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구 이야기

작성자:허허
작성일:2010.02.06



내가 환장할 만큼 좋아하는 어휘가 있다. 지독(至毒)과 기우(奇遇)이다.
지독至毒, 몰입의 정도가 내게 독으로 이르도록 미칠 수 있다는 이 어휘에 나는 흠뻑 반했다. 불가에서 재를 지낼 때, 재를 지내주는 이를 일컷는 어휘로 복위(伏慰)와 기우(奇遇)로 나뉜다. 죽어서 재를 받는 이를 영가(靈歌)라고 하고, 그 영가를 위로하는 사람중에서 영가보다 아랫사람은 이름 뒤에 복위(伏慰)를 붙인다. 말 그대로 엎드려 위로 한다는 소리다.
하지만 영가가 자식이거나 아랫사람일 경우는 비록 두 번 절을 하지만 기우(奇遇-기이한 만남)라고 한다.
상상해보라. 자식의 영가에 절을 하는 부모(혹은 영가의 윗사람)의 표현으로 백 마디의 가슴이 째진다는 소리 보다는 '뭔 이런 좇같은 만남이 다 있노?...' 라는 의미를 함축한 표현으로 애절하다 못해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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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쯤 전 일이다.
감나무 아래에 군집을 이룬 머위 잎 사이에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보아도 코스모스 같았다. 형에게 물은 즉 "파종 시기는 아니지만 씨앗이 있기에 뿌리긴 했는데, 서리 내리기 전까지 꽃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괜한 짓을 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한다. 지금이야 개량된 품종으로 한여름에도 꽃을 피우긴 하지만 코스모스는 단일성 식물이라, 해가 짧아지기만 하면 꽃잎 분화를 기대해 봄직도 했다. 보통 코스모스는 봄에 싹을 틔워서 여름 내내 자라 9월에 들어서야 꽃을 피우는 식물인데, 5개월이나 늦은 파종이라서 뭐라고 장담을 할 수가 없었다.

'백구'는 십오 년 전에 부산의 어느 절에서 가져온 귀주견이다.
외관이 진돗개와 흡사하지만 눈초리가 찢어져서 못된 느낌을 주는 진돗개와는 달리 순하고 예쁜 눈을 하고 있다. 원산지는 일본이라고 한다. 언젠가 전자상가의 CF 광고에 "한번 주인은 영원한 주인" 이라는 문구와 등장했던 그 개가 귀주견이다. 소재는 진돗개에 얽힌 일화를 썼으나 모델로 쓰기엔 진돗개의 찢어진 눈매가 충직한 느낌을 주기 보다는 독한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진돗개와 흡사하나 눈매가 더 예쁜 귀주견을 썼다고 한다. 백구가 바로 그 종이다.
밖에 나갔다 올 때면 사람 먹는 찬보다 개먹일 것에 더 신경을 쓰는 형에게 된장 발라 버리자는 농담에, 정색을 하며 엄마가 생전에 밥 챙겨준 개라서 명대로 살게 뒀다가 죽으면 묻어줘야 한다 말에 무안하기도 했다.
그런 백구가 이제 노환으로 기력이 쇠하여 눈곱이 덕지덕지 끼고 털에 윤기도 없으며, 낯선 이가 와도 짖는 건 고사하고 내다보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아침으로 백구 밥그릇 주변에 까치가 몇 마리씩 죽어 있곤 했다.
사냥개답게 밥을 훔쳐 먹으려는 까치를 덮친 결과다.
지금은 까치가 밥그릇을 덮고 있어도 본둥만둥한다.

추석을 앞두고 모인 가족 앞으로 두 가지 희소식이 생겼다.
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어린 싹에 지나지 않던 코스모스가 꽃을 피웠다.
파종 후 삼 주일 만에 꽃을 피워서인지 포기당 꽃 봉우리 수는 적지만 꽃의 자태가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신비감마저 준다.
또 하나는 아랫마을서 흑염소를 방목하는 이가 강아지를 한 마리 가지고 왔다.
형이 없는 사이에 흑염소를 방목하는 이가 백구의 혈통을 탐내어서인지, 그가 기르는 암캐가 발정을 할 때 데리고 와서 씨를 받았다고 한다. 백구가 사람으로 치면 팔순 노인인데 그런 무지몽매한 짓을 하였다고 흥분하는 형더러, 스님에게 개 사돈이 생겼으니 그게 부끄러워서 그러는 게 아니냐며 놀렸다.
그렇지 않단다. 교미를 붙인 그 즈음에 백구가 며칠간 운신을 제대로 못했고 음식을 보고도 못 먹기에 닭을 삶아 먹이고 통조림, 우유 등을 며칠 먹이니 그때서야 깨어났다고 한다. 사전에 양해를 구했더라면 거절했을 거란다.

코스모스의 개화와 강아지의 출현으로 다들 감동을 하는 반면 나는 왠지 아팠다.
/2005년 9월 18일(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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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21일, 엄마는 가덕도에 있는 집 인근에 모셔둔 아버지 산소 근처에서 벌에 쏘여 쇼크사 하셨다. 등산객이 엄마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숨이 멎은 상태였고, 엄마 옆에는 백구가 낑낑거리며 앉아있더라고 했다. 엄마에게 달려드는 벌떼를 쫓으려 했던지 백구도 벌떼에 쏘여 성한 곳이 없었다고 했다.
엄마 장례 후, 남매들과 백구를 어떻게 할지 의논하였다.
모두 아파트에 사는 관계로 애완견이 아닌 백구를 데려갈 수 없다는 딜레마가 있었다.
더우기 그때 백구 나이는 이미 일반적인 개의 자연수명을 훌쩍 지낸 늙은이였다.
결론은 백구의 자연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평생을 엄마와 함께 살았던 가덕도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게 가덕도에 그대로 두고 남매들이 순번제로 들어와서 보살피기로 했다.
그 당시 백구는 뇌졸중이 와서 뒷다리를 옳게 운신못했고, 치매끼도 보였다.
1년을 못 넘길 줄 알고 시작한 남매들의 백구 식모 역활은 3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2007년 3월 말경에 나와 교대하는 형으로 부터 아무래도 백구가 얼마 남지 않은 거 같으니 묻어 줄 구덩이를 파두라기에 백구 딸이 살던 집 옆에 깊게 파뒀으나, 그 구덩이에서 풀이 한 뼘 넘게 자라도록 백구는 잘 버텼다.


2007년 5월 4일 오후 2시경 백구는 노환으로 죽었고, 나는 남매들에게 애고애고(哀告)라는 문자를 날렸다.


백구가 죽기 10분쯤 전, 숨을 몰아쉬던 백구에게 어디서 어찌 알고 왔는지 알을 쐬려는 쇠파리떼가 새카맣게 덮고 있었고, 그게 괴로운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만 꿈벅일 뿐 꼼짝을 못하는 백구에게 직사는 해로울낀데 하면서도 에프킬러를 뿌려주었다. 백구를 구덩이로 안고 가서 묻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니 생각이 없었던게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었을 뿐 있었다. 그 생각을 지금 표현하라면 기우(奇遇)다.



감나무 아래 머위잎 사이로 코스모스가 폈던 위치(올해는 코스모스를 안 심었다)




백구가 살던 집. 지금은 대나무가 솟고 잡초만 무성하다.




백구집 10미터 위 백구딸 흰순이가 살던 집(그 옆에 백구를 평장으로 묻다)




백구 무덤위에서 내려다 본 가덕도 풍경



written by ===허허===
(이 글의 저작권은 '허허'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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