 나름 분투했건만 조그만 놈한테 실컷 퉁박만 당하던 그 순간, 정말 한 대 콩 쥐어박고 싶었습니다만 건널목에서 교통 도우미 하시던 예쁜 아줌마의 방글방글 미소에 넋을 잃고스리 그만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영악한 녀석인데 좀처럼 걸려들지 않을 겁니다.
걸렸다가도 귀신처럼 빠져나가는 녀석이라 학년이 올라갈수록 벼리고 벼려온 나의 이 콩주먹을 사용할 기회가 점점 적어집니다.
담에 또 걸리면 예쁜 아줌마들 없는 막다른 골목에서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그 땐 정말 얄짤 없습니다.

평소엔 알사탕 같다가도 한 번씩 효리처럼 꽥하면 애비가 오금이 다 저립니다.
귓밥 팔 때가 되었을까요.
귓밥이 꽉 차 있을 때 꽉 막힌 귀(氣?)를 뚫고 싶은 본능적 욕구가 생기면 저리 빽빽거리는 걸로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 같은 날 저녁에는 무릎에 눕혀 놓고 딸내미 귀를 뒤적여 보면 틀림없이 귓밥이 꽉 차 있을 겁니다.
딸내미의 귓밥 파기는 제 몫입니다.
제 엄마는 맘이 약해서 남의 귀를 제 귀처럼 마구 후벼대질 못합니다.
게다가 엄살이 어지간한 대상이라야 말이지요.
귀파기를 둘한테 맡겼다간 밥 굶고 날쌔기 딱 좋습니다.
보는 사람 숨넘어갑니다.
보다가 하도 답답해서 시작했던 일인데 어느새 아이의 귀는 제 손길에 더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그치만 한 번도 속시원하게 귀를 파본 적은 없습니다.
마지막 몇 조각을 눈 앞에 두고 철수해야 하는 아이 귀파기의 찝질함은 안 해 본 사람 잘 못 느낄 겁니다.
실제 아프기도 하겠지만 엄살도 적지 않을 거란 의심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내 귀가 아니니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귀가 예민한 곳인만치 똥누다 마는 찝질함을 늘 제 몫으로 감수하고 맙니다.

비 오는 날 시작한 딸내미 얘기가 삼천포를 지나 남해대교까지 들어섰군요.

한 대 쥐어박지 못한 억울함(?)을 너스레로 푸는 중입니다.
요즘들어 딸내미가 자주 부리는 애교가 있습니다.
어디서 본 건지, 지가 필요한 게 있으면 코 앞까지 바짝 붙어 콧바람 쏭쏭 불어대며 ‘아빠~~앙, 아~잉~~’하며 살인 윙크를 날리곤 합니다.
그런 맛에 웃으며 삽니다.
노짱의 죽음으로 인한 한 동안의 무력감을 달래 주는 힘이 지척에 있었습니다.
산사까지 찾지는 않아도 될 성 싶습니다.

손녀와 노짱이 어울리던 정경들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그런 알사탕 같은 손녀를 두고 벼랑끝으로 내디딘 걸음걸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발가락이 닮은 새끼조차 하나 없는 ‘늙은 아이’ 김동길이 어찌 그 고통을 언감생심 헤아려나 볼까요.
애들은 가라, 철부지가 왈가왈부하기에는 격이 다른 어른이셨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장대비는 지적 재산권에 상관 않는 익명의 노래꾼이 유포시킨 MP3 파일처럼 다 함께 공유하고 싶은 그 무엇과도 같은 편안함으로 다가옵니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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