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밥질에 대한 단상

작성일:2010.02.10


1년여의 알밥 생활에 두 번째 권태기가 닥쳤다.

첫 권태기가 지난해 5월 중순경 이게 먼 짓이고 시퍼
미네르바 진위 논쟁에서 두세 달 정도 발을 뺐던 때다.

요즘 들어 다시 그 때 그 기분으로 띠리리해진다.

과거 황빠,까 간의 논쟁처럼 아구라 경방의 미네 진위 논쟁이
신앙 수준의 믿음과 이성간의 대립임을 자각한 순간,
난 논쟁을 포기했고 유희알밥을 자처한 지 이미 오래였다.

천하의 둉신들이 모여 벌이는 재롱들을 조롱하는 일도 이젠 지겹다.
유치원 재롱잔치도 다섯 살 때가 재밋지 여섯 일곱 살 때 가면
손에 든 캠코더가 무겁게만 느껴진다.

간혹 앵겨 붙는 정체불명의 바보들과 놀아주는 것도 기찮고,
둉신들이 짖어대는 개납알 합창탓에 쌓이는 귀지를
피아노의 고운 음률로 씻어보는데도 쉬 정제되질 않는다.
경방의 어느 알밥인들 그렇지 않으랴만
애저녁에 둉신들을 교정, 계몽할 생각들은 버렸을 게다.
대부분의 알밥들이 여적지 경방을 맴돌고 있는 건
시작했으니 끝을 보고자 하는 맘 탓이리라.

어쩌면 미네르바는 첨부터 아구라가 만든 환상이었다.
현실 세계 저 편의 동굴 속에 옹당구리 아굴바굴 모여 앉아,
현실 세계에서 겪는 핍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간의 대딸짓으로 만들어낸 환상!

모두가 한 입으로 물을 뿜어 동산에 무지개를 띄우며 환호했으나
해 지자 찾아드는 공허감을 또 무엇으로 달래랴.
암흑 속에서 그들의 절망과 분노는 그저 지옥의 아귀들처럼
물고 뜯고 할퀴는 걸로 발현될 수밖에.
또 해가 뜨면 한 입으로 물을 뿜어 동산에 무지개를 피울 때까지는!
그렇게 또 하루를 공들인대도
저녁 밀물에 쓸려지고 말 백사장에 쌓아올리는 바벨탑인 것을...

여름날 장마 홍수로 아작이 나는대도 개미들은 개미성을 쌓고 또 쌓긴 하더라.
그리고는 그 왕성한 번식력만으로
여름날 장마 태풍의 희생에도 아랑곳없이 끝없이 생존킨 하더라.
미물들의 생존본능이 더욱 강한 법이다.
백두산 호랑이는 멸종되어도 바퀴벌레의 멸종이란 없다.

둉신들의 생존력만큼은 인정한다.
약한 늠은 강한 늠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험한 세상을 살면서,
기필코 살아남는 적자의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서라면
어디 이성이나 양심, 정의 따위의 알량한 가치들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오직 살아남는 게 목표일뿐인 늬들의 비루한 인생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목표 앞에서는 성스런 것일 수도 있겠지.
그건 인정하마. 뉘들의 투쟁은,
알밥들조차 간섭할 수 없는 원초적이고 숭고한 생존 투쟁이란 것을!

다만 바라기는, 이성과 양심과 정의조차 저버리고
오직 살아남기 위해서 벌이는 늬들만의 비열한 투쟁을
민주와 개혁과 진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덧칠하진 말라.
그것만큼은 봐주기가 참으로 역겹다.
차라리, "이성이고 양심이고 죶이고 내가 살아남기 위해
짖겠다는데 니들이 먼 상관이냐!"라고 한다면
알밥들도 그런 솔직함 앞에선 찌그러질 게다.
알밥들이 첨부터 끝까지 경계코자 했던 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늬들의 거짓과 가식과 허위의식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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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쌓아올린 환상을
자신들의 손으로 짓이겨 버리겠다는데 뉘라서 막을 수 잇을까.
사실, 미네 진위 논쟁은 이제 끝이 난 거나 진배없다.
아구라 스스로의 토론 능력으로선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모든 일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리담메의 등장도 필연이고 아굴민들의 자기부정도 필연이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필연!

법정에서나마,
가려진 진실들이 다는 아니어도 대부분의 형태는
드러내리라 기대해본다.
그 드러나는 진실들을 인정하든 부정하든
그 또한 아굴민들의 선택이다.
어떤 선택이든 그마저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면
그 선택의 옳고 그름은 오직 개개인의 양심으로만 판단할 수 있을 터
더 이상 알밥들의 몫은 아니다. 더 이상은.
더 이상은.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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