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당나귀...

물에 빠진 당나귀...
작성일:2009.03.25



이 글은 '刺! 조중동'의 살기를 잠시 재워두고
'서늘한' 눈으로 읽기를 권한다.

지난 18일께 신동아의 '미네르바 오보 진상 조사 보고서'가 공개되었다.
이어 23일께는 그 보고서에 대한 담담당당(이하 '담당')의 '반박과 소견'이 있었다.
총평하면, 신동아의 배려는 무거웠으나 담당의 반응은 가벼웠다.

이미 여러 님들이 지적했듯
경탄스러울만치 길었던 담당의 반박과 소견을
닥치고 세 줄 요약하면,

첫째, 나는 지잡대가 아닌 수도권대 출신이다.
둘째, 나는 K에게 물리적 위압을 가하지 않았다.
셋째, 나를 궁지로 내모는 신동아의 음모에 단호히 대응하겠다.
는 것이다.

닥치고 요약된 위 세 줄 중,

제1줄을 살펴보자.

길 가다 언 늠이 자빠졌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겐 깜빡 볼거리일 뿐 눈 돌리면 금세 잊어지는 영상이다.
스커트 차림의 어여쁜 처자가 자빠졌을 땐 그 영상이 쬐금 더 긴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누가 되었든 길 가다 자빠진 늠은
주변의 시선을 실제보다 훨씬 크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다.
담당이 그렇다.
더군다나 담당은 아고라에서만큼은
그저 지나가는 행인이 아니라 눈에 탁 띄는 어여쁜 처자다.
안목은 넓었고 사색은 깊었으며 필력도 셌다.
면박도 있었지만 그의 글들은 대체로는 아골러들의 존중을 받았다.
적어도 '신동아 K'와 악연을 맺기 전까지는.
그런 아고라의 미녀가 자빠졌다. 스커트 차림으로.
자빠진 순간 아고라의 미녀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고
온 신경이 한 군데로 곧추서는 걸 느낀다.
황급히 스커트를 여며보지만 이미 속곳은 보인 거다.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쪽을 얼마치나 팔았을지 오직 그게 걱정이다.
내팽개쳐진 핸드백이며 까진 무릎일랑 살필 겨를도 없다.

"너, 지잡대지?"
"아뇨, 저도 '인 소울"이라니깐요!"


그게 그렇게도 거슬리고 신경쓰였었나 보다.
학벌타파 교육개혁을 외치던 아골러들이 선정한 대표 미녀에겐
지잡대는 정말 감추고픈 빨간 팬티였었나 보다.
하긴 뭐,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와 그들은 그간 공고공전졸 박대성의 스펙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미네르바일 수 없다는 철두철미한 학벌만능주의의 가치관을 보여왔으니...

제2줄을 살펴보자.

보고서는 <조사위는 이 과정에서 권씨가 객실에서 K씨의 신체에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했다는 진술을 양측으로부터 확인했다.>라고 적시했다.
이에 담당은 <내가 그의 보호자 격이 된 셈입니다. 속말로 내가 '자기 편'인 셈이지요. 그런데 무슨 물리력을 행사합니까? 거기다가 나와 그가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그를 그의 숙소 근처까지 친절하게 택시로 데려다 줍니다.>라고 반박했다.

누구에게나 자기보호본능은 있다.
그에 따라 거짓도 있기 마련이니 그러려니 한다.
누구의 말을 믿을 지는 각자의 자유다.
이런 일 한 두 번 겪나. 이골 나도록 겪었다. 대한민국 살면서.
근데 난 이 대목에서 선택적 신뢰의 시각이 아닌
다소 다른 각도로 접근케 된다.
신동아 보고서는 어쩌면 담당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무슨 말인고 하니, 소개된 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담당은 K에게 물리력을 행사할 만큼 자신을 속인 K에게 격노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를 포함 읽는 독자들 대부분은 응당 속으로
<아, 담당도 속았구나. 고백하면 용서하리라>고 생각들 했을 게다.
근데 담당은 뾰족하며 절대 물리력을 행사한 바 없고
오히려 K와 선린관계임을 강력 주장하니 이를 어쩔꼬, 아뿔싸!
고백하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정황이건만 담당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걷어차고 동방불패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신동아의 동업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는
담당이 수용하기엔 지나친 심모원려였었나 보다.

제3줄을 살펴보자.

담당은 끝내 고백하고 용서받기보다는
<왜 그런가? 이상하게 박대성씨를 미네르바, 그것도 유일한 미네르바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접근법에 귀사가 적극 동참하는 듯한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라며
신동아를 음모의 동맹군으로 간주하고 막장을 보자고 나섰다.
제2줄 관점의 연장선에서 보면
'물에 빠진 늠 건져 놓으니 내 보따리 내놔라!'며 신동아에 달라드는 꼴일 수도 있잖는가.
불과 얼마 전에 월간조선과도 전쟁을 선포하였고
이번엔 신동아와의 개전을 알렸으니
니미뤌, 정작 외교분쟁을 지껄이던 리드미(readme)보다 담당이 먼저
진주만을 기습하고 '대동아 전쟁'을 일으켜 세계 정복에 나서다니!
과연 아고라의 찬성수와 조회수의 빽이 크긴 큰가 보네.
쓰는 쪽쪽 오륙 백의 찬성과 삼사 천의 조회수를 기록하던
베스트 롸이터의 개가튼 심이여 솟아라!
미네르바를 버린 아골러들이 언제까지나 담당을 지켜줄 지 기대가 몹시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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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한다 잘한다 하니 정신마저 혼미한 모양이다.
히로시마를 겨냥하는 핵폭탄은 차분차분 조립되어가는 줄도 까맣게 모른 채......

근자 들어 난 그에게서 그가 그토록 강조하며 유행시키던
'이진법의 서늘함'을 찾아볼 길이 없다.
등짐이 소금인 줄 알고 일부러 물에 빠졌다가
물속에서 허우적대는 솜통 실은 당나귀의 어리석음을 볼 뿐이다.

누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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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글(25일 아침)

나카지마에 부닺힌 이용규의 헬멧에서 파편을 보았습니다.
한순간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어설픈 애국심이 발동되어서도 아니고
거짓없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직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들을 보면서
2등도 1등 못지않음을 새삼 느껴 보았습니다.
아니, 우직하고 정직하게 최선을 다한 모습이라면, 꼴등인들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거짓과 협잡이 난무하는 세상, 우리 선수들은 스포츠를 통해
최선을 다하는 정직한 노력의 값진 가치를 보여주었습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여러 우울한 뉴스들에도 불구하고 어제 하루는 괜찮은 하루였습니다.
우울한 님들, 힘들 내시길 바랍니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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