죶도 모르는데 죶밥을 어찌 알랴!

지금으로부터 6~7여년 전 발랑 까진 초딩에서부터 경로당의 노땅들까지 인터넷 글질에 가세할 무렵, 퇴마록의 작가 이우혁은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논리 오류>라는 글을 썼다.

인터넷 게시판에선 누구나 글을 쓸 자유도 있고 비판할 자유가 있는 만큼이나 자신이 저지레한 글질에 대해선 욕먹을 각오도 해야 한다. 저마다의 개성이 분명한 온갖 군상들이 자유롭게 모인 곳에서 모두가 공감하는 룰을 만들고 지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성의 토론 경험을 통해 우리가 범하기 쉬운 인터넷 글질에서의 논리적 오류들을 짚어보고 숙지함으로써 글질에 임한다면 ‘욕먹을’ 일을 현격히 줄일 수는 있다. 논리적 오류가 덜한 글은 내용상의 공감이 없을지라도 최소한 무시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문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기 수십 수백 가지의 논리의 오류들을 살펴보노라면 오류 없는 완벽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다. 관건은 오류 없는 글쓰기를 위해 얼마나 노력하느냐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내쏟았다가 욕먹어 기분 좋을 사람은 없다. 때에 따라선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도 하고 천 년 업을 쌓기도 한다. 말이란 그만큼 중요하고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분별력 있고 조리 있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이우혁이 제시한 기준과 원칙은 인터넷 토론에서 지켜야할 철칙(철칙이란 없다)은 아니지만 인터넷에서 글질의 결과로서 누구나 겪게 되는 욕의 량을 조금이나마 줄여 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 쯤 읽어볼 만한 글이다.

이미 읽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원문에 최대한 충실하면서 아구라의 사례들에 빗대어 각색하여 두세 편으로 나눠 소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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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격의 오류


누구도 다른 사람을 비판할 자격은 없다?

아구라에선 가끔 듣던 말이다. ‘니 글을 써라, 유명인들 까지 말고! 정 까려면 원글 100개 정도는 쓰고서 남을 까라!’ 과연 그런가? 비판의 자유가 없으면 옹호의 자유도 없다. ‘비판하지 않을 테니 옹호치도 말라!’고 하면 할 말이 있겠는가. 원글을 100개를 쓴 사람이든 댓글 하나 달랑 쓴 사람이든 비판과 옹호의 자유는 토론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참여하는 자격 요건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시판이 아니라면 ‘니 글이나 써라, 유명인 까지 말고’란 소리는 텃세이거나 으름장일 뿐이다. 편의상 이것을 ‘자격의 오류'라고 해두자.


옹호는 좋은 것이고, 비판은 나쁜 것이다?

판사가 법정에서 이건희가 지은 죄 대신 공로를 인정하여 옹호하는 게 좋은 것인가?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네르바 K를 거론하여 한 젊은이를 정신파탄자로 몰아세우는 리드미를 비판하는 일이 나쁜 것인가? 옹호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고 비판이 항상 나쁜 것도 아니다. 비판과 옹호가 나름의 합당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면 그 행위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단 명백히 밝혀진 ‘부정을 옹호’하거나 ‘정의를 비판’하는 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정의의 탈을 쓴 악덕을 감성적이고 무분별하게 옹호함으로써 정의를 악덕으로 비판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경찰에 쫒기는 연쇄살인범을 동정하여 그를 숨겨줌으로써 그가 또다시 연쇄살인을 이어간다면 그런 감상적이고 무분별한 옹호는 범죄가 되듯 행여 아고라의 누군가를 무분별하고 감상적으로 옹호하였는데 그가 그런 지지를 사기질에 동원한다면 옹호한 사람들은 범죄에 간접 가담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도 피해자요’란 소리는 사후 핑계일 뿐이다. 비판의 자격을 묻는다면 옹호의 자격도 물어야 한다.


2. 자칭 무림고수의 오류


나는 그런 불의를 보고 참아 넘길 수 없다! 내게 덤벼라!

이런 태도는 일견 멋있어 보인다. 좋아 보이지 않는 걸 ‘옳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상황에 따라선 이런 값싼 정의감은 바보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달을 보랬더니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톱 밑에 때 낀 걸 나무라는 사람이기도 하거니와 골인 지점을 앞둔 마라토너의 신발을 가리키며 ‘똥이 묻었으니 1등 해봤자 더러운 승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꼬락서니이기도 하다.

중원에서 마교의 무리가 기수십년을 활개치고 있다. 그들과 기수십년을 다투어온 구파일방의 정파 장문인들은 마침내 마교 교주와 사파의 무리들을 포획할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았다. 전 무림을 희생시켜가며 마교 교주와 그 일당들을 간신히 포위했는데 느닷없이 쌩판 첨보는 미친 늠이 빗자루 타고 날아오더니 “아니, 이거뜨리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포위하고 잔인하게 칼을 휘두르다니 신사적이고 숙녀적으로 고운 말로 해도 될 것을! 나는 이런 불의를 절대 그냥 보아 넘길 수 없다. 어디 내게 덤벼라!”라고 외치더니 온 하늘에 고추가루를 뿌려버렸다. 모두가 재채기하는 사이 마교 교주와 그 일당들은 웃으면서 유유히 달아나 버렸다. 마교가 휘두른 칼에 지난 기수십년 간 피바다를 이루었던 중원의 평화는 사악한 마교교주와 일당들을 잡기 전까진 또다시 깊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어야만 했다. 뛰어든 늠은 도대체 먼가? 정의의 사도인가? 스스로 소개하기를 자신은 절대 칼은 손에 들지 않는 수행중인 도사라고도 하고 고추가루만이 상생의 평화를 부르는 무기라고도 했다. 고추가루를 뿌리고서 중원에 평화가 왔는가? 바람에 날린 고추가루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 시각 달아난 마교 교주와 일당들은 숭산 소림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었다. 미친 늠!

이런 예를 든 것은 누구든 끼어들 자격은 있으나 때와 장소와 상황을 잘 살펴가며 행동을 하란 소리다. 어딜 가나 버젓이 관심을 끌고자 하는 인간 군상은 있다. 꼭 있다. 아서라, 말어라! 한 번 정도면 애교로 봐주겠지만 두 번 세 번이면 애처롭다. 무슨 정의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나대면서 끝끝내 잘난 척 해대는 미친 족속이 많고 또 그런 족속들을 적절히 이용하여 빠져나가는 악당들이 있음을 명심하자. 이런 걸 일명 ‘자칭 무림 고수의 오류’라고 이름 붙여둔다.

옹호와 비판은 누구나 자유롭게 하되 무분별하진 말라. 무분별해도 좋을 옹호와 비판이 허용되는 단 하나의 경우는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뿐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토론 중에 사람의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시시비비를 가리는 정도인 이상, 무분별은 가능한 범하지 않는 게 욕을 덜 먹는 길이다.

누구든 끼어 들어라. 모두에게 자격은 있다. 허나 처절히 매도되고 비웃음 사는 것도 자기 일이니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주제 없이 나서지 말라'는 말은 주제가 없으면 나설 자격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주제가 없으면 망신 당하기 십상이기에 함부로 나서지 말라는 뜻이다. 죶도 모르는데 죶밥인들 어찌 알겠냐마는. 다음에......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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